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회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오! 본 관은 당연히 사내가 맞지요. 허나 사내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고 첩을 두는 것도 허용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식이 없으면 양자를 받을 수 있으니 병이 들어도 아내가 돌봐야 합니다. 남자가 이렇게 방자하게 굴어도 세상이 어지럽혀지지 않았는데 여자가 쫓겨나서 수용될 곳이 있으면 오히려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여인에게 살길이 늘어난다는데 여러분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겁니까? 아무도 그런 길은 원하지 않다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이덕회는 집안의 그분이 왕야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송석석도 조정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인의 신분으로 여인을 대변하는 것은 더 큰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무리 재치 있게 말한들 그들의 날카로운 언쟁에는 상대가 되지 않기에 그녀는 황제가 말을 시키기만을 기다렸다.아니나 다를까, 여러 사람이 소란스럽게 토론하는 사이 황제가 헛기침을 하더니 송석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송석석,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구나.” 순간 모든 시선이 송석석에게 쏠리자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와 손을 모아 말했다. “폐하, 특별히 큰 의견은 없지만 여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한때 이혼한 여성으로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감님들께서도 듣고 싶으신가요?”그녀의 말은 모든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녀의 이혼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싶어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잠시 토론을 멈추고 그녀가 얘기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송석석을 존경하는 몇몇은 그녀가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황제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말해보게.”“여인이 혼인하는 건 사실상 두 번째 삶의 시작이라 할 수 있지요. 우리는 반드시 좋은 삶을 살아야
송석석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 마침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여러분은 민씨의 죽음을 하찮게 여기실지 모르나 만약 그녀가 여러분의 누이나 여식, 혹은 친척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 겁니까?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성현서를 읽어보셨고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분들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버림받는 이유는 병이 있거나 자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나 그 여인들은 죄가 없습니다.”그녀는 다시 서글프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여인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그런데 어찌 세상은 여인들을 끝까지 몰아내려고 하는 것입니까?”민씨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매나 가족도 아닌데 뭣 하러 저런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성현서는 그들에게 도덕적인 제약을 부여했다. 이 상황에 어찌 반박한단 말인가? 이 자리에서 반박하게 되면 오히려 비정하고 냉정하다고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이런 말이 사내에게서 나왔다면 반박하기가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송석석은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여인으로 무려 황제가 직접 그녀에게 의견을 말하라고 하였기에 그녀는 이와 같은 순간만 기다린 것이다. 여인에 대한 애절함과 안쓰러움이 가득한 그녀의 말에 그들은 도무지 반박할 수 없었고 반박한다는 것은 그녀를 괴롭히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이렇게 많은 관료들에게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것 또한 그녀가 스스로 떠드는 것이 아닌, 무려 황제가 직접 그녀에게 의견을 물어서 하는 말이었다.그리하여 대전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그들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더는 송석석과 논쟁할 수 없었다.숙청제는 이 모습을 보고 적당한 시기가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더는 미룰 일이 아니였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가 되었다. 대연국은 이미 선례가 있기에 상국은 절대 뒤처져서는 안 된다. “반대하는 이가 없다면 시도해 보도록 하지. 조정은 자금을 지원하지 않지만 자수공방은 관정부의
다음 날, 부부는 함께 외출했다. 그 전에 사여묵이 어색한 말투로 시만자에게 함께 갈 것이냐고 묻자 시만자는 그를 이상하게 쳐다볼 뿐이였다. 어젯밤 분명 송석석과 단둘이 놀러 간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그녀에게 함께 가겠냐고 묻는 것은 너무 가식적인 행동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시만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수공방 일을 처리해야 해서 바빴다. 자수공방은 수리 중이라 더욱 자주 살펴봐야 했다. 게다가 자수공방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휴일에 태비와 함께 차를 마시거나 왕경루와 금경루 같은 곳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 산에 올라가 바람에 맞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왕경루에서 사여묵은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청증조기, 호피육, 백파광뚱국화 등심, 진주비취백옥탕에 기름에 볶은 새우 한 접시도 추가했다. 비록 자주 볼 수 있는 요리들이라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왕경루는 이런 요리들을 더욱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날씨가 춥기도 하고 또 산에 올라타야 했기에 사여묵은 술 한 병을 주문했다. 오늘은 전적으로 그가 주도하며 그녀는 유난히 준수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기에 그가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었다. 그의 흰색 여우 가죽 외투는 옷걸이에 걸쳤다. 아늑한 방 안에는 숯불이 타고 있어 외투가 필요 없이 따뜻했다. 푸른색의 촉금은 구름과 파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는데 넓은 옷깃에 좁은 소매가 특징이었다. 게다가 푸른색의 장신구와 하얗게 변한 피부색에서 전체적으로 문관의 우아한 품격이 느껴졌고, 오직 검은 눈썹이 날카로움을 더해 무장군임을 상기시켰다.송석석은 문득 전쟁터에서 처음 그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마치 야생인처럼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전술을 논의할 때, 그녀는 그의 수염을 몇 번이나 뚫어져라 쳐다봤는지 모른다.이런 생각에 웃음이 터져버린 그녀가 말했다. “남강에서 봤던 장군님과 지금의 장군님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네요.”“그때가 좋았지.” 사여묵이 대답했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사여묵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방시원이 말한 산 꽃은 보이지 않았고 눈에 들어오는 건 잎이 없는 나뭇가지와 새하얀 설경뿐이었다. 초겨울부터 가뭄이 들어 폭포도 메마른 상태였다. 설경이 예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더니 좀 지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폭포와 높은 산에 피는 겨울 꽃이 있었다면 느낌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산에는 꽃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만금산의 북쪽에는 눈이 덮인 데다 장애물이 없어 스키를 탈 수 있는 언덕이 있었기에 그는 전략을 바꿔 송석석을 데리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는 신이 나서 산꼭대기에 올라 숨을 돌리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여전히 예쁘지 않소? 석양을 기다렸다가 보고 스키를 타고 내려가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오.” 송석석은 사여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엔 새하얀 눈과 잎사귀가 없는 나뭇가지뿐이였지만 웅장함과 소슬함의 아름다움은 있었다. 너무 추운 게 문제인건 빼고는. 칼처럼 얼굴을 스치는 북풍은 귀가 얼어 떨어질 지경이었고 망토의 모자는 바람은 막지 못했다. 이때 송석석이 말했다. “그럽시다. 여기에 앉아서 석양을 구경하지요.” 그녀는 모처럼 신이 난 사여묵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아마 신시쯤 된 것 같으니 여기서 석양을 보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하겠어. 게다가 날씨가 흐려 볼 수 있을지 확실 지도 않아.’ 송석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사여묵을 쳐다보더니 결심했다. ‘그래, 오늘의 운명은 사여묵에게 맡기겠어. 그래도 스키를 탄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이겠지?’ 사여묵은 가파른 산세를 보며 위에 덮인 눈을 밟아보더니 망토를 깔고 내려가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남강에 있을 때도 그렇게 했었다.두 사람은 산꼭대기의 눈밭에 앉았는데 사여묵은 송석석을 품에 안고 서로 추위를 물리쳤다. 너무 춥고 바람이 세서 낭만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두 사람은 그저 온몸의 내공을 추위를 이겨내는 데 사용했다. 송석석은 머리를 사여묵의
송석석은 이 상황이 열받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녀는 절뚝거리는 사여묵을 부축하며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사여묵의 머리는 눈보라로 인해 망가져 버렸다. 머리카락은 다 세로로 얼어붙어서 모양이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얼굴엔 푸릇푸릇하게 멍이 들었는데 눈에 스쳐 빨갛게 피가 난 곳도 있었다. 다행인 건 크게 다치지 않아 피를 금방 멎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마엔 거위 알같이 부어올라 송석석은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무술, 싸움, 벼슬까지 모두 잘하지만 운동은 정말 못하는구나. 스키를 저렇게 타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세상엔 산을 속이더라도 물은 속이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그건 물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지 산을 얕잡아보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겨울에 눈이 덮인 산에서는 보이지 않은 것 때문에 더욱 위험했다. 이곳의 지형은 남강과 달랐다. 게다가 전쟁 때는 갑옷을 입었지만 지금은 입지 않았기에사여묵은 난처함이 극에 달했다. 그는 간단하게 스키를 타기만 했을 뿐인데 이런 망신을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모처럼 휴가라서 송석석과 둘 만의 시간을 보내며 나중에 늙어서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래 이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긴 하겠지. 아마 석석은 영원히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야.’ “발이 많이 아프시지요?” 송석석은 갈수록 절뚝거리는 사여묵을 안타깝게 보며 물었다. 그러자 사여묵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괜찮소. 사실 날 부축할 필요 없소. 당신이 이렇게 날 부축하니 내가 마치 장애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오.”하지만 송석석은 손을 놓지 않고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난 그냥 당신에게 기대어 가고 싶을 뿐입니다.”예전 같았으면 사여묵은 분명 기뻐했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낭패하기 그지없었고 발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뼈에 금이 가지 않는 이상 이렇게 아플 수 없다고 생각했다.다행히 송석석이 부축해 주어서 걷기 좀 편했다.그는 순간
장대성은 염 선생에게 마당을 쓸라는 벌을 받았고, 때 마침 약왕당의 남작도 도착했다.남작은 단신의의 여섯 번째 제자로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의술이 뛰어나 약왕당에서만 진료를 했다.하지만 오늘은 사여묵이 낙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진료를 하러 온 것이다. 그의 임무는 사여묵의 전신을 검사하고 급소를 다친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아이도 없는 상태이기에 단신의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혜태비와 시만자는 거리에 나갔다가 사여묵이 다쳤다는 말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남작이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고 송석석은 옆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태비가 황급히 달려오는 것을 보고 몸을 수그리고 인사를 했다.“어머님 오셨습니까?”그러자 혜 태비는 대답하며 눈길은 줄곧 자신의 아들을 찾았다. 방에 들어간 후에도 씻을 겨를이 없어 여전히 곤두선 머리카락과 새파랗게 멍든 얼굴, 그리고 이마에 혹이 나 있는 사여묵의 모습을 본 혜 태비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하하, 어떻게 이 꼴이 된 건가? 산에 눈 구경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어머님, 왕야님께서 부주의로 넘어지셨습니다.”그러자 헤 태비는 아들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거 참,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것이냐?”시만자는 염 선생이 왕야께서 다리를 다쳤다는 말을 듣고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서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남자의 다리를 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이때 혜 태비가 물었다.“그런데 왜 부의를 부르지 않았느냐?”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부의는 오늘 외출했습니다.”“그러느냐? 앞으론 저택에 의사를 두 명쯤 두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구나.”혜 태비는 사여묵의 부은 다리를 보고 젊은 의사가 그의 다리를 감아 고정시키는 것을 보고 물었다.“상처가 심각한 것이오?”그러자 남작이 대답했다.“왕야님의 다리뼈에 살짝 금이 갔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약을 바르고 열흘 동안 고정하고 있으면 거의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피부
송석석은 급히 돌아와 혜 태비를 달래며 함께 밖으로 나갔고, 혜 태비는 여전히 투덜거렸다. “그렇지 않느냐? 결혼도 했는데 뭐가 부끄럽다고 그러느냐? 어릴 땐 어마마마에게 잘도 말하더니 다 컸다고 말 못 할 게 무엇이란 말이냐? 석석아, 넌 모를 것이다. 여묵이 어렸을 때 그곳에 모기에게 물려 바지를 벗고 나보고 약을 발라달라고…” “어머니!” 방안에서는 사여묵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석석은 황급히 혜 태비를 만자에게 부탁하고 궁녀 옥 씨와 궁녀 영 씨에게 뜨거운 물을 준비해 오라고 분부해 직접 사여묵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목욕탕에 몸을 담그지 못해 사여묵은 욕실에 앉아 머리를 숙여 머리를 씻어야 했다. 그리고 송석석이 머리를 감겨줄 때 발이 젖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사여묵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부인이 손으로 두피를 주무르는 것을 느끼며 어색함 속에서도 달콤한 행복을 느꼈다. 그는 이번 부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다쳤을 땐 장대성이 도와줬었다. 머리를 감은 후 송석석이 닦아줄 때 그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헛소리하는 것이니 곧이곧대로 듣지 마시오.” “알았어요.” 송석석은 두툼한 수건을 들고 그의 머리카락을 닦으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오늘 많이 실망한 거 아니오? 어젯밤에 얘기한 후 밤새 기대했을 텐데 오늘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 송석석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나는 매산에서 자라서 등산을 제일 좋아합니다. 게다가 설산의 절경이 너무 아름답고 웅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당신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만 나누어도 너무 좋은 걸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실망이 어디 있겠어?’ 사여묵이 등산을 가자고 했을 때 송석석은 오늘 기대할 수 있는 건 왕경루에서 식사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와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혜 태비는 종종 선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때론 선제가 자신에게 잘해줬다고 하고 때론 선제를 원망하는 말도 했었다. 하지만 매번 그에 대해 말할 마다 순수한 소녀 같았다. 혜 태비는 가장 근심 걱정 없이 살았던 후궁이었다. 그녀는 태비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떠한 계락도 당한 적이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녀를 향한 것이라고 해도 태후가 그녀의 앞에서 가로막아 주었다. 그녀는 귀하게 자라 자식을 낳았고, 지금은 며느리의 사랑까지 받으며 모든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끔 고민거리를 찾아다녔다. 예를 들면 덕귀태비와 제귀태비를 찾아가 그들과 비교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 말이다. 이기면 기뻐서 펄쩍펄쩍 뛰고 지면 입을 삐죽 내밀며 한참 화를 내다가 떠나곤 했다. 그녀는 사온과 가의에게 한바탕 당한 후에도 잠시 화를 내고 털어낼 뿐 그녀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반평생이 지나갔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급한 건 손자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아이를좋아해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덕귀태비의 아들인 진왕이 아이를 낳았으니 질투가 나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아이는 울거나 소리만 지를 뿐 그녀는 아직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송석석은 혜 태비에게 선제의 이야기를 잠깐 듣다가 방으로 돌아갔다.궁녀 옥씨는 달걀로 사여묵의 이마를 굴러주었는데 그래도 꽤 쓸모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혹이 전보다 작아져 지금은 시퍼런 멍만 남아있었다.보주가 생강떡을 가져오자 사여묵은 두 조각 먹었다. 그러자 송석석은 저녁 준비를 하라고 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송석석은 사여묵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사여묵은 손을 뻗어 그런 송석석을 품속으로 끌어안더니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당신 벌써 며칠 밤동안 나를 상대하지 않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 잠을 잤소.”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다리를 다쳐서 불편하지 않습니까?”뜨거운 손끝이 송석석의 뺨에 닿더니 사여묵이 그
최씨와 딸 왕지아는 마당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는 나무와 꽃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지만 그리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으며 특히 올해 겨울엔 더더욱 일찍 시들었다.“지아야, 너 왜 고모부… 방시원 장군님 편을 든 거야?”최씨는 손수건으로 왕지아의 상처 주위를 조심스럽게 닦아주며 물었으며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평서백부에 이런저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이들에게 얘기해주지 않았으며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밖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너무 많았기에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왕지아는 벌겋게 부은 얼굴을 살짝 들었다. 분명 맑고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지만 나이와 맞지 않는 성숙한 눈빛이 보였다.“엄마, 예전에 고모부가 고모와 함께 우리 집안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 뭘 선물했는지 기억하세요?”왕지아의 말에 최씨가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엄마 기억으론 장군을 보필하는 마마가 너와 현이에게 금덩이 하나와 금열쇠 하나씩 선물했던 것 같은데?”왕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국태 부인의 산하지를 저에게 선물해 주셨어요. 그때 당시 고모부가 저에게 해준 말이 있었거든요. 지금 세상에 태어난 여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기 어렵다고 했어요.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가지 않는 이상,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쉽지 않지만 넓은 바깥 세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고 했어요. 우리 상국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보고 바깥 하늘이 얼마나 푸르고 높은지도 보아야 시야가 넓어지고 쓸데없는 일에 고집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도 없다고 하셨죠.”최씨는 딸의 말에 흠칫 놀랐다. 그때 당시 방시원을 처음 봤을 때 최씨도 돈만 밝히는 사람이어서, 상대방이 무슨 선물을 들고 왔는지부터 따지기 바빴다.“고모부는 고모와 혼인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 찾아와서 따지거나 고모를 힘들게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엄마, 고모
제자예는 넷째 부인의 손을 뿌리치곤 최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절대 사과 안 할 거예요! 저를 뭐 어떡하실 건데요? 그렇게 억울하면 저도 한 대 치세요!”최씨를 향해 얼굴을 들이민 제자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세상 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최씨는 그런 제자예를 보며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차갑게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지금 당장 제 제사한테 찾아가서 물어봐야겠네. 따님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버릇이 없는 건지, 참.”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말했다.“훈장님, 그때 제 증인이 되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제 제사를 만난다면 전 당연히 솔직하게 얘기드릴 겁니다.”송석석의 대답에 제씨 넷째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이 일이 어르신에게 알려지면 넷째 부인은 크게 혼이 날 것이다.절대 어르신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넷째 부인은 이를 악문 채 제자예에게 말했다.“얼른 왕지아에게 사과해.”제자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엄마, 전 사과할 수 없어요. 쟤들이 날 괴롭혔고 날 서원에서 쫓아내려고 했어요.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쟤들이에요.”넷째 부인은 최씨와 송석석을 힐끗 흘겨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엄숙하게 말했다.“잘못을 저질렀으면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야.”제자예는 자신이 며칠동안 서러운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어머니마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더욱 서럽고 슬펐다.“싫어요. 절대 사과 못 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전 절대 굴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하던 제자예는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이내 송석석에게 잡혀 다시 최씨 곁으로 돌아왔다. 송석석이 최씨를 보며 말했다.“이번 일이 저희 아군 서원에서 벌어졌으니 서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자예 학생이 왕지아 학생의 얼굴에 상처를 냈으니 관아로 보내는 건 어떠세요? 관아의 처리에 따라 저희 아군 서원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반드시 책임지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최씨
제씨 넷째 부인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사과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퇴학은 너무 과한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끼리 말다툼하다가 벌어진 작은 소동인데 퇴학 처리까지 하면 아군 여학에서 괜한 문제를 만든다고 소문이 나지 않겠습니까? 부인께서도 아군 여학을 위해 고려하셔야죠. 제 딸이 퇴학을 당하고 나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아군 여학 명성에 오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조금 전에 최씨를 협박했던 넷째 부인은 이제 대놓고 아군 여학까지 협박했지만 듣고 있던 송석석은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사람을 때리고도 퇴학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아군 여학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는 거죠. 저희가 넷째 부인을 이곳으로 모신 건 다들 차분하게 이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겁니다. 사과할 건 하고 처벌을 받을 건 받아야죠. 당사자들끼리 직접 만나서 확실하게 얘기를 털어놓아야 두 가문에서 아이들 때문에 앙금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퇴학은 불가피합니다. 부인께서 자퇴를 거절하신다면 제가 나서서 제자예 학생을 퇴학 처리할 것입니다.”넷째 부인은 송석석과 대놓고 싸울 수는 없었기에 고개를 돌려 다른 선생님들에게 물었다.“다들 스승인데, 학생의 이런 작은 잘못조차 포용해주지 못 하시는 거예요?”안여옥의 태도도 강경했다.“전 제자예 학생을 아군 여학에서 강제로 퇴학 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태 부인과 훈장님꼐서 제자예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준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퇴를 권하시는 거고요.”국태 부인도 말을 덧붙였다. “스스로 자퇴하세요. 더 얘기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겁니다.”제씨 넷째 부인은 안여옥을 날카롭게 흘겨보았다.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안여옥이 제일 먼저 퇴학 얘기를 꺼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 의견에 동의했을 뿐이다.안씨 가문과 방씨 가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당사자들만 잘 숨기고 있다고 착각
최씨도 시녀 금숙을 데리고 왔다. 자신의 딸이 맞았다는 말에 제일 먼저 그녀의 상태부터 살폈는데 얼굴이 퉁퉁 부은 데다가 어딘가에 긁힌 흔적도 남아 있었다.국태 부인이 딸에게 약을 발라줬다는 말을 전해 들은 최씨는 딸의 마음을 위로해준 뒤 바로 서아원으로 돌아가 국태 부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두 부인이 앉자마자 송석석이 나서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내 사람을 시켜 제자예와 왕지아 그리고 증인이 되어줄 학생 몇 명까지 불러왔다.제씨 넷째 부인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멍청한 딸이 이 일을 서원에서 얘기한 것도 화가 나는데 왕지아가 심지어 방시원이 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왕지아의 말이 소문이라도 나면 제씨 넷째 부인의 딸의 명예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하지만 어찌됐든 제자예가 사람을 때린 건 사실이고 이는 말다툼과 성질이 다르기에 일단 최씨에게 고개를 숙여 대충 사과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철없는 여자애들끼리 다툼이 조금 있었던 것일 뿐이지만 그래도 제 딸이 손찌검을 한 건 잘못된 행동이니 최씨 부인께서 제 딸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최씨는 제자예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허리를 쫙 편 채 꼿꼿하게 서있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고고하고 당당해 보였다.그러자 최씨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따님은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지요. 따님이 손찌검을 했으니 직접 사과하라고 하세요. 그 사과를 받고 나서 이해할지 말지는 제가 결정할 일이죠.”넷째 부인은 다시 최씨를 위 아래로 훑었다. 결국 평서백부는 제씨 가문의 체면을 고려해줘야 하고 송석석도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적으로 합의를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넷째 부인이 이미 고개를 숙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씨는 전혀 넷째 부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고 있다.넷째 부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장이 난처해졌고 심지어 학원 학생들까지 있는데 이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이 일을 부모님에게
엄중히 처리한다는 말에 향회옥 일행은 두려워져, 제자예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억울한 제자예는 왕지아가 방시원을 도운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게 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재네 고모가 추악한 일을 저질렀는데 방시원의 편을 들었어요. 부끄럽지도 않나 봐요.”그 말에 뺨을 맞았을 때도 울지 않던 왕지아가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옆에 있는 여학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물론 송석석까지 불렀다. 함께 싸움에 가담했던 학생들은 자신도 처벌을 받을까 봐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방금 기세 높게 싸우던 학생들도 잠자코 옆에 있었다.자초지종을 이해한 안여옥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제자예가 여러 번이나 소란을 피웠고, 심지어 오늘은 학생을 때렸어요. 글 공부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서원의 풍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쫓아낼 것을 제안합니다.”제자예는 원래부터 여학에 오기 싫었다.하지만 본인이 오기 싫은 것과 쫓겨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게다가 황후가 그녀를 서원에 보냈고 해야 할 일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쫓겨날 수 없었다.마음이 초조해지자 그녀는 먼저 제안한 안여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날 왜 쫓아내는지 알아요. 당신이 방시원과 혼인하려 했는데 그 자식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고 날 좋아하기 때문이죠. 나를 질투하고 얄미워서 쫓아내려는 거죠?”그 말에 태국부인이 얼굴을 찌푸렸다.“제씨 가문에서 이렇게 자식을 교육했느냐? 입만 벌리면 욕이고 손을 들었다 하면 사람을 때리다니,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나도 저 여학을 쫓아내는 것에 동의한다.”그러다가 갑자기 마음이 약해져서 말을 덧붙였다. “네 발로 나가. 혹 소문이라도 나면 네 혼삿길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저도 이 뜻에 동의합니다!”규율 담당인 무씨 아가씨도 그녀들이 글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소란을 피우러 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난
넷째 부인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조용히 하거라. 감히 그런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다니, 혹시나 네 백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제씨 가문은 워낙 엄격해서 자손들은 말과 행동에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제자예는 머리를 흔들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백부도 언행이 바르지 않는데 감히 우리를 혼내다니요? 전 두렵지 않습니다!”“됐다. 그만 닥치거라.”넷째 부인이 꾸짖었다.“정말 어린애가 따로 없구나! 밖에서 네 백부의 일에 꼬투리 잡느라 우리는 숨기기도 바쁘다. 아무리 그래도 백부는 이부상서이고 그 사위는 당대 황제이니 수많은 자들의 미래를 손에 쥐고 있단 말이다.”계속 씩씩거리던 제자예는 그제서야 입을 삐죽 내밀며 더는 망언을 퍼붓지 않았다.“어쨌든 저는 방시원이 마음에 안 들어요. 얼마나 무능하면 아내가 나가서 사람을 훔치는 추태를 저질렀는데도 한마디 하지 않을까요?”“그건 황후마마의 뜻이다. 마마의 말씀을 들어.”넷째 부인은 딸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향삼랑과 방기원의 차이를 자세히 분석해 주었다.어려서부터 제씨 황후를 숭배한 제자예였지만 이 일만은 동의하지 않았다.게다가 황후가 그날 공공연히 이 일을 언급한 것이 매우 의심스러웠다.“혹 방시원이 황후마마를 찾아가서 얘기했어요? 방씨 가문에서 감히 우리 가문과 혼사를 맺으려 하다니, 먼저 지들 신분부터 따져야 하지 않나요? 저는 군인들이 너무 싫어요. 특히 몸에서 나는 땀냄새 참을 수가 없어요.”넷째 부인은 딸이 고집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혼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태후도 허락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얘기해도 늦지 않았다.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제자예는 아군여학에 돌아가 향회옥 일행에게 화풀이를 했다.방시원이 자기와 혼인을 하고 싶어 한다는 둥, 파렴치 하다는 둥 아무튼 그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까지 퍼부었다.향회옥은 이 일을 웃음거리로 삼아 다른 학생
송석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훑어보자,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안여옥은 송석석이 들어오자마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아직도 안 가고 뭣하느냐! 매를 늘릴까 아니면 여학에서 쫓아내 버릴까? 글 공부하기 싫으면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떠나거라. 여기에 오고 싶어하는 학생은 얼마든지 있으니.”송석석의 언성에 향회옥과 주창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두 사람은 재빨리 제자예의 옷자락을 잡으며 얼른 가자는 눈짓을 보냈다.본래 계척으로 20대를 치는데 지금은 30대로 늘어나고, 더 이상 가지 않으면 40대, 50대까지 늘릴 것이다.기세 높은 제자예는 가문에서도 귀하게 자란 몸이라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그녀는 가까스로 독기 어린 눈빛을 거두고 송석석이 40대를 치겠다고 말하기 전에 두 사람을 데리고 물러섰다.입구를 나선 제자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황후가 분부하지 않았다면 이런 거지 같은 곳에 있지도 않았다.여인은 글만 알면 될 뿐, 많은 학식을 배워도 소용없지 않은가!차라리 가문과 하인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앞으로 시집가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이때 안여옥이 일어서서 인사를 올렸다.“왕비, 오셨소.”손석석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학생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 않소?”“몇 명 뿐이니 괜찮소.”안여옥도 미소를 짓더니 송석석이 앉을 수 있게 책상 위의 교안을 정리했다.“다만, 말썽을 피우면 몰라도 누군가는 여학이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오.”그녀는 의아했다.“왕비는 누구라도 생각하시오?”송석석은 대략 알고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어서 대답 대신 그녀를 위로했다.“여학들이 큰일을 벌이는 걸 원치 않은 자들은 많소. 힘들게 추측하느니 우리의 본분만 잘 지키면 그만이오.”“맞는 말씀이시오.”안여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본래 저들의 일을 처리하려고 왕비를 청했는데 이제 잘못을 인정했으니 헛걸음을 하게 되었소.”“가끔은 나도 와서 살펴봐야 하지
송석석와 시만자는 궁을 나선 후, 시만자는 공방으로, 송석석는 여학으로 각자 향했다.이미 전에 제자예에게 더는 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국태부인은 송석석를 보자마자 그녀가 제자예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것을 알고 말했다.“그 아이는 학문에 뜻이 없는 듯하니, 차라리 퇴학을 권하는 게 어떻소? 스스로 떠난다면 보기 흉하지 않을 것이오. 어쨌든 곧 혼사를 준비해야 할 아가씨지 않소.”국태부인은 제자예의 집안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하며 말한 것이다. 만약 아군여학에서 쫓겨난다면 그녀의 명성에 큰 타격이 갈 것이 분명했다.국태부인은 여자아이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깊었다. 혼사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말했다.“국태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부터 알아보고 이야기 해보겠습니다.”국태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크게 잘못한 일은 아니오. 그 아이와 벗들이 수업마다 소란을 피우며, 특히 여옥 선생 앞에서 더욱 심했소. 이에 따라 다른 학생들의 불만도 커졌고, 여옥 선생도 꽤 곤란해하고 있소. 선생도 나이가 젊으니,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익숙하지 않나 보오.”송석석이 잠시 생각했다. 여옥 선생은 문제를 처리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녀 역시 단순한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기에, 여학 자체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것은 그녀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문제였다.송석석는 먼저 여옥을 찾으려 했지만, 마침 제자예가 그녀의 두 친구와 향회옥과 주창우와 안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놀랍게도, 그들은 사과하러 왔다.제자예가 앞장서서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뉘우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철이 없어서 여옥 선생께 폐를 끼쳤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선생이 처벌을 내려도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황후는 급격히 화가 치밀어 올라 잔을 내던지며 말했다.“정말 눈엣가시구나! 항상 나의 계획을 방해하기만 한다.”그러자 궁녀 란주가 옆에서 말했다.“마마. 북명왕비는 태후의 명으로 여학을 설립하고 아군여학을 도맡은 이후로, 경중의 부인들 사이에서 칭찬받고 있습니다. 지금쯤 경성의 반이 되는 명문가 부인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있으니, 정말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제황후는 순간 지난 동짓날이 떠올랐다. 그날 명부들은 하나같이 송석석을 극찬하였다. 심지어는 북명왕 부부의 금실을 감탄하거나, 그녀의 능력과 역량을 치켜세우며 여인의 모범이라 말했다.‘송석석이 여인의 모범이라면, 나는 황후로서 뭐란 말인가?’이런저런 생각에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와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태후께서 한때 이방을 여인의 모범이라 하셨는데, 이제 그 명성을 송석석이 차지하고 있으니, 불쾌하지도 않은 것이냐?”궁녀가 말했다.“마마, 그녀는 지금 돋보이게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어 한창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 시기에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만사가 극에 달하면 화를 입을 테니, 언젠가 그 관심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태후께서 그녀를 지키고 있으니, 그녀와 대립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황후가 차갑게 말했다.“태후께서 그녀를 지키는 이유는, 그저 송석석 어머니와의 사소한 옛정 때문 아니겠느냐? 여학은 태후가 하자고 하신 일이지만, 폐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저 효도를 위해 마지못해 허락한 것뿐이지. 여학을 도맡아서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송석석이 글이나 알고 있느냐? 정말 우습지 않은가? 태후는 여학을 중시하신다. 여학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도 태후께서 그녀를 계속 지킬지 두고 보자.”란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제자예 아가씨를 여학에 들여보내 선생들을 곤란하게 했던 일이 태후의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더 심한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태후를 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폐하께서도 마마를 도와주시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