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소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도범 앞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화를 억눌렀다. 그의 앞에서는 여전히 숙녀다운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까.하지만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도범은 상대방의 도발에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뿐이었다.“이름이 태용이구나. 그런데 저한테 뭐 하러 당구를 칠 줄 아냐고 물어봤어요? 솔직히 저 칠 줄 모릅니다. 예전에는 배달 알바만 했었고 그 뒤로 군대에 갔으니까.”“하하, 역시 모를 줄 알았어요. 딱 봐도 그냥 무력만 쓸 줄 알고 평소에 사람 팰 줄만 알았지 이런 신사적인 게임을 할 줄 알겠어요?”도범의 대답을 들은 태용은 예상했다는 듯 그를 비웃었다.“칠 줄 알면 몇 판 놀아볼까 했는데 실망이네요. 역시 천수 씨와 쳐야겠네!”“칠 줄은 모르지만 방금 보니 꽤 할만해 보이던데요? 흰 공을 쳐서 다른 공 구멍 안에 넣으면 끝이잖아요.”도범은 간단하다는 듯 말했다.“풉!”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빵 터져버렸다.“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당구도 엄연히 기술이에요.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 힘 조절, 각도 조절에 예민한 게임이라고요. 대놓고 무식하게 친다고 들어가겠어요? 게다가 룰도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이건 스누커라고 하는 거고. 들어는 봤나 몰라. 자존심 그만 세우고 포기하지 그래요?”그때 태용 일행 한 명이 같잖다는 듯 도범을 바라보며 도발했다.“도범 씨, 그만해요. 이거 그렇게 쉬운 거 아니에요. 평소에 쳐본 적 없는 사람은 치지도 못한다고요. 저도 2년 넘게 했는데 우리 오빠와 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그것을 보다 못한 용신애가 도범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그를 말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만 쉽게 하면 당구를 오래 친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게 당연했다.“그런데 저들이 무시하게 둘 수는 없잖아요.”하지만 도범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먼저 저한테 룰 설명 간단히 해주고 간단한 방법 가르쳐 주면 제가 배울게요. 그러고 시합이든 내기든 하면 되잖아요.”그 말에 나머지 세 명
용천수는 자기의 말에 도범이 적어도 기세가 꺾일 거라고 확신했다. 한 달에 4억짜리 일자리는 전체 중주시에서 또 구하기는 힘들 테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일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데.용 씨 가문 어르신들이 도범이 대단한 신분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그도 도범한테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을 거다.게다가 더 기막힌 건 그렇게 높은 월급을 받으면서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아주 제멋대로라는 거였다. 그런데도 집안 영감탱이와 여동생이 좋다고 하니 원.그리고 박 씨 가문 어르신의 칠순 잔치에 명패를 잃어버렸다고까지 한 놈이거늘. 만약 대장이라면 신분을 숨길 이유가 있었을까?‘지금 다들 저 자식이 대단한 신분이라고 여기는데 그것도 다 거짓말일 거야.’“하하, 솔직히 두렵지는 않아요. 용 씨 가문 보디가드도 제가 되고 싶어 된 거 아니거든요. 용 씨 가문에서 우리 집을 도와주고 제 아내에게 일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저 사실 관심도 없어요.”도범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게다가 이 일자리 솔직히 신애 씨가 저한테 준 거지, 천수 씨가 준 일자리가 아니잖아요.”“이게...”그 말에 용천수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친구들 앞에서 그를 망신 주다니!하지만 그때 태용이 화가 난 용천수를 힐끗 보더니 그를 옆으로 끌어당겼다.“천용 씨, 보디가드와 감정 낭비할 필요 뭐가 있어요? 두 사람 신분만 봐도 천지 차이구만. 저 자식이 어떻게 천용 씨와 비교가 되겠어요?”용천수는 그제야 옷소매를 몇 번 털더니 허리를 더 곧게 폈다.“그건 그렇지...”“그러고 보니 방금 당구가 쉽다고 했죠? 그러면 저와 내기하는 게 어때요? 한 판에 20억. 어때요? 그렇게 자신감 넘치면 저랑 붙죠. 그런데 우리는 한 판에 20억 짜리만 취급해요. 적으면 재미없어서.”그러던 그때 태용이 도발하는 듯한 표정으로 도범에게 말을 걸었다.“좋아요. 그런데 20억 짜리는 내가 너무 시시해서 취급 안 해요. 하려면 한 판에 200억 짜리로 해요.
태용은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에 선심 쓰듯 제안했다. 그러고는 씨익 웃더니 본론을 말했다.“저도 뭐 그쪽이 돈 내지 못하겠다면 손 한쪽 받아 갈게요.”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하하, 요즘 제가 운발이 좋아 게임마다 이긴 덕에 카드에 1000억 정도는 있을 거예요. 뭐 10판 중에 그쪽이 나 5판 이상 더 이길 것도 같지 않지만.”“불가능하다고 봐야지. 10판에서 5판 이상 더 이기려면 적어도 8대 2로 이겨야 하니까. 7:3으로 이기면 800억 밖에 못 받아 가니까.”태용의 말에 다른 놈 하나가 웃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게다가 처음 당구를 접했으면서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그러던 그때,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제갈소진이 이를 갈더니 앞으로 나섰다.“도범 씨,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손을 자르는 건 제가 동의하지 않아요. 지면 제가 대줄게요.”그 말에 도범은 조금 감동했다. 그가 만약 10판 모두 진다면 자그마치 2000억이라는 큰돈인데 제갈소진이 기꺼이 내주겠다고 하니 감동하는 게 당연했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걱정 말아요. 우리 가문 이래 봬도 세계 랭킹에 드는 부자 가문이에요. 2000억 정도는 있어요.”놀란 듯 물어오는 도범의 물음에 제갈소진은 당당하게 말했다.“자그마치 2000억인데, 소진 씨 부모님한테 엄청 깨지는 거 아니에요?”“저 그런 거 무섭지 않아요. 게다가 우리 부모님도 도범 씨 엄청 마음에 들어 하세요. 사위 삼고 싶어서 안달 났거든요.”난감한 듯한 도범과 달리 제갈소진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태도였다. 하지만 말하는 도중 점점 얼굴이 빨개지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쯧쯧. 역시 사랑에 미친 여자는 바보라더니 이성을 아예 잃었군.”용천수는 싸늘하게 웃었다.“그래도 소진 씨가 나서서 대신 돈 갚겠다고 하니 태용 씨가 돈 못 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자식 손은 가져도 소용없잖아요.”“하하, 당연하죠. 저 자식 손이 2000억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뭐요? 당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일부러 져줬다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도범의 말에 발끈 한 태용은 버럭 화를 내며 도범을 쏘아봤다.“헛소리하지 마. 만약 봐줬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할까!”용천수도 만만치 않게 화가 난 듯했다.“내 실력도 꽤 괜찮다고 이것아!”두 사람의 반응에 도범은 차갑게 웃었다.“상대가 봐줬는데도 알지 못한 거 같은데. 시구할 때 태용 씨가 각도를 미약하게나마 조절해 들어갈 수 있는 걸 놓친 게 봐준 게 아니면 뭐예요? 한 판에 한두 번만 봐주면 승부가 뒤집히는 건 당연하니까요. 스스로도 실력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하셨잖아요!”도범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상대가 왜 봐줬는지는 천수 씨가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상대가 봐주지 않고 10판 다 이겨버리면 흥미를 잃는데 그때도 함께 당구를 치겠어요? 가끔씩 봐줘서 이기는 맛 좀 보게 하고 돈 좀 따게 해줘야죠! 물론 총체적으로 봤을 때는 돈을 잃겠지만. 오늘처럼 200억을 벌었다면 내일에는 약 40억 정도 이길 수 있게 하겠죠. 하하!”한참을 듣고 있던 용천수는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도범의 말이 완전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도 당구를 치지 않던 놈이 발견한 자기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고 지금까지도 상대가 어떻게 봐줬는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화가났다.“개소리 집어치워! 내가 그만큼 진 건 운이 안 따라주거나 가끔 실력이 안 받쳐줬을 뿐이야!”그래서 선택한 결론은 인정하지 않는 거였다. 그는 스스로 자기 실력이 꽤 괜찮다고 자부하고 있고 상대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자기를 계속 봐준 거라면 실력이 천지차이라는 것이니 자존심이 허락할 리가!때문에 그는 쪽팔리는 것보다는 태용 일행을 믿기로 했다. 게다가 도범이 한 말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게 한몫했다. ‘저 자식이 우리 사이 분탕질하려고 저러는 걸 수도 있어.’“그러니까 내
“좋아요!”태용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모여 있는 공을 흩트려 놓았지만 아쉽게도 공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쯧쯧, 태용 씨 오늘 운이 안 좋나 보네요. 하나도 안 들어갔네.”도범은 슬쩍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이제 제 차례죠? 흰색 공 위치 꽤 괜찮네요. 빨간 공들이 다 구멍 앞에 있어서.”“괜찮긴 하죠. 그런데 처음 큐대 잡아본 사람한테 사실 저는 방어할 필요를 못 느껴요. 모두 흩트려 놓은 것도 한 번에 이기려고 한 거고.”태용은 그런 도범의 말이 우스웠는지 호탕하게 웃어댔다.용천수도 차갑게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보기에는 쉽겠지. 그런데 하나도 들어가지 않으면 바쁘다고 생각할걸.”“탕!”하지만 도범은 그들의 비아냥을 가볍게 무시한 채 태용이 했던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며 공을 쳐냈다. 그리고 빨간 공은 깔끔하게 들어갔다.“들어갔어!”제갈소진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좋아서 방방 뛰었다.“대박! 도범 씨가 해냈어! 너무 잘하는데!”“이게 들어가네. 방향도 나쁘지 않고!”용신애도 어안이 벙벙한 듯 한마디 했다. 도범의 자세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방금 전 용천수와 태용의 경기를 한 번 구경하고 이러저러한 물음을 물어보지 않았다면 프로급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하나 들어갔다고 뭔 소용 있어.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았는데. 이제는 다른 색 맞춰야지!”하지만 용일비는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한 판에 200억 짜리 내기. 사실 그녀도 처음 보는 스케일이었다.그 시각 주위에서 당구 치던 사람들은 모두 동작을 멈추고 하나 둘 도범네 테이블로 모여들었다.한 판에 200억이 오가는 큰 내기라니 놀랄만한 스케일이었으니 말이다.“흰 공을 여기로 오게 했어야 7점 쉽게 먹는 건데. 힘 조절이 제대로 안됐나 보네 하필이면 여기로 오네. 여기에 있으면 6점 공이 더 쉽겠지? 금방 배웠으면서 7점 치겠다고 설쳐대다가 큰코다치면 안 되니까!”도범은 테이블 위에 놓인 공을 관찰하면서 혼자 중얼댔다.“잘난체하기는. 7점 공을
“헐! 또 들어갔어?”용신애는 무척 흥분했다. 만약 첫 번째 공이 운으로 들어간 거라면 이번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이번에는 6점 공을 넣은 것도 모자라 흰 공이 아주 좋은 위치에 멈춰 섰다. 아무렇게나 쳐도 될 만큼.“도범 씨 꽤 소질 있는데!”제갈소진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순간의 짜릿함에 가슴이 요동쳤다.그때 당구장 사장님이 다가와 6점 구를 다시 주어 테이블 위에 놓으며 도범을 향해 싱긋 웃었다.“총각, 처음 치는 거라면 진짜 소질 있어. 이 정도면 아주 잘 배운 거야. 연속 이틀 친다면 정말 많이 발전하겠는데.”이에 도범은 담담하게 웃었다.“걱정 마세요. 방금 한 번 구경했으니 기본 룰은 이미 익혔어요. 잘 맞히고 힘만 조절하면 되는데 맞히는 건 제가 군에 있을 때 총을 많이 쐈으니 알아요. 총하면 제가 또 마스터 급이거든요!”나 원래 잘해요 식의 자뻑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자기 입으로 건 마스터라니.“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계속하지? 그쪽이 날 이길 거라는 생각은 안 하니까.”태용은 방금 전 상황이 도범의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테이블 위에 공들의 위치가 모두 괜찮기에 도범이 실수만 해준다면 다음 판에 모두 뒤집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그런데 저 자식 꽤 총명하단 말이야. 내가 일부러 져준 것까지 다 알고.’솔직히 돈내기도 아니고 설명해 주는 판이였기에 이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 이미 용천수의 돈을 많이 이겼기에 저녁에 뭐라도 사주면서 관계 유지를 한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없었다.그리고 그의 카드에 있는 돈도 솔직히 용천수한테서 딴 거였다. 때문에 가끔 그에게 승리의 맛을 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탕!”그가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그때, 도범이 또 빨간 공을 넣어벼렸다. 그리고 흰 공이 한참을 굴러 꽤 좋은 위치에 멈춰 섰다. 7점 공을 넣을 좋은 기회였다.“이게 말이 돼?”도범이 7점 공을 노리자 태용은 조급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상대가
“그러네!”용신애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최고점 147점 중에서 도범이 80점을 땄으니 이미 이긴 판이었다. “저, 저 이겼어요?”하지만 도범은 어리둥절했다.“아직 테이블 위에 공이 있는데요?”도범의 표정을 본 용일비가 바로 설명했다.“최고점이 147점인데 도범 씨가 벌써 80점이니까 상대가 나머지 공을 다 친다고 해도 도범 씨 점수 초과하지 못해요!”“그렇네요.”그제서야 도범은 활짝 웃으며 태용을 바라봤다.“태용 씨, 이번엔 태용 씨 차례예요.”하지만 태용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저 자식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점수를 따다니. 이번 판은 이미 졌는데 또 뭘 하라는 거야. 씨발.’“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해요? 이번 판은 내가 졌어요.”태용은 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애먼 사장한테 신경질 적으로 소리쳤다.“사장님, 얼른 다음 판 준비해 줘요!”사장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후다닥 달려와 준비하고는 도범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총각 대단한데. 아주 천재야 천재. 확실히 처음 만져보는 사람은 맞아. 자세도 엉망이고 공을 맞추는 데 오래 걸리고 멈칫거리는 게 내 눈에 보였단 말이지. 그런데 점점하다 보니 아주 날아다니던데!”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은 태용 일행과 용천수의 심기를 건드렸다.사실 용천수도 도범이 졌으면 싶었다. 그것도 10판 모두. 그러면 도범이 어떻게 할지 아주 기대됐다. 제갈소진이 대신 돈을 낸다해도 도범이 상대에게 신세를 지는 거기 때문에 그것대로 좋았다.그런데 도범이 첫판을 이길 줄이야!“시작하시죠!”태용은 싸늘한 눈빛으로 도범을 바라봤다.“첫판은 내가 실수했어요. 그쪽을 너무 얕잡아 봐서 공을 흩어놓는 바람에 그쪽한테 기회가 간 거예요. 하지만 이번 판은 그렇게 쉽지 않을걸요.”도범은 가볍게 웃더니 곧바로 시작했다. 힘 조절을 하며 살짝 건드린 흰 공은 테이블 옆에 맞혀 다시 돌아오더니 2점짜리 공 뒤에 멈춰 섰다.“스누커!
“하!”공이 흩어진 것을 보자 태용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순간 불안감이 휘몰아쳤다.“고마워요.”도범은 담담하게 웃으며 테이블로 다가갔다.태용은 여유로운 도범의 모습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등 뒤에 있는 친구를 불렀다.“나 물 좀 줘. 씨발 더워 죽겠네.”남자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태용이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아냈다.그도 그럴 것이 태용은 삼류 가문에 속하는지라 유동자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만약 이렇게 계속 진다면 태용 손에 있는 1000억도 모자랄 판이었다.친구가 물을 건네자 태용은 병을 다기 바쁘게 몇 모금 들이켰다.“탕!”“탕!”그 사이 도범은 또 연속 몇 공을 넣어 벌써 십몇 점을 벌어놓았다.“이대로라면 희망이 있겠는데! 궤적도 좋고!”제갈소진은 도범이 이번 판도 이길 거라는 직감에 또다시 방방 뛰었다.“조용히 좀 하죠? 여기 공공장소예요.”하지만 태용은 제갈소진의 소리에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를 째려봤다.“왜요? 질까 봐 겁나요? 지고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겠죠?”그런 그의 시비에도 제갈소진은 화내기는커녕 싱긋 웃으며 상대를 자극했다.“아까 그 사기는 어디 갔어요? 한판 끝나고 나니 사기가 다 꺾였나?”“쓸데없는 참견하지 말지?”태용은 이를 갈았다.“탕!”그런데 그때 공 하나가 또 들어가는 것을 보자 태용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도범은 79점까지 도달했다.“또 이겼네요. 원한다면 제가 봐줄 수도 있고. 명색이 당구 왕자씩이나 되는데 빵점이면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까.”도범은 큐대를 내려놓으며 태용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그 모습에 태용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얼굴색은 말할 것도 없이 어두워졌다. 그는 옆에 있는 물을 들어 마시려고 했지만 이미 다 마셔버렸다는 걸 발견하고는 손에 힘을 줬다.“그쪽이 이번 판도 이겼네요.”태용은 식은땀을 닦으며 화를 참았다.“그만하죠. 못하는 척 구라 친 것 같은데. 이미 당구 칠 줄 알았죠? 그것도 실력자면서 모르는 척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