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빠르게 아름드리 펜션에 도착하였다.차를 세우자 유현진은 강한서에게 인사 한마디도 없이 곧바로 차에서 내려 문을 거세게 닫고 갔다.강한서는 창문으로 성격이 점점 세지는 여자를 힐끔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그것을 본 민경하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강 대표님, 분명 대표님이 송민영 씨의 고발장을 막았는데 왜 사모님에게 사실대로 얘기해 주지 않으셨어요?”강한서는 아주 화가 났다.“사실대로 얘기한다고? 그녀의 모습을 봐, 듣기나 하겠어?”민경하가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대표님의 태도와 말투로 말하면 누가 화를 안 낼까라고 생각했다.예전에 여자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순위로 따지자면 자신의 보스를 이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사모님이 자신의 아내를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는 겉으로는 그녀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퇴근도 하기 전에 그녀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배즙까지 선물했다.길거리에서 파는 몇만 원짜리 물건인데 그럴싸한 핑곗거리도 찾을 줄 몰랐다.“그리고.”차에서 내리기 전 강한서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랐다.“육교 추돌사고가 발생한 날 그녀가 병원에서 뭘 했는지 조사해 봐.”“알겠습니다.”강한서가 펜션으로 들어가자 가정부가 재빨리 옷을 받아들고 슬리퍼를 꺼냈다.“그녀는 어디 갔어요?”가정부가 말했다.“사모님은 도착하고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어요. 아무 말도 없었어요.”강한서는 위층을 힐끔 보고는 우아한 동작으로 넥타이를 풀며 담담하게 말했다.“먹을 것 좀 준비해줘요. 방을 정리하고 내려오라고 해요.”가정부가 흠칫했다.“오늘 사모님이 여기서 주무시는 거예요?”강한서가 그녀를 힐끔 보았다.“여긴 그녀의 집이기도 해요. 그녀가 여기서 자는 게 잘못된 일이에요?”가정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그 뜻이 아니라...”강한서가 손을 저었다.“빨리 방을 준비하고 음식을 여러 가지 해요.”한 시간 뒤.강한서는 한상 가득 차린 음식을 바라보며 위층
유현진은 자신이 2천억을 가진 뒤의 생활을 상상하더니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2천억만 요구한 게 어디야, 강한서의 개 같은 성질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더 있어?”그것은 차미주도 아주 동의한다.“그가 돈이라도 없으면 어느 여자가 정신이 나갔다고 그에게 시집을 가겠어? 인격에 문제가 있어!”그 말을 들은 유현진은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녀야말로 그 정신 나간 여자다. 그 당시 그녀가 강한서와 결혼할 때 그녀는 강 씨 집안이 한주시에서 어느 정도 지위인지도 몰랐고 그냥 강한서 한 사람만 위해서 한 것이었다.“잠깐만, 일단 전화부터 받을게. 조금 있다 다시 얘기하자.”차미주는 자신의 사장이 이 늦은 시간에 연락이 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이세윤은 왜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일까?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그녀는 안 받을 수가 없었다.“여보세요, 이 대표님?”“그래, 미주야.”“네, 저예요.”“요즘 시간 있어?”이세윤이 연락 온걸 보면 좋은 일이 아니기에 차미주는 대충 얼버무렸다.“요즘 좀 바빠요.”“그래?”이세윤이 한숨을 쉬었다.“그럼 아쉽게 됐네. 회사 하나가 네가 쓴 대본이 마음에 들어 촬영을 하고 싶대. 하지만 각본상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 나한테 작가에게 고칠 수 없는지 물어봐달래. 네가 바쁘면 됐어. 내가 거절할게.”차미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잠시만요! 이 대표님, 이 일은 다시 상의해도 될 거 같아요!”이 대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상의해?”차미주는 시간을 되돌려 자신의 뺨을 치고 싶었다. 이내 그녀가 뻔뻔하게 말했다.“이 대표님, 시간은 짜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대표님이 주신 미션인데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을 내야죠!”“어렵지 않겠어?”이세윤이 질문했다.“어렵지 않아요! 전혀요!”이세윤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내가 그쪽에서 요구한 사항을 메일로 보낼게. 수정하고 나에게 보내. 그쪽에서 마음에 들어 하면 금액을 상의하지.”“알겠습니
소파 옆의 플로어 스탠드가 갑자기 켜지면서 깜깜했던 거실을 환히 비추었다.강한서는 소파에 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은 그가 입고 있는 잠옷보다 더 어두웠고 눈빛은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볼 듯했다.유현진은 다소 난처한 듯 머쓱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강 대표님, 거실에 있으면서 왜 전등을 켜지 않았어?”강한서는 냉소를 흘렸다.“눈 보호하고 건강 관리하려고. 그래야 개자식인 내가 오래 살지 않겠어?”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빌어먹을 강한서는 매번 그녀가 했었던 말을 다시 돌려주며 그녀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하지만 뒷담화를 하다가 본인한테 들켰으니 유현진이 나쁜 건 맞았다. 유현진은 억지로 미소를 짜내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그럼 건강 관리를 위해서 전등을 끌까?”호시탐탐 도망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유현진이 이제 막 몸을 돌렸는데 등 뒤에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국수 끓여줘.”유현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빌어먹을 강한서는 그녀를 시종으로 아는 걸까?유현진은 눈을 한 번 흘기고는 몸을 돌리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장 씨 아주머니 부를게.”강한서는 코웃음을 쳤다.“유현진, 집에서 누워만 있으면 2,000억이 그냥 생기는 줄 알아? 내 돈을 버는 게 그렇게 쉬운 거 같아?”유현진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강한서를 마구 쥐어패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내가 끓일게. 강 대표님이 먹고 싶다는 국수라면 뭐든 끓여줄게. 2,000억을 주는데 그 정도 값어치는 해야지!”강한서는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야.”그에게서 등을 돌린 뒤 유현진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구두쇠, 짠돌이. 돈 좀 썼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국수? 국수는 무슨, 똥이나 먹으라 해!’욕은 했지만 유현진은 줏대 없이 주방으로 달려갔다.요즘 돈을 같잖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무려 2,000억이다. 이혼만 하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심지어 하현주까지 부족함 하나
유현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식사하는 모습이 점잖지 못하다고 나무라는 건가?유현진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밖에서 아주 잘 먹고 다니는데? 오히려 네 집에서 자주 배부르게 먹지 못하지.”강한서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솔직히 얘기해서 앞으로 이혼할 사이라 유현진은 굳이 말을 가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넌 입맛이 까다롭잖아. 아주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전부 네 입맛에 맞춘 거라 식탁 위 음식들은 전부 싱겁고 담백해. 내가 스님도 아니고 그렇게 담백한 음식을 어떻게 먹겠어?”강한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아주머니한테 네가 먹고 싶은 거 해달라면 되잖아?”“내가 얘기한 적 없을 것 같아? 넌 조금이라도 간이 센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면 미간을 팍 구기면서 역겹다는 걸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잖아. 아주머니는 너한테서 월급을 받는데 왜 굳이 네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하겠어?”말하면 말할수록 유현진은 강한서의 집에서 지냈던 지난날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음식이든 생활 습관이든 모든 걸 강한서에게 맞춰야 했었다.유현진은 강한서의 취향이나 습관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강한서는 그녀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를 것이라고 유현진은 장담한다.“강 대표님, 진심으로 건의할게.”강한서는 유현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어질 말이 별로 좋은 말이 아님을 직감했다.유현진이 말했다.“너 앞으로 재혼할 생각이라면 절대 우리 인간 세상에서 짝을 찾지 마. 천상계에서 찾아. 조금이라도 딸리는 사람은 너한테 안 어울리니까.”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죽고 싶어?”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깔끔히 해치운 유현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천천히 먹어. 난 먼저 잘게.”말을 마친 뒤 유현진은 토끼보다 더 잽싼 몸짓으로 순식간에 위층으로 올라갔다.강한서는 시선을 거둔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유현진이 그랬던 것처럼 청양고추 한 숟가락을 떠서 그릇에 넣고 잘 섞은 뒤 면을 집어 맛을 보았다.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이 혀끝에서 시작해 입안,
유현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강한서가 잘생기고 돈이 많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잘난 거 하나 없으면서 자아가 비대한 남자라고 생각했을 거다.“네가 뭘 오해한 것 같은데 난 친구랑 같이 쇼핑할 거야.”2,000억을 위해서라도 유현진은 그와 대거리하지 않을 셈이었다.“낮부터 무슨 쇼핑이야?”“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시간이 중요해?”강한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유현진이 자신과 말할 때 점점 더 거침없어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왜 예전에는 그녀가 이렇게 말발이 세다는 걸 몰랐을까?그는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오늘 행사 있어.”“그거 저녁이잖아? 행사 전에 돌아오면 되지.”“쇼핑해서 뭐 사려고?”유현진은 짜증이 났다.“내가 뭘 사든 무슨 상관이야? 왜, 나한테 쇼핑 경비라도 지원해 줄 생각이야?”강한서는 정말로 그녀에게 카드 하나를 던져주며 콧방귀를 뀌었다.“안목 좀 높여. 누더기 같은 거 사 와서 괜히 내 체면 깎이게 하지 마!”유현진은 곧바로 비위를 맞추려는 듯 표정을 꾸며내며 손가락으로 카드를 집고 흔들어 보였다.“걱정하지 마, 강 대표님. 비싼 거로 살게!”몇 걸음 내디뎠던 유현진은 다시 돌아와 목소리를 낮추며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 돈은 그 2,000억에서 빼는 거 아니지?”강한서는 그녀를 흘겨보았다.“뺄 거야.”유현진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짠돌이!”그러고는 집을 나섰다.차미주가 메시지를 보냈다. 사장님이 대본을 수정하라고 재촉해서 그녀와 함께 갈 수 없게 됐다며 약속 시간과 장소, 변호사의 연락처를 보내왔다.유현진의 차는 아직 차미주가 사는 아파트의 지하 차고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강한서의 차고에서 애스턴마틴 블루를 타고 멋지게 떠났다.유현진은 차미주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고 이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그녀는 차를 주차해둔 뒤 안에 들어가서 상대를 기다렸다.그곳은 한주시 로컬 브랜드 카페였는데 현지에서 인기
주강운도 뜻밖인 듯했다. 그는 이내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안녕하세요, 차유진 씨.”유현진은 며칠 사이에 그와 세 번이나 우연히 마주쳤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느꼈다. 땅이 넓은 한주시에서 우연히 한 번 마주치기도 어려운 일인데 세 번이나 마주쳤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주강운이 차유진 씨라고 부르니 괜히 찔렸다.당시 그 이름을 남길 때 그와 세 번이나 마주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유현진은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그러게요. 정말 우연이네요.”주강운은 그녀의 목을 가리키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상처는 좀 나았어요?”유현진은 잠깐 흠칫했다. 그녀는 주강운이 당시 경찰서에서 임산부에게 할퀴어서 생겼던 상처를 묻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유현진은 주강운의 세심한 모습에 살짝 놀랐다.“다 나았어요. 그날 정말 감사했습니다.”“별거 아니었어요.”주강운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혼자 왔어요?”“약속을 잡았는데 상대방이 아직 안 왔어요.”곧이어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자격증은 어떻게 땄는지 모르겠어요. 시간관념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말이죠.”주강운은 살짝 놀라더니 떠보듯 물었다.“혹시 변호사랑 만나기로 했나요?”유현진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곧 깨달았다.“당신이 그 변호사였군요!”주강운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맞아요. 제가 그 시간관념 없는 변호사예요.”유현진은 무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전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전 당신이 안 온 줄 알았어요. 아니, 당신이 그 변호사일 줄은 몰랐어요. 전혀 변호사 같아 보이지 않거든요.”주강운은 의자를 뒤로 당겨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변호사 같아 보이죠?”유현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겉옷을 가리켰다.“적어도 정장을 입어야지 않겠어요?”주강운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신경 쓸게요.”유현진은 손을 저었다.“제 편견일 뿐이에요. 변
주강운이 말했다.“현재 모은 증거를 볼 때 민사소송은 반드시 이길 수 있어요. 하지만 명예훼손죄의 경우 증거를 더 수집해야 해요.”“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면 승소할 확률이 높지 않은가요?”“그건 아니에요. 명예훼손죄를 입증하는 건 꽤 까다로운 일이라 증거에 조금 더 공을 들여야 단번에 깔끔히 처리할 수 있어요.”유현진은 궁금한 듯 물었다.“어떻게 공을 들여야 하죠?”주강운은 웃었다.“그건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이에요. 당신이 고려해야 하는 건 그들이 어떤 심판을 받길 원하는지예요. 그들이 그냥 사과만 하길 바라는 건지, 아니면 그들을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고해 근본적으로 이 일을 해결할지, 잘 고민해 보세요.”유현진은 침묵했다.그녀는 1년 가까이 심한 악플과 의도적인 사이버불링에 시달렸다. 최악의 경우 핸드폰 번호까지 유출되어 직접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 욕설을 퍼부으며 그녀를 공격하기도 했다.한동안 유현진은 감히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지도 못했다. 분명 그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팬들도 많지만 악플을 무시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주위가 조용해지면 악랄한 저주와 욕설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다. 그리고 그런 소용돌이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그래도 유현진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간 의기소침해졌었는데 차미주가 제때 그녀를 데리고 심리 상담을 받아 천천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사이버불링을 당한 사람들은 생사를 넘나들기도 하는 데 반해 사이버불링을 한 사람들은 스크린을 마주하고 키보드를 마구 두드린다.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는 좋은 사람인 척, 정의의 사도인 척하면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인터넷 또한 법의 제재를 받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으면서 처벌받지 않는 걸까?하지만 조금 전 전과 기록이 남을 수 있다는 주강운의 말에 유현진은 마음속으로 대가의 경중을 따졌다.주강운은 그녀의 머뭇거림을 보아내고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저
"모든 영상에서 암을 언급하는 건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야?""참다못한 소녀가 의심하는 사람들의 캡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사건은 도마 위로 오르게 됐어요. 소녀가 올린 사진 때문에 악플을 받게 되었다는 한 사람은 계정을 삭제하겠다고 하기도 했고요. 그러자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소녀한테로 돌렸어요. 영향력이 있는 인플루언서로서 평범한 사람을 자신의 계정에 올리는 것은 악플에 앞장서는 것이라며 말이에요.""의심과 악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와중에 사람들은 소녀가 먹고 있는 약 리스트가 가짜라는 둥,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는 소녀를 모른다고 했다는 둥, 암에 걸린 소녀는 진작에 치료를 끝내고도 뜨기 위해 쇼를 한다는 둥, 집에 돈도 많으면서 몰래 사람들의 기부를 받고 있는다는 둥 폭로를 하기 시작했어요.""사건이 터지고 나서 사람들은 다 소녀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소녀의 계정은 오래도록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어요, 보름 후, 그 계정에는 소녀가 사망했다는 부고가 올라왔어요."이 말을 들은 유현진은 약간 멈칫했다.주강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커피를 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사인은 자살이었어요. 소녀는 병이 아닌 악플러들의 악플로 인해 죽게 되었죠.""소녀의 부모님은 그녀의 유서와 병원 도장이 찍힌 차트, 그리고 그녀가 치료를 받고 있는 영상을 공개했어요.""이번 영상에서 고통에 시달리며 가슴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이전 영상에서 발랄하게 웃던 소녀와 완전히 달랐어요. 사람들은 치료를 끝낸 소녀가 어떻게 고통을 참아내며 메이크업을 하고 영상들을 찍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소녀가 하프 마라톤이 끝난 다음 ICU로 갔다는 사실 또한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이번 영상이 업로드된 후, 가해자들은 잇달아 계정을 삭제했어요.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은 계정을 삭제하기만 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들은 다음 사건에서 계속 가해자의 역할을 하게 되겠죠."이야기를 듣고 난 유현진은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차가 송가람이 말한 회원제 클럽에 도착했고, 그녀가 내리려던 순간 주혁이 그녀를 불렀다. “가람 씨.” 송가람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주혁은 잠시 망설이며 물었다. “기다려 드릴까요?” 송가람은 안전벨트를 풀며 무심히 말했다. “아니요, 가도 돼요.” 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지갑을 꺼내 돈 한 장을 뽑아 주혁에게 내밀었다. “차비예요.” 주혁은 깜짝 놀라며 급히 손을 내저었다. “가람 씨, 저는 그런 의도로 태워드린 게 아닙니다.” “알아요.”송가람이 그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난 빚지고 싶지 않아요. 만약 이게 불편하다면...”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럼 한현진을 혼내주든가요. 정말 꼴도 보기 싫거든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돈을 좌석에 던져 놓은 뒤 차에서 내렸다. 주혁은 그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자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한편, 진윤은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가 아래층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깜짝 놀라 아빠가 온 줄 알고 얼른 게임기를 끄고 뛰어나갔다. 하지만 내려가 보니 엄마였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엄마는 이모랑 밥 먹으러 갔다면서요.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진윤의 엄마는 신발을 벗으면서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말도 마라, 생각만 해도 재수 없으니까!” 그러더니 오늘 히비스커스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아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진윤은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날 아침 한현진의 전남편이라는 사람이 문자로 물어왔다. [너희 엄마가 오늘 점심에 누구랑 약속했어?]그는 이상해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자세히 말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엄마한테 부탁해서‘한세 한식당’을 '히비스커스 호텔'로 바꿔봐. 그러면 여신님 앞길이 밝아질 거야.]그는 여신 팬클럽의 열혈 멤버로서, 고민
그가 차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 “가람 씨.” 송가람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운전 중인 싸구려 카롤라를 본 송가람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차를 타고 온 거예요?” 주혁이 설명했다. “이건 제 차입니다. 오늘 한 대표님께서 쉬시는 날이라, 그분 차는 두고 왔습니다.” 송가람은 약간 불쾌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뒷좌석 문을 열어 차에 올라탔다. 차 안은 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공간이 좁아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차 안에는 차량용 방향제가 뿌려져 있었는데, 그 방향제는 그들의 회사 제품으로, 가격이 저렴하지 않다. 마침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였다. 송가람은 주혁을 유심히 살폈다. ‘이 초라한 사람이 이런 걸 쓸 수 있다고? 한현진 같은 여자가 사람 마음을 사려고 준 게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머릿속에서 한현진에 대한 이미지는 한층 더 위선적이라는 딱지를 얻게 되었다. 주혁은 앞 좌석 수납함에서 작은 선물 가방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가람 씨, 이거 가람 씨의 물건입니다.” 그가 말하는 순간, 송가람은 마스크를 벗었다. 주혁은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남은 선명한 뺨 자국과 부어오른 흔적을 보게 되었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요? 누가 때렸어요?” 송가람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그쪽이 알 바 아니에요.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마세요.” 그녀는 주혁이 건넨 가방을 받아 열어보았다. 가방 안에는 자신의 열쇠고리와 상자에 담긴 진주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송가람은 열쇠고리만 꺼내고는 가방을 다시 주혁에게 내밀었다. “여기, 이건 그쪽 물건이죠.” 주혁은 억지로 그녀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고 조용히 말했다. “그건 가람 씨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송가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혁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선물
‘한서 오빠... 한서 오빠...’송가람은 갑자기 멈춰 섰다. 마음속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송가람은 눈물을 쏟으며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민경하였다. 민경하는 이렇게 말했다. “강 대표님께서는 술에 취해 지금 회사에서 쉬고 계십니다.” 그러더니 잠시 망설인 후 덧붙였다. “가람 씨, 오늘 가람 씨가 떠난 후, 대표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는 가람 씨의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요. 다만 정말 급한 일이 있다면 저를 통해 연락하시라고 하셨습니다. 가람 씨께서 대표님의 목숨을 구해주신 것은 감사하지만,대표님은 자신으로 인해 가람 씨와 어머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신답니다.” 그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송가람이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송가람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누구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람 씨, 혹시 우셨어요?” 송가람은 짜증스럽게 물었다.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누구시죠? 할 말 없으면 끊을게요.” 그 말을 듣자 남자는 급하게 답했다. “저... 저, 저 주혁입니다.” 송가람은 이름을 들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서둘러 설명했다. “저는 한 대표님의 운전기사입니다. 예전에 식당 카드를 만들 때 가람 씨께서 직접 저를 카드 만드는 곳까지 데려가 주셨잖아요.” 그제야 그녀는 떠올렸다. 약간 너저분한 중년 남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고, 왜 전화했어요?” 주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차장에서 열쇠고리를 하나 주웠는데, 프런트 데스크에서 가람 씨의 것이라고 하더군요. 오늘 마침 시간이 있어서, 가람 씨가 어디 계신지 알려주시면 직접 가져
송가람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럼 엄마는? 심원 모자를 불러놓고 나랑 맞선 보는 얘기는 왜 나한테 하지 않은 건데? 엄마 사업을 위해서, 엄마 고객을 위해서라면 딸도 팔겠다는 거야?”서해금은 화나 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정말 대체 어떤 뇌를 갖고 있는 건지 네 머리를 열어서 보고 싶을 지경이야! 그냥 만나서 식사 한 번 하는 것뿐이잖아. 누가 너더러 결혼하래? 지금이 어떤 세월인데, 싫다는 네 목에 내가 칼이라도 들이대면서 협박이라도 할까봐 그래?”“내가 그렇게 얘기를 안 하면 네 생각엔 홍혜림이 약속 자리에 나오기나 했을 것 같아? 홍혜림 씨와 채지윤 씨는 어렸을 적부터 있다면 오랜 친구야. 심원은 홍혜림 씨에겐 친아들 같은 존재라고. 심원이 너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네가 그 아이 마음만 잘 잡고 있다면 내가 홍혜림 씨 마음을 다시 되돌리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오히려 네가 한 짓을 봐! 한 번 두 사람 모두에게 미움을 샀어. 우리 회사가 진씨 가문과 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지 네가 알기나 해? 지금 홍혜림 씨가 사업 파트너로 한현진을 지정했어. 그것 때문에 내 손실이 얼마나 큰지 네가 알아?”송가람이 훌쩍이며 말했다. “아무리 파트너가 한현진이라고 해도 협업하려면 회사 절차는 걸쳐야 하잖아. 수익도 전부 회사로 들어오는 거고. 엄마에게 떨어지는 돈이 줄어들 진 않잖아.”서해금이 멈칫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병X을 보는 듯 한 눈빛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냉소를 흘리더니 더는 말이 없었다. 서해금에게 병원에 갔다고 속이고 강한서에게 갔던 일에 대해 잘못을 인지하고 미안함을 느낀 송가람이 나지막이 서해금에게 사과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엄마를 속이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한서 오빠는 이제 막 건강을 회복해서 술을 마시면 안 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너무 걱정되어서 오빠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내가 간 거야. 엄마, 아까 한서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됐어.”서해금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실소를
이쯤이면 연락이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강한서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한현진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거야?’생각하며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화는 연결이 되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민경하였다. “사모님, 저예요.”민경하의 목소리에 한현진이 멈칫했다. “강한서는요?”“대표님은...”잠시 말이 없던 민경하는 노려보는 강한서의 눈빛에 못이겨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 더 그럴듯하게 연기 하시려고 술을 두어 잔 더 마셨다가 지금 취하셨어요.”한현진이 걱정스레 말했다. “괜찮아요?”민경하가 말했다. “괜찮아요. 이미 숙취해소제도 마셨고 두 시간 정도 주무시고 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계획했던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어요. 사모님들께서는 전부 언짢아하시며 돌아가셨고요. 자세한 건 나중에 대표님께서 깨어나시면 대표님께 직접 들으세요.”한현진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쥐똥만한 주량의 소유자인 남편이 걱정되었다. “강한서 지금 어디 있어요? 제가 가볼게요.”“아뇨. 서 대표님께서 가실 때 대표님을 보시는 눈빛이 조금 이상했어요. 의심을 사 대표님을 감시할 수도 있어요. 사모님께서는 대표님이 깨어나셔서 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 말에 한현진은 어쩔 수 없이 걱정되는 마음을 추스르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럼 저 대신 강한서 잘 챙겨줘요. 옆으로 누워서 자게 해요. 술 많이 마시면 자꾸 토하거든요. 옆에 물도 한 잔 떠주고요.”민경하가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전화를 끊은 민경하가 고개를 돌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병약한 고양이 같은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만약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본인 몸을 바쳐가며 송가람이 약을 탔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했고 제가 대표님을 도와 사모님께 그 사실을 숨겼다는 걸아시면 아마 전 앞으로 사모님께 빌붙을 수 없을 지도 몰라요.강한서는 흥, 콧방귀를 뀌었다. 허약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
말을 마친 홍혜림은 룸으로 돌아가 가방을 들고 도도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얼굴을 감싸 쥔 송가람의 눈가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강한서가 송가람에게 휴지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괜찮아?”송가람은 코끝이 찡해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던 서해금은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강한서를 밀쳤다. 중심을 잃은 강한서는 휘청하더니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 그의 얼굴이 통증으로 하얗게 질렸다. 울컥 화가 치민 송가람이 입을 열었다. “엄마, 뭐하는 거야!”“마침” 계산을 마치고 돌아오던 민경하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얼른 달려가 강한서를 부축했다. 그는 조금 화가 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모님,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송가람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강한서의 상태를 살피려 했다. 하지만 송가람이 강한서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서해금이 같은 자리에서 송가람의 뺨을 때렸다. “그쪽으로 가기만 해. 그럼 우린 오늘 모녀 관계를 끊는 거야. 앞으로 다신 내 눈 앞에 띄지마.”서해금은 온 몸의 힘을 다 해 송가람을 때렸다. 그녀는 예전에도 송가람를 때린 적이 있었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 때, 그림을 못 그렸을 때 심지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실수를 했을 때에도 매를 든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힘을 실은 적은 없었다. 뺨을 얻어맞은 송가람은 귀가 윙윙 울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서해금을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순간 눈물이 가득 고였다. 강한서는 마치 송가람이 맞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듯이 민경하의 부축을 받으며 나지막이 해명했다. “아주머니, 가람이도 이젠 성인이에요. 가람이에게도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권리가 있어요. 이렇게 몰아붙이시면 안 되죠.”서해금이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내 딸을 어떻게 가르치든 그건 강 대표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미안하지만 앞으로 우리 딸에게서 좀 떨어져줬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든 가람이에게 부탁 같은 것도 하지 말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희망도 주지 말란 말이야!”
심원과 채지윤 모자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룸의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송가람의 목소리에 채지윤의 얼굴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심원과 채지윤을 본 순간 서해금은 송가람을 데리고 유전자검사라도 받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멍청한 X! 멍청한 X!’뒤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X년이 누구더러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거야?”움찔한 송가람이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분노가 가득한 채지윤과 창백한 얼굴의 심원이 보였다. 사실 심원은 그리 뚱뚱한 편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동그란 얼굴 때문에 덩치가 있어 보일 뿐 퍼진 몸은 아니었다. 외모는 심지어 꽤 빼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한현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는 심원의 눈이 강한서와 많이 닮았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강한서는 그 어디에 내놔도 절대 꿀리지 않을 외모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강한서를 닮은 부분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외모만으로도 적지 않은 여자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심원의 눈은 강한서와 70% 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다부진 몸매를 갖고 있었다면 아마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도 꽤 많았을 것이다. 심원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하며 귀하게 자라왔다. 먹는 것이든 갖고 싶은 것이든 그의 요구라면 전부 들어주었다. 그런 이유로 심원은 어렸을 때부터 조금 통통한 편이었다. 그리고 몸매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 적도 많았다. 다이어트를 여러 번 했고 또 성공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으면 곧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했다.대학생 시절 열등감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좋아할 용기도 없었던 심원은 해외 유학 시절 자신에게 늘 잘해주던 송가람을 만날 수 있었다. 해외의 다양한 심미 기준으로 인해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송가람이 싫어했던 터라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심원은 줄곧 송가람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당황한 송가람이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 앞에는 홍혜림과 서해금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송가람은 멍해졌다. 그녀는 서해금과 홍혜림이 왜 히비스커스 호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세 한식당에 있는거 아니었어?’홍혜림의 얼굴은 경멸로 가득 했다. 그녀는 웃는 듯 또 아닌 듯 한 표정으로 어두운 얼굴을 한 서해금을 힐끔 쳐다보았다. “따님은 병을 병원이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남자에게 진료 받나보죠? 아프다는 게 대체 열이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몸이 달았다는 거예요? 심씨 가문과의 혼사를 원하지 않는 거였다면 직접 얘기하시지 이렇게 제 조카가 바보처럼 기다리게 속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너무 직설적으로 내뱉은 말이라 서해금의 얼굴이 바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해금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막 입을 열려는데 송가람 옆에 서 있던 강한서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사모님, 예의를 지키시죠. 가람이는 그저 저에게 해장국을 가져왔을 뿐이예요. 함부로 남의 명성을 더럽히지 마세요.”그 말에 송가람이 멈칫했다. 애틋한 기분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한서 오빠가 내 편을 들어줬어. 역시 오빠도 날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서해금의 심장은 쿵, 내려앉았다. 만약 조금 전 서해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면 그녀는 송가람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럴싸한 핑계를 대줬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서의 말 한 마디로 송가람이 꾀병을 부린 일은 기정 사실이 되어버렸다. 역시, 강한서의 말을 들은 홍혜림은 경멸의 감정이 조금 더 짙어졌다. “좋네요.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 본인은 아픈 척 애인을 챙겨주러 갔다니. 서 대표님, 이게 바로 대표님이 말한 성의라는 건가요?”서해금이 분노를 억지로 누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사모님, 가람이는 정말 병원에 진료 받으러 갔었어요. 아마 한서가 숙취 때문에 가람이에게 해장국을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것 같아요. 저희 두 집안은 예전부터 가깝게 지냈었잖아요.
표정을 굳힌 송가람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곧 억지웃음을 지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한서 오빠. 혹시 뭐 기억났어요?”강한서가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잠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가 너무 아파...”최면의 거부반응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송가람이 곧바로 강한서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를 말렸다. “한서 오빠, 아프면 생각하지 마요. 생각 안 하면 안 아프잖아요.”강한서가 송가람을 밀치며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만지지 마!”그의 반응에 깜짝 놀란 송가람은 그 순간 강한서가 모든 것을 떠올렸다고 착각했다. 당황하여 넋이 나갔던 송가람은 갑자기 뭔가를 떠올리고는 황급히 가방을 뒤졌다. 가방 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낸 그녀는 약 두 알을 물에 녹인 후 강한서 입가에 가져갔다. “한서 오빠, 이거 마셔요. 마시면 안 아플 거예요.”얼굴이 일그러진 민경하가 룸으로 뛰쳐갔다. 극심한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강한서는 송가람이 건네는 물을 받아 쭉 들이켰다. 송가람은 최면할 때 사용하던 심리 암시를 위한 풍령 소리를 강한서 귀 옆에 울리며 나지막이 물었다. “한서 오빠, 괜찮아요? 머리 아직도 아파요?”통증이 조금씩 가라앉고 강한서가 멍하니 고개를 들고는 나지막이 송가람의 이름을 불렀다. “가람이?”얼굴을 붉힌 송가람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저예요, 오빠.”약효 때문인건지 강한서는 허탈한 사람처럼 몸을 뒤로 기대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왜 여깄어?”“그... 그게 오빠가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걱정이 되어서요.”송가람이 말하며 저도 모르게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다. “현진 씨가 오빠를 잘 챙겨줄 거라고 했었잖아요. 챙겨준다는게 이런 거였어요?”강한서가 미간을 꾹꾹 누르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 아저씨 돌아오는 날 아냐? 한현진 씨도 공항에 마중 나갔는데 넌 안 가도 괜찮아?”멈칫하던 송가람은 곧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빠, 저 걱정해 주는 거예요?”강한서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