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344화

Author: 유애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송석석은 감옥을 떠나기 전에 아랫사람을 시켜 전복죽 두 가마를 사와서, 밖에 있는 백성들이 최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보내온 죽이라며 대충 핑계를 대며 건네주었다.

최씨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으며, 전복죽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대리사를 떠난 송석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염구진을 불러 오늘 백성들이 최씨에게 죽을 보냈다는 소문을 널리 퍼트리라고 했다.

전에는 다들 최씨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지만 이제는 거의 최씨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 기회에 최씨의 선행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했다.

한편, 사여령은 최씨의 선행을 감옥 관리자들에게 전해듣곤 크게 감동하여 의례적으로 왕씨 가문 사람들에게 전복죽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최씨의 미담은 다시 한번 백성들의 입방아에 올랐고, 모두들 평서백부에 관한 얘기를 여기저기에 전했다.

기댈 수 있는 친정이 없었던 최씨에게 왕표가 지금까지 괴롭혔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너도나도 왕표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최씨를 동정했다.

한편, 어사도 이 일에 대해 다시 한번 보고했는데, 이번에는 숙청제 병상 앞에서 보고를 진행했다.

마침 조금 전에 목 승상한테서 수로 공사 노동자들이 몰래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숙청제는 최씨의 미담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더군다나 목 승상도 옆에서 왕표가 절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할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했고 야반 도주할 때부터 이미 가족들이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알면서도 그런 짓을 저지른 거라고 강조했다.

잠시 침묵하던 숙청제가 곧이어 어명을 내렸다.

“왕씨 가문 일가족 모두 서민으로 신분을 낮추고 왕씨 가문의 남자들은 전부 남강으로 3년 동안 유배를 보내거라. 그리고 그 집안의 노비들은 왕씨 가문을 계속 따르든 왕씨 가문을 떠나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허 어사가 왕씨 가문 사람들을 대신하여 숙청제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허 어사를 보낸 뒤, 숙청제는 허약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45화

    현갑군의 병력 배치로 진성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늦은 시간 통행 금지로 음식점들과 찻집도 해가 지면 바로 문을 닫았고 어둠이 깃든 진성은 완전히 죽은 성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현재의 대책은 적이 움직이지 않는 한,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수로 공사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고 무단으로 공사가 중단되면 현갑군은 바로 공사 현장을 포위할 것이기에 송석석은 기선을 빼앗을 수 있다.공사가 중단되지 않고 계획대로 순조롭게 마친다면, 조정과 백성들에게도 유리했다.대치 상황은 아니지만 공기 속에서 이미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매일 성문 진출에 대한 경비가 삼엄했기에 황작도 반드시 진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목숨까지 걸었는데 원정으로 지휘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러자 송석석은 전에 황작이 이미 진성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 시만자는 그동안 계속 휘왕 저택에서 지내면서 수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더군다나 휘왕 곁을 지키는 두 사람은 전부 나이가 든 노인이었으며 나머지 노비들도 저택 안에서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고 만두가 구매를 담당하는 노비를 확실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외부 사람과 접선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실로 머리가 아픈 일이었다.한편, 왕씨 가문 사람들은 감옥에서 풀려났다. 집안 남자들은 전부 유배되었고 그 중에는 현이도 포함되었다.남강에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차라리 남강으로 유배되는 게 더 나았다.그리고 최씨와 노부인 등의 사람들은 현재 대놓고 저택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씨가 왕이장 쪽에 꽤 많은 돈을 보관해 두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소주방에서 잠시 지낼 수밖에 없었다.평소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소주방을 하찮게 생각하던 왕청여도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고생한 탓에 아무 말없이 최씨의 결정에 따를 뿐이었다.한편, 송석석은 왕지아를 황실로 데려가 명희와 친해지게끔 만들었다. 명희는 무술 천재였고 왕지아는 똑똑하고 영리했기에 두 아이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46화

    시만자 등 세 사람은 휘왕 저택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저택 안을 몇 번이나 수색하고 돌아봤지만 수상한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기에 이제 그만 철수할 생각이었다.매일 휘왕과 먹고 놀고 즐기느라 사람이 점점 퇴폐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며 특히 바삐 움직이는 송석석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저녁 식사 때, 시만자는 휘왕에게 내일 저택을 떠나겠다고 했고 휘왕은 환하게 웃으며 시만자를 쳐다보았다.“왜? 내가 대접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이냐? 왜 갑자기 떠나겠다는 거야?”시만자가 솔직하게 대답했다.“너무 잘 먹어서 탈입니다. 매일 진수성찬을 차려주셔서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네가 아직 제대로 먹을 줄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래, 그냥 네 뜻대로 하거라. 이곳이 지겹다면 돌아가야지.”휘왕은 인자하게 웃다가 정삼숙을 불러왔다.“정삼아, 창고에 가서 좋은 선물 몇 개 가지고 와라. 내일 이자들이 떠날 때 챙겨주고.”“알겠습니다. 소인 바로 준비하겠습니다.”문 밖에 서서 정삼숙의 대답을 들은 관백은 바로 들어와서 휘왕에게 말했다.“왕야, 제가 가져오겠습니다.”관백을 힐끗 쳐다보던 휘왕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네가 가져와라. 날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 아주 좋은 선물로 골라 오거라.”“네.”한편, 관백은 돌아서서 떠나는 관백에게 괜찮다며 부르려고 했다. 이곳에서 공짜로 먹고 자고 했는데 선물까지 챙겨가는 건 너무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만자가 고개를 들어 관백의 뒷모습과 걸음걸이를 본 순간, 놀라 온몸이 굳어 버렸다.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보고 있으니 관백의 등은 매우 꼿꼿했고 걸을 때 손 하나를 등 뒤에 놓은 채 손가락을 살짝 오므리고 있는 것이 누가 봐도 귀하게 자란 사람처럼 보였다.넋을 잃고 쳐다보던 시만자는 다시 한번 자세하게 생각해보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관백은 정삼숙과 달리 휘왕 앞에서 단 한번도 ‘소인’이라고 자신을 칭한 적이 없었다. “만자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휘왕의 부름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47화

    모신신이 관백을 공격해서 무술 실력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하자 시만자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그건 안 돼.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더 나아. 상대방이 눈치라도 채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거야. 내일 아침 바로 이곳을 떠나서 석석이와 염 선생한테 얘기해줘야 돼.”“우리가 과연 무사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만두가 의미심장하게 묻자 모신신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휘왕이 우리를 이곳에 가둘 수도 있다는 말이야? 조금 전에 휘왕이 분명 우리에게 가도 된다고 했잖아...”“휘왕이 왜 만자를 이곳에 불렀는지, 다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시만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송석석과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제 보니 구조 신호는 아닌 것 같고 그럼 휘왕은 그들을 가두려고 하는 걸까?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휘왕의 행동으로 보면 뭔가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왕야와 관백이 한통속이 아닌 게 아닐까?”그러자 시만자는 순간 휘왕 저택에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관백은 늘 휘왕 곁에 있었지만 그 존재가 눈에 띄지 않았다.‘설마 관백 그자가 위장술을 쓴 건가? 관백이 바로 영군왕인 건가?’하지만 시만자는 자신의 추측까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얘기하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시만자는 이곳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관백의 무술 실력이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매우 강하다면 세 사람이 합쳐도 관백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그럼 오늘밤 우리 셋이서 같이 자자. 혹시 모르잖아.”모신신이 만두와 시만자의 팔을 잡으며 말했고 이내 세 사람은 방으로 돌아왔다.만두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고 모신신과 시만자는 침대에 꼭 붙어있었다.“너희들은 자.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만두의 말에 모신신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지금 상황이 우리한테 위험하다면, 왜 오늘밤엔 몰래 도망가지 않는 거야?”“저녁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48화

    휘왕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는데, 긴 기럭지에 건장한 몸매를 자랑하는 영군왕은 관백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들이 부왕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겁니다. 수로 공사로 잘 마무리 지을 것이고 죄 없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도 않겠습니다. 진성 백성들을 다치게 하지도 않고 근처 마을에도 피해를 주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부왕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 천하를 얻으면 부왕은 반드시 황제가 되실 겁니다.”영군왕의 말에 휘왕이 코웃음을 쳤다.“아주 대단한 효자구나.”“아들이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부왕을 황제의 자리로 올리겠다고요. 부왕이 이 나라의 황제가 되면 저희는 더 이상 사국의 협박을 받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변경을 위해 서경과 대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백성들과 우리 상국은 태평 성세를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휘왕이 침을 툭 뱉으며 대꾸했다.“사국 서경과 손잡은 역적 주제에 대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한 말을 할 수 있는 게냐? 듣기만 해도 역겨워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구나.”“그건 그저 이 나라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부왕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그 적들을 확실하게 물리칠 것입니다!”휘왕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의 뻔뻔한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도대체 어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이지? 내가 어쩌다가 저런 악마 같은 놈을 낳았단 말이냐…’남강이 얼마나 힘들게 이 나라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장군과 병사들의 뼈와 살이 그 땅에 묻혔는데 영군왕은 지금 그 땅을 적들에게 그냥 내어주려고 한다.남강이 사국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돌려받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영군왕에게 있어서 국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며 그가 원하는 건 그저 황제 자리 뿐이었다.“너만 역적인 것이지, 여기저기 내 이름까지 팔 생각은 하지도 마. 백성들은 결국 나를 욕하고 나에게 손가락질할 거야. 난 역사에 길이 남은 역적이고 넌 효자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49화

    휘왕은 바닥에 깨진 찻잔 조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는데, 비록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그 조각으로 손목을 긋기에는 충분했다.휘왕이 바닥에서 찻잔 조각을 하나 주워 손목에 댄 순간, 누군가가 휘왕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왕야, 그러다가 다치실 수도 있으십니다!”손목이 꽉 잡힌 휘왕은 순식간에 찻잔 조각을 빼앗겼고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은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도 여전히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이 저택에 이런 사람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것인지, 이자들 모두 실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내공이 깊고 암살에 능한 사람들이었기에 휘왕은 어디로 가든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심지어는 시만자 일행과 함께 가도 마찬가지였다.휘왕은 시만자 일행도 이자들의 존재를 발견해주기를 바랐지만, 공기 마냥 여기저기 곳곳에 다녔던 탓에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휘왕은 퍼렇게 멍이 든 자신의 손목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죽음조차 결정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았다.다음날이 되자마자, 시만자 일행은 휘왕 저택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 시만자는 저택 사람들 모두와 작별 인사를 했다.휘왕과 고청영에게 인사를 하고 정삼숙한테까지 인사를 한 뒤, 마지막으로 관백 앞에 섰다.“저희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제일 고생한 분이 관백이시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주시고 여기저기 데리고 돌아다니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왕야와 여러분들을 모시고 왕경루에 가서 거하게 한 턱 쏘겠습니다.”그러자 허리를 살짝 굽힌 관백이 자상하고 온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아가씨 그런 말씀 마세요. 이건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괜히 저희에게 돈을 쓸 필요 없습니다.”“돈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죠.”관백은 환하게 웃으며 시만자 일행을 저택 대문 밖까지 바래다 주었다.시만자는 고개를 돌려 휘왕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입을 꾹 다문 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50화

    한편, 매산 만종문에서.며칠 전부터 임양운은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했지만 무소위는 오늘이 아니라고 했다.하지만 생일이 맞든 아니든 큰 상관은 없었다. 임양운이 떠들썩하게 잔치를 하고 싶다는 말에 무소위가 며칠 전부터 매산의 각 파문들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총 30석 정도 초대했기 때문이다.무소위가 직접 임양운의 생일 잔치를 준비했는데, 그가 평소에도 만종문의 일들을 친히 처리한 덕분에 고생하는 건 괜찮았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임양운이 초대장에 절대 생일 선물을 준비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적었고 무소위는 사형의 이런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만종문에 돈이 많은 게 사실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함부로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다른 종파의 잔치에 참석할 때마다 단 한번도 빈손으로 간 적이 없는데 그만큼의 선물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수상하기도 했다. 평소에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임양운인데 이번에는 잔치를 크게 벌였을 뿐만 아니라 취기가 조금 오르자 경화파 장문인의 손을 덥석 잡고는 구구절절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내일 제가 진성에 다녀올 건데 저랑 같이 가지 않으실 겁니까? 가서 몽동이랑 아라도 좀 보고. 경화파 제자들도 데리고 저와 함께 다녀옵시다!”그러자 경화파 장문인이 슬쩍 손을 빼더니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집으며 대답했다.“경비가 부족합니다.”“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경비는 당연히 제가 다 책임집니다. 왕경루 아시죠? 저희 집에서 차린 건데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시켜셔도 되고, 원하시는 만큼 지내셔도 됩니다. 절대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럼 동의하신 걸로 알겠습니다.”경화파 장문인이 입에 음식을 씹고 있었기에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고 말을 하려고 했을 때에 임양운은 이미 돌아서서 떠났다.돌아선 임양운은 바로 적염문 장문인의 손을 덥석 잡더니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쪽 제자 시만자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보고 싶지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51화

    만종문은 제자를 받는 기준이 엄격하여 임양운의 정식 제자는 많지 않았다. 이미 사문을 떠난 제자를 포함해도 총 15명뿐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떠난 제자들 모두 사문을 배반한 것이 아닌,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임양운은 고지식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제자들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허락했다. 단 전제가 있었는데, 이는 백성과 선량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며칠 전, 그는 사문을 떠난 제자들에게 전서구를 보냈다. 이 제자들은 현재 각자의 영역에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부가 소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진성으로 달려가 소사매를 돕기로 했다.만종문에는 다른 제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단순히 제자라고만 불릴 뿐, 임양운이 몸소 가르친 제자는 아니었다. 임양운이 아주 가끔씩 그들을 지도하긴 했지만, 이들의 주된 지도는 만종문의 두 명의 무술 장로들이 담당했다. 때로는 임양운의 직계 제자들이 지도하기도 했다.이들의 실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평소에 잡일도 도맡아 해야 하므로 무술에만 몰두할 수 없었기에 임양운의 직계 제자들의 실력에 비해 한참 뒤떨어졌다.하지만 임양운이 필요한 것은 정예 병력이기 때문에 이번 일엔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생신연회를 가장하여 각 문파의 장문인까지 초청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다른 사람이 이런 체면을 세워준 이상 그 정을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한다. 무림인들은 뜨거운 의리로 의기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자들이기에, 받은 은혜를 가볍게 흘려보내는 법이 없었다.무소위가 그에게 물었다.“사형, 조정의 일엔 관심도 없으시면서 왜 이번에는 이렇게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움직이십니까? 송석석과 현갑군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임양운은 무기고에 앞에 서서 손에 맞는 무기를 고르며 말했다.“네가 만약 영군왕이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무소위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겠지요?”“시기도 기다려야 하지.”임양운은 말하면서 부채를 하나 골라 들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52화

    송석석은 며칠 동안 의논에 참석하며 승상이 했었던 말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의견이 제각각이고, 모두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탓에 끊임없이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찬반이 몇 번이고 오갔지만, 일의 방향은 여전히 명확해지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순간 자신이 더는 이 의논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여러 의견에 휘말리다 보니,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게다가 황제의 병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계속 기침을 하며 억지로 정신을 버티는 상황이었는데, 일부는 이런 상황을 틈타 태자를 책봉하자는 주장을 펼쳤다.이 말을 꺼낸 이들은 제상서의 문생으로, 젊은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황후가 포섭했던 인물들로, 태자 책봉을 위해 힘쓰기로 했었는데, 황제의 병이 악화되고 내우외환이 겹친 틈을 타 후계 문제를 조속히 확정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제상서는 화가 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가 어전에서 극히 반대했으나, 오히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가 퇴로를 확보하려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이 일로 인해 숙청제는 또다시 분노를 참지 못해 피를 토할 정도로 격노하자, 조정은 모두 난감해하며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그래서 송석석은 훈련을 핑계 삼아 논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하곤 돌아가 이 일을 염선생과 대사형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염선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황후는 금족 중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 파란을 일으킬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시기에 그러한행동을 벌이다니, 이는 자신과 제씨 가문을 불 속에 집어넣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제씨 가문과 황후가 어떻든, 송석석은 둘다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본래 조정의 문무 백관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있었는데 이 일이 그 흐름을 끊어버리고 만 것이다.이때 심청화가 입을 열었다.“나는 오히려 이번 태자 책봉 문제를 꺼낸 것이 영군왕의 계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오. 황후가 포섭한 사람들이 사실 영군왕의 사람

Latest chapter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1화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0화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9화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8화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7화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6화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5화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4화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3화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