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631화

작가: 유애
송석석과 시만자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승은백부인도 단신의에게 안방에서 군주를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깥사람들이 감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자 회 왕비가 잠시 망설이다가 딸의 숨결이 미약해진 걸 보고는 곧바로 허락했다.

단신의는 환경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쯤 되면 아이는 지키지 못하고 어른의 목숨을 건질 수 밖에 없으니 침을 대범하게 놓았다.

그는 란이에게 단설환을 먹인 후 출산 촉진약의 용량을 늘리도록 명령했다. 그런 용량은 태의도 두렵게 했지만 그도 단설환의 효능을 들어봤기 때문에 함부로 뭐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태의는 계속 병풍 뒤에 있어 단신의가 어떤 혈자리에 침을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어디에 놓았는지 보았다면 더욱 놀랄 것이었다.

이어서 단신의는 사향홍화와 단심을 사용했는데 사향 냄새가 퍼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러 버렸다. 사향의 양은 엄청 조심스럽게 조절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이상 임신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태의는 그가 처방한 약을 듣고 단신의가 최후의 방법까지 사용했다고 생각해 결국 우여곡절 끝에 효과를 본 것이다.

게다가 앞서 복용한 단설환과 고본단약도 모두 효과를 보이자 기진맥진해 있던 란이가 서서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금침으로 혈자리를 찌르자 자궁이 움츠러들면서 아랫배의 옴을 느꼈다.

산파가 황급히 란이에게 힘을 주라고 했다. 란이가 이를 악물고 힘을 주자 고생 끝에 태아가 마침내 나왔다.

단신의는 돌아서 홍작과 산파에게 뒷수습을 맡겼다.

아이는 남자 태아였는데, 아쉽게도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호흡도 이미 끊긴 상태였다.

승은백 부인은 량소를 닮은 아기를 보자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회 왕비도 한 번 쳐다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불쌍한 내 외손주.”

그러자 단신의가 물었다.

“당신 딸부터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오?”

현재 란이에게는 출혈의 징조가 보였는데, 혈액 순환의 약을 너무 많이 사용했기에 바로 지혈단을 사용하고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2화

    승은백 부인이 죽은 아기를 안고 나가려 하자 태부인이 목놓아 울었다. 하지만 승은백부인은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량소에게로 향했다. 량소는 오랫동안 묶여 있어 몸에 피가 통하지 않아 얼굴이 다 자홍색으로 변해 있었다.“이 아이가 네 아들이다. 네가 이 아이를 죽인 것이란 말이다!”승은백 부인은 아기를 번쩍 들어 량소에게 보였다. 그녀의 얼굴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어려 있었고 처음엔 말투가 차분했지만 갑자기 비분이 가득한 말투로 변해 있었다.“넌 대체 언제 철이 들 것이냐? 어떻게 해야 소란을 피우지 않을 것이냐 말이다! 보아라. 넌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뭘 믿고 그러는지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군주가 널 연모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괴롭히다니. 천하의 불효자 같으니라고. 그녀가 아직도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느냐?”향소는 시선을 피하며 그 아이를 보지 않았다. 방금 안방에서 전해오는 소리를 그는 모두 들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기분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는 아이를 감히 보지 못했다.‘내가 죽인 게 아니야. 내가 죽인 게 아니야.’“데려가십시오. 데리고.. 가십시오..!”그는 중얼거리며 입가에 피를 흘리며 말했다.“난 보지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는 소리 없이 승은백부인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보았다. 원래 울고 보채야 하는 아이가 지금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아이는 정말 귀여웠다. 그의 아들인데 죽었다.그는 오열하며 소리쳤다.“데려가십시오. 데려가십시오. 나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란이를 보러 가게 저를 풀어주십시오.”승은백부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늦었다, 너무 늦었어. 량소야, 세상엔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있단다. 네 아이는 다시 살아날 수 없고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단다.”승은백 부인은 화를 낸 후 슬픔으로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어릴 때부터 너는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여섯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3화

    승은백부의 여식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공기속에서는 침묵만이 흘렀다. 큰 재난을 겪은 후 모두들 표정이 처량해졌다. 이런 일이 벌어지니 아무도 기분이 좋지 않은게 당연했다. 태부인은 승은백부인이 방금 량소에게 한 말들을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렇게 창창했던 앞길이 지금은 모두 사라졌으니 태부인께서는 그들이 이혼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석석의 차가운 얼굴을 본 그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에 왕비가 승은백부의 일을 간섭한다고 했는데 군주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단신의를 불러 목숨을 구한 게 바로 그녀였다. 그래서 태부인은 왕비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혼을 하면 두 사람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소.. 회 왕비, 부디 북명왕비를 설득해서 그들의 인연을 망치지 않게 해 주시오.” 회 왕비가 송석석을 보며 말을 하려고 하자 송석석이 차갑게 말했다. “이모의 입에서 란이를 승은백부에 남겨두라는 말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나는 일을 크게 벌일 것입니다. 민지 장공주가 알면 반드시 그녀의 시아버지께 상소문을 올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승은백부의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승은백부는 조사를 받은 적이 있어 가문의 남자들이 모두 자제하고 있었다. 량소 하나 때문에 모두의 앞길이 막막해져 여식들이 잇달아 일어나 군주를 위해 말했다. “군주께서 시집오셔서 좋은 날이 며칠 있었습니까? 임신한 지 9개월이 넘었고, 그중 침대에 누워있는 날이 3개월이나 되지 않습니까? 겨우 위험에서 탈출한 사람인데 더 이상 량소 오라버니에게 괴롭힘을 당할 순 없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군주가 승은백부를 떠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슬픈 추억만 가득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때만 올바른 소리를 할 수 있었다. 회 왕비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럼 란이는 어떡하란 말이오? 결국 이혼의 길을 걷게 되다니.”그녀는 마음속으로 량소가 미웠지만 그가 란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4화

    별청에 있던 회왕은 송석석이 란이에게 이혼하라고 했으며 그녀를 데리고 승은백부를 떠나겠다는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그녀가 왜 란이의 결혼생활에 참견하는 것인가!’ 그가 사람을 시켜 송석석을 불러 나오라고 하려고 하는데 그때 사여묵이 왔다. 염 선생이 대리사로 가서 그를 데려온 것인데 그는 상황을 듣고 바로 공무를 버리고 온 것이었다. 남자는 안방으로 들어갈 수 없어 그는 곧장 별청으로 갔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노하여 소리를 지르는 회왕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어떻게 란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한 단 말이오? 이혼을 사주하는 건 사람의 인연을 망치는 일이건만 앙화를 받을까 걱정되지도 않는가? 내가 있는데 감히 누가 이혼시킬 수 있는지 보겠소.” 회왕의 말이 마치자마자 자두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여묵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가 차가운 시선으로 둘러보자 승은백부의 남자들 모두 벌떡 일어나 서둘러 절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회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숙께서 방금 제 왕비를 말씀하신 겁니까? 그녀가 무슨 앙화를 받을 일을 했다는 것입니까? 란이를 구한 일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그녀가 랴오 같이 아내를 죽이려는 짐승 같은 놈과 이혼하라고 한 일 말씀이십니까? 다른 사람의 인연을 망치다니요? 이게 무슨 인연입니까? 무슨 인연인데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황숙은 원래 말수가 적으니 입을 다무시고 원래 간섭하는 성격이 아니니 아무것도 상관하지 마시고 원래 손해를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니 손해를 보더라도 조카에게 한 마디도 반박하지 마십시오.” 회황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특히 승은백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어 더욱 당황했다. 승은백은 북명왕을 존경하는 동시에 몹시 두려워했다. 그는 일단 사여묵을 자리에 앉힌 후 천천히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지금 중요한 건 이혼 문제가 아니라 황제폐하와 태후마마가 죄를 묻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량소의 성격상 군주와 계속 부부로 지낸다면 또 얼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5화

    그러자 사여묵이 물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어떴소? 아이는 없어진 게 확실하오?” “네. 아이는 확실히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란이는 하마터면 출혈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다행히도 단신의 덕분에 목숨만은 건졌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일 년은 몸조리를 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주는 현재 혼수상태니 깨어나면 엄청 슬퍼하겠지요.”사여묵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열 달을 뱃속의 아이와 함께 했는데 란이도 마음이 괴로울 것이오.” 송석석은 얼굴이 창백해서 말했다. “그녀도 하마터면 따라갈 뻔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량소를 그대로 풀어줄 수 없습니다. 그는 적어도 감옥에서 몇 년은 지내게 해야 합니다.” “그건 내게 맡기시오.” 사여묵은 그녀가 가을바람에서 연약하면서도 강인해 보여 마음이 좀 쓰리고 아파왔다. ‘란이가 출산할 때 석석이 란이를 잃을까 봐 엄청 두려웠을 것이야.’ 생각을 마친 사여묵은 눈이 싸늘해졌다. 그의 눈빛을 본 송석석이 일깨워 주었다. “란이가 떠난 후에 시작하십시오. 지금 량소를 잡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란이에게 가서 빌 것입니다. 나는 란이가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 나는 먼저 대리사로 돌아갈 테니 내일 당신이 란이를 데리고 떠난 후 내가 사람을 보내 량소를 체포하도록 하겠소. 그는 본처에게 상처를 입히고 뱃속의 아이까지 죽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황가인 군주를 살해하려고 했으니 처벌받기에는 충분하오.” “그는 아직 탐화랑이라 공명이 있는데...” “내가 당장 목 승상을 찾아가서 황제에게 아뢰도록 하겠소.”사여묵은 량소가 벼슬이 없어 천자의 문하생이라는 것을 순간 잊을 뻔했다. 그를 처벌하려면 일단 그의 이름을 등과록에서 지워 천자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해야 했다. 송석석은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잡고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그녀는 모든 사람 앞에서 강한 척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로 놀랐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여묵 앞에서 나약함을 드러낸 것이다. 사여묵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6화

    송석석은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란이를 지키고 있었고, 시만자도 의자를 가져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어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승은백 부인은 사람을 시켜 그들에게 반찬을 가져다주었지만 송석석은 입맛이 없어 먹지 않았다. 그리고 시만자는 두 입 먹더니 란이가 고통스러워서 온몸을 비틀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더 이상 먹지 못했다. 그렇게 한밤중이 되서야 란이가 깨어나 잠결에 송석석을 부르자 송석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 여기 있어.” 그녀가 깬 것을 보자마자 홍작은 서둘러 그녀에게 약을 먹였다. 약을 먹은 후에 란이는 더 이상 눈도 뜨지 못하고 계속 잤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본 송석석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다. 제일 힘든 고비를 넘겼으니 앞으로는 괜찮아질 것이다.” 기력을 다 쓴 란이는 메마른 호수와도 같았다. 약을 세 번 먹어야 물을 조금 마실 수 있었지만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약을 먹자마자 바로 잠에 들었다. 홍작은 아까전 조금이라도 눈을 붙였기에 송석석에게 속삭였다. “왕비님, 가서 눈 좀 붙이십시오.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난 졸리지 않아요.” 송석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낮에 고생했으니 어서 가서 좀 더 주무십시오. 사경이 되면 약을 한 번 더 먹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홍작이 말했다. “예. 회왕께서는 가셨지만 회 왕비께서 아직 승은백부에 계십니다. 바로 옆방에 있으신데 군주를 데리고 떠나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마음먹고 란이를 데리고 가려는 것이니 회 왕비는 날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낮에 사여묵이 여기에서 떠난 후 승상을 찾아갔다. 다음날 아침 조정에서 승상이 황실 서재에 가서 한 마디 하면 숙청제가 크게 노하여 량소의 탐화랑 공명을 제거하고 등과록에서 그의 이름을 지운 후 대리사에 이 사건을 맡길 생각이였다. 그리고 대리사에서 이 사건을 맡은 이상 이혼은 문제없을 것이다.그래서 다음날 송석석이 란이를 업고 떠날 때 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7화

    란이는 여전히 몸이 허약했다. 그리고 그녀는 출산 전에 단신의가 왔을 때부터 아이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촌 언니 앞에서 눈물을 꾹 참았지만 별청에 도착해 송석석이 나가자마자 고개를숙이고 울어 버렸다. 시만자가 그 소리를 듣고 위로하려고 가자 송석석이 그녀를 잡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 어떤 위로도 소용없응 것이다. 스스로 이겨낼 수 밖에.” 어떤 아픔은 위로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고 더 많은 눈물만 흘리게 할 뿐이었다. 이때 홍시가 와서 연 왕비 시민주와 측비 김 씨가 평서백부에 갔다고 아뢰었는데 시만자는 이를 듣자마자 송석석에게 곧바로 알렸다. 송석석은 멍하니 듣더니 그제서야 어제 평서백부인 최 씨가 왔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 송석석은 최 씨가 왔다 간 게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허락된 범위 내에서 주시하되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거라.” “걱정 마십시오. 그래도 평 사저가 배양해 낸 사람이니 일 처리를 잘할 것입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석소 사저와 라 사저를 찾아갔다. “이제 이혼은 불가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제가 란이 출산할 때까지만 돌봐달라고사저들에게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출산도 했고 승은백부에서도 나왔는데 매산으로 돌아가실 것입니까? 아님 여기에 남아 란이와 좀 더 있을 것입니까?” 석소 사저는 자책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군주를 보호하지 못한 건 우리 책임도 있다. 우린 이미 사부님께 조금 더 있다가 매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어제 내가 망토를 가지러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난 량소 그자가 그렇게 간사할 줄은 몰랐다. 그전에 복직에 관한 일은 말한 적이 없고 매번 군주에게 비위를 맞추려고 하기에 우리는 그가 양심이 찔려 군주에게 잘해주려나보다 했지. 모두 나의 실수다. 그러니까 군주가 힘든 시기를 넘길 때까지 내가 옆에 있으마.” 그러자 송석석이 가벼운 위로를 건넸다. “사저, 자책하지 마십시오. 일은 막을 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8화

    송석석은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사여묵은 다정다감 한 사람이라 그런 사람이 가장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지.” 그러자 시만자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바로 인정하면 어떡해? 반박이라도 해야지, 듣기 불편하지 않니?”송석석은 멍해졌다. “그런 가능성을 분석한 것 아니야? 실제로 일어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괴로워해야 해?” “내가 만약이라고 했잖아. 근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정말로 여기면 어떡해?” 시만자는 송석석을 보며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툭 때렸다. “어이구. 난 네가 사여묵을 사랑하는지가 의심스러워. 비록 난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지만 누군가가 내 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나쁠 것 같아.” 그러자 송석석은 그녀를 째려보았다. “쪼잔하기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 화를 내도 늦지 않아. 그런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상하고 화를 내는 건 자신의 기분도 상하고 부부의 감정도 상하게 해서 수지가 맞지 않은 일이야.” 그녀는 말하며 시만자의 혼담이 실패한 게 순간 떠올랐다. “게다가 넌 결혼도 싫고 경험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뭐라는 것이냐?” 그러자 시만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난 경험이 없지만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니야.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기 싫은 건 나와 결혼할 만큼 우수한 남자가 없는 것이고. 난 세상에 둘도 없는 시만자야. 너도 세상에 둘도 없는 송석석 이긴 하나 우린 경황이 다르잖아. 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입궁해야 했고 그리고 사여묵이 너에게 잘해주기도 하고. 하지만 난 달라. 나에겐 어려서부터 좋아하고 날 기다려준 사람도 없는데 결혼해서 뭐 해? 혼자 살면 이렇게나 자유롭고 신나는데. 아이도 낳을 필요 없고. 란이가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한 거 너도 두 눈으로 봤잖냐.”그녀는 놀라서 물었다. “넌 아이 낳는 게 무섭지 않니?” 그러자 송석석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무섭지. 내가 홍작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39화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응. 그리고 평서백부인도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왕청여와 방시원의 사건을 해결할 때 가족 편 들지 않고 이치를 따랐잖아. 세가에서는 영광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망하면 다 함께 망하는 것이라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인 것 같아.” “그래. 네가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은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시만자는 얼굴을 송석석한테 비비며 말했다. “우리 사촌 언니가 지금 평서백부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왕야를 위해 왕표를 매수하려는 것이겠지.” 평서백부는 오늘 아주 시끌벅적했다. 노부인, 평서백부인 최 씨, 둘째 부인 남희, 그리고 왕가의 어르신들이 모두 함께했다. 시민주와 측비 김 씨는 시녀를 데리고 와 선물을 탁자 위에 쌓아 놓았는데 작은 산처럼 높은 것으로 보아 시민주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민주는 수완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신분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측비 김 씨가 말할 때마다 적당히 말을 끊으며 최 씨의 아이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렇게 최 씨가 낳은 1남 2녀는 많은 선물을 받게 되었고 서자와 서녀들은 조금 적게 받았다. 측비 김 씨는 몇 번이고 말이 끊겼지만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양호한 교양을 유지하며 웃으을 지으며 노부인과 남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점에서 최 씨는 측비 김 씨가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측비 김 씨에게 방어선을 쳤고 그녀의 말에 바로 말을 잇지 않고 생각을 한 후에야 대답을 했다. 어차피 시민주가 있으니 그녀의 실속 없는 질문부터 대답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다.측비 김 씨는 평서백부를 둘러보겠다는 제안을 했고 지금 8월이라 계화가 만발할 시기라 멀리서부터 계수나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백부를 둘러보려면 최 씨가 함께 해야 하는데 최 씨가 일어나자 측비 김 씨가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제가 며칠 전에 발을 삐끗한 걸 깜박했습니다. 난 정

최신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1화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0화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9화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8화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7화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6화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5화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4화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3화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