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자는 늘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 “황제가 직위를 강등하고 녹봉을 삭감한 것에 불만을 품고 그만두겠다고 한 거 아닌지?”전북망이 그런 생각인지 아닌지 그녀는 몰랐지만 확실했다. 집에서나 사부님이나 기대보다 적게 주면 그녀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더 발끈하고 나섰다. 송석석의 어두운 안색에 그녀는 즉시 말을 돌렸다. “전북망 말은 그만하자. 전북망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프구나. 폐하께서 사직을 불허하셨으니 더 이상 꼴불견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모두들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리며 청단을 먹었다. 사여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보주는 왕야을 위해 일부분을 남겨두자고 했다.모두가 떠난 후, 시만자가 송석석에게 물었다. “사실 사직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저런 사람이 어떻게 현철위 사령관 자리에 어울리겠어?”송석석이 답했다. “이 시점에서는 성릉관과 관련된 사람들은 조용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식으로든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중요하지. 그가 사직하든, 폐하가 그를 해임하든 얘기는 외조부와 외삼촌 쪽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마음먹은 사람이 빌미를 잡아서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일리가 있다.” 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나 대체 어떤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냐?”송석석은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연왕은 줄곧 소가를 성릉관에서 철수시키고 싶어 했다. 녹분성에서 벌어진 일은 서경과 성릉관 모두에 파문을 일으켰으니, 이 일에는 서경과 연왕이 손을 잡고 개입한 게 분명할 것이다. 지금 이방이 첫 번째로 서경에 압송되었고, 외조부에겐 성릉관 총사령관으로서 감독 소홀과 군기 해이의 책임을 물었지. 전북망은 녹분성으로 병력을 이끌고 갔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되었다. 사건 전체를 보면 외삼촌에게까지 연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처분이지만 전북망이 사직을 청하면 연왕은
혜 태비는 아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입맛이 워낙 다를 뿐만 아니라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후는 한 달에 몇 번은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나 당부했다. 하인들이 입방아를 찧으며 사여묵과 석석이 불효한다는 소문을 퍼뜨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휴, 사람 사는 게 원래 다 이런 거지. 항상 여기저기서 얽매여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으니 말이야.'고 씨 유모는 늘 혜 태비를 향해 복을 누리면서도 그 가치를 몰라본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에 진정으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나날을 보내더라도 그 나름의 걱정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 해도 그 부유함에 따른 고민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아무튼 그녀는 기쁠 때는 마음껏 기뻐하고, 고민이 있을 때는 누구도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고민하는 것도 자신의 권리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사여묵과 송석석은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기에 보통 시만자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시만자는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데 능숙하여 지루하고 딱딱한 식사 시간을 흥미롭고 생기 있게 바꿔 놓곤 했다.한편, 전북망은 결국 사직하지 않았다. 며칠 후 관복을 다시 입고 풀이 죽은 채 복직했다.숙청제는 그를 다시 불러들여 얼굴에서 조금이라도 투지를 읽으려 했으나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북망은 마치 집을 잃은 개처럼 온몸에서 나약함과 패배감만 뿜어냈다.숙청제는 속으로 크게 화가 치밀었다. 전북망을 순수한 신하로 만들어 잘 훈련시키면 훗날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적을 토벌하고 전장을 누빈 경험이 있는 무장이자, 몰락한 가문의 출신으로 황제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줄 아는 전북망은 최소한 충성심 하나만큼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하지만 숙청제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충성심이 중요한 건 맞지만 능력이 없는 충성심은 쓸모없다는 사실을 말이다.숙청제는 전북망이 조금 더 분발하여
장기문이 무술을 배우기 위해 사부를 모신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술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승진을 위해서였다.하지만 그는 충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3년 안에 안 되면 5년을 기다리고, 5년 안에 안 되면 10년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험이 쌓이니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성공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물론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3년 안에는 부위장에, 5년 안에는 위장에 오르는 것이었다.그러나 황제가 그를 소환해 현철위 부사령관 직책을 내렸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어전에서 한번도 실례를 범한 적이 없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옆에 있던 오월이 그를 발로 툭 차며 웃으며 나무랐다.“멍하니 뭐하느냐? 어서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고!”장기문은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은 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미천한 신하를 발탁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은 반드시 충성을 다하고 몸 바쳐 헌신하겠습니다.”숙청제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월, 그를 데리고 가서 네 형제들에게 술 한잔 얻어먹으라고 해라.”그날 승진된 세 사람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장기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고 척귀는 약간 실망스러워했으며, 노아금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과거 정탐조로 활동했던 만큼 비밀을 지키는 데 익숙해 감정을 겉으로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두 마음속에 감췄다.장기문은 당연히 동료들에게 술을 대접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걸음걸이조차 가벼워, 구름 위를 걷는 듯했고, 이 모든 일이 믿기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는 원래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늘에서 떡이 떨어져 그의 머리에 딱 맞아떨어진 격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얼떨떨해 정신을 차리고 오월에게 물었다.“부사령관직은 전 대감께서 맡고 계신 거 아닙니까? 어째서 저를 이렇게 승진시키신 겁니까?”오월
다음 날, 장기문은 부모님과 처자식을 데리고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시만자를 찾아갔다. 당연히 많은 예물도 정성껏 준비했다.시만자는 전날 밤 석석이 미리 전해주어 장기문의 승진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관직이 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처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하지만 이렇게 장기문이 모든 가족을 데리고 와서 감사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모두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차 있었고 마치 금덩이를 발견한 듯 활짝 웃고 있었다. 시만자는 그들의 기쁨에 전염되듯 승진의 의미를 실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승진하려면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제를 구하는 대단한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몇 년이고 묵묵히 버텨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문 가족이 그녀에게 보여준 깊은 감사는 시만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가 승진하는 데 있어서 그녀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그가 스스로 노력해 얻어낸 결과였다.장기문은 부모님과 처자식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뒤 자신은 황실에 남았다. 그는 미리 이야기를 나누어 나중에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와 갈등을 예방하고 싶었다.모든 설명을 마친 뒤, 그가 말했다.“물론 이는 제 추측일 뿐입니다. 황제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저희가 감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제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지름길이라면 결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과 송 사백께서 이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송석석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뭔가 말하려다 시만자가 장기문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말없이 넘겼다. ‘그래, 사백이면 어때.’ 황제가 장기문을 갑자기 발탁한 것은 전북망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신호로 보였다. 전북망은 황제의 기대를 여러 번 저버린 셈이다. 황제가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를 감싸줬지만
송석석은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듯 몽동이에게 물었다.“그럼, 그녀의 시신을 인수해 간 사람은 있어?”“공대인께서 그녀의 친정을 찾아갔지만 부모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형수 부부가 집안을 주관하고 있다더군. 그런데 여자가 이혼을 당해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강물에 몸을 던진게 불길하다며 시신을 인수하길 거부했대.”“그럼 남편 쪽은?” 시만자가 물었다. 하지만 묻고 나서야 스스로 부질없는 질문임을 깨달았다. 이미 내쫓은 아내를 어떻게 다시 거두겠는가?“그녀의 남편은 며칠 후 새 신부를 맞이할 예정이라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녀의 장례를 치러 주겠어?”시만자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화를 냈다.“그렇게 빨리 새 신부를 들이다니! 저런 개 같은 놈! 양심이란 게 있긴 한 거야?”송석석은 담담히 말했다.“아마 오래전부터 이미 준비해 둔 상대였겠지.”그러자 시만자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그 자수공은 아이가 없어서 버림받았다지. 그럼 혼수품은? 혼수품까지 그 남편 쪽이 다 챙긴 거야?”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냥 평범한 백성이라 큰 혼수품을 갖고 있을리가 없지. 있다 해도 그동안 다 써버렸을거야. 그런데 들리는 얘기로는 그 자수공이 손재주가 아주 좋아서 평소에 자수를 팔아 꽤 많은 은화를 벌었대. 하지만 대부분 집안 살림에 보태느라 다 썼다고 해.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녀 몸에는 삼 냥짜리 동전 세 개뿐이었다고 하더라.”시만자가 벌떡 일어서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너 그걸 다 조사한 거야?!”“경조부에 다녀왔었어.” 송석석은 오히려 차분히 답했다. 그녀 역시 시만자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조사를 해본 후에야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었다.“다만 내가 갔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친정이 시신을 거두지 않을 줄은 정말 몰랐어.”“네가 다녀온 줄 알았으면 나는 가지도 않았을 거야.” 몽동이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이 아픈 듯했다.“지금 그녀의 시신은 의장에 안치되어 있어. 내가 갔을 땐
이씨 부인은 그녀의 성이 자신과 같은 이씨라는 것을 듣고 더욱 안타까워했다.그녀를 위해 간소한 관 한 구와 옷 두 벌이 마련되었다. 한 벌은 이혜심의 시신에 입혔고 다른 한 벌은 순장용으로 사용되었다. 이씨 부인은 마음을 써서 그녀가 생전에 자수로 생계를 이어갔던 한 의류점에서 옷을 샀다. 점주의 말에 따르면, 그 두 벌의 옷에 수놓아진 자수는 모두 이혜심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이혜심은 34년 전 3월에 태어나 올해 3월에 묻혔다. 생일과 사망일이 단 8일 차이였다.버림받은 여인의 죽음은 마치 작은 돌멩이가 호수에 던져진 것처럼 잠시 작은 물결만 일으키고는 곧바로 잊혀졌다.그나마 한 이야기꾼이 이혜심의 장례를 도운 소진 공방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녀의 남편과 친정의 매정함도 함께 언급했다.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몇 마디 욕을 하고는 곧 그 이야기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자녀가 없으면 칠출지조에 따라 내쫓긴다는 예법을 받아들였고, 그런 전통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다만 남편의 야박함은 정말로 매정하다고 느꼈다. 여러 해를 부부로 지냈으면서도 시신조차 거두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냉정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남편의 냉정함보다 친정의 매정함이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사람들은 욕을 하면서도 다시금 이 모든 것이 또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내쫓긴 이상 남편은 더 이상 남편이 아니므로 그녀의 장례를 치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친정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집간 딸은 이미 떠난 물과 같다는 전통적인 인식이 있었다. 그 물이 여전히 친정을 이롭게 한다면 좋겠지만 이제는 친정을 부끄럽게 만드는 존재라면 친정 사람들 역시 그녀에게 화가 날 만했다.결국 이 일이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해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 일이 자신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다만 이 일이 잠시나마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서만큼은 누군가의 마음을 살짝 흔들었을지도 모른다.3월의 날씨는 가는 봄비
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녀가 어떻게 공방까지 갔지?”소진 소주방은 외부에 이미 알려진 곳으로, 문전 박대를 당해 갈 곳이 없고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여인들을 받아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가의라면 상황이 다르다. 가의는 비록 이혼을 당해 내쫓겼다 해도 생계를 유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송석석이 아는 바로 가의는 몇 채의 저택과 가게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쫓긴 뒤에도 여전히 부유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처지였다.이씨 집안의 시녀가 말했다.“그녀가 갈 곳이 없다고 억지를 부리며, 계속 공방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부인께 욕까지 하면서요. 공방이 내쫓긴 여인들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자신도 조건에 부합한다면서, 받아주지 않으면 공방은 위선적이고 보여주기식이라고 계속 비난하고 있습니다. 부인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왕비님과 시 소저께 이 일을 말씀드리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시만자는 이씨 부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듣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가볼게.”이상서는 늘 이씨 부인을 호랑이라고 불렀지만 그래도 그녀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의처럼 무리하게 논쟁을 벌이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이씨 부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가의는 이제 버림받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식으로 막 나가고 있었고, 이씨 부인은 공방의 명성을 지켜야 했기에 직접 나서서 그녀를 내쫓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더욱 화가 난 것이었다.송석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시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염선생께서 왕야께 그쪽 일을 전해 드리도록 하시지요! 이미 제가 염선생께 다 말씀드렸으니, 염선생 측에서도 어느 정도 내막을 알아봤을 겁니다.”염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녀오세요.”두 사람은 시녀를 데리고 소진 소주방으로 향했다. 공방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녀가 나서서 문을 두드리며 신분을 알리자 문이 열렸다.소진 소주방의 정원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보통 외부 손님을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했던 가의는 송석석과 시만자를 보자마자 기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그녀는 옷깃을 꽉 쥐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귀에는 작은 금빛 나비 모양의 귀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 입은 거친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자존심과 체면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혼자였다. 곁에는 시녀 한 명조차 없었다.“왕비, 시 소저, 딱 잘 왔네.”이씨 부인은 화가 잔뜩 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말했다.“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공방에 들어오겠다고 하더니 심지어 이름까지 바꾸라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무슨 이유로 쫓겨났는지 물어봤더니 우물쭈물하면서 말도 제대로 안 하더군요.”이씨 부인이 화를 낼 만했다. 공방을 설립할 당시, 송석석과 이씨 부인은 규칙을 정했다. 악랄하거나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러 쫓겨난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래서 가의가 찾아왔을 때는 당연히 이유를 물어야 했고 그 이유를 조사한 뒤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변명만 늘어놓으며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였으니 이씨 부인이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송석석과 시만자가 자리에 앉았다. 가의는 그들의 비단옷과 화려한 장신구를 바라보며 자신이 군주로 지내던 시절과 다름없는 그들의 모습에 눈길이 멈췄다. 반면, 지금의 자신은 거친 옷을 입고 나무 비녀를 꽂은 초라한 모습에 화장조차 하지 못한 채 늙고 빈곤해진 상태였다. 이 강렬한 대비는 그녀의 마음에 분노와 수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그러나 이곳에 오지 않을 수는 없었고 송석석 앞에서 예전처럼 거만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더더욱 없었다. 송석석은 조정의 관리였고, 그녀의 어머니 사건은 사여묵이 맡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정말 공방에 들어오고 싶은 겁니까? 여기에서 산다는 게 비단옷을 입고
황후는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두운 눈빛 속에는 분노가 서리고 있었다.그녀는 후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줄은, 심지어 황제가 그 무엇보다 먼저 송석석을 감싸며 노여움을 터뜨릴 줄은 감히 생각치도 못했다. 게다가 그 노여움도 오직 그녀를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송석석이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황제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된다. 황제가 모든 비난을 혼자 떠맡기로 한 것이다.황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물 흐르듯 상황을 이용해 송석석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명성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근데 왜 지금 송석석을 먼저 보호하려 하는 것인가? 만약 외부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황제가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바로 그때, 다양한 감정들이 서서히 제 황후의 마음을 휘감았고, 문득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설마 황제가 송석석에게 마음을 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이야 말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녀는 황제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이 남자가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감정 같은 것은 지위와 권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하지만 전제 조건은, 황제가 그 어떤 여성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긴 세월 동안 황제의 총애를 받는 새로운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질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총애란 단지 황제가 패를 몇 번 더 뒤집은 것뿐이었지, 진정한 마음을 쏟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뻐하지 않았다.평소 후궁을 간택할 때 황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대부분 그녀가 주관했다. 그러나 오직 송석석만은 예외였다. 송석석의 이름은 황제가 직접 올렸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또 다른 이유는 송석
염선생의 걱정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황실의 하인들을 찾아가 몰래 물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다행히 미리 경계를 해두었기 때문에, 하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북명황실이 입을 다물면 다물수록 더 많은 의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 일이 보통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제가 궁궐을 나선다는 것은, 화본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소수의 사람만 데리고 미복하여 민간을 방문해 민정을 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황실이나 훈작세가에 어떤 경사가 있더라도, 황제가 가마를 이끌고 그곳에 방문하려면 미리 몇 일 전부터 조서를 내려 황제를 맞이할 일을 준비하게 해야 했다. 심지어는 정원이나 집을 미리 수리하고, 부드러운 융단을 깔고 꽃을 심으며,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다.한마디로 말하자면, 한밤중에 단 몇 명만 데리고 신하의 집에 가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북명왕은 아직 남강에 있었고, 북명왕비이자 사령관인 송석석은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줄곧 그녀를 어서방에 불러 국사를 논의했다고 했다.과연 진짜로 국사를 논의하기 위해서 일까?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면, 남자를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를 탓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만약 황제가 잘못을 했다면, 모두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심지어, 황제가 송석석과 어서방에서 단둘이 있는 동안 황제는 후궁에 한번도 들르지 않았다.이런 일은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사적으로는 틀림없이 속삭이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물론 후궁들은 알고 있었다. 황제가 후궁에 들르지 않았다고 해도, 한밤중에 거동한 일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후궁들이 장춘궁에 안부 인사를 전하러 왔다. 수빈과 덕비는 평소에는 후궁의 상황을 황후에게 보고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고했다. 보고를
서방에는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심청화의 말을 듣자마자 송석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상처가 빨리 나을 수 있겠네요. 정말 답답해서 죽을 뻔했습니다."염선생이 말했다. "오늘 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심청화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가 진짜로 연왕을 본받는다면, 사제는 아마 사청엄처럼 될 것이다.""그는 이미 결과를 예측했을 겁니다." 염선생이 말하자 송석석이 매우 우울해하며 말했다. "그가 정말 이런 짓까지 할 이유가 없을텐데…... 어렸을 때 그는 둘째 형과 잘 지내며, 항상 나를 여동생처럼 대해줬고, 내가 조정에 들어간 후에도 진심으로 나를 신하로 대해줬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인지.."그러자 염선생이 놀라며 물었다. "갑자기요? 왕비님은 남강을 되찾고 돌아왔을 때, 그가 왕비님을 궁에 들여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던 걸 잊으셨습니까?""나는 그가 나를 이용해 사제의 병권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그리고 그때 그녀는 송회안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궁에 들이는 것은 누군가가 그녀를 아내로 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심청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때 그가 너에게 마음에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익을 계산해본 후 포기한 거겠지."그러고나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만약 그때 진짜로 너를 궁에 들이려 했다면, 넌 궁에 들어갈 생각이 있었느냐?"송석석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곧장 짐을 싸서 매산으로 돌아갔을 겁니다.""단순히 궁에 들어가기 싫어서였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나?""대사형, 이건 쓸데없는 질문이에요. 궁에 들어가기도 싫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하지만 너는 그때 사제도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왜 망설임 없이 그에게 시집을 간 것이지?" 심청화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면 그때 이미 사제를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너 자신도 그 감정을 몰랐거나
심청화의 그림 솜씨는 실로 대단했고, 그림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느껴졌다.모두가 그림 속의 인물을 한번 보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 피곤함 하나 없는 숙청제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숙청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방금 전의 표정조차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눈과 눈가에 흐릿한 주름, 귀 밑으로 흩어진 몇 가닥의 흰 머리, 오른쪽 입술 아래 작은 검은 점, 그리고 입술의 주름까지 세밀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았다.옷에는 아직 색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문양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실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숙청제는 마치 처음으로 이렇게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짐이 참 늙었구나."그는 평소에 구리거울조차 잘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지 않았었다."폐하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십니다." 오 대반이 아첨하며 말했다.숙청제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쓱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짐과 아우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구나."그러면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송석석은 방금까지 계속 하품을 한 탓에 눈 주위가 붉어져 있었는데, 숙청제가 묻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폐하와 왕야는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그러자 숙청제는 다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이 사라진 듯했다.송석석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제가 훨씬 더 잘생겼으며 골상도 더 빼어납니다.’그들의 용모는 실제로 닮아 있었다. 결국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도 친자매였으니 말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렇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황제는 웃음을 잘 지어 보이지 않았으며 차갑고 위엄 있었다. 그의 얼굴선은 더 각지다.사여묵은 혼인 후 훨씬 부드러워졌다. 만약 그가 스산한 기운을 가라앉힌다면 온화하고 우아한 군자가
숙청제도 정신이 조금 맑아진 듯, 궁 안에서처럼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그가 웃으며 말했다."굳이 예의 차리지 말고 편하게 있어라. 짐은 그저 마음이 답답해서 황실에 와 심선생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석석이 대답했다."그럼 폐하와 사형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서두르지 마라. 이미 왔으니 함께 이야기하자." 숙청제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다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상처는 좀 나았느냐?"송석석은 손을 받쳐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내리며 대답했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처가 많이 낫긴 했지만 의관이 조언하길, 침상에 누워 며칠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답니다.""음."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뼈와 근육을 다쳤으니 잘 쉬어야 한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송석석을 내보내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앉아 있거나 서서 함께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숙청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요기할 것이 있느냐? 배가 좀 고프구나."오 대반이 급히 대답했다."폐하께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다. 장혁, 빨리 가라!”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무얼 드시고 싶으십니까?”“무엇이 있느냐?”심청화가 대답했다."폐하께서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황실에서 만들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왕경루에서 사오도록 하겠습니다."숙청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면 한 그릇만 끓여오거라."양 마마는 직접 부엌에 가서 고기와 고수, 파와 계란을 넣고 끓인 뜨끈한 면을 숙청제 앞에 내놓았다.숙청제는 원래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을 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고수와 파의 향을 맡고 나자 입맛이 돌았다.면 한 그릇을 다 먹고 국물도 절반가량 마신 후, 그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상을 내리겠다."양 마마는 기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폐하께서 내리신 상이라니, 어떻게 기쁘지 않겠
상서원과 지안궁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숙청제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마음이 나날로 초조해져갔다.게다가 연일 계략까지 모색하느라 두통이 심해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였다.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한 것도,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였다. 태자가 될 인물에게 금족된 어머니가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금족된 황후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이 곧 자식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황후는 반성하긴 커녕, 오히려 황자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한편, 숙청제는 입맛이 없는듯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운 뒤 약탕을 마셨다. 아무리 지쳐도 약은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죽음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의 중대사나 미래의 계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을 돌리며, 마음을 편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오른 인물은 단 한 사람, 송석석뿐이었다. 송석석은 부상 치료로 며칠간 어서방에 오지 않았다. 숙청제는 임태의를 불러 침술로 두통을 진정시켰으나, 어지러운 증상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러다 문득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확신이었다.한편, 북명왕부에서 노 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오?” 염 선생이 서재에서 나오며 물었다. 노 집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 하시옵니
황후는 시간을 맞춰 다시 상서원으로 간 후, 대황자를 데리고 함께 지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앞뒤로 늘어선 수행원들의 위세는 대단했다.대황자마저 어린 환관의 등에 업혀 궁문에 이르러서야 그를 내려놓았다.황후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황자의 손을 잡고 지안궁으로 들어갔다. 꿇어앉아 예를 올린 후, 태후의 안부를 여쭈어 보았다. 비록 예법은 완벽했으나, 태후는 한동안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대황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태부께 칭찬을 들었느냐?” 그러자 대황자는 태후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태부께서 칭찬을 잊으신 것 같사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후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태부께서는 엄격하시어 쉬이 칭찬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황후는 태후가 이미 태부와 약속을 해둔 일을 모르고 있었다.대황자가 그날 착실하고 성실히 임하면 수업이 끝날 때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로,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기로 말이다. 이를 통해 태후는 대황자의 하루 태도를 알 수 있었다. 태후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대황자를 향해 말했다. “규율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순간 대황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찾으신 것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칭찬하지 않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냐, 아니면 네 어미냐?” 태후가 묻자, 대황자는 황후를 가리키며 재빨리 말했다. “어머니를 벌하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글을 베끼시는 것을 가장 즐기시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베끼는 것을 좋고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죄도 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황후도 서둘러 맞장구를 치자, 태후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금마마에게 명했다. “대황자를 저녁을 차려주고 작은 서재로 보내라. 해시 전까지 모두 베끼지 못하면 출입을 금하라.” 그러자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서방에서 거의 한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태후가 떠난 뒤, 숙청제는 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하라는 어명을 내릴 뿐,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은 돌려주지 않았다.오대반으로부터 어명을 전해 들은 제황후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금족령이 해제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이 전에 퍼뜨리도록 지시했던 말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살아 있는데, 적자를 태후궁에서 보살피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는 말이었다.금족령이 해제된 제황후는 감사의 인사는 뒤로하고 대신, 곧장 서대신, 곧장 대황자를 만나러 상서원으로 향했다. 대황자는 황후를 보자마자 봅시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부가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제쯤 저를 다시 데려가시겠나이까!” 황후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을 찬찬히 살폈다. 초구를 걸치지 않은 대황자는 많이 야워어 턱선이 뽀쪽하게 드러난 모습에 황후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찌 이렇게 수척해졌느냐? 잘 먹지 못한 것이냐?” 대황자는 입을 삐죽이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재에서 돌아가면 황조모께서는 또 글을 외우게 하십니다. 외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으시니 황조모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제황후는 태후가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금족령이 풀린 상황에서 태후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만 대황자를 달래며 말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어미가 네 부황을 설득할 것이다.” 대황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 안만수 태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안만수가 제황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마, 대황자께서는 수업 중이시옵니다.” 제황후는 안
이튿날, 목 승상은 바로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태의원에서는 모든 태의와 원정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목 승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딱 한 가지만 묻겠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느냐?” 태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원정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목 승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없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냐?” 목 승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단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혹 다른 방도라도 없단 말이냐?” 모두가 다시 침묵하자, 목 승상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그러다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의 명성을 걸고서라면, 이 기한을 2년으로 늘릴 수는 없겠느냐?” 오원정은 얼굴에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승상, 폐적증은 발작하면 기세가 매우 심각하여 2년은커녕 1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목 승상이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마디 내뱉었다.“입들 조심하거라.” 그는 천천히 태의원을 나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이렇게도 빨리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날씨가 갈수록 추워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태후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했지만, 태의원의 밤새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핑계로 오원정을 불러 진맥을 청했다. 그러자 진맥을 마친 오원정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수면이 부족하신 듯하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는 태후가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챘음을 알고 있었다. 궁에서 태후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후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만 예외였다. 태후는 주변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오원정만 남게 했다. 문지방 위로 햇살이 드리웠지만 매서운 바람이 드리워, 그 햇살조차 싸늘하게 느껴졌다. “말해보거라.” 태후는 자리에 앉아, 오원정의 멍든 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