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남자친구가 아니라 약혼자야.”“...”“언니, 약혼자가 이렇게 아껴주다니 정말 너무 부러워요!”여자아이는 말을 마친 뒤 돈을 들고 들뜬 모습으로 떠났다.최성운은 장미꽃을 들고 그윽한 눈빛으로 서정원을 바라봤다.“선물이에요.”서정원은 고개를 저었다.“안 가질래요.”“마음에 안 들어요?”최성운은 좀 답답한 듯 입을 열었다.“여자들은 다 장미꽃을 좋아한다면서요?”어제 그가 본 책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여자의 마음을 얻는 첫 번째 방법은 꽃을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그런데 서정원에게는 소용없는 것 같았
열두 살 때 한 번 크게 앓았던 서정원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다. 병이 나은 후 서정원은 그 전의 많은 일들이 떠오르지 않았다.할아버지는 서정원에게 그녀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함께 돌아가셨다고 알려줬다.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서정원은 여전히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매번 어릴 때 있었던 일을 회상하려고 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기에 서정원은 대부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그런데 왜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세 식구가 놀이공원에 놀러 가던 기억이 떠오른 걸까?너무 진짜 같았다.서정원의 두 다
최성운은 침묵했다.그는 시선을 내려뜨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들고 있던 우산을 가지고 놀았다.그의 침묵이 가장 좋은 대답이었다.서정원은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씁쓸한 기분이 서서히 퍼져나갔다.협소한 공간에서 침묵을 지키다 보니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다.관람차는 천천히 내려갔다.관람차가 거의 멈추기 직전, 최성운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동자는 밤처럼 까맸다. 그는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서정원에게 말했다.“시아는 이미 지난 과거예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평생을 함께하고픈 여자는 서정원 씨예요.”그의 목소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서정원은 짜증스레 최성운의 손을 뿌리쳤다.“손윤서 씨가 이 늦은 시각에 왜 최성운 씨를 찾는 거죠?”“다 봤잖아요?”최성운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한밤중에 여자랑 남자 단둘이 협력 건에 대해 의논한다고요?”서정원의 말투에서 질투가 느껴졌다.손윤서가 최성운을 좋아한다는 건 다들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최성운이 조금 전 손윤서를 무시했다고는 하나, 손윤서가 최선을 다해 최성운을 유혹하려던 걸 떠올리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서정원 씨, 질투해요?”최성운은 우아한 자태로 소파에 앉아서 웃는 듯 마는
하지만 서정원의 입장에서는 최성운이 그녀를 시아의 대체품으로 여긴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사실은 그렇지 않았다.“할 말 없다 이거죠? 최성운 씨, 난 이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차갑게 말을 내뱉은 뒤 서정원은 이내 단호하게 몸을 돌려 떠났다.서정원은 가슴에 황산을 끼얹은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내가 정말 멍청했어. 최성운이 관람차에서 한 거짓말을 믿을 뻔하다니. 깊게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지. 제때 발을 빼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격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손윤서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서정원과 최성운이
“안나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손윤서는 일부러 걱정하는 척 물었다.안나는 살짝 무안해하며 치마를 내리려 했지만 아무것도 가리지 못해 결국 난처한 듯 웃어 보였다.“넘어져서 그래요.”“아, 그렇군요.”손윤서는 모른 척, 사람 좋은 척 입을 열었다.“제 방에 가서 잠깐 앉아있을래요? 제 방에 연고가 있거든요. 넘어져서 생긴 상처 때문에 흉터가 남으면 안 되잖아요.”“그러면 부탁드릴게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요셉 때문에 지금 온몸이 쑤셔서 잠깐 쉬고 싶던 참이었다.손윤서는 안나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안나는 한 바퀴 둘러본 끝에 구석 자리에 앉아있는 서정원을 바라봤다.하지만 서정원과 함께 있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심지어 그 여자는 조금 눈에 익었다.안나는 유나를 한동안 쳐다봤다. 곰곰이 생각해 본 안나는 그녀가 레오 작업실 담당자 유나임을 떠올렸다.저번에 운성 그룹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 유나가 서정원을 대신해 증언하며 마릴린의 표절을 기정사실로 했다.‘서정원과 유나 씨는 무슨 사이지? 서정원은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유나 씨랑 같이 있는 거지?’두 사람은 웃으면서 화기애애한
‘나랑 해보겠다는 건가?’서정원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손윤서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시 패들을 들려는데 불현듯 경매장 입구에서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60억!”60억!순식간에 20억이 더해지자 경매장은 삽시에 떠들썩해졌다.익숙한 목소리에 서정원은 미간을 구기고 문가를 바라봤다.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건 최성운의 훤칠한 모습이었다.최성운은 잘 재단된 정장에 짙은 녹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고귀하면서도 우아했고 차분한 걸음걸이로 파티장에 들어섰다.서정원은 순간 숨 쉬는 걸 잊었다.‘최성운이 왜 여기에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