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은 고경영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그래서 고 선생님, 주택 소유권을 양도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그는 고경영을 지혜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김지원은 오랜 세월 업계에 몸담아 오며 엄격함과 합리성이 뛰어났다.고경영은 두 손을 엇갈린 채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김지원은 그의 반응을 본 뒤 대답했다.“좋습니다.”부동산 증명서를 다시 확인해 보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능숙하게 계약서 두 장을 작성하고 서명한 후 그중 하나를 내밀었다.고다빈과 진시목의 시선 아래 고경영은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김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경영에게 예의 바르게 악수를 신청하고는 말했다.“부동산 증명서는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새 부동산 증명서는 신청 후, 고다정 씨에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고경영은 침울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카페를 떠난 김지원은YS그룹으로 돌아갔다.그는 곧장 준재의 사무실로 갔다.준재는 그를 등지고 서있었지만 분명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일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준재는 눈을 감고 그에게 물었다.김지원은 말했다.“고경영 씨가 두 채를 고다정 씨에게 양도하기로 합의했고 이미 처리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주식 지분을 포기하지 않으셔서 이 문제는 고다정 씨가 처리하기로 했습니다.”준재는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몸을 돌려 분부를 내렸다.“나중에 당신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고다정 씨에게 전적으로 협력하여 가능한 한 그녀를 위해 최선의 권리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세요.”김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한 표정으로 명령을 받았다.“최선을 다 하겠습니다.”이때 시목과 다빈, 고경영도 집으로 돌아왔다.세 사람은 어두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시목과 고경영은 침묵하며 다정이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다빈은 다소 의심스럽게 물었다.“고다정 뒤에 있는 그 외할머니, 그 사람한테 정말 증거가 있는 거야? 만약 정말 증거가 있었다면 왜 더 일찍 말하지 않았을까? 아마
고다정은 가볍게 웃으며 상대방을 달랬다.“당연히 알지. 평소에는 너무 바쁘지 않아?”그녀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최근 몇 년 동안 그녀는 너무 바빠서 옛 친구들과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상대방은 인정하지 않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그만해, 이 양심도 없는 사람아. 실종된 것처럼 사라져 놓고는 이제야 연락하네, 이제야 내가 생각났나 봐?]다정이 머쓱하게 코를 만지작거렸다.그녀는 그 사람의 말속에 뼈가 있다는 걸 알아 더욱 마음이 아팠다.요 몇 년 동안 그는 다정을 적지 않게 걱정했었다.다정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만날까? 우리 오랫동안 못 봤잖아.”이 말 속에는 그의 비위를 맞추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그의 마음 속의 원망은 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냉담하게 콧방귀를 뀌었다.상대방은 달갑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언제?]다정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오늘 오후 2시, 전에 만났던 커피숍에서 만나.”그곳은 그들의 오래된 아지트였고,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어쩔 수 없이 나가는 거야.”상대방은 승낙했다.다정은 변함없는 그 사람의 행동에 너무 기뻤다.……오후 2시, 다정은 약속대로 도착해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당당하게 커피숍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들어왔을 땐, 이미 한 남자가 다리를 꼬고 잡지를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냉소적인 표정이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그를 훔쳐보았다.곁눈질로 그를 쳐다보는 여학생들의 작은 움직임을 엿본 뒤, 교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들의 마음을 휘저었다.다정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고 한숨을 쉬며 모든 소녀의 부러운 눈초리 속에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오랜만이야.”그녀가 여유롭게 인사를 하자 상대방은 그녀를 보자마자 잡지를 툭 던졌다.“내 얼굴은 안 까먹었나 봐.”상대방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고다정 씨, 얼른 앉으세요.”다정은 조금도 짜증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
여준재는 고다정을 보자 그의 날카로운 눈에서 순간적으로 약간의 놀라움을 나타냈다가 이내 사라졌다.그는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녀를 마주친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인연이란 정말 묘한 것이다.그가 막 말을 꺼내려고 할 때, 그녀의 옆에 또 다른 남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준재는 그를 한 번 훑어보았다.다정의 옆에 선 그 사람은 소탈해 보였고 두 사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그것을 생각하는 사이에 다정과 육성준은 이미 그의 곁으로 다가와 서 있었다.그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이분은 누구십니까?”다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이쪽은 제 소꿉친구예요. 이야기하러 왔어요.”성준은 사슴 같은 눈을 살짝 깜빡이며 부드럽게 준재와 인사를 나눴다.준재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 선생님,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저도 거래처와 약속이 있어서요.”다정은 옅은 미소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준재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구남준은 계단 모퉁이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그가 올라오는 것을 본 남준은 의미심장하게 성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준재는 의아하게 물었다.“저 사람은 누구야?”준재는 성준을 매우 이상하게 바라봤다.남준은 그를 향해 말했다.“LU그룹의 도련님입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꽤 대단하신 분입니다.”준재는 눈빛이 다소 어두워지며 아래층으로 시선을 옮겼다.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성준과 다정의 모습은 영락없는 연인처럼 보였다.그의 눈에 성준이 그다지 능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준재는 중얼거렸다.“내가 보기엔 잘 모르겠는데.”남준은 그에게 설명했다.“그는 최근 몇 년 동안 LU그룹의 한 계열사를 인수하여 성장하고 있고 점점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확실히 능력은 있어 보입니다.”남준은 다정과 성준의 표정과 대화를 관찰한 뒤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분, 사이가 참 좋아 보이네요.”준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두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된
옆에 서 있던 육성준은 눈이 커지고 혼란스러워 보였다.성준이 들은 그는 무심하기 그지없고 여자와는 가깝게 지내지 않는 여준재가 아니였던가? 다정의 부탁을 들어주다니! 성준은 눈에 담긴 감정을 숨겼다.그는 몸을 기울여 조용히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너 저 사람이랑 뭐 하러 가?”그의 말투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가득했다.다정은 눈을 치켜뜨고 대답했다“당분간은 너한테 설명하기 어려워.”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준재를 힐끗 보고 나서, 다시 앞에 있는 성준을 보았다.“다음에 다시 설명해 줄게. 맞다, 내가 오늘 부탁한 건 잘 부탁할게.” 다정은 성준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낸 후, 뒤돌아 준재의 뒤를 따라가 떠나버렸다.……차 안.준재는 뒷좌석이 앉아 옆에 있던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무슨 일입니까?”다정은 경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마왕이를 마지막으로 치료한 지 며칠이 지났어요. 저는 당신과 함께 가서 상황을 좀 더 보고, 필요하면 침을 다시 맞아야 해요. 겸사겸사 대표님 건강도 좀 보고…….”준재가 보내는 눈빛을 본 다정은 멈칫했다.곧 그녀는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당신이 저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 전 당연히 당신을 치료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해요.”“손 이리 줘요.”그녀의 어조에는 확고함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지배력이 있었다.준재는 웃으며 다정에게 손을 주었다.맥박은 부드럽고 균일한 속도로 뛰어 얼마 전에 비해 확실히 많이 좋아졌었다.다정의 긴장된 표정이 훨씬 편안해졌다.확인을 끝낸 그녀는 준재를 바라보며 말했다.“쉬시는 동안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하지만 여 대표님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것을 치료하는 데는 오랜 과정이 필요해요. 생사가 걸린 문제죠.”다정의 말에 준재는 침묵에 빠졌다. 그의 몸 상태를 그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원래는 죽을 목숨이었기에 이미 뒷일을 각오하고 있었던 그가 그녀를 만날 줄 누가 알았을까…….“여 대
고다정의 옆에 있는 여준재는 오히려 침착하고 태연해 보였다.그는 이에 놀라지도 않고 날카로운 눈을 가늘게 떴다.마왕은 원래 사회성이 좋지 않았다. 다정은 강아지의 생명을 살렸으니 자연스럽게 그녀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다정과 마왕의 상호작용을 본 준재의 눈빛도 점차 부드러워졌다.“우리 마왕이 착하지.”다정은 미소를 짓고 마왕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이따가 주사를 맞아야 해. 안 짖고 잘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왕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며 알겠다는 듯이 멍멍 짖었다.다정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다.“우리 마왕이 정말 영리하구나!”그녀는 가방에서 은침을 꺼냈다. 몇 초 뒤, 마왕도 순종적으로 바닥에 누워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다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태껏 봐 온 강아지 중 정말 영리한 강아지였다.구남준은 그들의 근처에 서서 다정을 부러워하며 중얼거렸다.“난 언제쯤 마왕이랑 가까워질 수 있을까……?”이를 들은 준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잘 생각해 봐.”하지만 마왕이 다른 사람에게 순종적인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다정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았다.다정은 은침을 집어 들어 혈 자리를 찾은 후 잽싸고 단호한 움직임으로 한 번에 찔렀다.30분이 흘렀을까, 다정은 침을 다 놓았다.그녀는 마왕의 옆에 앉아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마왕은 그저 기분이 좋은지 그녀의 다리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누워 혀를 꺼내 헥헥거렸다.다정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여 대표님, 마왕이가 너무 순하고 똑똑해요!”개가 사람과 잘 어울리는 동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렇게 영리한 개를 처음 봤다.준재는 검은 눈동자로 마왕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마왕은 전문적으로 길러진 아이예요. 지능이 워낙 높은 아이였어요. 그런 아이를 데려와 전문적으로 훈련했으니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행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의 놀라움을 억눌렀다.‘역
심해영은 보면 볼수록 불가사의함을 느꼈다.‘내가 알던 아들은 여자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는데, 정녕 내 아들이 맞아?’그녀는 의심을 금치 못했다.두 사람의 모습은 볼수록 보는 사람을 더 민망하게 했다.그녀는 아들이 여자랑 한방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심해영을 더 충격에 빠뜨린 것은 바로 이 순간, 여준재는 웃통을 벗고 있었고, 어떤 여자가 자기 아들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는 것이다.‘두 사람이 뭘 하려 한들 문은 좀 닫아야지! 백주 대낮에 이렇게 노골적인 행동을 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더 황당한 것은 그 두 사람의 옆에 서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구남준이 있다는 것이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이렇게 화려하게 노는 거야?’한동안 심해영과 여진성은 모두 말을 잃었다.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더이상 이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바라보지 않았다.여진성은 마치 지금의 당혹감을 감추려는 듯 부자연스럽게 헛기침했다.소리가 크지 않아 구남준만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남준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고, 그 두 사람을 발견하자 잠시 멍해졌다.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인사했다.“회장님, 사모님…….”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등장에 남준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남준의 소리를 듣고 여준재와 고다정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한동안 여러 사람이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았다.“어머니, 아버지.”준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일어나기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인사를 두 번 했다.다정은 두 부부가 근처에 서서 세심하게 살펴봤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난처해졌다.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다정은 이곳에 몇번이나 왔지만 준재의 부모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이렇게 난감한 장면으로 처음 만날 줄은 몰랐다.다정은 앉지도 서지도 못하며 안절부절못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이 굳었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랐다.그 순간,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준재였다.“아버지, 어머니. 연락도 없
“회장님, 사모님,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이어 그는 두 부부를 모시고 나가 더 이상 고다정의 치료를 방해하지 않았다.구남준은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간단히 설명했다.얼마 전 습격을 받은 준재는 부상을 입고 병이 재발됐지만 다행히 다정을 만나 그를 죽음의 문턱 앞에서 끌어내어 주었다.“그렇게 된 일이구나…….”그때, 다정은 숨을 죽이고 치료에만 전념하고 있었다.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녀는 감히 긴장감을 풀 수 없었다.한차례 치료가 끝나고 준재의 몸에 꽂힌 침을 뽑았을 때, 다정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남준이 두 부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한 후에야 그들은 준재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치료를 마친 다정을 보자 두 부부는 그녀에게 황급히 감사를 표했다.심해영의 말은 매우 절절했다.“의사 선생님, 저희가 아무것도 모르고 불편을 드려 죄송해요!”“정말 고마워요!”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감사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 대표님께서 이미 치료비를 지불했으니 전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두 부부는 고개를 끄덕였다.“말은 그래도 저희는 의사 선생님께 감사해야 해요.”심해영은 여전히 준재가 걱정되었기에 약간 불안해 보였다.경력이 있는 의사들은 모두 50이 넘은 사람이었다.‘이렇게 젊은데, 정말 믿을만한 사람인가?’심해영의 속마음이 튀어나왔다.“고 선생님이 너무 젊어 보이셔서 이렇게 능력이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요?”다정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녀를 떠보는 것에 가까웠다.다정처럼 눈치 빠른 사람이 어떻게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겠는가.“사모님, 저도 외국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그녀의 한마디로 심해영의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난처함을 숨겼다.“선생님, 저도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심해영이 고개를 돌려 준재를 쳐다보고는 계속 말했다.“이
집에 도착한 고다정은 간단히 감사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두 아이는 막 목욕을 마치고 외증조할머니와 함께 앉아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다정이 돌아오자 그들은 즉시 달려갔다.엎드려 자고 있던 새끼 고양이 두 마리도 인기척에 재빨리 일어나 짧은 다리로 다정을 향해 달려갔다.새끼 고양이는 그녀의 곁에서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배를 까고 바닥에 누웠다.두 명의 아이와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매우 따뜻해 보였다.“엄마!”“엄마, 어디 갔었어요? 왜 이제야 왔어요?”큰아들인 고하준이 어리광을 피우며 물었다.다정은 웃으며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여준재 아저씨 병을 치료해 주고 오느라 늦었어.”준재를 언급하자 작은딸 고하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그녀의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다정을 바라보았다.“멋쟁이 아저씨는 많이 나으셨어요?”“엄마, 저랑 오빠는 멋쟁이 아저씨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됐어요!”하윤은 입술을 삐죽이며 실망감을 드러냈다.다정은 입가에 웃음꽃이 번지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이 장난꾸러기들, 그렇게 아저씨가 좋아?”알다시피 두 아이는 준재를 몇 번 만난 적이 없었다.다정은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찾는 모습을 처음 봤다. 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물론이죠. 아저씨는 저와 오빠한테 너무 잘해주고 친절하세요. 예전에는 저희한테 선물도 주셨어요!”이야기를 나누던 하윤은 그 일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꽤 진지한 모습이었다.다정은 웃으며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그런 일에 대해선 엄마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할게.”“예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다른 사람이 주는 선물을 함부로 받으면 안 돼, 알았지?”하윤은 큰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멋쟁이 아저씨가 주는 건요? 그것도 받으면 안 돼요?”다정은 하윤을 안아 올리며 그녀의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함부로 받으면 안 돼. 대가 없는 선물은 없어, 알았지?”하윤은 작은 입술을 삐쭉 내밀고 중얼거렸다.아이가 그러니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