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의 이 방법은 너무나도 좋았다. 단번에 책임을 형한테 넘겨버렸으니.형은 헤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한 일을 한 건 아니야. 그냥 갑자기 자기가 너무 좋다는 걸 발견해서 그래.”형수는 당연히 형의 말을 믿지 않았다.남자는 갑자기 여자한테 잘해줄 리도 없고, 아무 이유 없이 자책하지도 않으니까.무조건 미안한 일을 해야 갑자기 이런 반응이 나온다.형수도 이런 갑작스러운 자책과 후회가 사랑이 아니라 짧은 소유욕이라는 걸 알고 있다.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건 행동 하나하나에서 드러나지, 이렇게 말로만 나불거리는 게 아니니까.때로는 여자가 뭐든 너무 꿰뚫어 보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마치 형수처럼.형수는 형이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이미 눈치챘다. 그리고 전에 자기 요구에 동의한 것도 진심으로 동의한 게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챘다. 그와 동시에 슬픔과 실망감이 밀려왔다.‘진동성, 그렇게 좋은 남편인 척하더니 계속 나를 의심했던 거였어? 이게 사랑이야?’하지만 형이 아무리 나빠도 왕정민 정도는 아니라 형수도 이혼할 생각까지는 없었다.이 혼인은 형수한테 있으나 없으나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또 깨기는 아까운 것이기도 하다. 그저 버티다 보면 함께 계속 생활할 수야 있지만, 열정과 사랑이 늘 부족할 거고.형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형수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됐어, 늦었으니까 그만 자.”그런데 형은 갑자기 흥이 났는지 형수한테 달라붙었다.“한 번만 하고 자자.”형수는 역겨운 듯 말했다.“서지도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거야?”“자기가 도와주면 될지도 몰라.”“내가 당신 도우면, 누가 날 돕는데? 예전에도 도와줬는데 본인이 어땠는지 잊었어?”형수는 말을 마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형은 민망했지만 헤실 웃으며 얼른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됐어, 그만 화 풀어. 내가 몸조리 잘할게.”이에 형수는 너무 어이없어 몸조리 잘한다 쳐도, 애 가질 수나 있냐고 따져 물으려 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형과 함께 살아야
‘형수가 왜 이러지? 왜 이렇게 화가 난 것 같지?’형수는 치마를 정리하더니 말을 이었다.“그거 알아요? 수호 씨 형이 어제 내 말에 동의한 건, 나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앞뒤가 어쩜 그렇게 다른지. 언제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요.”형수의 말에 나는 너무 놀라 다급히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에요? 형이 왜 형수를 시험해요?”형수는 자기의 추측을 나한테 얘기했다.그러니까 나와 형수가 대화할 때, 형이 문밖에서 엿들었다는 거다.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식은땀이 났다.그때 형수와 내가 선 넘는 행동을 안 했으니 망정이지, 뭐라도 했다가는 형한테 들켰을지도 모른다.나는 이제야 형수가 왜 이토록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형은 형수 앞에서 늘 이해심 많고 다정한 남편 행세를 해왔고, 내 앞에서도 형수를 무척 사랑하는 척했다. 그런데 사실 형수를 믿지 않았다는 거다.만약 나와 형수가 어젯밤 무슨 짓이라도 하면, 형은 분명 우리한테 죽자고 달려들고 따져 물었을 거다.형의 이런 행동은 겉보기에는 왕정민처럼 파렴치하고 비열하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섬뜩할 지경이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본인을 잘 위장할 수 있지?’나는 오히려 형의 이런 모습이 왕정민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형수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되네.’“너무 위험하네요. 앞으로 형이 집에 있을 때는 거리를 둬야 할 것 같아요.”내가 겁에 질려 말하자 형수는 싱긋 웃었다.“왜요? 무서워요?”“무섭다기보다는, 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들키면 하라는 대로 했다고 하면 되죠. 수호 씨도 그랬잖아요. 전에 동성 씨가 수호 씨더러 나를 임신시키라고 했다고. 그럼 오히려 당당하게 보여줘요.”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형수, 그만 놀려요. 형이 형수도 시험하는데, 저도 시험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됐어요, 이 얘기는 이만해요. 앞으로 조심하면 그만이니까요. 피곤하죠? 내가 계란 후라이 해줄게요.”형수는 내가 힘들까 봐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 차고로 내려갔다. 하지만 차에 오르려고 할 때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윤지은을 발견했다.우리는 지난번에 어영부영 잠자리를 가지고 난 뒤 지금까지 연락하지 않았다.그때 우리가 몸을 섞은 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뜬금없었다. 심지어 왜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너무 민망했다.하지만 남자인 내가 여자와 자고 모른 체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때문에 나는 먼저 지은에게 인사했다.그런데 지은은 나를 무시한 채 차에 올라 쌩하고 떠나버렸다.‘이게 더 민망하잖아.’‘됐어, 저 여자는 원래 저러니까.’나는 이 일을 훌훌 털어내고 고장 화인당으로 향했다.반 시간 뒤,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화인당은 크지 않은 한약관인데, 침술과 마사지 등 서비스도 제공되는 곳이었다.하지만 마사지사가 모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걸 봐서 맹인인 것 같았다.‘여기 참 괜찮네. 맹인한테도 일자리를 주고.’그때, 한약관 사장 정호섭이 나한테 다가왔다.“총각이 마 교수가 소개한 사람인가?”나는 얼른 예를 갖춰 인사했다.“네, 마 교수님이 여기를 소개해 줬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정수호라고 해요.”“마 교수한테 들으니 의술이 뛰어나다던데, 어떤 쪽으로 발전할지는 생각해 봤나?”“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이 한약관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정호섭은 나를 데리고 한의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소개했다.“우리 한약관은 주로 세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네. 첫째는 약재 관리, 주요하게는 약을 잡고 달이는 업무를 책임지네. 둘째는 침술 치료, 이건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한테만 맡기지. 당연히 급여도 높다네. 셋째는 마사지인데 급여도 괜찮다네. 하지만 맹인인 척해야 하네.”마지막 한마디를 할 때, 정호섭은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그걸 들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진짜 맹인이 아니라, 맹인인 척하는 거라고요?”정호섭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할 수 없다네
바로 거절하면 너무 고지식하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거고, 바로 동의하자니 아직 제대로 고민해 보지 않은 터라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정호섭도 나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허허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갈 뿐.“그래,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게. 우리 한약관에 있는 일자리는 대개 이 세 가지이니, 어떤 게 좋을지, 어떤 게 마음에 드는지 생각하고 알려주게.”사실 나는 침술 치료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침술 치료사는 현재 사람을 더 모집하지 않는 데다 3개월이라는 인턴 기간이 존재한다.약재 관리사와 마사지사는 인턴 기간 없이 바로 취직할 수 있는데, 약재 관리사는 너무 간단하여 나는 맨 처음 배제했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먼저 마사지사로 일하기로 결정했다.적어도 먼저 일자리는 찾고 봐야 하니까.게다가 방금 대충 봤는데, 이곳에서 마사지를 받는 귀부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그런 여성 고개를 위해 마사지 하는 것도 분명 즐거운 일일 거다.“사장님, 저 결정했어요. 사장님 말씀대로 맹인 마사지사 일을 맡을게요.”“좋네. 마침 인재가 부족했네, 특히 자네처럼 젊고 잘생긴 총각 말이야. 될 수 있다면 오늘부터 시작하게.”나는 고개를 저었다.“오늘은 안 돼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내일부터 시작할게요.”“그렇게 하게.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오게. 자네는 기초가 있으니 오자마자 바로 일할 수 있을 거네. 급여는 기본적으로 한 달에 140만 원이고, 고객들의 팁도 있을 거네.”“고객이 주는 팁은 모두 마사지사의 몫이니 기량 껏 벌 수 있을 거고.”‘대박, 이만하면 꽤 높은 거 아닌가? 한 달 급여 140만 원 외에 팁도 받을 수 있으면 한 달에 200만 원은 거뜬히 벌 수 있잖아.’‘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보다 나은데?’‘너무 꿀이잖아.’“네, 사장님. 내일 아침 제때 도착할게요.”화인당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형수한테 전화해 이 소식을 알렸다.그랬더니 형수도 무척 기뻐했다.“축하해요. 열심히 해 봐요. 나중에 꼭 잘될
애교 누나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니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결국 나는 남주 누나한테 전화했다.“남주 누나, 애교 누나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애교? 왕정민이랑 같이 간 거 아니야?”남주 누나는 애교 누나의 상황을 알기에, 나는 얼른 물었다.“그런데 방금 전화했더니 살려달라고 했어요.”“설마, 왕정민 그 자식이 애교한테 무슨 짓 하는 건 아니겠지?”나도 남주 누나와 같은 생각이다.“그럼 왕정민이 애교 누나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아요?”“내가 어떻게 알아? 애교가 나한테 말을 안 해줬는데. 내가 우리 남편한테 물어볼게.”애교 누나가 무슨 상황인지 모르니, 법률 사무소 밖에서 기다리는 일분일초가 나한테는 너무 지옥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남주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우리 남편 말로는 왕정민이 애교를 명주 호텔로 데려갔대. 왕정민이 애교한테 몹쓸 짓을 하려는 모양이야.”나는 두말없이 곧장 차로 뛰어올라 명주 호텔로 향했다.그 시각, 명주 호텔의 한 객실 안.애교는 몸이 나른한 채로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이상한 열기를 버텨야 했다.“왕정민, 이 비겁하고 파렴치한 놈! 어떻게 나한테 약 탈 생각을 할 수 있어?”애교는 정신줄을 잡으며 왕정민의 손길을 애써 피했다. 하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역겨움은 참을 수 없었다.‘그동안 계속해서 내 한계에 도전하더니 이제는 하다 하다 이런 짓까지 벌이다니. 짐승만도 못한 놈.’왕정민은 단추를 풀며 입꼬리를 비틀었다.“내가 6억도 주고 집 명의도 줬잖아. 그런데 한번 자는 게 뭐 어때서? 그리고, 우리 아직 이혼 수속도 안 밟았어. 그러니 당신은 아직도 내 아내야. 내가 당신한테 이런 짓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애교는 왕정민의 역겨운 태도에 절망했다.“날 건드리기만 해봐. 절대 안 봐줄 거야.”“나랑 안 해본 것도 아니고. 뭐 순결한 척이야? 이애교, 솔직히 말해, 너 밖에 딴 놈 숨겨뒀지?”“없어!”“없다고?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변해? 재산도 요구하고, 손도 못 대
“왕정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너랑은 안 자.”애교는 이 상황이 너무 역겹고 슬펐다. 왕정민이 이토록 바닥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현재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도 없고, 핸드폰도 빼앗겨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애교는 등 뒤에 있는 창문을 바라보며 왕정민이 저한테 정말 나쁜 짓을 하려 들면 뛰어내릴 결심을 했다.죽는 한이 있어도 왕정민이 원하는 대로 둘 생각은 없었으니까.그에 반해, 왕정민은 애교한테 6억이나 준 걸 생각하면 화가 났다.“이리 와.”왕정민은 큰 배를 내밀고 굶주린 늑대처럼 애교한테 달려들었다.그 순간 애교는 곧장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그 모습을 본 왕정민은 너무 놀라 다급히 말렸다.“뭐 하는 거야? 당장 내려와.”“왕정민, 내가 말했지.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과 안 잔다고.”“내가 그렇게 미워? 난 남자들이면 다 할법한 실수 좀 한 것뿐이야. 내가 뭐 극악무도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애교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바람 피운 걸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재주네. 정말 역겨워. 나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모함해서 빈털터리로 내쫓으려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 있어?”왕정민은 화가 치밀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래, 나 비겁하고, 뻔뻔하고 파렴치해. 하지만 내가 이랬으니 성공했지. 남자가 밖에서 일하는 게 쉬운 줄 알아? 내가 당신한테 준 돈이 어떻게 왔는데? 다 내가 개고생해서 번 돈이라고.”“그래, 애초에 내가 창업할 때 당신과 당신 집에서 도움 많이 받았어. 그런데, 나중에 얻은 성과는 모두 내 스스로 쟁취한 거라고. 너랑 네 부모님은 고작 나한테 2600만 원을 줬지만 난 10억도 넘게 줬어. 그런데도 손해 봤다고 생각해?”“당신 마음속에 우리 결혼은 그저 돈이었어? 정말 이기적이네. 당신 같은 사람은 고마움이 뭔지 영원히 모를 거야. 영원히 자기 이익을 맨 우선으로 생각하겠지. 솔직히 말해서 이건 짐승 아니야?”왕정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마
왕정민은 가볍게 애교의 공격을 피하더니 냉소를 지었다.“사실 가끔 당신이 몸 파는 여자였으면 싶을 때가 있어. 남편이 밖에서 고생하고 오면 집에서 제대로 대답해 줄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목석처럼 내 기분 좋게 해줄 줄도 모르고, 오히려 내가 모셔야 할 판이니 내가 질리지 않겠어?”“여자는 예쁜지 안 예쁜지가 중요하지 않아. 남자를 얼마나 잘 달래는지, 침대에서 얼마나 개방적인지가 중요하다고.”“내가 그렇게 싫다면서 지금은 왜 이러는데?”애교는 너무 화가 나 버럭 소리쳤다.그러자 왕정민이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하지 않으면 내가 바보지. 당신이 뻣뻣하고 재미없어도, 당신과 바람피우는 건 스릴 있거든.”애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당신한테 나는 여자가 아니라 그저 욕구를 푸는 도구일 뿐이구나.’애교는 창밖을 바라보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뛰어내리려고 결심했다.하지만 그때, 왕정민이 살금살금 다가와 애교를 창가에서 끌어내려 침대 위로 거칠게 던졌다.애교는 급히 몸부림쳤지만 왕정민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곧이어 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애교의 옷은 왕정민의 손에 갈기갈기 찢겼다.다음 순간 새하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왕정민은 두 눈을 반짝이며 헤헤 웃었다.“예전에 당신과 할 때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이렇게 강제로 하니까 오히려 스릴 있네. 역시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니까. 이애교, 그만 반항하고 너도 즐겨. 내가 기분 좋게 해줄게.”“아, 싫어. 만지지 마!”왕정민이 애교의 옷을 더 찢으려 할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경찰입니다. 문 여세요!”경찰이라는 소리에 왕정민은 등골이 오싹했다.왕정민은 다급히 애교 위에서 내려와 몸을 숨기려 했지만 아무리 봐도 숨을 곳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다시 애교를 바라봤다.“여보, 방금은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 그러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 이따가 경찰이 들어오면 우리는 합법적인 부부라 절대 불법적인 일은 저지르지 않
“여보, 여보 도와줘. 우리 부부잖아. 당신도 내가 이런 꼴 당하는 거 원하지 않잖아.”왕정민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그때, 나와 남주 누나가 마침 밖에서 쳐들어왔고, 결국 참지 못한 나는 한 달음에 달려가 왕정민을 발로 걷어찼다.만약 경찰이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이 자식을 반 죽여놓았을 거다.남주 누나도 애교 누나를 부축하며 이를 갈았다.“왕정민, 이 개같은 자식. 애교는 네 아내야. 그런데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그때 왕정민이 갑자기 실성이라도 한 듯 하하 웃어댔다.“정수호, 감히 경찰들 앞에서 나를 때려? 아주 좋았어. 내가 너 형사 책임을 물어 감옥에 처넣을 거야.”나는 그 말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하지만 곧바로 반응한 남주 누나의 얼굴은 단번에 잿빛이 되었다.그에 반해 혈기 왕성한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리쳤다.“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너는 죽이고 간다! 이 개자식! 쓰레기!”우리가 또다시 싸우려고 하자 경찰 한 명이 다가와 버럭 소리쳤다.“지금 우리가 눈에 안 보입니까? 두 분 다 서로 가주시죠.”결국 나도 경찰서행을 면치 못했다.경찰서에 끌려가는 게 이번이 처음이지만, 가는 내내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왕정민 그 개자식이 애교 누나한테 상처를 줬으니, 오직 죽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우리는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따로 구금되었다.나를 구치소로 끌고 가던 경찰은 내 행동을 지적했다. 그 당시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됐었다고. 왕정민은 법을 어겼으니 당연히 벌을 받을 것인데, 내가 그런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고의적인 상해죄가 성립되어 상대방이 고소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만약 그렇게 되면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가 나를 구하기 위해 왕정민과 협상을 진행할 거고, 결국 협의로 끝나야 할 판국이 되어버렸다.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분명 왕정민을 감옥에 처넣을 좋은 기회인데, 지금은 오히려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한테 폐를 끼쳤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