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로 부탁하면 도와줄게요. 그런데 계속 이런 태도이면 저 가요?”“잠깐만요.”방유정은 지금 임지훈을 그냥 보내면 아버지가 직접 찾아갈 거고 그렇게 되면 더 난감할 거라는 걸 알기에 서둘러 말렸다.“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부탁해요?”“그거로는 안 되죠. 부탁하는 진심을 보여줘야죠.”방유정은 지금까지 이런 비굴함을 당한 적이 없었기에 분노가 치밀어서 숨을 헐떡였다.“이것도 안 된다고요?”임지훈이 그녀의 귓가에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부족하죠.”방유정은 놀라더니 순식간에 얼굴까지 토마토처럼 빨개지며 반응했다.“당신...”임지훈이 다시 말했다.“어머,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순진해요? 정말 몰랐네요. 유정 씨가 얼굴이 빨개진 걸 봐서라도 도와줄게요.”방유정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임지훈이 승낙했기에 화를 낼 이유가 없어서 헛기침하며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애썼다.“가요. 제 차가 주차장에 있어요.”임지훈이 말했다.“짐도 챙겨야 해요.”“제 차에 넣어둬요.”임지훈은 짐을 그녀의 손에 넘겨주며 말했다.“저에게 부탁을 하면서 이 정도는 유정 씨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요?”“그러고도 남자예요? 어떻게 여자에게 이런 걸 시켜요?”“저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으면 되잖아요.”임지훈이 웃으며 말하자, 방유정은 한숨을 쉬며 하는 수 없이 그의 짐을 챙겨서 따라갔다. 그녀는 임지훈의 뒷모습을 째려봤다.‘이런 남자는 처음이야? 남자가 어떻게 감히 이런...’“절대 저를 남자로 생각하지 말아요.”임지훈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는데 마치 보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듯싶었다.“...”방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차는 어디에 주차했어요?”임지훈이 물었다.“저기 핑크색 차에요.”그녀는 실버색 차에 핑크색 필름을 붙였는데 임지훈이 한마디 평가했다.“역시 여자들이 좋아하는 색이네요.”“왜요? 지금 여자라고 차별 대우하는 거예요? 지훈 씨도 여자가 낳았다는 걸 잊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여자를 차별 대우
“그냥 입 다물고 가능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방유정이 말했다.임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유정 가까이에 다가가며 말했다.“벙어리가 되라는 거죠. 그런데 제가 언어장애인이면 부모님께서 저를 반가워하시겠어요?”방유정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왜요? 저희 부모님이 반가워했으면 좋겠어요?”임지훈은 당황해하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아니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방유정이 말했다.“저 남자한테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데 당신이 처음이에요.”그녀는 말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그 순간 임지훈은 준비가 없었기에 뒤로 젖혀지는 충격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방유정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운전해요?”방유정은 임지훈의 질문을 무시하고 더 빨리 달렸다. 임지훈은 자연스럽게 손잡이를 잡았다.“저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지금 살인을 하려는 거예요?”방유정은 불쾌했다.“닥쳐요.”임지훈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저는 유정 씨를 도와주러 가는 거예요. 제가 잘못했나요? 속도 줄여요!”방유정의 차는 하마터면 앞에 SUV 차량에 부딪힐 뻔했는데 임지훈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여자는 거만할 뿐만 아니라 손도 거치네.’그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방유정을 건드리면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얼른 도와주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는 어느덧 방씨 가문의 집 앞에 도착했고 방유정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저희 부모님이 저와 사귀냐고 물어보면 그냥 맞다고 해요.”임지훈은 천천히 대답했다.“동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전혀 고마워하지 않잖아요.”“이제 늦었어요.”방유정이 차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탰다.“말을 적게 하는 거 잊지 말고요.”임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서 내려요.”방유정이 다그쳤다.방유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임지훈은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고 내렸다.“왔어요?”방유정 아버지는 눈꼬리를 올려 눈가에 주름을 잡으
임지훈이 입술을 다셨고 방유정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아빠, 제가 아빠 자식이에요? 아니면 저 사람이 아빠 자식이에요?”“당연히 사위와 더 친해져야지.”방유정의 부모님은 동시에 똑같이 말했다. 그들은 자기 딸이 놀 줄만 알았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방씨 가문은 나중에 사위 덕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딸이라도 눈앞에 있는 훌륭한 사윗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임지훈은 평생 처음으로 이와 같은 열정적이고 따뜻한 대접을 받아서 정말 익숙하지 않았다.방유정은 할 말을 잃고 이마를 잡았다.방유정 어머니가 말했다.“어떤 걸 좋아해요? 준비할 거니까 점심에는 우리 집에서 식사해요.”임지훈은 방유정을 바라보더니 점심까지 먹어야 한다는 말은 없지 않았냐는 눈짓을 보냈다. 방유정도 두 분의 열정을 참을 수 없었는데 그녀가 시집갈 수 없는 결격 사유라도 있는 듯싶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두 분 사이에 끼어 있는 임지훈을 잡아당겼다.“엄마, 아빠, 이 사람은 제 남자 친구예요. 두 분이 그렇게 꼭 끼고 있으면 우리는 언제 감정 교류를 해요?”두 사람은 그제야 깨달은 듯 웃었다.“그래그래. 우리가 생각이 짧았어. 너희들도 시간이 필요할 거니까 어서 위층으로 올라가서 미래 사위가 우리집을 둘러보게 하고 네 방에 가서 얘기 나누고 있어.”“...”‘헉, 이런 부모가 어디에 있어? 설마 내가 시집 못 갈까 봐 두려운 거야? 임지훈 앞에서 무슨 개망신이야!’“저 분명 두 분이 낳은 친자식이 아니고 임지훈이 친자식인 것 같아요.”“사위는 반쪽짜리 자식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러니 내 친아들이나 마찬가지야.”“...”“...”방유정과 임지훈은 모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방유정은 조금 더 같이 앉아 있다가는 그녀의 아버지 입에서 또 어떤 말이 나올까 두려워서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고 생각하며 임지훈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유정의 방에 들어가자, 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 부모님께서 저를 엄청 맘에 들어 하시는
임지훈은 방유정의 볼이 살짝 붉어진 것을 눈치채고 일부러 더 놀리려는 듯 입술을 귀 가까이 대며 말했다.“괜찮아요, 내가 도와주겠다고 한 거니까 약속한 대로 꼭 마무리까지 잘할 거예요. 그런데 오늘은 넘어간다고 해도 언제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방법은 오래가지 못해요.”“저도 당연히 알아요.”방유정은 감히 임지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는지 눈길을 피해 다른 곳을 봤다. 그녀도 임지훈을 찾으러 갈 때 이 문제를 생각했었는데 우선 임지훈에게 부탁해서 부모님을 안정시키고 임지훈이 프랑스로 돌아간 다음 그녀와 임지훈이 장 거리 연애를 하는 거로 시간을 좀 벌어서 그동안 다른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 사람을 찾은 다음에 부모님에게 임지훈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되니까 그동안은 부모님들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저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달라붙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임지훈이 말했다. 두 사람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그는 방유정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마저 맡을 수 있었고 눈동자는 무심결에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닿았는데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탐욕스럽게 바라봤다.갑자기 방유정이 소리쳤다.“아빠, 엄마, 지금 문 앞에 있어요?”방유정의 목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문 앞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방유정은 부모님이 떠났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임지훈을 봤는데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몇 초가 지나 두 사람 동시에 눈길을 피하더니 방유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임지훈이 서둘러 해명했다.“방금은 부모님께서 가짜인 걸 발견할까 봐 그랬어요.”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알아요. 그냥 장난친 거잖아요. 알아요.”임지훈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진짜로 여기에서 밥을 먹어도 돼요?”방유정이 답했다.“엄마, 아빠가 저렇게 열정적인데 방법이 없잖아요.”임지훈도 동의했다
임지훈의 시선이 천천히 방유정의 다리로 옮겨졌는데 그녀의 다리는 새하얗고 곧게 뻗어 있었다. 발에는 보송보송한 털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발가락에는 예쁜 네일아트를 했는데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피부가 더 새하얗게 보였다. 솔직하게 예뻤다.임지훈은 시선을 거두고 웃으며 물었다.“유정 씨 여자 맞아요?”“여자가 아니면 남자겠어요?”방유정은 그의 말에 화가 났다. 자기처럼 피부가 하얗고 몸매도 좋으며 돈도 많은 미녀를 보고도 여자냐고 물어보다니?“정말요?”임지훈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당신이 여자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요?”방유정이 증명하려고 가슴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임지훈이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그거 가짜 아니에요?”방유정은 화가 치밀었다.“제 몸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엄마 아빠가 주신 거예요. 가짜는 하나도 없다고요. 지금 그 표정은 못 믿는다는 거예요?”그녀가 제일 자랑스러워하는 게 바로 성형수술이 난발하는 시대에서 칼 한번 안 대고 간단한 피부관리로만 예쁨을 유지하는 그녀의 미모였다. 게다가 지금 한창 꽃다운 나이여서 성형까지는 필요 없이 천생 미인이었다.임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예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판단할 수가 없죠.”방유정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임지훈 씨, 자꾸 그렇게 사람을 놀리면 죽여버릴 수도 있어요?”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높았는지 아래층에 있는 그녀의 부모마저 소리를 듣고 서로 마주 보다가 위층으로 올라왔다.똑, 똑, 똑...방유정 아버지가 노크했다.“유정아, 뭐 하는 거야? 지훈 군 앞에서 그러면 못 써. 너 자꾸 그렇게 성질부리면 지훈 군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혼내 줄 거야.”방유정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방금 그녀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임지훈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문손잡이를 돌리며 들어가려고 했지만, 안에서 잠가서 열리지 않았다.그러자 방유정 어머니가 말했다.“유정아, 문 열어.”방유정은 문은 열지 않고 말했다.“엄마, 아빠, 저희 아무
방유정은 임지훈의 말을 들으며 어이가 없었다.‘어떻게 감히 내 부모 앞에서 저런 고자질을 할 수가 있지? 그리고 괴롭힘을 당한 건 분명 나인데?’방유정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지훈 씨, 당신이 그러고도 남자예요?”임지훈이 억울한 며느리처럼 불쌍한 표정으로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자, 방유정 아버지가 그녀를 꾸짖었다.“너 뭐 하는 거야? 내가 너를 너무 버릇없이 키웠어. 얼른 지훈 군에게 사과해.”방유정은 얼굴을 붉히며 토로했다.“괴롭힘을 당한 건 저예요.”“지훈 군이 언제 너를 괴롭혔어? 우리는 너의 폭행밖에 본 거 없는데. 얼른 사과해.”“안 해요! 못해요!”방유정은 절대 사과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크면서 사과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니와 게다가 자기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에게는 더더욱 사과할 수가 없었다.“지훈 씨, 적당히 해요. 부끄럽지 않아요?”방유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임지훈은 곧바로 그녀를 무서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사과 안 해도 돼요. 저 이제 습관 되어서 괜찮아요. 아버님, 어머님 유정 씨에게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넌 있다가 다시 보자.”“지훈 군, 우리 먼저 내려가요.”임지훈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고 방유정 아버지는 아내에게 눈치 주며 말했다.“당신은 남아서 유정이를 좀 혼내. 저렇게 컸는데 이제 셈이 들어야지. 내 사위를 도망가게 하면 어디에 가서 이렇게 좋은 사위를 또 찾을 수 있다고?”방유정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사위를 잘 달래줘요.”“알았어.”방유정 아버지가 임지훈을 따라가며 물었다.“체스 둘 줄 알아요?”임지훈이 대답했다.“네.”방유정 아버지가 그의 의견을 물었다.“그럼, 우리 몇 게임 둘까요?”“좋아요.”위층.방유정 어머니가 딸의 손을 잡고 물었다.“너 대체 왜 그래?”방유정이 분노를 억제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안 보여요?”방유정 어머니가 웃었다.“네가 너무
임지훈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을 알기에 완벽하게 대답했다.방유정 아버지는 너무 성급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우리 유정이를 어떻게 생각해요?”방유정 아버지가 묻자, 임지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좋은 사람입니다.”방유정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변덕이 심한데도요.”그는 말하면서 체스 한 보 움직였는데 임지훈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면서 이길 수 있는 한 수를 뒀다. 이제 임지훈이 한 보만 잘못 두면 지게 된다.방유정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임지훈을 보며 말했다.“내 딸은 어릴 때부터 우리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고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성격이 좀 안 좋긴 해도 마음만은 착하고 예뻐요.”방유정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고 가정 분위기가 좋은 건 임지훈도 느꼈다. 방유정이 이런 가정에게 자랐으니 조금 변덕이 있다고 해도 마음만은 착하다는 건 확실했다. 너무 잘 보호받았기에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요즘 세상에 유정 씨 같은 사람이 적습니다.”사회의 시달림에서 마음이 변해가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방유정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런데 보호를 너무 잘해주다 보니 내가 죽으면 어떡할지 그것도 걱정이에요.”임지훈이 당황한 듯 눈을 번쩍 뜨자, 방유정 아버지는 황급히 웃으며 말했다.“농담이에요, 농담.”임지훈은 간신히 한 수를 둬서 공격을 피했다.“사실 우리 딸 꽤 괜찮아요.”임지훈도 방유정이 괜찮다는 생각은 들지만, 두 집안이 어울리지 않기에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네 맞습니다.”임지훈의 대답을 듣고 방유정 아버지가 말했다.“그럼, 한번 잘 생각해 봐요.”임지훈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는데 방유정 아버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 같이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이다.방유정 아버지도 업계에서 평생 많은 사람과 일을 하다보니 딸의 속임수를 진작에 알아챘지만 모르는 척했다. 단 임지훈은 정말로 마음에 들었으므로
차를 마신 후 조금 지나자, 달콤한 뒷맛이 났다. 임지훈은 비록 차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건 좋은 차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방유정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아버님 초대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손을 흔들었다.“이런 것 가지고 뭘 그래요. 내 사위만 되면 방씨 가문 전체를 물려줄 건데.”“아빠.”방유정은 화가 났다.“아빠는 왜 계속 그 말씀이세요? 지훈 씨가 도망가겠어요.”방유정 아버지가 웃었다.“그래그래, 내가 잘못했어.”방유정은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어깨에 기대며 물었다.“누가 이겼어요?”임지훈이 말했다.“제가 졌어요.”방유정 아버지가 말했다.“두 게임했는데 한 사람이 한 번씩 이겨서 무승부야.”임지훈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아버님이 저를 봐주셔서 한 번 이긴 거죠. 아니었으면 한 게임도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요즘 젊은이 중에 체스 둘 줄 아는 사람 많지 않은데 그 정도면 정말 잘 두는 거예요.”방유정 아버지가 칭찬했다.“우리 집 뒷마당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 유정이랑 가서 구경해 봐요.”방유정 아버지는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단둘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임지훈은 거절하지 않았다.오히려 방유정이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렸다.“별로 볼 것도 없어요. 아빠가 기르는 물고기 몇 마리만 있는 거잖아요.”방유정 아버지는 임지훈을 보며 말했다.“내가 물고기를 좋아해서 외국에서 수입한 품종인데 괜찮은 물고기들이에요.”임지훈이 말했다.“그럼, 한번 봐야죠.”“유정이랑 같이 가 봐요.”방유정 아버지는 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유정아, 어서.”방유정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요.”임지훈은 화를 내지 않고 방유정을 따라갔다. 두 사람은 가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걷기만 했는데 뒷마당에 도착하자 작은 수림이 보였다. 가상의 산과 흐르는 물 그리고 초록색 정원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 풍경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