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장은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올리고는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은 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나 피곤한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식사도 하지 않았는가?” 사여묵과 송석석은 어색한 듯 얼굴을 돌려 기침을 했다. 사여묵은 기침을 몇 번 한 후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먹었습니다. 밤새 고생하고 또 궁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목욕을 했더니 피곤하더군요.” 왕이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송석석은 그의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사형께선 식사하셨습니까?” 그러자 왕이장이 신이 나서 말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세끼나 먹었습니다. 양 마마가 만든 완탕이 산해진미보다 맛있더구나.” 그러자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손에 있는 물건을 보면서 물었다. “이건 화통입니까?” “맞다. 사부님께서 만든 신 문물인데 나더러 사제에게 보내 병부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더군.” 순간 사여묵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 화통은 일반 화통보다 조금 더 길었고, 기관 같은 것도 있어 심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 화통은 대체 어떻게 개량한 겁니까? 연속으로 2발 3발까지 쏠 수 있습니까?” “여섯 발까지 가능하지. 그리고 이건 화약을 사용한 것이라 심지 없이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 발사할 수 있지.” 그는 화통을 분해하면서 계속 말했다. “화탈기를 설치하면 보통 세 발을 발사할 수 있는데 이건 여섯 발을 발사할 수 있지. 세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건 사부님께서 몇 년 전에 만든 것인데 사부님께서 세 발은 소용없다고 해서 여섯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단다. 이 화통의 이름은 육안통인데 사부님께서 열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이 좋다며 지금 연구하는 중이란다.”“여섯 발?”사여묵은 순간 피로가 사라지고 급히 다가가서 들어보았다. 그는 원래의 화통이 작동하기가 불편해서 위기에 처했을 때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매복해서 공격하는 게 아니라면 소용이 없었다.“얼마나 멀리까지 발사
그들은 놀라서 눈알이 빠져나올 지경이었지만 왕이장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매산에서 많은 것을 보고 파괴한 덕분에 그는 이런 물건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사부님께서 이 물건이 사매와 사제에게 유용하다고 하며 잘 연구하면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보내온 것이었다. 사여묵이 직접 해보겠다고 하자 왕이장은 신나서 가르쳤다. 이번엔 간판을 조준하지 않고 20장이나 더 떨어진 바위를 조준했다. 활솜씨가 좋은 그에게 조준기는 쓸모가 없어 그는 사용하지 않고 화통을 들고 발사했다. 화통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빗겨 나가 바위 옆의 풀밭에 떨어졌다. 하지만 사여묵은 흥분을 참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엔 50장 떨어진 곳까지 발사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적들의 장수가 50장 밖에 있을 경우에도 한 방에 폭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힌 후 그는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안의 화약을 다 발사한 후엔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왕이장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어 그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고 천천히 공책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모든 문제가 안에 다 들어있으니 혼자 연구해 보거라.” 사여묵은 공책을 받아 재빨리 펴보았다.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병부에는 무기사가 많으니 그는 육안통을 병부상서 이덕회에게 가져가 자랑하려고 했다.사람들은 왕야께서 말도 없이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하지만 염 선생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쫓지 않고 장대성과 풀숲으로 가서 불에 탄 망초를 보며 연신 신기하다고 외쳤다.…병부관청.사여묵은 바람처럼 이덕회의 앞에 나타나 휘청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이덕회를 끌고 나갔다. 이덕회는 심지어 그 사람이 북명왕인지도 몰랐다.후청원 마당에 이르자 사여묵은 흥분해서 그에게 화통을 건네며 말했다.“이것 좀 보게.”이덕회는 끌려가 어질어질해서 정신도 차리기 전에 사여묵이 화통으로 그의 가슴을 박아 하마터면 갈비뼈가 부러질 뻔했다.“잠시
그러나 이덕회에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육안통이 아직 정식적인 실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로 소문을 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북명왕이 실험을 해보았다고는 하지만 한 번의 실험으로 정확성을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니 더 많은 실험을 거쳐 폭파 위험이 적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군대에 투입될 수 있었다. 이덕회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화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렸다. “심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편리한 일입니까? 신궁 진영뿐만 아니라 매복 진영까지 가능하니, 이런 대단한 무기만 있다면 우리가 더 이상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는 만지며 껴안고 울다가 웃다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집에 있는 제 부인도 이 육안통 앞에서는 첩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첩을 들이지 않는 건 부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항상 이 정실에게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여묵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정실이면 십안통과 대포는 누구란 말인가?” “네?” 이덕회는 입술을 떨며 물었다. “무슨 대포 말입니까? 설마 북당의 그런 대포 말입니까?” 사여묵은 다섯째 사형처럼 느릿느릿 공책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여기 다 있으니 읽어보게.” 이덕회는 거의 뺏아가 듯 공책을 가져가서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한 장 한 장 보았다. 끝까지 뒤져도 도면을 발견하지 못해서 실망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제조하는 방법이 있으니 그는 충분히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세상에. 이게 내 조상입니다.”이덕회는 공책을 움켜쥐고 사여묵을 그러안고 울기 시작했다.“평화가 더 이상 빈말이 아닙니다. 전쟁만 없다면 우리 상국이 부흥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사여묵은 이덕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육안통이 50장까지 이르렀을 때 그도 거의 뛰어오를 뻔했기 때문이었다.물론 포차를 제조할 수 있다면 상국의 기세는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사여묵은 사부님이 오셨
숙청제는 흥분한 나머지 뒤에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임양운의 선조가 이성왕인 임병일이었으나 세습이 끝났으니 섣불리 왕을 봉하려면 천하에 알릴만한 공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육안통이 아직 대량으로 생산되지 않았고 신화진영도 아직 세워지지 않았기에, 지금 왕을 봉하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매산을 주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 맞는 말이군. 그건 급하지 않지.” 숙청제의 눈에서 순간 빛이 났다. 이건 그가 즉위한 후 사여묵이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었다. 숙청제는 육안통의 위력을 직접 보고 싶어서 현철위에게 냉궁을 봉쇄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냉궁은 아주 커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 선제가 승하했을 때도 은혜를 베풀어 냉궁의 여자들을 모두 황실 암자로 옮겨서 생활하게 했다. 숙청제는 육안통이 냉궁의 벽을 거의 뚫은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해 의아해했다.“쇠구슬도 쓸 수 있나?” 그러자 이덕회가 답했다. “사용할 수는 있지만 아직 가장 큰 위력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돌아가서 병고주사와 무장을 불러 잘 연구해 보겠습니다.” 이덕회는 그 공책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위력이 큰 것은 화약탄이었는데 적에게 맞으면 터져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이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네. 다만 반드시 믿을 만한 사람을 쓰도록.” 숙청제도 긴장했다. 그는 보물을 얻었으니 가장 유용하게 쓰고 싶었는데 또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설레고 조마조마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이덕회가 정중히 말했다.숙청제는 다시 공책을 펼쳐 보았다. 공책에는 잘못된 것도 있었고, 수정한 곳도 있었는데 아마 끊임없이 생각을 하며 고쳤을 것이다. 그리고 대포의 구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임양운이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내놓았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 대포의 도지가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임양운이 막내제자인 송석석을 가장 아끼고 총애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게다가 사여묵도
요 며칠 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는 모두 연왕 일가의 일이었을 뿐 아무도 시 씨 가문의 아가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시만자의 제자들도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아무도 감히 시만자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 일에서 시만자는 시민주의 사촌 자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 들추기만 하면 그들이 바로 찾아가서 욕을 했다. 자매일체는 무슨 부모님도 다른데. 그저 사촌언니, 그것도 시집간 사촌언니일 뿐이고 시댁 식구들의 일인데 시 씨 가문과 무슨 상관이고 시만자와 무슨 상관이냐고 따졌다. 서산구의 일은 방시원도 사람을 보내서 확실히 조사했는데 당시 몇몇 사람이 한 아가씨를 납치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아가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다. 백성들은 호미를 들고 나와서 도와주었지만 그들은 날이 어두운 데다 여자가 발버둥 쳤는지 머리가 산발이라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자 방시원은 마음이 놓였다. 오히려 연황실에서는 백성들의 분노를 그대로 감수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황제가 친히 신칙 명령을 내렸으니 사태가 얼마나 악랄한 지 알 수 있었다. 백성들 또한 욕을 하며 황제가 황숙이라고 감싸주지 않아 영명하다며 칭찬했다. 연왕의 어느 부위의 상처가 악화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고집스럽게 책을 보면서 자신이 정말로 다시는 쓸 수 없게 된 것인지 실험해보려고 하다가 결국엔 악화된 것이었다. 그는 진성의 명의를 거의 다 찾았지만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궁 안의 태의도 왔다 갔는데 그것도 연왕의 신분에 영태비가 알고 태후에게 태의를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의들도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지금은 상처가 생겼으니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만약 단신의를 불러올 수 있다면 한 가닥의 희망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연왕은 무상과 측비 김 씨에게 단신의를 청해오라고 했다. 그리고 청해오지 못하면 영태비에게 부탁하라고 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단신의는 어제 성을 나가 백 년 만에 꽃이 피는 약재를 캐러 갔는데 약왕당 사람들에게
무상은 진성을 떠날 수 없어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연왕에게 말했다. “지금은 왕야님께서 몸조리를 하느라 연주로 돌아가실 수 없지만. 연주를 떠난 지 오래되어 회왕이 연주에서 왕노릇을 할 수 도 있어 저라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연왕은 약간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지금 날 버리고 연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이 난장판을 나보고 어떻게 수습하란 말인가!” 무상은 그가 화를 낼 것을 진작에 짐작하고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왕야님, 어차피 왕야님은 움직이질 못하시니 여기에서 상처를 치료하십시오. 백성들은 며칠 동안 얘기하다가 그칠 것입니다. 제가 연주로 돌아가서 회왕과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사들이 반은 그들 손에 들어갔으니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왕야님께서는 연주를 회왕에게 책임지게 하는 것이 안심이 되십니까?” 연왕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혼자서 이 난장판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괜히 화를 낸 것이었다. 무상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왕비님께서 시 씨 가문에서 쫓겨났으니 왕야님과 시 씨 가문도 더 이상 혼인을 맺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의 군마도 무기도 불가능할 테고 은전은 더욱 불가능할 테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다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기회가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병마를 먹여야 하고 매일 돈이 필요하는 와중에 장공주께서도 더 이상 은전을 공급해주지 않으니 제가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지만, 더 이상 남자의 도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자신감과 오기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는 바로 무상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며칠 더 머물라고 하고 숙청제가 다른 지시가 있는지 기다려보려고 했다.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무 여자나 데려와서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면 변명도 하지 못하고 계획 짤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무상은 그의 걱정을 들은 후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왕야님께서 이런
전북망은 그의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전북망이 울 줄 알았는데 눈물 한 방울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여령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술 한 주전자를 건넸다. 전북망은 단숨에 모든 술을 받아 마시고 취해 버렸다. 그도 전북망을 데려다주지 않고 별장에서 하룻밤을 재웠다. 이튿날, 집사에게서 전북망이 날이 밝기도 전에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후에도 몇 번 왔었는데 두 사람은 별로 할 말이 없어 그저 술친구로 지냈다. 사여령은 그의 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서 그와 이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술에 취한 전북망은 부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는데 그 비밀은 그의 가슴에 바늘처럼 박혀서 빼내기 힘들었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은 빼내든 말든 모른 척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부인이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사여령은 그에게 무슨 비밀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말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말하면 그녀를 해칠 것입니다. 만약 이혼을 한다면 그녀가 다시 시집을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백작부의 아가씨이니 충분히 다시 시집갈 수 있습니다.” 그러자 사여령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말하면 해로운 안방 부인의 비밀이라고 해봤 자 사람의 목숨을 해쳤거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것이겠지. 그들은 술친구일 뿐이고 전북망은 가난해서 매번 그가 술값을 내지만 사여령은 그래도 함께 술 마실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최 씨는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공방에 가지 않았다.하나는 남강 쪽에서 온 편지 때문이었는데 원래 따라갔던 두 여인이 병에 걸려 사망을 해서 지금 부군의 곁에는 첩 한 명만 남았다고 했다. 두 여인이 병에 걸렸을 때 첩이 세심하게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남강의 바쁜 일상생활도 아주 잘 돌보았기에 그녀를 평처로 삼겠다는 내용이었다.편지에서 첩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마 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고청우의 신분을
송석석은 약간 의아해하며 말했다. “당신의 아들이 공부를 잘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무예를 익히려는 것입니까? 부인, 나는 좋은 스승이 되는 법을 모릅니다. 게다가 그는 앞으로 작위를 계승할 것 아닙니까? 공부를 해서 벼슬을 따는 것이 가장 좋은 길 아닙니까?” 송석석은 제자를 받기 싫었다. 그녀는 공직이 있어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최 씨의 아들은 이제 열몇 살이라 무공을 가르치는 것 외에 사람 됨됨이를 올바로 가르치기도 해야 했다. 만자에게도 제자가 있지만 그녀의 제자들은 그녀보다도 나이가 많고 모두 관직을 맡고 있었다. “작위 말입니까?” 최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말했다. “왕비님. 작위가 그때까지 남아있을지도 나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 작위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아서 받는 사람이 다칠지도 모릅니다. 꼭 왕비님께서 제자로 받아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찾아서 가르쳐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그저 아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웠으면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적어도 강인한 신체와 정신으로 대처해야 하니까요. 며칠 동안 시달리다가 버티지 못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러자 송석석은 속으로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부인께서 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까?” 최 씨는 자신의 마음처럼 차가운 비녀를 만지며 말했다. “나야 모든 것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송석석은 마음속에 의심이 많았지만 그녀가 깊이 얘기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 씨가 원래 생각이 깊은 사람이니 자식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송석석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가 직접 가르치면 잘 가르치지 못할 것이니 몽교두에게 시간 날 때마다 가르쳐주라고 하겠습니다. 부인은 알아서 그에게 은냥을 조금 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서원에 있
황후는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두운 눈빛 속에는 분노가 서리고 있었다.그녀는 후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줄은, 심지어 황제가 그 무엇보다 먼저 송석석을 감싸며 노여움을 터뜨릴 줄은 감히 생각치도 못했다. 게다가 그 노여움도 오직 그녀를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송석석이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황제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된다. 황제가 모든 비난을 혼자 떠맡기로 한 것이다.황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명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물 흐르듯 상황을 이용해 송석석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명성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근데 왜 지금 송석석을 먼저 보호하려 하는 것인가? 만약 외부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황제가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바로 그때, 다양한 감정들이 서서히 제 황후의 마음을 휘감았고, 문득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설마 황제가 송석석에게 마음을 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이야 말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녀는 황제에게 시집온 그날부터 이 남자가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감정 같은 것은 지위와 권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하지만 전제 조건은, 황제가 그 어떤 여성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긴 세월 동안 황제의 총애를 받는 새로운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질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총애란 단지 황제가 패를 몇 번 더 뒤집은 것뿐이었지, 진정한 마음을 쏟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전에 황제가 송석석을 궁으로 들이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기뻐하지 않았다.평소 후궁을 간택할 때 황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대부분 그녀가 주관했다. 그러나 오직 송석석만은 예외였다. 송석석의 이름은 황제가 직접 올렸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또 다른 이유는 송석
염선생의 걱정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황실의 하인들을 찾아가 몰래 물어보려는 시도를 했다. 다행히 미리 경계를 해두었기 때문에, 하인들은 그들이 무엇을 물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북명황실이 입을 다물면 다물수록 더 많은 의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 일이 보통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제가 궁궐을 나선다는 것은, 화본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소수의 사람만 데리고 미복하여 민간을 방문해 민정을 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황실이나 훈작세가에 어떤 경사가 있더라도, 황제가 가마를 이끌고 그곳에 방문하려면 미리 몇 일 전부터 조서를 내려 황제를 맞이할 일을 준비하게 해야 했다. 심지어는 정원이나 집을 미리 수리하고, 부드러운 융단을 깔고 꽃을 심으며,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다.한마디로 말하자면, 한밤중에 단 몇 명만 데리고 신하의 집에 가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북명왕은 아직 남강에 있었고, 북명왕비이자 사령관인 송석석은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줄곧 그녀를 어서방에 불러 국사를 논의했다고 했다.과연 진짜로 국사를 논의하기 위해서 일까?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면, 남자를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를 탓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만약 황제가 잘못을 했다면, 모두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심지어, 황제가 송석석과 어서방에서 단둘이 있는 동안 황제는 후궁에 한번도 들르지 않았다.이런 일은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사적으로는 틀림없이 속삭이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물론 후궁들은 알고 있었다. 황제가 후궁에 들르지 않았다고 해도, 한밤중에 거동한 일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후궁들이 장춘궁에 안부 인사를 전하러 왔다. 수빈과 덕비는 평소에는 후궁의 상황을 황후에게 보고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고했다. 보고를
서방에는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심청화의 말을 듣자마자 송석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상처가 빨리 나을 수 있겠네요. 정말 답답해서 죽을 뻔했습니다."염선생이 말했다. "오늘 밤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심청화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가 진짜로 연왕을 본받는다면, 사제는 아마 사청엄처럼 될 것이다.""그는 이미 결과를 예측했을 겁니다." 염선생이 말하자 송석석이 매우 우울해하며 말했다. "그가 정말 이런 짓까지 할 이유가 없을텐데…... 어렸을 때 그는 둘째 형과 잘 지내며, 항상 나를 여동생처럼 대해줬고, 내가 조정에 들어간 후에도 진심으로 나를 신하로 대해줬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인지.."그러자 염선생이 놀라며 물었다. "갑자기요? 왕비님은 남강을 되찾고 돌아왔을 때, 그가 왕비님을 궁에 들여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던 걸 잊으셨습니까?""나는 그가 나를 이용해 사제의 병권을 빼앗으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그리고 그때 그녀는 송회안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궁에 들이는 것은 누군가가 그녀를 아내로 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심청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때 그가 너에게 마음에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익을 계산해본 후 포기한 거겠지."그러고나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만약 그때 진짜로 너를 궁에 들이려 했다면, 넌 궁에 들어갈 생각이 있었느냐?"송석석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곧장 짐을 싸서 매산으로 돌아갔을 겁니다.""단순히 궁에 들어가기 싫어서였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나?""대사형, 이건 쓸데없는 질문이에요. 궁에 들어가기도 싫었고,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하지만 너는 그때 사제도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왜 망설임 없이 그에게 시집을 간 것이지?" 심청화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면 그때 이미 사제를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너 자신도 그 감정을 몰랐거나
심청화의 그림 솜씨는 실로 대단했고, 그림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느껴졌다.모두가 그림 속의 인물을 한번 보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 피곤함 하나 없는 숙청제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숙청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방금 전의 표정조차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눈과 눈가에 흐릿한 주름, 귀 밑으로 흩어진 몇 가닥의 흰 머리, 오른쪽 입술 아래 작은 검은 점, 그리고 입술의 주름까지 세밀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았다.옷에는 아직 색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문양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실제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숙청제는 마치 처음으로 이렇게 자신을 마주한 것처럼, 한참 동안 멍하니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짐이 참 늙었구나."그는 평소에 구리거울조차 잘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지 않았었다."폐하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겨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십니다." 오 대반이 아첨하며 말했다.숙청제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쓱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짐과 아우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구나."그러면서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송석석은 방금까지 계속 하품을 한 탓에 눈 주위가 붉어져 있었는데, 숙청제가 묻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폐하와 왕야는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그러자 숙청제는 다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이 사라진 듯했다.송석석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제가 훨씬 더 잘생겼으며 골상도 더 빼어납니다.’그들의 용모는 실제로 닮아 있었다. 결국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도 친자매였으니 말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렇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황제는 웃음을 잘 지어 보이지 않았으며 차갑고 위엄 있었다. 그의 얼굴선은 더 각지다.사여묵은 혼인 후 훨씬 부드러워졌다. 만약 그가 스산한 기운을 가라앉힌다면 온화하고 우아한 군자가
숙청제도 정신이 조금 맑아진 듯, 궁 안에서처럼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그가 웃으며 말했다."굳이 예의 차리지 말고 편하게 있어라. 짐은 그저 마음이 답답해서 황실에 와 심선생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석석이 대답했다."그럼 폐하와 사형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서두르지 마라. 이미 왔으니 함께 이야기하자." 숙청제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다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상처는 좀 나았느냐?"송석석은 손을 받쳐 일어나려 하다가 다시 내리며 대답했다."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처가 많이 낫긴 했지만 의관이 조언하길, 침상에 누워 며칠 더 안정을 취해야 한답니다.""음." 숙청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뼈와 근육을 다쳤으니 잘 쉬어야 한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송석석을 내보내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앉아 있거나 서서 함께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숙청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요기할 것이 있느냐? 배가 좀 고프구나."오 대반이 급히 대답했다."폐하께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다. 장혁, 빨리 가라!”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하, 무얼 드시고 싶으십니까?”“무엇이 있느냐?”심청화가 대답했다."폐하께서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황실에서 만들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왕경루에서 사오도록 하겠습니다."숙청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면 한 그릇만 끓여오거라."양 마마는 직접 부엌에 가서 고기와 고수, 파와 계란을 넣고 끓인 뜨끈한 면을 숙청제 앞에 내놓았다.숙청제는 원래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을 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고수와 파의 향을 맡고 나자 입맛이 돌았다.면 한 그릇을 다 먹고 국물도 절반가량 마신 후, 그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상을 내리겠다."양 마마는 기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폐하께서 내리신 상이라니, 어떻게 기쁘지 않겠
상서원과 지안궁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숙청제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마음이 나날로 초조해져갔다.게다가 연일 계략까지 모색하느라 두통이 심해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였다.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한 것도,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였다. 태자가 될 인물에게 금족된 어머니가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금족된 황후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이 곧 자식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황후는 반성하긴 커녕, 오히려 황자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한편, 숙청제는 입맛이 없는듯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운 뒤 약탕을 마셨다. 아무리 지쳐도 약은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죽음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의 중대사나 미래의 계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을 돌리며, 마음을 편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오른 인물은 단 한 사람, 송석석뿐이었다. 송석석은 부상 치료로 며칠간 어서방에 오지 않았다. 숙청제는 임태의를 불러 침술로 두통을 진정시켰으나, 어지러운 증상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러다 문득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확신이었다.한편, 북명왕부에서 노 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오?” 염 선생이 서재에서 나오며 물었다. 노 집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 하시옵니
황후는 시간을 맞춰 다시 상서원으로 간 후, 대황자를 데리고 함께 지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앞뒤로 늘어선 수행원들의 위세는 대단했다.대황자마저 어린 환관의 등에 업혀 궁문에 이르러서야 그를 내려놓았다.황후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황자의 손을 잡고 지안궁으로 들어갔다. 꿇어앉아 예를 올린 후, 태후의 안부를 여쭈어 보았다. 비록 예법은 완벽했으나, 태후는 한동안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대황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태부께 칭찬을 들었느냐?” 그러자 대황자는 태후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태부께서 칭찬을 잊으신 것 같사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후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태부께서는 엄격하시어 쉬이 칭찬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황후는 태후가 이미 태부와 약속을 해둔 일을 모르고 있었다.대황자가 그날 착실하고 성실히 임하면 수업이 끝날 때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로,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기로 말이다. 이를 통해 태후는 대황자의 하루 태도를 알 수 있었다. 태후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대황자를 향해 말했다. “규율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순간 대황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찾으신 것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칭찬하지 않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냐, 아니면 네 어미냐?” 태후가 묻자, 대황자는 황후를 가리키며 재빨리 말했다. “어머니를 벌하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글을 베끼시는 것을 가장 즐기시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베끼는 것을 좋고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죄도 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황후도 서둘러 맞장구를 치자, 태후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금마마에게 명했다. “대황자를 저녁을 차려주고 작은 서재로 보내라. 해시 전까지 모두 베끼지 못하면 출입을 금하라.” 그러자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서방에서 거의 한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태후가 떠난 뒤, 숙청제는 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하라는 어명을 내릴 뿐,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은 돌려주지 않았다.오대반으로부터 어명을 전해 들은 제황후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금족령이 해제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이 전에 퍼뜨리도록 지시했던 말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살아 있는데, 적자를 태후궁에서 보살피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는 말이었다.금족령이 해제된 제황후는 감사의 인사는 뒤로하고 대신, 곧장 서대신, 곧장 대황자를 만나러 상서원으로 향했다. 대황자는 황후를 보자마자 봅시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부가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제쯤 저를 다시 데려가시겠나이까!” 황후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을 찬찬히 살폈다. 초구를 걸치지 않은 대황자는 많이 야워어 턱선이 뽀쪽하게 드러난 모습에 황후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찌 이렇게 수척해졌느냐? 잘 먹지 못한 것이냐?” 대황자는 입을 삐죽이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재에서 돌아가면 황조모께서는 또 글을 외우게 하십니다. 외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으시니 황조모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제황후는 태후가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금족령이 풀린 상황에서 태후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만 대황자를 달래며 말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어미가 네 부황을 설득할 것이다.” 대황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 안만수 태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안만수가 제황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마, 대황자께서는 수업 중이시옵니다.” 제황후는 안
이튿날, 목 승상은 바로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태의원에서는 모든 태의와 원정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목 승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딱 한 가지만 묻겠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느냐?” 태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원정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목 승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없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냐?” 목 승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단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혹 다른 방도라도 없단 말이냐?” 모두가 다시 침묵하자, 목 승상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그러다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의 명성을 걸고서라면, 이 기한을 2년으로 늘릴 수는 없겠느냐?” 오원정은 얼굴에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승상, 폐적증은 발작하면 기세가 매우 심각하여 2년은커녕 1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목 승상이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마디 내뱉었다.“입들 조심하거라.” 그는 천천히 태의원을 나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이렇게도 빨리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날씨가 갈수록 추워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태후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했지만, 태의원의 밤새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핑계로 오원정을 불러 진맥을 청했다. 그러자 진맥을 마친 오원정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수면이 부족하신 듯하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는 태후가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챘음을 알고 있었다. 궁에서 태후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후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만 예외였다. 태후는 주변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오원정만 남게 했다. 문지방 위로 햇살이 드리웠지만 매서운 바람이 드리워, 그 햇살조차 싸늘하게 느껴졌다. “말해보거라.” 태후는 자리에 앉아, 오원정의 멍든 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