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당연히 괜찮았다. 송민영도 안창수의 제안에 이의가 없었고, 이미 유현진에게 불만이 있었던 방이진은 안 그래도 화풀이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차라지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연예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어떻게 배우의 기를 눌러놓아야 하는지, 방이진은 잘 알고 있었다. 유현진은 방이진이 눈을 내리깔며 눈빛을 반짝이는 것을 보더니 소품팀을 지나치면서 소품 통을 슬쩍 만졌다. 한열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안창수의 “액션” 소리와 함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화장실. 무용복을 입은 두 여자가 쑥덕거렸다. “얘, 이사라 씨가 왜 리드 댄서에서 교체됐는지 알아?”상대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왜?”“나도 들은 얘기인데, 누가 학교에 편지를 썼대. 편지에는 이사라 가족의 족보가 적혀있었고, 지난번 시합에 흑막이 있다고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대.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그 시합에서 이사라가 실수했던 부분을 짚으면서 당시 심사위원들을 의심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이사라가 학교에서 무용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 왜 이사라에게 팀 리더를 맡겼냐면서 학교에 의문을 던졌대. 이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편지는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청에도 보냈나 봐. 학교에서는 학교의 명성에 흠이 될까 봐 이사라의 리드 댄서 자리를 박탈했고.”“의심을 받으니까 바로 교체했다는 건, 인정하는 꼴이잖아.”“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사라가 안무 실수를 했어. 그 상을 받을 때부터 이미 문제가 있었는데, 제대로 조사할 수나 있었겠어?”“누가 제보한 걸까?”그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리 반 애일 것 같아. 생각해 봐. 실수한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는 건, 무용을 배운 사람이라는 뜻이잖아. 아니면 그렇게 디테일하게 알 수가 없지. 그리고 이사라가 리드 댄서 자리에서 내려오면, 누군가는 당연히 그 자리에 올라갈 테니까.”“네 말은 윤여령—”“난 그런 얘기한 적 없
안창수는 얼른 다가와 유현진이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하고 그녀의 상태를 물었다. 유현진이 일어나 앉아 창백해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말했다. “감독님, 괜찮아요. 이진 언니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너무 몰입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너무 늦게 피한 탓이에요. 제가 제대로 서 있었으면 한 번에 오케이 되는 거였는데, 저 때문에 다시 해야겠네요.”그녀의 말에 방이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명 현진 씨 스스로 넘어진 거잖아요, 왜 나한테 그래요? 내 주먹이 돌이라도 돼요? 따귀 한 대에 피까지 토하게?”방이진의 말을 들은 안창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뺨을 때리는 장면은 안 그래도 두 배우의 합이 중요해요.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아직도 힘 조절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거죠? 그리고 아까 그 표정, 유설희는 친구를 대신해 때리는 거예요. 하지만 이진 씨 표정을 봐요! 누가 보면 이사라가 이진 씨네 무덤이라도 판 줄 알겠어요!” 방이진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안창수는 유현진을 쳐다보며 위로했다. “잠깐 쉬었다가 의사가 오면 현진 씨 상태 확인해보라고 할게요.”유현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혀를 씹어서 그래요. 가글만 하면 괜찮아요.”무언가를 떠올린 방이진이 갑자기 벌떡 일어며 말했다. “너 애초에 다치지도 않았지? 일부러 날 모함하는 거 맞지?”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진 언니, 그만 해요. 촬영에 지장 주지 마시고요.”방이진이 냉소를 지었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너 지금 찔리는 거잖아. 감독님, 의사를 불러서 진찰해 보라고 하세요. 제가 장담하는데, 쟤 입에 상처 같은 건 없어요!”안창수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고, 표정은 어두웠다.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본 송민영이 말했다. “감독님, 아무래도 의사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심하게 다친 거면, 바로 치료를 받아야 촬영에 지장이 없잖아요. 안 그래요?”
진희연은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록 경험이 적었지만, 두뇌 회전이 아주 빨랐고 먼저 나서서 손을 쓰기 좋아했다. 그녀에게 어떠한 이익을 바라고 접근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강한서가 그녀에게 지시한 일은... 아무래도 기우인 것 같았다. 그녀가 현장에 있는 한 누구든 괴롭힐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었다.방이진은 중도에 나가버렸고 안창수는 화가 치밀어올라 바로 그녀의 촬영을 그만두고 먼저 유현진과 한열의 신부터 찍으려고 했다.대본에서 이사라와 진상현은 죽마고우이자 커플이었다. 이사라는 다른 사람에겐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이었지만 유독 진상현에게만 평범한 소녀의 모습을 보였고 애교도 부렸다.진상현과 윤여령은 애매모호한 사이였고 극 중에서도 윤여령이 무대 위에서 쓰러진 모습을 정장을 입은 남자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적혀있었다.극 중에선 정장을 입은 남자가 누구인지 밝히진 않았지만, 유현진은 그 남자가 진상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그랬기에 두 사람의 감정신은 전체 스토리를 밀고 나가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었다.이번 신은 이사라가 진상현의 아파트로 놀러 가는 신이었다. 그녀는 진상현의 집에서 샤워하다가 욕조에서 우연히 못 보던 머리핀을 발견하고 진상현을 불렀다. 그러자 진상현은 그녀에게 줄 선물이라며 이내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에서 침대 위로 올라와 함께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이었다.촬영 내용을 들은 한열은 그만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야릇한 장면을 촬영 시작하자마자 찍으려는 것이었다.‘안 감독 미친 거 아니야?!'그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자리에 앉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길을 받고 있었고 계속 손에 든 대본만 물끄러미 보면서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한열의 시선을 느낀 유현진은 고개를 돌렸다.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말했다.“이따가 최대한 한열 씨 몸에 손대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만약 정말 손을 댔다가
“뭐 하는 거야!”이사라는 상대를 주먹으로 콩콩 치면서 발버둥을 쳤다.“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진상현은 그녀를 침대 위로 내려놓고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그가 입을 맞추려고 하자 이사라는 그를 밀어내면서 머리핀에 관해 물었다.“너 이거 아직 나한테 대답 안 했어. 이거 뭐야? 이거 어디서 난 거야?”진상현은 나직하게 웃으면서 머리핀을 가져와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었다.“담배 사러 갔을 때 사장님이 잔돈이 없다고 하셔서 내가 대충 아무거나 집은 거야.”말을 마친 그는 이사라의 턱을 잡아 올리더니 그녀의 모습을 훑어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잘 어울리네.”이사라는 머리핀을 빼고 한참이나 보았다. 그녀는 이내 입술을 한자리에 모은 채로 삐죽거리며 옆으로 휙 던졌다.“촌스럽고 하나도 안 예뻐.”그녀는 이내 진상현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비자가 곧 발급될 거야. 너한테 가려면 아마 반년쯤 걸리게 될 거야. 반년만 지나면 내가 바로 비행기 타고 너한테 갈게.”“반년이라고...”진상현은 시선을 떨구고 그녀를 보았다.“너무 길지 않아?”“한 학기잖아. 금방 지나갈 거야.”이사라는 뜸을 들이며 느릿하게 말했다.“보니까 그 나라 여자애들은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키도 크다던데.”“그래?”진상현은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그럼 그때 가서 자세히 구경해 봐야겠네.”이사라는 그의 어깨를 살짝 내리치면서 그를 째려보았다.“보기만 해봐!”진상현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안 그럴게.”그리고 그는 그녀의 턱을 잡더니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 했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반사판이 침대 위로 떨어졌고 하마터면 한열의 손을 다치게 할 뻔했다.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가던 도중에 갑자기 흐름이 끊기게 되었으니 안창수는 바로 화를 냈다.“어떻게 된 거야? 반사판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반사판을 들고 있던 스태프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한성우는 그럴듯한 말을 했지만, 안창수가 믿을지 아닐지는 몰랐다. 어차피 그는 안창수에게 묻지도 않았으니까.한열은 아직도 감정이 잡혀있던 상태였다. 그는 유현진만 보면 귀가 빨갛게 물들었고 이내 나직하게 말했다.“혹시 아까 제가 너무 세게 내려놓은 건 아니죠?”한열은 그녀를 침대 위로 휙 내려놓은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가 침대 위로 유현진을 내려놓을 때 그녀는 침대맡에 머리를 살짝 부딪친 것 같았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한열은 부딪치는 소리를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다만 유현진은 아프다고 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그는 계속 연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아,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파요.”유현진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정말로 아팠으면 아까 제가 소리를 냈을 거예요.”한열은 연극배우 출신이 아니었지만 마치 배우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그와 진상현이라는 캐릭터는 아주 찰떡이었고 방금 촬영에서도 그에게서 전혀 아이돌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를 내리고 뿔테안경을 쓴 그는 마치 지적인 대학생 같아 보였고 성격도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였다.그의 대사와 신경은 온통 진상현이라는 캐릭터에 몰두해 있었기에 그녀의 연기를 받아칠 수 있었다.유현진은 비록 천생 배우감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봐온 재능있는 배우들은 기본 연기에 대한 이론적인 수업을 받지 않고 감정 표현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이내 빨리 극 중의 캐릭터의 특징을 캐치하고 바로 연기에 몰입하였다. 물론 살짝 어색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만약 정말로 좋은 연기 선생님과 감독님을 만나 지적과 배움을 얻게 된다면 아주 훌륭한 배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었다.유현진은 항상 스스로 노력을 95%까지 끌어올리는 사람이었고 부족한 나머지 5%는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타고난 재능이었다.그러나 한열은 바로 그녀의 95%의 노력을 5%의 타고난 재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솔직히 말해 아주 살짝 부러웠다.한열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손에든 키위주스를 유현진에게 건넸다.
유현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녀가 얼른 입을 열었다.“안 감독님, 그래도 전문적인 스태프가 들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안창수가 말을 하기도 전에 한성우가 끼어들었다.“반사판 하나 들고 있는데 어떤 전문적인 행동이 필요해요? 그냥 힘만 세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 운전기사도 다른 재주는 없고 힘만 세거든요.”원래 반사판을 책임지던 스태프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자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안창수가 입을 열었다.“그럼 일단 그렇게 하세요. 이 작가, 얼른 저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하게 알려주고 촬영 시작하지.”“...”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들 각자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유현진만은 표정이 굳어있었다.애매한 침대 위치 때문에 반사판은 무조건 사람이 들고 있어야 했고 마침 그녀가 침대에 누우면 바로 반사판을 들고 있는 강한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속으로 강한서를 벽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강한서를 무시한 채 한열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연기에 집중했다.“거기 여자들이 다들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키도 크다던데.”한열은 유현진을 내려다보면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그래? 그럼 이제 잘 관찰해야겠네.”유현진은 그를 째려보았다.“하기만 해봐!”한열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안 해.”대사를 마친 유현진은 원래 연기에 몰입한 상태였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시야에 강한서가 들어왔다.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어 그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상처 입은 눈빛만 봐도 유현진은 순간 무언가가 켕기는 것 같았다.그래서 한열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고 하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런 그녀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한열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유현진은 황급히 사과를 했다.“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감독님, 한 번만 다시 찍어도 될까요? 제가 방금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제대로 못 했네요.”안창수는 아주 의외라는
이사라는 기독교를 믿지 않았지만, 그녀의 집안이 대대로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그녀가 집안에서의 이미지는 착하고, 공부 잘하고, 어른들의 말씀도 잘 듣는 이미지였다.그러나 이사라의 실제 성격은 반항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로사리오를 벗어 던지고 진상현과 뜨거운 키스를 나눈 것은 이미 기독교의 혼전순결 사항을 어긴 셈이었고 마침 이사라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맞물렸다.그랬기에 안창수는 이런 디테일한 애드리브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고 심지어 그녀를 칭찬했다.“애드리브가 좋네요. 아주 좋았어요. 전에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게 로사리오일 줄은 몰랐네요. 현진 씨, 정말 너무 디테일까지 완벽했어요.”“...”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전남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절대 키스를 할 수가 없어 이런 애드리브를 생각해 냈다고는 절대 말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하하, 저도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옆에 앉아 있던 한열은 다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사실 촬영 시작할 때부터 그의 머릿속엔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현진의 완벽한 연기와 완벽한 대사에 그는 바로 진상현에 몰입할 수 있었고 연기를 하면 할수록 그는 유현진이 바로 진상현의 죽마고우이자 연인인 이사라로 느껴졌다.그러나 연기가 끝나면 바로 그가 2, 3년 동안이나 덕질한 여신 선셋 스타로 보였고 그녀의 배우 생활 첫 키스 상대 또한 그였기에 팬으로서 기대 안 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키스신은 결국 찍지 못했고 그는 팬으로서 당연히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한성우는 “쯧” 소리를 냈다. 한열과 유현진이 키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강한서를 촬영장으로 부른 것도 사실 두 사람의 키스신을 보며 질투에 휩싸여 화를 내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그는 유현진이 강한서의 눈빛에 쫄아 키스를 못 하게 될 줄은 몰랐다.그 후로 촬영이 계속 이어지고 강한서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키스신이 없었기에
“...”유현진은 비록 그의 말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너 입에 발린 소리 그만해. 네가 일부러 방해하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강한서가 되물었다.“만약 내가 다른 여자한테 키스했으면, 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거야?”유현진의 미간이 저절로 구겨 들어갔다. 상상만 해도 그녀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고 여전히 강한서를 설득하려고 했다.“그거랑 이건 다르잖아! 난 직업상 어쩔 수 없는 거고 모두 다 연기잖아.”“나도 알아.”강한서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지그시 보았다.“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건 사실이야.”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강한서는 그녀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촬영하는데 무조건 키스신 찍어야 해? 안 찍으면 안 돼?”유현진은 쉽게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이었고 잔뜩 풀이 죽은 강한서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졌다.“그건... 아마 대본에 따라 다를 거야. 하지만 감독님들은 이것저것 안 된다고 하는 배우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을 거야.”“그건 그 감독이 실력이 안 되는 거야. 실력이 안 되니까 괜히 선정적인 장면을 넣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거잖아.”“...”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허, 바로 감독님을 실력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네.'“모든 감독님이 다 그러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장르가 로맨스인데 어떻게 그런 신이 없겠어?”“로맨스라고 해서 무조건 그런 신을 찍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전에 유하나라는 작가가 쓴 로맨스 소설에도 그런 선정적인 내용은 없다고 했잖아. 그것처럼 네가 찍는 드라마에도 똑같이 없애면 안 돼?”유현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그거랑 같아? 게다가 그 작가가 안 쓰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그런 내용을 쓰면 바로 윗분들에게 불려 가니까 그런 거 아니야.”강한서가 나직하게 말했다.“이치가 같아. 솔직히 내가 이기적인 건 인정해. 하지만 그래도 사회에서는 여성 직장인에 대한 엄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