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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성유리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감각해졌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 또다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고통이 서서히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를 갉아먹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성유리는 오래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그녀가 성씨 가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성유리는 그날도 비가 내렸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학교로 와서 그녀와 성유정을 데리고 돌아가던 하굣길이었다.

그날, 세 사람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교통사고를 겪었었다. 사고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운전기사의 운전 미숙으로 차가 갓길보호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성유리는 머리를 창문에 부딪히고 의식을 잃어가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지나쳐 성유정에게 가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었다.

어머니는 성유정을 안고 울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었다.

그때 성유리는 부모님이 자신을 찾은 이유는 단지 그녀가 그들의 피를 물려받은 자식이기 때문일 뿐,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는 건 성유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유정이야말로 그들의 ‘진짜 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성유리는 그때부터 자기가 두 눈으로 목격했던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말았다. 지금 어머니 대신 성유정을 안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남편 박한빈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성유리는 그렇게 덩그러니 차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차에서 내렸을 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유리는 발걸음을 서둘렀지만, 박한빈이 차를 세운 곳이 집과 꽤 거리가 있어서 흠뻑 젖고 말았다.

집 앞에서 올려다보니 성유정의 방과 박한빈의 서재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박한빈은 내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을 거야. 아니 관심조차 없겠지...’

성유리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다시 한번 망연자실한 뒤, 비에 젖은 몸으로 무겁게 계단을 올랐다.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밝아지며 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지만, 성유리는 그 번호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무엇인가를 직감한 듯 그녀는 걸음을 멈췄고, 전화를 받을지 말지 고민했다.

그러다 전화가 끊기자, 성유리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곧이어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러자 성유리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유리야.”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성유리는 잠시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야.”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무열이야.”

“응.”

성유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귀국했어?”

“아니.”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곧 귀국할 거야. 모레 비행기로 돌아갈 거야. 시간 있으면 마중 나올 수 있어?”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편할까?”

진무열은 그녀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괜찮아. 혼자 돌아가도 돼. 그냥... 오랜만에 돌아오는 거니까.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이 너였어.”

“나 결혼했어.”

성유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알고 있어.”

진무열은 전혀 놀라지 않은 듯 덤덤하게 대답했다.

“박한빈 씨랑... 맞지? 지화그룹이 워낙 유명하니까 해외에 있어도 소식을 접할 수 있었어.”

성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무열은 조용히 물었다.

“유리야, 너 지금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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