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 차 몇 대가 쇼핑몰 앞에 정차되었다.“다들 여기서 기다려요. 우리는 위에서 놀다 올 테니까 그 사이에 차 한잔하러 갔다 와도 되고!”제갈 소진은 보디가드한테 몇만 원 정도 쥐여주었다.“우리 그저 위에서 당구 치러 가는 거고 도범 씨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보디가드들은 제갈소진이 건넨 돈을 받아 들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이곳 고급 져 보이는데 당구 치는 것도 돈이 꽤 들겠죠 아마?”도범은 으리으리한 건물을 두리번거리면서 물었다.“제가 여기 몇 번 와 봤는데 여기 당구장 꽤 괜찮아요. 음료와 디저트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게다가 인수로 따지는 거라서 시간제한 없이 한 사람당 2만 원!”용신애는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네 명이니까 8만 원이에요!”도범은 용신애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오래 쳐야 본전이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꽤 비싸니까.”“도범 씨더러 돈 내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요. 도범 씨는 우리 따라 놀러 나온 거니까 돈은 당연히 우리가 내야죠. 게다가 몇 만 원이 뭐가 비싸요? 전에 40억이나 받았으면서 뭔 걱정이래.”용일비는 어이없다는 듯 도범을 째려봤다.“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용일비의 말에 헛웃음을 치던 도범은 이내 당구장 안에 보이는 낯익은 얼굴에 눈살을 찌푸렸다.“저기 저 사람 천수 씨 아니에요?”“오빠!”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에 용신애는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곧이어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요 며칠 큰 오빠가 태 씨 가문 사람들과 어울려다니며 내기 당구로 돈을 많이 날린 것도 모자라 여자를 만나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이렇게 가다간 언젠가는 저 사람들처럼 나락으로 떨어질 텐데라는 걱정이 앞섰다.“씨발, 또 졌네!”용천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하하, 천수 씨 너무 급하시네. 천천히 해요.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구만, 전 판은 제가 졌잖아요.”맞은 켠에 있던 남자가 허허 웃으며
남자는 돈을 받기 바쁘게 다시 용천수를 꼬드겼다.“당연하지. 또 10판 해요. 설마 내가 또 지기야 하겠어?”용천수는 승리에 목매는 듯 앞뒤 가지리 않고 또 상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와. 끝내주는데.”그러던 그때, 문어구에 서있던 누군가 용신애를 포함한 몇몇을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신애? 쟤가 왜 여기에 왔지?”용천수는 들어오는 사람을 보더니 낮게 중얼거렸다.“허구한 날 저놈만 끼고 다니다니. 그 노친네들도 그래. 저런 자식이 어딜 봐서 대장이라고. 증거도 대지 못하는 놈을 그렇게 높은 임금을 주면서 고용한 것부터가 이해가 안 된다니까.”그 말을 곁에서 듣던 남자가 씩 웃었다. 그는 삼류 가문의 도련님이자 왕호의 친구인 태용이었다.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용천수에게 몸을 바싹 붙였다.“천수 씨, 제가 볼 때 아주 간단해 보이는데요. 기껏해야 보디가드인데 저희가 저놈을 꼬드겨 당구 내기를 걸고 박살 내주면 되잖아요.”“태용 씨가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히 좋죠.”용천수는 태용의 의견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허허 웃었다.“아이고 이게 누굽니까? 신애 씨와 소진 씨 아닙니까? 다들 보기 귀한 얼굴들이네요.”용신애 일행이 당구장에 발을 들이기 바쁘게 태용이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그쪽이 우리 오빠 꼬셔 나쁜 물 들게 한 사람이에요?”이를 갈고 있던 상대인지라 말투 역시 좋을 수가 없었다.“이거 섭섭합니다. 나쁜 물이라니요.”태용은 히죽거리며 눈앞에 있는 미녀들을 번갈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세 미녀 모두 내로라하는 집안 자제들이 신붓감으로 눈독 들이는 자들인지라 그중 아무와 결혼한다면 땡잡은 거나 다름 없었다.특히 용신애와 제갈소진과 같은 신분과 지위가 높은 여자와 결혼하면 인생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용신애의 사촌 언니인 용일비는 두 사람보다야 못하지만 섹시한 몸매와 특유의 분위기로 뭇남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일은 안 하고 돈내기만 하러 다니는 게 나쁜 물이 아니면 뭔데요?”용신애
건들거리며 말하는 용천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네 양아치가 따로 없었고 예전의 그의 모습은 손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런 용천수를 보노라니 용신애는 실망감만 커졌다. 질 나쁜 인간들과 몰려다니더니 그의 오빠는 이제 완전히 변했다.제갈소진은 두 남매가 격양되어 싸우는 걸 보자 곧바로 제재에 나섰다.“신애야,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노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거니까 상관하지 마. 우리 당구나 치자. 너 당구 잘 치잖아.”“그래!”용신애는 그제야 화를 억누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자기의 오빠가 그렇게 나쁘게 변한 게 아니라고, 그저 여느 청년들처럼 놀기를 좋아할 뿐이라고, 저 사람들과는 다르다고.“쳇, 간섭이 너무 지나치네.”“그러게 말이야. 여동생이 오빠 일까지 상관하고 말이야. 이러다가 전체 용 씨 가문의 일도 간섭하는 거 아니야?”태용 일행 중의 한 놈이 싸늘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이봐요 거기. 혹시 당구 칠 줄 알아요?”그러던 그때, 태용이 손에 들고 있던 당구 큐대를 옆에 놓더니 도범에게 물었다.갑자기 던진 물음에 도범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의아한 듯 자신을 가리켰다.“저요?”“그래요. 그쪽이 박 씨 가문의 그 데릴 사위라면서요? 참 운도 좋지. 어떻게 박시율 같은 미인을 다 꿰찼는지. 부럽네요!”불 붙인 담배를 입에 물며 태용이 비아냥거렸다.“부러운 건 부러운 건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단 격이랄까?”“하하. 그래요? 뭐 제가 운발 하나는 타고났나 보죠. 전 지금껏 항상 운이 좋았거든요.”상대방의 가벼운 도발에 도범은 화 한 번 내지 않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제갈소진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상대가 그녀 마음속의 신과 같은 존재를 모욕했는데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제갈소진은 한껏 어두워진 표정으로 남자를 째려봤다.“태용 씨라고 했나요? 말은 가려서 하시죠. 도범 씨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지 그쪽이 뭘 안다고. 도범 씨 발톱만도 못한 게 어디서! 그리고 이 사람과 이 사람
제갈소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도범 앞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화를 억눌렀다. 그의 앞에서는 여전히 숙녀다운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까.하지만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도범은 상대방의 도발에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뿐이었다.“이름이 태용이구나. 그런데 저한테 뭐 하러 당구를 칠 줄 아냐고 물어봤어요? 솔직히 저 칠 줄 모릅니다. 예전에는 배달 알바만 했었고 그 뒤로 군대에 갔으니까.”“하하, 역시 모를 줄 알았어요. 딱 봐도 그냥 무력만 쓸 줄 알고 평소에 사람 팰 줄만 알았지 이런 신사적인 게임을 할 줄 알겠어요?”도범의 대답을 들은 태용은 예상했다는 듯 그를 비웃었다.“칠 줄 알면 몇 판 놀아볼까 했는데 실망이네요. 역시 천수 씨와 쳐야겠네!”“칠 줄은 모르지만 방금 보니 꽤 할만해 보이던데요? 흰 공을 쳐서 다른 공 구멍 안에 넣으면 끝이잖아요.”도범은 간단하다는 듯 말했다.“풉!”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빵 터져버렸다.“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당구도 엄연히 기술이에요.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 힘 조절, 각도 조절에 예민한 게임이라고요. 대놓고 무식하게 친다고 들어가겠어요? 게다가 룰도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이건 스누커라고 하는 거고. 들어는 봤나 몰라. 자존심 그만 세우고 포기하지 그래요?”그때 태용 일행 한 명이 같잖다는 듯 도범을 바라보며 도발했다.“도범 씨, 그만해요. 이거 그렇게 쉬운 거 아니에요. 평소에 쳐본 적 없는 사람은 치지도 못한다고요. 저도 2년 넘게 했는데 우리 오빠와 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그것을 보다 못한 용신애가 도범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그를 말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만 쉽게 하면 당구를 오래 친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게 당연했다.“그런데 저들이 무시하게 둘 수는 없잖아요.”하지만 도범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먼저 저한테 룰 설명 간단히 해주고 간단한 방법 가르쳐 주면 제가 배울게요. 그러고 시합이든 내기든 하면 되잖아요.”그 말에 나머지 세 명
용천수는 자기의 말에 도범이 적어도 기세가 꺾일 거라고 확신했다. 한 달에 4억짜리 일자리는 전체 중주시에서 또 구하기는 힘들 테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일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데.용 씨 가문 어르신들이 도범이 대단한 신분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그도 도범한테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을 거다.게다가 더 기막힌 건 그렇게 높은 월급을 받으면서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아주 제멋대로라는 거였다. 그런데도 집안 영감탱이와 여동생이 좋다고 하니 원.그리고 박 씨 가문 어르신의 칠순 잔치에 명패를 잃어버렸다고까지 한 놈이거늘. 만약 대장이라면 신분을 숨길 이유가 있었을까?‘지금 다들 저 자식이 대단한 신분이라고 여기는데 그것도 다 거짓말일 거야.’“하하, 솔직히 두렵지는 않아요. 용 씨 가문 보디가드도 제가 되고 싶어 된 거 아니거든요. 용 씨 가문에서 우리 집을 도와주고 제 아내에게 일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저 사실 관심도 없어요.”도범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게다가 이 일자리 솔직히 신애 씨가 저한테 준 거지, 천수 씨가 준 일자리가 아니잖아요.”“이게...”그 말에 용천수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친구들 앞에서 그를 망신 주다니!하지만 그때 태용이 화가 난 용천수를 힐끗 보더니 그를 옆으로 끌어당겼다.“천용 씨, 보디가드와 감정 낭비할 필요 뭐가 있어요? 두 사람 신분만 봐도 천지 차이구만. 저 자식이 어떻게 천용 씨와 비교가 되겠어요?”용천수는 그제야 옷소매를 몇 번 털더니 허리를 더 곧게 폈다.“그건 그렇지...”“그러고 보니 방금 당구가 쉽다고 했죠? 그러면 저와 내기하는 게 어때요? 한 판에 20억. 어때요? 그렇게 자신감 넘치면 저랑 붙죠. 그런데 우리는 한 판에 20억 짜리만 취급해요. 적으면 재미없어서.”그러던 그때 태용이 도발하는 듯한 표정으로 도범에게 말을 걸었다.“좋아요. 그런데 20억 짜리는 내가 너무 시시해서 취급 안 해요. 하려면 한 판에 200억 짜리로 해요.
태용은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에 선심 쓰듯 제안했다. 그러고는 씨익 웃더니 본론을 말했다.“저도 뭐 그쪽이 돈 내지 못하겠다면 손 한쪽 받아 갈게요.”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하하, 요즘 제가 운발이 좋아 게임마다 이긴 덕에 카드에 1000억 정도는 있을 거예요. 뭐 10판 중에 그쪽이 나 5판 이상 더 이길 것도 같지 않지만.”“불가능하다고 봐야지. 10판에서 5판 이상 더 이기려면 적어도 8대 2로 이겨야 하니까. 7:3으로 이기면 800억 밖에 못 받아 가니까.”태용의 말에 다른 놈 하나가 웃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게다가 처음 당구를 접했으면서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그러던 그때,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제갈소진이 이를 갈더니 앞으로 나섰다.“도범 씨,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손을 자르는 건 제가 동의하지 않아요. 지면 제가 대줄게요.”그 말에 도범은 조금 감동했다. 그가 만약 10판 모두 진다면 자그마치 2000억이라는 큰돈인데 제갈소진이 기꺼이 내주겠다고 하니 감동하는 게 당연했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걱정 말아요. 우리 가문 이래 봬도 세계 랭킹에 드는 부자 가문이에요. 2000억 정도는 있어요.”놀란 듯 물어오는 도범의 물음에 제갈소진은 당당하게 말했다.“자그마치 2000억인데, 소진 씨 부모님한테 엄청 깨지는 거 아니에요?”“저 그런 거 무섭지 않아요. 게다가 우리 부모님도 도범 씨 엄청 마음에 들어 하세요. 사위 삼고 싶어서 안달 났거든요.”난감한 듯한 도범과 달리 제갈소진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태도였다. 하지만 말하는 도중 점점 얼굴이 빨개지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쯧쯧. 역시 사랑에 미친 여자는 바보라더니 이성을 아예 잃었군.”용천수는 싸늘하게 웃었다.“그래도 소진 씨가 나서서 대신 돈 갚겠다고 하니 태용 씨가 돈 못 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자식 손은 가져도 소용없잖아요.”“하하, 당연하죠. 저 자식 손이 2000억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뭐요? 당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일부러 져줬다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도범의 말에 발끈 한 태용은 버럭 화를 내며 도범을 쏘아봤다.“헛소리하지 마. 만약 봐줬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할까!”용천수도 만만치 않게 화가 난 듯했다.“내 실력도 꽤 괜찮다고 이것아!”두 사람의 반응에 도범은 차갑게 웃었다.“상대가 봐줬는데도 알지 못한 거 같은데. 시구할 때 태용 씨가 각도를 미약하게나마 조절해 들어갈 수 있는 걸 놓친 게 봐준 게 아니면 뭐예요? 한 판에 한두 번만 봐주면 승부가 뒤집히는 건 당연하니까요. 스스로도 실력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하셨잖아요!”도범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상대가 왜 봐줬는지는 천수 씨가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상대가 봐주지 않고 10판 다 이겨버리면 흥미를 잃는데 그때도 함께 당구를 치겠어요? 가끔씩 봐줘서 이기는 맛 좀 보게 하고 돈 좀 따게 해줘야죠! 물론 총체적으로 봤을 때는 돈을 잃겠지만. 오늘처럼 200억을 벌었다면 내일에는 약 40억 정도 이길 수 있게 하겠죠. 하하!”한참을 듣고 있던 용천수는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도범의 말이 완전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도 당구를 치지 않던 놈이 발견한 자기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고 지금까지도 상대가 어떻게 봐줬는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화가났다.“개소리 집어치워! 내가 그만큼 진 건 운이 안 따라주거나 가끔 실력이 안 받쳐줬을 뿐이야!”그래서 선택한 결론은 인정하지 않는 거였다. 그는 스스로 자기 실력이 꽤 괜찮다고 자부하고 있고 상대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자기를 계속 봐준 거라면 실력이 천지차이라는 것이니 자존심이 허락할 리가!때문에 그는 쪽팔리는 것보다는 태용 일행을 믿기로 했다. 게다가 도범이 한 말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게 한몫했다. ‘저 자식이 우리 사이 분탕질하려고 저러는 걸 수도 있어.’“그러니까 내
“좋아요!”태용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모여 있는 공을 흩트려 놓았지만 아쉽게도 공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쯧쯧, 태용 씨 오늘 운이 안 좋나 보네요. 하나도 안 들어갔네.”도범은 슬쩍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이제 제 차례죠? 흰색 공 위치 꽤 괜찮네요. 빨간 공들이 다 구멍 앞에 있어서.”“괜찮긴 하죠. 그런데 처음 큐대 잡아본 사람한테 사실 저는 방어할 필요를 못 느껴요. 모두 흩트려 놓은 것도 한 번에 이기려고 한 거고.”태용은 그런 도범의 말이 우스웠는지 호탕하게 웃어댔다.용천수도 차갑게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보기에는 쉽겠지. 그런데 하나도 들어가지 않으면 바쁘다고 생각할걸.”“탕!”하지만 도범은 그들의 비아냥을 가볍게 무시한 채 태용이 했던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며 공을 쳐냈다. 그리고 빨간 공은 깔끔하게 들어갔다.“들어갔어!”제갈소진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좋아서 방방 뛰었다.“대박! 도범 씨가 해냈어! 너무 잘하는데!”“이게 들어가네. 방향도 나쁘지 않고!”용신애도 어안이 벙벙한 듯 한마디 했다. 도범의 자세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방금 전 용천수와 태용의 경기를 한 번 구경하고 이러저러한 물음을 물어보지 않았다면 프로급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하나 들어갔다고 뭔 소용 있어.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았는데. 이제는 다른 색 맞춰야지!”하지만 용일비는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한 판에 200억 짜리 내기. 사실 그녀도 처음 보는 스케일이었다.그 시각 주위에서 당구 치던 사람들은 모두 동작을 멈추고 하나 둘 도범네 테이블로 모여들었다.한 판에 200억이 오가는 큰 내기라니 놀랄만한 스케일이었으니 말이다.“흰 공을 여기로 오게 했어야 7점 쉽게 먹는 건데. 힘 조절이 제대로 안됐나 보네 하필이면 여기로 오네. 여기에 있으면 6점 공이 더 쉽겠지? 금방 배웠으면서 7점 치겠다고 설쳐대다가 큰코다치면 안 되니까!”도범은 테이블 위에 놓인 공을 관찰하면서 혼자 중얼댔다.“잘난체하기는. 7점 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