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성도윤의 쓸쓸한 목소리가 그윽하고 으슥한 숲속으로 유난히 파고들며 가슴을 파고들었다.“나 지금은 마음을 바꿨어요.”“무슨 뜻이에요?”차설아는 남자를 응시했는데 그녀의 쓸쓸한 살굿빛 눈동자엔 약간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조금 전에 이곳에 남기로 했어요.”“정말이요?”여인의 두 눈매는 마치 별처럼 반짝였다. “그럼 이제는 탈출하지 않는 거예요? 드디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알았군요?”“그건 아니고...”성도윤의 완벽한 얼굴은 타고난 자신감으로 여유로웠다.“내가 진짜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건 일도 아니죠, 누구도 날 막진 못할 거에요.”“푸!”차설아는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이 지경이 됐으면서 말은 잘해.“맞아, 맞아요. 당신이 제일 대단하고 제일 강하죠, 이 숲에 사방팔방 수많은 길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가장 험한 용음구를 고르다니... 당신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건 알고 있는 거죠?”“당신이 이렇게 대단하니 우리 내기나 할까요? 당신이 혼자 용음구에서 벗어나면 서은아에게 데려다주고 자유를 줄게요.”성도윤은 살짝 눈썹을 치켜들며 되물었다.“진심이에요?”“당연하죠, 만약 못해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얌전히 내 서방님이 되는 거예요. 내가 섭섭지 않게 대해줄게요.”여자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어린아이를 놀리듯 배짱 좋게 남자의 뺨을 주물렀다.“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이에요.”성도윤은 고개를 젖히고 심호흡을 하며 뭔가를 느끼더니 사냥총을 어깨에 메고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어이, 아니... 당신 진짜예요?”차설아는 이 녀석이 무릎을 꿇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설마 정말 응전할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남자의 승부욕이란!“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여기는 전체 삼림 지역에서 가장 험악한 용음구라고요. 맹수가 없더라도 이 지세는 대처할 방법이 없어요. 갑자기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면 그냥 끝이라고. 이만하면 됐어요, 억지 부리지 말아요.”성도윤의 걸음걸이는 아주 굳건했는데 차설아와 거리가 멀어지자 쿨하게 한마디 내
차설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남자는 잠시 멈칫했지만 그윽한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흐릿했고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그러길 바라죠...”“당신...”남자의 애처로운 모습은 차설아를 무너뜨렸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정말 안 보여요?”“당신이랑 그런 장난을 칠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어요.”차가운 얼굴을 한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상처가 보였다.“미안해요, 정말 당신이 너무 대단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놈의 입이 문제야 정말!”차설아는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성도윤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이 눈이 멀어 가뜩이나 의기소침한데 눈먼 체하고 있다고 오해까지 했으니 이것은 그의 상처를 반복적으로 짓밟는 것과 다름없었다.성도윤은 별 표정 없이 정면을 응시하며 얇은 입술로 차갑게 내뱉었다.“그래서, 계속할 거에요?”차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대답했다.“당신이 계속하고 싶으면 계속해요.”“그럼 좀 비켜줄래요?”성도윤은 고개를 돌렸다. 보아하니 정말 혼자 힘으로 용음구를 빠져나가려고 마음을 먹은 듯했다.“...”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고 다시 남자의 뒤로 향했다.둘 다 집요함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 누구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결국 성도윤은 자신의 힘으로 무사히 용음구를 빠져나왔다.이때 구조를 온 전문 일군들과 마주쳤는데 모두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두 분 다 괜찮으신 겁니까?”“어머나, 이럴 수가. 우리 같은 전문인들도 사냥총을 소지하고 짝을 지어 다녀야 하는데 어떻게...?”“어, 그게... 상황이 좀 복잡해요.”여러 사람의 속사포 같은 질문에 차설아는 어색해했다.그녀도 성도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몰라 성도윤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네가 졌어.”성도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고 차설아가 있는 쪽을 향해 말했다.“그래, 내가 졌어.”차설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이겼으니 너의 소원을 들
차설아는 남자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가려고 할 때는 언제고 왜 갑자기 이러는 거예요?”“단지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가 떠나고 싶다면 아무도 날 막을 수 없다는 걸. 만약 내가 남는다면 그것도 내 선택이라고요.”성도윤은 다소 거만하게 대답을 했다.“그런데... 왜요?”차설아는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그녀는 이제는 성도윤이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도망갈 실력이 있다고 믿었다.다만 그는 오로지 서은아만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왜 또 갑자기 남기를 원하는 거지? 이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당신은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떠나려 한다고 했죠, 하지만 당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구하려고 했잖아요? 그건 우리의 관계가 단순한 병우사이가 아니라는 걸 설명하겠죠...”성도윤은 잠시 멈칫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특별한 교류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기억 일부가 빠진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지만 차설아가 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서은아는 물론 심지어 그의 어머니도 그렇게 이 여자를 신경 쓰지는 않았을 거다.모두가 그에게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으니 그가 스스로 남아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차설아는 순간적으로 멍해져서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정말 알고 싶으면 치료에 협조해요. 다시 내 모습을 보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잖아요.”“좋은 제안이네요.”성도윤은 시력을 잃은 이래 볼 수 없었던 즐거움과 적극성을 가지고 말했다.“당신을 만날 날을 기대하죠.”“...”차설아는 대답이 없었고 그녀의 마음속은 복잡했다.아마 당신이 나를 만나는 날이면 내가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성도윤은 무사히 신지 요양병원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민이 이모는 그를 검사한 후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차설아는 옆에 이를 지켜보고 있었고 가슴이 조여왔는데 그녀는 성도윤에게
차설아는 다시 가슴을 졸이며 긴장된 표정으로 민이 이모를 바라봤다.“이모, 뜸 들이지 말고 한 번에 다 얘기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마음이 쪼여와서 질식할 것 같아요.”민이 이모는 얼굴을 찡그리며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제 아버지의 의술이 뛰어나긴 해도 치료 스타일이 조금 기이해요.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중의학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처방만 사용하셔서 저도 그의 처방을 지금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에요...”“어떤 처방이에요? 얼마나 기이해요?”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의 처방에는 특별한 약인이 필요해요...”차설아는 한참을 말없이 고민하다가 민이 이모한테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제공할 테니까 필요하시면 쓰셔도 돼요.”“그렇게 되면 아가씨한테 너무 큰 상처가 될 거예요. 배신자를 위해 그럴 가치가 있을까요?”“저 때문에 도윤 씨가 이렇게 되었으니, 제가 목숨이라도 바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알겠어요, 저도 아가씨가 도련님한테 빚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해요.”말을 마친 두 사람은 성도윤의 치료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성도윤도 모처럼 차설아가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먹었다.일주일이 지난 후, 성도윤의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그의 맥을 짚어본 민이 이모도 마침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도련님의 맥이 이제 안정되었고 혈맥도 많이 원활해졌어요. 두 번의 치료 과정만 더 거친 후, 눈을 집중적으로 치료해도 될 것 같아요.”차설아는 기쁨에 겨워 눈까지 번쩍 뜨면서 답했다.“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네요!”성도윤의 치료를 위해 약인을 제공한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목소리도 눈에 띄게 쇠약해졌으면 눈두덩이도 검게 변했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차설아의 수척해진 모습을 본 민이 이모는 마음이 너무 아팠고 아버지의 처방전을 쓴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앞으로의 처방에는 약인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성도윤은 약간 조롱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설아 씨가 갑자기 숙녀처럼 너무 조용해져서 적응이 안 돼요.”차설아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은 성도윤은 그동안 수다쟁이처럼 말이 많던 그녀가 요 며칠간 유난히 조용했고 시들어가는 버드나무처럼 목소리에도 힘이 없으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상치 않아, 뭔가 있는 것 같아!’그러나 차설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제가 워낙 숙녀라서 그래요.”성도윤은 당당한 그녀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매가 부드러워졌고 환하게 웃었다.“맨손으로 곰을 때려눕히는 숙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궁금하네요.”그는 분명 차설아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과 있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이러한 편안함은 약혼녀인 서은아와 함께 있는 것보다 더 그를 즐겁게 했다.처음에는 편안한 이유를 찾기 위해 여기에 남았다면, 이제는 아무런 목적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남고 싶었다.차설아는 성도윤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희망찬 목소리로 말했다.“곧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될 거예요.”그녀는 의기소침하게 풀이 죽어있던 성도윤이 점점 당당했던 예전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매우 뿌듯했다.따스한 아침 햇살과 뭉게구름 아래서 대화를 나누다가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어젯밤 잠을 설쳤던 최설아는 피곤함이 갑자기 밀려와 기운이 없었고 그녀는 실눈을 뜨고 등나무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성도윤에게 물었다.“커피 마실 건데, 도윤 씨도 필요해요?”“설아 씨가 직접 타 주는 커피라면 당연히 마셔야죠.”이어 그는 뻔뻔하게 자기의 까다로운 요구를 말하기 시작했다.“유라 씨, 커피 온도는 58도를 넘지 않고 설탕 두 스푼을 추가하고 원두 본연의 맛이 잘 느껴지는 커피로 부탁할게요. 제 입맛이 좀 까다롭죠?”그녀는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단번에 동의했다.“문제없어요, 잠시만 기다려줘요.”성도윤의 아내로 사는 동안 차설아의 커피를 내리는 솜씨는 바
차설아는 곱게 갈린 커피 가루를 보면서 만족하다가 손목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다.이때,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남아름이 차설아의 손목 상처를 한 눈에 알아보고 걱정되는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뭐 해? 손목의 상처를 좀 봐, 그냥 직원들한테 시키면 되지.”그녀는 남아름한테 환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커피를 내렸다.“괜찮아요. 아줌마. 저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아요!”“피가 거즈를 빨갛게 물들였는데 뭐가 괜찮아, 오염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래!”언제나 봄바람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웠던 남아름은 자기를 막 대하는 차설아를 보면서 화가 났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커피 머신을 낚아채고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설아야, 어떻게 소중한 너의 피로 성도윤의 약인을 만들어 줄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네 엄마가 네가 남자 때문에 이렇게 다쳤다는 걸 아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차설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저는 아빠를 살리기 위해 엄마의 피가 필요하다고 하면, 엄마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어줄 거라고 믿어요! 마찬가지로 아저씨를 살리는 데 아줌마의 피가 필요하다면, 아줌마도 주저 없이 주겠죠?”“너...”남아름은 순간 말문이 막혀 반박할 수 없었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다시 말했다.“약인을 만드는 데 사람의 피가 필요하면 나한테 미리 말해줬으면 됐잖아. 요양원에 있는 혈액 창고의 피로도 충분한데 왜 네 소중한 피를 사용해서 몸을 망가뜨려. 아저씨랑 내가 너의 부모님께 뭐라고 설명해야 하니?”“아줌마가 절 걱정하는 건 이해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피로 약인을 만들어야만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법이 없었어요. 그리고 보다시피 그 약인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됐잖아요. 제가 한 결정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요.”남아름은 그녀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고 코웃음을 쳤다.“설아야, 아줌마를 속이려고 하지 마! 세계 최고의 의대를 졸업한 나도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치료법이라니 이건 말도 안
“그때...”남아름은 더 이상 그 일을 회상하기 싫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시간이 많이 흘렀어. 예전의 일을 들추는 것보다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아니요!”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켜쥐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차씨 가문은 8대 명문가 중 우두머리에서 전멸될 정도로 수많은 참혹한 일을 당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거듭 예정의 일을 들추지 말라고 당부하셔서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억누르고 잠잠하게 있었을 뿐이에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예전의 일을 들추지 않는다고 해서 없었던 일로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후 몇 년 동안 부모님을 비참하게 죽인 범인이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서 마음 편히 잠에 들지 못했고 잠이 든다고 해도 부모님이 아래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는 꿈에 시달려야 했어요. 전 오빠를 납치한 사람과 부모님을 살해한 사람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진실을 파헤쳐서 복수를 할 거예요.”겉으로는 과거의 고통에서 헤어나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차설아는 마치 거대한 산이 그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고 고통에서 하루도 벗어나지 못했다.게다가 쌍둥이 오빠인 차성철의 존재와 그의 쓰라린 과거를 알게 된 후부터 그녀의 복수심은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부모님께서 그곳에서 편히 쉬도록 오빠와 함께 범인을 찾아 복수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 계획이 늦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그의 상태가 점차 호전되고 있으니, 저도 이제 못했던 복수를 시작해야죠.”차설아는 원두를 가는 남아름의 손을 꼭 잡으며 정중하게 부탁했다.“저도 제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니까 더 이상 말릴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복수하려는 마음은 절대 꺾이지 않을 거니까 이모가 아는 모든 사실을 저한테 숨김없이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의 부모님을 위한 일이기도 해요.”“아이고, 이 녀석아! 어쩜 이렇게 네 엄마를 쏙 빼닮았
남아름은 종잡을 수 없이 변한 차설아의 표정을 보면서 자기의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그렇다고 해서 성씨 가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두 가문은 줄곧 해안에서 서로 도우면서 발전했고 그동안 큰 이익 충돌도 없었어. 그냥 네 오빠의 일로 왕래가 줄어들면서 관계가 소원해졌을 뿐이야. 그리고 난 성씨 가문의 궐기가 자체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해.”그 덕에 차설아의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고 점차 이성을 되찾았다.“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희 가문이 파산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건 성씨가문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만약 그들이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라면, 할아버지께서 진정으로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성씨 가문이라면서 성도윤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지 않으셨겠죠.”차설아가 성씨 가문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신뢰로 인해 마음이 바뀌었다.남아름은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차설아를 말리고 싶었다.“설아야,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춘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어. 그러니까 이쯤에서 옛날 일은 다 잊고 충실하게 살아가자...”그러나 차설아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그저 남아름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저도 제 분수를 알아요.”원두가 다 갈리자, 차설아는 성도윤의 요구에 따라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렸다.정자에 앉아 차설아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성도윤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어 약간의 불만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커피 한 잔을 타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어느새 차설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그는 커피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컸다.“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똑같이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그만한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에요.”차설아는 손수 내린 커피를 성도윤의 손에 쥐어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이 커피를 마시면 단언컨대 사랑에 빠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