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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5화

작가: 유애
다음날, 송석석은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만나 현철위에 있는 현갑군을 모두 휘하에 두고 자신이 통솔할 것을 제안했다.

숙청제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경사의 모든 병력을 너에게 넘기라는 말이냐?”

“현갑군입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다시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

“황제폐하, 신화영을 포함한 경외 위소의 병마 15000은 모두 연주로 파견되었으니 경사에 남은 현갑군은 더 이상 흩어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숙청제는 방금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 친위를 포함한 경사의 모든 병력을 너에게 맡기라는 것이냐?”

그러자 송석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숙청제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네 부군은 남강에서 남강군을 거느리고, 네 외조부와 외숙부는 성릉관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데다 목종욱은 네 아버지의 옛 부이고, 방시원은 너희가 구해온 것이지. 그런데 지금 진성의 모든 병마를 너에게 넘기라니. 송애경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왕야께서는 남강에서 병사를 거느리며 적을 물리치고, 외조부와 외숙부는 성릉관에서 서경과 저항하고 있습니다. 목종욱 장군은 도적떼를 토벌하고, 방 장군은 군사를 거느리고 역적을 포위하러 갔습니다. 저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상국의 땅과 백성들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에 숙청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그의 눈빛을 더욱 서늘하게 했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나라와 모든 사람의 생명을 모두 너희에게 맡기는 것이 될 텐데, 그게 얼마나 큰 믿음이 필요하는지 아느냐?”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숙청제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상주문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 너의 제안을 허락하마. 참, 태후가 지금 대황자를 돌보고 있으니 나는 혜태비와 서우를 궁으로 불러들여 서우와 동반해서 공부를 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이것은 송석석의 의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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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이 북명황실로 돌아오자마자, 심청화는 화가 나 있는 그녀를 위로했다. “혜 태비와 서우를 궁에 들여보내면 좋지 않으냐? 적어도 역적이 정말 쳐들어오면 궁 안의 수비가 가장 삼엄하고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니 서원이나 황실에 머무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 송석석은 답답한 마음에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승낙한 것인데 여전히 화가 납니다. 그는 서우와 혜 태비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인질로 삼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황궁의 안전을 사수할 테니까요.” 역적이 진성에 쳐들어오면 먼저 북명황실을 토벌할 것이고 이용할 만한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외조부와 왕야를 통제하는 데 사용할 것이었다. 송석석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황제의 행위가 짜증 날 뿐이었다. 그리고 혜 태비와 서우가 궁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녀는 그들을 잘 배치할 수 있었다. 비록 황제가 말끝마다 강산을 지켜야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서 강산은 자신의 것뿐이다. 그는 줄곧 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의 가족을 억류하고, 무슨 일이 있든 그들의 동기와 야망을 의심해왔다. 송석석은 그런 그가 너무 지겨웠다. 그러자 심청화가 그녀의 비녀를 만지며 말했다. “됐어. 근데 넌 현갑군을 통일하고 싶지 않아?” “그가 제가 통일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그러는 것일 겁니다.” 송석석은 마음이 답답했다. 통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지금 상황에 각자의 우두머리가 있긴 하지만 역적이 쳐들어온다면 그들은 오합지졸일 뿐 정예가 아닐 것이었다.그러자 심청화가 말했다. “사람에게 권력이 생기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음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너도 불평불만을 모두 털어버리고 네 일에만 전념해. 그렇게 해서 일이 성사되면 우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이 사실을 서우의 외숙부께 말씀드려야 해요.” 송석석이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27화

    송석석은 혹시라도 사여묵의 기분에 영향이라도 미칠까 봐 혜 태비와 서우가 입궁한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그러고는 곧이어 사여묵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는 두 번째 전투의 승전보와 함께 보내온 것이었다. 숙청제는 특별히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편지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송석석은 사제가 일부러 편지를 황제에게로 보낸 것이 그들 부부 사이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황제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비록 표면적인 일이긴 했지만 숙청제에겐 효과가 있었다. 그가 지난번처럼 능청스럽게 웃지 않고 송석석에게 남강의 전쟁은 승리가 코앞에 다가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까지 했기 때문이다. 송석석은 물러나자마자 자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혜 태비와 서우를 보러 갔다. 하지만 서우와 진소설이 대황자를 동반해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탓에 만나지 못했다.게다가 대황자의 스승도 바뀌어서 지금은 안태부가 직접 가르치고 있었다.예전에 숙청제도 안태부에게 제안한 적이 있었지만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완곡히 거절했었다. 하지만 서우가 궁에 들어오자 바로 승낙한 것을 보면 분명 송회안의 체면을 봐서 그런 것 같았다.숙청제는 자신을 제치고 다른 사람을 선택한 것에 기분이 나빴지만, 이것 또한 자신에게 이득이 있는 일이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혜 태비가 덕귀태비 궁으로 가서 송석석은 혜 태비도 만나지 못했다.“예전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궁으로 돌아오니 또 친자매처럼 지내다니. 이 친언니보다도 더 좋은 가 보구나.”태후는 혜 태비를 탓하면서도 입가의 웃음기는 억누를 수 없었다.그러자 송석석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무슨 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비록 함께 있을 때 말다툼을 해도 오래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그런 거지요.” 태후는 미간을 비비며 약간 피곤한 기색을 띠었다. “그러게 말이다. 가족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느냐? 때론 화가 나다가도 때론 또 그립고.” 송석석은 태후의 말에 대답하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서우가 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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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만자는 송석석의 책상 앞에 엎드려서 말했다.“이 편지를 여러 번 보지 않았어? 왜 계속 보는 거야?”송석석이 답했다. “그가 떠나기 전에 영군왕에 대한 말을 했었는데, 아마 부분 요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는 상황이 긴박할수록 머리가 좋아지는데, 최근에 뭔가 나한테 힌트를 주려고 하는 것 같아.”그러자 시만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럼 편지에 직접 쓰면 되지 왜 힌트를 주는 거야?”“이 편지는 황제폐하께서 받으시고 나한테 다시 전달한 것이야. 그러니까 그가 스스로 추측해서 분석한 것이라면 편지에 직접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지. 그리고 이 편지 황제폐하께서 뜯어보신 것 같애.”그러자 시만자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화를 냈다.“왜 다른 사람의 편지를 보고 그래? 그나저나 왜 너에게 따로 보내지 않고 황제폐하께로 보낸 건데?”“그래야 급보가 빠르니까. 단독 서신에 자신의 추측이 들어있으면 모함의 누명을 씌울 수가 있어서 위험하기도 하고.”송석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세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휘황실에서는 뭐 좀 찾아냈어?”시만자가 노 휘왕이 일부러 그들에게 그날 밤 바깥의 동정을 듣게 하고 백 명의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며 상황을 대충 설명해주었다. 송석석은 노휘왕이 대체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와 영군왕이 그 안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그런데 그 병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문제였기에, 송석석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지금 영주에서 파견하는 건 아니겠지.영주에서 출발하려면 연주를 지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방시원의 손에 넘어갈 텐데.그렇다고 만약 흩어져서 온다면 규모가 너무 커서 목종욱에게 발각되어 섬멸 되어버리고 말텐데…’여러 해 동안 연왕의 등 뒤에 숨어있었으니 절대 이 정도 간단한 수단일 리는 없었다. “노휘왕에게는 무슨 이상이 있었어?” 송석석이 물었다. “삶을 잘 즐기던데. 잘 먹고, 잘 놀고, 심지어는 연극도 보고.” 송석석이 의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휘왕이 외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31화

    송석석이 수로 시공과 기초 방죽 공사에 대해 묻자 선평후는 바로 도면을 꺼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공사 규모가 꽤 클 것 같습니다. 전부터 시공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그때 당시엔 전쟁으로 국고에 금전이 부족한 탓에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매년 수로에 막힌 흙만 청소했는데, 작년부터는 진성의 여러 수로에 기초 방죽을 진행하고 쌓인 흙들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아마 올해 연말쯤이면 대부분 공사가 끝날 것 같습니다.”송석석은 예상보다 더 큰 공사 규모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그럼 기초 방죽 공사와 수로 청소에 어떤 자들을 쓰고 있는 겁니까?”선평후는 송석석이 이 공사로 국고의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되어 전쟁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 답했다.“일부는 노역이고 일부는 노동자를 고용한 것입니다.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을 전부 합치면 2만 명 가까이 될 겁니다. 매일 식비도 많이 들어서 노동자들에게 주는 노동비를 감소하였습니다. 다행히 그중 만 명 정도는 노역이기에 밥만 주고 노동비는 따로 챙겨줄 필요가 없습니다.”“현재 하도 공사를 관리하고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수부사 김창명입니다.”“어느 지역 분이시죠?”“연주 사람입니다. 공부에서 임직한지 7년이 넘으셨고, 2년 전에 수부사로 승진하셨습니다. 김창명 이자는 일도 잘하고 박력도 넘칩니다. 지금까지 수로 공사를 거의 대부분 도맡아서 하셨고 공사 기간도 짧아서 폐하께서도 높이 평가하신 분입니다.”말을 하던 선평후가 잠시 흠칫했다. 김창명이 연주 사람이고 현재 연주에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순간 떠올라, 그제서야 송석석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노역과 노동자들은 전부 김창명이 오랫동안 쓴 사람들이고, 매년 수로를 청소한 것도 다 같은 사람들이었다.그들이 꿍꿍이를 품고 손을 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김창명이 임직한 이 몇 년 동안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연왕 패거리의 짓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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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명의 정보 자료는 염구진에게 전달되었다.김창명은 현재 47세, 연주 사람으로 13살 때 수재가 되어 18살에 향시에 합격했었기에, 그때 당시 연주에서 신이 내린 인재라고 불리우기도 했다.하지만 향시에 합격하고 나서 중병에 걸린 모친 때문에 주춤했다가 결국 진성에 올라와 시험을 보지 못하고 연주 현지 관청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후에는 연주부의 보좌관이 되었다.그의 승진 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연주나 공부에서의 평가도 매우 높았다. 사부에서 3년에 한 번씩 시험을 보는데, 이 또한 매년 우수한 성적을 이뤘다. 심지어 현재 하도사를 하고 있는 것도 인재를 매몰시키는 일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그 중 일부 사람들은 김창명이 인맥이 없어서 겨우 하도사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했으며 인맥이 조금 넓었다면 공부 시랑도 가능했을 거라고 평가했다.대상에는 김창명과 같은 관원들이 많았기에, 그는 비록 관직이 높진 않지만 일을 잘하고 야망이 크지 않지만 조용하게 자기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에 속했다.그렇기에 그가 특별히 화제성을 일으킨적이 없었으며, 가족도 부인 한 명에 첩 한 명, 그리고 아들과 딸, 노비 세 명이 전부였다. 전에 살던 집도 남의 집이었으며 2년 전에 겨우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을 사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하도사의 수입이 꽤 짭짤한 편이기에 2년 전에 겨우 집을 산 걸 보면 지금까지 청렴한 관리를 이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염구진이 김창명의 부하 관사 몇 명이 그보다 훨씬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었다. 부하가 받는 돈이 김창명보다 많을 리가 없는데 김창명보다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건 그들이 공사 비용에 몰래 손을 댔다는 뜻이다.김창명 등잔 밑에서 탐오했는데 김창명이 과연 아무것도 몰랐을까? 절대 그럴 리는 없을 것이기에 이 또한 매우 이상한 점이었다. 뻔히 부하들이 탐오하도록 내버려두면서도 자신은 가담하지 않았으니, 진정한 청렴 관리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33화

    제 제사가 송석석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은 추몽이었다.추씨 가문 조상이 예전에 나라를 세우는 전쟁에 참여하면서 정방후로 책봉되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추몽이 선황제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결국 지위가 평안백으로 강등하게 된 것이었다.이 때문에 진성을 떠난 추몽은 강남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고 이제 진성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 “추몽 이자는 한평생 혼인하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추씨 상호가 바로 그의 것입니다.”홍시의 말에 송석석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이자가 바로 추씨 상호 배후의 진정한 주인이라고?”추씨 상호는 강남 일대에서도 알아주는 백년도 넘는 노점이었으며 재산이 시씨 가문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많았고, 여러 업종을 종사한 덕분에 주인의 인맥도 매우 넓었다.하지만 상국에 추씨 성씨를 가진 사람이 꽤 많기도 했고, 추몽이 오래 전부터 은둔 생활로 사람을 전혀 만나지 않았던 탓에 그가 추씨 상호의 주인인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홍시는 애초의 초씨 상호는 추몽의 것이 아니었는데 추몽이 강남으로 떠나고 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추씨 상호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어 더 이상 경영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자, 추몽에게 판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하게 듣고 있던 송석석은 그제서야 궁금함이 풀린듯 감개무량하게 말했다.“다들 참 깊게도 숨었네.”홍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추몽 그자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자식도 없고 형제 자매들과 왕래도 끊었잖아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혹시 선황제께서 자신의 작위를 낮춘 게 억울해 복수라도 하고 싶은 걸까요?”송석석도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을 풀기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다.그러니 일단은 선황제가 어떤 이유로 추몽의 작위를 거두었는지 알아내야 하는데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제 제사와 목 승상밖에 없었다. 송석석은 두 사람 중 누구를 찾아가야 추몽의 원망과 미움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겨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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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9화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8화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7화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6화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5화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4화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3화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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