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전북망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사실 낮에 청여와 제 어머니가 몇 마디 언쟁을 했사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약그릇을 던지셨고 그 바람에 청여가 넘어졌습니다......" 평서백부 노부인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한참을 숨을 고른 뒤에야 겨우 몸을 가누며 물었다.“뭐라고 하셨습니까? 어머님께서 제 딸을 치셨단 말입니까?” 전북망은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이 일은 분명히 제 어머니께서 잘못하신 것이옵니다. 그러나 지금은 청여를 지키는 것이 급선무이지 않겠습니까. 의관님께서 말씀하시길 청여가 예전에 낙태를 하며 자궁이 손상되어 출혈이 많아질 수 있다고 하였사옵니다. 그리고 지금 출혈이 이미 심각한 상태라 아이를 꺼내고 지혈제를 써야 한다고 하옵니다."평서백부 노부인의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순식간에 굳어졌다.‘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최씨가 나서며 말했다.“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옵니다. 일단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이오니 의관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시지요."그러자 전북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의관께서 말하길 단신의를 모셔오거나 아이를 꺼내고 지혈제를 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하셨사옵니다. 하지만 이미 날이 저물어 단신의께서 약왕당에 계실지 알 수 없으니, 그의 방법을 따르는 수밖에 없을 듯 하옵니다.” 의관은 지혈제 조제를 마쳤고, 최씨는 그 뒤를 따라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왕청여는 마치 물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은 무척 창백했고 두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지독한 고통이 그녀를 눈에 띄게 수척하고 지쳐 보이게 만든 것이다. 언뜻 형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찾으며 중얼거렸다. "어머니……"이 순간,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뿐이었다.최씨는 그녀의 볼을 살짝 잡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먼저 지혈제를 먹게. 어머니께서는 바로 밖에 계시니 이것만
평서백부 노부인은 분만실에 잠시 머물다 최씨에게 말했다.“지금 장군부에는 주모가 없어 일 처리가 어려운데다, 노부인께서는 병약하시고 청여는 이번 난산으로 몸과 마음에 모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니 네가 며칠 동안 여기 머물며 도와주면 좋겠구나.”사실 그녀는 딸이 이 집에서 위축될까 염려되었다. 그 노부인은 무척 사납고 거칠어서 서슴없이 그릇을 던져버릴 정도였으니, 평소에 자신의 딸이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노부인을 찾아가 따지지는 않았다. 그 집에서 최근에 사람 목숨이 끊어진 일이 있었는데다가, 딸은 난산을 겪으며 아이마저 잃었으니 말이다. 만약 노부인 쪽에서 또 무슨 사고라도 친다면 큰일이지 않은가.‘어휴…… 됐다!”‘낙태한 일은 이미 더 이상 숨길 수 없겠지. 전북망은 아마 내 딸이 예전에 방시원과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건 맞지만, 단지 그때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거야. 그러니 이 일은 그냥 덮고 지나가자. ‘최씨 역시 이 일에 대해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진심으로 장군부의 이 복잡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왕청여의 어머니가 이미 명을 내렸고, 또 장군부에도 주모가 없으니 자신이 며칠간 돌보는 것으로 마음을 다하는 셈이라 생가하기로 했다.장군부에 머물며 돌보지는 않고 그저 매일 오가며 돌볼 생각이었다.평서백부 노부인이 떠난 후, 최씨는 분만실에 남아 깊은 잠에 빠진 왕쳥여를 지켜보았다. 안쓰러운 그녀를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전북망은 침대 곁에 서서 지친 모습으로 잠든 왕청여를 바라보았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연민이 밀려왔다. 결국 자신의 어머니가 그릇을 던져 그녀를 넘어지게 했고, 그로 인해 아이를 잃게 된 것이니 마음이 무척이나 괴로웠다.하지만 의관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전북망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청여가 예전에 방시원과 아이를 가진 적이 있었소? 그 아이는 어찌하여 지키지 못한 것이오?”최씨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이 이야기
최씨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올케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설마 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있었던 일들은 아니겠지?’ 그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자세히 말하거라. 작은 일 하나라도 빠짐없이 알고 싶으니.” 홍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최씨는 이를 정리해 확인했다.“세 가지 일이 있었구나. 첫째는 대부인에게 집안을 맡기긴 했으나, 전북망의 봉록 중 3할만 주고서 의식주와 월례비를 모두 공금에서 내도록 한 것. 둘째는 이 일로 대부인과 다투다가 너무 지나친 수를 써서 가위를 내밀며 자기 배를 찌르라고 한 것. 셋째는 대부인이 산모를 위해 산 삼교환이 너무 적다고 불평한 것…… 맞느냐?”홍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그렇사옵니다.”“이 일이 모두 대부인이 자결하기 전에 일어난 일인데. 그렇다면 그 전에는 어떠했느냐? 큰 다툼이라도 있었느냐?”홍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딱히 심한 갈등은 없어 보였지만 부인께서 대부인을 늘 깔보셨고, 말에서도 자주 무례한 표현이 나오곤 했사옵니다.”“어느 정도나 무례했느냐?”홍이는 그런 장면을 늘 보아 익숙해진 터라 이제는 무례하다는 느낌도 거의 받지 않았다.“주로 대부인의 신분이 낮고 교양이 없으며 기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거나, 잔돈을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남편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다는 식이었사옵니다."“그런 말을 대부인 앞에서 직접 하였느냐?”“예, 대놓고 말했사옵니다. 부인께서는 이런 말은 면전에서 해야지 뒤에서 말하는 것은 소인배 짓이라 여겼사옵니다.”최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 저런 자는 소인배만도 못하다!"왕청여에 대한 최씨의 마음은 그저 불쾌함 뿐이었다. 저게 과연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북망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머니의 방에 들어서며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이가…
북명왕부의 밤, 서재에는 불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정말로 결심한 것이오?" 사여묵이 다시 한 번 송석석에게 물었다. "이 일을 추진하면 많은 어려움과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겠지."송석석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절 지지해 주실 것이지요?”“그대가 결정한 일이라면 당연히 지지하지요! 사여묵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시만자는 턱을 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지지할 뿐만 아니라 자금과 힘도 보태겠네.”송석석이 염선생을 바라보며 물었다."염선생 생각은 어떠신가?"염선생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했다. “황실 입장에서라면 반대하겠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지지하옵니다.”송석석이 심청화를 바라보며 물었다.“대사형은 어떠십니까?” 심청화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하려는 일인데 내가 어찌 지지하지 않겠느냐? 다만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미 결정을 내렸다면 그로 인한 결과와 그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네.”“알고 있사옵니다.” 등불에 비친 송석석의 눈이 유난히 빛났다. “이건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며칠 동안 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옵니다. 여학 설립은 꼭 필요하지요. 만자 말대로 여학이 비록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도 지금은 일부 관리 집안의 소녀들만 입학할 수 있기에 절실한 일이라 할 수 없사옵니다. 또한, 여학은 황제의 명으로 운영되니 황제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자수공방은 다릅니다. 이곳은 우리 힘으로 세우는 것이라 남편과 이혼한 여성이나 쫓겨난 여성들이 친정의 지원 없이도 들어와 자립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옵니다. 자수, 뜨개질, 베짜기, 재단 등 손재주로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하고, 못하는 이들은 배울 수 있게 전문가를 두어 가르칠 것이옵니다. 병들었거나 장애가 있는 자들 또한 잘 돌볼 것입니다. 자금은 저와 만자가 맡을 것이옵니다.”이 말을 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시만자처럼 생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번 일로 인해
조정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터무니없사옵니다! 이런 곳을 열게된다면 삼종사덕의 가르침은 그저 허울 좋은 말이 되고 말 것이옵니다.”“그렇습니다! 이는 여인들의 기세를 북돋워 줄 뿐 아니라 시부모를 공경하지 않게 만들고 질투와 시기로 집안을 어지럽힐 것이옵니다.”“이건 아마 왕야의 생각이 아니고 왕비의 의견일 것이겠지요. 왕야께서 왕비를 기쁘게 하려고 남자의 체면까지 버리시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옵니다!”숙청제는 보좌에 앉아 그저 혼란을 지켜보며 가끔 입술을 다물기도 하고, 가끔 입꼬리를 올리기도 했다. 사여묵이 남강 전장에서 돌아온 후 칭찬받는 소리만 들리다 이렇게 욕을 먹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속으로 그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아.. 사여묵, 네가 아직 어리구나. 이 일은 사대부들의 마음에 반하는 일 인걸 왜 알지 못하느냐. 여인에게 퇴로를 열어주면 그들은 여인을 어떻게 다룰 수 있겠느냐? 민심을 얻으려다가 사대부들의 마음을 잃을 수도 있단 말이다. 이 계산은 단단히 잘못되었다네!'온갖 논란 속에서도 숙청제는 여유롭게 사태를 방관하면서도 결정하지 않고 말했다. “다음 조정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거라.” 이는 사태가 한 번 더 불타오를 수 있도록 시간을 두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회의에서 더 많은 이들이 반대에 참여하게 할 계획이었다. 사여묵 또한 황제께서 이 일을 곧바로 수락하지 않기를 원하며 상황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 백성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만을 바랬다. 이 일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반발과 소문으로 더욱 뜨거워져야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새로운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한 달 동안 소문이 충분히 떠들썩하게 퍼져 온 경사에 이 일을 모르는 이가 없게 한다면 딱 좋을 것이다. 장소를 보수하고 침상을 마련하는 데 한 달이면 딱 알맞는 시간이니 말이다.사여묵은 황제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황제가 마지못해 수락하는 형세로 말이
노부인은 얼굴이 굳은 채 최씨를 응시하였다. 희미하게 내려앉은 눈가를 들어 올리며 그녀의 의도가 진심인지 농담인지 가늠하려는 듯 유심히 살펴 보았다. 하지만 최씨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매우 진지했다. 그러자 노부인은 피가 거꾸로 쏟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평서백 부인이 감히 약값을 자신에게 청구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기에 점점 호흡이 가빠져오기 시작했다.일국의 친인척 사이에, 그것도 약을 사기 위해서 이런 것까지 철저히 따져야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노부인은 간신히 그 수치심을 누르며 옆에 있던 손마마에게 눈짓을 보냈다. 손윗사람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니 직접 말하기엔 어려웠다. 손마마는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인께서 먼저 은화를 내주시겠습니까? 추후에 꼭 갚겠습니다.”하지만 최씨는 단호히 답했다. “급히 나왔는데 몸에 그렇게 많은 은화를 지닐 리가 있겠습니까?”손마마는 점점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께서 돌아가셔서 가져오시면 되지 않사옵니까……”최씨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야 번거로울 따름이지요. 직접 주시면 될 것을 무엇 하러 제가 집으로 돌아갔다 오겠습니까? 어차피 갚을 것이라면 장군부에 이백 냥 정도 없을 리도 없지 않습니까?”노부인의 얼굴은 자줏빛으로 달아올랐다. 최씨가 자신을 모욕하는 게 분명했다.손마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찌 없겠사옵니까? 다만 장부 관리자가 지금 마침 자리에 없어…… 그래서 잠시 드리지 못할 뿐이옵니다.”최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 장부 관리자를 데리고 오십시오. 저는 먼저 청여를 보러 가겠사오니, 은화를 마련하여 문희거로 가져다주시면 대신 다녀오겠사옵니다. 사돈 간에 이 정도 수고는 도리상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말을 마치자마자 최씨는 가볍게 절을 하고 나갔다. 뜰을 나서며 그녀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감히 약값을 내달라는 말을 하다니.. 도대체 어찌 그리도 맹
왕청여는 예전부터 항상 책임을 회피하곤 했다. 아무리 큰 재앙이 일어나더라도 그녀는 항상 쏙 빠져나온 채 다른 이들을 원망하며 자기가 얼마나 어이없고 무고한지를 강조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최씨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떨어지는 눈물을 닦기만 했다.최씨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북경은 이미 폐위되어 관직도 잃고 아내도 없는 상태라 하루 종일 방에 갇혀 지냈고, 심지어 전북삼은 무공도 글공부도 형편없이한 쓸모없는 존재였기에 그에게 기대할 수 없었다. 둘째는 더는 관계하지 않겠다며 실제로 벽을 쌓아 장군부를 둘로 나누어 버렸다.겨우 남은 건 전북망 뿐이였다. 그는 특훈을 받는 중에도 시간을 내어 왕청여를 돌봐야 했는데 장부를 정리한 뒤에야 장군부가 정말로 가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두 시간 후, 이천 냥이 최씨 앞에 놓였다. 이는 손마마가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것을 보니 그녀는 분명 밖에서 막 돌아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최씨는 홍이의 입을 통해 많은 일을 알게 되었다. 민소진은 김순희에게 전당포에 장신구를 맡기라고 했지만 김순희는 오히려 분노하며 민소진을 꾸짖었다. 그래서 결국 병과 약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중한 것을 전당포에 맡기게 되었다.최씨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는 이 일이 헛수고일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손마마를 데려가 그녀와 함께 증인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약왕당에 가서 단설환을 구매하겠다며 신분을 밝히자 의원이 다가와 물었다. “어느 분께서 심장이 병이 드셨는지요? 단설환은 반드시 단의원이 직접 진맥하고 처방을 내리셔야 합니다. 평서백 부인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단 의원님을 모셔 오겠습니다.”최씨가 말했다. “아, 이렇게 번거로운가요? 진맥을 해보지 않고는 단설환을 구매할 수 없다는 말씀인가요?”“그렇습니다. 단설환은 공급이 한정되어 있어 진정으로 필요한 이에게만 드릴 수 있습니다.” 의원이 말했다.그러자 최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
그래서 전북망은 대담하게 몇몇 하인을 팔아넘기기로 결심했다. 장군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큰형은 관직을 잃었고, 둘째는 분가했으며 그의 관직 복귀도 언제가 될지불확실했기에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는 절약할 수밖에 없었다.보통 귀족 가문에서는 하인을 파는 법이 없었고, 가장 금기시 되었다. 집안의 비밀스러운 일들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하인이 팔려 나가면 좋은 집안에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쁜 집안에 가면 반드시 그 비밀들이 누설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군부에는 더는 숨길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전북망은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매일 백성들이 가장 독한 저주로 자신을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집을 관리해 본 적이 없으면 쌀값도 모르는 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전북망은 그제야 민소진을 이해하게 되었다. 왕청여에 대한 그의 마음도 아주 복잡해졌다. 아이를 잃은 그녀가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녀가 형수와 다툼을 벌인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는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묻고 싶었지만 이 시점에서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꺼내지 않기로 했다.엎친 데 덮친 격, 김순희의 병세는 날로 심각해졌고 의사는 설을 넘기기는 힘들 것이라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전북망은 사람을 보내 전소환을 불러오려 했지만 전소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민소진이 떠날 때도 그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불길한 것을 피하고 싶었고 외부에서 장군부를 비난하고 있으니 이 혼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현재 손마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김순희에게 등 돌린 상태였다. 죽음과 절망은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묶어 그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동짓날에도 가족은 한데 모여 식사를 하지 않았고 그녀는 이미 병상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손마마의 손을 잡고 울며 말했다. “북명황실에 가서 송석석을 불러오거라… 내가 친히 할 말이 있다.”손마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부인, 왕비님은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