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석은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사여묵은 다정다감 한 사람이라 그런 사람이 가장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지.” 그러자 시만자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바로 인정하면 어떡해? 반박이라도 해야지, 듣기 불편하지 않니?”송석석은 멍해졌다. “그런 가능성을 분석한 것 아니야? 실제로 일어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괴로워해야 해?” “내가 만약이라고 했잖아. 근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정말로 여기면 어떡해?” 시만자는 송석석을 보며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툭 때렸다. “어이구. 난 네가 사여묵을 사랑하는지가 의심스러워. 비록 난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지만 누군가가 내 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나쁠 것 같아.” 그러자 송석석은 그녀를 째려보았다. “쪼잔하기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 화를 내도 늦지 않아. 그런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상하고 화를 내는 건 자신의 기분도 상하고 부부의 감정도 상하게 해서 수지가 맞지 않은 일이야.” 그녀는 말하며 시만자의 혼담이 실패한 게 순간 떠올랐다. “게다가 넌 결혼도 싫고 경험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뭐라는 것이냐?” 그러자 시만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난 경험이 없지만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니야.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기 싫은 건 나와 결혼할 만큼 우수한 남자가 없는 것이고. 난 세상에 둘도 없는 시만자야. 너도 세상에 둘도 없는 송석석 이긴 하나 우린 경황이 다르잖아. 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입궁해야 했고 그리고 사여묵이 너에게 잘해주기도 하고. 하지만 난 달라. 나에겐 어려서부터 좋아하고 날 기다려준 사람도 없는데 결혼해서 뭐 해? 혼자 살면 이렇게나 자유롭고 신나는데. 아이도 낳을 필요 없고. 란이가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한 거 너도 두 눈으로 봤잖냐.”그녀는 놀라서 물었다. “넌 아이 낳는 게 무섭지 않니?” 그러자 송석석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무섭지. 내가 홍작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응. 그리고 평서백부인도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왕청여와 방시원의 사건을 해결할 때 가족 편 들지 않고 이치를 따랐잖아. 세가에서는 영광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망하면 다 함께 망하는 것이라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인 것 같아.” “그래. 네가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은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시만자는 얼굴을 송석석한테 비비며 말했다. “우리 사촌 언니가 지금 평서백부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왕야를 위해 왕표를 매수하려는 것이겠지.” 평서백부는 오늘 아주 시끌벅적했다. 노부인, 평서백부인 최 씨, 둘째 부인 남희, 그리고 왕가의 어르신들이 모두 함께했다. 시민주와 측비 김 씨는 시녀를 데리고 와 선물을 탁자 위에 쌓아 놓았는데 작은 산처럼 높은 것으로 보아 시민주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민주는 수완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신분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측비 김 씨가 말할 때마다 적당히 말을 끊으며 최 씨의 아이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렇게 최 씨가 낳은 1남 2녀는 많은 선물을 받게 되었고 서자와 서녀들은 조금 적게 받았다. 측비 김 씨는 몇 번이고 말이 끊겼지만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양호한 교양을 유지하며 웃으을 지으며 노부인과 남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점에서 최 씨는 측비 김 씨가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측비 김 씨에게 방어선을 쳤고 그녀의 말에 바로 말을 잇지 않고 생각을 한 후에야 대답을 했다. 어차피 시민주가 있으니 그녀의 실속 없는 질문부터 대답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다.측비 김 씨는 평서백부를 둘러보겠다는 제안을 했고 지금 8월이라 계화가 만발할 시기라 멀리서부터 계수나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백부를 둘러보려면 최 씨가 함께 해야 하는데 최 씨가 일어나자 측비 김 씨가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제가 며칠 전에 발을 삐끗한 걸 깜박했습니다. 난 정
저택에서는 오늘 극단까지 배치해 있었다. 친왕비를 대접하는 것이니 격이 낮아서는 안 되니 필요한 것은 모두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보자 아무도 연극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들은 저녁까지 남아 있었는데, 측비 김 씨가 비로소 웃으며 말했다. “저희 왕야께서는 줄곧 연주에 계셔서 진성에 온 적이 아주 드뭅니다. 그래서 저희도 진성에 늘 친구가 없었는데, 오늘 부인과 얘기를 나누어 보니 너무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저희의 인연이겠지요. 그러니 며칠 후에 모두들 연황실에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우리와 함께 진성으로 온 무상 선생이 상국의 유명한 점쟁이인데 앞날의 길흉을 기가 막히게 알아맞힌답니다.” 그러자 노부인은 깜짝 놀랐다. “무상 선생 말입니까? 상국에 그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인데 왕비가 추천해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지요.” 측비 김 씨가 웃으며 그녀의 말에 응했다. “노부인, 그럼 그렇게 결정합시다.” 하지만 최 씨는 곧이어 얼굴이 굳었다. ‘그렇게 왕래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두 집안의 관계가 친밀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두어서는 절대 안 돼.’ 최 씨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가장 서투른 방법으로 이 자리에 남게 되었지만 측비 김 씨의 초대에 시어머니까지 이미 응해버린 마당에 다시 가지 않는다고 하면 미움을 받을 것 같았다. 미음을 사는가? 아님 남의 입에 오르내리겠는가? 그녀는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순간 북명왕비의 말이 떠올랐다. ‘북명왕비께서는 될수록 복잡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지. 그렇다면 미음을 살까 봐 두려워할 것도 없지.’ “어머님, 측비께서 그저 하는 말씀이십니다. 어떻게 정말 폐를 끼치겠습니까? 지금 영태비가 앓고 있어 왕야님과 왕비님이 모두 입궁해서 시중을 들어야 하니 시간을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방문하더라도 영태비가 다 나은 후에 가야지요. 왕야님의 효도를 방해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노부인은 자신의 며느리가 얼마나 예의 바
하지만 사람이 대리사에 갇혔는데 어찌 쉽게 풀려날 수 있겠는가? 노부인이 단식하니, 소문이 퍼져 승은백부가 불효를 저지른다는 말이 돌까 두려워, 그들은 비록 가능성이 희박한 줄 알면서도 황제에게 가서 애원했다. 승은백부도 나름대로 인맥이 있었기에 그에게 전해진 말은 단 한 가지였다. 오직 황제가 그를 용서하고 그를 놓아주기를 원한다면, 량소를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은백부의 사람들 중 감히 황제에게 찾아갈 사람은 없었다. 모두 그럴 낯짝도 없었고, 두려워 나서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북명왕비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마침내 승은백부는 회왕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결국 대리사에서 량소를 끌어낼 때 회왕이 그를 도와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군주와 량소가 이혼하는 것을 원치 않는 듯했기에 그들 부부가 직접 군주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회왕은 이를 허락하였으나, 그가 직접 나설지는 승은백부의 사람들조차도 알 수 없었다. 회왕비는 원래부터 사란을 만나고 싶어 했었다. 이제는 명이 내려져 이혼은 피할 수 없는운명이 되었으니, 결국 사란을 집으로 데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막 사란을 데리고 나서려던 찰나, 송석석이 마차에 가득 실은 많은 물건을 가져왔다. 그녀는 과거 서로 주고받았던 선물들을 돌려주러 온 것이었다. 마차에는 평범한 물건들부터 귀한 금은보화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는 오랜 자매 간의 정을 증명해 보였다. 진복과 이 씨 이모, 그리고 양 씨 이모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가 회왕비에게 보낸 선물에는 금은보화도 있었고, 평범한 물건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단신의가 진북후부에 준 귀한 약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외상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약들이었는데, 아무래도 부친과 형이 전장에 나가 있었기에 많은 약을 준비하는 것이 좋았다.다양한 약들 외에도 몸을 보양하는 약이나 급한 상황에 쓸 수 있는 약도 있었으며, 그중에는
마차에 실려 온 물건들이 모두 희왕부의 정청 밖에 내려졌고,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물건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희왕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안색이 잿빛으로 질려 있었다. 송석석이 회왕비를 보며 입을 열었다."물건은 모두 돌려드렸습니다. 지금 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나중에 천천히 보셔도 상관없으니, 혹여 빠진 것이 있으면 사람을 보내 알려주시지요. 어머니께서 희왕비께 드렸던 것도 모두 돌려주시길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제 기억엔 상당수가 약왕당의 약이었던 듯합니다." 희왕비는 차갑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약은 이미 다 써버렸네. 헌데 어찌 그 물건들을 돌려줄 수 있겠나?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네 어머니 마음만 상하게 할 뿐인 걸 모르더냐." 송석석이 대답했다. "어머니께서는 사란을 각별히 아끼셨습니다. 만약 어머니께서 왕비께서 사란을 이렇게 대하신 걸 아신다면, 아마도 왕비 마마와 자매의 인연을 끊으실 것입니다." 그러자 희왕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올라 나지막이 물었다. "석석아, 네가 어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네 이모를 이렇게 모른 척하더니… 이제는 사촌과의 이혼을 강요하기까지… 내가 대체 너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이더냐? 네가 전북망을 떠날 때, 내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더냐?" 송석석이 더는 얘기하기 싫은 듯 냉정하게 대답하였다."그런 이야기는 그만두시지요. 저는 그저 왕비께서 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희왕비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상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나와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 하지도 않는구나. 우리 두 집안이 이렇게까지 갈라설 필요가 있느냐?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좋지 않아 보일 것이야… 그리고 네 외조부와 외조모께서 이 일을 아시면, 얼마나 상심하시겠느냐?" 하지만 송석석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회왕비가 사람을 시켜 물건을 꺼내 오기만을 기다렸다. 희왕비는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금도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끝내
송석석이 어찌 회왕비의 뜻대로 되게 하겠느냐. 그녀 역시 이미 체면을 가리지 않았고, 더는 회왕부와 승은백부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울분섞인 외침에도 송석석은 단호하게 말했다."량소가 첩을 사랑하고 본처를 멸시할 때, 사란이는 친정에 도움을 청했었습니다. 허나 왕비께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란이에게 참고 견디라고만 했죠. 당당한 군주이자 세자의 정실인데 어찌 기생 같은 여인에게 굴복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는 왕실의 존엄을 어디에 두겠다는 뜻입니까? 또한, 사란이가 처음으로 량소에게 손지검을 당해 병상에 눕게 되었을 때도, 왕비께서는 량소를 꾸짖기는커녕, 단지 몇 가지 보양식을 승은백부에 보낸 뒤 그저 다시 참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란이는 량소의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사란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또한 량소가 그녀를 계단 아래로 밀쳤기 때문입니다. 사란이가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을 때 부른 이는 저이지, 어머니인 왕비 마마가 아닙니다. 그리고 황상께서 이 일을 아시고 크게 노하셨죠. 그런데도 왕비께서는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고 도리어 량소를 두둔하면서, 그 결혼을 유지하려 했지 않습니까. 왕비께서는 분명 사란이 이번에 죽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죠? 끝내 사란이를 죽게 만들어 연왕비처럼 청목암에서 고통 속에 비참하게 죽기를 바라는 것이죠?"그 말을 들은 회왕비는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멍하니 있었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송석석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가차 없이 말할 줄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송석석이 마지막에 한 말은 의도적임이 분명했다. 아무도 연왕비의 일을 알지 못했기에 연왕부는 그 일을 철저히 감추고 있었고, 연왕비가 청목암에 간 것도 자진해서였다고 말했다. 또한, 청목암이 요양에 좋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연왕부는 바깥에 떠도는 소문들을 모조리 처리하였다. 심지어 연왕비가 낳은 두 딸조차 아버지를 보호하며 나섰다. 친
북명왕부, 서재염 선생이 상황을 보고한 후 자리에 앉아 천천히 차 한 모금 마셨다."승은백부가 회왕부에서 나온 후 바로 연왕부로 갔단 말이오?" 사여묵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흠, 역시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군.. 이들은 모두 장공주와 한통속이었어.""이 회왕이란 자가 너무 깊이 숨어 있어서, 너무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것 같소.”염 선생이 말했다."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남강 전장에서 시간을 보냈던 탓에, 경중의 많은 일을 모르고 있었군." "저들이 지금 권세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황제가 즉위할 때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군. 당시 성릉관에서 혼란이 있었고, 남강에서 전쟁이 벌어졌으며, 동시에 신황제가 즉위하였으니, 그때가 저들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였을 것이오."그러자 염 선생은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때가 비록 저들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제왕에게는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었소. 그러니 그런 번거로운 일을 스스로 떠맡을 리가 없지 않소. 어렵긴 하지만 상황이 혼란스러웠기에 저들이 성공할 가능성도 컸을 것이오. 이것이 바로 연왕이 야심이 큰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오. 황위를 원하면서도 명성과 민심까지도 원했소. 그래서 그는 이렇게 깊이 숨어 있었던 것이오. 만약 외적을 막고 있을 때 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면, 설령 황위를 차지하더라도 연왕은 반란을 일으킨 대역 죄인이 되었을 것이오. 무엇이든 다 얻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빈손으로 끝나기 마련이오. 아마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것이오." 사여묵은 염 선생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일단 계속 주시하는 게 좋겠소만. 왕비의 계획을 먼저 돕고 장공주 쪽을 뒤흔들어 보겠소. 참, 서경 쪽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소?”이것이 바로 염 선생이 오늘 두 번째로 보고해야 할 소식이었다. "수란키가 암살을 당하여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소. 그 전에도 몇 차례 암살 시도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피하지 못했소. 우리 사람을 그곳에 심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군…""성공
사여묵은 이것이 자신에게 가장 큰 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지 못한다면 결코 혼인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알겠소, 이 일은 내가 왕비에게 한 번 이야기해보겠소. 허나 형님께서 이를 받아들일지 장담할 수는 없소. 사실 이 이야기는 좀 황당하게 들리오.”그러자 염 선생은 오히려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왕야께서는 그저 소인을 대신해 물어봐 주시면 됩니다. 안 된다고 해도 소인도 실망하지 않겠소이다.”“음, 알겠군.” 사여묵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문제들을 논의한 후 방으로 돌아갔다.이때 송석석 또한 마침 사란에게 다녀온 참이었다. 사여묵과 염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염 선생에게 어린 시절 실종된 여동생이 있었다니.. 의외입니다. 헌데 이미 홍시를 통해 평 사저에게 편지를 보냈다는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왜 직접 편지를 보내 묻지 않았을까요?”사여묵이 웃으며 대답했다. “염 선생께서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분명히 구분하시는 분이오. 홍시를 통해 평 사저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왕부의 일이지만, 심 형님께 부탁드리는 일은 개인적인 일이니 중재자를 찾으신 것이오.”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대사 형님에게 편지를 보내 물어볼게요. 허나 대사 형님께서 지금 매산에 계신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분은 늘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시니깐요.”사여묵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지금쯤은 매산에 계실 거요. 사숙께서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셨으니, 당분간 매산에서 떠나는 이는 없을 거요.”이상하게도, 사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송석석은 여전히 그에 대한 경외심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그분을 떠올리며 긴장된 듯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저는 하산을 해서 혼인할 수 있었던 거네요.” “게다가 당신은 사숙의 유일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와 혼인했으니, 그분께서도 특별히 아끼실 거요.” 사여묵은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
정말 형부에 눌러 앉으려는 건가? 신기하기도 하지. 보통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형부라는 곳을 떠나는 게 정상인데 왜 아직도 형부에 붙어있는 걸까?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일까요?""모르겠소. 오늘 이 대인이 사건 기록을 전하며 말했는데 전북망이 유실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에 밥도 한 끼만 먹으며 매일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소. 원래는 하루만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소.""정말 이상합니다. 혹시 직위마저 포기한 겁니까?" 황제의 처분이 아니라는 말에 송석석도 바로 화제를 바꿨다. "협상 중에 일어난 일들을 폐하에게 보고한 후, 폐하는 조사하지 않으셨습니까?"정영수의 암살 시도는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향병이 장공주에게 독을 준 일은 예전에 비주 사건과 똑같은 독이었으므로 황제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조사는 반드시 할 거요. 아마 오월이가 조사할 것 같소."대리사에서는 비록 반역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일이라 황제는 대리사에게 조사를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보주가 들어와 남은 음식을 치우자 궁녀 영씨가 말했다. "왕야님, 왕비님, 목욕은 일찍 준비하셔야 합니다."최근 협상 때문에 사여묵이 살이 빠진 것 같아 궁녀 영씨는 심히 걱정하고 있었다. 협상이 끝났으니 이제는 잘 회복해야 하는데 말이다. 사여묵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송석석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새끼손톱으로 송석석의 손목 피부를 스치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빨리 준비해야겠소."설마 이 동작은…?송석석의 얼굴은 즉시 빨개졌고 귀끝까지 붉어져 급히 손을 뺐다.궁녀 영씨와 보주도 있는 데 왜 이리 가벼운 행동을 한 거지?궁녀 영씨는 그 모습에 몰래 웃으며 뒤돌아섰고 보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송석석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진 이유를 궁금해했다.보주는 의아한 듯 궁녀 영씨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봤다. "궁녀 영씨는 왜 웃으시는 겁니까?"송석석이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것도
송석석이 말했다. “나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니 그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자꾸나. 정말 안 되면 다른 곳에 팔아버리면 그만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그래,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여학은 더 힘들지 않겠느냐?”“아니다, 여학은 자리가 늘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송석석이 말했다.그러자 시만자가 턱을 괴며 말했다. “그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오늘 밤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켜야겠다.”송석석이 가볍게 웃었다. “시 사부, 어서 공지를 내려라. 네 제자들은 무공에 대한 열정이 아주 대단하더구나.”시만자도 웃으며 말했다. “장기문이 제일 부지런하다. 이 녀석은 항상 최선을 다해 발전도 빠르지. 무공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자질이야. 어릴 때 사부를 만났다면 지금쯤 무공이 얼마나 뛰어났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야 배우는 걸 보니 조금 아쉬울 뿐이다.”그 후, 송석석은 평서백부로 향했고, 시만자는 가죽 채찍을 들고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켰다.최씨가 송석석의 말을 듣자마자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송석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부인이 도와주시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여인은 살기가 너무 힘드니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복을 쌓는 일이지요.” 최씨는 깊은 슬픔이 깃든 눈빛으로 말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부인, 무슨 일이 있으신겝니까? 괜찮으시면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최씨도 그녀를 여러 번이고 도왔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최씨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최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몇 가지 작은 문제가 있긴 하다만 왕비님께 걱정을 끼칠 일은 아닙니다.”송석석도 더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하녀가 급히 뛰어와 말
소진 소주방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언제든 사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덕회 부인은 다과회를 열어 이 사실을 알렸고 곧 백성들의 입에도 소주방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말은 많았지만 이혼당한 부인 중 누구도 소주방에 발을 들이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시만자는 의아해하며 홍시와 함께 조사를 진행한 끝에 많은 이혼당한 부인들이 암자에 머무르며 고된 일에 시달렸고, 심지어 때로는 끼니조차 거르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친정으로 돌아간 여인들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시달리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3월 10일 십자리강에서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경조부의 조사 결과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자수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만자는 참을 수 없는 마음에 곧바로 송석석을 찾으러 경위부로 달려갔다.송석석은 다급히 달려온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 일은 본래부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소주방에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모두가 첫 번째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소주방에 들어가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혼당한 부인임을 알리는 셈이 될 테니. 그걸 이겨내기 힘든 것이야.”"소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혼당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시만자는 속이 상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는 소진 소주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녀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 주려 했지만 기꺼이 죽음을 택하면서도 소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려무나.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있었지 않느냐.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고 강에 투신한 그 여인도 아마 절망한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그래도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일인데 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 시만자는 답답함과 좌절감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송석석은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만지며 위로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우리가 그들
안태부와 목 승상은 왕부에 남아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음식은 매우 푸짐했고 좋은 술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양 마마는 손수 장수 찐빵을 만들었는데 그 위에 찍은 붉은 점이 마치 눈 위에 떨어진 한 송이 붉은 매화처럼 보였다.소 대장군은 무척 기뻐하며 술자리를 즐겼다. 식사 중 그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전 노장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목 승상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내가 전 노장군을 생각해 전북망의 중매를 서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오. 두 사람이 원수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소. 정말 후회스럽군.”"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오."안태부가 말했다. 그러고는 소 대장군을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 사람들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몸이나 건강하게 지키며 자손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게 좋지 않겠소?"이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황제는 젊고 기반이 불안정하며 또 일부 노신을 새로운 신하로 물갈이를 할 것이 뻔했다. 세월이 바뀌면 세상도 변하는 법이니 이미 물러났다면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소 대장군이 웃으며 말했다. "태부의 말씀에 일리가 있으니 그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오." 이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도 이제 나이를 먹어 성릉관을 지키긴 힘들었다. 다행히도 현재 총사령관 자리는 삼랑이 맡고 있으니 당장 무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소가군은 여전히 성릉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그들은 한껏 술을 마시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목 승상은 소 대장군의 손을 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 이별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몸 건강히 지내게나, 친구.""자네도 몸조심하게!" 소 대장군은 공손히 인사하며 송별했다. 비록 술을 많이 마셨으나 여전히 산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었다.사여묵도 소 대장군과 함께 그들을 배웅했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남씨가 란이의 손을
북명황실에 도착한 란이는 외조부와 남씨를 보더니 눈물을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 큰절을 올렸다. 소 대장군과 남씨는 무의식적으로 문밖을 바라보았으나 한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자 잠시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그들은 금세 다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남씨는 웃으며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바보 같은 것, 대체 왜 울고 있느냐? 외조부를 무사히 만났으니 기쁜 게 아니더냐?"그러자 란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기쁩니다, 너무 기뻐서 그러는 겁니다."소 대장군은 외손녀가 겪은 고난을 알기에 눈가에 연민이 가득했다. "란이야, 어서 이리 오렴. 어디 찬찬히 보자꾸나."소 대장군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듣자, 순간 어머니의 냉담함이 떠올라란이는 가슴이 아려 눈물이 다시 흘렀다. "외조부님, 란이는 석석이 언니가 도와주고 있어서 괜찮습니다."소 대장군은 송석석을 한 번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촌동생을 돌봐주고 있었던 것이다."너희가 서로 도울 수 있다니 외조부는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그렇게 서로 의지하거라.""예, 외조부의 말씀 꼭 명심하겠습니다." 송석석과 란이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이별의 슬픔을 억누른 채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 대장군은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가 머뭇거리는 모습에 남씨가 란이에게 물었다. "란이야, 네 어머니는 왜 오지 않은 것이냐?"란이가 대답하려는 순간 사여묵이 목 승상과 안태부를 모시고 들어왔다. 그러자 소 대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안태부, 목 승상, 모두 오랜만이오. 그간 모두 무탈하셨소?"안태부는 예를 갖추며 인사하고 목 승상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 대장군, 잠시 실례하겠소."송석석은 남씨와 란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 후 바로 자리
란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외조부께서 내일이면 성릉관으로 돌아가십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이번에 뵙지 못한다면 아마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번 생신은 혼자 서쪽 별당에서 보내셨다고요. 어머니께서 함께 가셔서 오래도록 건강하시라고 축복해 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하지만 회왕비는 여전히 눈물을 닦으며 걱정할 뿐이었다. “아니야, 나는 못 가겠다. 게다가 그날 석석이가 찾아뵙지 않았을까?”란이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어머니,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외조부님 생신에 언니는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폐하께서도 아직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런 부적절한 시기에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회왕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이냐? 어차피 대단한 날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생일상 한 번 올려드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않느냐? 네외조부님께서 막 돌아오셨을 때 물론 나도 찾아뵈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누가 막아서 돌아와야 했으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요즘 들어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하고 있었던 란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그럼 저도 더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단지 마음이 여리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냉정하실 줄은 몰랐습니다.”그러자 회왕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거의 세상이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한 번 뵙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더냐? 네가 냉정하지 않다면 어째서 네 어미가 이렇게 힘든 처지에 놓인 건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네 부왕께서 나를 버리셨다. 집의 금은보화를 다 가져가 버렸어. 나는 이제 가진게 아무것도 없단다.”란이는 자리를 뜨려다가 어머니가 이토록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설득해 보려 했다. “부왕의 일은 따로 알아보면 됩니다. 그게 어머니가 외조부를 뵙는
저녁 식사 후, 소 대장군과 사여묵은 오랫동안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송석석은 처음에 들어가서 듣고 싶었지만 소 대장군이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니 그녀가 들어오면 불편할 것 같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송석석은 평 사저와 대사형을 찾아갔다.저녁 식사 중에 사숙은 자신도 매산으로 돌아갈 예정이니 함께 가자며, 특히 대사형에게 엄격히 명령하고 돌아가도록 했다. 대사형이 왕부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와 왕부가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대사형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조정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숙은 그런 인물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또한 그의 제자 사여묵에게 해를 끼칠까 우려가 되어 그들에게 반드시 왕부를 떠나라고 엄숙하게 지시했다.평 사저는 뒤에서 몰래 사숙은 일이 필요할 때만 부려 먹고 일이 끝나면 귀찮아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평 사저는 평소에 남을 험담하는 일이 없지만 유일하게 사숙에 대해서만은 뒷말을 하였는데, 그것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정말로 돌아가야 합니까? 며칠 더 머무르실 수는 없습니까…?" 그러자 송석석이 사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돌아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사숙님이 명령을 내리셨잖니." 평무종은 어린 사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다. 평소에도 사부님은 우리가 자주 너를 찾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우린 강호인이라 왕부에 강호인이 많이 드나드는 것도 좋지 않고, 너에게 민폐가 될 것이다.""전혀 민폐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 그저 모두가 제 곁에 있어 주는 게 좋습니다!" 송석석이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사숙님 혼자만 돌아가라고 하십시오."그러자 평무종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조용히 말하거라. 사숙님께 들키면 나중에 벌을 받을 것이야."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왕부에선 사숙님이 저에게 벌주지 않을 겁니다.
시만자는 원래 그들의 몸에 더 많은 구멍을 뚫어줄까도 생각했으나 보주의 말을 듣고 멈추기로 했다. 몇 번 더 찌른다면 피가 너무 빨리 흘러 그들이 너무 쉽게 죽을수도 있어서였다.송석석은 조상 묘지 앞의 작은 사당에서 향을 가져와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다. 그러고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무릎을 꿇고 세 번 큰절을 올렸다. 그녀는 절을 올리면서 먼저 떠난 가족들이 저세상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사여묵 역시 향을 피우고는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는데, 송석석이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어 그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사여묵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범인이 이미 처형되었으니 장모님도 저세상에서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 것이오.”송석석은 그들이 정말로 안식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비록 복수는 했지만 마음속 고통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강해지고 행복해져야만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서경의 두 정탐꾼은 아직 죽지 않았으나 과다 출혈로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경 말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송석석과 시만자 등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오직 사여묵만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바로 “송구하다”라는 말이었다.그들 역시 자신의 잘못을 알지만 단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는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그동안 저지른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듯 했다. 송구하다는 말이야말로 그들이 이 묘지 앞에서 비로소 할 말이었다.사여묵이 송석석과 보주에게 전했다. “이자들이 송구스럽다고 말하는구나.”보주는 여태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사여묵의 말을 듣자마자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시만자의 품에 와락 안겼다.“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송구스럽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보주는 목이 찢어질 듯한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단지 송구하다는 말로 모든 죄
일행은 이상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송석석은 내내 보주의 손을 놓지 않았다.그리고 곧 두 명의 서경 정탐이 끌려 나왔는데 그들의 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지고 피가 묻어있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있었다. 그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몸이 앞쪽으로 쏠려 거의 넘어져 엎어질 지경이었다.보주는 눈에 핏대를 세운 채 그런 그들을 노려보았다.그녀와 송석석은 단 하루도 진북후부의 멸문에 대한 복수를 잊은 적이 없었다.이제 대세는 정해졌고 그녀도 마침내 가족과 송 부인 등에게 복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녀의 가슴 속에 있던 슬픔과 분노는 산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솟구쳐 나왔다.보주는 당장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붓고 싶었으나 이상서 앞에서 무례하게 굴어 왕야와 아씨의 얼굴을 깎아내릴 수 없었다.이대인이 말했다. “이 두 정탐은 형부에 보내졌을 때까지도 죽음을 각오한 듯 오만한 태도였습니다. 하관이 직접 고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그들의 몸에 난 상처도 이미 잡혀 올 때부터 있었습니다.”그러자 사여묵은 평 사저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역시나 심하게 맞은 후 여기에 데려온 것이다.사여묵은 가볍게 허리를 굽히고는, 몽동이에게 그들을 데리고 송가의 조상 묘지에 가라고 지시했다.바람에 흔들리는 등불이 그림자를 드리워 날은 앞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몽동이는 그들을 마차 앞에 묶고 말을 몰았다. 그러던중 송가의 멸문이 떠올릴 때면 그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송가 조상 묘지 앞에 도착하자, 몽동이는 발로 그들을 묘지 앞으로 걷어찼다.보주도 그들 앞으로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둥글게 말아 쥔 손바닥이 뺨에 연달아 떨어졌으나 마음속의 분노와 슬픔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모두 그녀를 막지 않았고 그녀가 분노를 표출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순진했던 그녀가 이토록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마음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