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는 신경 꺼!”전화를 끊은 임상희는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버렸다.주혜민은 옆에서 그녀에게 과일을 챙겨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상희야, 엄마도 너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임상희는 주혜민이 건넨 귤을 입에 넣으며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엄마가 날 걱정해? 그렇게 걱정했으면 벌써 날아왔겠지. 역시 나보다는 일이 중요한 거잖아!”임상희는 짜증이 잔뜩 난 상태였다.주혜민이 웃으며 말했다.“엄마 일이 그런 걸 어떡해. 상희가 좀 이해해 줘.”사실 문은혜는 귀국하는 티켓까지 구매했다가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임상희가 깨어났고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고 항공편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직은 예민한 시기인 임상희에게 이 소식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일밖에 모를 거면 결혼을 하지 말고 애를 낳지 말았어야지. 낳기만 하고 관심 한번 주지 않는 게 무슨 엄마야!”임상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문은혜는 지리학자로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연구에 몰두했다. 임상희는 거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예민하고 짜증이 많았다.초등학교에 금방 입학했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임상희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주혜민은 임상희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화제를 돌렸다.“됐어. 이 얘기는 그만하자. 참, 외삼촌이 너한테 별말 없었어?”“무슨 말?”임상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물었다.주혜민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에 널 구해준 사람 상준 씨 전부인이래.”“뭐라고?”임상희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반신반의했다.“외삼촌이 아무 얘기도 안 해줬나 보네.”“나도 몰랐는데 오늘 너 구해주신 분 직접 뵙고 인사드리러 갔다가 봤어.”“그 사람 손을 다쳤던데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더라.”“네 엄마도 해외에서 오지 못하는 상황이고 난 엄마 대신 널 돌봐주기로 한 사람으로서 직접 만나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었거든.”임상희
여가현은 저녁 시간에 한번 병실을 들렀다. 강서흔은 이번에 따라오지 않았는데 여가현의 표정을 보니 둘이 또 싸운 것 같았다.차우미는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여가현의 표정을 보고 더 묻지 않기로 했다.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흘러 밤중이 되었다. 아홉 시가 거의 다 되어갈 때쯤, 그녀는 여가현을 쉬라고 돌려보냈다.여가현은 내일 청주로 돌아가기로 했다. 로펌에 밀린 업무가 하도 많아서 더 이상 휴가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여가현은 밤에 병실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때마침 업무 전화가 걸려 와서 어쩔 수 없이 호텔로 돌아가게 되었다.온이샘도 시간을 확인하고 차동수와 함께 호텔에 쉬러 갔다.그렇게 시끌벅적하던 병실이 조용해지고 병실에는 차우미와 하선주만 남게 되었다.하선주는 그제야 꾹 참고 있었던 질문을 꺼냈다.“우미야, 너랑 상준이 어떻게 이혼하게 된 건지 엄마한테 좀 말해볼래?”엄마인 하선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았다.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차우미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주혜민 씨와 상준 씨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어. 둘이 진짜 사귀던 사이었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나랑 결혼하고 바람을 피운 적은 없어.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니까.”3년을 그와 함께 살다 보니 나상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둘은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가정을 배신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가정교육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NS일가도 절대 그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하선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차우미가 더 숨기는 일이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지만 딸의 아픈 곳을 자꾸 헤집는 것 같아 더 질문하기 꺼려졌다.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딸만 힘들어질 것 같았다. 3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고생을 했을 딸을 생각하면 하선주는 후회도 되고 마음이 아팠다.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이 결혼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차우미는 눈시울이 붉어진 하선주를 보고 부드
“곧 꺼지겠네. 그냥 다녀와야겠다. 너 필요한 거 없어? 음료수라도 사다 줄까?”차우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괜찮으니까 빨리 다녀와.”“그래. 빨리 갔다가 빨리 올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간호사 호출해.”“알아. 걱정 말고 다녀와.”손을 다친 것 외에 다른 곳은 괜찮았기에 하선주는 안심하고 슈퍼마켓으로 향했다.병실 문이 닫히고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차우미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 사이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오늘 차에서 내리기 전, 자신의 손을 잡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차우미는 붕대를 칭칭 감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벌써 열 시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피식 웃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별다른 일 없으면 모레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아마 퇴원한 뒤로는 그쪽과 다시 접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낮에 많이 자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차우미는 일어나서 복도를 좀 걷기로 하고 침대를 내렸다.똑똑!경쾌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차우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환자복을 입은 임상희가 안으로 들어왔다.그녀의 뒤로 주혜민도 따라서 안으로 들어왔다.차우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임상희는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생기는 충만해 보였다.“왜 사람이 아무도 없어?”임상희는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스스럼없이 안을 둘러보았다.병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소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차우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임상희를 보고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임상희는 입에 막대사탕을 문 채,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숙모한테 들었는데 날 구해준 사람이 여기 입원해 있다고 해서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왔어.”말을 마친 임상희는 차우미의 가까이로 다가가서 또박또박 말했다.“구해줘서 고마워.”말을 마친 소녀는 무해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거만하게 턱을 치켜든
“물 없어? 목 말라.”차우미가 말했다.“저기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침대머리로 생수를 가지러 다가갔다.임상희가 말했다.“손이 다쳐서 불편하지? 내가 할 테니까 거기 있어.”주혜민이 다가왔다.“내가 따라줄게.”“괜찮아. 손을 다친 것도 아닌데 뭘.”임상희는 침대머리에 놓인 포트를 잡고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아 뜨거!”그 순간 물펍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차우미가 놀라서 다가가는데 임상희가 갑자기 몸을 돌리며 옆에 있던 주혜민을 밀쳤다.차우미는 쓰러지는 주혜민을 잡아주려고 손을 뻗다가 그대로 같이 쓰러져 버렸다.쾅!“악! 숙모, 괜찮아?”차우미는 주혜민의 몸 위로 쓰러지며 다친 손이 바닥에 부딪혔다.극심한 통증에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하지만 밑에 깔린 주혜민이 걱정돼서 억지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그 순간, 다가온 임상희가 그녀를 확 밀쳤다.힘이 워낙 셌기에 차우미는 그대로 침대머리에 머리를 부딪히며 쓰러졌다.“악! 피! 숙모, 피 나!”차우미는 소리를 듣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임상희가 앞을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이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자 어느새 안으로 달려온 남자가 주혜민을 품에 안았다.“외삼촌, 빨리 숙모 데리고 응급실로 가!”나상준은 굳은 표정으로 품 안의 여자의 상태를 살피고는 밖으로 나갔다.그는 바닥에 쓰러진 차우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마치, 주혜민을 제외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처음부터 그의 마음에는 그녀의 자리가 없었던 것처럼.차우미는 멍하니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병실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홀로 남겨진 차우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엄마가 곧 돌아올 텐데 이런 모습을 보면 또 속상해하실 것이다.그녀는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하지만 손을 움직일 때마다 뼈를 가르는 고통이 전해지고 조금 전 침대 모서리에 부딪힌 허리에서도 묵직한 통증이 전해졌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다시
온이샘이 걸음을 멈추었다.“왜? 뭐 더 필요해?”그는 고개를 돌리고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이런 모습은 그를 두렵게 했다.차우미는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일단 바닥에 유리조각부터 좀 처리해 줄래?”온이샘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지금은 네 치료가 더 시급해.”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일단 저거부터 좀 치우고 의사 부르자. 엄마가 곧 오실 텐데 저거 보면 걱정하실 거야.”그제야 온이샘은 하선주가 병실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는 고통에 눈시울까지 붉어진 그녀를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래.”결국 그는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모두 정리하고 물기를 다 닦은 뒤에야 의사를 부르러 밖으로 나갔다.의사가 병실로 오자 차우미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의사가 겉옷을 들어올리자 등에 퍼렇게 멍자국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온이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의사가 어떻게 다쳤는지 묻자 차우미는 부주의로 넘어졌다고 답했다.그녀는 임상희나 주혜민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어차피 둘은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녀도 더 이상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차우미는 조금 양보해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일단은 엑스레이 한번 찍어봐야 할 것 같네요.”의사가 온이샘에게 말했다.온이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데리고 갈게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휠체어를 가져오는 게 좋겠어요. 골절은 아닌 것 같고 당분간 걷는 건 자제하는 게 좋겠네요.”“알겠습니다. 지금 가지러 갈게요.”의사는 휠체어 대여하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잠시 후, 온이샘이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돌아왔다.그는 차우미를 부축해서 휠체어에 태웠다. 차우미는 바깥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곧 오실 시간인데.”나간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쯤이면 돌아올 시간이었다. 차우미는 오히려 엄마가 무슨 일로 늦어진 건지 걱정이 되었다.온이샘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엑스레이 검사결과를 확인한 의사가 나상준에게 말했다.“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건가요?”“그 여자가 외숙모를 밀쳐서 바닥에 쓰러졌어요. 그때 저도 자리에 있었는데 너무 놀랐다고요. 뇌진탕은 아니겠죠? 머리는 엑스레이를 찍어봤나요?”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상희가 끼어들어 종알종알 떠들었다. 의사는 줄곧 말이 없는 나상준의 표정을 힐끗 살피고는 말했다.“다 찍어봤어요. 뇌진탕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아, 검사를 다 해봤어요? 저는 안 해본 줄 알고.”“외삼촌, 이렇게 하자. 며칠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심하게 넘어졌는데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곤란해지잖아. 외삼촌 생각은 어때?”임상희가 눈을 반짝이며 나상준에게 말했다.그는 주혜민을 안고 의사를 찾은 뒤로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당황하거나 걱정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고 있었다.임상희의 질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상준에게 쏠렸다.나상준은 주혜민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그는 시선을 돌려 의사를 바라보았다.의사가 말했다.“저도 며칠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그럼 입원해.”임상희는 주혜민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주혜민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3년 동안 마음에 존재했던 가시 같은 존재를 드디어 뿌리뽑았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벅찼다.‘상준 씨는 나를 신경 쓰고 있었어. 아니, 날 잊은 적 없었던 거야.’주혜민의 입원 절차는 빠르게 처리되었다. 절차가 마무리되자 나상준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병실에 남은 임상희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문을 닫고 침대로 다가갔다.“어때? 이제 만족해?”임상희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주혜민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나상준의 눈빛이었다. 마치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
온이샘은 차우미를 끌고 일련의 검사를 진행했다. 잠시 후 겸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자세히 살피고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골절이나 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며칠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다 나을 때까지는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고 누워서 쉬는 게 좋겠어요.”골절이 아니라는 말에 온이샘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그는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돌아왔다. 차우미가 아파할까 봐 그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차우미는 휠체어에 앉아 이 상황을 부모님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상황을 설명하기 조금 난감했다.온이샘은 유난히 조용해진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난감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보자 그는 안쓰러운 마음에 입을 열었다.“가현 씨한테 전화해서 간호를 부탁하고 아저씨랑 아줌마는 집에 돌려보내는 게 어때?”차우미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온이샘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아줌마가 너 넘어져서 다친 거 알면 또 자책하실 거 아니야. 연세도 있으신데 자꾸 놀라게 하는 건 좋지 않아.”그녀는 배려심 넘치고 부모님에게 극진한 딸이었다. 겉보기에는 강하고 겁도 없어 보이지만 가족에게만은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생각을 읽힌 차우미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가현이한테 말할 수는 없어. 걔가 사실을 알게 되면 아빠랑 엄마보다 더 날뛸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미소에 온이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그럼 어쩔 수 없지. 간병인 부르자.”차우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간병인은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그녀는 드디어 안심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온이샘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좀 똑똑하긴 하지. 너도 간병인 부르는 방안이 제일 괜찮지?”차우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거 괜찮네. 고마워, 선배.”예전의 예의 바른 미소와는
“아니야, 됐어.”그들의 3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녀는 이혼 후에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오늘 밤 병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와는 멀리 떨어지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그래.”온이샘은 담담한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들어갔다.나상준은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짜증을 느꼈다.열 시가 넘어 병원은 점차 인기척이 줄어들고 고요가 찾아왔다.나상준은 병원 밖 가로등 밑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상황 보고를 듣고 있었다.“8시 40분, 여가현 씨가 병원을 떠나셨습니다. 8시 50분, 온이샘 씨와 차동수 씨가 병원을 나갔고요. 9시에 차우미 씨의 어머님께서 병실을 나가셨습니다.”“9시 20분에 임상희 씨와 주혜민 씨가 차우미 씨의 병실에 들어가셨고 9시 25분에 대표님께서 병실 복도에 나타나셨습니다.”나상준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는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뱉고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허영우는 조용히 그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지시는 들려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전화를 끊지도 않았기에 그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상사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다.그와 오랜 시간 함께했지만 그가 감정기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는 조용히 지시를 기다렸다.“주영그룹의 공동 투자 제안을 받아들이고 계약서 준비해.”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허영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전화가 끊어졌다.핸드폰을 내려놓은 허영우는 주영그룹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기 시작했다. 주영그룹은 부동산 업계에서 큰 업적을 이루어내며 최근 10년 사이 일류 기업으로 급부상했다.하지만 최근 들어 부동산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주영의 발전도 조금 주춤하게 되었다.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제는 내리막길만 남았다. 주영도 최근 2년 사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다른 사업에도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