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은 슬퍼했다. 그는 붉은 눈으로 방 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문호는 처참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기왕의 모습을 보고 그가 유후궁(劉側妃)에 대한 마음이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문호는 앞으로 나가 앉았다. “형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기왕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돌려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왔구나!”“응, 부황께서 와보라고 하셨습니다.”그는 사건 조사하러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우문호가 말하지 않아도 기왕은 우문호가 온 목적을 알고 있었다. 기왕은 몸을 곧게 펴고 앉아 표정을 가다듬었다.“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다른 부중 사람들에게는 다 물어봤잖아.”“형수님을 빼고는 다 물어봤습니다.”우문호가 답했다.기왕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담담하게 “네 형수는 몸이 안 좋아서 부중의 일은 하나도 몰라. 그녀에게 물어봐도 소용없을 거야.”라고 말했다.“후궁의 시녀가 말하길, 후궁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부친으로부터 황량한 생활을 견딜 수 없어 형님에게 부황께 사정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우문호가 말했다.기왕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지만 본왕은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어. 그녀의 부친이 죄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는 그런 부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지”“형님께서 당부를 하셨다고요?”기왕은 수심에 잠긴 채 괴로워했다. “본왕이 너무 모진 말을 해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아…….”“형님께서는 자결했다고 보십니까?” 우문호가 물었다.기왕은 우문호를 보며 “자결이 아니면? 타살이라는 말이냐?”라고 물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조사해 보거라.” 기왕은 지친 모습으로 손을 저었다.“이 사건 외에 혹시 후궁에게 혹시 다른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기왕은 차갑게 웃으며 “무슨 안 좋은 일? 그녀가 본왕의 아이를 임신했지 않는가? 아들만 잘 낳으면 평생 귀한 대접을 받으면 잘 살았을 텐
기왕비는 기침이 심할 뿐 병세는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 때문인지 얼굴이 노랗고, 전보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후궁의 소식을 듣고 울어서 그런지 그녀의 눈은 붉게 부어있었다.우문호를 보자마자 그녀는 목이 멨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타살입니까? 아니면 자결이라는 말입니까? 아이까지 가진 그녀가 자결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저도 안전하지 않은 거죠?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겁니까?”우문호는 눈물을 글썽이며 오열하는 기왕비를 보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형수, 유후궁(劉側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입니까?”기왕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그저께 그녀가 약을 가지고 왔을 때입니다. 당시에 난 그녀가 임신한 줄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오라 고도 하지 않았을 텐데, 유후궁도 참 어리석지, 임신까지 해놓고 뭐 하러 여길 와서는…….”“후궁이 언제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우문호가 물었다.“그저께 시녀가 와서 유후궁이 몸이 불편하고 속이 메스껍다고 어의를 불러 진맥을 했다고 했습니다.”“그때 형수님께 임신 소식을 알렸습니까?”기왕비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그때 제게도 보고를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몸에 좋다는 것도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고 어의에게도 후궁과 아이를 잘 돌보라고 당부했습니다.”우문호는 포도대장을 바라보았다.“예. 소인이 조사를 해보니 후궁이 임신했다는 것을 안 후, 기왕비께서 물건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저께라고 하니, 날짜도 맞습니다.”“음, 그럼 더 물을 게 없네요. 형수님 편히 쉬십시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다섯째 조심히 가세요. 제가 몸이 이래서 나가보지는 못할 것 같네요.”기왕비는 슬픈 목소리로 우문호에게 말했다.관아로 돌아온 포도대장이 우문호에게 “왕야, 소인이 순찰을 하고 있는데, 유후궁을 모시던 상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왕비께서 후궁에게 유대감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합니다. 후궁이
우문호는 왕부로 돌아와 원경릉과 이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그의 말을 들은 원경릉은 탄식했다.“내가 유후궁을 본 적은 없어 어떤 여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신까지 한 마당에 자결 하다니……. 아마 기왕비의 손바닥 안에서 살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네.”“관아에서 이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난 기왕비가 유후궁의 부친을 들먹이며 그녀를 위협했다고 생각해.”“그럼 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거야?”원경릉이 물었다.“별수 있나? 부중에서 발생한 사람이 죽은 사건, 더욱이 자결 사건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을까? 틀림없이 내일이면 유후궁이 호수로 뛰어드는 것을 봤다는 사람이 나올 거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며 구할 겨를이 없었다고 얼버무리겠지. 사건의 면모를 알고 있는 기왕이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겠지.”원경릉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유후궁이 정말 자결한 것이라면 궁 안의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원경릉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후궁의 고뇌와 슬픔이 느껴졌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신의 손으로 죽음의 문을 열었을까.“맞다!” 우문호는 갑자기 기왕비의 병이 생각났다.“본왕이 오늘 기왕비를 보러 갔는데, 얼굴이 엄청 노랗고 기침을 계속하더라고, 폐렴에 걸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당시 여섯째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글쎄, 면역력은 개인차가 있으니…….”“기왕비를 치료할 거야?”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서서 치료할 필요는 없지. 난 그저 약 상자의 명령을 따를 뿐이야.”성문 사건이 터지기 전에 약 상자는 회왕의 약으로 가득했지만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는 구급약과 외상 약이 가득했다.“너의 약 상자에는 분명 귀신이 살고 있을 거야.” 우문호가 말했다.“내 생각도 그래.”우문호가 씩 웃었다.약 상자 얘기가 나온 김에 그녀는 약 상자를 꺼내 내부를 보았다. “어? 이게 웬일이야?” 원경릉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약 상자 안에는 엽
소식을 들은 우문호가 왕부로 돌아와 원경릉을 찾았다.“도대체 임산부가 무슨 이유로 호수로 뛰어들겠어?”“기왕비에게 위협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잖아?”“왜 그랬는지 부황에게 말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유후궁이 임신한 몸으로 자살했으니, 그녀의 집안이 온전치 못할 거야. 유후궁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어.”원경릉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부황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말해주었다.우문호가 입궁하여 사건의 정황을 보고하자 명원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태후를 찾아가라고 했다.태후는 이번 일에 상심이 컸다.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새 생명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손왕비와 기왕비가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여자아이였고, 셋째인 우문위(宇文蔚)의 본처 최씨가 작년에 임신을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6개월 만에 유산되었다. 왕비는 그 충격으로 아직도 요양을 하고 있었다.태후는 유후궁의 임신에 기뻐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못했다. 우문호가 도착했을 때, 태후는 보이는 족족 물건을 던지고 있었다. 안에 있던 상궁과 시녀들이 우문호가 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왕야, 서둘러 들어가 태후 마마를 돌봐주십시오. 밥도 드시지 않고, 어젯밤엔 한숨도 자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알겠습니다. 탕을 준비해 주십시오. 본왕이 태후 마마를 돌보겠습니다.”“예!” 상궁이 사람을 보내 탕을 준비하도록 시켰다.태후는 증손자를 잃은 슬픔에 자신이 가장 예뻐하는 손자인 우문호도 반기지도 않았다.“유후궁이 왜 죽었는지 알아보았느냐? 누구냐! 그녀를 죽인 게!”우문호는 여기저기 깨진 물건들을 보고 태후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짐작했다.“상궁이 말하길 태후 마마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하던데, 일단 밥부터 드시지요. 사건의 정황은 다 드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문호는 태후의 옆에 앉아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지금 이 상황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느냐? 빨리 말하거라! 애간장이 타들
우문호의 말이 맞았다. 낳은 아이가 일찍 요절한다면 얼마나 면목이 없겠는가. 성 밖의 백성들은 오랜 기간 친왕비들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황실에 대가 끊겼다며 망조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 기왕비가 회왕에게 병이 옮았다는 것을 알고 유후궁이 얼마나 정성껏 왕비를 돌보았는가. 그녀의 자애로운 행동은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태후는 슬피 울며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소리쳤다.우문호는 흐느끼는 태후를 보고 그녀가 이 일을 잊는 데 한참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모든 일은 시간이 약이다.’그는 야윈 황조모의 등을 쓰다듬으며 탕을 조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했다.태후는 탕을 마신 후, 우문호를 보았다.“너도 혼인을 한지 일 년이나 됐는데, 왜 좋은 소식이 없는 거야?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후궁이라도 들여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일곱째도 후궁을 들인다고 하는데 너도 빨리 알아보거라.”황조모는 시종일관 가장 아끼는 손주인 우문호에게 기대를 걸었다. 물론 현비가 자신의 조카딸이고 그녀의 친정에 몇 년간 아무 일이 없었기에, 그녀는 늘 다섯째가 빨리 정권을 잡아서 친정을 부양하길 바랐다. 그러나 친왕들 모두 자신의 손자이기에 우문호를 예뻐하는 것을 겉으로 티 낼 수 없었다. 우문호는 태후의 입에서 후궁 얘기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후궁을 맞이하는 일은…… 손자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요즘 저희 내외도 사이가 좋으니…….”“입 다물 거라! 네 부인은 질투도 많고 속도 좁지 않느냐! 황후가 주최한 행사에서 후궁 목록을 마련해 줬더니 다른 친왕비들은 감사하다며 받아 갔는데, 네 부인만 보는 둥 마는 둥! 자기 눈에 차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더라! 그때 황후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느냐? 혼인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기 소식은 없고, 너도 이제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우문호가 원경릉을 언급하자 태후는 화가 치밀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총애를 받고 있으니 당연히 태후도 그녀를 예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태후
“초왕비하고는 잘 지내는 것이냐?” 태후가 의심의 눈초리로 우문호를 보았다.요즘 들어 초왕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소문이 부중에 자자하게 퍼졌다. 태후는 이 소문의 진위가 궁금했다.다섯째의 성질대로 라면 원경릉 쯤이야 겁낼 일도 아니겠지만, 태후는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됐다.“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여인 하나쯤 간수하지 못하겠습니까?”우문호가 웃었다.“그럼 됐다. 초왕비가 세자를 낳기만 하면 좋겠다. 정비(正妃)가 아들까지 낳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암요. 그렇죠!”우문호는 나갈 채비를 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태후에게 세뇌를 당할지도 모른다. 우문호가 나가려고 하자 태후는 말을 이어 그를 붙잡았다.“맞다! 네 부인이 여섯째의 병을 고쳤으니, 기왕비도 빨리 고치라고 해라.”우문호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태후가 저 말만은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랐었다.“왜? 하기 싫어?”태후가 차갑게 물었다.“그럴리가요. 다만 형수께서도 제 부인에게 부탁하지 않은 일을 다짜고짜 가서 치료할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이번 달에 그녀가 월경을 하지 않았습니다. 임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있으니 기다려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게 후궁 얘기도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정말이냐!” 태후는 원경릉이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에 기뻐하며“혹시 모르는 일이니 매사 주의하거라! 그리고 어의를 불러다가 진맥을 하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알겠습니다.” 태후의 잔소리에 우문호는 체념한 듯 대답했다.태후는 몇 마디 덕담을 덧붙이고는 그에게 어서 부인을 챙기러 가보라고 했다.그날 저녁. 초왕부.“아 참, 오늘 얼떨결에 태후 마마께 네가 임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어.”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탕을 마시다가 국물을 뿜을 뻔 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디를 봐서 임신을 했다는 거야?”“태후 마마께서 후궁을 들이라고 압력을 주시고,
우문호는 월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월경을 시작도 안 했는데 황조모에게 네가 임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니…… 이것 참 큰일이네.”옆에서 듣고 있던 녹주가 원경릉을 쳐다보았다.“아닌데, 왕비님 아직 월경 안 하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좀 기다려 봅시다. 두 달에 한 번 할 때도 있습니다.”“내가 월경을 시작했었어?”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우문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네가 시작을 했는지도 모르는 거야?”원경릉은 잠시 침묵하더니 “하다 안 하다 하니까, 몰랐을 수도 있지!”“하다가 안 하다가 한다고? 그게 가능해? 너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우문호가 물었다.“내가 뭘 숨긴다고 그래?” 원경릉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이었다.“유후궁에 관해서는 부황께 말씀 잘 드렸어?”“부황께서도 생각이 다 있으신 것 같아. 내 말에 아무런 답이 없으셨어.” 우문호가 답했다.원경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황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니 우린 이만 손 떼자.”라고 말했다.그녀는 다바오를 보더니 “다바오! 우리 산책 가자!”라고 말했다.다바오가 신나서 뛰어왔다. 원경릉은 녹주를 보고 “녹주야 너도 같이 가야겠다.”라고 말했다.녹주는 원경릉을 따라 마당으로 나왔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녹주에게 물었다.“맞다 녹주야. 나 월경 말이야…… 세 달에 한 번 할 때도 있지?”“왕비께서는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녹주가 의아해서 물었다.“알지!” 원경릉은 손을 흔들며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럼 너는 한 달에 한 번 하느냐?”그녀는 자연스럽게 당대 여인들의 평균 월경 기간을 물었다.“그렇죠. 한 달에 한 번씩.” 녹주가 대답했다.원경릉은 원주가 월경 불순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왕비님 어의를 신청해서 진찰을 받는 건 어떠십니까? 녹주가 물었다. 부중에 친왕비들이 임신을 하기 위해 산전준비에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괜히 녹
“즐거워? 매일 너와 다바오랑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구나. 아들과 놀아주는 연습이라고 생각해야겠다.”‘또 아들!’원경릉은 이 주제에 대한 대화는 피하고 싶었다.이 시대의 여인은 혼인 후 일 년 내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황실 다른 이들이 임신을 재촉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가 계속 구시렁거리며 압박을 하다니!원경릉은 마음이 복잡했다.다음날, 원경릉은 노마님을 뵈러 친정에 갔다. 매번 그녀는 정후부에 사람이 가장 없는 틈을 타서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난씨와 둘째 노마님이 그녀를 살뜰히 챙기며 점심까지 차려주었다.노마님의 병세는 여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원경릉은 단박에 노마님이 약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고, 손씨 아주머니에게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자 아주머니는 많이 남았다며 보여주었다. “조모!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약을 잘 먹야 한다고요!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으십니까?”“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하늘이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면 약을 먹어도 데리고 갈 것이야. 만약 나를 데리고 갈 마음이 없다면, 약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입니까?” 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렸다.“늙은이는 신경 쓰지 말고, 네 얘기나 해보자. 왕야와 잘 지내는 것이냐?”노마님이 물었다.“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원경릉이 어리둥절했다.옆에 서있던 손씨 아주머니가 웃으며 원경릉을 보았다.“황제께서 아들을 낳은 친왕을 태자로 책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노마님께서는 언제 손주를 안아 볼 수 있는지 궁금하신 모양입니다.”어딜 가나 임신! 출산! ! 원경릉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조모, 그것도 다 하늘의 뜻입니다! 안 그래도 그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습니다. 미치겠어요!”원경릉이 분노했다.“내가 묻지 않으면, 네 아비가 물을 것이야. 요즘 네 아비가 너를 찾아 왕부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거든.” 노마님이 담담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깜짝 놀라 “저 이만 가볼게요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
택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마도 아닐 것이오. 아마 금나라 어린 황제가 보낸 사람일 것이오.”“그가 어찌 마마를 찾는 것입니까?”주 아가씨는 몹시 놀랐다. 금나라는 늘 진국왕이 주도하고 있어, 그 어린 황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소.”그 어린 황제가 왜 갑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지 택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 알아본 바로는 자기가 죽은 줄 알고, 어빙술을 사용해 진국왕을 공격했다고 했기에, 택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들이 다섯째를 어찌 찾는 것인지 알아보시오.”“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 먼저 들어가서 쉬시지요. 오시느라 고되었을 것입니다.”주 아가씨는 밖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힐끗 보더니 바로 알아차리곤 말했다.“저분이 바로 서 대인입니까? 그가 마마를 호위한 것입니까?”“맞소. 서일 삼촌이네. 거처를 마련하여 머물게 해주시게.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누군가가 나를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하오. 이틀 후, 이곳을 떠나게 할 것이오.”서일은 입이 무거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가 금나라 어린 황제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북당 전체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나라의 어린 황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이를 알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었다.주 아가씨가 호명에게 가서 서일을 잘 안배하라는 공주의 명을 전하자, 호명이 웃으며 말했다.“서 대인께서 오셨군요. 제가 술을 준비하여 잘 대접해야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제게 맡기십시오.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을 보내 약도성에서 가장 좋은 술을 사 오게 하고는, 일단 서일을 취하게 하기로 계획했다.서일은 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강북부에 도착해 황자들과 헤어지자마자 특별히 택란을 약도성까지 데려다주었다. 택란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약도성의 상황을 살폈다.처음에 그는 거처에 정착한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
목여 태감은 필요에 대한 결핍을 느꼈다.사실 우문호는 그가 힘들까 봐 걱정되어 그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태상황을 그렇게 오랜 세월 모셨으니 그의 노고가 매우 컸고, 그가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계속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한가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무공도 뛰어난 데다 신체 능력도 젊은이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를 쉬게 하면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현재 어서방이든 소월궁이든, 그가 비록 그곳에 있긴 했지만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할 때 그를 시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매번 그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 했다. 어쩌면 우문호가 그를 늙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태감!” 원경릉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께서 요즘 늦게 주무시고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셨네. 몸에 열이 많은 것 같은데, 태감이 보기에 어의를 불러 몇 해열탕을 몇 첩 지어야 할 것 같소?”목여 태감은 긴장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열이 오르셨다고요? 그렇다면 어의를 불러 맥을 짚어 봐야 합니다.”“맥을 짚을 필요는 없네. 내가 보아하니 열이 오른 것 같네. 태감이 약 몇 첩을 지어 잘 달인 뒤 어서방으로 보내 주시게.” 목여 태감이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인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아주 바빠 보였다. 다시 활력이 생긴 것 같았다.원경릉은 몇 자 적고는 녹주를 시켜 어서방으로 보내 우문호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의정 논의가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 들여보냈고, 그의 공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녹주는 쪽지를 받아 어서방 밖에서 기다리다가, 잠시 틈이 생기자 어전 시위에게 전달하며 황제께 전해 드리라고 했다. 이어서 황후 마마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덧붙였다.우문호는 오늘 대신들과 아주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가 이전에 발탁했던 한
원경릉은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잘 생각 하셨소, 내 사람을 시켜 전골을 내오라 하겠소.”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큰 행운은 그녀를 만난 것이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가슴 벅찼다.그는 그저 아톰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만약 아톰의 마음속에 일곱째 아가씨가 없다면, 아톰이 평생 장가를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마디 잔소리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는 안타까웠다.둘은 전골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최근 공무가 바빠 식사 후에 보고를 가져와 검토하였고 원경릉은 옆에서 그를 보필하며 이따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밤은 고요했지만 아주 평화로웠다.보고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자시가 되어 있었다. 목여 태감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와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재촉했었다.우문호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원 선생이 그 때문에 밤을 새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그에게 며칠 후에 어딘가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양여혜가 이끄는 다른 팀의 신약 데이터도 살펴보고, 추 상궁의 피를 조금 뽑고 돌아가 검사해서 약의 억제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돌아와 조정을 해야 했다.“얼마나 가 있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일주일 정도. 나도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소. 추 상궁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오.” 원경릉이 답했다.“그럼 좋소. 내 경호까지 바래다 드리겠소.”“필요 없소.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롭지 않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알겠소. 아이들도 가고, 냉정언이랑 홍엽도 떠나고, 서일도 가고, 탕양도 가고, 이제 당신까지 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