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은 차설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허허. 입을 꼭 다물고 있겠다고?”차설아는 이 말이 너무 우스웠다.“네가 만약에 정말 입을 꼭 다물고 있겠다면 그 영상이 어떻게 서은아의 손에 들어갈 수 있어? 다시 말해서... 이건 단지 네가 성도윤을 꺾기 위한 수단이었지.”“죄송해요.”성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이렇게 한 것도 전부 설아 씨를 너무 사랑하고 설아 씨와 함께 있고 싶어서였죠. 성도윤을 설아 씨 곁에서 떠나게 할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요...”성진은 그 말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사실 우리 도윤 형님은 정말 설아 씨를 사랑했어요. 서은아와 사귀는 건 두말할 것이 없고 성대그룹의 회장 자리를 내놓으라 해도 기꺼이 내줄 것 같았어요. 이 점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넌 정말 치사한 놈이야.”차설아는 성진은 매섭게 노려보며 경멸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넌 이전에 그를 이겨본 적이 없었어. 지금도 그를 이길 생각을 하지 마. 내 이 일은 내가 자수할 거야. 이 일로 그를 협박하여 대표 자리를 가지는 거라면 꿈 깨.”“아니에요. 제가 설아 씨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설아 씨의 명예와 자유를 걸고 모험할 수 있겠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성도윤의 명예와 자유를 걸고 설아 씨를 위협하고 싶어요.”성진은 복잡한 표정으로 웃으며 눈빛에는 여우 같은 교활함이 배어 있었다.“날 위협한다고?”차설아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제가 말했다시피 저는 설아 씨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설아 씨를 가질 겁니다. 성도윤과 서은아가 함께 있으면 저는 설아 씨는 성도윤을 멀리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뜻밖에도 당신들은 헤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 함께 죽으려고 했죠. 제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세요?”“괴롭다면 가서 죽으면 되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차설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녀는 정말 죽도록 짜증이 났다. 성진 같은 미친놈을 건드렸으니
“꺼져, 이 미친놈아!”차설아는 성진이 미친 줄만 알았을 뿐 그의 말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너 같은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자란 이끼야. 네가 똑똑하다면 어두운 곳에 계속 조용하고 옹졸하게 자라겠지. 만약에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한다면 난 반드시 네가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그녀는 손에 장식품을 하나 집어 들고 성진한테 힘껏 던져서 그를 쫓아내려고 했다.성진은 늘씬한 몸매로 쉽게 피했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화내지 마세요. 절 보고 싶지 않다면 제가 그냥 가면 되죠. 어차피 조만간에 저에게 부탁하러 올 거예요. 그때 저랑 함께 아이를 낳죠.”“꺼지라고. 변태 새끼야!”완전히 분노에 휩싸인 차설아는 다리에 상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병실에서 들 수 있는 물건은 죄다 들어서 성진에게 던졌다.큰 소리가 나자 간호사들은 이내 달려왔다.“환자님, 이제야 위험에서 벗어났는데 이렇게 흥분하시면 안 돼요. 상처가 너 심해질 수 있어요...”“이 사람은 미친놈이에요. 빨리 쫓아내 주세요. 이 새끼가 가지 않으면 제가 갈게요!”차설아는 다리 상처의 고통을 참으며 미친 듯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이곳에는 1분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있다가는 그녀가 성진을 죽일 것만 같았다.“환자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니 먼저 자리를 피해주세요.”간호사는 차설아를 부축하며 강경한 태도로 성진이 떠나기를 요구했다.“좋아요. 지금 바로 갈게요. 설아 씨를 잘 보살펴야 합니다. 만약에 머리카락이라도 하나 다치면 저는 당신 병원의 모든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리겠어요.”성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 반 진담 반인 어조로 말하며 돌아서서 병실을 떠났다.“환자님, 지금 어때요? 호흡이 원활해요?”간호사는 차설아를 부축하여 다시 침대에 눕혔고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저 미친놈만 없다면 전 죽지 않아요.”차설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성진이 만약에 계속 이곳에 있었다면 그녀는 이미 화가 나서 죽었을 것이다.“정
“어? 민이 이모는 이곳에 웬일이세요?”당황해진 차설아는 다리의 상처를 덮으려고 했다.“뭘 가리고 있어요. 정말 급해 죽겠네요.”민이 이모는 차설아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아가씨가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다 알아요. 왜 이렇게 멍청한 거예요. 왜 그런 남자를 위해 강에 뛰어드는 거죠. 아가씨가 죽으면 두 아이는 어떡해요? 성철 도련님과 제 생각은 해본 적이 있어요? 아가씨께 만약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저는 천번 만번 죽어도 아가씨의 부모님께 사죄드리기에 부족해요.”“죄송해요. 민이 이모, 저도 그때 머리가 텅 비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모도 걱정하지 마세요.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니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차설아는 가슴을 툭툭 치며 씩씩하게 말했다.“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그건 시내를 도는 강이고 그렇게 높은 곳에서... 아래 곳곳에 돌멩이가 널려 있는데 자칫하면 영영 아가씨를 볼 수 없게 되었어요. 아이고...”“알았어요. 앞으로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게요. 어쨌든 저는 민이 이모의 귀염둥이잖아요. 이모 말씀 잘 들을게요.”차설아는 말하며 어린 시절처럼 민이 이모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민이 이모는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어떻게 이 일을 알게 된 거죠?”차설아는 원래 기쁜 소식만 전했고 나쁜 소식은 감추어 두고 있었다. 이런 일이라면 그녀는 절대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그들한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성진이라는 자식이 알려줬어요.”민이 이모는 성씨 가문 사람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성진은 아가씨가 성도윤을 구하기 위해서 강에 뛰어들어서 생명이 위급하고 하며 이 병실로 찾아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가씨를 잘 보살펴달라고 했어요. 말하는 걸 딱 봐서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확실히 나쁜 새끼예요. 앞으로 상대하지 마세요.”차설아는 이제 숨길 수 없다는 걸 느꼈고 전부 말했다. 자신이 어떻게 소영금과 서은아에게 속아 넘어갔고 또 어떻게 위험에서
백매 의료단에 대해 사실 차설아는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고 단지 신기한 조직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의학계에서 지위가 매우 높았다.전통 의학으로 잘 낫지 않는 많은 환자가 백매 의료단의 치료를 받으면 결국 전부 다 나았다.특히 백매 의료단 단장님은 보통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염라대왕과 사람을 빼앗는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소문에 따르면 백매 의료단 단장님은 쉽게 진찰하지 않고 제자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이 세상에 살아 있는지도 몰랐다.뜻밖에도 이렇게 유명하고 신비스러운 인물이 바로 민이 이모의 친아버지였다. 세상은 정말 작았다.“민이 이모,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다니. 어쩐지 이모의 의술도 그렇게 뛰어나시더라니. 제 유모를 하기에는 아까운 재능이에요. 앞으로 민이 이모께서 백매 의료단을 물려받겠죠?”차설아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님을 보는 것처럼 숭배하는 눈빛으로 민이 이모를 바라보았다.그와 동시에 묵묵히 민이 이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님의 딸인데 자기 옆에서 하인 노릇을 하게 했고 하찮은 일만 도맡아 하고 있으니 정말 후회스러웠다.민이 이모는 즉시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차설아의 손을 잡고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아가씨, 그게 무슨 뜻이에요? 혹시 제가 어디 잘못해서 저를 쫓아내려는 거예요? 제발 저를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 사모님께서 저의 민씨 가문에 생명을 구해준 은혜가 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어릴 적부터 말했어요. 저의 사명은 바로 차씨 가문을 지키는 것이라고요. 저는 이미 아가씨를 돌봐주는 데 익숙하죠. 만약에 굳이 저를 쫓아내신다면... 저는 죽음으로 은혜를 마저 갚겠어요.”“민이 이모, 오해하셨어요. 저는 단지 이모가 신의님의 딸로서 더 중요한 사명이 분명히 있을 텐데 저 때문에 원이 달이를 돌봐주면 이모의 재능이 아까워서 그러는 거죠. 이모께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백매 의료단을 계승해야 이번 생이 헛되지 않을 거예요.”
민이 이모는 신의님의 딸이고 게다가 수년간 의학을 열심히 공부해 왔기 때문에 의술은 신의의 레벨이 되지 못해도 세계적인 의학 전문가였다.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상처를 자세히 검사한 후 특별히 설아의 체질에 맞게 약 처방을 썼고 한약을 달여서 줬다.차설아는 순순히 모두 마셨다. 원래 보름 정도 지나야 나을 수 있었던 상처는 3일도 안 되어 거의 다 나았다.차설아는 원래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혼자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주치의조차 이건 기적이라고 외쳤다.“민이 이모, 약을 끓여줘서 감사해요. 정말 신기해요. 저 이제 혼자서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어요.”차설아는 3일 동안 푹 쉬었더니 기력이 회복되었고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민이 이모에게 물었다.“우리 오빠 그쪽에는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죠?”민이 이모는 한편으로 차설아의 방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성철 도련님께는 아가씨가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도련님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며 저보고 아가씨를 잘 보살펴 주라고 했어요. 원이와 달이는 도련님께서 잘 돌보겠다고 했어요.”민이 이모가 그렇게 말하자 차설아도 많이 안심되었다.“제가 그런 미련한 짓을 했고 심지어 병원에 입원했으니, 오빠가 알면 저를 죽도록 욕할 거예요. 그래서 절대 오빠가 알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저도 당분간 오빠와 연락 할 수 없어요.”“아가씨, 성철 도련님과 말다툼이 있었어요? 두 남매가 이제야 서로를 알게 되었는데 며칠도 함께 지내지 못했잖아요.”“왜냐하면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 때문에 오빠가 기분이 나쁠 수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 남매가 원수가 될 수도 있어요. 심지어 나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말리지도 않고 진지하게 말
차설아는 점점 긴장되어 숨을 죽이고 성도윤의 병실 앞에 한 걸음씩 다가가 방문을 살짝 열어젖혔다.호화로운 병실은 넓고 깔끔하며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성도윤은 병상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길고 빽빽한 속눈썹이 침대 머리맡의 오렌지색 불빛에 비쳐서 빛이 났다.성도윤은 아마 심하게 부딪힌 것 같았다. 머리에는 흰 붕대를 감고 있었고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는 깁스하고 있었다. 마치 산산조각 난 마네킹을 다시 조립한 느낌이 들자 차설아는 마음이 아팠다.“...”차설아의 눈물이 금세 눈시울을 적시고 눈 앞을 가렸다.성도윤은 그녀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오래된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또 이렇게 새로운 상처를 입었으니 마치 무거운 족쇄가 심장을 조여오듯이 아마 숨 쉬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바보야. 그렇게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사람이 왜 날 위해서 이 정도까지 희생해야 해? 내가 너한테 이렇게 많은 빚을 졌으니, 평생 갚아도 부족하겠어.’성도윤은 깊은 잠에 빠졌기에 차설아가 옆에 있는 것도 몰랐다. 그는 아마 별로 좋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냉랭한 얼굴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바보야, 잠들었는 데도 아직 꿈에서 싸우고 있는 거야? 좀 편하게 잘 거지.”차설아는 의자 하나를 끌고 와서 성도윤의 병상 앞에 앉아 그의 잘생긴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어 그의 치켜든 눈썹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러자 손끝에는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차설아는 성도윤이 즐겁고 느긋하게 살기를 바랐다. 꿈속에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이게 바로 민이 이모한테 말한 해야 할 일이었다.물론 성도윤을 떠나는 건 이미 정해진 운명이지만 떠나기 전에 그를 치료해 주고 싶었다. 그의 몸이든 마음이든 전부 치료가 필요했다.차설우의 이런 결정은 자기 오빠와 맞서 싸우는 것과 다름없기에 차성철에게 알리면 안 되었다.그리고 이 결정 때문에 자신이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차설아
성도윤은 마치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차설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윤곽이 뚜렷한 볼에 대고 비볐다.차설아의 손바닥이 그의 두 볼에 난 수염에 닿자, 그녀의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차설우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성도윤이 말했다.“약속해 줘. 앞으로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은아야.”“...”차설아는 또 한 번 멍해졌고 굳은 표정으로 성도윤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은 분명히 회복되지 않았고 또 한 번 차설아를 서은아로 여겼다.“내가 강에 빠졌을 때 너무 춥고 피도 많이 흘렸고 깊은 어둠 속에서 난 몇 번이고 견딜 수 없었어. 다행히 네가 나와 함께 있었고 넌 나에게 인공 호흡을 해주었던 기억이 나. 우리는 덩굴같이 꼭 껴안고 있었지. 생사를 함께한다는 그런 느낌을 기억해. 난 이미 눈먼 장님이니 너한테 평생 기대고 싶어. 날 뿌리치려고 하지 마.”성도윤은 껌딱지처럼 차설아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손등에 입을 맞추며 뜨거운 사랑을 속삭였다.성도윤의 이런 다정한 모습은 낯설지 않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였다...이보다 더 상처받을 수는 없었다.차설아는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고 그녀는 자신의 손을 떼고 울먹이며 말했다.“잘못 알고 있어. 난 서은아가 아니야.”“서은아가 아니라고?”부드러운 표정이던 성도윤은 갑자기 차가운 얼굴로 차설아의 손목을 힘껏 잡고 물었다.“그럼 넌 누구야? 왜 몰래 내 병실에 왔어?”“내가 누구라고?”차설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입가로 흘러 들어가자 더욱 씁쓸해졌다.“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야?”“넌 도대체 누구야?”성도윤의 차가운 시선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그는 바로 차설아의 손을 꺾으면서 소리쳤다.“더 이상 함부로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으악!손에서 오는 고통보다 마음속의 고통이 더 아팠고 차설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차설아의 실력으로 손쉽게 반항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반항할 의사가 없었
서은아는 성도윤의 옆에 다가가서 한 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와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했다. 보아서는 마치 결혼한 지 수십 년이 되는 노부부 같았다.“왜 미리 말도 없이 들어온 거예요? 제 남자 친구가 놀랐잖아요!”서은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며 건방지게 말했다.사실 이런 오만함은 원래 차설아한테만 있었다. 그녀와 성도윤의 사랑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에서부터 온 거였다.그러나 이제 차설아는 그런 자신감도 없었다. 성도윤과 서은아의 다정한 모습을 본 그녀는 마치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훼방꾼이 된 것처럼 어색했다.하지만 차설아는 절대 지려고 하지 않는 승리욕은 타고났다.비록 가슴이 아파 죽을 것 같고 눈물도 뚝뚝 떨어졌지만 차설아의 표정은 득의양양했고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아가씨가 그렇게 말씀하면 서운하죠. 저와 성도윤의 관계라면 미리 약속을 잡을 필요가 없다고 믿어요.”“뭐라고!”서은아는 화가 나서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다.“간호사인 주제에 자기 신분을 분명히 알아야지요. 여기는 그쪽이 할 일이 없으니 꺼지세요.”“할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가씨가 결정할 게 아니라 성도연이 결정할 일이죠.”차설아는 시선을 성도윤의 몸에 돌렸다. 그러자 차갑던 눈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성도윤, 난 네가 아직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아. 일부러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듣는 척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난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네가 화를 내도 다 이해해. 하지만 내가 이곳으로 온 건 널 돕기 위해서야. 그러니... 날 내쫓지 마.”“...”성도윤은 입술을 오므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이런 당혹하는 표정은 일부러 화난 척하는 것 같지 않았다.서은아의 안색은 점점 나빠졌고 성도윤의 손을 놓고 힘껏 차설아를 밀쳐내면서 소리쳤다.“이제 그만해. 도윤 씨는 방금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더 이상 자극하지 마. 도윤 씨가 죽어야만 속이 후련한 거야?”차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처럼 몽환적인 순간이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의 어깨에 기대고는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몇 년 전에 보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말이야...”배경윤은 제일 빛나는 별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사도현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별을 본 건 대학교 시절에 나, 우리 오빠와, 설아까지 셋이 외국에 여행 갔을 때야. 높은 산과 낮은 산 사이에 있는 구역에 차를 세우고 텐트를 쳤어. 밤만 되면 두 설산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그 별을 따라 가면 이 은하의 끝에 닿을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보기도 했어.”“네 말을 들으니까 상상이 돼.”사도현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원지대에서 보는 별을 사뭇 다르다고 들었기에 늘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삐 돌아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배경윤의 말을 들은 사도현은 마치 고원지대에 간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그때의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지냈어. 시간이 나면 운전해서 바람 쐬러 갔고 등산도 자주 갔었어. 바다를 많이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별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제 자리를 잘 지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도현은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평소에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인 여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고 우울한 면이 있었네?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배경윤은 사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별똥별이 한 획을 긋고 떨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너는 모든 사람이 너처럼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줄 알아?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말도 모르냐고!”“공주님이 웬일로 울고 있어? 그렇게 슬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
[재벌가 도련님과 암컷 돼지의 은밀한 관계!][사도현의 정신 상태 우려스러워...]사도현의 부드러운 노랫소리 덕분에 암컷 돼지는 첫 번째 새끼 돼지를 순리롭게 낳았다.“드디어 아기를 낳았어! 돼지야, 너는 정말 멋진 엄마야. 다른 아기도 힘내서 낳자!”사도현은 새끼 돼지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낡은 옷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마음이 뭉클했다.예전부터 사도현은 딩크족이었다. 아이는 그저 악마 같은 존재일 뿐,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윤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경윤이를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출산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마리의 암컷 돼지는 순리롭게 몇십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고 장은학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도현이 빨리 달리고 용기를 낸 덕분에 다른 게스트를 제치고 먼저 1000점을 획득했다. 장은학은 마을 이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고 ‘돼지 출산 전문가’라는 글이 적힌 상장도 주었다.사도현의 하얀 셔츠가 더럽혀졌지만 꽃다발과 상장을 안고 있으니 무척 행복했다.사도현은 배경윤 쪽으로 다가가서 환하게 웃더니 상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경윤아, 내가 결국 해냈어. 네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이제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배경윤은 싱글벙글 웃는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슬며시 엄지를 내밀었다.“네가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 진짜 대단해.”날이 어두워지자 사도현은 게스트들을 불러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게스트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현은 사람을 시켜 진찬영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업무 전화만 받게 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지내는 숙소로 걸어갔다.배경윤은 해산물 바비큐 파티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별장의 베란다에 기대 넓은 바다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날이 어두워
암컷 돼지들은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했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배설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다.사도현은 토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천천히 다가갔다.“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 난산이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장은학은 급한 마음에 목청을 높여 말했다.“확실히 할 줄 아는 사람 맞아? 할 줄 모르면 당장 나와. 자네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잠시만요. 제가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사도현은 코를 막고 겨우 말했다.‘이 세상에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 고작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걸로 겁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어.’고민하던 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첫째, 산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출산 공간을 만들어주고 괴망간산칼륨으로 암컷 돼지의 온몸을 한 번 닦는다.][둘째, 가위를 소독하고 새끼 돼지의 탯줄을 자른다.][셋째, 낡은 수건이거나 옷으로 새끼 돼지의 몸을 닦아주고 감싸안는다.][그리고 출산 과정에서 암컷 돼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다독이거나 노래를 불러서 암컷 돼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암컷 돼지의 출산 절차를 보고 난 사도현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도련님, 유명한 회사의 대표가 이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황당한 일이 연속 벌어지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도현 씨,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못 하겠으면 빨리 나오세요. 대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어서 제가 더 잘할 것 같거든요.”하늘은 돼지우리 밖에서 목을 빼 들고 말했다. 하늘은 사도현 다음으로 제일 초라한 별장을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별장을 바꾸고 싶었다.“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사도현은 심호흡하고는 가만히 누워있는 암컷 돼지를 괴망간산칼륨으로 닦아주었다.암컷 돼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버둥거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