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특별히 실력을 발휘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이 장면은 무용학원에서 공중파프로그램에서 무대를 서는 것이었다. 전부 18, 19살의 학생들이었고, 감독의 요구에 따라 학생 특유의 순수하고 청초한 이미지를 표현해야 했기에 배우들은 전부 가볍게 기초화장만 했다. 장한나는 유현진에게 가벼운 베이스에 아이라인과 눈썹만 그려줬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고. 그녀는 심지어 유현진에게 섀도도 해주지 않았다. 연예계의 웬만한 예쁜 배우들을 다 봐 온 안창수였지만, 그도 유현진을 보는 순간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곧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꼈다. 유현진은 정말이지 고귀하고 도도하며 안하무인인 이사라 역할에 찰떡이었다. 모든 배우 중, 그가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유현진의 캐스팅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기도 마련이었다. 송민영과 방이진처럼. 방이진은 단순히 조금 전 일 때문에 유현진을 미워했다. 하지만 송민영은 질투와 불만 때문이었다. 송민영은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유현진이 나대는 꼴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여전히 유현진의 미모에 빠져있을 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또 다른 얼굴 깡패가 나타났다. 유현진이 아직 그 사람을 보기도 전에 촬영장 밖에서 팬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한열이 90년대에 유행하던 수트 차림으로 나타났다. 키가 컸고 어깨도 넓은 데다 얼굴도 작았다. 잘생긴 얼굴에 수트를 입으니 다부진 몸매가 강조되어 더욱 멋있어 보였다. 유현진은 하현주의 대학 시절 사진에서 한열과 비슷한 스타일의 남자 학생들을 봤었다. 당시 그녀는 사진들을 보며 옷이 너무 촌스럽다고 웃었었다. 인제 보니 옷이 촌스러운지 여부는 어떤 사람이 입느냐에 관계되는 듯했다. 같은 옷을 한열이 입으니 촌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지적인의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그러고 보니, 극 중 한열은 우등생 설정이었다. 캐릭터의 이름은 진상현이었고 역사학과에 진학 중인 학생이었다. 이사라와는
유현진은 당연히 괜찮았다. 송민영도 안창수의 제안에 이의가 없었고, 이미 유현진에게 불만이 있었던 방이진은 안 그래도 화풀이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차라지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연예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어떻게 배우의 기를 눌러놓아야 하는지, 방이진은 잘 알고 있었다. 유현진은 방이진이 눈을 내리깔며 눈빛을 반짝이는 것을 보더니 소품팀을 지나치면서 소품 통을 슬쩍 만졌다. 한열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안창수의 “액션” 소리와 함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화장실. 무용복을 입은 두 여자가 쑥덕거렸다. “얘, 이사라 씨가 왜 리드 댄서에서 교체됐는지 알아?”상대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왜?”“나도 들은 얘기인데, 누가 학교에 편지를 썼대. 편지에는 이사라 가족의 족보가 적혀있었고, 지난번 시합에 흑막이 있다고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대.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그 시합에서 이사라가 실수했던 부분을 짚으면서 당시 심사위원들을 의심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이사라가 학교에서 무용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 왜 이사라에게 팀 리더를 맡겼냐면서 학교에 의문을 던졌대. 이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편지는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청에도 보냈나 봐. 학교에서는 학교의 명성에 흠이 될까 봐 이사라의 리드 댄서 자리를 박탈했고.”“의심을 받으니까 바로 교체했다는 건, 인정하는 꼴이잖아.”“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사라가 안무 실수를 했어. 그 상을 받을 때부터 이미 문제가 있었는데, 제대로 조사할 수나 있었겠어?”“누가 제보한 걸까?”그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리 반 애일 것 같아. 생각해 봐. 실수한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는 건, 무용을 배운 사람이라는 뜻이잖아. 아니면 그렇게 디테일하게 알 수가 없지. 그리고 이사라가 리드 댄서 자리에서 내려오면, 누군가는 당연히 그 자리에 올라갈 테니까.”“네 말은 윤여령—”“난 그런 얘기한 적 없
안창수는 얼른 다가와 유현진이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하고 그녀의 상태를 물었다. 유현진이 일어나 앉아 창백해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말했다. “감독님, 괜찮아요. 이진 언니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너무 몰입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너무 늦게 피한 탓이에요. 제가 제대로 서 있었으면 한 번에 오케이 되는 거였는데, 저 때문에 다시 해야겠네요.”그녀의 말에 방이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명 현진 씨 스스로 넘어진 거잖아요, 왜 나한테 그래요? 내 주먹이 돌이라도 돼요? 따귀 한 대에 피까지 토하게?”방이진의 말을 들은 안창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뺨을 때리는 장면은 안 그래도 두 배우의 합이 중요해요.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아직도 힘 조절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거죠? 그리고 아까 그 표정, 유설희는 친구를 대신해 때리는 거예요. 하지만 이진 씨 표정을 봐요! 누가 보면 이사라가 이진 씨네 무덤이라도 판 줄 알겠어요!” 방이진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안창수는 유현진을 쳐다보며 위로했다. “잠깐 쉬었다가 의사가 오면 현진 씨 상태 확인해보라고 할게요.”유현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혀를 씹어서 그래요. 가글만 하면 괜찮아요.”무언가를 떠올린 방이진이 갑자기 벌떡 일어며 말했다. “너 애초에 다치지도 않았지? 일부러 날 모함하는 거 맞지?”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진 언니, 그만 해요. 촬영에 지장 주지 마시고요.”방이진이 냉소를 지었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너 지금 찔리는 거잖아. 감독님, 의사를 불러서 진찰해 보라고 하세요. 제가 장담하는데, 쟤 입에 상처 같은 건 없어요!”안창수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고, 표정은 어두웠다.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본 송민영이 말했다. “감독님, 아무래도 의사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심하게 다친 거면, 바로 치료를 받아야 촬영에 지장이 없잖아요. 안 그래요?”
진희연은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록 경험이 적었지만, 두뇌 회전이 아주 빨랐고 먼저 나서서 손을 쓰기 좋아했다. 그녀에게 어떠한 이익을 바라고 접근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강한서가 그녀에게 지시한 일은... 아무래도 기우인 것 같았다. 그녀가 현장에 있는 한 누구든 괴롭힐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었다.방이진은 중도에 나가버렸고 안창수는 화가 치밀어올라 바로 그녀의 촬영을 그만두고 먼저 유현진과 한열의 신부터 찍으려고 했다.대본에서 이사라와 진상현은 죽마고우이자 커플이었다. 이사라는 다른 사람에겐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이었지만 유독 진상현에게만 평범한 소녀의 모습을 보였고 애교도 부렸다.진상현과 윤여령은 애매모호한 사이였고 극 중에서도 윤여령이 무대 위에서 쓰러진 모습을 정장을 입은 남자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적혀있었다.극 중에선 정장을 입은 남자가 누구인지 밝히진 않았지만, 유현진은 그 남자가 진상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그랬기에 두 사람의 감정신은 전체 스토리를 밀고 나가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었다.이번 신은 이사라가 진상현의 아파트로 놀러 가는 신이었다. 그녀는 진상현의 집에서 샤워하다가 욕조에서 우연히 못 보던 머리핀을 발견하고 진상현을 불렀다. 그러자 진상현은 그녀에게 줄 선물이라며 이내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에서 침대 위로 올라와 함께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이었다.촬영 내용을 들은 한열은 그만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야릇한 장면을 촬영 시작하자마자 찍으려는 것이었다.‘안 감독 미친 거 아니야?!'그는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자리에 앉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길을 받고 있었고 계속 손에 든 대본만 물끄러미 보면서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한열의 시선을 느낀 유현진은 고개를 돌렸다.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말했다.“이따가 최대한 한열 씨 몸에 손대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만약 정말 손을 댔다가
“뭐 하는 거야!”이사라는 상대를 주먹으로 콩콩 치면서 발버둥을 쳤다.“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진상현은 그녀를 침대 위로 내려놓고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그가 입을 맞추려고 하자 이사라는 그를 밀어내면서 머리핀에 관해 물었다.“너 이거 아직 나한테 대답 안 했어. 이거 뭐야? 이거 어디서 난 거야?”진상현은 나직하게 웃으면서 머리핀을 가져와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었다.“담배 사러 갔을 때 사장님이 잔돈이 없다고 하셔서 내가 대충 아무거나 집은 거야.”말을 마친 그는 이사라의 턱을 잡아 올리더니 그녀의 모습을 훑어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잘 어울리네.”이사라는 머리핀을 빼고 한참이나 보았다. 그녀는 이내 입술을 한자리에 모은 채로 삐죽거리며 옆으로 휙 던졌다.“촌스럽고 하나도 안 예뻐.”그녀는 이내 진상현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비자가 곧 발급될 거야. 너한테 가려면 아마 반년쯤 걸리게 될 거야. 반년만 지나면 내가 바로 비행기 타고 너한테 갈게.”“반년이라고...”진상현은 시선을 떨구고 그녀를 보았다.“너무 길지 않아?”“한 학기잖아. 금방 지나갈 거야.”이사라는 뜸을 들이며 느릿하게 말했다.“보니까 그 나라 여자애들은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키도 크다던데.”“그래?”진상현은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그럼 그때 가서 자세히 구경해 봐야겠네.”이사라는 그의 어깨를 살짝 내리치면서 그를 째려보았다.“보기만 해봐!”진상현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안 그럴게.”그리고 그는 그녀의 턱을 잡더니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 했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반사판이 침대 위로 떨어졌고 하마터면 한열의 손을 다치게 할 뻔했다.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가던 도중에 갑자기 흐름이 끊기게 되었으니 안창수는 바로 화를 냈다.“어떻게 된 거야? 반사판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반사판을 들고 있던 스태프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한성우는 그럴듯한 말을 했지만, 안창수가 믿을지 아닐지는 몰랐다. 어차피 그는 안창수에게 묻지도 않았으니까.한열은 아직도 감정이 잡혀있던 상태였다. 그는 유현진만 보면 귀가 빨갛게 물들었고 이내 나직하게 말했다.“혹시 아까 제가 너무 세게 내려놓은 건 아니죠?”한열은 그녀를 침대 위로 휙 내려놓은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가 침대 위로 유현진을 내려놓을 때 그녀는 침대맡에 머리를 살짝 부딪친 것 같았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한열은 부딪치는 소리를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다만 유현진은 아프다고 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그는 계속 연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아, 괜찮아요. 별로 안 아파요.”유현진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정말로 아팠으면 아까 제가 소리를 냈을 거예요.”한열은 연극배우 출신이 아니었지만 마치 배우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그와 진상현이라는 캐릭터는 아주 찰떡이었고 방금 촬영에서도 그에게서 전혀 아이돌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를 내리고 뿔테안경을 쓴 그는 마치 지적인 대학생 같아 보였고 성격도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였다.그의 대사와 신경은 온통 진상현이라는 캐릭터에 몰두해 있었기에 그녀의 연기를 받아칠 수 있었다.유현진은 비록 천생 배우감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봐온 재능있는 배우들은 기본 연기에 대한 이론적인 수업을 받지 않고 감정 표현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이내 빨리 극 중의 캐릭터의 특징을 캐치하고 바로 연기에 몰입하였다. 물론 살짝 어색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만약 정말로 좋은 연기 선생님과 감독님을 만나 지적과 배움을 얻게 된다면 아주 훌륭한 배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었다.유현진은 항상 스스로 노력을 95%까지 끌어올리는 사람이었고 부족한 나머지 5%는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타고난 재능이었다.그러나 한열은 바로 그녀의 95%의 노력을 5%의 타고난 재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솔직히 말해 아주 살짝 부러웠다.한열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손에든 키위주스를 유현진에게 건넸다.
유현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녀가 얼른 입을 열었다.“안 감독님, 그래도 전문적인 스태프가 들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안창수가 말을 하기도 전에 한성우가 끼어들었다.“반사판 하나 들고 있는데 어떤 전문적인 행동이 필요해요? 그냥 힘만 세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 운전기사도 다른 재주는 없고 힘만 세거든요.”원래 반사판을 책임지던 스태프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자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안창수가 입을 열었다.“그럼 일단 그렇게 하세요. 이 작가, 얼른 저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하게 알려주고 촬영 시작하지.”“...”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들 각자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유현진만은 표정이 굳어있었다.애매한 침대 위치 때문에 반사판은 무조건 사람이 들고 있어야 했고 마침 그녀가 침대에 누우면 바로 반사판을 들고 있는 강한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속으로 강한서를 벽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강한서를 무시한 채 한열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연기에 집중했다.“거기 여자들이 다들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키도 크다던데.”한열은 유현진을 내려다보면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그래? 그럼 이제 잘 관찰해야겠네.”유현진은 그를 째려보았다.“하기만 해봐!”한열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안 해.”대사를 마친 유현진은 원래 연기에 몰입한 상태였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시야에 강한서가 들어왔다.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어 그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상처 입은 눈빛만 봐도 유현진은 순간 무언가가 켕기는 것 같았다.그래서 한열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고 하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런 그녀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한열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유현진은 황급히 사과를 했다.“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감독님, 한 번만 다시 찍어도 될까요? 제가 방금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제대로 못 했네요.”안창수는 아주 의외라는
이사라는 기독교를 믿지 않았지만, 그녀의 집안이 대대로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그녀가 집안에서의 이미지는 착하고, 공부 잘하고, 어른들의 말씀도 잘 듣는 이미지였다.그러나 이사라의 실제 성격은 반항적인 사람이었다. 그녀가 로사리오를 벗어 던지고 진상현과 뜨거운 키스를 나눈 것은 이미 기독교의 혼전순결 사항을 어긴 셈이었고 마침 이사라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맞물렸다.그랬기에 안창수는 이런 디테일한 애드리브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고 심지어 그녀를 칭찬했다.“애드리브가 좋네요. 아주 좋았어요. 전에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게 로사리오일 줄은 몰랐네요. 현진 씨, 정말 너무 디테일까지 완벽했어요.”“...”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전남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절대 키스를 할 수가 없어 이런 애드리브를 생각해 냈다고는 절대 말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하하, 저도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옆에 앉아 있던 한열은 다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사실 촬영 시작할 때부터 그의 머릿속엔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현진의 완벽한 연기와 완벽한 대사에 그는 바로 진상현에 몰입할 수 있었고 연기를 하면 할수록 그는 유현진이 바로 진상현의 죽마고우이자 연인인 이사라로 느껴졌다.그러나 연기가 끝나면 바로 그가 2, 3년 동안이나 덕질한 여신 선셋 스타로 보였고 그녀의 배우 생활 첫 키스 상대 또한 그였기에 팬으로서 기대 안 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키스신은 결국 찍지 못했고 그는 팬으로서 당연히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한성우는 “쯧” 소리를 냈다. 한열과 유현진이 키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강한서를 촬영장으로 부른 것도 사실 두 사람의 키스신을 보며 질투에 휩싸여 화를 내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그는 유현진이 강한서의 눈빛에 쫄아 키스를 못 하게 될 줄은 몰랐다.그 후로 촬영이 계속 이어지고 강한서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키스신이 없었기에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