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199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29 20:00:00
송석석은 속으로 너무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동안 남풍관 일로 밤에도 외출해야 했기에 아군 서원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청화는 전에도 계속 여학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당부했는데 송석석이 여학에 사람 몇 명만 더 보냈어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조부의 공 대인이 직접 현장에 출동한 걸 보면 경조부에서는 이 일을 매우 중시한다는 뜻이다.

총 여섯 명의 범인은 전부 밧줄에 묶여 있었고, 뺨 몇 대를 때리자 안여옥을 침범하려고 했던 남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사실대로 순순히 자백했다.

범인 여섯 명은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매일 무거운 물건을 나르면서 돈을 벌었지만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해도 푼돈밖에 받지 못했다.

어젯밤, 부둣가 주인장이 작은 술자리를 마련했고 아홉 명이서 둘러 앉아 술을 마셨으며 그러던 중, 누군가가 그들에게 맡길 일이 있다고 하면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인당 50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군 여학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는 것이며 딱히 할 것도 없이 그저 여학생들에게 겁만 주고 뒷문으로 빠져나가면 된다고 했다.

매일 부둣가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들도 마냥 순진하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쉬운 일을 하고 많은 돈을 준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50냥이란 그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2년을 넘게 무거운 물건을 날라야 벌 수 있는 돈인데 여학에 쳐들어가는 것만으로 그 큰돈을 준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 중에서 두 명은 거절했고 부둣가 주인도 당연히 거절했으며 나머지 여섯 명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동의했다.

그렇게 하룻밤이 흘렀고 여학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부둣가 주인은 그들에게 술 한 잔씩 먹였으며 절대 긴장하지 말라고 그들을 다독였다.

그들 중에는 진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에도 겁이 제일 많았기에 불안한 마음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있고, 아내는 셋째를 임신한 상태라 진한은 돈이 매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0화

    범인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으며 특히 안여옥을 침범하려고 했던 진한은 통곡하면서 부러진 다리로 무릎을 꿇은 채 송석석과 공 대인에게 애원했다.“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돈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집에 아픈 아버지도 있고 셋째를 임신한 아내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끌려가면 제 가족들은 어떡합니까?”진한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울부짖었지만 공 대인은 차갑게 명령할 뿐이었다.“끌고 가!”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건 절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그렇게 잔뜩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여학은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으며 한데 둘러앉은 사람들은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홍현은 말없이 난로를 피웠고 서원 안은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서원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국태 부인과 정씨 부인 그리고 무씨 아가씨와 안여옥, 송석석에 이어 홍현까지 말이다. 한편, 송석석은 이내 죄책감에서 벗어나 정신을 번쩍 차렸으며 계속 미안해하고 있기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너무 많은 명문 가문과 관직자의 딸이 연루되어 있기에 반드시 확실하게 처리하여 하루 빨리 그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유일하게 피해를 입은 안여옥도 떠나지 않고 함께 방법을 고민했다.사실 송석석은 조금 전에 사람들에게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자신은 염 선생에게 찾아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상해를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는지 상의해보려고 했지만 다들 끝까지 서원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안여옥의 마음도 위로해야 할 뿐더러 어떻게든 힘을 보태서 곧 외부에 터진 소문을 막고 싶었다.이 일이 안여옥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힐지 다들 잘 알고 있었으며 내일만 되면 안여옥에게 악언과 유언비어들이 폭우처럼 쏟아질 것이다.안여옥이 피해자라는 사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그저 그녀가 남자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했고 순정을 잃었다는 말만 떠돌

    최신 업데이트 : 2024-12-29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1화

    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백성들이 이미 삼삼오오 모여 오늘 아군여학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여학과 공방은 원래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큰일이 터졌으니 떠들썩 하지 않을 수 없었다.더군다나 이 일은 태부의 손녀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귀하디귀한 여인이 한 상스럽고 천한 자에게 농락당했으니, 앞으로 어느 집안의 자제가 감히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어리석다고 말했다. 고귀한 집안의 규수로서 조용히 살면 될 것을 굳이 여부자가 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 평생을 망쳐버렸다고 말이다.송석석은 일부러 말을 천천히 몰며 백성들 입에서 안여옥이 학생을 보호했다는 칭찬의 말을 듣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런 말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현갑군 지휘사를 맡게 된 이후로 그녀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암살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으며 모든 일을 늘 완벽하게 해낼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공방 역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그 모든 일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뭐든 서두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 일은 그녀의 정신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렸다.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워 스스로 자책했다. ‘조금만 더 잘 대비했더라면...... 어쩌다 이렇게 경계심을 놓아버린 걸까? 사여묵이 진성을 떠난 이후 이별의 슬픔에 잠겨 마음이 흐트러져서 경계를 소홀히 했던 걸까?’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예측했음에도 예방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황실로 돌아온 그녀는 홀로 의사당에 앉아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선생이 급히 돌아왔다. 그 역시 이 일을 듣고 경조부에 가서 알아보았다. 왕비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황실에 도착하니 왕비가 의사당에 쓸쓸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염

    최신 업데이트 : 2024-12-29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2화

    태후는 평소 정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으나 오직 이 여학만은 특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직접 명을 내려 세운 것이니 말이다.“혹시 여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집안 내부에서 벌어지는 다툼일 수도 있지 않을까?”송석석이 묻자 염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범위가 너무 넓어지겠지요.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많은 집안이 겉으로 보기엔 본처와 첩의 사이가 화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었다. 첩은 아무리 귀한 첩이라도 본처 앞에서는 감히 건방진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주군이 첩을 편애해 본처의 지위가 흔들릴 때이다. 이럴 때면 본처와 첩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온갖 더러운 수단이 동원되기도 한다.본처와 첩이 각각 딸을 두었는데, 본처의 딸은 아군여학에 들어가고 첩의 딸은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아군여학에 정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첩이 본처의 딸의 명예를 망가뜨리기 위해 다른 이들까지 엮어서 함께 수치를 당하게 만드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이는 인식의 한계가 상황 판단을 흐리게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하는 일을 완벽히 감춰졌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도 꽤 은밀히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니 입막음으로 살인까지 한 것이 아니겠는가.만약 이러한 상황일 경우엔 조사해야 할 범위가 너무나 넓어진다.송석석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우선 경조부에게 그 작업반장을 조사하게 해야겠다. 그가 평소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 누구의 일을 봐준 적이 있는지 전부 다 알아보게 말이야. 그때 가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그리고 여론도 안여옥을 도와줘야 하니, 내가 옷을 갈아입고 입궁해 태후께 이 일을 아뢰고 오겠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죄를 씻기 위해 찾아뵙는 셈이지.”유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석석이 입궁해 죄를 청하겠다고 하자, 혜 태비가 나서며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내가 함께 가

    최신 업데이트 : 2024-12-29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3화

    송석석이 궁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시만자가 급히 들어와 그녀를 한쪽으로 데려갔다.“여학 사건 말이야, 황제와 황후의 짓인 것 같아.” 시만자의 표정은 심각했고 눈에는 은근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송석석은 뜻밖의 소리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황제와 황후? 누가 그런 말을 했어?”“장기문이. 그가 황제가 황후에게 멋대로 굴었다고 꾸짖는 소리를 들었대. 황후는 변명하며 황제도 여학을 좋아하지 않으니 네가 진성의 권력 있는 명부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도록 자신이 황제의 걱정을 덜어드린 거라고 했다는 거야.”송석석은 이 말을 듣자마자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냉정을 잃으면 안 돼. 이 일을 장기문에게서 들었다는 걸 들키면 그의 앞날이 망가질 거야.” 시만자가 말했다.송석석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도 과감한 추측을 해본 적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를 의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비록 황후에 대해서는 의심한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그리고 황후는 지금쯤 대황자를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어야 했다. 이럴 때 이렇게 세가를 적으로 돌려서 무슨 이익을 본단 말인가? 비록 이번 일이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애초에 이런 일을 계획했다면 그 결과도 충분히 예측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 작업반장이 죽지 않았다면? 혹은 그 작업반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렸다면?장기문이 한 말을 잠시 생각해보니, 황제 역시 여학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황후가 여학을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황후를 꾸짖은 이유는 여학을 공격한 행위가 아니라 그 방식 때문이었다.즉, 그가 화를 낸 건 수단 때문이지 황후의 행동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송석석은 순간 자신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황제의 생각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도 사여묵을 부려 명절에 그를 노주로 보내면서, 그는 황제임에도 정작 그녀가 서원의 훈장이 되어 세가의 명부들과 교류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더욱 받

    최신 업데이트 : 2024-12-29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4화

    연말이 다가오자 백성들은 설 맞이 장을 보느라 바빴다. 각 집안은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분주했다.하지만 분주한 만큼 사람들 사이의 교류도 늘어나게 되면서 온갖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 태후가 안여옥을 칭찬하며 내린 하사도 효과가 크지 않았고, 오히려 태후가 직접 칭찬한 것이 안여옥이 단순히 모욕만 당한 것이 아닐 거라는 의혹으로 이어졌다.심지어 이 의혹은 점점 사실로 되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듯했다. 북명황실이 나서서 공정한 말을 하거나,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이 나와 안여옥이 학생들을 보호하다가 그 인간에게 잠시 몸이 닿은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백성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백성들은 신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했고, 신을 무너뜨리는 일에는 더욱 열광했다.과거 안여옥의 규수로서의 명성,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 훌륭한 집안 출신을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만큼 배로 그녀에게 악의를 퍼부었다.그녀의 과거까지 들춰내며 사실 그녀는 고고하고 자만하여 사람을 깔보고 학문이 부족한 동료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장공주의 연회에서 사슴을 말이라 지칭하며 분명 그 그림이 심청화 선생의 작품이 아님에도 우긴 적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그 당시 안태부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할 수 없이 사슴을 말이라 칭했고 또 그것이 심청화 선생의 작품이라 주장했지만, 사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모두 비웃었다는 것이다. "심청화의 인장도 아니었는데,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누가 비웃지 않았겠어? 다만 체면을 봐서 들추지 않았을 뿐이지.”또한 그녀의 시와 그림이 명백히 표절이며, 이는 안태부가 그녀의 명성을 높여 북명왕과의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북명왕은 차라리 재혼한 여성을 선택할지언정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그녀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차선책으로 방시원에게 시집가기를 꿈꿨으나, 방시원은 어리석지 않아 그녀의 속셈을

    최신 업데이트 : 2024-12-29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5화

    문 앞의 이야기꾼들을 쫓아내고 나니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이번에는 중매쟁이들이 번갈아가며 안여옥을 위한 것이랍시고 혼담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그들이 말하는 혼처들은 안여옥의 부모의 얼굴을 울긋불긋하게 만들 정도로 황당한 인물들이었다. 평소에는 청혼은커녕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침을 뱉고 지나갔을 법한 이들이었다.집안 배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의 품행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통방과의 사이에서 이미 서장자와 서장녀를 둔 사람이었고, 어떤 이는 매일 도박장에 들러 두 눈이 빨개지도록 돈을 탕진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자였다. 또 어떤 이는 기루의 단골 손님이거나, 바깥에 첩을 둔 사람이었다.이들은 평소라면 감히 청혼하러 올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같이 은혜라도 베풀듯 거만하게 굴며 안여옥이 자신들과 혼인하지 않으면 다른 길은 없을 것처럼 굴었다.안태부는 평생 이렇게 큰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사람들을 쫓아냈지만, 결국 또 새로운 구설수만 만들어졌다.이 일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단 한 마디로 요약되었다.‘웃음거리.’"마치 그녀가 아직 선택할 여유가 있는 것처럼 굴지만, 누군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주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조상님 덕분이지.""그 더러운 남자에게 안겨 순결도 잃은 주제에 여전히 체면 따위를 챙기겠다고?""평생 시집가지 못할 팔자지. 누가 그녀를 데려가겠어? 빨리 머리 깎고 여승이나 되라지. 여자들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남자도, 여자도 가리지 않고 이런 말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본인들이 당하는 일이 아니기에, 모두혀끝으로 상대를 아프게 하며 즐거워했다.이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즐거워한 사람은 바로 제자예였다. 그녀는 원래부터 안여옥을 몹시 싫어했다. 황후가 그녀에게 안여옥을 괴롭히고 골칫거리를 만들라고 했을 때, 그녀는 이미 안여옥을 자신의 적으로 삼았다.그래서 이번에 안여옥에게 일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친구 주창우를 찾아가 함께 안여옥 이야기를 하

    최신 업데이트 : 2024-12-29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6화

    제자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이 너무나도 창백해졌다.그녀는 여전히 왕지아에 대한 분노가 남아 있었다. 방시원을 두둔한 사람은 다름아닌 왕지아였다. 그 몇몇 집안의 엉망진창인 상황들은 듣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방씨 가문의 내실이 이렇게 어지러운데, 그렇게 큰 저택에서 이런 추잡한 일이 벌어진 사실을 감추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그녀는 충동적으로 왕지아의 뺨을 때렸지만, 잘못은 여전히 왕지아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방시원을 두둔해서는 안 되었고, 그런 사람들과 그런 일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주창우는 훌쩍이며 눈물을 흘렸고, 제자예는 한참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제자예는 머리가 너무나도 복잡해졌다.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다가 끝내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사실 여학으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은데, 하황후께서 여학을 싫어하시니까…”지나치게 보호 받으며 자란 소녀, 제자예는 일의 심각성을 알지도 못한 채 결국 주창우에게 사실을 말해 버렸다.그러자 주창우는 순간 울음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황후께서 싫어하신다고? 왜 여학을 싫어하신다는 거야? 여학은 태후께서 명을 내려 세우신 거잖아.”“아마도 북명왕비가 훈장으로 있기 때문일 거야. 예전에 내가 큰어머니를 따라 궁에 갔을 때, 황후께서 큰어머니에게 하시는 말을 들었거든. 황제께서 원래 북명왕비를 궁에 들여 후궁으로 삼으려 했었대. 그래서 황후께서 줄곧 북명왕비를 싫어하셨어. 그러니 그녀가 세운 여학과 공방도 당연히 좋아하시지 않겠지.”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갖다 댔다.“이건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돼. 비밀이야.”주창우는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을게.”그러고 나서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그 사람들은 도대체 왜 갑자기 들이닥쳐 사람만 보면 모조리 안으려고 한 걸까?" “그러게 말이

    최신 업데이트 : 2024-12-30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7화

    안여옥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은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염선생이 조사한 결과, 실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를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의 일들이 하나하나 끄집어내져 그녀와 여학을 얽매는 방식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안여옥을 깎아내리는 것은 곧 안태부를 깎아내리는 것이었고, 동시에 아군여학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이어졌다.안태부와 제제사는 학문의 거장으로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안태부는 신격화된 위치에서 추락해 사람들의 존경을 잃어갔다. 반면, 사람들은 제제사를 치켜세우기 시작했다.흥미롭게도,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제상서의 외실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거론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제씨 가문을 치켜세우는 여론은 제씨 가문에도 이득이 되지 않았다. 권세가 지나치게 드러나면 반감을 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씨 가문은 여론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염선생이 지켜본 결과, 제씨 가문은 실제로 여론을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다시 화제를 여학과 안여옥으로 돌려, 안여옥의 혼사와 관련해 그녀를 깎아내리고 모욕하는 일이 계속되었다.염선생은 참을 수 없이 분노했다. 안여옥처럼 깨끗하고 순결한 여인이 이들에게 이렇게 더럽혀지다니, 정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그녀를 모욕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이 진심으로 청혼을 하러 오기도 했다. 물론 품행이 바르지 못한 하찮은 인간들이었지만, 그래도 결혼 의사는 있었다.하지만 이후에 찾아온 이들은 순전히 안여옥을 모욕하려는 의도로만 왔다. 보기 흉한 이들이 몰려왔고 청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꼬는 말들을 내뱉었다. 제부에 들어가지 못하면 대문 밖에서조차 선심을 써 그녀를 데려가 주겠다고 외쳐댔다.염선생은 사람을 시켜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두었다. 나중에 이들을 조사한 뒤 응징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무리가 이들의 이름을 적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이 사실을 송석석에게 보고하자, 누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

    최신 업데이트 : 2024-12-30

최신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9화

    송석석은 답장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은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저 그리움만 가슴에 품은 채 그가 돌아오면 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올 설은 화려하게 지낼 모양인지 그녀가 경위부로 돌아가 다시 관복을 입지 못하게 하려고, 보주는 새 옷을 전부 그녀에게 한번씩 입히지 못해 안달이었다.매일 아침 일찍 보주는 그녀를 화장대 앞에 억지로 앉히고 이런저런 화장법을 바꿔가며 그녀를 예쁘게 꾸몄다. 목 승상 부인은 여자가 피부가 그렇게 희고 부드럽지 않아도 아주 예쁘다고 말했다.송석석의 피부는 희고 부드럽지 않았는데 매일 밖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바탕이 아무리 좋아도 규방 여자의 새하얀 피부색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붉게 윤기가 도는 구리빛 피부는 가장 아름답게 핀 복사꽃 같고 잘 익은 사과 같기도 했다.황후는 섣달 8일에 금족령이 풀려 수도 내외명부 부인들에게 입궐하여 알현하라고 선포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항간에 소문이 돌았다. 그 집 아가씨는 원래 위국공 집안의 조카와 혼인할 예정이었으나 여학 사건때문에 혼사가 어그러졌다는 것이었다.따라서 곧 개학을 앞둔 시점에 자신의 딸을 아군여학에 보내야할지 말지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일부는 결단을 내려 국태부인에게 가서 딸을 자퇴시켰다.한 명, 두 명, 세 명….자퇴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고작 2~3일만에 무려 절반이 자퇴하겠고 했다.황후가 이 얘기를 듣고 여러 부인들에게 입궐하라고해서 설득했다. 여자에게 평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시집을 가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니므로, 북명왕비처럼 그렇게 자기 주관이 있고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이런 말이라면 차라리 하지를 말지, 이 말을 듣고 명문세가 부인들이 속으로 구시렁거리지 않을 수 있겠어?’상국엔 송석석 하나 뿐이라 흉내를 낼 수도 없고, 자기 딸이 어떤지 자기가 모를까? 전쟁에 나가 병사를 관리할 능력은 절대 없고, 바퀴벌레만 봐도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데 좋은 혼처라도 기대지 않으면 어떻게 평생을 책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8화

    송석석이 저택으로 돌아오자 염선생이 사여묵에게 온 서신을 그녀에게 건내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오늘 막 집을 나서사지마자 왕야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송석석은 눈을 빛내더니 서신을 받아들고 서둘러보기 전에 일단 물었다.“염선생은 어째서 가족들과 설 쇠러 집에 안 가?”“곧 돌아가서 가족들과 연말연시를 맞을 참입니다. 왕비 마마께 직접 서신을 전해드리려 기다린 거예요.”염선생이 놀리는 눈빛으로,“왕비 마마의 기뻐하시는 모습도 보고 싶고, 왕야께서 부부 간의 배갯머리 송사 말고 다른 얘기도 하셨나 궁금하기도 하구요.”송석석은 기쁨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건 장군이 보낸 첫 서신이니까 내가 먼저 봐야지.”그녀는 서신에 분명 상황을 조사한 것이 있을 게 분명해서, 나중에 서신을 염선생에게 훑어보게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서신을 개봉해 보니 3장으로 나눠져 있었다. 2장은 그녀에게 쓴 것이고 다른 1장은 조사 상황을 설명한 것이었다.염선생이 웃으며 말했다.“왕비마마께 쓰신 건 빼곡하게 2장이나 되는데, 조사내용은 고작 한 장이라니, 이번에 지방까지 가셔서 왕야께서 마음 고생이 심하신가 봅니다.”송석석은 쑥스러워하며 재촉했다.“어서 봐, 방금 쓱 훑어본 거라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단 말야.”염선생이 조사 내용을 적은 한 장을 바로 읽기 시작하더니 다 읽은 뒤 송석석에게 말해주었다.“노주에 도착한 뒤 한동안 은밀하게 조사한 결과, 어느 마을에 전부 젊고 건장한 장정들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인도 아이도 없고 평소 농사를 짓는데 현지 사람들 말에 따르면 전에는 남녀노소가 다 있던 평범한 마을이었으나 몇 년전 역병이 돌더니 노인과 아이들이 다 죽고 점점 타지 사람들이 와서 살더니 오랜 세월 발전해서 이렇게 커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마을은 이미 촌락 규모를 넘어서 거의 5천명에 달한다고 하는 군요.”“5천명?” 송석석은 듣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마을이 커 봤자 수백 명, 천여 명이면 이미 인구가 많다고 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7화

    제제사는 당황해 고개를 돌려 송석석을 보는데 뜻밖이란 표정이 역력했다. “왕비 마마께서는 늙은이가 잘못 말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자신이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헤 태비가 손을 내밀어 송석석에게 오라고 손짓하며 제제사와 말다툼하지 못하게했다.혜 태비는 선황을 사랑해서 제제사를 상당히 존중했다. 오죽하면 사여묵을 제씨 집안 딸과 혼인시킬까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결국 자기 딸 한녕을 제육 공자에게 시집을 보냈으니 뜻은 이룬 셈이었다.그리고 제사가 설령 훈계조로 송석석에게 얘기했다 치더라도,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타이르는 것이라 송석석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도리였다.제제사의 말투가 약간 비아냥거리는 것이 혜 태비도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그녀의 며느리가 교양이 없지는 않으니 그 정도 불편한 건 상대의 신분을 봐서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웃어른을 공경해야지.’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제제사를 똑바로 쳐다봤다.“제사님 말씀이 틀렸습니다. 저는 비록 사람을 가르칠 능력은 없으나, 아군서원을 위해 길을 트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잘못은 여학을 없애기 위해 그토록 많은 학생의 정절을 망치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을만큼, 인간이 이토록 사악하다는 것을 모른 죄입니다. 제사께서 꾸짖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군서원을 없애려고 음모를 꾸민 놈들이지요.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는 전문성이 있으니 채용되었을 것입니다. 설마 아군서원의 선생님들이 전부 능력도 없는데 명예만 믿고 설치는 무리란 말씀은 아니시죠? 제 사형인 심사형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태부인과 정부인 중에 어느 분이 현명하고 능력있는 분이 아니란 말입니까?”송석석의 말에 제제사는 약간 화가 났다.“늙은이가 몇 마디 지적한 것은 다 마마를 위한 것인데, 말 끝마다 토를 달고 변명하시는군요. 여학은 여학일 뿐, 서원과는 다릅니다. 서원이란 이름을 붙인다 한들 가르쳐야 하는 건 아내로의서 덕과 여계(女誡. 여성 교양)지요. 심청화는 확실히 재덕을 겸비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6화

    그런데 연극이 끝난 뒤에도 첩여 동씨는 내내 그녀와 얘기를 계속할 줄 몰랐다. 얘기 도중에 애교스런 미소를 짓기도 하고, 송석석을 손으로 살짝 밀며 뾰로통한 모습을 보이질 않나 송석석과 꽤나 친한 것처럼 보였다.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이 주변 비빈들의 주목을 끌어, 몇 번이고 엿보며 지나갔다.말이 주고 받는 거지, 사실 송석석은 가끔 맞장구를 쳐주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체면상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민지 장공주와 한녕 장공주마저 연극를 다 본 뒤 개인적으로 송석석에게 물었다.“원래 동첩여를 알고 있었어?”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아뇨, 처음 뵀어요.”“처음 봤는데 그렇게 친해요?” 한녕이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오히려 민지 장공주는 짐작이 가는게 있어 미간을 찌푸렸다.“앞으로 동첩여와는 자주 왕래하지 않는 게 좋겠어. 동기가 불순해.”송석석도 사실 알고 있었지만 아까는 다들 연극을 보는 중이라,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나면 태후마마와 태비 마마의 흥을 깰 수도 있어 자제했을 뿐이었다.그리고 송석석은 첩여 동씨가 멍청하진 않지만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연극이 끝나고 송석석은 마음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숙비와 공비 등이 힐난의 눈길을 던지는 걸 못 봐서 오히려 허전했다.송석석은 후궁들의 사정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궁중의 몇몇 마마들의 성격은 알고 있었다. 그분들은 총애를 받는 새 사람을 받아들여 주시지만, 새 사람이 지나치게 손을 뻗칠 경우 가만 두고 보실 리 없다는 것을 말이다.게다가 첩여 동씨는 잘 아는 것도 없으면서 경솔하게 행동했다. 황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송석석인데 첩여 동씨가 그녀와 잘 지낸다는 말은 바로 황후에게 눈엣가시요 목에 걸린 생선뼈로 찍힌다는 소리였다.궁연이 시작될 때 송석석은 제제사를 봤다.그녀가 계속 어화원을 왔다갔다한 건 바로 제제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으나, 계속 피할 수만은 없으니 언젠가 마주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5화

    궁연 시작 전, 송석석은 태후의 처소에 잠시 들렸다가 덕비와 공비의 처소를 방문한 후, 한녕과 민지 등 몇몇 장공주들과 함께 어화원을 거닐었다.민지 장공주는 오늘 정홍색에 청란을 수놓은 예복을 입고,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어 한층 더 고귀해 보였다. 그녀는 손에 든 둥근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듣자하니 제씨 가문을 향한 탄핵 상소가 올라간 후, 제제사가 가문의 사람들을 불러들여 밤새 넷째 부인을 호되게 벌줬다지. 이번 화근은 다 그녀가 일으킨 거라고 하더군."민지 장공주는 태후의 친딸로, 적출된 공주는 언제나 더 고귀하게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다른 공주들도 그녀를 우러러보며 따랐고, 그녀가 제씨 가문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이들도 맞장구를 쳤다. 심지어 미우 장공주까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미우 장공주는 제귀태비의 딸로, 제씨 가문의 외손녀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미우 장공주는 제씨 가문과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부마 이유의 조언 때문이었다. 현재 공주든 친왕이든 모두 제씨 가문과 혼인을 맺으려 하지만, 제씨 가문의 권세가 지나치게 커지면 필연적으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니,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사람들은 이런 이유를 두고 아내의 덕을 입어 사는 자라며 비웃어댔지만, 그는 미우 장공주의 농지와 점포들을 관리하며 내조까지 돕고 있었다. 미우 장공주는 이런 자신의 남편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단지 그가 자신의 날카로움을 감추고 평온한 삶을 살고자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수민은 오늘 큰 주목을 받았다. 황후가 금족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황제 곁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 의식을 주관했으며, 그 일을 마치고 나서야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연극을 보러 갔다.덕비도 둘째 황자를 데리고 왔다. 둘째 황자는 셋째 황자를 데리고 잠시 밖에서 놀다가, 얼마 후 돌아와 어머니 곁에서 연극을 함께 보았다.셋째 황자는 수민의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유독 수민을 잘 따랐다. 지금은 아직 어린 나이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4화

    설날 전날, 서우는 빨간 비단 솜옷을 입고 흰 여우 털 장식이 달린 두툼한 모자를 쓰곤, 밝은모습으로 공씨 가문의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염선생은 미리 많은 선물을 준비해 두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서우가 직접 고른 것들이었다.어젯밤, 국공부에서 온 진복이 장부를 가져왔고, 서우는 이를 꼼꼼히 보느라 밤을 새웠다. 염선생은 아이가 어리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며 송석석에게 말려 달라 부탁까지 했지만, 송석석은 일찍 장부 보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라며 계속 보게 하였다. 국공부는 결국 서우가 책임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서우가 장부를 볼 때, 서동 진소설도 그의 곁에 있었지만 진소설은 오늘 집으로 돌아가 설을 보내야 했기에 그를 따라 공씨 가문까진 갈 수 없었다.송석석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서우가 섬세하고 침착하며 성숙한 태도를 가졌으면서도 천진난만한 동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는 서우가 어려운 시간을 겪으며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때로는 겉으로 약한 척하며 속으로 강함을 숨길 줄 는 것이 삶의 지혜라 여겼기에 뿌듯해했다. 서우는 공씨 가문에 가서 설을 보내고 싶었지만, 올해는 고모부가 집을 비웠기에 고모가 홀로 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서우는 고모의 손을 잡고 말했다.“저는 설날 다음 날 바로 돌아올 거예요.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와서 고모와 함께 있을게요.”송석석이 그의 코를 살짝 문지르며 다정하게 말했다.“조금 더 오래 머물다 와도 돼. 고모는 바빠서 네가 같이 있어주지 않아도 괜찮아.”그러자 곁에 있던 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서우야, 나도 있으니까 안심하고 다녀와.”“네. 시 고모도 계시고, 왕 사백도 계시니까요.”서우는 시만자와 왕이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염선생과 보주를 포함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또 많은 분들이 있으니 걱정 없겠어요.”서우는 마치 작은 어른처럼 손을 뒤로 하고 눈웃음을 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3화

    왕이장의 말에 시만자가 끼어들며 말했다."사실 나도 네가 남자도 여자도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칭찬은 고맙지만, 남자도 여자도 다 아니야. 고마워." 왕이장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너희끼리 천천히 고구마나 굽고 아가씨들끼리 얘기나 나눠."그는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평소 그의 걸음걸이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때로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듯 걷고, 때로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 뒤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자 허리를 곧게 펴고 마치 군인처럼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그러자 시만자가 문득 어떤 일이 떠오른 듯 말했다."참, 만두랑 신신이 설을 지내러 올지도 몰라. 전에 편지가 왔었거든. 그런데 아직 모습을 안 보이는 걸 보면 아마 못 오는 것 같기도 해.""설인데, 그들의 사부님이 허락할까?" 송석석이 물었다."못 왔으니 아마 허락이 안 난 거겠지. 어쩌면 연후에야 올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시만자는 장작불에 새 숯을 더 넣으며 말했다. 새로 얹은 은빛 숯이 붉게 타오르는 숯을 덮었고, 이내 한쪽에서부터 천천히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네가 전에 우리 쪽에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 거야.""신신도 올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송석석은 시만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올해는 진짜 힘들었어. 늘 기운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달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항상 새로운 일이 생기곤 했지.""이번 설에는 푹 쉬어." 시만자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설이면 현갑군이 제일 바쁘지." 송석석은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사실 바쁜 것도 괜찮을지 몰라. 자기 전에 누우면 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을 테니까."시만자가 궁금해하며 물었다."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그리운 건 괜찮은데 기다리는 건 정말 힘들어. 하루하루 날짜를 세며 보내야 하니까."송석석은 관자놀이를 손으로 받치고 살짝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녀의 턱선이 유난히 선명해 보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2화

    송석석은 오 대반을 배웅한 후 염선생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곧바로 시만자와 오사형이 준비한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자리에 합류했다.남풍관의 일은 염선생에게 맡겨 두었으니, 염선생이 사람을 보내 감시할 것이다.오사형과 시만자는 제제사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시만자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믿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끊임없이 놀라워했다.왕이장은 남북을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겪고, 또 온갖 것을 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의아해했다.“나이가 그렇게 많고 지위도 그렇게 높은 사람이 왜 그런 곳에 가야 했을까?”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제제사는 남풍관에서 특별히 부끄러울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지 몇 명의 소관을 불러 시중을 들게 하고, 술을 조금 마시고 노래를 들으며 손을 만지는 정도였다.제제사는 선황제의 스승이었다. 선황제는 남색을 가장 싫어했고, 심지어 이를 깊이 혐오한 인물이었다. 그런 선황제의 스승으로서, 제제사는 선황제가 즉위한 후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 국가를 다스렸다. 또한 과거 신중하고 겸손했던 제씨 가문의 태도를 생각하면 그 역시 남색을 극도로 싫어해야 맞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말년에 갑자기 억압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모든 걸 무시하고 남풍관으로 드나들었다.송석석은 자리에 앉아 고구마 하나를 집어 들어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이리저리 던지며 식혔다. 이를 본 왕이장이 손을 뻗어 고구마를 가져갔다. 후후 숨을 불어 열기를 식힌 다음 두 손으로 살살 굴려 껍질을 벗겨 송석석에게 건넸다.“빨리 먹어. 먹고 몸 좀 따뜻하게 해.”송석석은 활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는 말랑말랑해 보이는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하아, 하아 숨을 불어가며 겨우 다 삼켰다.시만자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왕이장을 쳐다봤다.“다정한 면도 있었네?”“뭐 어려운 거라고. 너도 하나 줄게.” 왕이장은 두 손가락으로 고구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11화

    혼사 문제가 해결된 뒤, 송석석은 비로소 소란을 일으킨 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방시원은 혼사를 논의하러 직접 제씨 가문을 찾아갔을 때 문제를 일으켰던 이들을 소집하기만 했을 뿐, 사적 형벌을 가하지는 않았다. 송석석 또한 공정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녀는 오진에게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데려오게 하고는, 그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소란을 일으킨 혐의로 처벌을 내렸다.벌금형을 부과하거나 매질을 하도록 했으며, 염선생의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처벌했다.한편, 제씨 가문이 주의를 돌리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동원하였고, 이 과정에서 연여옥을 고의로 해치려 한 정황을 발견했다. 이에 송석석은 수집한 모든 증거를 민지 장공주에게 넘겼다. 민지 장공주는 이를 자신의 시아버지인 어사대부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 조회가 끝나기 전에 제씨 가문에 대한 탄핵 상소가 이루어졌다.비록 제상서는 자신은 전혀 이 일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숙청제는 관리 소홀을 이유로 그의 반년 치 봉록을 삭감하고 연말 포상까지 제외시켰다.오 대반이 북명황실로 포상을 전달하러 오자, 송석석은 그를 직접 맞이하며 차를 대접했다.서우도 집으로 돌아와 있던 참이었다. 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나와 오 대반에게 인사를 드리게 했다.서우는 지난 1년간 키가 부쩍 자랐고, 외모는 점점 그의 아버지를 닮아갔다. 서원에 들어간 이후로는 더욱더 겸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보였으며, 품행 또한 단정해졌다.오 대반은 그를 바라보며 깊은 감동을 느꼈다."정말 훌륭하게 잘 자랐구나. 공부도 잘하고."서우는 공손히 말했다.“차를 드십시오.”그는 보주가 가져온 간식 쟁반을 직접 받아 들고 나와 말했다.“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생강 대추 떡입니다. 많이 드십시오. 마마께서 이 떡이 속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하셨습니다.”오 대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래, 그래!”그는 떡 한 조각을 먹고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서우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올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