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 의자에 앉아 게임 하고 있던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형수 취해서 잠들었어요. 핸드폰도 몇 번이나 울렸는데 모르고 자더라고요.”“누구 전화였어요?”“애교 누나요. 제가 대신 받았어요. 애교 누나한테 최남주라는 친구가 있는데 우리가 나오기 전에 그 누나가 애교 누나 집에 갔었거든요. 그래서 저녁 준비하지 말고 같이 밖에서 먹자고 해요.”“뭐예요? 혹시 최남주도 만났어요?”“네, 왜요?”“걔가 무슨 짓 안 했죠?”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진실을 말할 수 없어 뻔뻔하게 거짓말했다.“아무 짓도 안 했어요. 마침 형수가 전화해서 몇 마디 못 했어요. 그런데 왜 그래요? 그 여자 무서워요?”형수는 나한테 손짓하더니 자기 옆자리를 툭툭 내리쳤다.그러고는 내가 형수 옆에 앉자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최남주 아주 굶주린 유부녀예요. 수호 씨 형도 꼬셨다니까요. 그런데 수호 씨처럼 젊고 멋있는 남자를 보면 분명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형수는 남주 누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남주 누나가 보통 여자가 아닌 걸 알았지만 형한테까지 손을 내밀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형수와 애교 누나가 절친이니 남주 누나와 형수도 친구인데, 어떻게 친구 남편을 꼬실 수 있지?’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형수, 걱정하지 마요. 무조건 거리 둘게요. 그런데 애교 누나는 어떡해요? 아직도 우리 전화 기다릴 텐데.”“내가 전화해서 못 간다고 할게요.”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애교 누나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와 형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어, 애교야... 남주도 왔어? 둘이 식사해. 난 안 갈게. 뭐? 수호만 보내라고?”“내가 좀 뻐근해서 수호 씨한테 마사지 받으려고 그러는데.”“그래. 그럼 이따 나도 같이 갈게.”다시 말을 바꾸는 형수를 보자 나는 어리둥절했다.“형수, 아까는 안 간다면서요?”형수는 그 말에 난감한 듯 대답했다.“애교가 그러는데 오늘 남주가 쏜대요. 해산물로. 남주는 부자라 한턱
세 사람이 모두 잔을 들고 축하해주니 나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형제자매도 없이 혼자커온 지라 항상 누나가 있었으면 했었다.누나는 나를 지켜주기도 할 거고, 다정하기도 하니까.그런데 한꺼번에 누나 셋이나 생겨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마워요.”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수호 씨, 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선물할게요.”애교 누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남주 누나가 이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얼씨구, 해가 서쪽에서 뜨려고 그러나? 애교가 먼저 나서서 남자한테 선물도 다 주고.”애교 누나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목소리 좀 낮춰. 사람들 다 듣잖아.”남주 누나는 애교 누나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야, 너 솔직히 말해봐. 너 수호 씨한테 딴맘 있지?”“무슨 헛소리야? 난 수호 씨 남동생으로밖에 생각 안 해.”“동생? 정말 순수한 남동생 맞아?”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야한 농담을 하는 남주 누나 때문에 애교 누나는 얼굴이 빨개졌다.이윽고 남주 누나의 팔을 꼬집었다.“목소리 낮춰. 사람들 많은데 부끄럽지도 않아?”남주 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왜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저 사람들은 안 들으면 되잖아. 안 그래? 태연아?”내 옆에 앉아 있던 형수는 남주 누나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나한테 묻지 마. 나도 너랑 다른 부류니까.”남주 누나는 아무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자 갑자기 어깨를 움직이며 애교를 부렸다.그때마다 흔들리는 가슴을 보니 속옷을 안 입은 게 틀림없었다.‘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보기가 다 민망하네.’“태연아, 설마 아직도 나한테 화났어? 내가 뭐 네 남편 꼬신 것도 아니고, 살짝 장난 좀 친 거 가지고.”애교 누나는 그 일을 몰랐는지 놀란 듯 물었다.“꼬셨다니? 너 동성 씨한테 무슨 짓 했어?”남주 누나는 그 말에 입을 삐죽거렸다. “별거 아니야. 지난 번에 네 남편이 우리 데리
“게다가, 네가 나보다 작은 것도 아니고, 네 남편이 널 버리고 나한테 올까?”남주 누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형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무튼 난 너 싫어. 그리고 수호 씨 어떻게 할 생각이라면 꿈 깨.”남주 누나는 갑자기 눈웃음을 치며 나를 봤다.“내가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뭐 너희 둘을 어떻게 할까?”그때 애교 누나가 곁에서 남주 누나의 팔을 잡아당겼다.“됐어, 태연 속 그만 긁어.”그러자 형수도 질 세라 말했다.“네가 자꾸 이러면 다음번에 네 남편 봤을 때, 나도 네 남편 다리에 앉아 러브샷 할 거야.”“그래. 난 상관없어. 우리 남편만 원한다면.”“그럼 난 어렵겠네. 네 남편은 너밖에 없어서 다른 여자 눈에도 안 들어올 거잖아.”“다른 여자라면 모를까, 너라면 무조건 돼. 네 얼굴과 몸매가 있는데.”남주 누나가 형수를 응원하자 형수는 가슴을 한껏 내밀고 말했다.“당연하지.”그 덕에 분위기는 점점 누그러졌다.나는 형수가 남주 누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걸 싫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물론 남주 누나의 이런 성격은 여자들의 질투를 사지만 남자한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통한다.그만큼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니까.형수와 남주 누나는 대화하면 할수록 점점 산으로 갔다.그러다 남주 누나가 남편과 할 때 느낌 있는지, 남편을 바꾸지는 않을지 물어보는 걸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옆에 있던 애교 누나는 심지어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얘기 나누고 있어, 난 화장실 다녀올게.”애교 누나는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들었는지 대충 핑계 대고 나가버렸다.그리고 한참 뒤, 나도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나왔다.그렇게 나는 애교 누나와 화장실 입구에서 만나게 되었다.화장실에는 우리 외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얼른 애교 누나를 끌어안고 키스했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무서웠는지 나를 밀어냈다.“안 돼요. 누가 오면 어떡해요.”“무서워할 거 뭐 있어요? 형수랑 남
“우리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태연이랑 애교가 의심하지 않을까요?”내가 신이 나서 애교 누나에게 입맞춤하고 있을 때 애교 누나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걸 상관할 겨를이 없어 다급히 대답했다.“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제가 방법 생각해 볼게요. 애교 누나, 이제야 겨우 누나를 안아보네요.”내가 바지를 벗고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애교 누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확인해 보니 남주 누나가 영상 통화를 걸어온 거였다.나는 핸드폰을 빼앗아 얼른 거절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주 누나가 또 영상 통화를 했다.그러자 애교 누나는 나를 진정하게 하고 소리 내지 말라고 경고했다.“내가 전화 안 받으면 계속할 거예요. 그러니 받아야 해요.”“누나 친구 정말 귀신 아니에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우리를 방해해요?”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내 볼에 입을 맞추며 나를 달랬다.“얼마 안 있다가 갈 거니까 좀만 참아요.”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애교 누나도 영상 통화를 받았다.전호를 받자마자 남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혹시 우리 몰래 나쁜 짓이라도 하는 거 아니야?”“무슨 헛소리야? 그런 말 하지 마.”“그런데 무슨 화장실을 이렇게 오래가? 어? 아니네? 네 등 뒤에 배경 화장실 아니잖아. 왜 주차장으로 갔어?”애교 누나는 순간 찔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자 내가 얼른 전화를 빼앗아 왔다.“애교 누나가 허리를 삐끗했다고 해서 제가 같이 파스 찾으러 왔어요.”남주 누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약 가지러 간 거 맞아요? 무슨 짓 하러 간 거 아니고?”“그럴 리가요. 애교 누나와 친구라면서요. 그러니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는 저보다 더 잘 알 거잖아요.”“흥. 너무 오래 안 봐서 모르겠는데? 오랫동안 외롭게 지낸 유부녀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요. 애교 바꿔줘 봐요, 뭐 물어볼 거 있으니까.”남주 누나의 의심을 덜기 위해 나는
남주 누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정말 파스뿐이야? 다른 건 없어? 콘돔이라든지.”애교 누나는 매서운 눈초리로 남주 누나를 째려봤다.“없어. 못 믿겠으면 내려와서 직접 확인하든가.”“내려오라면 누가 못 갈 줄 알고? 내가 가면 직접 확인할 거야.”남주 누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자 애교 누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정말 약이야. 이상한 생각 좀 안 하면 안 돼?”“아, 나 허리 아픈데 수호 씨, 파스 좀 붙여줘요.”남주 주님에게 증명하려고 애교 누나는 연기까지 했다.나는 얼른 애교 누나의 옷 속으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그랬더니 누나는 얼른 카메라를 위쪽으로 돌리고 한 손으로 나를 막으면 안 된다는 눈치를 줬다.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손가락 하나를 내밀며 한 번만 만지게 해달라고 소리 없이 애원했다.결국 애교 누나가 묵인하자, 나는 손을 안으로 밀어 넣어 누나의 가슴을 잡았다.솔직히 당장 통화를 끄고 한바탕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애교 누나가 난감해질 게 뻔했다.때문에 원하는 대로 만져만 보고 순순히 손을 뺐다.그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또 물었다.“애교야, 너 방금 왜 카메라 렌즈 위로했어? 혹시 수호 씨랑 뭐 부끄러운 짓 한 거 아니야?”애교는 그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남주 정말 귀신인가? 어떻게 다 알아? 무서워 죽겠네.’애교 누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카메라 렌즈를 내 쪽으로 돌렸다.내가 마침 애교 누나를 도와 파스를 붙여주고 있었으니까.그때 남주 누나가 뜬금없이 물었다.“수호 씨, 애교 몸매 어때요?”나는 무슨 말을 하든 상대가 꼬투리 잡을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무심한 듯 대답했다.“아주 좋아요, 남주 누나보다 더.”“하! 지금 내 몸매가 별로라는 거예요? 오기만 해 봐, 아주 곤죽을 만들 거야.”나는 애교 누나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는 카메라를 바라봤다.“봤죠? 저 정말 애교 누나 파스 붙여주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상한 상상하지 마요.”“파스 붙여준다는 핑계로 이상한 짓 했는지 누가
나는 할 수 없이 고분고분 남주 누나를 따라나섰다.남주 누나의 요염하고 섹시한 모습에 함께 나란히 걷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나를 끌고 화장실에 도착한 남주 누나는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자 나를 끌어 칸막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특히 남주 누나에게 놀림당할까 봐 무서웠다.그때 남주 누나는 웃는 얼굴로 내 아래를 흘긋거렸다.“솔직히 말해요. 애교랑 대체 뭐 했어요?”“아무것도 안 했어요.”“안 했는데 이렇게 됐다고?”“그건...”나는 마음이 찔려 머리를 짜내 변명을 지어냈다.“아까 애교 누나한테 파스 붙여주면서 몸매를 봤더니 주체할 수 없었어요.”“개도 아니고, 한번 본 걸로 이렇게 된다고요? 그럼 만지거나 입 맞추면 난리 나겠네요?”“내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그렇다면 너무 배짱 없는 건데? 주차장까지 내려갔고, 이렇게까지 됐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니.”“해도 안 된다, 안 해도 안 된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남주 누나는 발끝을 들고 내 가슴에 기대더니 키득키득 웃었다.“방법 대서 애교 꼬셔 봐요.”“네? 왜요?”“걔가 너무 보수적이니까 내가 가벼운 여자 같잖아요. 그런데 수호 씨가 애교를 성공적으로 꼬시면 내가 수호 씨랑 뭘 하든 계도 뭐라 하지 못할 거잖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걔가 나랑 같은 상황이 돼야 내 일 누설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난 정말 여자들의 생각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 같다.본인이 놀기 좋아하고 놀고 싶다고 친구도 끌어내리려 하다니.‘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떳떳하게 애교 누나와 하고 싶은 걸 해도 되지 않을까?’머리를 굴리던 나는 일부러 놀란 듯 전전긍긍하며 말했다.“해, 해볼게요. 그런데 애교 누나가 너무 보수적이라 성공할 거란 보장은 없어요.”“무서워할 거 뭐 있어요? 내가 있는데.”‘너무 좋겠는데? 그럼 나도 더 수월해질 거잖아.’하지만 연극은 끝까지
나는 여전히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기를 쓰고 내 바지를 벗기는 남주 누나를 보자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남주 누나, 이러지 마세요. 그렇게 보고 싶으면 나중에 집에 사람 없을 때 천천히 보여줄게요.”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어 아무 말이나 했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오히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정말이죠? 나 속이는 거 아니죠?”“제가 왜 누나를 놀리겠어요?”남주 누나는 그제야 웃으며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역시 말 잘 듣네. 약간 어리바리한 모습도 마음에 들고.”나는 얼른 입으며 말했다.“우리 이제 돌아가야 해요. 너무 오래 나와 있었어요.”“그래요. 가요.”나는 밖으로 걸어 나가려 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그런데 우리 이따 어떻게 설명해요? 분명 우리가 무슨 짓 했다고 의심할 텐데.”“의심하라고 해요. 뭐가 무서워요? 혹시 애교가 물어볼까 봐 무서워요? 아니면 수호 씨 형수가 물어볼까 봐 무서워요?”“그게 뭔 차이가 있어요?”“없죠. 그런데 둘 다 묻지 않을 거예요.”“왜요?”내가 의아한 듯 묻자 남주 누님은 내 팔짱을 꼈다.“애교는 나랑 달라 묻지 못할 거고, 수호 씨 형수는 그렇게 똑똑하네 진작 짐작했을 거예요. 수호 씨가 이렇게 잘생겼는데 내가 안 건드리고 배겨요? 그런데 형수가 여자 친구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참견이에요?”‘그건 누나가 나 어떻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남주 누나는 어디로 튈지 몰라 실수로 말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가요.”“참, 파스 붙여줘요. 연기를 하려면 끝까지 해야죠.”나는 순순히 남주 누나에게 파스를 붙여주고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그랬더니 남주 누나는 뭐가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정말 존경스럽네.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지?’그에 반하면 나는 오히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애교 누나는 역시나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형수는 정말 생각했던 대
“저,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나는 너무 찔려 말까지 더듬었다.그랬더니 형수가 갑자기 돌아서서 나를 봤다.“이것 봐요. 수호 씨는 거짓말도 못 하잖아요.”형수한테 사실을 들키자 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이건 제 탓 아니에요. 남주 누나가 도와준 거예요.”“오호? 어떻게 도와줬는데요?”형수는 궁금한 듯 물었다.결국 나는 형수가 화낼까 봐 모두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그랬더니 형수가 불만조로 투덜거렸다.“최남주, 이 여우 같은 게.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제 발 저려 잘못한 아이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자 형수는 겁먹은 나를 보고 오히려 위로했다.“수호 씨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남주 같은 여자는 보통 남자가 상대할 수 없어요. 수호 씨가 아직 어려 남주 꼬임에 넘어간 것도 이해해요.”‘그렇다고 손해 본 건 아닌데. 오히려 기분 좋았는데?’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형수, 남주 누나가 저더러 애교 누나 꼬시래요. 자기가 도와주겠다며.”“음? 왜 그렇게 말했대요?”“애교 누나가 너무 보수적이라 자기가 너무 가볍게 보인다고. 제가 애교 누나를 넘어뜨려 자기랑 똑 같은 사람으로 만들면 함께 놀 수 있다고요.”그 말을 들은 형수는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다.“이 불여우 같은 게, 감히 수호 씨를 장난감 취급하다니. 수호 씨, 무조건 조심해요. 남주는 사람 고장 날 때까지 노는 애니까.”‘설마? 남주 누나가 대체 어떻길래 날 고장 날 정도로 갖고 논다는 거지? 오히려 기대되는데.’‘아직 못해본 자세도 적은데, 농익은 유부녀가 리드해주면 나한테 도움 되는 거 아닌가?’남주 누님은 나에게 아주 좋은 스승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하지만 형수 앞에서는 형수 말에 동조했다.“네, 알았어요.”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형수는 나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그런데, 내가 입은 이 옷 어때요? 예뻐요?”“네, 엄청 예뻐요. 형수 몸매는 무슨 옷 입어도 예뻐요.”나는 진심으로 말했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