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는 자욱한 안개가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고, 물도 뜨겁지 않고 적당했다. 사제가 화난 이유가 아마도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진성을 떠나 만자를 쫓아갔기 때문이기에 혼자 반성을 했었다. 그래서 두 손을 그의 가슴에 대고 조용히 설명했다. “그땐 만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급해서 그랬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만자는 나 때문에 진성으로 온 것이고 평시에 날 지지하지 않는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나도 만자가 다치는 게 싫었습니다.” 온화한 목소리, 미안한 말투,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약간 붉어진 얼굴, 약간 거친 목소리는 마치 부드러운 깃털처럼 그의 마음을 쓸어내렸다. 사여묵은 대사형은 자신도 홀몸이면서 무슨 감정을 알겠냐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좋은 스승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송석석은 이제 그의 부인이니 몸도 마음도 모두 그의 것이 된다. ‘부부가 되었으니 이제 같은 북명황실,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죽은 후에도 같은 무덤에 묻히게 될 텐데… 이런 것 때문에 질투하고 화를 내다니.’ 그는 팔을 뻗어 송석석의 아름다운 허리를 껴안고 몸을 바짝 붙였다. “난 기분 나쁜 것이 아니오. 당신이 시만자를 구한 건 맞는 일이오. 내가 다시 이 일을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당신은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소. 당신은 경위의 지휘사이니 사람을 얼마든지 배치하 수 있고 당신도 제일 치밀한 계획을 짰을 것이오. 그리고 만약에 내가 필요하다면 당신의 부하가 날 찾아오겠지요. 성문을 봉쇄하기 전에도 경위가 날 찾아오지 않았소? 그러니 내가 미리 알든 늦게 알든 아무 상관 없소. 내가 가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이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 당신에겐 잘못 없으니 사과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그곳에 도착할 땐 당신이 깔아 놓은 대로 연기를 했을 뿐이오. 내가 가지 않았어도 이 일은 완벽하게 해결되었을 것이오.” 송석석은 사여묵의 말을 듣고 촉촉한 속눈썹을 치켜올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와서
왕이장은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올리고는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은 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나 피곤한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식사도 하지 않았는가?” 사여묵과 송석석은 어색한 듯 얼굴을 돌려 기침을 했다. 사여묵은 기침을 몇 번 한 후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먹었습니다. 밤새 고생하고 또 궁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목욕을 했더니 피곤하더군요.” 왕이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송석석은 그의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사형께선 식사하셨습니까?” 그러자 왕이장이 신이 나서 말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세끼나 먹었습니다. 양 마마가 만든 완탕이 산해진미보다 맛있더구나.” 그러자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의 손에 있는 물건을 보면서 물었다. “이건 화통입니까?” “맞다. 사부님께서 만든 신 문물인데 나더러 사제에게 보내 병부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더군.” 순간 사여묵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 화통은 일반 화통보다 조금 더 길었고, 기관 같은 것도 있어 심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 화통은 대체 어떻게 개량한 겁니까? 연속으로 2발 3발까지 쏠 수 있습니까?” “여섯 발까지 가능하지. 그리고 이건 화약을 사용한 것이라 심지 없이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 발사할 수 있지.” 그는 화통을 분해하면서 계속 말했다. “화탈기를 설치하면 보통 세 발을 발사할 수 있는데 이건 여섯 발을 발사할 수 있지. 세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건 사부님께서 몇 년 전에 만든 것인데 사부님께서 세 발은 소용없다고 해서 여섯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단다. 이 화통의 이름은 육안통인데 사부님께서 열 발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이 좋다며 지금 연구하는 중이란다.”“여섯 발?”사여묵은 순간 피로가 사라지고 급히 다가가서 들어보았다. 그는 원래의 화통이 작동하기가 불편해서 위기에 처했을 때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매복해서 공격하는 게 아니라면 소용이 없었다.“얼마나 멀리까지 발사
그들은 놀라서 눈알이 빠져나올 지경이었지만 왕이장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매산에서 많은 것을 보고 파괴한 덕분에 그는 이런 물건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사부님께서 이 물건이 사매와 사제에게 유용하다고 하며 잘 연구하면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보내온 것이었다. 사여묵이 직접 해보겠다고 하자 왕이장은 신나서 가르쳤다. 이번엔 간판을 조준하지 않고 20장이나 더 떨어진 바위를 조준했다. 활솜씨가 좋은 그에게 조준기는 쓸모가 없어 그는 사용하지 않고 화통을 들고 발사했다. 화통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빗겨 나가 바위 옆의 풀밭에 떨어졌다. 하지만 사여묵은 흥분을 참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엔 50장 떨어진 곳까지 발사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적들의 장수가 50장 밖에 있을 경우에도 한 방에 폭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힌 후 그는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안의 화약을 다 발사한 후엔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왕이장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어 그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고 천천히 공책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모든 문제가 안에 다 들어있으니 혼자 연구해 보거라.” 사여묵은 공책을 받아 재빨리 펴보았다.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병부에는 무기사가 많으니 그는 육안통을 병부상서 이덕회에게 가져가 자랑하려고 했다.사람들은 왕야께서 말도 없이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하지만 염 선생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쫓지 않고 장대성과 풀숲으로 가서 불에 탄 망초를 보며 연신 신기하다고 외쳤다.…병부관청.사여묵은 바람처럼 이덕회의 앞에 나타나 휘청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이덕회를 끌고 나갔다. 이덕회는 심지어 그 사람이 북명왕인지도 몰랐다.후청원 마당에 이르자 사여묵은 흥분해서 그에게 화통을 건네며 말했다.“이것 좀 보게.”이덕회는 끌려가 어질어질해서 정신도 차리기 전에 사여묵이 화통으로 그의 가슴을 박아 하마터면 갈비뼈가 부러질 뻔했다.“잠시
그러나 이덕회에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육안통이 아직 정식적인 실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로 소문을 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북명왕이 실험을 해보았다고는 하지만 한 번의 실험으로 정확성을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니 더 많은 실험을 거쳐 폭파 위험이 적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군대에 투입될 수 있었다. 이덕회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화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렸다. “심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편리한 일입니까? 신궁 진영뿐만 아니라 매복 진영까지 가능하니, 이런 대단한 무기만 있다면 우리가 더 이상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는 만지며 껴안고 울다가 웃다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집에 있는 제 부인도 이 육안통 앞에서는 첩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첩을 들이지 않는 건 부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항상 이 정실에게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여묵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정실이면 십안통과 대포는 누구란 말인가?” “네?” 이덕회는 입술을 떨며 물었다. “무슨 대포 말입니까? 설마 북당의 그런 대포 말입니까?” 사여묵은 다섯째 사형처럼 느릿느릿 공책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여기 다 있으니 읽어보게.” 이덕회는 거의 뺏아가 듯 공책을 가져가서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한 장 한 장 보았다. 끝까지 뒤져도 도면을 발견하지 못해서 실망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제조하는 방법이 있으니 그는 충분히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세상에. 이게 내 조상입니다.”이덕회는 공책을 움켜쥐고 사여묵을 그러안고 울기 시작했다.“평화가 더 이상 빈말이 아닙니다. 전쟁만 없다면 우리 상국이 부흥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사여묵은 이덕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육안통이 50장까지 이르렀을 때 그도 거의 뛰어오를 뻔했기 때문이었다.물론 포차를 제조할 수 있다면 상국의 기세는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사여묵은 사부님이 오셨
숙청제는 흥분한 나머지 뒤에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임양운의 선조가 이성왕인 임병일이었으나 세습이 끝났으니 섣불리 왕을 봉하려면 천하에 알릴만한 공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육안통이 아직 대량으로 생산되지 않았고 신화진영도 아직 세워지지 않았기에, 지금 왕을 봉하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매산을 주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 맞는 말이군. 그건 급하지 않지.” 숙청제의 눈에서 순간 빛이 났다. 이건 그가 즉위한 후 사여묵이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었다. 숙청제는 육안통의 위력을 직접 보고 싶어서 현철위에게 냉궁을 봉쇄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냉궁은 아주 커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 선제가 승하했을 때도 은혜를 베풀어 냉궁의 여자들을 모두 황실 암자로 옮겨서 생활하게 했다. 숙청제는 육안통이 냉궁의 벽을 거의 뚫은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해 의아해했다.“쇠구슬도 쓸 수 있나?” 그러자 이덕회가 답했다. “사용할 수는 있지만 아직 가장 큰 위력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돌아가서 병고주사와 무장을 불러 잘 연구해 보겠습니다.” 이덕회는 그 공책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위력이 큰 것은 화약탄이었는데 적에게 맞으면 터져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이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네. 다만 반드시 믿을 만한 사람을 쓰도록.” 숙청제도 긴장했다. 그는 보물을 얻었으니 가장 유용하게 쓰고 싶었는데 또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설레고 조마조마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이덕회가 정중히 말했다.숙청제는 다시 공책을 펼쳐 보았다. 공책에는 잘못된 것도 있었고, 수정한 곳도 있었는데 아마 끊임없이 생각을 하며 고쳤을 것이다. 그리고 대포의 구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임양운이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내놓았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 대포의 도지가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임양운이 막내제자인 송석석을 가장 아끼고 총애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게다가 사여묵도
요 며칠 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는 모두 연왕 일가의 일이었을 뿐 아무도 시 씨 가문의 아가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시만자의 제자들도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아무도 감히 시만자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 일에서 시만자는 시민주의 사촌 자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 들추기만 하면 그들이 바로 찾아가서 욕을 했다. 자매일체는 무슨 부모님도 다른데. 그저 사촌언니, 그것도 시집간 사촌언니일 뿐이고 시댁 식구들의 일인데 시 씨 가문과 무슨 상관이고 시만자와 무슨 상관이냐고 따졌다. 서산구의 일은 방시원도 사람을 보내서 확실히 조사했는데 당시 몇몇 사람이 한 아가씨를 납치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아가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다. 백성들은 호미를 들고 나와서 도와주었지만 그들은 날이 어두운 데다 여자가 발버둥 쳤는지 머리가 산발이라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자 방시원은 마음이 놓였다. 오히려 연황실에서는 백성들의 분노를 그대로 감수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황제가 친히 신칙 명령을 내렸으니 사태가 얼마나 악랄한 지 알 수 있었다. 백성들 또한 욕을 하며 황제가 황숙이라고 감싸주지 않아 영명하다며 칭찬했다. 연왕의 어느 부위의 상처가 악화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고집스럽게 책을 보면서 자신이 정말로 다시는 쓸 수 없게 된 것인지 실험해보려고 하다가 결국엔 악화된 것이었다. 그는 진성의 명의를 거의 다 찾았지만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궁 안의 태의도 왔다 갔는데 그것도 연왕의 신분에 영태비가 알고 태후에게 태의를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의들도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지금은 상처가 생겼으니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만약 단신의를 불러올 수 있다면 한 가닥의 희망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연왕은 무상과 측비 김 씨에게 단신의를 청해오라고 했다. 그리고 청해오지 못하면 영태비에게 부탁하라고 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단신의는 어제 성을 나가 백 년 만에 꽃이 피는 약재를 캐러 갔는데 약왕당 사람들에게
무상은 진성을 떠날 수 없어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연왕에게 말했다. “지금은 왕야님께서 몸조리를 하느라 연주로 돌아가실 수 없지만. 연주를 떠난 지 오래되어 회왕이 연주에서 왕노릇을 할 수 도 있어 저라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연왕은 약간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지금 날 버리고 연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이 난장판을 나보고 어떻게 수습하란 말인가!” 무상은 그가 화를 낼 것을 진작에 짐작하고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왕야님, 어차피 왕야님은 움직이질 못하시니 여기에서 상처를 치료하십시오. 백성들은 며칠 동안 얘기하다가 그칠 것입니다. 제가 연주로 돌아가서 회왕과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사들이 반은 그들 손에 들어갔으니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왕야님께서는 연주를 회왕에게 책임지게 하는 것이 안심이 되십니까?” 연왕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혼자서 이 난장판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괜히 화를 낸 것이었다. 무상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왕비님께서 시 씨 가문에서 쫓겨났으니 왕야님과 시 씨 가문도 더 이상 혼인을 맺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의 군마도 무기도 불가능할 테고 은전은 더욱 불가능할 테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다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기회가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병마를 먹여야 하고 매일 돈이 필요하는 와중에 장공주께서도 더 이상 은전을 공급해주지 않으니 제가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지만, 더 이상 남자의 도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자신감과 오기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는 바로 무상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며칠 더 머물라고 하고 숙청제가 다른 지시가 있는지 기다려보려고 했다.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무 여자나 데려와서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면 변명도 하지 못하고 계획 짤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무상은 그의 걱정을 들은 후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왕야님께서 이런
전북망은 그의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전북망이 울 줄 알았는데 눈물 한 방울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여령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술 한 주전자를 건넸다. 전북망은 단숨에 모든 술을 받아 마시고 취해 버렸다. 그도 전북망을 데려다주지 않고 별장에서 하룻밤을 재웠다. 이튿날, 집사에게서 전북망이 날이 밝기도 전에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후에도 몇 번 왔었는데 두 사람은 별로 할 말이 없어 그저 술친구로 지냈다. 사여령은 그의 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서 그와 이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술에 취한 전북망은 부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는데 그 비밀은 그의 가슴에 바늘처럼 박혀서 빼내기 힘들었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은 빼내든 말든 모른 척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부인이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사여령은 그에게 무슨 비밀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말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말하면 그녀를 해칠 것입니다. 만약 이혼을 한다면 그녀가 다시 시집을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백작부의 아가씨이니 충분히 다시 시집갈 수 있습니다.” 그러자 사여령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말하면 해로운 안방 부인의 비밀이라고 해봤 자 사람의 목숨을 해쳤거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것이겠지. 그들은 술친구일 뿐이고 전북망은 가난해서 매번 그가 술값을 내지만 사여령은 그래도 함께 술 마실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최 씨는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공방에 가지 않았다.하나는 남강 쪽에서 온 편지 때문이었는데 원래 따라갔던 두 여인이 병에 걸려 사망을 해서 지금 부군의 곁에는 첩 한 명만 남았다고 했다. 두 여인이 병에 걸렸을 때 첩이 세심하게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남강의 바쁜 일상생활도 아주 잘 돌보았기에 그녀를 평처로 삼겠다는 내용이었다.편지에서 첩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마 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고청우의 신분을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