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에 겨우 잠이 들어 오늘 아침 지각까지 했어요.]그 말에 애교 누나한테서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혹시 나 원망해요?][제가 왜 애교 누나를 원망하겠어요?][내가 수호 씨를 붙잡지 않았잖아요.][그건 누나 집인데, 남으라고 할지, 나가라고 할지는 누나 마음이죠.]애교 누나는 나한테 입술 이모티콘을 보내왔다.[애교 누나, 혹시 누나 친구 중에 포스터 디자인할 줄 아는 사람 있어요?][내가 알아요.][정말요? 그럼 잘됐네요. 혹시 한의원 홍보 책자 디자인해 줄 수 있어요? 여기 참고 자료가 있으니 바로 사진으로 보내줄게요.]나는 얼른 남아 있는 홍보 책자를 사진 찍어 애교 누나한테 보냈다.그걸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 누나한테서 답장이 돌아왔다.[너무 어려운 거 아니네요. 바로 끝낼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거 딱 봐도 아마추어가 한 것 같은데, 내가 더 다듬어줄까요?][그래주면 고맙죠. 그럼 부탁할게요.][나한테 내외할 거 뭐 있어요?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뿐이지, 마음속에 수호 씨가 없는 건 아닌데.]애원하는 듯한 애교 누나의 말투를 보니 나는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이로써 애교 누나가 나를 아직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게 증명됐으니까.[그럼 누나 사진 찍어줘요.][어, 어디를 보고 싶은데요?]나는 애교 누나의 문자에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누나가 검은색 슬립 원피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요. 속옷 안 입으면 더 좋고.][기다려요.]애교 누나가 나한테 사진을 보내주려 하자 내 마음은 순간 먹구름 걷힌 듯 밝아졌다.나는 의자에 기대앉아 애교 누나가 사진을 보내오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알람음이 들리자마자 나는 다급히 핸드폰을 확인했다.애교 누나가 보내준 사진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누나가 직접 찍은 셀카였는데, 검은색 레이스 슬립 원피스를 입고 안에 속옷을 입지 않아 흰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했고.등 뒤에서 흘러든 한줄기 햇빛은 사진의 분위기를 단숨에 끌어올렸다.그 순간 내 눈에
[그래요. 영화야 언제든지 볼 수 있죠. 하지만 낯부끄러운 짓은 절대 하면 안 돼요.]‘19금 영화를 보면서 누나가 참을 수 있는지 보자고요.’나는 속으로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끝까지는 하지 못해도 분명 재미 볼 수는 있을 거다.애교 누나와 그런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나는 벌써부터 기대됐다.그도 그럴 게, 애교 누나는 그런 영화를 보며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했으니까.아마 부끄러워 당장 영화를 끄라고 할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끝까지 끄지 않고 같이 보자고 애교 누나를 유혹하는 장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됐다.나는 애교 누나와 한참 동안 더 얘기하다가 홍보 책자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대화를 종료했다.잡담만 하다가 일에 영향 줄 수는 없었으니까.할 일도 없는지라 나는 물을 몇 번 마시고 화장실로 향했다.그리고 마침 민규와 마주쳤다.민규는 나를 보자마자 잔뜩 흥분하며 내 앞길을 막았다.“가긴 어딜 가? 내 핸드폰이나 물어내.”“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물어내라고? 그래요, 그럼 증거를 내놔요. 없으면 당장 비키고.”나의 싸늘한 말에 민규는 나를 삿대질하며 윽박질렀다.“정수호, 너무한다는 생각 안 들어? 나 건드리면 어제 네가 했던 짓 다 폭로할 거야.”“해 봐요. 남이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말을 마친 나는 민규를 지나 화장실에서 나왔다.하지만 민규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나를 끈질기게 따라왔다.“가지 마, 거기 서!”나는 걸음을 멈추고 정수호를 가리켰다.“경고하는데 그만 따라와요. 안 그러면 나도 참지 않을 거니까.”민규는 다른 과 주임 교수의 소개로 들어왔지만, 나는 부원장의 소개로 들어왔으니, 신분으로 따져도 내가 한 수 위였다.때문에 민규는 아무리 억울하고 달갑지 않아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정수호, 나중에 나를 탓하지 마!”민규는 화가 난 듯 퉁명스럽게 말하고 떠나갔다.화장실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애교 누나는 본인이 디자인한 파일을 나한테
나는 영상을 보내기 바쁘게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도 그럴 게, 애교 누나가 그 영상을 보면 반드시 나를 원망할 걸 알고 있었으니까.그 시각, 애교의 집.애교는 수호가 보낸 영상을 유심히 들여다봤다.젊은 남녀가 기차역에서 뜨겁게 포옹하는 지극히 평범한 초반 화면에 애교는 수호가 저를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며 영상을 클릭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분위기가 바로 바뀌며 후반 부분이 재생되더니 야릇한 소리와 함께 남녀가 뒤엉킨 화면이 나타나자 애교는 순간 넋이 나갔다.“애교야, 너 지금 뭐 해?”더 무서운 건, 남주가 그걸 들어버렸다는 거다.애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한 듯 대답했다.“아, 아니야.”“거짓말! 네 얼굴과 표정이 이미 너를 배신했거든. 게다가 내가 야동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 소리만 들어도 네가 무슨 영상을 보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어.”그 순간 애교는 얼굴과 목, 심지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지금껏 보수적으로 지내왔고 이런 영상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지금 그걸 본 것도 모자라 친구한테 들켜 버렸으니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결국 애교는 뻔뻔하게 말했다.“정말 아니야. 네가 잘못 들었어.”“흥. 못 믿겠는데? 아니면 핸드폰 내놔 봐.”애교는 당연히 핸드폰을 내놓을 수 없었다.방금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바로 핸드폰을 꺼버렸는데, 다시 켜면 보던 화면이 그대로 재생될 게 뻔했으니까.이에 애교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나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 좀 다녀올게.”“그래, 그 전에 핸드폰 두고 가. 내가 검사해 볼 거야.”“너무한 거 아니야? 지금 내 말 못 믿어?”“얼씨구? 네가 그런 영상 본다고 해도 문제 될 거 없어. 남자한테 치료받기 싫다면 혼자서라도 치료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재미있고 주인공들 마스크가 받쳐주는 영상을 보는 걸 추천해. 그래야 기분이 좋아지거든. 내가 괜찮은 거 많이 아는데, 추천해 줄까?”그 말에 애교의 얼굴은 아예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난 그렇게 심신 건강에 해로운
“나 안 볼래, 화장실 다녀올게.”애교는 더 이상 볼 엄두가 안 났다. 남주가 보여준 단톡방 안에는 모두 19금 동영상이었다.그걸 보다 보니 애교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개졌다.그 사이, 남주는 애교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남주, 안돼...”“아아아!”남주가 핸드폰을 켜기 바쁘게 애교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하하하, 아니긴. 딱 걸렸네?”애교는 너무 부끄러워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심지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남주의 앞에서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남주는 애교의 팔을 잡아끌었다.“엥, 가지 마. 감상 좀 말해 봐.”“최남주, 너 진짜!”애교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울컥했다.그때 남주가 헤실 웃으며 말했다.“나 원래 이래. 네가 고쳐줄래?”“됐어, 너랑 얘기 안 할래. 나 정말 화장실 가고 싶어.”애교는 당장이라도 도망치려 했지만 남주는 애교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화장실 가고 싶어? 그럼 우선 감상부터 말해. 보면서 너도 하고 싶었지?”남주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 순간 애교는 몸이 찌릿찌릿하며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아니야. 실수로 클릭한 거라 제대로 보지 않았어.”“정말? 그럼 아래 만져봐도 돼?”“남주, 그만해.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애교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이자 남주는 얼른 애교를 끌어안았다.“울지 마. 네가 이러면 내가 미안하잖아. 그래서 대체 어떤 느낌이었는데?”애교는 하마터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그와 동시에 어제 수호가 얼마나 억울했을지 직접 경험했다.“남주야, 제발. 나 정말 화장실 가고 싶어. 우선 화장실 좀 다녀올게.”애교는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그제야 남주는 핸드폰을 애교에게 돌려주었다.“그래, 이번에는 한 번 봐준다. 가 봐.”그 말을 듣는 순간 애교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달려갔다.그리고 애교가 떠난 뒤, 남주는 핸드폰을 꺼내 수호에게 문자를 보냈다.[수호, 대단한데? 이런 방법으로 애교를 농락하다니.]그 시각,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핸드폰은 다시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이번에 나에게 문자를 준 연락처는 애교 누나의 것이었다.애교 누나가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기에, 이런 문자를 보낸 사람은 무조건 남주 누나가 틀림없다.내가 아무리 남주 누나를 마음대로 삭제할 수 있다고는 해도, 애교 누나의 연락처만은 지울 수 없었다.게다가 이건 그저 남주 누나의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내가 애교 누나의 연락처를 삭제한다고 해도 남주 누나는 아마 다른 방법으로 나를 상대할 거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한발 물러났다.[남주 누나, 그만 보내요. 저 일해야 해요.][네가 보내지 말라면 내가 들어야 해? 감히 내 연락처를 지워? 아주 죽을 때까지 괴롭혀 줄게.][저만 탓하면 안 되죠. 계속 문자 보내면 제가 어떻게 일해요?][지금 날 탓하는 거야. 계속 보낼 거야. 계속 괴롭힐 거라고.]남주 누나는 곧바로 이모티콘 테러를 해댔다.결국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답장을 보냈다.[누나, 죄송해요. 연락처 다시 추가할게요.][네가 추가한다면 내가 받아줘야 해? 네가 뭔데? 내 연락처가 그렇게 쉽게 추가할 수 있는 건 줄 알아?][그럼 대체 뭘 원하는데요?][헤헤, 애교가 방금 너한테 셀카 요구했잖아. 다시 보내, 난 얼굴 사진 싫어, 네 아래를 찍어.][미쳤어요? 이건 애교 누나 핸드폰이에요.][나도 알아, 애교한테 보여주려고 보내라는 거니까.][애교 누나가 알면 화낼 거예요.]나는 이제 나 자신이 점점 존경스러워질 지경이다. 거짓말하면서 얼굴도 붉히지 않게 되다니.예전에 처음 도시에 왔을 때는 낯선 여자를 보기만 해도 얼굴을 붉혔었는데, 이제는 마녀 같은 남주 누나도 이렇게 여유롭게 상대하다니.확실히 실천이 최고의 선생님이란 말이 맞나 보다.남주 누나는 나와 애교 누나의 사이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전 누나 못 믿어요. 어제 그렇게 놀려댔으면서.][믿어야 할 거야. 너한테 선택지는 없어. 얼른 사진 찍어 보내, 애교한테 장난칠 거니
‘그러게 왜 나를 얕봐요?’나는 매우 으쓱했다.심지어 남주 누나와 복무를 받을 때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신체적인 쾌락이 아니라 심리상의 만족감이기 때문이다.내가 기대하고 있을 때 남주 누나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기대에 부풀어 핸드폰을 클릭했더니 늘씬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보였다. 주요 부위만 가릴 수 있는 짧은 치마를 입어 보일 듯 말 듯해 더 예뻤다.‘그런데 이 치마 왜 이렇게 익숙하지?’‘헐, 이거 애교 누나 치마잖아?’남주 누나는 본인을 찍은 게 아니라 애교 누나 사진을 보내왔다.또 농락당했다는 걸 인지한 순간 나는 화가 났다.[난 누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왜 애교 누나 사진을 보내왔어요?][헐, 이게 애교 사진인지 어떻게 알았어?]‘이런, 들켰네.’나는 가슴이 콕콕 찔려 어쩔 줄 몰랐다.그때 남주 누나의 문자가 도착했다.[이상하네, 아주 수상해. 정수호, 너 애교랑 뭐 있지? 안 그러면 이게 애교인지 어떻게 단번에 알았어? 내가 얼굴을 찍은 것도 아닌데.]나는 제 발이 저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이 순간 애교 누나의 몸매에 대해 너무 잘 아는 내가 원망스러웠다.나는 애써 진정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문자 했다.[누구를 바보로 알아요? 누나와 애교 누나 몸매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애교 누나는 여리여리하고 누나는 글래머러스하고.][그렇구나. 난 또 둘이 뭐 있는 줄 알았지.]남주 누나의 답장에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곧바로 따져 물었다.[남주 누나, 진짜 너무하네요. 매번 사람을 속이고, 다시는 누나 안 믿어요.][아이고, 우리 푸들 화 났어? 누나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네가 애교를 공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잖아.]‘진짜 요물이 따로 없네. 본인 사진 보내기 싫어서 애교 누나 사진을 보냈으면서 변명은.’[변명하지 마요. 본인 사진 보내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요. 사진도 보내지 못 할 거면서 뭐 하러 날 자꾸 유혹해요? 돌아가서 관리 남편 내조나 잘해요.]내가 이 말을
나도 민규를 무시하고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확인했다.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라는 문자 하나였다.“아아아!”나는 화가 치밀었다.어렵게 받은 사진을 미처 볼 새도 없이 삭제해 버린 거였다.[방금 대체 뭘 보낸 거예요? 저 아직 보지 못했어요.][못 본 건 네 사정이고. 난 약속대로 보냈어. 이제 네 사진 보내 봐.][방금 어떤 미친놈이 밖에서 문을 걷어차는 바람에 놀라서 못 봤어요. 다시 한번만 보내 줘요. 한 번만 보고 삭제할게요. 제발.][빌어도 소용없어. 난 이번에 약속 지켰어, 네가 기회를 놓친 거지. 푸들, 이제 네 차례야.][사진 없어요. 아래도 잠잠해요.][지금 날 속였어? 잘 생각해야 할 거야. 나중에 감당할 수 있겠어?][뭘 하려는데요? 어디 들어나 봅시다. 저도 궁금하니까.][네 형수 집에 달려가서 우리가 한 대화 보여줄 거야.][미쳤어요? 형수 집엔 왜 가겠다는 거예요?][네 형수랑 얘기하러. 왜 안돼? 말 돌리지 마, 보낼 거야 안 보낼 거야? 네 형도 오늘 집에 있는 것 같던데, 우리 대화 기록 다 같이 감상한다?]나는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형수는 늘 나더러 남주 누나를 멀리하라고 했는데, 내가 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야릇한 대화를 주고받았으니.형수가 알면 화낼 게 뻔했다.게다가 형이 아는 건 더 최악이었다.형은 나를 점잖은 사람이라고 보는데 내가 사적으로 이렇게 행동한다는 걸 알면 형수까지 넘본다고 의심할 수 있으니까.‘형수랑 있었던 일 절대 형한테 들키면 안 돼.’나는 분명 남주 누나를 내 손에 주무르고 있다 생각했는데, 결국 모든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너무 어이없어 나는 결국 숙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제가 졌어요.]남주 누나는 나에게 야릇한 표정을 짓는 이모티콘을 보냈다.고개를 숙여 봤더니, 내 아래는 오늘 의외로 아주 잠잠했다. 하지만 억지로 흥분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결국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영상을 보는 거였다.
나는 남주 누나가 장난치는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기대하고 싶어졌다.[누나가 온다면 저야 너무 좋죠.][그럼 나랑 호텔 갈래?][누나가 원한다면 언제든지요.][그럼 일은 어떡해?][일이 쉽고 자유로워 괜찮아요.]그 말을 하고 나니 남주 누나가 정말 찾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에 나는 갑자기 설레고 기대됐다.[그럼 누나가 갈 테니까 딱 기다려.][거짓말 마요. 안 믿어요.][거짓말 아니야. 약속할게.]한편, 애교의 집.남주는 애교의 핸드폰을 들고 답장하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난 거짓말 안 했어. 하지만 난 내 핸드폰으로 대화한 게 아니니까 지금 대화하는 사람은 애교지 내가 아니야. 속여도 애교가 속인 거라고.”그때 마침 애교가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너 지금 내 핸드폰으로 뭐해?”“별거 아니야. 네 핸드폰으로 수호 씨랑 대화 중이었어.”“네 핸드폰으로 대화할 것이지 왜 남의 핸드폰으로 대화해?”애교는 뭐가 켕기는 거라도 있는 듯 다급히 말했다.남주가 뭔가 발견하고 제 핸드폰으로 수호한테 뭔가를 캐내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수호 씨가 나 삭제해서 할 수 없이 네 핸드폰 좀 빌린 거야.”애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수호 씨가 왜 널 삭제해?”“왜긴 왜겠어? 내가 자기를 속였다고 그러지. 푸들 같아가지고 아주 쪼잔하다니까. 그것 외에 큰 게 하나도 없어.”애교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이제 핸드폰 돌려줄 수 있지?”남주는 헤실 웃으며 얼른 핸드폰을 건넸다.“그래. 그런데 수호가 나랑 무슨 대화했는지 봐 봐.”“싫어, 누가 본대? 야한 얘기했겠지, 말 안 해도 알아.”“아니거든, 잘 봐. 내가 어떤 걸 건졌는지. 수호 씨의 비밀을 캐냈는데, 알고 싶지 않아?”그 말에 애교는 이내 호기심이 발동했다.“그렇게 말하니 보고 싶네.”애교는 얼른 핸드폰을 확인했다.그리고 다음 순간.“아! 최남주, 너 죽을래? 또 나 속이는 거야?”화면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커다
심지어 굉장히 체면이 서고 우쭐했다.‘내가 김진호를 제압하고 이 깡패들한테 겁을 줬다니, 너무 대단한걸.’하지만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여전히 칼을 김진호의 목에 겨누었다.“네가 절대 그냥 물러서지 않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어. 정 사장님과 화인당을 노리고,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네가 목적에 달성하지 않은 이상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거 난 알아. 하지만 경고할게. 화인당은 건드리지 마. 나도 건드리지 마. 앞으로 화인당 한 번만 더 노리고 날 꼭지가 돌게 하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나는 말하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칼날이 김진호의 살갗을 찢으며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김진호는 목에 통증이 느껴지자 소스라치게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얼른 칼 치워. 나 목에 스크래치 났잖아.”나는 손쓸 때에도 계속 김진호를 주의하고 있어, 대동맥은 피해 공격했다.하지만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머리가 새하얗게 질린다고, 김진호는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없었다.나는 놈들더러 우리 쪽 사람을 모두 풀어주게 하고, 짐을 챙기게 한 뒤 당장 이곳을 떠나게 했다.김진호는 이번에 정말 놀란 듯 허둥지둥 기어 일어나더니 제 목을 감싸 쥔 채 기사에게 소리쳤다.“병원, 병원으로 가. 얼른! 나 죽기 싫다고.”승합차가 멀어지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겨우 한시름 놨을 때, 민우와 모태진이 함께 쳐들어왔다.“수호 씨, 괜찮아요?”“김진호 그 개자식. 아까 분명 가는 척하더니 또 돌아오던데, 역시 너한테 시비 걸러 온 거였구나. 너 어쩌다 이 지경으로 쥐어 터졌어? 그 개자식, 만나기만 해봐라...”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별일 아니야. 그냥 가벼운 외상이야. 뼈를 다친 것도 아니야. 그 지식 이번에 제대로 놀랐을걸.”“대체 어떻게 된 거야?”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그러자 민우는 박장대소하며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한데. 내 전매특허를
김진호는 당한 건 무조건 갚는 성격인 데다 속이 좁고 질투심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한테 얻어맞았으니 그대로 넘어갈 리 없었다. 그는 진작 다시 돌아와 제 체면을 바로 세울 계획을 꾸몄다.그리고 아까 수천당에 있을 때, 김진호는 정태곤이 나 때문에 나선 게 아니라 소여정 때문에 나섰다는 걸 이미 눈치챘다. 때문에 소여정이 떠나면 나에게 천천히 갚아줄 생각이었다.그리고 그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소여정과 정태곤이 떠나자마자 김진호는 곧바로 소리치며 다시 쳐들어왔다.나는 놈들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김진호 패거리가 들어오자마자 방망이를 휘둘러대는 바람에, 우리 쪽 사람들은 반격할 틈도 없이 하나 둘 쓰러졌다.그때 김진호가 사람들 틈에 서서 나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저 개자식부터 패!”김진호의 명령에 모든 깡패들은 일제히 나를 봤다.기세등등한 놈들을 본 순간, 상황이 시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나는 곧장 도망쳤다.그러자 김진호가 뒤에서 바짝 쫓아오며 소리쳤다.“정수호, 어딜 도망치려고?”나 혼자서 놈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해 잡히고 말았다.놈들은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두말 없이 나에게 주먹질하며 발길질했다.나는 머리를 감싸려고 다른 곳이 아픈 건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놈들은 나를 아무 반격도 못 할 정도로 때린 뒤에야 동작을 멈췄다. 그때 김진호가 다가와 내 앞에 멈춰 섰다.난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김진호 성격에 분명 나를 모욕하고 내 자존심을 깎아내릴 거다. 심지어 이 기회에 정 사장님의 화인당까지 빼앗아 갈 수도 있었다.내가 물론 사회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동안 정태곤과 양동준한테서 배운 게 있다.그건 바로 사람은 반드시 독해야 한다는 거다.사람은 독해야 상대한테 위협을 가할 수 있다.때문에 김진호가 몸을 쪼그려 나에게 다가올 때, 나는 온몸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참은 채 그를 공격했다.나는 얼른 부러진 테이
나는 김진호를 호되게 한 방 먹이면 그가 겁을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김진호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아마도 김진호의 눈에 나는 무서워할 가치도 없는 사람인 모양이었다.“그래! 오늘은 실력 있는 사람이 널 도와줬겠지만, 네가 계속 그렇게 운이 좋을까? 앞으로 내 손에 걸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김진호의 눈빛에 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오늘 일로 내가 김진호에게 단단히 밉보였다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김진호 성격에 무조건 나에게 복수하려 할 거다.하지만 그렇다고 겁을 먹어야 하나?아니, 난 더 이상 찌질하게 지낼 수 없다. 변하겠다고, 강해지겠다고 한 이상 절대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때문에 나는 김진호에게 발길질했다.“네가 그렇게 대단하면 우선 날 잡고나 말해. 꺼져!”나는 놈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그러자 김진호는 노랑머리 놈의 부축을 받으며 천수당을 떠났다.놈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그때 소여정이 다가와 말했다.“이대로 보내주면 안 됐어.”“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상대가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때려야지! 복종할 때까지 때려야 상대가 다시는 수호 씨를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해. 안 그러면 후환을 남기는 거나 다름없어. 상대는 오히려 배로 복수할 거고.”이러고 보니 소여정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역시 나는 이런 방면에서 경험이 적어 누군가의 가르침이 필요하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지금 쫓아가도 늦지 않았겠죠?”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김진호 패거리가 승합차를 타고 떠나버렸다.이로써 나는 오늘 큰 실수를 한 셈이다.하지만 소여정이 말했다.“내가 왜 막지 않은 줄 알아? 수호 씨는 이쪽 경험이 부족해서 경험 삼을 필요가 있어. 그리고 앞으로 더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 직접 겪고 느껴 봐야지.”나도 소여정의 결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 실력으로 어떻게 김진호 패거리를
약 30분 뒤, 김진호는 사람들을 데리고 천수당에 나타났다.원수끼리 만나면 눈에 쌍심지를 켠다고, 나와 김진호는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김진호와 함께 온 사람은 전에 나에게 시비 걸었던 깡패들이었다.그중 노랑머리 사내는 바로 안명훈이었다. 다만 안명훈 옆에 또 익숙한 얼굴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한은솔이었다.한은솔을 보자 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모태진과 만나는 거 아니었나? 왜 또 저 노랑머리 자식과 어울리지?’‘저 여자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김진호가 싸늘한 얼굴로 나를 삿대질했다.“정수호, 네 놈이 소란 피웠어? 너 정호섭 개야? 왜 그렇게 목숨 바쳐 충성해?”나는 김진호의 손을 쳐냈다.“배은망덕한 자식. 정 사장님이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런 짓을 벌이다니. 넌 짐승만도 못해!”김진호는 이를 갈았다.“정호섭이 나한테 잘해줬다고? 잘해준다는 사람이 나를 해고해?”“그건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네가 계속 네 무덤을 파지 않았다면 사장님이 왜 너를 해고하겠어?”“헛소리 집어치워! 난 그저 돈 벌겠다고 아득바득한 것밖에 없어. 그게 뭐가 잘못된 건데?”김진호는 못마땅한 듯 소리쳤다.그 모습에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아무리 돈이 좋아도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야지, 넌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잖아. 너 같은 놈을 두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랑물을 흐린다는 거야. 너를 계속 남겨두면 가게 평판이 곤두박질쳤을걸.”김진호는 귀찮다는 듯 내 말을 잘랐다.“도덕의 잣대로 날 평가하려 하지 마. 넌 가게 이름에 먹칠하는 짓 안 했어? 본인은 늙은 여편네들이랑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를 말해?”퍽!나는 두말 없이 김진호에게 주먹을 날렸다. 내가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김진호는 나한테 정통으로 맞아 코피를 흘렸다.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린 그는 깡패들을 향해 소리쳤다.“덤벼! 저 자식 족쳐!”놈들이 달려들기 전, 소여정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짝!정태곤은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주덕팔의 뺨을 후려갈겨 그를 바닥에 때려눕혔다. 그러고도 끝나지 않았는지 또 성큼성큼 걸어가자, 주덕팔은 경기를 일으키며 연신 뒷걸음쳤다.“뭐, 뭐 하려는 거야? 경고하는데, 다가오지 마. 내가 이 구역 깡패를 알아...”정태곤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깡패? 좋아. 이름이 뭔데? 지금 당장 전화해서 여기로 오라고 해.”“당, 당신이 그렇게 대단하면 나한테 전화할 기회라도 줘.”정태곤은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말했다.“지금 기회 줄게. 쳐.”주덕팔은 다급히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해 말했다.“김진호, 당장 사람 불러서 여기로 모여.”김진호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김진호가 주덕팔과 한패가 되었다는 게 분했다.‘정 사장님이 평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 개자식이 감히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모함해? 역겨워서 원.’나는 주덕팔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빼앗아 오고는 전화에 대고 소리쳤다.“김진호, 이 개자식아! 이런 짓을 벌인 게 네놈일 줄은 몰랐네.”김진호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피식 웃었다.“정수호, 너였어? 빨리 기어올랐네? 정호섭이 그렇게 되니까 네가 바로 2인자가 된 거야? 너 사모님이랑 잤지?”김진호의 말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이 개자식이 헛소리 지껄이지 마. 사모님은 그런 분 아니야.”“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네가 좋은 놈이 아니라는 건 알아. 나한테서 윤 사모님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그렇게 많은 여자들과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다니. 넌 여자 등에 빨대 꽂는 등신이잖아.”그 말에 자존심이 단단히 긁힌 나는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아니야!”“쳇, 네가 아니라고 해서 아닌 게 아니야. 아무튼 태 눈에 넌 그냥 쓸모없는 등신이야.”나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그때 소여정이 다가와 내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가더니 말했다.“정수호가 여자 덕을 보면 뭐 어때서? 적어도 그럴 자본이 있는데, 넌 있어?
소여정은 항상 이렇다. 그녀는 마치 활짝 핀 꽃들 사이에 가장 예쁘고 화려하게 핀 목단 같은 존재다. 때문에 어디를 가든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소여정은 천수당에 들어오자마자 주덕팔에게 말했다.“팔이 삐끗한 것 같은데, 한번 봐줘요.”주덕팔은 소여정이 화인당 사모님과 아는 사이라는 걸 모른다, 그저 그녀가 아주 예쁘다는 것만 알 뿐. 때문에 치료 명목으로 소여정을 마음껏 만질 생각을 하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갔다.하지만 주덕팔의 손이 소여정 팔에 닿기도 전에,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돌아갔다.주덕팔은 한쪽 얼굴을 감싸 쥔 채 멍한 눈으로 정태곤을 바라봤다.“왜 때려요?”“소여정 씨는 S시 임천호 회장님의 사람이다. 어디서 함부로 그 더러운 손으로 소여정 씨를 만지려 들어?”주덕팔은 임천호가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정태곤의 날카로운 눈빛에서 그와 소여정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감히 그 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주덕팔은 얼른 직원을 시켜 손수건을 가져오게 하고는 그것을 소여정의 팔 위에 덮었다. 다만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를 눈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뺨까지 맞았으니 참 재수 없었다.한참 동안 검사하고 난 뒤, 주덕팔은 소여정의 팔이 아무 문제 없다는 걸 발견했다.“저기요. 환자분 팔은 아무 문제 없어요.”“문제 없다고요? 그런데 팔이 왜 이렇게 아프죠? 혹시 의술이 안 좋아 문제점을 찾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아니,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되죠. 저 주덕팔이 정형외과 의사로 지낸 세월이 몇십 년인데, 의술은 장담해요.”“아, 그러면 내가 지금 당신을 모함한다는 뜻이에요?”소여정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주덕팔은 그 말에 아무 말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정태곤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다시 한번 봐 드릴까요?”주덕팔은 또다시 검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
“요즘 천수당 장사가 안된다고 해서 제가 특별히 사람들을 데리고 소비해 주러 왔잖아요.”주덕팔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하지만 나는 시종일관 빙그레 웃으며 말썽도 피우지 않고 시비도 걸지 않았다.‘어때? 예상 밖으로 움직이니 대체 못 하겠지?’주덕팔은 결국 화를 내지도 못한 채 진찰하도록 직원들을 다그쳤다.나는 일부러 사람들더러 빈자리를 모두 차지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도 앉을 자리가 없을 테니까.병 보는 건 내 주요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때 대충 여기저기 다 아프다고 둘러대며 온몸을 검사하게 했다.만약 상대가 아무 문제도 찾아내지 못하고 나더러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면, 난 이 사람들의 의술이 별로라고 큰소리로 떠들어댈 생각이었다.상대가 가게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난 더 상관없었다.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마침내 내 의도를 파악한 주덕팔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당신, 나 따라와.”“주 사장님, 저 팔에 아직 깁스를 하고 있어 온몸이 불편해요. 어떻게 환자한테 그렇게 사납게 굴 수 있어요?”어느새 한의원 입구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다.때문에 주덕팔은 일이 커질까 봐 말을 심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저 분노를 삭이며 이를 악물었다.“나랑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직접 진찰해 줄게요.”“안 돼요. 제가 이틀 전에 갈비뼈도 부러져서 걷지 못하거든요. 사장님이 저를 업고 들어가실래요?”“업긴 무슨...”주덕팔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을 뻔했다.나는 시종일관 눈웃음을 치다가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주 사장님, 왜 사람을 욕하고 그러세요? 저 사장님 명성 때문에 여기 온 거예요. 그러니 저를 실망하게 하지 마세요.”결국 주덕팔은 씩씩거리며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나는 그를 무시한 채 계속 진찰을 받았다. 직원이 치료를 도와주겠다고 해도 순순히 협조했다. 하지만 모든 치료가 끝난 뒤 나는 여전히 온몸이 아프고 불편하다고 트집을 잡았다.내 목적은 주덕팔이 장사를 접게
천수당이라면 나도 안다. 정형외과 한의원인데, 주로 타박상과 골절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그리고 그곳 사장 주덕팔은 뚱뚱한 아저씨인데,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화인당을 노리고 있을 줄이야.“다, 다 말했는데, 배상한다던 건 언제 배상할 건데요?”아직도 배상 타령하는 놈을 보니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우리 사장님한테 사고가 나자마자 우리 화인당을 모함하러 온 주제에, 어디서 뻔뻔하게 배상을 요구해?”내가 당장 남자를 쥐어박을 것처럼 굴자, 놈은 놀랐는지 허둥지둥 도망쳤다.모태진은 나를 보며 물었다.“수호 씨, 우리도 주덕팔 가게로 가서 결판 내야 하지 않아요?”“증거도 없는데, 상대가 인정할까요?”“그래도 아까 사람이 주덕팔이라고 말했잖아요.”나는 너무 어이없어 모태진을 바라봤다.“주덕팔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고, 증인도 이미 도망쳤어요.”모태진은 그제야 발견했는지 머쓱하게 말했다.“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을 잡아두는 건데.”사실 잡아 둔다고 해도 소용없다. 주덕팔이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뭔 소용이 있나?설령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결국은 흐지부지해질 거다.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나는 속으로 악랄한 방법을 생각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주덕팔이 우리와 화인당을 모함하려고 했으니 우리도 똑같이 돌려주면 돼요.”그때 민우가 바깥 상황을 정리하고 다른 동료들을 데리고 한의관 뒤편으로 왔다.마침 내 말을 들은 동료들은 너도나도 무슨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간단해요. 주덕팔이 우리를 모함했으니, 우리도 상대를 모함하면 돼요.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사람을 찾아야 해요. 지금 바로 움직여요. 주위에 골절 환자거나 타박상을 입은 환자가 있으면 모두 천수당으로 불러요.”모태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다음에는요?”민우는 이미 내 계획을 알아챈 듯 싱긋 웃었다.“그다음은 간단하잖아요. 그쪽에서 약을 처방받으면 되죠. 그러고 나서 약이 효과가 없다, 약에 문제가 있
이 사람이 이런 짓을 벌인 건, 급전이 필요해서일 거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이런 방식으로 상대에게 미끼를 던졌다.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흔쾌히 승낙했다.“그래요. 들어가서 얘기해요.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해요.”상대는 손가락 6개를 내밀었다.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그래요. 들어가서 얘기해요.”나는 남자에게 어깨동무한 채 안으로 들어가며 민우더러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눈짓했다.일이 이 정도로 끝났으니 그저 해프닝에 그칠 거다. 만약 일이 커지기라도 했으면 아마 화인당 평판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말이다.나는 남자를 한약관 뒤편으로 데려갔다. 그랬더니 남자는 주위를 경계하며 두리번대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를 따라 나섰다.“여기서 예기해요. 아예 지금 돈 줘요. 돈만 받고 갈게요.”그 말에 나는 이내 돌변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돈을 달라고? 아주 뻔뻔하네? 화인당이 몇 년 동안 영업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일 없었어. 누가 지시한 거야? 누구 지시받고 이런 짓 한 거야? 우리를 모함하는 대가로 얼마 받기로 했어?”나는 너무 화가 나 분노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정 사장님한테 일이 생기자마자 사장님이 피땀 흘려 일궈낸 사업을 망치려 들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남자는 내 생각을 꿰뚫었는지 곧장 뒤돌아 도망쳤다.하지만 그때, 그림자 하나가 그를 가로막았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모태진이였다.모태진은 나를 바라보면서 머쓱해서 말했다.“다른 일은 우선 제쳐두고 나중에 얘기해요. 화인당을 지키려는 건 수호 씨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어요.”나는 모태진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확실히 화인당 내 모든 직원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아까 이 사람이 소란을 피울 때도 모든 직원이 나서서 사장님과 이 가게를 옹호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여기 들어와서도 제멋대로 굴면 나갈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 남자는 구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