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행이에요. 그동안 강석일 박사님도 수고하셨네요.”유나는 황찬성의 다리가 거의 다 나았다는 걸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띠었다.임재민은 코너 쪽에 서 있다가 유나의 표정을 보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는 지금 나가서 그들의 대화를 방해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이럴 때 두 사람이 그를 보게 된다면 뻘쭘할 것이다.서정원은 유나가 여전히 황찬성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유나가 인천으로 돌아가기 전 병원에 가서 황찬성을 보려 한 걸 떠올린 서정원이 떠보듯 물었다.“강석일 아저씨 며칠 뒤면 한라
연이어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 소리에 이승호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주가영이 보낸 사진에는 북해 프로젝트 계획서로 추정되는 서류들이 들어있었다. 이승호도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가영을 바라봤다. 주가영은 그의 시선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면서 이승호가 또 무슨 짓을 할까 봐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그러자 이승호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진작에 이랬으면 좋았잖아. 다음번에는 오늘처럼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알겠지?"주가영은 떨리는 몸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 씨, 오늘은 좀 어때요?"서정원이 병실로 들어서자 심준호가 금방 일어난 얼굴로 책을 보고 있었다."의사 선생님은 아직 며칠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는 하는데, 난 솔직히 다 나은 것 같기도 해..."심준호는 들고 있던 책을 옆으로 치우더니 서정원을 보며 말했다. 그가 요즘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매일 병실에서 누워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검사받고 주사 맞고 쉬는 것뿐이었다. 매일 힘들지도 않은지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는 서정원을 보며 미안하기 그지없었다.그리고 그가 빨리 퇴원하고 싶은 이유 중에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정식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심준호의 몸은 나날이 회복되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틈틈이 대사도 외우고 있었다. 서정원도 꾸준히 회사와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바삐 보내고 있었다.유나는 그날 이후 몇 번 정도 황찬성의 병실을 찾아갔지만, 예전과는 다른 두 사람의 사이로 인해 서로 어색하게 얘기만 하다가 헤어지기 일쑤였다. 황찬성은 걷는 훈련을 하는 것이 신경 지각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치료하고 나면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곤 했다.그러던 어느 날, 강석일이 황찬성의 다리에 꽂은 침들을 하나하나 회수하
공항에서 나온 후, 황찬성이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내내 서정원은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나도 옆에서 그런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위로를 건넸다."박사님도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거예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정원 씨도 언젠가 부모님의 사연을 듣게 되는 날이 올 거예요. 우리 시간에 맡겨봐요.""하지만..."서정원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며 실망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 드디어 부모님에 대한 실마리라도 얻은 것 같아 기뻤지만, 강석일한테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하게 되자 상당히 속상해하고
"네? 누나가 임신했다고요?"임재민은 황찬성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요 며칠 유나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동안 우울해 있었는데 갑자기 임신이라니. 임재민은 호텔에서의 그날 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유나의 첫 남자였다는 사실을.임재민은 한참을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전화기 너머로 임재민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던 황찬성은 기나긴 침묵에 임재민이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인상을 쓰며 말했다."네, 유나 임신했어요. 둘이 잘 만나고 있는
"네가 여긴 어떻게 왔어?"임재민은 그녀의 옆에 앉더니 얼른 손을 맞잡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황찬성 씨 연락받고 얼른 뛰어왔어. 그 사람이 말해줬거든... 누나 임신했다고. 누나는 왜 이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먼저 말을 안 해줘?"유나는 눈에 띄게 실망한 얼굴을 하고는 이내 천천히 자신의 손을 빼고는 말했다."그 사람이 너한테 얘기 해줬구나... 임신 사실은 나도 방금 알았어.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이 상황 나한테는 많이 버거워, 엄마가 된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도 없고..."그녀의 말을 들은 임재민이
"... 저 혼자 생각을 좀 해볼게요."유나는 서정원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은 마음이 너무 복잡하니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서정원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병실을 나섰다....눈 깜짝할 사이, 벌써 날짜는 12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성운이 말했던 약혼식 날짜까지 이제 6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주가영은 요즘 많이 들떠있었다. 그녀가 계획서를 이승호한테 넘긴 후 그에게서 다른 연락은 오지 않았으니까.계획서를 넘기고 나서 최성운한테 들킬까 봐 한참을 불안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