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의 부하 장군들은 관각에 머무는 제방과 노홍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거무스레한 피부의 장군들이 초조하고 애타는 눈빛으로 녹분성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 기방과 노홍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정말 사실입니다! 소 대장군은 전혀 몰랐습니다! 당시 그는 화살을 맞아 군의관들조차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스스로 견뎌냈고 침상에 누운 지 석 달 만에야 겨우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몸 상태도 전과 같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단 말입니다!”“맞습니다! 전북망이 녹분성으로 간 건 제 의도였지, 소 대장군과는 무관합니다! 저를 데려가 조사하고 처분하십시오. 목숨이 필요하다면 진성에 도착하자마자 드리겠습니다!"“제 장군님, 노 장군님, 여러분은 이전에 남강 전장에서 송 원수와 함께 싸우지 않았습니까? 우리끼리는 숨김없이 말해봅시다. 이 일을 해결할 방도가 있습니까? 황제의 진짜 의도는 무엇입니까? 정말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누군가 나서서 이 일을 짊어져야 한다면 저 노여가 짊어지겠습니다!”장군들 한 명 한 명 모두 자신이 죄를 짊어지겠다며 소 대장군이 돌아가는 걸 원치 않다고 했다.그러자 제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장군님들, 저와 노홍은 황제의 명을 전하러 온 것일 뿐,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북명왕이 분명히 해결책을 찾을 것입니다.”“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통상적으로는 이렇게 명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대들을 보낸 것은 실질적으로 소 대장군을 압송하라는 의미 아닙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전령을 보냈을 것입니다!”노여는 눈이 빨개지도록 애가 탔고 목소리까지 바들바들 떨렸다. “대장군께서는 곧 칠순이십니다. 그 나이에도 성릉관을 지키며 일생을 국경 관문에 바쳤습니다. 평생을 우리 상국의 국토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셨단 말입니다! 어찌 남의 잘못을 그분에게 덮어씌울 수 있단 말입니까?”노정 역시 답답함에 발을 굴렀다. “맞습니다! 그들은 원래 성릉관의 병사도, 무장도 아닙니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
그들은 저녁 내내 여러 번 기회를 노려 장기문과 단둘이 이야기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장기문과 척귀가 한 방을 썼고, 출입 또한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척귀를 따돌릴 방법이 없었다. 이때 마침 장기문이 화장실로 가자 노홍이 척귀를 감시하고, 제방은 화장실 밖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장기문은 물과 음식이 맞지 않아 화장실에 오래 머물다 나왔다. 그가 나오기만을 계속 기다린 제방은 추위에 떨어 거의 몸이 얼어붙은 상태였다. 이곳은 불빛이 매우 어두컴컴했다. 장기문은 나오면서 사람 그림자를 보고 까무라치게 놀랐다. “제 장군이셨군요! 놀라서 혼났습니다!”제방이 다가가 말을 꺼내려 하자 장기문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숨을 참을 수 있으면 잠깐 참으시죠. 안에 냄새 좀 빠지게요.”제방도 웃으며 대답했다.“장 시위님, 사실 저는 시위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무슨 말씀이든 여기서 할 건 아니죠. 돌아가서 합시다. 춥지는 않으십니까?” 장기문은 다리까지 저려왔는지 다리를 탁탁 털었다. 제방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장 시위님, 오늘 밤 저를 찾아온 장군들은 모두 소 대장군을 오랫동안 모신 부하들입니다. 그들은 단지 대장군을 염려하는 마음에 잠시 무례하게 말한 것입니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습니다.”장기문이 냉정하게 대답했다. “제 장군께서는 제가 황제께 보고하지 않길 바라십니까? 이미 그런 말을 떠들어댔으니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라곤 할 수 없겠죠. 제 장군께서도 괜한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보고할지 말지는 내 일입니다. 이번이 그대들에게 공식 임무로 복귀하는 첫 번째 기회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앞날도 없을겁니다.”제방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는 호칭까지 바꿔가며 친밀함을 내세워 설득하려 애썼다. "장 형제, 당신의 사촌인 장문수 형님을 봐서라도 그 말을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앞으로 우리 형제끼리는 뭐든 다 좋게 해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와 노홍이 당신에게 신세를 지는
소육야는 노정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관각에 가서 제 장군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들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들은 것은 확실합니다." 노여는 고개를 들고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수천 군대와 맞서도 두려워하지 않던 그가 지금은 겁이 나는 듯했다. "노정이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쳤는데, 귀먹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 들었을 겁니다." "그럼 내가 가서 그들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이 말이 절대로 황제께 전달돼서는 안 됩니다." 소육야이 크게 호통쳤다. "거기 누구 없느냐! 말을 준비하거라!" 그리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소삼야는 이들이 아버지와 반평생을 함께해 온 사이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제방을 찾으러 간 것임을 알고 있어 그들을 바라보며 깊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형님들, 화는 입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 꺼내지 마십시오.”그러자 모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잘못을 깨달은들 과연 만회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설령 어전 사위가 없었다 해도 제방과 노홍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어. 아이고……"소팔야는 머리가 아픈 듯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가 황제의 명에 따라 진성으로 가시는데 지휘권은 삼야형이 아닌 자신에게 맡겨졌다. 그는 막내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친아들도 아니었다. 이를 통해 황제가 내부 갈등을 조장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분란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황제는 곧바로 총지휘관을 성릉관에 파견할 것이다.현재 성릉관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무장은 북명왕 외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황제가 북명왕을 이곳에 보낼 리는 없고, 만약 다른 이를 보낸다면 실력이 부족하거나 공을 세워 후작에 오르려는 야망을 품은 자일 것이다.다행히도 소가의 아들들은 단합이 잘 되어 있었다. 누가 지휘권을 쥐든 간에 아버지가 계실 때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아버
진성에서는 홍시가 성릉관에서 온 전서를 받자 마자 열어 보지도 않고 왕비에게 전하라며 시만자에게 넘겼다. 시만자는 성릉관에서 온 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전서를 열어 읽었고 깜짝 놀라 곧장 말을 타고 달려 경위부로 달려갔다. 송석석이 경위부에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시만자가 경위부를 드나드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제 막 특별 초빙된 무술 사범이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그녀의 무예 실력이 뛰어남을 알았고, 또 그녀가 스스로 무관이 되길 원하지 않는 것을 이해했기에 그녀에게 현갑군의 무예 교육을 맡겼다. 비록 어전시위가 독립되었지만 무예 훈련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이들은 여전히 경위부로 와 시만자에게 무예를 배우러 와야 했다.송석석은 전서를 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실수였다. 이 내용을 가볍게 본다면 노정 장군이 순간적인 실수로 입을 잘못 놀린 것으로 가벼운 훈계를 내리거나 군봉 스무대를 맞는 선에서 끝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심각하게 본다면 이는 대단히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발언이 마치 성릉관의 장군들이 일제히 녹분성의 죄책이 황제에게 있다고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더욱이 이 사건은 애초에 황제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었다.“어떻게 해야 해…? 염선생과 사형은 지금 부재 중이고 왕야도 대리사에 있어서 너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 시만자 역시 그 발언의 파급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황제는 물론 상대적으로 관대한 선황제조차도 이와 같은 말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황제가 성릉관에 지원군을 보냈고 지원군은 소 대장군의 지휘를 받았다. 만약 황제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모든 전투에서 패할 때마다 그 책임이 황제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전북망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송석석은 손에 든 전서를 등불에 가져가 태워버렸다. 장기문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새어 나가서
단신의가 떠난 후, 장문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장기문을 막아야 합니다.”선평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내가 더 이상 소 대장군이 이런 불의의 재난에 휘말리게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다.”설령 영예와 부귀를 버려야 한다 해도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선평후는 무장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후작의 지위는 전장에서 피땀 흘려 얻은 것이었다. 소 대장군을 위해서라면 작위를 잃더라도 조상이 그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다만 그는 조카 장기문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장기문은 어릴 때부터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이었지만, 불행히도 늘 운이 없었다. 중요한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병에 걸리거나 불운이 닥쳐 공을 세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오랫동안 동궁에서 보낸 그이지만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해 여전히 평범한 시위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황제가 즉위하고 나서야 그는 현갑군으로 편입되어 어전 시위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출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성릉관 파견도 척귀가 오월에게 추천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기문은 항상 성공을 꿈꾸어 왔다. 이제 눈앞에 절호의 기회가 생겼는데, 그가 쉽게 포기할 리가 있겠는가?단신의는 선평후부에서 나와 북명왕부에 소식을 전했다. 사여묵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장기문이 약간의 운이 부족한 인물일 뿐, 비교적 올바른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스스로도 이를 고발할지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선평후와의 대화를 나눈 뒤라면 고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장기문이 정말로 그 말을 출세를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이를 기회로 삼아 황제께 보고하는 대신 제방과 직접 얘기를 나누는 편이 더 유리할 것이다. 제방은 제가의 사람이며 제수찬은 황제의 사위이니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고발로 얻는 것보다 훨씬 클 터이니 말이다.심지어 장기문은 황제 곁에서 오랫동안
하지만 여론이 이렇게나 들끓는 것을 보면 누군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부추긴 것이 분명했다. 숙청제는 처음에 북명황실을 의심했는데, 실마리를 따라 진상을 밝히다 보니 뜻밖에도 목 승상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그 기사들과 찻집, 그리고 술집의 이야기꾼들까지도 모두 목 승상이 사람을 보내 마련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목 승상도 이 사실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숙청제는 어서방에서 오랜 시간 침묵하더니 오월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 못 본 걸로 하게. 입 단단히 다물어야 할 것이네."목 승상은 선황제가 죽기 전부터 사임할 생각이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선제의 죽음으로 인해 새 황제가 즉위하는 상황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상직을 지키며 힘껏 보좌해왔다.조정 내 모든 문무백관 중에서 숙청제가 가장 믿는 이는 목 승상과 안만수 둘 뿐이었다. 최근에 목 승상과 여러 차례 성릉관 문제를 논의했을 때, 그는 늘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사실 모든 것이 정황상으로 이어져 있었다.목 승상과 소승은 문엄 시절부터 함께 세 황제를 모신 원로이다. 때문에 문관과 무관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있었다. 숙청제는 목 승상이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변방을 지키는 장군들이 없으면 국내의 안정과 번영도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겉보기엔 깊은 교류가 없는 듯했고 심지어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었으나 서로를 무척 존중하고 있었다.2월 13일 저녁, 제방과 사람들은 소 대장군을 모시고 입성했다. 며칠 전부터 백성들은 그가 황제의 명령에 따라 진성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도착한 것이다!해질녘이 되자, 붉은 석양이 피빛처럼 물들었다.키 큰 노장이 검은 말에 앉아 있었고 좌우에는 어전 시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허리는 조금도 굽지 않았다. 얼굴의 피부는 검붉은 빛을 띄며 마치 광택이 도는 구리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 긴 세월동안 눈보라와 서리를 겪었으나 그의 얼굴은 갈라지지 않았다. 마치 피
사여묵과 송석석은 성문에서 멀지 않은 주점의 2층에 있었다. 이 주점의 2층 귀빈실은 위치가 가장 좋아 창문을 열면 성문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그들의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사여묵은 송석석이 소 대장군을 볼 수 있게 일찍이 이 귀빈실을 예약했다. 송석석은 소 대장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려 내려가 어린 시절 때처럼 외조부의 품에 안겨 한바탕 울고 싶었다. 외조부에게 억울함을 쏟아내면 그는 석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곤 했다.“우리 석석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냐? 외조부가 가서 혼내 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 2층에서 서서 외조부의 말이 백성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귀청이 터질 듯한 지지의 함성을 들으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외조부는 이전보다 많이 늙은 것 같았다. 그가 비록 예전에도 귀밑머리가 희끗했어도 정신이 맑고 의지가 넘쳤다. 진성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몇 세트의 권법을 연습해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숨이 차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온통 백발이 되어 검은 머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록 대장군의 위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며칠간 계속된 여정으로 인해 피로한 기색이 보였다.게다가 그는 전체적으로 많이 수척해 보였다. 예전에는 얼굴이 검게 그을렸지만 살이 통통했는데, 지금은 피부색은 변함없지만 빵빵하던 살이 축 늘어졌다.이는 노쇠의 징후였다. 소 대장군은 인파 속에서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다. 때로는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하고, 때로는 어전 시위들이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백성들이 다칠까 염려했다.거의 반 시진이 지나서야 행렬이 주점 아래까지 도달했다.원래 순방영과 경위과 와서 길을 열어주려 했지만 백성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완전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었으나 이제는 백성들이 철옹성처럼 모여 소 대장군을 보호했다.어떤 백성은 어전 시위와 실랑이를 벌이려 했다. 그러나 즉시
필명과 오진이 경위와 순방영을 이끌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길을 만들어내어 마침내 소 대장군과 어전 시위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전 시위들은 소 대장군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게 했다.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백성들의 소란과 외침이 숙청제에게 보고되었다.숙청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성들이 자신을 향해 외치는 함성이 마치 그를 옭아매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원래 그는 소승이 돌아오면 먼저 형부의 조건이 비교적 나은 감방에 수감하고 서경 사신에게도 핑계가 될 만한 처분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척귀의 인도로 소 대장군은 어서방으로 들어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인 소승,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폐하 만수무강 하옵소서!”숙청제는 소승을 보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이 사건을 처리할 계획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가 눈앞에 무릎 꿇고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채 마치 쓰러진 산처럼 보이자 마음속에 찡한 감정이 올라왔다.그가 태자였을 때 소승과 송회안은 그를 무척이나 지지해 주었다. 그 또한 자주 진북후부를 찾아 송가의 아들들과 진심으로 교류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황제가 된 그는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고, 마음도 예전처럼 순수하지 않게 되었으며 여러 걱정과 책략이 늘었다.오랜 세월이 지나 눈앞에 서 있는 그를 보니 국경의 매서운 바람이 이 철같은 노장을 산골의 노인처럼 변하게 만든 것이 느껴졌다. 숙청제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져 직접 일어나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소 대장군, 어서 일어나시오.”소승은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죄인 소승, 폐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숙청제가 깊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오.”숙청제는 직접 소 대장군을 부축하여 한쪽에 앉히면서 그가 진정으로 쇠약해졌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강철 같던 그의 어깨와 팔이 이제는 그 단
송석석와 시만자는 궁을 나선 후, 시만자는 공방으로, 송석석는 여학으로 각자 향했다.이미 전에 제자예에게 더는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국태부인은 송석석를 보자마자 그녀가 제자예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것을 알고 말했다.“그 아이는 학문에 뜻이 없는 듯하니, 차라리 퇴학을 권하는 게 어떻소? 스스로 떠난다면 보기 흉하지 않을 것이오. 어쨌든 곧 혼사를 준비해야 할 아가씨지 않소.”국태부인은 제자예의 집안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하며 말한 것이다. 만약 아군여학에서 쫓겨난다면 그녀의 명성에 큰 타격이 갈 것이 분명했다.국태부인은 여자아이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깊었다. 혼사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말했다.“국태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부터 알아보고 이야기 해보겠습니다.”국태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크게 잘못한 일은 아니오. 그 아이와 벗들이 수업마다 소란을 피우며, 특히 여옥 선생 앞에서 더욱 심했소. 이에 따라 다른 학생들의 불만도 커졌고, 여옥 선생도 꽤 곤란해하고 있소. 선생도 나이가 젊으니,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익숙하지 않나 보오.”송석석이 잠시 생각했다. 여옥 선생은 문제를 처리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녀 역시 단순한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기에, 여학 자체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것은 그녀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문제였다.송석석는 먼저 여옥을 찾으려 했지만, 마침 제자예가 그녀의 두 친구와 향회옥과 주창우와 안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놀랍게도, 그들은 사과하러 왔다.제자예가 앞장서서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뉘우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철이 없어서 여옥 선생께 폐를 끼쳤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선생이 처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황후는 급격히 화가 치밀어 올라 잔을 내던지며 말했다.“정말 눈엣가시구나! 항상 나의 계획을 방해하기만 한다.”그러자 궁녀 란주가 옆에서 말했다.“마마. 북명왕비는 태후의 명으로 여학을 설립하고 아군여학을 도맡은 이후로, 경중의 부인들 사이에서 칭찬받고 있습니다. 지금쯤 경성의 반이 되는 명문가 부인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있으니, 정말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제황후는 순간 지난 동짓날이 떠올랐다. 그날 명부들은 하나같이 송석석을 극찬하였다. 심지어는 북명왕 부부의 금실을 감탄하거나, 그녀의 능력과 역량을 치켜세우며 여인의 모범이라 말했다.‘송석석이 여인의 모범이라면, 나는 황후로서 뭐란 말인가?’이런저런 생각에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와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태후께서 한때 이방을 여인의 모범이라 하셨는데, 이제 그 명성을 송석석이 차지하고 있으니, 불쾌하지도 않은 것이냐?”궁녀가 말했다.“마마, 그녀는 지금 돋보이게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한창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 시기에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만사가 극에 달하면 화를 입을 테니, 언젠가 그 관심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태후께서 그녀를 지키고 있으니, 그녀와 대립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황후가 차갑게 말했다.“태후께서 그녀를 지키는 이유는, 그저 송석석 어머니와의 사소한 옛정 때문 아니겠느냐? 여학은 태후가 하자고 하신 일이지만, 폐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저 효도를 위해 마지못해 허락한 것뿐이지. 여학을 도맡아서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송석석이 글이나 알고 있느냐? 정말 우습지 않은가? 태후는 여학을 중시하신다. 여학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도 태후께서 그녀를 계속 지킬지 두고 보자.”란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제자예 아가씨를 여학에 들여보내 선생들을 곤란하게 했던 일이 태후의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더 심한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태후를 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폐하께서도 마마를 도와주시지 않을
황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태후마마께서 그 아이의 이름까지 기억하시다니, 참 그 아이의 복입니다. 예. 자예 동생은 올해 갓 성인이 되었고, 열다섯 살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숙모가 자예의 혼사를 의논하려고 저를 찾아오신 겁니다.”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나도 들었다. 숙모는 광릉후의 셋째 아들을 마음에 들어 하신다지? 나도 특별히 알아보았더니 재능도 있고 인품도 좋아서, 훌륭한 배필이라 할 만하더구나. 게다가 나이도 비슷해서 아주 딱 맞다.”그러자 황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태후의 날카로운 눈빛에 자신의 속셈이 전부 간파된 듯한 기분이 들어,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더듬거리며 말했다.“혼사는… 신중해야 합니다. 우린 그렇다고 쳐도, 제자예의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말이 맞는다. 그래서 내가 직접 혼사를 정하진 않으마. 스스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게 하고 정말 마음에 든다면, 나에게 와서 혼사를 정해달라고 요청하게 하거라. 황후의 체면을 봐서라도, 내가 기꺼이 혼사를 내려줄 테니.”황후의 얼굴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는 분명 태후가 그녀가 혼사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는 말이었다. 대체 누가 고자질을 한 것일까? 어제 금방 사람을 방씨 집안에 보냈고, 오늘 아침 오수인을 궁으로 불렀건만, 말 한마디 나누기도 전에 태후가 그녀를 불러서 경고했다. “딱히 다른 일은 없다. 그저 이번 일로 네 의견을 듣고자 해서 부른 것이니 돌아가 숙모께 전하거라. 네 동생이 스스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이다. 혼사는 부모의 뜻만 따를 수는 없는 법이다.”태후는 황후를 돌려보냈다.황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며 말했다.“예. 친정의 일로 태후마마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드리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란주는 황후에게 여우 털 외투를 걸쳐주었고 이내 두 사람은 함께 본청을 나섰다.황후가 떠나자마자, 송석석과 시만자가 병풍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
연 공공은 어음과 차를 받고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마마를 뵈면 다 알게 될 것이네. 고명 부인께서 어찌 예를 어기시겠는가?“집사가 웃으며 답했다.“예. 공공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비록 그는 웃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정말 큰일이 아니라면 어찌 조금도 얘기를 알리지 않을까?송석석은 제자예가 소란을 일으켜서 오늘 여학에 가봐야 했다. 국태부인이 전날 밤 하인을 보내어 그녀에게 정리해 달라고 전했다.그녀가 막 문을 나서자마자 방씨 가문의 가마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마꾼들이 몹시 서두르는 걸 보니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걸음을 재촉하며 물었다.“방씨 가문에서 왔소?”가마 안에서 방 부인이 가림막을 걷으며 다급히 말했다.“왕비, 황후께서 숙모님을 궁으로 부르셨는데, 아마도 방시원과 제씨 가문 아가씨 제자예와의 혼사 때문인 듯합니다. 숙모께서 황후가 직접 명을 내리실까 봐 염려하셔서 도와달라고 하십니다.”송석석은 그 말을 듣고 다소 놀랐다.“제자예라면 아군여학의 그 제자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예. 어제 혼담을 보내왔지만, 숙모가 거절하셨습니다.”방 부인이 다급히 대답하자 송석석은 곧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시만자를 불렀다.“태후께 문안을 드리러 궁에 가야겠다.”그렇게 두 사람은 말을 타고 궁으로 달려갔다.그 시각, 오숭인은 이미 마차에 올라 연 공공과 함께 궁으로 향하고 있었다.송석석와 시만자는 한발 먼저 도착해 태후를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태후는 평소 후궁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매달 첫날과 보름에만 문안받았다. 그저 이른 아침, 숙청제가 문안을 드리고 갔을 뿐이다.송석석의 말을 들은 태후는 냉소하며 말했다.“함부로 혼담을 꺼내다니. 그녀의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제씨 가문은 분명 방시원의 병권을 빌려 큰 황자를 지원하려는 속셈이다.“큰 황자가 서우를 깔보고 난 후, 태후는 그에게 몹시 불만이었다. 아직 어리고 곁에서 스승이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릇없고 거만해 깔보지
사여령은 새로 부임했을 때 아버지에 관한 질문을 받을까 봐 매우 두려웠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사여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물어보는 이조차 없어 점점 긴장이 풀렸다. 그 중 대리사 소경인 진이가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그는 모든 일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온화한 사람이었다. 사여령은 그에게 매우 감사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예의를 차리지 않고 바로 물었다.그는 태어나서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감옥 관리자 일을 잘 수행해내고 싶었다. 그는 배워야 할 것도 많았고 수하의 옥졸들을 잘 관리해야 했으므로 매일 바빴다.사여묵은 진이에게 당분간 사여령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묻지 말고 그가 제대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도우라 했다. 사여령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지원해 주고, 작은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후 스스로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동지가 지나고 나서부터 중매쟁이들이 방씨 가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오수인은 방시원에게 부인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자식 문제야 그렇다 쳐도, 그의 곁에서 그를 잘 챙겨줄 사람 한 명정도는 필요했다.오수인은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후, 후손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다. 오수인은 그저 아들이 평온하게 살아가길 바랐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왕청여 사건 이후, 그녀는 며느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품성을 꼽았다.이전에 혼담이 오갔던 집안은 비록 6품 관원의 딸이었지만, 덕목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청여와 노세진 사건이 터지면서 이 일은 무산되고 말았다.그 후 중매 얘기가 많이 들어오자, 그녀는 먼저 그들의 품성을 알아보고자 했는데, 그러던 중에 뜻밖에도 제씨 가문에서 먼저 혼담을 꺼낸 것이다.제씨 가문의 막내딸인 제자예는 갓 성인이 된 지 반년이 채 안 된 16세도 지나지 않은 나이었다.오수인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품성을 알든 모르든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느꼈다.오수인이 원래 선택했던 아가씨는 모두 18세 이상이었다. 18세가 되도록 혼
노주라는 말 한마디에 사여묵과 송석석은 연회를 마치자마자 급히 북명황실로 향했다. 그들은 의사당에서 지도를 펼쳤다. 노주는 강남에 위치해 있고 당시 이왕의 봉지였다. 이왕은 문엄 황제의 형제였는데 오늘날은 진국장군이 되었다. 진국 장군은 봉호만 있을 뿐 병권은 없었다. 지금의 진국장군은 사청엽이었고 황가의 청짜 돌림이었다. 이제껏 조정의 봉록을 받고 살았지만 지금은 복지가 반 이상 줄었다고 했다. 전에 심사할 때도 그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노주는 비록 부유한 집안이긴 하지만 연주와 옹현에서 멀어 군대를 노주로 이동시키는 것은 꽤 곤란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청엽이라는 사람이 나쁜 일이란 나쁜 일은 다 하고 다녀 대대로 장악해 온 가업까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예전에 그 사람에 대혼 조사에 따르면 그의 집에는 처가 32명이 있었고 미인 통방도 오 육십 명은 되었다. 그가 데려올 수 있는 미녀라면 사든 아니면 빼앗든 반드시 가져야 했다. 그래서 그는 현지 관아와도 관계가 좋지 않아 관아에서도 늘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년 동안 그가 말썽을 일으키고 민녀를 강탈한 사건만 해도 수백 건이 넘었다. 하필이면 노주가 그의 봉지라 쫓아낼 수도 없고 맞서자니 아무리 그래도 진국장군이니 감히 그러지도 못했다. 그를 탄핵하는 상주서는 많지 않았다. 노주 지부가 3년에 한 번씩 바뀌는데 모두 황실의 체면 때문에 감히 보고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가 황실이라고 방임하면 나중에 자신의 벼슬길에 영향을 미칠까 봐 모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가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이때 염 선생이 말했다. “그에게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횡포하다는 것입니다.” 사여묵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한 사람이 가난이 극에 달하면 당연히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해 내겠지. 하지만 요 몇 년 동안 그가 노주에서 빈둥빈둥 지내면서 친구는 거의 없고 손에 실권이 없으니 돈을 벌 수도 없겠지. 조사해서 그의 개인 마을이나 산이 있는지 알
“여령아, 무릎을 꿇거라.” 영태비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사여령에게 말했다. “불효자식아, 어서 왕비에게 용서를 빌거라! 그녀는 너의 사촌 여동생이기도 하고 사촌 형수이기도 하다. 그녀가 너를 용서해야 하늘에 계신 네 어머니의 영혼에게 할 말이 있지 않겠느냐?” 사여령이 무릎을 꿇으려 하자 송석석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어디 한 번 감히 무릎을 꿇어보십시오.” 그녀의 차가운 말에 사여령은 굽으려던 무릎이 뻣뻣해졌다. 송석석은 영태비에게 말했다. “태비마마께서 다른 일이 없다면 저는 그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자 영태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손자와 손녀를 보호해 주게.” 송석석은 제 자리에 서더니 고개를 돌려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태비마마께서 정말 보살님이십니다. 하지만 저희 사촌 이모께서는 태비의 연민을 받아본 적이 없지요. 그러니 그들도 누군가의 연민과 보호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태비는 울며 소리쳤다. “왕비님, 아무리 그래도 친척인데 어떻게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면 왜 보호가 필요하겠습니까? 황가의 자손이 거지라도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태비마마께서 괜한 걱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만약 태비마마께서 괜한 걱정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내가 아니라 손자들에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석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 사여령은 쏜살같이 쫓아나가 그녀를 막았다. “사촌 동생아.” “당신이 내 사촌 이모의 친아들도 아닌데 사촌 동생은 무슨!” 송석석은 줄곧 사여령을 미워했다. 연왕에겐 아들이 세 명 있는데 가장 밉살스러운 것은 그가 아니었지만 첩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래서 사촌 이모가 그를 키워줬는데 효의가 조금도 없다니. 살아있을 때 효도한 적도 없으면서 죽은 후에야 울고불고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촌 동생.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
말을 하고 있을 때, 영태비가 사적으로 사람을 보내 송석석을 초대했다. 송석석은 태후마마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그곳으로 향했다. 영태비는 문엄 황제의 빈이라 아들을 따라 봉지에 가서 복을 누려야 했지만 지금은 궁궐의 외딴곳에 홀로 남아 생활을 했다. 송석석이 고 공공을 따라 영수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설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몇 개의 전각이 아닌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되자 영태비의 병세가 악화되어 연왕의 아들인 사여령이 진성에 남았는데 오늘 입궁해서 조모의 곁을 지켰다. 송석석이 온 것을 보자 사여령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왕비님, 오셨습니까?” 송석석은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큰 도련님도 계셨군요.” “네, 조모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사 여령은 송석석 앞에서 감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고, 송석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태비께 인사를 올렸다. 영태비는 등에 비단 베개 두 개를 받치고 침대에 기대 있었는데 안색이 노란 데다 푸르스름했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풀어헤친 채 계속 누워있었던 탓에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송석석에게 말했다. “왕비, 어서 앉게.” 영태비는 말하는 속도가 아주 느리고 힘이 없었다. 궁녀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놓자 고 공공이 말했다. “왕비님, 앉으십시오. 태비마마께서 몸이 허약해서 말소리가 크지 않으니 가까이 앉으셔야 들을 수 있습니다.” 송석석은 태비마마께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태비마마께서는 좀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낫지 않을 것이다.” 영태비는 말을 하며 입술에 립밤을 좀 발랐는데 혈색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창백해 보였다. 송석석은 영태비를 위로했다. “잘 치료한다면 금방이라도 괜찮아질 것입니다.” 전 중의 숯불은 아주 따뜻하게 타올라서 송석석은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태우는데도 연기 한 점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아 좋은 숯임을 알 수
혜태비는 궁에 들어오자마자 덕귀태비와 제귀테비를 찾아가 정원을 노닐었다. 혜태비는 홍보석 장신구가 오늘 피부색을 잘 받쳐주어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태후마마에게 문안을 드리러 태후전에 들어갔는데 많은 명부들 또한 때를 지어 태후에게로 왔다. 마침 방시원의 어머니인 오수인도 태후에게 인사를 드리러 궁으로 들어왔는데, 태후가 이렇게 많은 명부들 앞에서 방시원의 혼사를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았다. 오수인은 마음속으로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감히 태후 앞에서 하소연하지는 못했다. “태후마마, 혼인을 조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방시원이 고생이 많구나. 이유 없이 이런 일에 연루되고, 너희 집안은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데 하필이면 그 사람들 때문에 발칵 뒤집히다니.” 오수인은 그제야 태후께서 왜 갑자기 그 말을 물으셨는지 알았다. 알고 보니 방시원과 방 씨 가문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복이 천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거라. 그는 우리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자 황은을 받들고 있는데 복이 천박하다니? 그의 운명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예, 태후마마께서 좀 더 신경을 써주십시오.”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다소 조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었는데, 지금 현장에 있던 명부들의 오수인을 보는 눈빛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하지만 태후께서 말씀을 하시니 상황이 달라졌다. 태후는 방시원을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라고 평가했다. 여태껏 조정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방시원을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총명한 사람이기에, 태후의 이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그러니 앞으로 아무도 감히 방 씨 가문을 무시하지도, 함부로 입에 담지도 못할 것이다.태후마마께서는 방시원의 얘기를 길게 하지 않고 다른 가문의 일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보이지 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