이사회 사람들은 문서를 꺼내어 매우 공손한 척하며 성도윤에게 건넸다. “성 대표, 이 자발적으로 성대 그룹 경영을 포기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하길 바라요. 다만 성 대표 현재 상태로 독자적으로 서명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어요?”고개를 살짝 젖힌 성도윤은 완벽한 턱선을 드러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펜 줘봐요.”“안 돼, 안 돼요!”차설아는 여전히 성진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는데 그녀는 모든 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했지만 너무 허약해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망할 놈, 이거 놔,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그녀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이 성진 품에서 허우적대며 심지어는 남자의 팔을 잡아 사납게 물어뜯었다.“쉿, 조용히 좀 있어요. 이건 도윤이의 선택이야, 내가 당신을 놓아준다고 해도 서명할 건데 왜 그렇게 걱정해요?”“성진, 이 비열한 자식, 너는 네가 이런 식으로 이 사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할 거야. 너는 영원히 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야!”차설아는 한사코 성진의 팔을 물고 늘어졌는데 온몸이 떨리고 입술과 이빨 사이에 피비린내가 났다.성진은 팔뚝의 깊고 피가 배어 있는 이빨 자국을 보고 분명히 가슴이 아팠지만 또 한편으론 통쾌함을 느꼈다. “비교 대상이 안 되면 뭐 어때요. 적어도 당신이 나를 보게 할 수는 있잖아.”어쩌면 그는 이런 병적인 방식으로 차설아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여자가 그를 욕해도 좋고 때려도 좋고 심지어 한입에 그를 잡아먹는 것도 그녀의 안중에 그가 없는 것보다 나았다.“이... 차설아 씨, 자중하세요.”이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 침을 삼키고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성도윤도 비록 눈은 멀었지만 감정은 여전하니 차설아와 성진의 대화를 내내 들으며 차설아에 대해 더욱 확신이 생겼다. 분명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말이다. 사인펜을 잡고 있던 그의 손가락이 살짝 조여졌다.“서명했으니 이젠 떠나셔야죠.”“
“허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요?”차설아는 마치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는데 그녀의 속상함과 방금 그 모든 것들이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당신 말이 맞아요. 이건 당신 사업이지 내 사업이 아니니 확실히 나와는 상관없어요. 내가 너무 한가해서 오지랖을 부렸네요!”차설아는 너무 괴로운 데다 몸이 허약한 나머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성진은 그녀의 비틀거리는 몸을 때맞춰 일으키며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정말 한가하다면 가서 봉사나 해요.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내가 오지랖이 넓은 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네가 판단할 필요는 없잖아!”차설아는 성진을 미워하는 눈초리로 쏘아보더니 그를 모질게 밀어냈다.이 세 사람은 마치 세 개의 화살촉처럼 날이 세우고 있었는데 불꽃 튀는 신경전이 계속되었다.차설아는 말로는 괜찮다 하면서 몸은 지탱하기 버거웠는지 몇 발자국도 못 가서 중하게 쓰러졌다.“아가씨, 아가씨!”민이 이모가 당황해서 소리쳤다.——차설아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콜록콜록!”차설아는 눈을 떴는데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드디어 깼군요!”그녀의 손은 큰 손바닥으로 꼭 싸여 있었고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성도윤...”그녀는 비몽사몽 한 찰나 침대 앞 남자의 잘생긴 모습을 보고 불쑥 그의 이름을 불렀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기 손을 쥔 손바닥이 눈에 띄게 차갑고 딱딱해지는 걸 느꼈다.“성진, 너였구나!”차설아는 그제야 그녀의 손을 잡은 남자가 성도윤이 아니라 음흉한 성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즉시 얼음같이 차갑게 자신의 손을 뽑았다.“목적을 달성했으면 축하해야지 뭐하러 여기에 달라붙어 있어?”여자의 눈빛은 경멸의 기운이 가득했다.“내 목적은 성대 그룹이 아니라고 일찍이 말했던 거로 기억하는데.”“알았어, 너의 목적은 성도윤을 이기는 거잖아. 그는 이미 잃을 것이 없어. 아직도 무엇을 더 원하는 거야?”
차설아는 몸을 굳히고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일침을 가했다.“네 말대로라면 내가 언젠가는 널 잦아가 빌기라도 하겠어? 그래서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그렇게 생각해도 되고.”성진은 살짝 눈썹을 치켜들었는데 유유자적하는 표정이었다,“지금 도윤이를 매우 아끼고 있지 않아요? 그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잖아요. 내가 지금 분명히 말하는데 당신이 나에게 간청하기만 한다면 나는 즉시 대외적으로 계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거예요. 성대 그룹은 여전히 성도윤의 것이죠?”“정말이야?"차설아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정말 조금은 마음이 흔들렸다.성대 그룹이 성도윤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였는데 만약 성진 같은 소인에게 뺏긴다면 그것은 그의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그녀는 정말 그러는 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당연히 진심이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자사자 당신 옆에 달라붙어 뭐 하겠어요? 나는 진작에 축하파티를 했겠죠, 안 그래요?”성진은 여자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여자의 의지가 조금씩 무너지자 더욱 대담해져 손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었다.“시작해봐요, 나한테 빌어보라고요.”“웩!”차설아는 되려 토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눈을 뒤집으며 말했다.“성진, 너 좀 제대로 해봐, 차라리 그냥 대가가 무엇인지나 말해. 가성비 계산해야 하니까.”“가...가성비?”성진이 가까스로 꺼낸 시크한 카리스마는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입가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이 여자는 왜 조금이라도 그 앞에서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이 사람은 차설아 아닌가? 그녀가 연약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면 해가 서쪽에서 뜨겠지...차설아는 정색하며 말했다.“무릎 꿇는 게 대가가 적다면 무릎을 꿇을 거야. 하지만 무릎 꿇는 대가가 크다면 무릎을 꿇지 않고 간단하고 난폭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니 기대해.”
남자의 어두운 눈동자는 캄캄한 밤에 갑자기 켜진 등대처럼 유난히 밝아졌다.여자의 이 자그마한 자비는 성진에게 있어서는 마치 오아시스처럼 달콤했는데 그를 미친 듯이 기쁘게 만들었다.“그건 내가 죽는 게 아깝다는 얘기잖아요.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것 뿐이라는 거죠.”“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성도윤을 살려달라고 부탁하면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야.”“대가라기보다는 선택이죠.”성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고 잘생긴 얼굴은 보기 드물게 평온하고 이성적이었다.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간다면 나는 성대 그룹을 버리고 이제부터 은거하고 다시는 이런 분쟁에 참여하지 않겠어요.”“너랑 같이 가자고? 그게 다야?”차설아는 좀 이상했다.그녀는 원래 성진이 변태적인 요구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그의 시중을 드는 등과 같은 것 말이다.심지어 그녀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가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의 뺨을 세게 때리고 그를 변태라고 욕할 준비가 말이다.“그래.”눈을 감은 성진은 동경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우리는 세상과 단절된 곳을 골라 편안하게 소소한 나날을 보내는 거죠.”“그게...”차설아는 얼떨떨했다. 성진은 멍청하다고 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이 오랫동안 준비한 끝에 정말 성대 그룹을 빼앗았다. 하지만 또 똑똑하다고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여자밖에 모르는 순애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계획해 온 일을 이렇게 포기하다니...그는 악역이잖아? 어떻게 악역이 마땅히 해야 할 악랄한 결단이 조금도 없단 말인가?“싫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난 단지 당신이 저와 함께 은둔하기를 원할 뿐이고 다른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강요하고 싶어도 그럴 재주는 있기나 하고?”“기회를 주면 내가 과연 그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거예요.”차설아는 눈빛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얼른 장난기를 거뒀다.“너랑 은둔만 하면 성도윤을 놔준다... 가성비도 좋은 것 같으니 잘 생각해 볼게.”원래
“무슨 요구요?”성진은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밝은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승낙했어! 승낙했다고!!그는 마음속으로 노호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 성취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 차설아의 작은 요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의 별을 갖고 싶다고 해도 그는 따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나는 너와 함께 갈 수 있어. 다만 그가 완쾌되고 빛을 볼 때까지 성도윤과 함께 있어야 해.”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이것은 그녀가 일찌감치 계획한 일이며 어떠한 변고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성진의 원래 횃불처럼 밝았던 눈동자는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암울해졌고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허허, 어떻게 완치할 수 있지? 또 당신 피로 그를 먹여 살리려고요? 봐요, 당신은 지금 허약하다고요. 당신이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데요!”“너.....네가 어떻게 알아?”차설아는 의외였다.그녀는 그에게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은 거로 기억하는데...?“당신의 양쪽 손목에 상처가 가득한데 성도윤처럼 눈이 멀지 않은 이상 머리가 있는 사람이 모를 리 없지 않아요?”성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여인의 팔을 잡아당겨 손목의 상처를 보았는데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성도윤은 당신을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목숨을 걸고 그를 치료하려는 목적이 뭐야?”“내 마음 편하려고.”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녀와 성도윤이 물과 불, 날아다니는 새와 물고기처럼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라도 그녀는 반드시 그의 남은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그래서 그녀는 그의 곁에서 그가 낫는 것을 지켜봐야 하고 그를 대신해서 그의 사업을 지켜야 하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줘야 했다...이렇게 해야만 그녀는 안심하고 그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당신 마음은 편해도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요.”성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의 이 요구를 나는 들어줄 수 없어요. 나는 당신이 즉시 나와 함께 떠나기를 바래요.
민이 이모는 아직도 약국에서 차설아를 위해 약을 달이고 있는데 미간이 깊게 파여 있었다.“회장님, 사모님. 반드시 아가씨의 평안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제 탓이에요. 저 때문에 아가씨가...”민이 이모는 부채로 난로의 불을 살살 때고 있었는데 후회막심이었다.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만든 처방은 확실히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도 대단했다.아가씨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성도윤에게 줄 약도 이미 다 써버렸다.그 결과 남자는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져서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있었다.갖은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고 무슨 까닭인지도 찾을 수 없었다.이 일은 아가씨에게도 감히 알리지 못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큰 사달이 날 것이다.“민이 이모!”차설아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조용히 민이 이모 뒤로 다가와 놀라게 하며 장난을 쳤다.민이 이모는 워낙 걱정이 많았는데 자연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이고, 아가씨. 깜짝 놀랐잖아요. 깨어나셨으니 다행이에요. 어서 이 약을 마셔요.”노인은 갓 달인 약을 손바닥만 한 작은 그릇에 붓고 세심하게 식혀 차설아에게 건넸다.차설아는 무심코 약을 마시다가 급히 물었다. “성도윤은 어때요, 약은 아직 충분해요? 더 뽑을까요?”말하면서 그녀는 두세 번 소매를 걷어 올리고 피를 뽑으려는 자세를 취했다.“뭘 또 뽑아요, 피가 수돗물이에요?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있게!”뒤따르던 성진이 냉담한 얼굴로 그녀의 팔을 누르며 말했다.“먼저 약을 마셔요, 도윤이는 지금 괜찮아, 당신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정말?”차설아는 반신반의했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모를 바라보며 확인하고 싶어 했다.“그게...”민이 이모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정직하고 성실해서 성진처럼 눈 뜨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또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차설아는 금세 알아차렸다.“민이 이모, 솔직히 말해봐요, 성도윤이 도대체 어떤데요?”그녀가 막 깨어나는 순간부터 그녀는 좀 이상하
차설아가 서쪽 스위트룸에 이르렀을 때 멀리서 컵과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꺼져, 나는 너희들의 연민은 필요 없다고!”곧이어 두 요양 병원의 간병인이 고개를 떨구고 나와 얼굴을 붉히며 억울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왜 그래요?”차설아가 간병인에게 물었다.“설아 씨, 깼어요? 잘됐네요..”여 간병인은 구원병을 보듯 다급하게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빨리 가서 성 대표님을 설득하세요.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데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시고 더욱이는 저희가 보살피지도 못하게 하면서 우리를 모두 쫓아냈어요. 이게 지속되면 병이 낫기는커녕 목이 말라 굶어 죽을 것입니다.”“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고?”차설아는 눈썹과 눈매를 살짝 찡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이 녀석이 또 어린애 같은 성질을 부리며 유치하게 구는 거에 대해 머리가 아파 났다.그는 두 여성 간병인을 향해 말했다.“먼저 내려가요. 여기는 나한테 맡기면 돼요.”“그럼 수고하세요, 조심하셔야 해요, 성 대표님 요 며칠 너무 예민하세요.”여 간병인이 당부했다.차설아는 넓고 편안한 정원을 지나 성도윤의 방문 앞에 이르러 문을 살짝 열자 벼루 하나가 문 쪽으로 던져졌다.“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꺼지라니까! 귀찮게 하지 마.”성도윤은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기댄 채 어눌한 말투로 현관 쪽을 향해 소리쳤다.그의 이런 조급하고 통제 불능의 모습은 차설아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두려워할 것이지만 그녀는 안쓰럽기만 했다.사람이 너무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자포자기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는 성도윤인데 말이다.“조심 좀 해요. 이렇게 좋은 벼루가 당신 때문에 바로 산산조각이 나버렸잖아요.”차설아는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굽혀 세 동강 난 벼루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성도윤의 옆으로 가서는 가늘고 하얀 손으로 남자의 손등을 살짝 덮었다.이는 성도윤을 금세 진정시켰다.“당신... 괜찮아요?”성도윤은 괜히 가슴이 조여왔다.그날 차설아가 갑자기 쓰러졌고 그는
그는 줄곧 경계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그가 가장 신뢰하는 서은아가 가끔 그의 얼굴이나 머리카락에 닿으면 적응이 좀 안 되었는데 하물며 모르는 여자 간병인들이 그를 돌보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그래요? 난 왜 당신이 내가 만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죠?”차설아는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장난스럽게 남자의 머리를 비비고 뺨을 주물렀다.그녀는 참다못해 폭발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상하네, 당신은 예외인 것 같아요.”“...”“따라서 누군가가 나를 꼭 챙겨줘야 한다면 그건 당신이어야 해요.”“???”“왜, 싫어요?”“아니,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혹시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차설아는 성도윤이 그녀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가 그녀에 대한 기억이 다시 돌아왔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왜 그녀가 특별하단 말인가?“나에 대한 기억이 돌아온 거예요?”성도윤은 대꾸하지 않았다.차설아는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차라리 생각이 안 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요.”성도윤은 자신이 아무리 알고 싶어도 차설아가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 좋고 나쁨도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나 면도 좀 해줘요.”성도윤이 불쑥 요구했다.그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은 사람으로 항상 깨끗하고 산뜻한 모습을 유지했는데 자신의 수염이 덥수룩하고 흐트러진 머리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었다.그런데 요 며칠 그는 유난히 퇴폐적이었는데 얼굴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아 마치 삶에 흥미를 잃은 아티스트 같았다.차설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이 세상이 여전히 흥미롭고 계속 발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면도, 면도요?”차설아가 머리를 긁적거리니 어색하게 되물었다.차설아는 비록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거의 남자처럼 생활해왔지만 유독 면도를 해본 적이 없었고 누군가를 도와 면도를 해준 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