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의 부하 장군들은 관각에 머무는 제방과 노홍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거무스레한 피부의 장군들이 초조하고 애타는 눈빛으로 녹분성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 기방과 노홍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정말 사실입니다! 소 대장군은 전혀 몰랐습니다! 당시 그는 화살을 맞아 군의관들조차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스스로 견뎌냈고 침상에 누운 지 석 달 만에야 겨우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몸 상태도 전과 같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단 말입니다!”“맞습니다! 전북망이 녹분성으로 간 건 제 의도였지, 소 대장군과는 무관합니다! 저를 데려가 조사하고 처분하십시오. 목숨이 필요하다면 진성에 도착하자마자 드리겠습니다!"“제 장군님, 노 장군님, 여러분은 이전에 남강 전장에서 송 원수와 함께 싸우지 않았습니까? 우리끼리는 숨김없이 말해봅시다. 이 일을 해결할 방도가 있습니까? 황제의 진짜 의도는 무엇입니까? 정말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누군가 나서서 이 일을 짊어져야 한다면 저 노여가 짊어지겠습니다!”장군들 한 명 한 명 모두 자신이 죄를 짊어지겠다며 소 대장군이 돌아가는 걸 원치 않다고 했다.그러자 제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장군님들, 저와 노홍은 황제의 명을 전하러 온 것일 뿐,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북명왕이 분명히 해결책을 찾을 것입니다.”“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통상적으로는 이렇게 명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대들을 보낸 것은 실질적으로 소 대장군을 압송하라는 의미 아닙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전령을 보냈을 것입니다!”노여는 눈이 빨개지도록 애가 탔고 목소리까지 바들바들 떨렸다. “대장군께서는 곧 칠순이십니다. 그 나이에도 성릉관을 지키며 일생을 국경 관문에 바쳤습니다. 평생을 우리 상국의 국토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셨단 말입니다! 어찌 남의 잘못을 그분에게 덮어씌울 수 있단 말입니까?”노정 역시 답답함에 발을 굴렀다. “맞습니다! 그들은 원래 성릉관의 병사도, 무장도 아닙니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
그들은 저녁 내내 여러 번 기회를 노려 장기문과 단둘이 이야기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장기문과 척귀가 한 방을 썼고, 출입 또한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척귀를 따돌릴 방법이 없었다. 이때 마침 장기문이 화장실로 가자 노홍이 척귀를 감시하고, 제방은 화장실 밖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장기문은 물과 음식이 맞지 않아 화장실에 오래 머물다 나왔다. 그가 나오기만을 계속 기다린 제방은 추위에 떨어 거의 몸이 얼어붙은 상태였다. 이곳은 불빛이 매우 어두컴컴했다. 장기문은 나오면서 사람 그림자를 보고 까무라치게 놀랐다. “제 장군이셨군요! 놀라서 혼났습니다!”제방이 다가가 말을 꺼내려 하자 장기문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숨을 참을 수 있으면 잠깐 참으시죠. 안에 냄새 좀 빠지게요.”제방도 웃으며 대답했다.“장 시위님, 사실 저는 시위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무슨 말씀이든 여기서 할 건 아니죠. 돌아가서 합시다. 춥지는 않으십니까?” 장기문은 다리까지 저려왔는지 다리를 탁탁 털었다. 제방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장 시위님, 오늘 밤 저를 찾아온 장군들은 모두 소 대장군을 오랫동안 모신 부하들입니다. 그들은 단지 대장군을 염려하는 마음에 잠시 무례하게 말한 것입니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습니다.”장기문이 냉정하게 대답했다. “제 장군께서는 제가 황제께 보고하지 않길 바라십니까? 이미 그런 말을 떠들어댔으니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라곤 할 수 없겠죠. 제 장군께서도 괜한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보고할지 말지는 내 일입니다. 이번이 그대들에게 공식 임무로 복귀하는 첫 번째 기회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앞날도 없을겁니다.”제방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는 호칭까지 바꿔가며 친밀함을 내세워 설득하려 애썼다. "장 형제, 당신의 사촌인 장문수 형님을 봐서라도 그 말을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앞으로 우리 형제끼리는 뭐든 다 좋게 해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와 노홍이 당신에게 신세를 지는
소육야는 노정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관각에 가서 제 장군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들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들은 것은 확실합니다." 노여는 고개를 들고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수천 군대와 맞서도 두려워하지 않던 그가 지금은 겁이 나는 듯했다. "노정이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쳤는데, 귀먹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 들었을 겁니다." "그럼 내가 가서 그들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이 말이 절대로 황제께 전달돼서는 안 됩니다." 소육야이 크게 호통쳤다. "거기 누구 없느냐! 말을 준비하거라!" 그리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소삼야는 이들이 아버지와 반평생을 함께해 온 사이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제방을 찾으러 간 것임을 알고 있어 그들을 바라보며 깊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형님들, 화는 입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 꺼내지 마십시오.”그러자 모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잘못을 깨달은들 과연 만회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설령 어전 사위가 없었다 해도 제방과 노홍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어. 아이고……"소팔야는 머리가 아픈 듯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가 황제의 명에 따라 진성으로 가시는데 지휘권은 삼야형이 아닌 자신에게 맡겨졌다. 그는 막내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친아들도 아니었다. 이를 통해 황제가 내부 갈등을 조장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분란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황제는 곧바로 총지휘관을 성릉관에 파견할 것이다.현재 성릉관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무장은 북명왕 외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황제가 북명왕을 이곳에 보낼 리는 없고, 만약 다른 이를 보낸다면 실력이 부족하거나 공을 세워 후작에 오르려는 야망을 품은 자일 것이다.다행히도 소가의 아들들은 단합이 잘 되어 있었다. 누가 지휘권을 쥐든 간에 아버지가 계실 때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아버
진성에서는 홍시가 성릉관에서 온 전서를 받자 마자 열어 보지도 않고 왕비에게 전하라며 시만자에게 넘겼다. 시만자는 성릉관에서 온 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전서를 열어 읽었고 깜짝 놀라 곧장 말을 타고 달려 경위부로 달려갔다. 송석석이 경위부에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시만자가 경위부를 드나드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제 막 특별 초빙된 무술 사범이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그녀의 무예 실력이 뛰어남을 알았고, 또 그녀가 스스로 무관이 되길 원하지 않는 것을 이해했기에 그녀에게 현갑군의 무예 교육을 맡겼다. 비록 어전시위가 독립되었지만 무예 훈련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이들은 여전히 경위부로 와 시만자에게 무예를 배우러 와야 했다.송석석은 전서를 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실수였다. 이 내용을 가볍게 본다면 노정 장군이 순간적인 실수로 입을 잘못 놀린 것으로 가벼운 훈계를 내리거나 군봉 스무대를 맞는 선에서 끝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심각하게 본다면 이는 대단히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발언이 마치 성릉관의 장군들이 일제히 녹분성의 죄책이 황제에게 있다고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더욱이 이 사건은 애초에 황제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었다.“어떻게 해야 해…? 염선생과 사형은 지금 부재 중이고 왕야도 대리사에 있어서 너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 시만자 역시 그 발언의 파급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황제는 물론 상대적으로 관대한 선황제조차도 이와 같은 말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황제가 성릉관에 지원군을 보냈고 지원군은 소 대장군의 지휘를 받았다. 만약 황제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모든 전투에서 패할 때마다 그 책임이 황제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전북망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송석석은 손에 든 전서를 등불에 가져가 태워버렸다. 장기문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새어 나가서
단신의가 떠난 후, 장문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장기문을 막아야 합니다.”선평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내가 더 이상 소 대장군이 이런 불의의 재난에 휘말리게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다.”설령 영예와 부귀를 버려야 한다 해도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선평후는 무장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후작의 지위는 전장에서 피땀 흘려 얻은 것이었다. 소 대장군을 위해서라면 작위를 잃더라도 조상이 그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다만 그는 조카 장기문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장기문은 어릴 때부터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이었지만, 불행히도 늘 운이 없었다. 중요한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병에 걸리거나 불운이 닥쳐 공을 세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오랫동안 동궁에서 보낸 그이지만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해 여전히 평범한 시위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황제가 즉위하고 나서야 그는 현갑군으로 편입되어 어전 시위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출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성릉관 파견도 척귀가 오월에게 추천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기문은 항상 성공을 꿈꾸어 왔다. 이제 눈앞에 절호의 기회가 생겼는데, 그가 쉽게 포기할 리가 있겠는가?단신의는 선평후부에서 나와 북명왕부에 소식을 전했다. 사여묵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장기문이 약간의 운이 부족한 인물일 뿐, 비교적 올바른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스스로도 이를 고발할지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선평후와의 대화를 나눈 뒤라면 고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장기문이 정말로 그 말을 출세를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이를 기회로 삼아 황제께 보고하는 대신 제방과 직접 얘기를 나누는 편이 더 유리할 것이다. 제방은 제가의 사람이며 제수찬은 황제의 사위이니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고발로 얻는 것보다 훨씬 클 터이니 말이다.심지어 장기문은 황제 곁에서 오랫동안
하지만 여론이 이렇게나 들끓는 것을 보면 누군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부추긴 것이 분명했다. 숙청제는 처음에 북명황실을 의심했는데, 실마리를 따라 진상을 밝히다 보니 뜻밖에도 목 승상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그 기사들과 찻집, 그리고 술집의 이야기꾼들까지도 모두 목 승상이 사람을 보내 마련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목 승상도 이 사실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숙청제는 어서방에서 오랜 시간 침묵하더니 오월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 못 본 걸로 하게. 입 단단히 다물어야 할 것이네."목 승상은 선황제가 죽기 전부터 사임할 생각이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선제의 죽음으로 인해 새 황제가 즉위하는 상황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상직을 지키며 힘껏 보좌해왔다.조정 내 모든 문무백관 중에서 숙청제가 가장 믿는 이는 목 승상과 안만수 둘 뿐이었다. 최근에 목 승상과 여러 차례 성릉관 문제를 논의했을 때, 그는 늘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사실 모든 것이 정황상으로 이어져 있었다.목 승상과 소승은 문엄 시절부터 함께 세 황제를 모신 원로이다. 때문에 문관과 무관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있었다. 숙청제는 목 승상이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변방을 지키는 장군들이 없으면 국내의 안정과 번영도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겉보기엔 깊은 교류가 없는 듯했고 심지어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었으나 서로를 무척 존중하고 있었다.2월 13일 저녁, 제방과 사람들은 소 대장군을 모시고 입성했다. 며칠 전부터 백성들은 그가 황제의 명령에 따라 진성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도착한 것이다!해질녘이 되자, 붉은 석양이 피빛처럼 물들었다.키 큰 노장이 검은 말에 앉아 있었고 좌우에는 어전 시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허리는 조금도 굽지 않았다. 얼굴의 피부는 검붉은 빛을 띄며 마치 광택이 도는 구리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 긴 세월동안 눈보라와 서리를 겪었으나 그의 얼굴은 갈라지지 않았다. 마치 피
사여묵과 송석석은 성문에서 멀지 않은 주점의 2층에 있었다. 이 주점의 2층 귀빈실은 위치가 가장 좋아 창문을 열면 성문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그들의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사여묵은 송석석이 소 대장군을 볼 수 있게 일찍이 이 귀빈실을 예약했다. 송석석은 소 대장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려 내려가 어린 시절 때처럼 외조부의 품에 안겨 한바탕 울고 싶었다. 외조부에게 억울함을 쏟아내면 그는 석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곤 했다.“우리 석석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냐? 외조부가 가서 혼내 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 2층에서 서서 외조부의 말이 백성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귀청이 터질 듯한 지지의 함성을 들으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외조부는 이전보다 많이 늙은 것 같았다. 그가 비록 예전에도 귀밑머리가 희끗했어도 정신이 맑고 의지가 넘쳤다. 진성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몇 세트의 권법을 연습해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숨이 차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온통 백발이 되어 검은 머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록 대장군의 위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며칠간 계속된 여정으로 인해 피로한 기색이 보였다.게다가 그는 전체적으로 많이 수척해 보였다. 예전에는 얼굴이 검게 그을렸지만 살이 통통했는데, 지금은 피부색은 변함없지만 빵빵하던 살이 축 늘어졌다.이는 노쇠의 징후였다. 소 대장군은 인파 속에서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다. 때로는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하고, 때로는 어전 시위들이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백성들이 다칠까 염려했다.거의 반 시진이 지나서야 행렬이 주점 아래까지 도달했다.원래 순방영과 경위과 와서 길을 열어주려 했지만 백성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완전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었으나 이제는 백성들이 철옹성처럼 모여 소 대장군을 보호했다.어떤 백성은 어전 시위와 실랑이를 벌이려 했다. 그러나 즉시
필명과 오진이 경위와 순방영을 이끌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길을 만들어내어 마침내 소 대장군과 어전 시위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전 시위들은 소 대장군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게 했다.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백성들의 소란과 외침이 숙청제에게 보고되었다.숙청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성들이 자신을 향해 외치는 함성이 마치 그를 옭아매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원래 그는 소승이 돌아오면 먼저 형부의 조건이 비교적 나은 감방에 수감하고 서경 사신에게도 핑계가 될 만한 처분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척귀의 인도로 소 대장군은 어서방으로 들어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인 소승,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폐하 만수무강 하옵소서!”숙청제는 소승을 보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이 사건을 처리할 계획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가 눈앞에 무릎 꿇고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채 마치 쓰러진 산처럼 보이자 마음속에 찡한 감정이 올라왔다.그가 태자였을 때 소승과 송회안은 그를 무척이나 지지해 주었다. 그 또한 자주 진북후부를 찾아 송가의 아들들과 진심으로 교류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황제가 된 그는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고, 마음도 예전처럼 순수하지 않게 되었으며 여러 걱정과 책략이 늘었다.오랜 세월이 지나 눈앞에 서 있는 그를 보니 국경의 매서운 바람이 이 철같은 노장을 산골의 노인처럼 변하게 만든 것이 느껴졌다. 숙청제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져 직접 일어나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소 대장군, 어서 일어나시오.”소승은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죄인 소승, 폐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숙청제가 깊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오.”숙청제는 직접 소 대장군을 부축하여 한쪽에 앉히면서 그가 진정으로 쇠약해졌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강철 같던 그의 어깨와 팔이 이제는 그 단
황후는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두운 눈빛 속에는 분노가 서리고 있었다.그녀는 후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줄은, 심지어 황제가 그 무엇보다 먼저 송석석을 감싸며 노여움을 터뜨릴 줄은 감히 생각치도 못했다. 게다가 그 노여움도 오직 그녀를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송석석이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황제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된다. 황제가 모든 비난을 혼자 떠맡기로 한 것이다.황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물 흐르듯 상황을 이용해 송석석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명성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근데 왜 지금 송석석을 먼저 보호하려 하는 것인가? 만약 외부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황제가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바로 그때, 다양한 감정들이 서서히 제 황후의 마음을 휘감았고, 문득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설마 황제가 송석석에게 마음을 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이야 말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녀는 황제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이 남자가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감정 같은 것은 지위와 권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하지만 전제 조건은, 황제가 그 어떤 여성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긴 세월 동안 황제의 총애를 받는 새로운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질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총애란 단지 황제가 패를 몇 번 더 뒤집은 것뿐이었지, 진정한 마음을 쏟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뻐하지 않았다.평소 후궁을 간택할 때 황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대부분 그녀가 주관했다. 그러나 오직 송석석만은 예외였다. 송석석의 이름은 황제가 직접 올렸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또 다른 이유는 송석
염선생의 걱정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황실의 하인들을 찾아가 몰래 물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다행히 미리 경계를 해두었기 때문에, 하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북명황실이 입을 다물면 다물수록 더 많은 의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 일이 보통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제가 궁궐을 나선다는 것은, 화본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소수의 사람만 데리고 미복하여 민간을 방문해 민정을 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황실이나 훈작세가에 어떤 경사가 있더라도, 황제가 가마를 이끌고 그곳에 방문하려면 미리 몇 일 전부터 조서를 내려 황제를 맞이할 일을 준비하게 해야 했다. 심지어는 정원이나 집을 미리 수리하고, 부드러운 융단을 깔고 꽃을 심으며,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다.한마디로 말하자면, 한밤중에 단 몇 명만 데리고 신하의 집에 가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북명왕은 아직 남강에 있었고, 북명왕비이자 사령관인 송석석은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줄곧 그녀를 어서방에 불러 국사를 논의했다고 했다.과연 진짜로 국사를 논의하기 위해서 일까?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면, 남자를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를 탓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만약 황제가 잘못을 했다면, 모두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심지어, 황제가 송석석과 어서방에서 단둘이 있는 동안 황제는 후궁에 한번도 들르지 않았다.이런 일은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사적으로는 틀림없이 속삭이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물론 후궁들은 알고 있었다. 황제가 후궁에 들르지 않았다고 해도, 한밤중에 거동한 일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후궁들이 장춘궁에 안부 인사를 전하러 왔다. 수빈과 덕비는 평소에는 후궁의 상황을 황후에게 보고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고했다. 보고를
서방에는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심청화의 말을 듣자마자 송석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상처가 빨리 나을 수 있겠네요. 정말 답답해서 죽을 뻔했습니다."염선생이 말했다. "오늘 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심청화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가 진짜로 연왕을 본받는다면, 사제는 아마 사청엄처럼 될 것이다.""그는 이미 결과를 예측했을 겁니다." 염선생이 말하자 송석석이 매우 우울해하며 말했다. "그가 정말 이런 짓까지 할 이유가 없을텐데…... 어렸을 때 그는 둘째 형과 잘 지내며, 항상 나를 여동생처럼 대해줬고, 내가 조정에 들어간 후에도 진심으로 나를 신하로 대해줬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인지.."그러자 염선생이 놀라며 물었다. "갑자기요? 왕비님은 남강을 되찾고 돌아왔을 때, 그가 왕비님을 궁에 들여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던 걸 잊으셨습니까?""나는 그가 나를 이용해 사제의 병권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그리고 그때 그녀는 송회안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궁에 들이는 것은 누군가가 그녀를 아내로 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심청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때 그가 너에게 마음에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익을 계산해본 후 포기한 거겠지."그러고나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만약 그때 진짜로 너를 궁에 들이려 했다면, 넌 궁에 들어갈 생각이 있었느냐?"송석석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곧장 짐을 싸서 매산으로 돌아갔을 겁니다.""단순히 궁에 들어가기 싫어서였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나?""대사형, 이건 쓸데없는 질문이에요. 궁에 들어가기도 싫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하지만 너는 그때 사제도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왜 망설임 없이 그에게 시집을 간 것이지?" 심청화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면 그때 이미 사제를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너 자신도 그 감정을 몰랐거나
심청화의 그림 솜씨는 실로 대단했고, 그림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느껴졌다.모두가 그림 속의 인물을 한번 보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 피곤함 하나 없는 숙청제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숙청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방금 전의 표정조차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눈과 눈가에 흐릿한 주름, 귀 밑으로 흩어진 몇 가닥의 흰 머리, 오른쪽 입술 아래 작은 검은 점, 그리고 입술의 주름까지 세밀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았다.옷에는 아직 색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문양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실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숙청제는 마치 처음으로 이렇게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짐이 참 늙었구나."그는 평소에 구리거울조차 잘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지 않았었다."폐하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십니다." 오 대반이 아첨하며 말했다.숙청제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쓱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짐과 아우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구나."그러면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송석석은 방금까지 계속 하품을 한 탓에 눈 주위가 붉어져 있었는데, 숙청제가 묻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폐하와 왕야는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그러자 숙청제는 다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이 사라진 듯했다.송석석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제가 훨씬 더 잘생겼으며 골상도 더 빼어납니다.’그들의 용모는 실제로 닮아 있었다. 결국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도 친자매였으니 말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렇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황제는 웃음을 잘 지어 보이지 않았으며 차갑고 위엄 있었다. 그의 얼굴선은 더 각지다.사여묵은 혼인 후 훨씬 부드러워졌다. 만약 그가 스산한 기운을 가라앉힌다면 온화하고 우아한 군자가
숙청제도 정신이 조금 맑아진 듯, 궁 안에서처럼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그가 웃으며 말했다."굳이 예의 차리지 말고 편하게 있어라. 짐은 그저 마음이 답답해서 황실에 와 심선생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석석이 대답했다."그럼 폐하와 사형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서두르지 마라. 이미 왔으니 함께 이야기하자." 숙청제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다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상처는 좀 나았느냐?"송석석은 손을 받쳐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내리며 대답했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처가 많이 낫긴 했지만 의관이 조언하길, 침상에 누워 며칠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답니다.""음."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뼈와 근육을 다쳤으니 잘 쉬어야 한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송석석을 내보내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앉아 있거나 서서 함께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숙청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요기할 것이 있느냐? 배가 좀 고프구나."오 대반이 급히 대답했다."폐하께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다. 장혁, 빨리 가라!”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무얼 드시고 싶으십니까?”“무엇이 있느냐?”심청화가 대답했다."폐하께서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황실에서 만들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왕경루에서 사오도록 하겠습니다."숙청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면 한 그릇만 끓여오거라."양 마마는 직접 부엌에 가서 고기와 고수, 파와 계란을 넣고 끓인 뜨끈한 면을 숙청제 앞에 내놓았다.숙청제는 원래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을 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고수와 파의 향을 맡고 나자 입맛이 돌았다.면 한 그릇을 다 먹고 국물도 절반가량 마신 후, 그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상을 내리겠다."양 마마는 기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폐하께서 내리신 상이라니, 어떻게 기쁘지 않겠
상서원과 지안궁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숙청제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마음이 나날로 초조해져갔다.게다가 연일 계략까지 모색하느라 두통이 심해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였다.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한 것도,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였다. 태자가 될 인물에게 금족된 어머니가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금족된 황후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이 곧 자식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황후는 반성하긴 커녕, 오히려 황자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한편, 숙청제는 입맛이 없는듯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운 뒤 약탕을 마셨다. 아무리 지쳐도 약은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죽음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의 중대사나 미래의 계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을 돌리며, 마음을 편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오른 인물은 단 한 사람, 송석석뿐이었다. 송석석은 부상 치료로 며칠간 어서방에 오지 않았다. 숙청제는 임태의를 불러 침술로 두통을 진정시켰으나, 어지러운 증상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러다 문득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확신이었다.한편, 북명왕부에서 노 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오?” 염 선생이 서재에서 나오며 물었다. 노 집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 하시옵니
황후는 시간을 맞춰 다시 상서원으로 간 후, 대황자를 데리고 함께 지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앞뒤로 늘어선 수행원들의 위세는 대단했다.대황자마저 어린 환관의 등에 업혀 궁문에 이르러서야 그를 내려놓았다.황후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황자의 손을 잡고 지안궁으로 들어갔다. 꿇어앉아 예를 올린 후, 태후의 안부를 여쭈어 보았다. 비록 예법은 완벽했으나, 태후는 한동안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대황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태부께 칭찬을 들었느냐?” 그러자 대황자는 태후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태부께서 칭찬을 잊으신 것 같사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후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태부께서는 엄격하시어 쉬이 칭찬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황후는 태후가 이미 태부와 약속을 해둔 일을 모르고 있었다.대황자가 그날 착실하고 성실히 임하면 수업이 끝날 때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로,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기로 말이다. 이를 통해 태후는 대황자의 하루 태도를 알 수 있었다. 태후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대황자를 향해 말했다. “규율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순간 대황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찾으신 것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칭찬하지 않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냐, 아니면 네 어미냐?” 태후가 묻자, 대황자는 황후를 가리키며 재빨리 말했다. “어머니를 벌하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글을 베끼시는 것을 가장 즐기시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베끼는 것을 좋고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죄도 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황후도 서둘러 맞장구를 치자, 태후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금마마에게 명했다. “대황자를 저녁을 차려주고 작은 서재로 보내라. 해시 전까지 모두 베끼지 못하면 출입을 금하라.” 그러자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서방에서 거의 한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태후가 떠난 뒤, 숙청제는 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하라는 어명을 내릴 뿐,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은 돌려주지 않았다.오대반으로부터 어명을 전해 들은 제황후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금족령이 해제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이 전에 퍼뜨리도록 지시했던 말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살아 있는데, 적자를 태후궁에서 보살피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는 말이었다.금족령이 해제된 제황후는 감사의 인사는 뒤로하고 대신, 곧장 서대신, 곧장 대황자를 만나러 상서원으로 향했다. 대황자는 황후를 보자마자 봅시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부가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제쯤 저를 다시 데려가시겠나이까!” 황후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을 찬찬히 살폈다. 초구를 걸치지 않은 대황자는 많이 야워어 턱선이 뽀쪽하게 드러난 모습에 황후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찌 이렇게 수척해졌느냐? 잘 먹지 못한 것이냐?” 대황자는 입을 삐죽이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재에서 돌아가면 황조모께서는 또 글을 외우게 하십니다. 외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으시니 황조모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제황후는 태후가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금족령이 풀린 상황에서 태후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만 대황자를 달래며 말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어미가 네 부황을 설득할 것이다.” 대황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 안만수 태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안만수가 제황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마, 대황자께서는 수업 중이시옵니다.” 제황후는 안
이튿날, 목 승상은 바로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태의원에서는 모든 태의와 원정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목 승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딱 한 가지만 묻겠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느냐?” 태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원정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목 승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없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냐?” 목 승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단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혹 다른 방도라도 없단 말이냐?” 모두가 다시 침묵하자, 목 승상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그러다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의 명성을 걸고서라면, 이 기한을 2년으로 늘릴 수는 없겠느냐?” 오원정은 얼굴에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승상, 폐적증은 발작하면 기세가 매우 심각하여 2년은커녕 1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목 승상이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마디 내뱉었다.“입들 조심하거라.” 그는 천천히 태의원을 나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이렇게도 빨리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날씨가 갈수록 추워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태후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했지만, 태의원의 밤새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핑계로 오원정을 불러 진맥을 청했다. 그러자 진맥을 마친 오원정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수면이 부족하신 듯하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는 태후가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챘음을 알고 있었다. 궁에서 태후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후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만 예외였다. 태후는 주변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오원정만 남게 했다. 문지방 위로 햇살이 드리웠지만 매서운 바람이 드리워, 그 햇살조차 싸늘하게 느껴졌다. “말해보거라.” 태후는 자리에 앉아, 오원정의 멍든 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