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은미 잘못만은 아니라 내 책임도 있죠. 어른이 되어서 의지가 하나도 없으니까요.”고다정은 곧바로 말을 바꿨고 여준재는 그녀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말이 또 바뀌네요.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따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 전에 말했듯이 또 무분별하게 먹으면 벌을 줄 거예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눈을 깜빡이다가 갑자기 다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아야, 다리에 쥐가 난 것 같아요. 너무 아파요.”그녀는 아픔을 호소하며 여준재의 표정을 살폈다.여준재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정말 쥐가 난 줄 알았다.고다정은 점점 커지는 아기 때문에 몸매도 변형되고 다리도 빨갛게 부어오르며 자주 쥐가 났다.“다리 안고 있지 말고 이리 줘요. 내가 주물러 줄게요.”여준재는 재빨리 고다정의 옆으로 걸어가더니 능숙하게 움직여 고다정이 잡고 있던 다리를 빼낸 뒤 마사지를 시작했다.그 순간 여준재는 조금 전 따지려는 기색은 전혀 없이 온통 고다정에 대한 걱정뿐이었다.고다정은 그의 심각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갑자기 마음속에 작은 죄책감이 밀려왔다.사실 아주 잠깐 쥐가 난 게 아니라고 인정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하지만 고다정은 이내 그 충동을 억눌렀다. 자신이 인정하면 여준재는 그녀를 더 질책할 뿐이었다.잠시 후, 여준재는 고다정의 앓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이제 안 아파요?”“엇, 이제 안 아파요. 고마워요, 여보!”잠시 멈칫하던 고다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준재를 향해 애교를 부렸다.여준재는 고다정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며 못 말린다는 표정이었다.“내가 다정 씨 아끼는 거 알고 일부러 쥐 난다고 속인 거죠?”이 말을 듣고도 고다정은 아까의 속임수가 들통났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그녀는 여준재를 향해 빙그레 웃더니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다시 애교를 부렸다.“당신이 무섭게 구니까 그렇죠. 앞으로는 말 잘 듣겠다고 약속할게요”“약속해 봤자 소용없어요. 더는 안 믿어요.”여
#결국 여준재는 고다정을 산으로 보내지 못했고 두 여자의 만남도 막지 못했지만 둘만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두 자매는 이에 대해 상당히 분개했지만 이길 수 없으니 얌전히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한 달이 지나갔다.임은미의 예정일이 다가오는 데다 배가 너무 불러오는 것을 본 채성휘는 불안한 마음에 미리 병원에 입원시켜 출산 준비를 했다.병원에서 지내면서 매일 출산하는 임산부들을 보고, 그 임산부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임은미는 갑자기 겁이 났다.이날 고다정이 보러 온 틈을 타 임은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친구의 손을 잡고 말했다.“다정아, 나 출산할 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지난 이틀 동안 내가 본 임산부들은 다 너무 힘들어했어!”“너무 겁먹지 마.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난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고다정은 임은미가 긴장한 것을 알고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예전에 그녀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게다가 그때는 지금처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제왕절개 수술비도 마련하지 못했기에 힘들게 분만할까 봐 겁이 났다.생각에 잠긴 그녀는 절친한 친구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조언했다.“불안하면 그냥 제왕절개 해. 수술하고 나면 조금 아플 뿐이야.”“안 돼. 제왕절개 한 임산부들 봤는데 의사들이 얼마나 무정한지 몰라. 수술 후 임산부 상처를 손으로 세게 쥐어짜는 거야. 그걸 보는데 내가 다 아프더라.”임은미는 고민도 하지 않고 거절하며 이틀간 병원에서 관찰한 걸 고다정에게 말해주었다.고다정은 무서워하는 그녀를 보며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의사의 관점에서 말했다.“의사들은 임산부에게 상처를 눌러서 고문을 하는 게 아니라 상처에 피가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처를 짜는 거야. 근데 그걸 참을 수 없으면 자연 분만하는 게 낫지. 나도 준이, 윤이 낳을 때 자연분만을 했는데 잘 낳았어. 다만 분만 전에 많이 걸으면 도움이 될 거야.”고다정은 말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고 임은미는 아주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었다.마지막에는 여전
3시간이 지나도 임은미는 분만실에서 나오지 않았다.방금 전까지 분노에 찬 욕설을 내뱉던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고통의 울음소리로 변해갔다.처음 낳는데 쌍둥이고 두 아이 모두 발육이 잘 되었지만 그녀는 왜소한 체격에 결국 난산을 겪었다.3시간이 또 지났지만 임은미는 여전히 분만에 성공하지 못했다.그동안 조산사는 임은미에게 제왕절개로 전환하자고 여러 번 제안했지만 임은미는 거절했다.아직 힘이 남아 있으니 순조롭게 분만할 수 있을 것 같았다.어쨌든 그녀는 배를 가르는 수술은 하지 않을 것이다!임은미가 분만실에 머무는 동안 일행은 내내 문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채성휘와 임은미 부모님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고 고다정도 걱정이 앞섰다.몇 시간이 지난 터라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안 되겠어, 내가 들어가서 은미를 설득할게요.”결국 그녀가 굳어진 표정으로 나서며 말했다.이를 본 임은미 부모님은 고마움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동의하지 않았다.“너도 임신한 몸으로 들어가기엔 좀 그렇지. 내가 갈게. 내가 가서 저 망할 계집애를 설득해 볼게!”담은자는 그렇게 말하고 간호사에게 분만실 입실 신청을 하려던 참이었다.그렇게 그녀가 가려는 순간, 안쪽에서 분만실이 열리며 조산사 한 명이 힘없는 얼굴로 분만실에서 나오며 말했다.“임은미 씨 가족분 계시나요?”“네, 우리 은미한테 무슨 일 있나요?”임근수 부부와 채성휘는 곧바로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고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큰일은 아닌데 지금 산모의 자궁 입구가 좁고 쌍둥이를 품고 있어서 순산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이미 몇 시간이 지난 탓에 순산을 위한 최적의 시간도 지났습니다. 가족분들이 들어가서 임은미 씨가 제왕절개를 선택하도록 설득하셔야 할 것 같아요. 계속 자연 분만을 고집하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우리도 방금 그 얘기를 하면서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릴 참이었어요. 그렇다면 제가 같이 들어갈게요.담은자는 이렇게 말하며 조산사와 함께 분만실로 향했다.이를 본 하지유는 역시
임은미는 병실에서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혼수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옆에 있던 아기 침대에는 갓 태어난 원숭이처럼 피부가 붉고 작은 두 여자아이가 누워 있었다.고다정은 아이를 살펴 보고 여준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몇 시간 동안 서 있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조금 지친 상태였기도 했고 병실에 있어봤자 복잡하기만 할 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그렇게 고다정이 떠나고 병동에는 임은미 부모님과 채은호 부부만 남게 되었다.채성휘는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기의 출산 절차와 검진 때문에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부모님은 없고 임은미 부모님만 표정이 좋지 않은 채 병실에 계셨다.“아저씨, 아주머니, 저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그가 떠보듯 묻자 담은자는 임근수를 힐끗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 옆에 누워 두 손녀의 고사리 같은 손을 만지작거렸다.임근수는 당연히 아내가 미래 사위에게 화를 내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하지만 채은호 부부가 떠나기 전 했던 말을 생각하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그동안 채성휘가 그들 앞에서 했던 행동을 생각하며 두 가문 사이에서 오고 갈 채성휘와 제대로 얘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성휘, 자네 나랑 잠깐 나가지.”말을 마친 그는 채성휘를 지나쳐 병실을 나갔고 이를 본 채성휘가 곧장 따라갔다.두 사람은 복도 끝에 있는 발코니로 갔다.채성휘는 임근수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속으로 불안해했다.“아저씨, 하실 말씀 있으세요?”“하나만 묻지. 아까 분만실 앞에서 한 말 진심인가?”임근수 역시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당황하던 채성휘는 임근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진지하게 말했다.“당연히 진심이죠. 은미 씨는 이미 저를 위해 자식을 둘이나 낳았으니 그만하면 됐어요.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이 말을 듣고 무표정하던 임근수의 얼굴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더니 이렇게 말했다.“자네는 그래도 양심이 있는 것 같은데 자네 부모
아직 결혼도 안 한 상태인데 채씨 가문에서는 벌써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다. 심지어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이러다가 나중에 결혼해서 혼인 신고한 뒤에도 참견이 더 심해질까 봐 두려울 뿐이다. 임은미는 생각하다가 엄마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두 모녀가 은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던 중 병실 밖에서 갑자기 말소리가 들리더니 임근수와 채성휘가 들어왔다.그들은 임은미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은미 씨, 드디어 깨어났네요.”채성휘는 빠른 걸음으로 임은미에게 다가오면서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그녀는 차갑게 피했다. 뿐만 아니라 임은미는 채성휘를 아예 투명 인간 취급하면서 임근수를 보며 말했다.“아빠, 방금 엄마와도 상의해 봤는데요. 어떤 가문에서 이토록 우리 집 아기들을 달가워하지 않으니까 이제부터 그냥 우리 집에서 키우고 성씨도 우리 성으로 지어요. 마침 오셨으니까 우리 아기들한테 이름 지어주세요.”“...”임근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돌아오자마자 자기 딸이 이런 용감한 발언을 할 줄 몰라 그저 옆에 있는 채성휘의 눈치를 살폈다.그러나 채성휘는 별다른 표정 변화도 없이 그저 생글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그녀의 말이 사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채성휘도 확실히 이번에 자기 부모님이 심했다고 생각했다. 하여 임은미가 화내는 게 당연했고 결혼을 중단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아버님, 은미 씨가 이왕 그렇게 결정했으니 우리 아기들 이름은 잘 부탁드립니다.”“정말 내가 지어도 상관없어?”임근수는 어리둥절해서 채성휘를 바라보았다.심지어 임은미와 담은자도 의외라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졌다.채성휘는 그들의 반응을 보더니 살짝 웃으며 답했다.“네, 아까 은미 씨도 말했다시피 저희 부모님들이 원래 아기를 안 좋아해요. 그래서 아마 이름 지어주는 것도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또 굳이 강요하고 싶지도 않습니다.”그의 해명을 듣고 난 뒤에야 임은미와 담은자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하지만 임근수는 여전히 근심 어린 얼굴
임은미의 말을 들어보니 채성휘도 예전에 고다정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느껴졌다.방금 그와 임은미, 거기에 간호사까지 합쳐도 허둥지둥했는데 애당초 고다정은 어떻게 두 아이를 혼자서 돌볼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비록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엄청 고맙지만 그래도 임은미와의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잊지 않고 먼저 입 밖으로 꺼냈다.“예전에 아버님께서 밖에 나가 이야기 하자고 했을 때 저희 부모님이 제가 없는 틈을 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요. 너무 미안해요.”그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임은미는 그의 진지한 사과에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원망이 어느 순간 점점 사라졌다.어디까지나 채성휘는 채성휘고 부모님은 부모님이기 때문이다.또한 앞으로도 함께 살지 않기에 상관없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임은미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채성휘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우리 이 아기들 이외에 다른 아이는 낳지 맙시다. 제가 이미 의사 선생님께 정관 수술에 대해 상담도 받았어요. 은미 씨의 몸 상태가 안정되면 제가 할 겁니다.”“정관수술이요?”임은미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채성휘가 결정했을 당시 그녀는 산후 조리실에 있은 관계로 못 들었기에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채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아이를 낳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고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두 아이면 저한테는 충분하거든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 쪽은 은미 씨가 걱정 안 해도 돼요. 제가 내일 다시 가서 토론해 볼게요.”그의 말에 임은미는 매우 감동했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웠다.“내일 아버님 어머님이랑 상의할 때 잘 말씀드려요. 어디까지나 두 분은 모두 성휘 씨를 위해서 한 말씀일 테니까요.”임은미는 채성휘를 빤히 보며 말했다.채성휘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얼마간 더 꽁냥거리다가 잠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현실은 매우 가혹했다.잠든 지 얼마 안
“그럼 이렇게 합시다. 만약 데릴사위를 못 데려오면 채씨 가문의 자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는 걸로 할게요.”채성휘는 또다시 포인트를 콕 짚어 말했다.하지유는 목이 메었다가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채성휘, 너 지금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이러지. 내가 그런 뜻이 아니란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거야!”그녀의 말에 채성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단지 제 뜻을 말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요. 두 분의 태도를 보시고 은미 씨 부모님도 지금 매우 화가 나신 생태에요. 그리고 저와 은미 씨의 결혼식도 취소할지 고민중이시고요.”“감히!”하지유는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임씨 가문이 이렇게까지 세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그쪽에서 무슨 자격으로 결혼식을 취소한다는 거야? 예물도 다 사뒀고 사람들에게 결혼 소식도 다 알렸는데, 더구나 지금 아이도 낳은 상태에서 우리 집안 외에 그런 딸을 누가 데리고 가겠어?”“고다정 씨가 있는 한 은미 씨가 아무리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해도 충분히 시집갈 수 있어요! 그리고 고다정 씨는 원래 약한자를 괴롭히는 걸 제일 참지 못하는데 만약 두 분이 은미 씨를 괴롭히면 지금 소유하고 있는 개인 자산들은 나중에 손도 못 대고 다 뺏길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세요.”채성휘는 차갑게 그들을 보며 말했다.하지유는 또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이때 채은호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만 해. 네 뜻은 우리도 충분히 알아들었어. 이제 너랑 은미의 일은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게.”그는 자기 아들이 오늘 두 사람을 찾아온 원인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려고 왔다는 걸 눈치챘다.비록 임씨 가문의 태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혼사는 치르는 게 그들한테는 이로워서 아무런 사고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그날 저녁, 고다정은 병원에서 하루 종일 임은미와 같이 있다가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빌라로 돌아왔다.
임은미가 아이를 낳게 되면서 고다정의 출산 예정일도 곧 다가오고 있었다.여준재는 이제 회사에 나가지 않고 모든 정력을 고다정에게 쏟았다.여씨 가문의 사람들은 여진성만 회사 일을 맡아야 해서 그를 빼고 모두 빌라로 이사 왔다.모든 사람이 고다정의 출산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에 고다정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들의 행동들로 인해 자신이 중히 여겨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출산 예정일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고다정은 일찌감치 여준재와 같이 병원에서 출산 준비를 했다.그리고 여준재는 그녀의 곁에 딱붙어서 의사가 요구하는 출산 전 모든 준비도 끝마쳤다.마침내 아기는 나흘째 되던 날 밤에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나오려 했다.잠결에 고다정은 배가 슬슬 아파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 아기가 곧 나올 것 같았다.그녀가 간호사를 부르기도 전에 이미 진작에 깨어있던 여준재는 상황을 눈치챘다.“아기가 나오려고 하나요?”여준재는 침대에서 재빨리 일어나더니 한껏 긴장한 얼굴로 고다정에게 물었다.고다정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간호사 좀 불러줘요.”그녀의 말에 여준재는 서둘러 호출 버튼을 눌렀는데 그의 한쪽 손은 아까부터 쭉 고다정의 손을 잡고 있었다.그리고 애써 불안한 기색을 감추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만약 도저히 아파서 참기 힘들면 입술을 깨물지 말고 제 손을 깨물어요. 저는 피부가 두꺼워서 아프지 않거든요.”“지금 너무 아픈 정도는 아니에요.”고다정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여준재가 고다정을 사랑하는 만큼 그녀도 여준재를 많이 아낀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달려왔다.여준재는 그들을 도와 고다정의 침대를 밀어주며 함께 분만실로 향했다.곧 들어갈 때 여준재는 고다정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안심시켰다.“만약 아파서 힘들면 제왕절개로 바꿔요. 어차피 저는 배에 흉터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당신이 힘든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알겠죠?”“알아요. 무리하지 않을게요.”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