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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화

작가: 강이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서정원은 그 방이 주인 있는 방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저 욕실에 놓인 남성용품들을 보면서 최씨 가문의 사람들이 일부러 갖다 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야.’

하지만 이곳에서 딱 3개월만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그녀와 할아버지가 한 내기는 최씨 가문에서 3개월 동안 살면서 만약 3개월이 지나도 최성운에게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으면 이 약혼은 없던 일로 하는 것이었다.

서정원은 샤워를 한 후 사용인이 가져다준 저녁 밥을 먹었다. 온 하루 힘들게만 느껴졌던 그녀는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깊은 밤, 최성운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12시가 넘는 시각이었다.

그는 오늘 서정원이 집으로 올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최승철은 원래 최성운을 시켜 서정원 마중을 가라고 했지만 그는 회사 일을 핑계로 거절을 했다. 그는 자신의 약혼녀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었고 이 약혼은 이러나저러나 깨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최성운은 샤워하고 바로 누워서 잠을 자려고 했다.

‘내가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침대에 누운 최성운은 그제야 자신의 방에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성운은 살짝 놀란 얼굴로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너무 어두운 탓에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몸을 뒤척이며 자신을 꽉 껴안았고 잠꼬대하는 듯하였다.

“곰돌아, 착하지. 얼른 자자.”

최성운은 그대로 몸이 굳어져 버렸다.

여자의 몸에서는 아주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그 사람이랑 똑같아...’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최성운은 그대로 미동도 없이 서정원에게 안긴 채 잠들어 버렸다.

그날 밤, 최성운은 전처럼 불면증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아주 푹 잘 자게 되었다.

꿈속에선 그는 십 년 전의 기억이 펼쳐졌다. 작은 오두막 집안에서 소녀가 작은 몸으로 그를 꽉 끌어안고 있었고 앳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 엄청 강해. 내가 널 지켜줄게.”

최성운은 꿈속에서 그 아이를 찾은 것처럼 아주 생동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그들의 방문 앞.

최지연은 어제 일찍 잠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침에 사용인들에게서 서정원이 최성운의 방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어젯밤에 오빠가 집에 안 들어온 건가? 하지만 차고엔 오빠 차가 있었잖아!’

‘에이 설마 두 사람이 같이 잤겠어?’

최지연은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노크를 하였다.

“오빠, 이모님이 아침 준비 다 하셨대. 오늘 아침부터 회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얼른 일어나!”

방 안에서 한창 자고 있던 두 사람은 동시에 깨어버렸고 서정원은 자신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눈이 서로 딱 마주치고 서정원은 순간 잠이 확 깼다. 그녀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최성운도 그녀와 같은 반응이었다.

“서정원?”

서정원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그 약혼자 최성운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남자가 도대체 왜 자신의 침대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최성운이 이어서 말했다.

“고작 우리 집으로 들어온 지 첫날 만에 제 침대에 누워계시는군요. 하, 정말 대단하시네요.”

서정원은 멍한 표정으로 최성운을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최성운의 침대에 올라왔다고?’

‘최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망상증이 있는 거 아니야?’

그러나 그녀는 어젯밤에 방안에서 본 남성용품들을 기억해 내며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기는 최성운의 방이고 최지연은 일부러 잘못 알려준 것이었다.

서정원은 침대에서 내려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전 당신의 침대에 올라간 적 없습니다. 최지연 씨가 어제 여기가 제 방이라고 알려줬거든요. 최성운 도련님, 전 당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두 번째, 어젯밤 전 이미 잠든 상태였죠. 도련님은 방으로 들어오고 나서 침대에 다른 사람이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 못 하셨나요? 도련님은 저를 끌어안고 자고 계셨던데,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설마 저한테 이미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건가요?”

최성운은 서정원의 말에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어젯밤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그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정원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 순간 더욱 멍해졌다.

그녀의 크고 촉촉한 두 눈은 정말로 그의 기억 속의 그녀와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모습을 본 서정원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왜 그러시죠? 저를 왜 그렇게 빤히 보시는 거죠? 설마 정말 저에게 반하기라도 하셨어요?”

정신을 차린 최성운은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나가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 방에 얼씬도 하지 마시고요.”

서정원은 당연히 더 머물 것도 없이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 나갔다.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은 서로 싫어하게 되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최지연은 서정원이 나오자 잔뜩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정원은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최지연 씨 뜻대로 당신의 오빠는 어젯밤에 저를 꼭 끌어안고 잤거든요. 그래서 저희 사이가 아주 좋아요.”

“헛소리하지 마세요!”

최지연은 잔뜩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원래라면 자신의 오빠는 절대 서정원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서정원과 최성운이 어젯밤에 함께 잤다는 사실을 이미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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