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안 돼 강세욱에게 가로막혀버렸다.“세욱 도련님...”의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세욱은 덥석 그의 멱살을 잡았다.“잔말 말고 똑바로 얘기해. 할아버지 오늘 병원에 왜 오셨어?”“회장님은 건강검진 받으러 오셨어요...”“한 번만 더 묻는다!”강세욱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내가 만만해 보여?”의사는 몸을 벌벌 떨었지만 회장님의 지시가 있어 감히 말을 내뱉지 못했다.다만 눈앞의 강세욱도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다. 의사는 중간에 끼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제가 어찌 감히요.”강세욱이 말했다.“날 진짜 바보로 아네? 할아버지가 건강검진 받으시는데 왜 혈액 검사실 앞에 계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이 병원엔 우리 강씨 집안 사람들의 모든 DNA가 있어. 만에 하나 병 걸리면 바로 쓸 수 있게 말이야. 할아버지는 방금 아기를 안고 계셨는데 유전자확인 검사가 아니면 뭔데?”“맞는 말씀이지만 유전자확인 검사는 절대 아니에요...”강세욱은 코웃음 치며 의사를 내팽개쳤다.“그 아이 강세헌 아이가 틀림없어!”의사는 뒤로 두 발짝 물러나 문에 부딪히고 나서야 바로 섰다.“저는 몰라요, 정말 모른다고요. 제발 저희 같은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지 말아요.”의사가 괴로움을 호소하자 강세욱은 더 확신에 찼다.할아버지가 명령을 내리니 의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은 분명 숨기는 게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영원히 숨겨질까? 천만에!강세욱은 계략을 세우며 병원을 나섰다....천주그룹.회사에서 업무를 보던 강세헌은 송연아를 지키던 부하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가 문을 마구 두드리고 물건을 내던진다고 했다. 다들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안 나 강세헌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세헌은 곧바로 돌아갔다.침실 문을 열자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송연아는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고 입고 있는 셔츠는 상반신만 가린 채 가늘고 긴 다리가 밧줄에 묶여 훤히 드러냈다. 그녀는 인기척 소리를
송연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괴로운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원래 안 알려주려고 했어요. 세헌 씨가 아이의 존재를 영원히 모르게 할 생각이었어요. 이걸로 바람기 많은 세헌 씨에게 복수하려 했거든요.”강세헌은 그녀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지금 한 말 다 진짜야?”“내가 당신 속여서 뭘 해요?”그녀는 김빠진 공처럼 강세헌의 몸에 축 늘어졌다.“그때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최지현이 양수천자를 하다가 감염됐어요. 그 일이 아니더라도 그 아기는 지켜내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지켜냈어요. 내가 사라진 몇 개월 동안 바로 아이 낳으러 갔어요.”강세헌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댔다.그는 호흡도 가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손을 들고 싶었지만 갑자기 몸에 기운이 쭉 빠져 들 수 없었다. 강세헌은 잠긴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아이는?”송연아는 울먹이며 답했다.“고훈이 잡아갔어요. 아이로 날 협박하며 결혼해달라고 했어요.”강세헌의 얼굴에 띈 놀라움과 희열이 한순간에 싹 사라졌다!“뭐라고?”그는 한없이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였다.“그러니까 이것 좀 풀어주라고요. 나 그 인간 찾아가야 해요...”강세헌은 그녀의 허리를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둘은 순간 위치가 바뀌었다.“임 비서한테 옷 가져달라고 할게. 아이 일은 나한테 맡겨.”말을 마친 강세헌은 곧바로 문밖을 나섰다.그는 지금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한다!송연아가 그를 불러세웠다.“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요. 아기 다치지 않게 해줘요.”그녀는 강세헌이 경솔하게 굴어 고훈의 심기를 건드리고 아이까지 연루될까 봐 걱정했다.강세헌이 대답했다.“내가 알아서 해.”말을 마친 강세헌은 자리를 떠났다.그는 가장 먼저 고훈을 찾아갔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다.강세헌은 전혀 이런 적이 없다.확신이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하지만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다.어쩌면 걱정이 앞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듯싶다.또 어쩌면 너무 신경 쓰다 보니 차분하게 생각할 수 없는 듯싶다
“강세헌, 너 무슨 짓이야?”고훈이 분노를 터트렸다.“아이는 어디 있어?”강세헌이 절박하게 물었다.고훈은 눈치가 빨라 그의 말을 바로 알아채고는 미간을 구겼다.“아이가 어디 있는지는 너희 할아버지한테 물어야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똑바로 대답하란 말이야!”임지훈이 앞으로 다가가 발로 걷어차려 하자 강세헌이 재빨리 그를 말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되물었다.“그 말 무슨 뜻이지?”“무슨 뜻인지 몰라서 물어? 네 할아버지가 아이를 뺏어갔다고!”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강의건이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단 말인가?그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이가 고훈에게 있으면 할아버지 옆에 있는 것보단 안전할 텐데.강의건은 줄곧 강세욱 가족만 챙기고 있어 만에 하나 강세욱이 알게 된다면...강세헌은 돌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너무 신경 쓰다 보니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강의건에게 전화했다.“네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잡아가서 아이랑 교환하게 했어. 그렇지 않으면 나 절대 아이 안 줘.”고훈은 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손발이 묶여 꿈쩍할 수 없었다. 그는 임지훈을 쳐다보며 쏘아붙였다.“나 안 풀어주고 뭐 해?”임지훈은 아이가 그에게 없다는 걸 알고는 가슴이 움찔거렸다.‘괜히 두들겨 팼네!’임지훈은 곧바로 그를 풀어줬다.드디어 손발이 풀린 고훈은 서슴없이 임지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임지훈은 무방비 상태로 그에게 맞아 머리가 아찔거리고 입가에 피까지 흘러나왔다.“방금 네가 나 찼어? 그래?!”고훈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내가 아주 만만해 보이지?”그는 또다시 주먹을 날렸다.임지훈은 좀전의 주먹에 정신도 못 차린 채 또 한 방 더 맞으니 아예 피를 토하며 고통을 호소했다.그는 입술을 살짝 움직이며 손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을 뿐 끝내 반격하지 않았다.“이걸로 퉁 쳐요.”“뭐라고? 너 방금 나 몇 번 찼어?”고훈은 여전히 씩씩거렸다.그는 아직도 배가 너무 아팠으니까.임지훈도 머리가 어
강의건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강세헌은 싸늘한 눈빛으로 돌변했다.“누구 짓이에요?”“나도 잘 몰라.”강의건은 말하면서 재빨리 강세헌의 팔을 잡았다.“일단 진정해. 아이는 무사할 거야...”“할아버지는 언제 아셨어요? 아이에 관한 일 말이에요!”강세헌은 할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강의건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세헌아...”“저희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고 제가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는 누구보다 할아버지가 제일 잘 아실 거예요. 줄곧 잠자코 있었던 건 그 일을 잊어서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더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하지만 그들이 감히 내 아이를 건드리면 그땐 내가 매정하다고 원망하지 마세요.”강세헌은 문턱에 들여놓으려던 발을 걷고 몸을 홱 돌려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는 가면서 임지훈에게 명령했다.“그쪽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아야겠어.”“네.”임지훈이 진지하게 대답하며 바로 분부에 나섰다.“세헌아...”강의건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직 이렇게 살아있는데 가족들이 서로 처절하게 싸우는 걸 정말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그는 손을 벌벌 떨며 물었다.“전 집사, 혹시 세욱이가 아이를 훔쳐 갔을까?”전 집사가 대답했다.“아닐 겁니다.”“아니, 무조건 세욱이 짓이야. 그날 유전자확인 검사할 때 병원에서 세욱이를 마주쳤잖아. 그때부터 의심했을 거야. 하마터면 들통날 뻔했잖아. 그날 밤에 세욱이가 집에 찾아왔고 얼마 안 지나서 아이가 사라졌어. 세욱이가 아니면 또 누가 그랬겠어?”강의건은 사실 다 알고 있지만 가끔 인정하기 싫었다.“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전 집사가 위로했다.강의건은 몸이 떨려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전 집사가 옆에서 그를 부축했다.“이번엔 나도 지켜주지 못해.”강의건이 나지막이 말했다.“하지만 그들도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요. 제가 듣기로 도련님이 결혼하실 때 장진희 씨가 사람을 시켜 도련님을 암살하려고 했다던데
강세헌이 말했다.“나도 알아.”“그런데 딴 사람 집에 두고 와요?”송연아는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찬이가 싫은 거죠?”찬이?아이의 이름을 들은 강세헌은 가슴이 움찔거렸다.‘아이 이름이 찬이야?’“네가 지어준 이름이야?”강세헌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송연아는 마음이 초조해 그의 물음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아이뿐이다.“당장 데려와요. 아니면 그 친구 집 주소 알려줘요. 내가 가서 데려올게요. 찬이 내 아이예요. 세헌 씨가 딴 사람 집에 두고 올 자격이 없다고요. 설마 아이가 세헌 씨의 걸림돌이 될까 봐 두려운 건 아니겠죠? 세헌 씨랑 이지안 씨 사이를 방해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거라면 바로 얘기해요. 내가 평생 숨겨줄 테니까. 아무한테도 아이의 정체를 밝히지 않을게요. 계속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요...”강세헌의 낯빛이 점점 더 굳어졌다.“다 얘기했으면 그만 입 다물어. 아이는 내가 데려올 거야. 며칠만 더 시간을 줘...”“지금 당장 데려오라고요!”송연아는 일분일초도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강세헌도 지금 아이의 행방을 모른다. 다만 그녀가 걱정할까 봐 얘기하지 않고 있다.하지만 그는 엄마의 애절함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진정해.”강세헌이 그녀를 안으려 했지만 송연아가 홱 뿌리쳤다.“아이 돌려줘요!”강세헌은 뒷걸음질 치며 입술을 앙다물고 그녀를 쳐다봤다.이때 송연아가 불쑥 말을 꺼냈다.“지금 아이를 뺏고 싶어서 일부러 나한테 친구 집에 뒀다고 하는 거예요?”강세헌은 몸을 돌렸다. 송연아는 이미 너무 격앙돼 있었다.그녀는 강세헌을 잡아당기며 계속 말을 이었다.“어디 가요? 마음이 찔렸어요? 아이도 뺏어오고 싶고 내가 아이 엄마란 사실도 인정하기 싫어서 일부러 속이는 거죠? 내 말 잘 들어요. 찬이 내 아이예요. 뺏어갈 생각 하지 말고 찬이한테 새엄마 만들어줄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요...”“송연아!”강세헌이 언성을 높였다. 그녀가 점점 미쳐 날뛰었으니!송연아는 전혀
전화기 너머로 임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사해봤는데 강세욱 씨가 본가에 다녀갔어요. 아이는 줄곧 본가에 있다가 세욱 씨가 다녀간 이후로 사라졌어요. 아마도 강세욱 씨가 훔쳐 간 것 같습니다. 전 집사님 말로는 회장님께서 숨기려 했는데 유전자확인 검사를 받을 때 세욱 씨랑 마주쳤대요...”강세헌이 미간을 찌푸렸다.“유전자 검사라니?”“회장님은 강씨 일가의 혈육인 걸 더 확신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가서 친자확인 검사를 하셨대요.”임지훈이 말했다.“검사 결과 아이는 정말 대표님 아이였고 게다가 남자아기였대요.”강세헌은 송연아가 그날 밤 그 여인이란 걸 알게 된 이후로 그녀가 낳은 아이의 정체를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송연아에겐 처음부터 끝까지 강세헌 한 남자뿐이었으니까.임지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아이가 강세욱 씨한테 있지만 저희는 지금 잡으러 갈 계기가 없어요...”애초에 강의건은 강세욱 가족을 보호하고 또한 강세헌이 화풀이할 수 있도록 둘째네 가족을 강씨 일가에서 내쫓았다. 게다가 강씨 일가의 그 어떤 재산도 남겨주지 않았고 회사 지분도 더더욱 없었다.장진희는 본인 저축으로 아들에게 ‘트랜스’라는 유흥업소를 차려주었지만 지난번 그녀가 강세헌을 암살하려고 한 바람에 강세헌이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그들은 현재 강윤석의 명의로 된 공장 몇 채의 임대와 일부 주식, 펀드에 의존해 살고 있다.“사람 시켜서 계속 그들을 미행하라고 해. 일단 수상한 낌새가 발견되면 바로 나한테 알려. 그리고 넌 일단 돌아와. 다른 일 시킬 거 있어.”강세헌은 마음속에 이미 계획이 잡혔다.“네.”임지훈이 바로 대답했다.강세헌이 전화를 끊자마자 송연아가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강세욱 씨는 세헌 씨 사촌 동생 아니에요? 그 사람이 왜 찬이를 잡아가요?”송연아는 강의건에게 두 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한 명은 강세헌의 아빠이고 둘째는 그의 삼촌이다.그녀는 강세헌의 삼촌이 강씨 일가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강세헌과
“세헌 씨랑 나랑요?”송연아는 살짝 의외였다.“그럼 이지안은 어떡해요?”강세헌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는 왜 자꾸만 애틋한 분위기를 망칠까?“왜 항상 쓸데없는 사람을 언급해?”송연아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지금 이지안과 강세헌의 관계가 너무 거슬리고 생각만 하면 기분이 확 잡쳤다.“이미 임 비서한테 시켜서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부서를 바꿨어. 게다가 난 그 여자랑 아무 일도 없었다고.”강세헌이 손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하자, 송연아가 재빨리 머리를 돌렸다.“세헌 씨 일이니까 나한테 해명할 거 없어요.”강세헌의 손이 허공에 붕 떠 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내렸다.“넌 우리 아이한테 가정을 이뤄주고 싶지 않아?”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도 당연히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이뤄주고 싶었다. 찬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건강하고 씩씩하게 크길 바랐다.그건 찬이한테도 행복한 일이니까.그리고 그녀도 강세헌을 좋아한다.아이를 위해서 강세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마침 이 남자도 호감을 표시하고 있으니...“네, 그러고 싶어요.”찬이를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이 행복을 쟁취해야 한다. 늘 피하고 움츠리는 건 잘못된 일이다!“아 참, 세헌 씨 사촌 동생이 왜 찬이를 잡아갔대요?”송연아가 물었다.“우리가 만났던 그 날 밤, 장진희가 사람을 시켜서 날 암살하려 했어. 장진희는 강윤석의 아내야. 강윤석은 우리 아빠의 동생이고.”그는 일부러 호칭을 피하며 이름을 불렀다.그들은 강세헌의 삼촌, 숙모가 될 자격이 없으니까.강세헌은 늘 대놓고 이름을 불렀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리자 강세헌이 말했다.“들어와.”비서가 커피를 들고 안에 들어왔다.비서는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고는 바로 나갔다.강세헌은 커피에 설탕과 시럽을 추가하지 않는다. 커피의 진하고 쓴맛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니까.요 이틀 그는 바삐 돌아치느라 제대로 휴식하지 못해서 몹시 피곤해 보였다.송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뒤로 걸어갔다
그는 재빨리 한마디 더 보충했다.“찬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만 위해서.”그는 송연아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송연아는 뒤에서 그의 목을 껴안더니 얼굴을 파묻고 가볍게 응했다.그녀는 강세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딴 여자랑 있는 게 화났다.송연아는 찬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이뤄주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강세헌을 쟁취하고 싶었다.이때 임지훈이 돌아왔다.그는 너무 급한 나머지 노크하는 걸 깜빡했는데 사무실에 들어오니 송연아가 한창 강세헌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뒤늦게 노크를 깜빡했다는 걸 알아챘다.이제 막 문을 닫으려는데 강세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회의실에서 기다려.”“네.”말을 마친 임지훈은 문을 닫고 물러섰다.송연아는 살짝 뻘쭘한 듯 그의 목을 안고 있던 팔을 뺐다.“찬이 구출 대책을 논의해요?”강세헌이 대답했다.“맞아. 별일 없으면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임 비서랑 얘기 마치고 금방 돌아올게.”송연아는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조급한 마음을 억눌렀다. 그녀는 지금 강세헌을 귀찮게 굴면 안 된다. 찬이를 잡아간 건 강씨 일가의 사람이니 강세헌이 누구보다 잘 알아서 대책을 세울 것이다.이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강세헌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다.하지만 착잡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강세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송연아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그가 보이지 않자 드디어 그녀도 걱정에 휩싸인 얼굴로 돌아왔다.좀 전엔 강세헌에게 부담을 줄까 봐 일부러 담담한 척했다.송연아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긴장을 풀어보려 했다.그녀가 커다란 통유리창 앞에 다가가니 도시의 뷰가 한눈에 들어왔다.탁 트이는 전경에 그녀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이때 비서가 불쑥 들어왔다.“대표님께서 송연아 씨를 모시고 회사를 둘러보라고 하셨습니다.”강세헌은 송연아가 홀로 사무실에 남아 잡생각을 할까 봐 비서한테 분부하여 그녀를 데리고 회사를 둘러보라고 했다.송연아도 이 회사의 구조를 아직 잘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