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모두 잔을 들고 축하해주니 나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형제자매도 없이 혼자커온 지라 항상 누나가 있었으면 했었다.누나는 나를 지켜주기도 할 거고, 다정하기도 하니까.그런데 한꺼번에 누나 셋이나 생겨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마워요.”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수호 씨, 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선물할게요.”애교 누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남주 누나가 이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얼씨구, 해가 서쪽에서 뜨려고 그러나? 애교가 먼저 나서서 남자한테 선물도 다 주고.”애교 누나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목소리 좀 낮춰. 사람들 다 듣잖아.”남주 누나는 애교 누나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야, 너 솔직히 말해봐. 너 수호 씨한테 딴맘 있지?”“무슨 헛소리야? 난 수호 씨 남동생으로밖에 생각 안 해.”“동생? 정말 순수한 남동생 맞아?”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야한 농담을 하는 남주 누나 때문에 애교 누나는 얼굴이 빨개졌다.이윽고 남주 누나의 팔을 꼬집었다.“목소리 낮춰. 사람들 많은데 부끄럽지도 않아?”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왜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저 사람들은 안 들으면 되잖아. 안 그래? 태연아?”내 옆에 앉아 있던 형수는 남주 누나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나한테 묻지 마. 나도 너랑 다른 부류니까.”남주 누나는 아무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자 갑자기 어깨를 움직이며 애교를 부렸다.그때마다 흔들리는 가슴을 보니 속옷을 안 입은 게 틀림없었다.‘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보기가 다 민망하네.’“태연아, 설마 아직도 나한테 화났어? 내가 뭐 네 남편 꼬신 것도 아니고, 살짝 장난 좀 친 거 가지고.”애교 누나는 그 일을 몰랐는지 놀란 듯 물었다.“꼬셨다니? 너 동성 씨한테 무슨 짓 했어?”남주 누나는 그 말에 입을 삐죽거렸다. “별거 아니야. 지난 번에 네 남편이 우리 데리
“게다가, 네가 나보다 작은 것도 아니고, 네 남편이 널 버리고 나한테 올까?”남주 누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형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무튼 난 너 싫어. 그리고 수호 씨 어떻게 할 생각이라면 꿈 깨.”남주 누나는 갑자기 눈웃음을 치며 나를 봤다.“내가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뭐 너희 둘을 어떻게 할까?”그때 애교 누나가 곁에서 남주 누나의 팔을 잡아당겼다.“됐어, 태연 속 그만 긁어.”그러자 형수도 질 세라 말했다.“네가 자꾸 이러면 다음번에 네 남편 봤을 때, 나도 네 남편 다리에 앉아 러브샷 할 거야.”“그래. 난 상관없어. 우리 남편만 원한다면.”“그럼 난 어렵겠네. 네 남편은 너밖에 없어서 다른 여자 눈에도 안 들어올 거잖아.”“다른 여자라면 모를까, 너라면 무조건 돼. 네 얼굴과 몸매가 있는데.”남주 누나가 형수를 응원하자 형수는 가슴을 한껏 내밀고 말했다.“당연하지.”그 덕에 분위기는 점점 누그러졌다.나는 형수가 남주 누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걸 싫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물론 남주 누나의 이런 성격은 여자들의 질투를 사지만 남자한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통한다.그만큼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니까.형수와 남주 누나는 대화하면 할수록 점점 산으로 갔다.그러다 남주 누나가 남편과 할 때 느낌 있는지, 남편을 바꾸지는 않을지 물어보는 걸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옆에 있던 애교 누나는 심지어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얘기 나누고 있어, 난 화장실 다녀올게.”애교 누나는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들었는지 대충 핑계 대고 나가버렸다.그리고 한참 뒤, 나도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나왔다.그렇게 나는 애교 누나와 화장실 입구에서 만나게 되었다.화장실에는 우리 외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얼른 애교 누나를 끌어안고 키스했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무서웠는지 나를 밀어냈다.“안 돼요. 누가 오면 어떡해요.”“무서워할 거 뭐 있어요? 형수랑 남
“우리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태연이랑 애교가 의심하지 않을까요?”내가 신이 나서 애교 누나에게 입맞춤하고 있을 때 애교 누나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걸 상관할 겨를이 없어 다급히 대답했다.“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제가 방법 생각해 볼게요. 애교 누나, 이제야 겨우 누나를 안아보네요.”내가 바지를 벗고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애교 누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확인해 보니 남주 누나가 영상 통화를 걸어온 거였다.나는 핸드폰을 빼앗아 얼른 거절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주 누나가 또 영상 통화를 했다.그러자 애교 누나는 나를 진정하게 하고 소리 내지 말라고 경고했다.“내가 전화 안 받으면 계속할 거예요. 그러니 받아야 해요.”“누나 친구 정말 귀신 아니에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우리를 방해해요?”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내 볼에 입을 맞추며 나를 달랬다.“얼마 안 있다가 갈 거니까 좀만 참아요.”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애교 누나도 영상 통화를 받았다.전호를 받자마자 남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혹시 우리 몰래 나쁜 짓이라도 하는 거 아니야?”“무슨 헛소리야? 그런 말 하지 마.”“그런데 무슨 화장실을 이렇게 오래가? 어? 아니네? 네 등 뒤에 배경 화장실 아니잖아. 왜 주차장으로 갔어?”애교 누나는 순간 찔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자 내가 얼른 전화를 빼앗아 왔다.“애교 누나가 허리를 삐끗했다고 해서 제가 같이 파스 찾으러 왔어요.”남주 누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약 가지러 간 거 맞아요? 무슨 짓 하러 간 거 아니고?”“그럴 리가요. 애교 누나와 친구라면서요. 그러니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는 저보다 더 잘 알 거잖아요.”“흥. 너무 오래 안 봐서 모르겠는데? 오랫동안 외롭게 지낸 유부녀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요. 애교 바꿔줘 봐요, 뭐 물어볼 거 있으니까.”남주 누나의 의심을 덜기 위해 나는
남주 누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정말 파스뿐이야? 다른 건 없어? 콘돔이라든지.”애교 누나는 매서운 눈초리로 남주 누나를 째려봤다.“없어. 못 믿겠으면 내려와서 직접 확인하든가.”“내려오라면 누가 못 갈 줄 알고? 내가 가면 직접 확인할 거야.”남주 누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자 애교 누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정말 약이야. 이상한 생각 좀 안 하면 안 돼?”“아, 나 허리 아픈데 수호 씨, 파스 좀 붙여줘요.”남주 주님에게 증명하려고 애교 누나는 연기까지 했다.나는 얼른 애교 누나의 옷 속으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그랬더니 누나는 얼른 카메라를 위쪽으로 돌리고 한 손으로 나를 막으면 안 된다는 눈치를 줬다.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손가락 하나를 내밀며 한 번만 만지게 해달라고 소리 없이 애원했다.결국 애교 누나가 묵인하자, 나는 손을 안으로 밀어 넣어 누나의 가슴을 잡았다.솔직히 당장 통화를 끄고 한바탕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애교 누나가 난감해질 게 뻔했다.때문에 원하는 대로 만져만 보고 순순히 손을 뺐다.그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또 물었다.“애교야, 너 방금 왜 카메라 렌즈 위로했어? 혹시 수호 씨랑 뭐 부끄러운 짓 한 거 아니야?”애교는 그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남주 정말 귀신인가? 어떻게 다 알아? 무서워 죽겠네.’애교 누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카메라 렌즈를 내 쪽으로 돌렸다.내가 마침 애교 누나를 도와 파스를 붙여주고 있었으니까.그때 남주 누나가 뜬금없이 물었다.“수호 씨, 애교 몸매 어때요?”나는 무슨 말을 하든 상대가 꼬투리 잡을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무심한 듯 대답했다.“아주 좋아요, 남주 누나보다 더.”“하! 지금 내 몸매가 별로라는 거예요? 오기만 해 봐, 아주 곤죽을 만들 거야.”나는 애교 누나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는 카메라를 바라봤다.“봤죠? 저 정말 애교 누나 파스 붙여주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상한 상상하지 마요.”“파스 붙여준다는 핑계로 이상한 짓 했는지 누가
나는 할 수 없이 고분고분 남주 누나를 따라나섰다.남주 누나의 요염하고 섹시한 모습에 함께 나란히 걷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나를 끌고 화장실에 도착한 남주 누나는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자 나를 끌어 칸막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특히 남주 누나에게 놀림당할까 봐 무서웠다.그때 남주 누나는 웃는 얼굴로 내 아래를 흘긋거렸다.“솔직히 말해요. 애교랑 대체 뭐 했어요?”“아무것도 안 했어요.”“안 했는데 이렇게 됐다고?”“그건...”나는 마음이 찔려 머리를 짜내 변명을 지어냈다.“아까 애교 누나한테 파스 붙여주면서 몸매를 봤더니 주체할 수 없었어요.”“개도 아니고, 한번 본 걸로 이렇게 된다고요? 그럼 만지거나 입 맞추면 난리 나겠네요?”“내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그렇다면 너무 배짱 없는 건데? 주차장까지 내려갔고, 이렇게까지 됐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니.”“해도 안 된다, 안 해도 안 된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남주 누나는 발끝을 들고 내 가슴에 기대더니 키득키득 웃었다.“방법 대서 애교 꼬셔 봐요.”“네? 왜요?”“걔가 너무 보수적이니까 내가 가벼운 여자 같잖아요. 그런데 수호 씨가 애교를 성공적으로 꼬시면 내가 수호 씨랑 뭘 하든 계도 뭐라 하지 못할 거잖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걔가 나랑 같은 상황이 돼야 내 일 누설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난 정말 여자들의 생각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 같다.본인이 놀기 좋아하고 놀고 싶다고 친구도 끌어내리려 하다니.‘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떳떳하게 애교 누나와 하고 싶은 걸 해도 되지 않을까?’머리를 굴리던 나는 일부러 놀란 듯 전전긍긍하며 말했다.“해, 해볼게요. 그런데 애교 누나가 너무 보수적이라 성공할 거란 보장은 없어요.”“무서워할 거 뭐 있어요? 내가 있는데.”‘너무 좋겠는데? 그럼 나도 더 수월해질 거잖아.’하지만 연극은 끝까지
나는 여전히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기를 쓰고 내 바지를 벗기는 남주 누나를 보자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남주 누나, 이러지 마세요. 그렇게 보고 싶으면 나중에 집에 사람 없을 때 천천히 보여줄게요.”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어 아무 말이나 했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오히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정말이죠? 나 속이는 거 아니죠?”“제가 왜 누나를 놀리겠어요?”남주 누나는 그제야 웃으며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역시 말 잘 듣네. 약간 어리바리한 모습도 마음에 들고.”나는 얼른 입으며 말했다.“우리 이제 돌아가야 해요. 너무 오래 나와 있었어요.”“그래요. 가요.”나는 밖으로 걸어 나가려 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그런데 우리 이따 어떻게 설명해요? 분명 우리가 무슨 짓 했다고 의심할 텐데.”“의심하라고 해요. 뭐가 무서워요? 혹시 애교가 물어볼까 봐 무서워요? 아니면 수호 씨 형수가 물어볼까 봐 무서워요?”“그게 뭔 차이가 있어요?”“없죠. 그런데 둘 다 묻지 않을 거예요.”“왜요?”내가 의아한 듯 묻자 남주 누님은 내 팔짱을 꼈다.“애교는 나랑 달라 묻지 못할 거고, 수호 씨 형수는 그렇게 똑똑하네 진작 짐작했을 거예요. 수호 씨가 이렇게 잘생겼는데 내가 안 건드리고 배겨요? 그런데 형수가 여자 친구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참견이에요?”‘그건 누나가 나 어떻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남주 누나는 어디로 튈지 몰라 실수로 말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가요.”“참, 파스 붙여줘요. 연기를 하려면 끝까지 해야죠.”나는 순순히 남주 누나에게 파스를 붙여주고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그랬더니 남주 누나는 뭐가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정말 존경스럽네.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지?’그에 반하면 나는 오히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애교 누나는 역시나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형수는 정말 생각했던 대
“저,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나는 너무 찔려 말까지 더듬었다.그랬더니 형수가 갑자기 돌아서서 나를 봤다.“이것 봐요. 수호 씨는 거짓말도 못 하잖아요.”형수한테 사실을 들키자 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이건 제 탓 아니에요. 남주 누나가 도와준 거예요.”“오호? 어떻게 도와줬는데요?”형수는 궁금한 듯 물었다.결국 나는 형수가 화낼까 봐 모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그랬더니 형수가 불만조로 투덜거렸다.“최남주, 이 여우 같은 게.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제 발 저려 잘못한 아이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자 형수는 겁먹은 나를 보고 오히려 위로했다.“수호 씨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남주 같은 여자는 보통 남자가 상대할 수 없어요. 수호 씨가 아직 어려 남주 꼬임에 넘어간 것도 이해해요.”‘그렇다고 손해 본 건 아닌데. 오히려 기분 좋았는데?’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형수, 남주 누나가 저더러 애교 누나 꼬시래요. 자기가 도와주겠다며.”“음? 왜 그렇게 말했대요?”“애교 누나가 너무 보수적이라 자기가 너무 가볍게 보인다고. 제가 애교 누나를 넘어뜨려 자기랑 똑 같은 사람으로 만들면 함께 놀 수 있다고요.”그 말을 들은 형수는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다.“이 불여우 같은 게, 감히 수호 씨를 장난감 취급하다니. 수호 씨, 무조건 조심해요. 남주는 사람 고장 날 때까지 노는 애니까.”‘설마? 남주 누나가 대체 어떻길래 날 고장 날 정도로 갖고 논다는 거지? 오히려 기대되는데.’‘아직 못해본 자세도 적은데, 농익은 유부녀가 리드해주면 나한테 도움 되는 거 아닌가?’남주 누님은 나에게 아주 좋은 스승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하지만 형수 앞에서는 형수 말에 동조했다.“네, 알았어요.”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형수는 나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그런데, 내가 입은 이 옷 어때요? 예뻐요?”“네, 엄청 예뻐요. 형수 몸매는 무슨 옷 입어도 예뻐요.”나는 진심으로 말했
하긴,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우리가 이러고 있으면 오해를 불러오기 십상이다.“수, 수호 씨, 아직도 안 됐어요?”형수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진작 끝났지만 나는 떨어지기 아쉬워 일부러 거짓말했다.“아직 안 끝났어요.”그러자 형수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그럼 그만해요. 저녁에 집에 가서 천천히 해요.”“그래요.”‘돌아가서 옷 벗고 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이봐, 다 됐어?”그때 남주 누나의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그러자 형수가 짜증 나는 듯 바깥쪽을 째려보며 소리쳤다.“아직 안 됐어.”“지퍼 하나 올리는 게 뭐 이리 오래 걸려? 20분도 다 돼가. 느려 터져서는. 둘이 천천히 와, 나랑 애교는 다른데 먼저 구경할게.”“그래, 가 봐.”안 그래도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가 빨리 가기를 원하던 형수는 밖에서 재촉하는 사람이 사라지자 안심한 듯 말했다.“수호 씨, 지퍼 좀 내려줄래요? 다른 옷도 입어보고 싶어요.”“네.”나는 지퍼를 내려주고 곧바로 탈의실을 나가려 했지만 형수가 갑자기 말했다.“나갈 필요 없어요. 여기서 기다려요.”“네?”형수가 입은 옷 두 벌은 모두 몸에 딱 붙는 원피스기에 갈아입으려면 속옷과 팬티차림으로 갈아입어야 했다.“형수, 제가 여기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안 될 거 뭐 있어요? 수호 씨는 내 동생이나 다름없는데 우리 순결한 사이잖아요.”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순결한 사이죠.”곧이어 나는 직접 형수의 원피스를 벗겨 주었다.그 과정에 스킨십은 피할 수 없었다.하지만 형수는 날 동생으로 생각한다면서 어색해하지 말라고 설득했다.형수의 원피스를 벗겨주고 다른 옷을 입혀주면서 나는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형수 몸매는 정말 볼수록 완벽한 것 같아요. 그래서 무슨 옷을 입든 예쁜 것 같아요.”나는 말하면서 형수의 가슴을 움켜잡았다.그러자 형수는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나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대
나는 윤지은이 그동안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다. 가끔 외로울 때 나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는 것 외에는 아무 감정이 없다고 여겼다.때문에 윤지은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래서인지 이 순간 나는 모든 게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현실적인 느낌과 비현실적인 느낌이 한데 섞여 나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때 윤미화가 팔꿈치로 나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거 봐. 내 말 맞지? 지은 씨가 수호 씨를 좋아한다니까.”“윤 사장님도, 지은 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나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아 되물었다.그러자 윤미화는 화가 난 듯 나를 째려봤다.“더 사람이 하는 대화 못 들었어? 또 어떻게 해야 믿을 건데?”“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믿기지 않아서요. 제가 전에 지은 씨한테 고백했는데 아주 대차게 차였거든요.”“우리 평소에 만나면 항상 다투기만 해요. 누구도 서로 양보하지 않아요. 게다가 연인끼리 하는 달콤한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고, 서로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 적도 없어요.”“너무 사랑하면 미워지고 너무 미워하면 사랑한다는 거 몰라?”윤미화는 아주 철학적인 말을 했다.나는 그 말을 한참 곱씹었다.“확실히 일리가 있네요.”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너무 기쁘다. 그러면 윤지은의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뜻이니까.하지만 한편으로 골치 아팠다. 나한테 이미 애교 누나가 있기에 나는 윤지은을 책임질 수 없고 사랑을 받아줄 수도 없다.윤미화는 마치 내 뱃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처럼 농담조로 말했다.“평생 결혼하지 마. 그러면 부담 없잖아.”“어떻게 그래요?”“안 될 거 뭐 있어? 결혼은 종잇장으로 한 약속에 불과해. 누구한테 잘해주고 싶으면 그런 게 없이도 잘해줄 수 있잖아. 요즘 연애만 하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 많아. 난 그것도 괜찮다고 봐.”‘대체 뭐라는 거지?’나는 그 정도로 개방적이진 않다.나는 우선 마음을 가다듬었다.
강한나는 윤지은 옆에 앉으며 물었다.“다리는 왜 그래?”“별거 아니야.”강한나는 장소도 개의치 않고 윤지은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윤지은의 종아리는 벌겋게 부어오른 데다 물집까지 잡혔다.“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둬? 그리고 이렇게 됐으면 병원부터 가지 왜 여기까지 달려와서 저 사람 일에 신경 쓰는 건데? 너 미쳤어?”강한나는 윤지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윤지은은 남자에게 희망을 걸 사람이 절대 아니고, 남자를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을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그런데 윤지은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었다.강한나는 문득 눈앞의 윤지은이 자기가 알던 그 윤지은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괜찮은 줄 알았어.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어.”윤지은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그녀도 다리에 흉터가 남을까 봐 걱정됐다.“안돼. 너무 아파. 얼른 병원 데려다줘.”강한나는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윤지은을 업고 일어났다.“못 말려 정말. 여자는 역시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니까.”윤지은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그런 거 아니야. 허튼 생각 하지 마. 정말 실수로 이런 거야.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어.”“알았다. 알았어. 해명할 거 없어. 그럴수록 오히려 뭘 숨기려는 것 같으니까.”강한나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윤지은이 떠난 뒤 윤미화만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약 30분 뒤, 나는 풀려났다. 하지만 윤미화만 보여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지은 씨는요?”“몰랐어?”“뭘요?”“다리에 화상을 입어 물집까지 잡혔는데 수호 씨를 돕겠다고 달려온 거였어. 방금 경찰 친구가 병원에 데려갔어.”윤지은이 화상을 입다니. 어쩐지 방금 절뚝거린다 했는데.그 정도로 화상을 입었다면 절대 가볍지 않다.게다가 여자는 누구나 예쁜 걸 좋아하니 흉터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게 먼저일 텐데, 윤지은은 상처를 치료하러 가지 않고 먼저 나를 찾아왔다.나는 윤미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어
윤지은은 마음이 초조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때문에 실수로 컵라면을 엎어 뜨거운 물이 다리 위로 흘러내렸다.윤미화는 아파서 찬 공기를 들이마셨지만 대충 찬물로 덴 곳을 헹구고 얼른 옷을 입고 밖으로 향했다.“무슨 일인데요? 상세하게 말해 봐요.”윤미화는 자초지종을 대충 설명했다.이윽고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에게 연락했고, 경찰서에 인맥이 있던 강한나가 인맥을 통해 말을 해둔 덕에 윤지은과 윤미화는 곧바로 나를 찾아왔다.“윤지은? 여긴 어쩐 일이에요?”평소 혼잣말 할 때 이름만 부르는 게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이름이 튀어나왔다.윤지은은 절뚝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윤지은이 걷는 모습에 나는 어리둥절했다.“다리는 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야.”윤지은은 솔직히 말하지 않고 의자를 당겨 그 위에 앉았다.“일은 대충 들었어. 하지만 상대가 절대 합의는 안 해주겠다고 하네. 정말 의서를 돌려줄 생각 없어?”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절대 안 내놔요. 내놓으면 끝이에요. 그건 제 할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에요.”“그럼 강도죄가 성립되어 감옥살이해야 해.”윤지은이 강조했다.나는 복역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예요?”윤지은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어쨌든 그 의서는 절대 내놓을 수 없어요.”“봐요. 내 말 맞죠? 참 융통성이 없다니까요.”윤미화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그때 윤지은도 나를 날카롭게 째려봤다.“융통성도 없고 멍청하기도 하네요.”“내 상황을 보고도 욕이 나와요?”‘참 동정심도 없다니까.’윤미화는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죽어도 뜻을 안 꺾겠다고 버티는 거야? 이게 뭔지 봐 봐.”윤미화는 새 책 하나를 나한테 건넸다.너무 궁금한 나머지 몇 장 펼쳐 본 순간 나는 눈이 커다래졌다.“이, 이건 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서 내용이잖아요.”‘왜 인쇄되어 있지?’할아버지가 남긴 의서는
“고집 한 번 세네. 아주 정호섭과 똑같아. 좋아. 그럼 나도 쓸데없는 말 하지 않을게.”서윤기는 손을 휙 저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직원이 내 몸을 더듬었다.“서 사장님, 없어요.”서윤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봤다.“의서를 숨겼어?“그건 원래부터 우리 집 의서였어.”“그런데 지금은 내 거야. 네놈이 내 물건을 빼앗았으니 내가 신고하면 넌 감방행이야.”“정수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 나랑 손잡으면 의서 건은 책임을 묻지 않고 큰돈을 만지게 해줄게.”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아무리 돈이 좋아도, 난 깨끗한 돈만 취급해. 양심을 팔아 돈 버는 일은 안 해.”“좋아. 그럼 신고하지.”30분 뒤, 경찰 몇 명이 현장에 도착했고 호텔 CCTV에 찍힌 바람에 나는 잡아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다 나는 결국 경찰들에게 잡혀갔다.내가 잡혀가는 걸 보자 윤미화는 다급히 달려와서 물었다.“무슨 일이야?”“의서는 찾았어요?”나는 가장 걱정되는 것부터 물었다.그러자 윤미화는 고개를 끄덕였다.“찾아서 챙겼어. 그런데 왜 잡혀가는 거야?”“그 약재상이 신고했어요. 의서를 내놓지 않는다고 잡혀가는 중이고요.”“의서가 뭐라고 주면 될 거 아니야.”“안 돼요. 그건 할아버지가 저한테 남겨준 거라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면 안 돼요. 서윤기는 악덕 상인이라 그 책을 망가뜨릴 거예요.”나는 그 의서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그럼 나도 구해줄 수 없어.”나는 윤미화의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다. 때문에 이 일도 솔직히 윤미화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었다.서윤기의 인맥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경찰들은 나를 경찰서에 데려간 뒤 서둘러 심문하지 않고 취조실에 계속 가두었다.이건 분명 절차에 맞지 않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서윤기의 체면을 봐서 일부러 이러는 거다.안에 갇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윤미화가 나를 꺼내주기만을 기다렸다.윤미화는 강북
윤미화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막았지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막지 못했다.그 사람들은 방을 한 칸 한 칸 수색하다가 결국 내가 숨어 있는 방에 쳐들어와 다짜고짜 나를 잡았다.그러고는 곧장 나를 8층 808호실로 끌고 갔다.놈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나는 속으로 기뻤다.내 계획이 성공했으니 말이다.서윤기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내가 말했잖아. 발버둥 치지 말라.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내가 전에 사람 잘못 봤네. 서윤기 당신도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눈에 돈밖에 없는 인간이었어.”나는 서윤기를 비아냥거렸다.그러자 서윤기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돈 버는 게 나빠? 뭐 문제 있어? 난 상인이야. 상인이 돈 벌지 않고 설마 사람을 구할까?”“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지. 약재 가격을 높이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안 좋은 약재와 좋은 약재를 섞어서 팔고 가짜 약재로 진짜 약재를 바꿔치기 할 수 있어? 이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야.”이건 내가 가장 참지 못할 부분이다.약재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약재상이 질이 안 좋은 약재를 섞어 팔고 가짜 약재로 수만 채운다면, 약은 제 약효를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그때 서윤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내가 예전에 정 사장이랑 같이 일할 때 항상 가장 좋은 약재를 가장 싼 가격에 팔았어. 그렇게 매일 개처럼 일했는데 결국엔 고작 몇 푼밖에 못 벌었다고.”“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번 돈이 동종업자들이 1년 동안 번 것보다 적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놀리고 비꼬아 댔는지 알아? 병에 걸린 환자들도 약을 먹고 병이 나으면 의사한테 고마워하지, 누가 약재상한테 고마워해?”“양쪽에서 모두 찬밥 신세 당하면서 내가 왜 남 좋은 일만 해야 하는데? 내가 정 사장과 협력하지 않은 이후로 한 달에 얼마씩 버는 줄 알아?”“4억 가까이 돼. 전에는 1년에도 이 정도 못 벌었어. 매달 4억이면
그 행동을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뭐 하는 거예요?”서윤기는 라이터를 의서에 가까이 가져갔다.“호텔 에어컨이 좀 춥지 않아요? 우리 따뜻하게 해요.”나는 다급히 의서를 빼앗았다.“미쳤어요? 의서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치료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걸 태우면 사람들의 희망을 태우는 거나 다름없어요.”서윤기는 라이터를 내려놓고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난 장사꾼이지 의사가 아니에요.”“이...”나는 전에 서윤기가 유순하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이 사람도 그저 돈만 밝히는 악덕 상인이라는 걸 알았다.나뿐만 아니라 정 사장님도 그동안 서윤기에게 깜빡 속았다.손에 든 의서를 그대로 포기하자니 나는 너무 아쉬웠다.이건 할아버지의 심혈이다. 의서 한 권을 집필하려고 우리 정씨 가문이 대대로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없다.하지만 이 의서를 건지려면 서윤기와 손을 잡아야 하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내 마음은 너무 복잡했다.그때 문득 대담한 생각이 떠올라 나는 의서를 챙긴 뒤 이를 악물고 밖으로 도망쳤다.하지만 얼마 못 가 호텔 직원이 내 뒤를 따라붙었다.어쩐지 내가 의서를 갖고 도망쳐도 서윤기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했더니 호텔 안팎에 이미 서윤기의 사람이 가득했다.나는 절대 잡히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죽을 듯이 도망쳤다. 호텔 직원이 쫓아오면 그 사람을 발로 차고 때리면서 의서를 꼭 지켜내려고 아등바등했다.그와 동시에 나는 윤미화에게 전화했다.“지금 어디 있어요?”[호텔이지. 무슨 일인데?]“지금 누가 절 죽이려고 해요. 윤 사장님이 좀 도와줘요.”나는 도망치면서 되도록 일을 심각하게 설명했다. 그건 윤미화가 빨리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헉.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몇 층이야?]“8층에서 내려가는 중이에요.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쫓아와요”나는 신속히 내 상황을 설명했다.그러자 윤미화는 잠깐 생각하더
서윤기의 말에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하긴, 서윤기 같은 사장한테 몇천만 원은 돈도 아니다.만약 서윤기가 거래할 마음이 없다면 내가 모든 재산을 준다고 해도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하지만 이렇게 포기하려니 내키지 않아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의서를 저한테 팔 건데요?”“이 의서는 나한테 필요해서 안 판다고 했을 텐데요.”서윤기는 끝까지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나는 계속 서윤기에게 끌려가기만 했다.“서 사장님은 그 의서로 저와 거래할 생각이죠?”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그러자 서윤기가 담담하게 웃으며 자기 잔에 와인을 따랐다.그 동작은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충분히 증명했다.하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서윤기를 보니 나는 마음이 불안해졌다.“강북 한약 상회 일이라면 전 결정권이 없어요. 정 사장님도 이미 건강을 회복했으니 상회 일은 사장님이 다시 맡고 있으니까요.”나는 먼저 내 생각을 내비쳤다.그제야 서윤기는 손에 든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돈은 나도 많아요. 돈 벌 루트가 필요한 거지. 하지만 난 내 파트너한테는 항상 관대하거든요. 파트너들과 함께 돈 버는 것도 좋아하고요.”서윤기는 애매모호하게 말을 흐렸지만 나는 단번에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서윤기는 내가 자신과 손을 잡으면 의서를 바로 주겠다는 뜻이었다.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서윤기를 바라봤다.“전 이제 상회 일도 관여하지 않는데 저랑 손잡아서 서 사장님한테 무슨 이득이 있죠?”“수호 씨가 상회 일에 관여하지 않지만 정 사장과 사이가 좋은 건 상회 사람들이 다 알고 있죠. 수호 씨가 나서면 정 사장의 뜻을 대변할 수 있을 거예요.”‘이 너구리 같은 인간이 이걸 노린 거였네.’나는 이제야 서윤기의 속내를 완전히 알았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렇다면 실망하시겠네요. 저는 정 사장님께 미안한 일은 안 해요.”서윤기는 의서를 꺼내 테이블 위
“아, 네. 들어와 앉았다 갈래요?”“그러죠.”서윤기는 사실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냉큼 기회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방금 봤던 여자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조금만 실수하면 속살이 다 노출될 지경이었다.여자는 이런 상황과 장소가 매우 익숙한 듯했다.그때 서윤기가 여자에게 돈을 한 웅큼을 던져주며 나가라는 눈치를 주자 여자는 아무 말없이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방을 나갔다.서윤기는 그제야 나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다.“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수호 씨는 강북에서 생활하지 않아요? 설마 호텔에서 지내요?”나는 서윤기가 나를 찔러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차분하게 대답했다.“저도 이제 사업하는 사람이니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호텔에 머무는 건 불가피한 일이에요. 집에 가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 서 사장님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큰 사업을 하는 사장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가끔 재미를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나도 아예 세상 물정 모르는 건 아니다.서윤기는 내 말에 허허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하지만 몇 분만 더 일찍 왔더라면 큰일 났을 거예요.”‘늙은 여우 같은 것.’서윤기가 상회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으면 내가 끌려다닐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기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내가 결국 먼저 말을 꺼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만 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할 테니까.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 사장님, 전에 조천석 사장님한테서 의서를 구매하셨죠?”“조천석? 어디 보자... 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기억이 나지 않네요.”‘이 자식 일부러 이러는 거네.’나는 결국 직접적으로 힌트를 줬다.“강북 경진당 사장 조천석 말이에요. 책 이름이 ‘고의문’인데 기억나시나요?”내가 이 정도로 알기 쉽게 말했는데 계속 모
현성과 민우는 내가 혼자인 게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되어 돌아온 거엿다.무엇보다 내가 이번에 건드린 사람은 임천호다. 바로 그 S시 전체를 주름잡고 수많은 용병을 거느리고 있는 효웅이라 불리는 남자 말이다.우리는 그런 사람을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지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다.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우리 같은 새내기한테 그런 사람은 닿을 수도 없고 두려운 존재다.하지만 현성과 민우는 두려워하지 않고 내 곁에 있기로 했다.이건 단지 감동이라는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목숨을 나눈 우정과도 같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천수백 마디로도 우리의 우정을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나는 방 두 개를 현성과 민우에게 내어주고 혼자 거실에 누워 속으로 감탄했다.이 순간 흥분과 감동, 두려움과 무서움이 한데 섞여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하지만 이렇듯 신맛이 났다 단맛이 났다 쓴맛이 났다 매운맛이 나는 이런 과정이 바로 성장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다음 날, 우리 셋은 함께 천수당에 출근했다.나는 되도록 얼굴을 비추지 않으려고 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러다가 10시가 넘었을 때쯤 윤미화가 서윤기의 행방을 찾았다며 전화해 왔다.“어디 있는데요?”[샹젤리호텔. 내가 지금 마침 그곳에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서 확인해 볼게.]그 말을 들으니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뭐 하러 가는데요?”[고객이 거기서 기다려. 설마 내가 수호 씨랑 같이 가고 싶어서 일부러 이런다고 생각했어?]나는 순간 머쓱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그래요. 그럼 부탁할게요. 오해한 건 미안해요.”나는 윤미화를 단단히 오해했다는 걸 자각하고 다급히 사과했다.그러자 윤미화가 웃으며 말했다.[말만으로 미안하다면 다야? 실제 행동을 보여줘야지.]“사장님, 우리 한 식구 아니었어요? 뭐 하러 조목조목 다 따져요? 거리감 들게.”[누가 한 식구라는 거야?]“아니에요? 우리 탐정 사무소는 한 가족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