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칼국수 한 그릇을 내왔는데 사여묵의 배를 채우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러자 제린이 사람들에게 양고기를 구우라고 시켰다. 지금의 군영은 예전과 달리 식량이 많이 있어 백성들도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여묵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릇을 들고 국물을 다 비워냈다. 국물이 짜고 맛이 강해서 그는 물 한 주전자를 마시고 나서야 체력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아직도 말 위에서 흔들리고 있어, 눈앞의 사람들이 다 뒤로 물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왕야께서도 많이 지치셨지요?” 사여묵이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군의를 불러와 내 얼굴에 침을 놓으라고 하거라. 하도 바람을 맞아 얼굴이 돌아간 것 같아.” 눈을 똑바로 떠 보니 사여묵의 얼굴은 확실히 약간 삐뚤어져 있었다. 그때 제린이 물었다. “원수께서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도 휴식하지 않으셨지요?” “어떻게 쉬겠어?” 이어서 사여묵이 중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꾀병을 부려서 몰래 전장으로 온 것이야.” 그는 허약한 손으로 한 무더기의 약을 꺼내더니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사실 꾀병을 부린 게 아니라 진짜 아팠지. 여기로 오는 길에 이 약들을 먹어야 하는데 가끔은 잊어서 먹지를 못했어. 지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송 장군이 날 때려죽일 것이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사람을 보내 군의를 불러와 왕야의 몸을 진단한 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군의가 먼저 맥을 짚더니 말했다. “어찌 이렇게… 허약하십니까?” 그러자 방천허가 다급하게 물었다. “심각합니까?”군의가 말을 하지 않자 사여묵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천천히 회복하면 되니까 다들 긴장하지 말거라.”그러자 군의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미 원기를 상했으니 아마 단기간엔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여묵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전쟁 체질인 사람이 있다. 전장에서의 사여묵은 진성에서보다 훨씬 과감했는데, 심리적으로 속박을 받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일동안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 모두 체포했다. 그들을 연병장으로 끌고 가서 곤장으로 20대 때리자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묻는 대로 대답했다. 그들은 누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단지 돈을 받고 소식을 퍼뜨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까지는 상관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국의 80만 대군이 국경까지 쳐들어왔다는 소문과, 북명왕이 바로 이 자리에 있으니 숙청제가 북명왕을 죽였다는 소문도 역시 사실이 아니게 되었다. 왕 원수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도망갔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간 것이었다. 헛소문이 하나둘씩 밝혀지자 병사들은 격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헛소문을 퍼뜨려 군심을 흔들었으니 당연히 때려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여묵은 차가운 눈빛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애초에 헛소문을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 반성하거라. 반성한 후엔 남은 전투에 최선을 다하고.” 군심을 흔드는 자는 적군이니, 적군의 피는 첫 전투의 패배로 인한 좌절을 씻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큰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소문을 퍼뜨린 자를 곤장으로 때려죽인 후 사여묵은 제린에게 북명왕이 남강에 왔다는 급보를 진성으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지시가 없어도 자신의 명령에 따를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급보를 보낸 지 사흘 만에 황제의 지시가 도착했다. 사여묵은 조금 의외였지만 송석석이 한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왕표가 도망쳤다는 소식이 진성으로 전해지마자 송석석이 반드시 성지를 청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제린에게 진성으로 급보를 보내라고 한 이유는 황제에게 남강군은
전북망의 본가, 문희거(文熙居).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송석석(宋惜惜)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결혼 후 곧바로 전장으로 떠나 일 년이나 보지 못했던 남편이었다. 전북망(战北望)은 전장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 당당히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폐하의 교지(旨意)까지 내려진 이상, 되돌릴 수 없소. 이방(易昉)은 이 집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송석석은 손깍지를 끼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전북망에게 물었다."태후(太后)마마께서도 능력을 인정한, 그 이방 장군님이 첩이 되길 받아들이셨단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전북망의 눈빛에 살짝 노기가 서렸다."아니, 이방은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평처(平妻: 본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여인)라,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송석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장군님도 아시다시피 평처라는 명칭은 듣기 좋을 뿐, 실제로는 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첩이라니, 이방과 나는 전장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건 나와 이방이 군공(军功: 군사적 공로)으로 받은 교지이니, 사실상 그대의 동의는 필요 없소."송석석은 억누를 수 없는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라, 그럼 출정 전에 저에게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일 년 전, 출정 명령이 떨어진 혼례 첫날밤에 전북망은 약속했었다. 평생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절대로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송석석이 언급하자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전북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 약속은 잊어버리시오. 그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소. 그저 그대를 아내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 하지만 이방을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소."이방을 떠올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그가 숨길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이방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소.
전북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어려운 길을 자처하시오? 이 혼인은 폐하의 어명이오. 더군다나 이방이 들어온다고 한들, 서로 다른 별채에 머물 텐데, 뭐가 걱정이오? 이방은 안살림에 관심이 없소. 또한 그대의 권한을 빼앗는 일도 없을 것이오. 그대가 중요시 여기는 것들, 이방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걸 모르겠소?”“권한이요? 제가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러시는 줄 아십니까?”송석석이 반문했다. 장군부(將軍府: 장군의 집) 살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노부인한테 들어가는 약값만 해도 매달 수십 냥(两: 화폐 단위)이었고, 그 외 사람들한테 들어가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그녀가 들고 온 지참금이 아니었다면, 이 집안은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헌신한 대가가 겨우 이거라니, 정말 황당했다.반면, 전북망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됐소. 더 말하지 않겠소. 본래 통보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그대가 허락하든 하지 않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오.”그 말을 끝으로 전북망은 소매를 털며 자리를 떠났다. 송석석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아가씨.”보주(寶珠)가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장군님도 참 너무하세요.”“됐어, 이렇게 된 이상 움직이자.”송석석이 차갑게 눈빛을 굳히며 보주를 쳐다보았다.“첫날밤도 치르지 못했는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없지. 일단 가서 내가 이 집안에 들어올 때 들고 온 지참금 목록을 가지고 와 봐.”“지참금 목록은 왜요?”보주가 물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그녀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답했다.“바보야. 계속 이 집에 머물 거야?”그러자 보주가 이마를 감싸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이 혼사는 부인께서 아가씨를 위해 직접 예비하신 거잖아요. 어르신도 살아계실 때, 얼마나 아가씨가 잘 살길 바라셨는데요.”부모님의 얘기가 나오자 송석석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송석석의 부모님은 참 금슬이 좋았다. 그녀를 포함해 자식이 여섯이나 됐지
보주가 지참금 목록을 가져오며 말했다.“근 1년 동안, 아가씨께서 이 집안 살림에 보탠다고 사용한 화폐만 해도 6천 냥이 넘어요. 그래도 다행히 상점과 주택, 장원은 그대로예요. 또한 부인께서 남겨주신 예금 증서와 집문서, 땅문서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어요.”“알겠어.”송석석은 목록을 보며 전에 어머니가 준 지참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시집에서 고생할까 봐 참 많은 지참금을 챙겨줬었다.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다. 옆에 있던 보주도 그녀의 기분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이곳을 나간다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진북후부, 아니면 매산입니까?”송석석은 아직도 그 처참했던 진북후부의 현장이 생생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밀려 나왔다.“어디로 가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아가씨, 이대로 떠나면 진짜 후회 안 하시겠어요?”송석석이 담담히 답했다.“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떠나지 않으면 평생 이들 사이에 괴롭게 살아야 할 텐데. 보주, 우리 집엔 이제 나밖에 없어.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가족들도 저승에서 마음 편히 쉬지.”“아가씨!”보주가 기어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과 마찬가지로 진북후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송석석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보주의 가족들도 함께 희생되었다.장군부를 떠나게 되더라도, 진북후부로 돌아가는 건 편치 않았다.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아가씨,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송석석이 한층 깊어진 눈동자로 답했다.“있기는 하지. 폐하께 아뢰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이룬 공로를 명목으로 교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지. 통하지 않는다면, 금란전(金鑾殿: 황제의 궁) 벽에 확 머리 박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보고.”보주가 놀라 송석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아가씨, 그건 절대로 아니될 말입니다!”송석석이 냉철히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웃었다.“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교지를 철회해주지 않는
노부인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이제 겨우 한 번 만나봤을 뿐인데,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리고 어차피 폐하께서 정하신 혼사, 무를 수는 없잖니. 앞으로 두 사람은 밖에서 나랏일을 하고, 너는 내실 관리하면서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니.”“나쁘지 않죠.”송석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만 명색이 장군님이신데,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노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그게 무슨 말이니? 폐하께서 하사하신 혼인인데, 어떻게 첩으로 들어오게 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그녀는 조정(朝廷)의 대신, 나랏일 하는 관리(官員)다. 그런 분을 어떻게 첩으로 앉힐 수가 있겠니? 당연히 평처로,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지.”송석석이 대답했다.“당연히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요? 조정에 그런 규칙도 있었습니까?”노부인이 다소 냉담해진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석석아, 너 마음이 넓은 아이였잖아. 장군부에 시집왔으면, 장군부의 며느리 답게 굴어야지. 병부(兵部: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나라 부서) 심사에서도 이방 장군이 북망보다 더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 발표됐어. 너는 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어 앞으로도 쭉 내실 관리를 해주면 돼. 그럼 언젠가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게 될 거야.”송석석이 냉담하게 말했다.“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라고요? 전 사양하겠습니다.”노부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사양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부터 내실 담당은 너였잖니?”송석석이 말했다.“아니죠. 내실 담당은 원래 큰형수님의 소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큰형수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제가 잠시 돌봤지만, 이젠 괜찮아졌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죠. 내일 장부 맞춰서 인수인계 하도록 하겠습니다.”그러자 큰형수라 불린 여인, 민씨가 다급히 끼어들었다.“나 아직 다 회복 못 했어.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잘해왔으니, 앞으로 내실 관리는 네가
그녀가 나가고 나자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송석석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노부인의 말조차 무시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내버려둬. 지까짓게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테야?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어.”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의지할 친정도 없었으며 장군부 외에 머물 곳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송석석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이방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정실 부인이었다.다음 날 아침, 송석석은 보주를 데리고 진북후부로 돌아갔다. 진북후부는 반년이나 방치되어 있어 곳곳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심지어 정원은 낙엽이 쌓이다 못해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런 진북후부를 바라보며 송석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차갑게 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사방에 뿌려진 피, 도륙된 하인들,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이곳에 돌아와도 그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송석석은 보주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의 위패가 놓여 있는 사당(祠堂)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고인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녀의 눈빛엔 결연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부디 앞으로 제가 내리게 될 결정을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의 소원대로 시집가 자식도 낳으면서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전북망은 좋은 지아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보주도 옆에 있고, 꼭 행복하게 살아 갈게요.”옆에 있던 보주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인사를 마치고, 그녀들은 다시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정오(正午: 낮 12시),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송석석과 보주는 궁문 앞에서 미동도 없이 황제의 허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두 사람을 불러주지 않았다.보주가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폐하께서 아가씨의 의도를 알아차리셔서 만나주지 않으시려나 봐요. 어젯밤 저녁도 안 하셨는데
송석석은 방에 들어오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숙청제는 전북후부를 떠올리며 혼자 남게 된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봤다.“됐다. 고개를 들거라.”하지만 송석석은 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폐하,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 무례인 것은 아오나, 달리 선택지가 없어 만남을 청하게 되었사옵니다.”숙청제가 답했다.“교지가 내려진 이상, 번복할 수는 없다.”송석석이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한 번 내려진 교지, 번복하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대신 새 교지를 내려주실 것을 간청드리옵니다. 부디 저와 전 장군님의 이혼을 허락해 주시옵소서.”황제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이혼? 지금 이혼하길 원한단 말이냐?”황제는 그녀가 혼사 취소가 아닌 이혼을 요구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송석석이 눈물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폐하, 이번 혼인이 군공으로 하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아비와 오라버니들의 기일입니다. 신녀(臣女)도 저희 가문이 세운 군공을 빌어 이혼 교지를 청하옵니다. 부디 저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숙청제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석석아, 여인이 이혼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느냐?”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친근한 호칭이었다. 황제가 아직 태자였을 적, 매번 진북후부를 방문할 때마다 그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해오곤 했다. 그러나 매산에 올라가게 되면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알고 있사옵니다!”송석석이 단호하지만 씁쓸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답했다.“군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비록 군자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사랑하는데 방해물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석석아, 전북후부엔 이제 아무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생각해둔 바가 있느냐?”송석석이 말했다.“안 그래도 오늘 본가에 돌아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비록 지금은 비어 있지만, 전북후부에 돌아간다면 아들을 입양해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할 생각이옵니다.”숙
사여묵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전쟁 체질인 사람이 있다. 전장에서의 사여묵은 진성에서보다 훨씬 과감했는데, 심리적으로 속박을 받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일동안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 모두 체포했다. 그들을 연병장으로 끌고 가서 곤장으로 20대 때리자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묻는 대로 대답했다. 그들은 누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단지 돈을 받고 소식을 퍼뜨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까지는 상관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국의 80만 대군이 국경까지 쳐들어왔다는 소문과, 북명왕이 바로 이 자리에 있으니 숙청제가 북명왕을 죽였다는 소문도 역시 사실이 아니게 되었다. 왕 원수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도망갔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간 것이었다. 헛소문이 하나둘씩 밝혀지자 병사들은 격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헛소문을 퍼뜨려 군심을 흔들었으니 당연히 때려죽여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여묵은 차가운 눈빛으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애초에 헛소문을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 반성하거라. 반성한 후엔 남은 전투에 최선을 다하고.” 군심을 흔드는 자는 적군이니, 적군의 피는 첫 전투의 패배로 인한 좌절을 씻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큰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소문을 퍼뜨린 자를 곤장으로 때려죽인 후 사여묵은 제린에게 북명왕이 남강에 왔다는 급보를 진성으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지시가 없어도 자신의 명령에 따를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급보를 보낸 지 사흘 만에 황제의 지시가 도착했다. 사여묵은 조금 의외였지만 송석석이 한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왕표가 도망쳤다는 소식이 진성으로 전해지마자 송석석이 반드시 성지를 청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제린에게 진성으로 급보를 보내라고 한 이유는 황제에게 남강군은
이때 칼국수 한 그릇을 내왔는데 사여묵의 배를 채우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러자 제린이 사람들에게 양고기를 구우라고 시켰다. 지금의 군영은 예전과 달리 식량이 많이 있어 백성들도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여묵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릇을 들고 국물을 다 비워냈다. 국물이 짜고 맛이 강해서 그는 물 한 주전자를 마시고 나서야 체력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아직도 말 위에서 흔들리고 있어, 눈앞의 사람들이 다 뒤로 물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왕야께서도 많이 지치셨지요?” 사여묵이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군의를 불러와 내 얼굴에 침을 놓으라고 하거라. 하도 바람을 맞아 얼굴이 돌아간 것 같아.” 눈을 똑바로 떠 보니 사여묵의 얼굴은 확실히 약간 삐뚤어져 있었다. 그때 제린이 물었다. “원수께서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도 휴식하지 않으셨지요?” “어떻게 쉬겠어?” 이어서 사여묵이 중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꾀병을 부려서 몰래 전장으로 온 것이야.” 그는 허약한 손으로 한 무더기의 약을 꺼내더니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사실 꾀병을 부린 게 아니라 진짜 아팠지. 여기로 오는 길에 이 약들을 먹어야 하는데 가끔은 잊어서 먹지를 못했어. 지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송 장군이 날 때려죽일 것이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사람을 보내 군의를 불러와 왕야의 몸을 진단한 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군의가 먼저 맥을 짚더니 말했다. “어찌 이렇게… 허약하십니까?” 그러자 방천허가 다급하게 물었다. “심각합니까?”군의가 말을 하지 않자 사여묵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천천히 회복하면 되니까 다들 긴장하지 말거라.”그러자 군의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미 원기를 상했으니 아마 단기간엔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말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게 나 있었는데 말을 탄 사람은 따스한 햇볕에 싸여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제린과 방천허는 고개를 돌려 보더니 순간 눈 밑이 붉어지고 울컥해서 소리를 낼 수 없었다.사여묵은 갑옷을 입지 않고 평범한 백성의 옷을 입고 있어 멀리서 보면 특별한 점은 없었다.그가 말을 멈추고 사람들 앞에 서자 군사들은 그제야 그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현장에서 열광적이고 기쁜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사 원수야, 사 원수께서 오셨어!”“사 원수께서 아직 죽지 않았다니!”“사 원수께서 계시니 우린 반드시 승리할 것이야.”“필승!군사들은 지난 전쟁의 억울함과 왕표에 대한 분노를 모두 외치려는 것 같았다.장군들은 눈 앞의 상황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왕표가 도망친 후로 그들도 이렇게 높은 사기를 본 적이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그저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큰 힘과 자신감을 줄 수 있었다.동시에 북명왕이 여기에 서 있다는 건 소문들에 대한 가장 좋은 비판이었다.하나의 소문이 헛소문으로 되자, 병사들은 다른 소문도 거짓일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여묵은 손에 있는 장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고작 이십만의 적군일 뿐이고 우리에게 패배한 군대인데, 우리 남강군이 그들을 두려워하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크게 외쳐보거라. 그들이 두렵느냐?” 그러자 병사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두렵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사여묵은 말을 타고 행렬 사이를 거닐며 목소리를 높였다. “큰 소리로 말해보거라. 사국을 이길 수 있겠느냐?” 그러자 병사들이 천지가 진동할 것 같은 소리로 외쳤다. “할 수 있습니다.” “어디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있느냐? 있으면 나와보거라!” “없습니다.” 사여묵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굳건함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햇빛이
오 교위가 와서 사망인수는 356명이고 부상인수는 1732명이라는 전투 사상의 상황을 보고했는데, 모두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분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궁수들은 현재 성을 지키는 입장이라 모두 성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기에, 사국인들이 사닥다리를 치고 돌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 대규모로 성을 공격하지 않았고, 그저 병력과 군심의 응집력을 시험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국인들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상대방의 심리를 잘 알아서 바로 대군이 쳐들어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강군의 투지가 아무리 약해도 생사를 겨루게 되면 반드시 최강의 실력을 가지고 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런 탐색을 몇 차례 반복해서 사상자 수가 계속 늘어나게 된다면 남강군의 의지와 심리적 방선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투지가 없는 상태라다시 싸워봐야 헛수고일 것이었기에 작전을 말해도 소용없었다. 군사는 담배 반 대를 다 피울정도로 고민했지만 다른 방법이 차마 생각나지 않았다. 조정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해도 누구를 보낼 지 모르니 지금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내일 군사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해서 사기를 북돋아줘야겠소.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소.” 방천허는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더니 먼지와 피딱지를 문질러냈는데 그건 그의 피가 아니라 오늘 그의 곁에 서 있던 병사들이 투석기에 머리를 맞아 그의 얼굴에 튄 피였다.그의 기분은 아주 나빠진 상태였다. “지금은 아무리 해도 소용없소. 원수도 사라진 마당에 아직 누구를 임시 원수자리에 앉힐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지 않소? 게다가 모두가 왕야님께서 죽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왕야께서 남강 전장에 나타나지 않는 한 전사들이 전투에 대한 사기는 계속 저조할 것이며 조정에 대한 원한은 날로 고조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왕표가 탈출한 후 마음이 무너졌으니, 이길 수 없다고 믿어 전쟁터에 나가
돌아가서 염 선생과 심 사형에게 말하자, 두 사람은 먼저 고청영을 포함한 휘황실의 사람들부터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에 휘황실의 사람을 조사했었는데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노휘왕이 진성으로 데려온 후 줄곧 그를 따랐으니 심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가 진성에 돌아올 때 중매업을 통해서 구매한 사람들이었는데 염 선생이 직접 중매업에 가서 그 사람들의 신분을 조사했었다. 위로 조사해 보니 그들은 모두 집이 가난해서 팔린 것이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오늘 정원을 돌아다녔지만 무공을 할 줄 아는 하인은 발견하지 못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아마 그들을 피할 것이기에, 염 선생은 다시 한번 휘황실 사람들을 조사해서 황실 하인이 증감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며칠 전 사여묵은 남강으로 갈 때 자신의 말을 타지 않고 황실에서 지구력이 가장 좋은 말을 골랐다. 그는 원래 남강으로 가서 제린을 찾은 다음, 졸병 신분으로 군대에 잠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강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왕표가 첩을 데리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심지어는 도처에 떠돌았고, 사국에 80만 명의 병사가 있으니 남강군이 무조건 패배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국인이 성을 도륙하여 남강을 피바다로 만들겠다고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북명왕이 황제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지휘봉을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많은 백성들은 그 말을 믿고 차라리 짐을 싸서 도망가는 게 낫다고 했다. 이제 막 생기가 돌기 시작한 남강은 다시 산산조각이 되어 다가올 전쟁의 불길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런 소문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퍼지게 되면 군대에서도 퍼지기 마련이었다.특히 숙청제가 북명왕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자, 북명군은 분개하며 충성스럽고 훌륭한 장군이 이렇게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는데 왜 어리석은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냐며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저항했다. 제린과 방천허가 아무리 소문을 제지하고 병사들에게
사제가 의심하는 사람은 휘왕과 영군왕 부자 두 사람이었으며 특히 영군왕을 제일 의심했다.휘왕은 평소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자주 왕래하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왕래가 잦은 사람을 뽑자면 송석석과 북명왕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평소에 저택에서 고청영과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경치를 구경하는 것에 진심이었으며 평생 먹고 노는 것이 삶의 목표기도 했다.그때문인지 저번에 그들을 보러 갔을 때 고청영과 휘왕은 살이 많이 쪄 있었다.송석석이 며칠 동안 조사했는데도 큰 진전이 없었기에 시만자를 데리고 휘왕 저택에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휘왕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기며 고청영에게 말했다.“어제 내가 직접 낚시해서 잡은 잉어를 회로 떠서 가지고 오거라. 피를 확실하게 빼야 한다. 그래야 더 맛있고 살점도 더욱 싱싱할 테이니.”고청영은 이내 노비를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시만자는 전보다 살이 더 찐 휘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요즘 너무 잘 드시는 것 아닌가요? 전보다 살이 더 찌신 것 같네요.”“만자야, 북명 황실에서 맛있는 거 안 해주면 바로 나한테 오거라. 네가 먹고 싶어하는 건 내가 다 해줄 수 있으니. 하하하!”휘왕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시만자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어르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진짜 이 집에 들어와서 살 수도 있습니다?”“얼른 오라니까. 내가 맛있는 거 잔뜩 해주마!”“그럼 나중에 황실이 지겨우면 바로 이리로 올게요. 살도 찌고 좋을 것 같네요.”시만자의 말에 곁에 있던 송석석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뭘 지겨울 때까지 기다려? 내일 바로 사람 시켜 네 물건을 이 저택으로 옮기면 되지.”시만자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입을 삐죽 내밀었다.“너 설마 오래전부터 날 황실에서 쫓아내고 싶었던 거 아니야?”“네가 이리로 오고 싶다고 했잖아. 왜 내 탓을 해?”휘왕은 차 한 모금 마시며 티격태격하고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이내 진수성찬이 차려졌고 평소에 날것을 먹지 않는 송석석과 시만자
감옥에 갇힌 지 6일이나 지날 동안 최씨는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는데, 송석석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져 있었다. 최씨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허리를 숙여 송석석에게 인사를 올렸다.“왕비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소인을 보러 오시게 만들어… 정말 죄송합니다.”송석석은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있는 최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까지, 평소에 단아하고 우아하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생이 많으십니다.”송석석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최씨가 초췌한 얼굴로 대답했다.“소인은 괜찮은데 아이들이 끝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왕비님, 황제께서 저희를 어떻게 처치할 생각이신 겁니까? 전부 죽이라고 하셨습니까…?”송석석은 최씨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힌 뒤, 차분하게 말했다.“폐하께서 그대들을 죽여 분풀이할 생각이었으면 진작 그러셨겠지요. 지금 폐하께서는 그대들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를 끌어내려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왕표 그자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으면 그대들은 선처해주실 겁니다.”“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그 사람은 절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최씨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럴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저희가 최대한 자수하게 만들 겁니다.”말을 하던 송석석은 들고 온 보따리를 풀더니 안에서 약들을 꺼내 최씨 앞에 놓았다.“바깥 상황은 걱정하지 마시고 최대한 자신을 잘 지키고 있으셔야 합니다. 제 사저가 사람을 보내 왕표 그자를 찾고 있고 오사형도 암암리에 부인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 바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에 부인께서 백성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병을 치료해준 게 꽤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부인을 위해 외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조용하게 듣고 있던 최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다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감옥에 갇힌 동안 최씨는 왕표만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분노가 차올
다음날 조정에서 허 어사는 어제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황제 폐하에게 전달했고, 곁에 서있던 목 승상도 고개를 끄덕이며 최씨를 칭찬했다.“최씨가 성 외에 점포를 차려 선행을 하고 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혼인을 한 여인이 저택 안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지만 최씨는 초심을 잃지 않고 선행으로 덕을 쌓고 있었습니다. 이는 충분히 널리 선양할 일이고 백성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선하고 박애한 여인이 자신의 부군이 저지른 죄 때문에 감옥에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제 상서도 말을 보탰다.“요 며칠동안 백성들도 전부 이 일에 대해서만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다들 최씨는 억울하다고 자발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폐하, 조심스럽게 소인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왕표 그자가 죽을 죄를 지은 건 사실이고 그 죄가 일가족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만큼 중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작위도 폐위했고 가문 전부를 몰수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그 가문 일가족들에게 약한 벌을 내리시길 부탁드립니다.”숙청제는 왕표의 가족들을 이용하여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길 바라기에 일가족들을 절대 풀어줄 수도, 약하게 처벌할 수도 없었다.“그건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공문서를 보내 왕표를 체포하고, 만약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한다면 일가족들은 엄하게 벌하지 않겠다는 방문을 붙이게.”최씨의 선행은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행동이었기에 숙청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어명을 받들겠습니다!”공양이 나서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한편, 송석석은 아직 관직을 회복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휴가를 보내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는 되레 그녀에게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편리를 주었다.그리고 황제의 어명은 이내 남강에 전해졌다. 남강군들이 이미 그에 대한 믿음이 강한 상태에 어명이 내려왔으니 더욱 자신감 있는 태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부에서는 새로 양산한 육안통을 남강
한편, 황실로 돌아온 송석석은 평서백부 일가족 모두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사실 그녀는 방금 전 궁에 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혹은 조금 더 일찍, 왕표가 야반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훗날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황제가 평서백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는, 왕표의 죄가 이미 일가족 전부에게 연대 책임이 생길 정도로 크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왕표가 스스로 나타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니 작위를 없애고 가문 전체를 몰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이렇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높은 작위로 계속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일한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송석석도 황제가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치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왕이장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모두 권위가 높은 세가들이 아닌 평민 백성들 뿐이었다.선견지명이 있는 최씨는 큰돈을 들여 성 외에 죽을 파는 점포를 차려 상황이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중병에 걸린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까지 했었다.하지만 노부인과 왕청여는 최씨가 하는 일에 극성으로 반대했으며 최씨가 큰돈을 낭비해가면서 자신의 명예를 쌓고 있는 거라고 비판했다.그렇기에 지금, 최씨를 도울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 방법 뿐이었다. 남강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거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최씨를 위해 황제에게 선처를 부탁하면 된다. 최씨와 왕표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기에 최씨를 위하는 것과 왕표를 위한 것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왕이장은 이내 사람을 시켜 왕표가 정실을 버리고 첩과 첩이 낳은 딸만 데리고 야반 도주한 사실을 널리 퍼트렸으며, 그가 나라를 버린 죄인으로 황제 폐하께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에게도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또한, 백성들에게 최씨가 부군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