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자 등 세 사람은 휘왕 저택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저택 안을 몇 번이나 수색하고 돌아봤지만 수상한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기에 이제 그만 철수할 생각이었다.매일 휘왕과 먹고 놀고 즐기느라 사람이 점점 퇴폐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며 특히 바삐 움직이는 송석석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저녁 식사 때, 시만자는 휘왕에게 내일 저택을 떠나겠다고 했고 휘왕은 환하게 웃으며 시만자를 쳐다보았다.“왜? 내가 대접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이냐? 왜 갑자기 떠나겠다는 거야?”시만자가 솔직하게 대답했다.“너무 잘 먹어서 탈입니다. 매일 진수성찬을 차려주셔서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네가 아직 제대로 먹을 줄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래, 그냥 네 뜻대로 하거라. 이곳이 지겹다면 돌아가야지.”휘왕은 인자하게 웃다가 정삼숙을 불러왔다.“정삼아, 창고에 가서 좋은 선물 몇 개 가지고 와라. 내일 이자들이 떠날 때 챙겨주고.”“알겠습니다. 소인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문 밖에 서서 정삼숙의 대답을 들은 관백은 바로 들어와서 휘왕에게 말했다.“왕야, 제가 가져오겠습니다.”관백을 힐끗 쳐다보던 휘왕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네가 가져와라. 날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 아주 좋은 선물로 골라 오거라.”“네.”한편, 관백은 돌아서서 떠나는 관백에게 괜찮다며 부르려고 했다. 이곳에서 공짜로 먹고 자고 했는데 선물까지 챙겨가는 건 너무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만자가 고개를 들어 관백의 뒷모습과 걸음걸이를 본 순간, 놀라 온몸이 굳어 버렸다.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보고 있으니 관백의 등은 매우 꼿꼿했고 걸을 때 손 하나를 등 뒤에 놓은 채 손가락을 살짝 오므리고 있는 것이 누가 봐도 귀하게 자란 사람처럼 보였다.넋을 잃고 쳐다보던 시만자는 다시 한번 자세하게 생각해보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관백은 정삼숙과 달리 휘왕 앞에서 단 한번도 ‘소인’이라고 자신을 칭한 적이 없었다. “만자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휘왕의 부름에
모신신이 관백을 공격해서 무술 실력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하자 시만자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그건 안 돼.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더 나아. 상대방이 눈치라도 채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거야. 내일 아침 바로 이곳을 떠나서 석석이와 염 선생한테 얘기해줘야 돼.”“우리가 과연 무사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만두가 의미심장하게 묻자 모신신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휘왕이 우리를 이곳에 가둘 수도 있다는 말이야? 조금 전에 휘왕이 분명 우리에게 가도 된다고 했잖아...”“휘왕이 왜 만자를 이곳에 불렀는지, 다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시만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송석석과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제 보니 구조 신호는 아닌 것 같고 그럼 휘왕은 그들을 가두려고 하는 걸까?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휘왕의 행동으로 보면 뭔가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왕야와 관백이 한통속이 아닌 게 아닐까?”그러자 시만자는 순간 휘왕 저택에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관백은 늘 휘왕 곁에 있었지만 그 존재가 눈에 띄지 않았다.‘설마 관백 그자가 위장술을 쓴 건가? 관백이 바로 영군왕인 건가?’하지만 시만자는 자신의 추측까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얘기하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시만자는 이곳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관백의 무술 실력이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매우 강하다면 세 사람이 합쳐도 관백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그럼 오늘밤 우리 셋이서 같이 자자. 혹시 모르잖아.”모신신이 만두와 시만자의 팔을 잡으며 말했고 이내 세 사람은 방으로 돌아왔다.만두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고 모신신과 시만자는 침대에 꼭 붙어있었다.“너희들은 자.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만두의 말에 모신신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지금 상황이 우리한테 위험하다면, 왜 오늘밤엔 몰래 도망가지 않는 거야?”“저녁
휘왕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는데, 긴 기럭지에 건장한 몸매를 자랑하는 영군왕은 관백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들이 부왕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겁니다. 수로 공사로 잘 마무리 지을 것이고 죄 없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도 않겠습니다. 진성 백성들을 다치게 하지도 않고 근처 마을에도 피해를 주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부왕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 천하를 얻으면 부왕은 반드시 황제가 되실 겁니다.”영군왕의 말에 휘왕이 코웃음을 쳤다.“아주 대단한 효자구나.”“아들이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부왕을 황제의 자리로 올리겠다고요. 부왕이 이 나라의 황제가 되면 저희는 더 이상 사국의 협박을 받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변경을 위해 서경과 대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백성들과 우리 상국은 태평 성세를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휘왕이 침을 툭 뱉으며 대꾸했다.“사국 서경과 손잡은 역적 주제에 대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한 말을 할 수 있는 게냐? 듣기만 해도 역겨워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구나.”“그건 그저 이 나라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부왕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그 적들을 확실하게 물리칠 것입니다!”휘왕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의 뻔뻔한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도대체 어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이지? 내가 어쩌다가 저런 악마 같은 놈을 낳았단 말이냐…’남강이 얼마나 힘들게 이 나라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장군과 병사들의 뼈와 살이 그 땅에 묻혔는데 영군왕은 지금 그 땅을 적들에게 그냥 내어주려고 한다.남강이 사국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돌려받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영군왕에게 있어서 국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며 그가 원하는 건 그저 황제 자리 뿐이었다.“너만 역적인 것이지, 여기저기 내 이름까지 팔 생각은 하지도 마. 백성들은 결국 나를 욕하고 나에게 손가락질할 거야. 난 역사에 길이 남은 역적이고 넌 효자라
휘왕은 바닥에 깨진 찻잔 조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는데, 비록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그 조각으로 손목을 긋기에는 충분했다.휘왕이 바닥에서 찻잔 조각을 하나 주워 손목에 댄 순간, 누군가가 휘왕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왕야, 그러다가 다치실 수도 있으십니다!”손목이 꽉 잡힌 휘왕은 순식간에 찻잔 조각을 빼앗겼고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은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도 여전히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이 저택에 이런 사람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것인지, 이자들 모두 실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내공이 깊고 암살에 능한 사람들이었기에 휘왕은 어디로 가든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심지어는 시만자 일행과 함께 가도 마찬가지였다.휘왕은 시만자 일행도 이자들의 존재를 발견해주기를 바랐지만, 공기 마냥 여기저기 곳곳에 다녔던 탓에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휘왕은 퍼렇게 멍이 든 자신의 손목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죽음조차 결정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았다.다음날이 되자마자, 시만자 일행은 휘왕 저택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 시만자는 저택 사람들 모두와 작별 인사를 했다.휘왕과 고청영에게 인사를 하고 정삼숙한테까지 인사를 한 뒤, 마지막으로 관백 앞에 섰다.“저희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제일 고생한 분이 관백이시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주시고 여기저기 데리고 돌아다니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왕야와 여러분들을 모시고 왕경루에 가서 거하게 한 턱 쏘겠습니다.”그러자 허리를 살짝 굽힌 관백이 자상하고 온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아가씨 그런 말씀 마세요. 이건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괜히 저희에게 돈을 쓸 필요 없습니다.”“돈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죠.”관백은 환하게 웃으며 시만자 일행을 저택 대문 밖까지 바래다 주었다.시만자는 고개를 돌려 휘왕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입을 꾹 다문 채
한편, 매산 만종문에서.며칠 전부터 임양운은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했지만 무소위는 오늘이 아니라고 했다.하지만 생일이 맞든 아니든 큰 상관은 없었다. 임양운이 떠들썩하게 잔치를 하고 싶다는 말에 무소위가 며칠 전부터 매산의 각 파문들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총 30석 정도 초대했기 때문이다.무소위가 직접 임양운의 생일 잔치를 준비했는데, 그가 평소에도 만종문의 일들을 친히 처리한 덕분에 고생하는 건 괜찮았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임양운이 초대장에 절대 생일 선물을 준비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적었고 무소위는 사형의 이런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만종문에 돈이 많은 게 사실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함부로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다른 종파의 잔치에 참석할 때마다 단 한번도 빈손으로 간 적이 없는데 그만큼의 선물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수상하기도 했다. 평소에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임양운인데 이번에는 잔치를 크게 벌였을 뿐만 아니라 취기가 조금 오르자 경화파 장문인의 손을 덥석 잡고는 구구절절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내일 제가 진성에 다녀올 건데 저랑 같이 가지 않으실 겁니까? 가서 몽동이랑 아라도 좀 보고. 경화파 제자들도 데리고 저와 함께 다녀옵시다!”그러자 경화파 장문인이 슬쩍 손을 빼더니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집으며 대답했다.“경비가 부족합니다.”“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경비는 당연히 제가 다 책임집니다. 왕경루 아시죠? 저희 집에서 차린 건데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시켜셔도 되고, 원하시는 만큼 지내셔도 됩니다. 절대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럼 동의하신 걸로 알겠습니다.”경화파 장문인이 입에 음식을 씹고 있었기에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고 말을 하려고 했을 때에 임양운은 이미 돌아서서 떠났다.돌아선 임양운은 바로 적염문 장문인의 손을 덥석 잡더니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쪽 제자 시만자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보고 싶지도
만종문은 제자를 받는 기준이 엄격하여 임양운의 정식 제자는 많지 않았다. 이미 사문을 떠난 제자를 포함해도 총 15명뿐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떠난 제자들 모두 사문을 배반한 것이 아닌,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임양운은 고지식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제자들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허락했다. 단 전제가 있었는데, 이는 백성과 선량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며칠 전, 그는 사문을 떠난 제자들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이 제자들은 현재 각자의 영역에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부가 소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진성으로 달려가 소사매를 돕기로 했다.만종문에는 다른 제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단순히 제자라고만 불릴 뿐, 임양운이 몸소 가르친 제자는 아니었다. 임양운이 아주 가끔씩 그들을 지도하긴 했지만, 이들의 주된 지도는 만종문의 두 명의 무술 장로들이 담당했다. 때로는 임양운의 직계 제자들이 지도하기도 했다.이들의 실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평소에 잡일도 도맡아 해야 하므로 무술에만 몰두할 수 없었기에 임양운의 직계 제자들의 실력에 비해 한참 뒤떨어졌다.하지만 임양운이 필요한 것은 정예 병력이기 때문에 이번 일엔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생신연회를 가장하여 각 문파의 장문인까지 초청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다른 사람이 이런 체면을 세워준 이상 그 정을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한다. 무림인들은 뜨거운 의리로 의기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자들이기에, 받은 은혜를 가볍게 흘려보내는 법이 없었다.무소위가 그에게 물었다.“사형, 조정의 일엔 관심도 없으시면서 왜 이번에는 이렇게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움직이십니까? 송석석과 현갑군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임양운은 무기고에 앞에 서서 손에 맞는 무기를 고르며 말했다.“네가 만약 영군왕이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무소위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겠지요?”“시기도 기다려야 하지.”임양운은 말하면서 부채를 하나 골라 들었
송석석은 며칠 동안 의논에 참석하며 승상이 했었던 말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의견이 제각각이고, 모두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탓에 끊임없이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찬반이 몇 번이고 오갔지만, 일의 방향은 여전히 명확해지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순간 자신이 더는 이 의논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여러 의견에 휘말리다 보니,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게다가 황제의 병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계속 기침을 하며 억지로 정신을 버티는 상황이었는데, 일부는 이런 상황을 틈타 태자를 책봉하자는 주장을 펼쳤다.이 말을 꺼낸 이들은 제상서의 문생으로, 젊은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황후가 포섭했던 인물들로, 태자 책봉을 위해 힘쓰기로 했었는데, 황제의 병이 악화되고 내우외환이 겹친 틈을 타 후계 문제를 조속히 확정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제상서는 화가 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가 어전에서 극히 반대했으나, 오히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가 퇴로를 확보하려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이 일로 인해 숙청제는 또다시 분노를 참지 못해 피를 토할 정도로 격노하자, 조정은 모두 난감해하며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그래서 송석석은 훈련을 핑계 삼아 논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하곤 돌아가 이 일을 염선생과 대사형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염선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황후는 금족 중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 파란을 일으킬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시기에 그러한행동을 벌이다니, 이는 자신과 제씨 가문을 불 속에 집어넣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제씨 가문과 황후가 어떻든, 송석석은 둘다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본래 조정의 문무 백관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있었는데 이 일이 그 흐름을 끊어버리고 만 것이다.이때 심청화가 입을 열었다.“나는 오히려 이번 태자 책봉 문제를 꺼낸 것이 영군왕의 계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오. 황후가 포섭한 사람들이 사실 영군왕의 사람
한편, 영주 쪽에서 가짜 영군왕의 정체가 탄로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본래 영군왕과 외모가 닮은 일반 백성일 뿐이었는데, 영군왕의 눈에 들은 후 그의 모든 행동과 태도를 배우도록 훈련받았었다. 그렇게 영군왕이 영주를 떠난 후, 그는 영군왕의 분신이 되어 그가 자주 가던 곳에 가서 대신 모습을 드러냈고, 이 때문에 이전 조사에서 사람들이 영군왕이 봉지를 거의 떠나지 않는다고 여겼었던 것이다. “그 자를 제압했느냐?”송석석이 급히 물었다.“안심하십시오. 이미 붙잡아갔습니다.” 염선생이 답하자 송석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다행이군. 영주에는 더 이상 영군왕이 나타나선 안 돼. 이제야 영군왕의 속내를 알겠어. 그는 관백의 신분으로 숨어서 모든 지령을 휘황실에서 내렸지. 그래서 모두가 휘왕을 역적이라고 여긴 거야. 그는 줄곧 영주에 머물렀으니, 역모를 꾀하는 일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염선생이 말했다.“맞습니다. 실패하면 모든 책임은 휘왕에게 돌아갈 테이니, 그는 대의를 위해 친족을 죽이는 것처럼 휘왕을 처단하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성공하면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들어오겠지요.”그러자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 “추몽은 지금 영주에 있나?”염선생이 답했다.“아뇨, 추측하건데 그는 이미 연왕의 대부분의 세력을 인수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미 방시원에게 연왕이 투항하더라도 결코 경계를 늦춰서는 안되며 혹시 모를 속임수에 대비하라고 전했습니다.”송석석은 추몽이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고 여겼다. 방시원이 그를 대적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해이 들어 염선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면 선생이 직접 방 장군을 도와주러 가는 것은 어떠한가?” “그건… 안됩니다.”염선생은 단칼에 거절하며 곧이어 말을 덧붙였다.“연주가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설령 추몽이 연왕을 위협해 거짓 항복을 시도하더라도 방시원은 이미 준비를 했을 겁니다. 그는 쉽게 속지 않을 겁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솔직히 송석석은 왕표의 상황이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만한 조력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최소 3년은 숨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도주하자마자 금전을 빼앗기고 여자에게 버림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지금 왕표는 어떤 심정일까? 혹시 자신의 무모한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까?중년이 되어서도 진정한 사랑 따위를 믿고 전전긍긍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본처를 버릴 생각까지 하다니.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고청우의 성격에 분명 떠나기 전 갖은 말로 왕표를 모욕했을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남자를 홀리고 다니면서, 한 편으로는 줄곧 자신의 미모를 탐하는 남자들을 증오했었기 때문이다.그러자 송석석은 왕표가 어쩌면 옹현에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주하고 있는 죄인으로 절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할 것이며 여기저기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왕표는 아이까지 데리고 있으니 결국 숨을 곳을 못찾고 몰래 진성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을까는 생각이었다. 왕표가 조금 멍청하긴 하지만 완전히 바보는 아니기에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한때 남강을 지키는 장군이도 했으니, 도망치기 전에 가짜 신분을 만들어 아이를 데리고 신분을 바꾼 채로 진성으로 돌아온다면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송석석은 바로 오진에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유의하라고 지시한 뒤, 이 사실을 최숙심에게 알리러 소주방으로 향했다.만약 최숙심이 왕표를 발견하여 제보하는 공을 세운다면 가문에 큰 도움도 될 것이다.하지만 송석석은 누군가가 마음이 약해질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무릎을 꿇고 사정하면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한편, 송석석에게서 왕표의 상황을 들은 최숙심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녀가 왕표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할 사람이 아니니 분명 긴박한 상황이
고청우는 주먹을 꽉 쥔 채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송석석을 쳐다보았다.“그래서 다들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겁니다.”“네가 말한 것처럼 출생이 좋은 걸 뭐 어떡하겠느냐? 근데 네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못난 본처인 그 여인도 귀한 집에서 태어나셨거든.”송석석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담담한 말투로 말하자, 고청우는 그녀에게서 예전의 장공주가 생각나 너무도 싫었다.장공주 앞에서 고청우는 기어다니는 벌레보다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였었기 때문이다.화가 잔뜩 난 고청우가 씩씩거리면서 말했다.“귀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결국 부군에게 버림받는 꼴이지 않습니까?”“왕표 그자를 얘기하는 건가? 그분은 왕표를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도 않아. 너만 왕표 그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송석석의 말에 고청우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반박했다.“왕표 그자는 저에게도 소중한 존재가 아닌 걸요? 그저 무능한 버러지일 뿐입니다!”“그럼 내가 아는 사실과는 다르구나. 넌 왕표 그자를 위해 아이까지 낳아주지 않았느냐? 왕표 그자가 야반 도주로 큰 죄를 저질렀음에 불구하고 넌 그자를 따라갔지. 이렇게 너처럼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난 많이 봤다.”송석석이 경멸의 눈빛으로 피식 웃으면서 말하자 고청우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만 고청우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듯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런 방법으로 저에게서 뭔가 알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왕비님 말이 다 맞습니다. 전 그 남자를 미친 듯이 사랑합니다. 그래서 함께 야반 도주까지 한 겁니다.”송석석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그래, 너에게 들켰구나. 하지만 상관없다. 난 그저 절차에 따라 너에게 심문하는 것이야. 나중에 내가 원하는 심문의 답을 만들어서 폐하께 제출하기만 하면 돼.”고청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지금 저를 모함하겠다는 뜻입니까?”“모함이 아니라 사실이다. 왕표가 장군들에게 약을 탄 일도 네가 꼬드긴 것이고 야반 도주도 네 머리에서 나온
풍수가 좋은 땅은 흠 천감이 엄선했으며 산이 푸르고 물이 맑은 곳으로 근처에는 작은 마을도 두 개나 있었다.황릉 근처라고 하지만 사실 황릉에서 30리도 넘게 떨어진 곳이었다.발인이 끝난 뒤, 고청영은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고 휘왕의 시신이 묻힌 땅 근처의 마을로 가서 작은 집을 짓고 살 거라고 말했다.시만자는 고청영에게 금전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지 물었지만, 그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며, 전에 갖고 있던 장신구들을 전부 팔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고청영이 진성을 떠나던 날, 마침 방시원이 연왕 등 사람들을 압송하여 진성으로 돌아왔고 성문 앞에서 창에 갇힌 연왕과 회왕을 본 고청영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백성들이 너도나도 손가락질하면서 썩은 야채 이파리를 마구 던지는 모습에 고청영은 모든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았다.나쁜 놈은 언젠가 그 벌을 확실하게 받게 될 것이다.고청영은 이제 자유의 몸으로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속박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한편, 진성에 압송된 죄인들 사이에는 영주의 관원들과 추몽도 있었으며 송석석은 의외의 인물도 발견하게 되었다.그자는 바로 고청우였다.송석석과 대리사 소경 진이는 죄인들을 인계 받으면서 방시원에게 왕표를 보았는지 물었지만 방시원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성문을 봉쇄했다가 다시 열었을 때 고청우의 행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그녀를 체포한 것이었기에, 죄인들은 아직 심문을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숙청제는 중죄를 저지른 죄인들은 대리사로 끌고 가고 나머지 죄인들의 심판은 경위부에 맡기라고 했다.연왕과 회왕, 추몽, 무상에 이어 하상지와 김수덕 6인은 논란의 여지 없이 중범죄자들이었기에, 현장에서 바로 대리사에게 넘겨졌고, 그들을 심문할지 말지는 황제가 결정하기에 대리사에서는 먼저 그들을 감옥에 가뒀다. 나머지 죄인들인 영주와 연주의 관원들 그리고 고청우는 경위부의 심문을 받았다. 범죄 정황이 심각한 죄인들도 그렇게 결국 대리사로 이송 되었
그렇게 5일에 걸려 역적의 잔여 세력을 전부 숙청했다.방시원과 목종욱도 역적 추몽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연왕과 회왕 그리고 무상 등 죄인들을 진성으로 압송하고 있기에 오늘 안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왕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죄인이 잡혔다.7월 25일, 휘황실 내부에서 휘왕을 위해 상을 치렀다. 사청엄이 반역을 저지른 탓에 상은 매우 조촐하게 치러졌으며 숙청제는 휘왕을 친왕릉에 안장할 지에 대해 대신들을 불러 진지하게 논의했다.휘왕은 비록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사청엄이 저지른 죄는 가문 전체에 연좌되는 중죄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한편, 송석석은 이번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황실 사람들을 거느리고 휘왕의 장례에 참석했다.장례식에는 관원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며 황제께서 휘왕을 친왕릉에 안장하지 않는 이상, 관원들은 감히 함부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휘왕의 시신은 이미 관 안에 들어가 있었지만 관을 아직 봉쇄하지는 않았다.고청영은 상복을 차려 입은 채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송석석과 시만자 등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눈을 감은 휘왕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관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휘왕과 정삼숙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 외에 하나가 비어 있었다.고청영이 얼음으로 시신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었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시신이 전혀 부패되지 않았던 것이다.고청영은 한참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왕야께서는 전에 자신이 죽으면 이 옷을 입혀서 관에 넣어달라고 하셨는데 그나마 그 소원은 제가 들어드렸습니다.”“휘왕께서는 사청엄이 반역을 일으키는 순간부터 자결하기로 마음을 먹으신 겁니까?”시만자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묻자 고청영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희는 오래전부터 함께 죽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왕야께서 자결하실 때 제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정삼숙이 먼저 돌아가시고 왕야께서는 한참동안 버티다가 저에게 꼭 살아남으라고 말씀하신 뒤 눈을 감으셨습니다.”송석석이 비어 있는 관을 힐끔 처
휘왕이 자결했다는 말에 잠깐 흠칫하던 사청엄은 곧바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부왕…! 부왕께서 자결할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이 아들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안 그래도 더 이상 살 마음이 없었던 고청영은 사청엄의 말을 듣고 입술을 꽉 깨물더니 빠르게 달려가 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화들짝 놀란 사청엄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한참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고개를 홱 돌려 싸늘하고 음산한 눈빛으로 고청영을 노려보았다.하지만 고청영은 그런 사청엄에게 오히려 침을 툭 뱉으며 화를 냈다.“짐승만도 못한 놈 같으니라고! 넌 지금까지 영주 백성들의 목숨과 왕야 저택 사람들의 목숨으로 왕야를 협박하지 않았느냐! 심지어 왕야께 너의 죄를 뒤집어쓰라고 강요했어! 왕야께서는 반역의 마음을 단 한번도 품은 적이 없어! 심지어 너의 감시 속에서도 어떻게든 송 대감께 정보를 알리려고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까 왕야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하지도 마!”사청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고청영은 이내 앞으로 한발짝 나서더니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폐하, 부디 고명한 판단을 내리시어 주시옵소서. 왕야는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고, 이 모든 건 사청엄 저자의 협박 때문입니다. 사청엄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면 만사대길이지만 실패할 경우 영주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왕야 곁에서 왕야를 보필하던 사람들도 전부 살해당해서 몇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왕야께서는 저런 사악한 아들을 낳고 키운 게 너무 창피하고 폐하와 백성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결국 자결하신 겁니다. 폐하, 어서 영주의 백성들을 지켜주십시오. 더 늦어지면 그자들은 전부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한편, 이덕회는 오열하는 고청영이 흥분해서 황제에게 실례되는 일을 저지를까 봐 얼른 고청영을 부축하며 말했다.“울지 마십시오. 영주 백성들은 무사할 겁니다. 폐하께서 이미 영주에 사람을 보냈고 그자는 왕야의 옥패를 들고 영주로 출발했습니다. 현재 영주는 조정의 관할 지역이 되
숙청제는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눈빛에서 숨길 수 없는 증오를 담으며 말했다. “그래? 네 아버지를 대신해 벌을 받겠다고 해도, 나는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 수는 없다. 역모를 꾸미고 나라를 빼앗으려 한 자가 누구인지, 짐이 직접 조사하여 밝혀내겠다.”“폐하...”사청엄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고통스럽게 말했다.“조사를 할 필요 없이 제 죄를 물어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잠시 이성을 잃고 실수하신 것뿐입니다.”숙청제가 냉소를 띠었다.“실망이구나. 황위를 노렸던 자가 이렇게 기개가 없다는 말이냐? 이 꼴로 황제가 되려고 하느냐? 그러면 사청엄, 너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가 실망할 것이다.”“아버지를 대신해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버지를 용서해 주십시오.”사청엄은 아무리 황제가 뭐라고 말해도, 이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그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다들 그의 야심을 비난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비난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아버지를 더 이상 욕하지 마시지요. 그도 그저 잠시 실수를 한 것 뿐일 겁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그의 말에 대부분의 관리는 큰 분노를 느꼈다. 그의 터무니없는 말에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숙청제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수년 동안 계획을 세우며 영리한 척했지만, 결국 궁문도 통과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황제가 되려고 했단 말이냐? 연왕처럼 무식한 자였다면 아마도 이런 꼴은 안 당했겠지?”그동안 사청엄은 늘 자신이 연왕보다 똑똑하고 뛰어나다며 자부했었고, 연왕의 신하 앞에서도 그런 태도를 보였었다. 그 후부터 연왕의 부하들도 사청엄을 따른 후 연왕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연왕의 무능함을 비웃었던 것이다. 그러니 숙청제가 연왕보다 못하다고 말하자, 사청엄은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하지만 사청엄은 그저 낫빛이 잠시 바뀌었을 뿐, 다시 같은 말만 되뇌었
석홍심의 지휘 아래, 이 사병들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용감해졌다.그들은 연왕의 사병이 아니었지만, 만 명이 넘는 병사들은 모두 사청엄이 수년간 정성껏 고른 병사들이었고 수많은 훈련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그중 많은 이들이 비참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 전투를 통해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지휘를 하는 이상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현갑군은 그들을 이길 수 있지만, 쉽고 빠르게 승리하긴 어려웠다.송석석은 그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예병을 뽑기로 했다. 그들 중에는 매산 분대도 포함되었으며, 반란군 중에서 석홍심의 목을 취할 계획을 세웠다.군대에는 장수부터 사라져야 전쟁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송석석은 계획을 세운 후, 만두와 몽둥이가 먼저 그들의 진형을 무너뜨린 뒤, 그녀와 시만자가 앞서 나가 적장들의 목을 베고 신속히 후퇴할 계획이었다.천군만마 속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전투에 열중해 있었고, 혹시라도 주저할 새에 적의 무차별 공격에 맞을 수도 있었다.석홍심은 전장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장군이었다. 그는 단번에 송석석의 계책을 알아챘고, 일부러 빈틈을 보여 송석석와 시만자가 그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였다.그도 송석석의 생각과 같이 상대의 장군부터 잡으려 했다.송석석과 그는 서로를 잡으려고 했다.빈틈이 보이자, 그는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들며 검을 내려쳤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짧은 무기를 사용했다. 경공으로 공격하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기에, 석홍심의 대검이 더욱 유리한 상황이었다.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게 협력했다. 시만자는 그를 향해 몸을 던져 그의 배를 머리로 가격했지만, 석홍심의 칼이 결국 송석석의 어깨에 떨어져 버렸고, 시만자도 석홍심의 병사에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이 상황에 만두와 몽둥이가 신속히 두 사람을 도우러 왔다. 한명은 유성추를 휘둘
사청엄은 마차를 타고 갈 때 멀리서 추몽을 보곤, 그제야 진심으로 안심했다.그는 추몽이 얼마나 단호한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전력을 다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전쟁은 그가 가장 갈망하던 것이었다.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에 그는 지금 과거의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모두 잃었지만,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열정이 온몸을 타고 돌기 시작했고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갈망이 그에게 강력한 힘과 신념을 주었다.그는 야망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며,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진실을 알지 못했다. 야망은 결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과 증오, 정의와 단결이라는 것을 말이다.진정한 야망은 현갑군 통령 송석석의 애국심이며, 현갑군 통령 송석석의 가족을 잃은 증오이다.그리고 병사들과 무림 사람들이 하나로 결합하여 반역자를 쫓아내며 백성을 위한 정의를 지키려는 마음이다.사청엄은 순간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추몽이 이끄는 병사들이 모두 병복을 벗고 평상복을 드러내었으며, 평상복에는 ‘沈’자의 문양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모두 심가 사람들이었다!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 온 자는 추몽이 아니라 심가 사람들과 무림 인사였던 것이다. 그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난다고 해도, 임양운이 나타나면 곤경에 처할 것이며, 심지어는 지휘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석홍심의 반군은 정말 강력했다. 그들은 단번에 기세 좋게 강을 건너 동서 두 거리로 쳐들어갔고, 좀만 앞으로 나가면 곧 어길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송석석는 그들을 어길로 이끌었다. 어길은 왕궁과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백성이 거의 없어서 백성을 다치지 않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경성의 귀족들과 대신들의 집안 대문은 꽉 닫혀 있었고, 가장 유능한 호위들이 문을 지켰다. 백성들 대부분은 반군이 쳐들어와 자신들을 포로로 잡을까 봐 두려워했지만,
휘황실.잔잔한 비가 방 처마 끝에서 주르륵 떨어지며, 왕부 전체를 축축하게 만들었다.한편, 늙은 휘왕은 복도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고, 빗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정삼숙 또한 이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두 다리가 부러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되었다.다리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골절상이 있어, 뼛속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며 계속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휘왕이 올 때마다 정삼숙은 아픈 척 연기를 한 탓에, 그는 이곳에 자주 오지 않았고, 정삼숙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마음은 더욱 아파왔다.방 안에서는 고청영이 정삼숙의 얼굴을 닦아주고, 손과 등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에 욕창이 생길까 염려해서였다.휘왕이 들어오자, 고청영이 물을 들고 나가며 말했다.“죽을 대령하던 참입니다. 전하께서서는 진지를 잡수셨습니까?”“아직 먹지 않았다. 죽 한 그릇을 더 가져오너라. 함께 먹자꾸나.”휘왕이 의자를 하나 가져와 침대 옆에 두며 말했다.정삼숙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으나, 갈라진 입술이 아직 낫지 않은듯 부어오른 상태였기에, 웃을 때마다 다시 터질까 봐 걱정스러워, 비바람에 시달리는 단풍잎처럼 억지스러워 보였다. “웃지 않아도 된다.”휘왕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아프면 말을 하거라.”“안 아픕니다.”휘왕이 죽그릇을 들어 그녀에게 떠먹여주자, 정삼숙은 붉어진 눈으로 천천히 죽을 받아먹었다.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하고 몇 숟가락만 넘길 뿐이었다. 이전에 사청엄이 의원을 불러 주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기에 더 아픈 것 같았다. 휘왕은 고청영이 죽을 더 가져오기도 전에 정삼숙이 먹다 남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그러자 정삼숙이 놀라며 말했다.“더럽습니다.”그때, 휘왕의 앞에 놓여진 죽 그릇에 무엇인가 툭하고 떨어졌다. “삼숙아, 우리 한평생을 함께 살았구나.”정삼숙은 멍하니 그런 그를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