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후궁이 된 원용의와 기왕 후궁의 죽음원경릉 생각에 여자 아이가 우문호를 피해 숨는 건 정말 우문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일 가능성도 있다. 소녀의 수줍음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원경릉이: “널 좋아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일부러 너를 피해 숨는 거? 원용의는 수줍음을 많이 타 더라고.”“부끄럽다고?” 우문호가 하하 웃으며, “네가 부끄럽다고 하면 내가 믿겠는데, 용의가 부끄럽다는 건 절대로 못 믿어. 그 기지배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파락호라고.”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우리가 말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닌 게 분명해. 오늘밤 내가 본 용의는 완전히 애교 있고 수줍음을 타는 얼굴에, 비록 빤히 나를 쳐다보긴 했지만 내가 자기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뒤로 숨더라.”우문호도 의아해하며: “그럼 분명 같은 사람이 아닐 거야. 용의 기지배는 절대 부끄러워할 리가 없거든. 남자보다 간이 큰 녀석이야.”“그럼 너는 왜 용의가 널 무서워한다고 해?”우문호가 지난 일을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그때는 용의가 처음 입궁할 때로 고작 대여섯 살이었을 거야. 원부인이 그녀를 데리고 궁에 와서 황조모께 안부 인사를 드리고 당시 나도 고작 열한두살이라 놀기 좋아했지. 어화원에 작은 뱀이 한 마리 있었는데 내가 잡아서 놀다 보니 재미나서 황조모께 가져다 드리고 싶지 뭐야.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뱀을 놓치는 바람에 그 뱀이 용의 지지배 치마속에 들어갔지. 놀란 용의는 주저앉아 울었지. 그때 이후로 용의 인생에 제일 두려운 게 바로 뱀이랑 나야.”우문호는 위대한 업적이라도 말하듯이 아주 기고만장하다.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꼬마 여자애나 울리고, 아주 영웅 나셨네.”우문호는 마음이 홀가분해 졌다. 만약 용의 지지배면 절대로 자기에게 시집올 리 없기 때문이다.며칠 지나 우문호는 룰루랄라 궁에서 돌아와 원경릉을 끌고 소월각으로 갔다.“일곱째의 후궁이 결정됐어.” 우문호가 흥분해서 말했다.“누구로?” 원경릉이 자기도 모르게 물어봤다.“바로
기왕은 슬퍼했다. 그는 붉은 눈으로 방 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문호는 처참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기왕의 모습을 보고 그가 유후궁(劉側妃)에 대한 마음이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문호는 앞으로 나가 앉았다. “형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기왕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돌려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왔구나!”“응, 부황께서 와보라고 하셨습니다.”그는 사건 조사하러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우문호가 말하지 않아도 기왕은 우문호가 온 목적을 알고 있었다. 기왕은 몸을 곧게 펴고 앉아 표정을 가다듬었다.“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다른 부중 사람들에게는 다 물어봤잖아.”“형수님을 빼고는 다 물어봤습니다.”우문호가 답했다.기왕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담담하게 “네 형수는 몸이 안 좋아서 부중의 일은 하나도 몰라. 그녀에게 물어봐도 소용없을 거야.”라고 말했다.“후궁의 시녀가 말하길, 후궁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부친으로부터 황량한 생활을 견딜 수 없어 형님에게 부황께 사정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우문호가 말했다.기왕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지만 본왕은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어. 그녀의 부친이 죄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는 그런 부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지”“형님께서 당부를 하셨다고요?”기왕은 수심에 잠긴 채 괴로워했다. “본왕이 너무 모진 말을 해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아…….”“형님께서는 자결했다고 보십니까?” 우문호가 물었다.기왕은 우문호를 보며 “자결이 아니면? 타살이라는 말이냐?”라고 물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조사해 보거라.” 기왕은 지친 모습으로 손을 저었다.“이 사건 외에 혹시 후궁에게 혹시 다른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기왕은 차갑게 웃으며 “무슨 안 좋은 일? 그녀가 본왕의 아이를 임신했지 않는가? 아들만 잘 낳으면 평생 귀한 대접을 받으면 잘 살았을 텐
기왕비는 기침이 심할 뿐 병세는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 때문인지 얼굴이 노랗고, 전보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후궁의 소식을 듣고 울어서 그런지 그녀의 눈은 붉게 부어있었다.우문호를 보자마자 그녀는 목이 멨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타살입니까? 아니면 자결이라는 말입니까? 아이까지 가진 그녀가 자결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저도 안전하지 않은 거죠?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겁니까?”우문호는 눈물을 글썽이며 오열하는 기왕비를 보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형수, 유후궁(劉側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입니까?”기왕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그저께 그녀가 약을 가지고 왔을 때입니다. 당시에 난 그녀가 임신한 줄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오라 고도 하지 않았을 텐데, 유후궁도 참 어리석지, 임신까지 해놓고 뭐 하러 여길 와서는…….”“후궁이 언제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우문호가 물었다.“그저께 시녀가 와서 유후궁이 몸이 불편하고 속이 메스껍다고 어의를 불러 진맥을 했다고 했습니다.”“그때 형수님께 임신 소식을 알렸습니까?”기왕비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그때 제게도 보고를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몸에 좋다는 것도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고 어의에게도 후궁과 아이를 잘 돌보라고 당부했습니다.”우문호는 포도대장을 바라보았다.“예. 소인이 조사를 해보니 후궁이 임신했다는 것을 안 후, 기왕비께서 물건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저께라고 하니, 날짜도 맞습니다.”“음, 그럼 더 물을 게 없네요. 형수님 편히 쉬십시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다섯째 조심히 가세요. 제가 몸이 이래서 나가보지는 못할 것 같네요.”기왕비는 슬픈 목소리로 우문호에게 말했다.관아로 돌아온 포도대장이 우문호에게 “왕야, 소인이 순찰을 하고 있는데, 유후궁을 모시던 상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왕비께서 후궁에게 유대감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합니다. 후궁이
우문호는 왕부로 돌아와 원경릉과 이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그의 말을 들은 원경릉은 탄식했다.“내가 유후궁을 본 적은 없어 어떤 여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신까지 한 마당에 자결 하다니……. 아마 기왕비의 손바닥 안에서 살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네.”“관아에서 이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난 기왕비가 유후궁의 부친을 들먹이며 그녀를 위협했다고 생각해.”“그럼 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거야?”원경릉이 물었다.“별수 있나? 부중에서 발생한 사람이 죽은 사건, 더욱이 자결 사건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을까? 틀림없이 내일이면 유후궁이 호수로 뛰어드는 것을 봤다는 사람이 나올 거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며 구할 겨를이 없었다고 얼버무리겠지. 사건의 면모를 알고 있는 기왕이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겠지.”원경릉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유후궁이 정말 자결한 것이라면 궁 안의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원경릉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후궁의 고뇌와 슬픔이 느껴졌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신의 손으로 죽음의 문을 열었을까.“맞다!” 우문호는 갑자기 기왕비의 병이 생각났다.“본왕이 오늘 기왕비를 보러 갔는데, 얼굴이 엄청 노랗고 기침을 계속하더라고, 폐렴에 걸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당시 여섯째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글쎄, 면역력은 개인차가 있으니…….”“기왕비를 치료할 거야?”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서서 치료할 필요는 없지. 난 그저 약 상자의 명령을 따를 뿐이야.”성문 사건이 터지기 전에 약 상자는 회왕의 약으로 가득했지만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는 구급약과 외상 약이 가득했다.“너의 약 상자에는 분명 귀신이 살고 있을 거야.” 우문호가 말했다.“내 생각도 그래.”우문호가 씩 웃었다.약 상자 얘기가 나온 김에 그녀는 약 상자를 꺼내 내부를 보았다. “어? 이게 웬일이야?” 원경릉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약 상자 안에는 엽
소식을 들은 우문호가 왕부로 돌아와 원경릉을 찾았다.“도대체 임산부가 무슨 이유로 호수로 뛰어들겠어?”“기왕비에게 위협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잖아?”“왜 그랬는지 부황에게 말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유후궁이 임신한 몸으로 자살했으니, 그녀의 집안이 온전치 못할 거야. 유후궁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어.”원경릉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부황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말해주었다.우문호가 입궁하여 사건의 정황을 보고하자 명원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태후를 찾아가라고 했다.태후는 이번 일에 상심이 컸다.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새 생명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손왕비와 기왕비가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여자아이였고, 셋째인 우문위(宇文蔚)의 본처 최씨가 작년에 임신을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6개월 만에 유산되었다. 왕비는 그 충격으로 아직도 요양을 하고 있었다.태후는 유후궁의 임신에 기뻐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못했다. 우문호가 도착했을 때, 태후는 보이는 족족 물건을 던지고 있었다. 안에 있던 상궁과 시녀들이 우문호가 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왕야, 서둘러 들어가 태후 마마를 돌봐주십시오. 밥도 드시지 않고, 어젯밤엔 한숨도 자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알겠습니다. 탕을 준비해 주십시오. 본왕이 태후 마마를 돌보겠습니다.”“예!” 상궁이 사람을 보내 탕을 준비하도록 시켰다.태후는 증손자를 잃은 슬픔에 자신이 가장 예뻐하는 손자인 우문호도 반기지도 않았다.“유후궁이 왜 죽었는지 알아보았느냐? 누구냐! 그녀를 죽인 게!”우문호는 여기저기 깨진 물건들을 보고 태후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짐작했다.“상궁이 말하길 태후 마마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하던데, 일단 밥부터 드시지요. 사건의 정황은 다 드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문호는 태후의 옆에 앉아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지금 이 상황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느냐? 빨리 말하거라! 애간장이 타들
우문호의 말이 맞았다. 낳은 아이가 일찍 요절한다면 얼마나 면목이 없겠는가. 성 밖의 백성들은 오랜 기간 친왕비들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황실에 대가 끊겼다며 망조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 기왕비가 회왕에게 병이 옮았다는 것을 알고 유후궁이 얼마나 정성껏 왕비를 돌보았는가. 그녀의 자애로운 행동은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태후는 슬피 울며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소리쳤다.우문호는 흐느끼는 태후를 보고 그녀가 이 일을 잊는 데 한참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모든 일은 시간이 약이다.’그는 야윈 황조모의 등을 쓰다듬으며 탕을 조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했다.태후는 탕을 마신 후, 우문호를 보았다.“너도 혼인을 한지 일 년이나 됐는데, 왜 좋은 소식이 없는 거야?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후궁이라도 들여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일곱째도 후궁을 들인다고 하는데 너도 빨리 알아보거라.”황조모는 시종일관 가장 아끼는 손주인 우문호에게 기대를 걸었다. 물론 현비가 자신의 조카딸이고 그녀의 친정에 몇 년간 아무 일이 없었기에, 그녀는 늘 다섯째가 빨리 정권을 잡아서 친정을 부양하길 바랐다. 그러나 친왕들 모두 자신의 손자이기에 우문호를 예뻐하는 것을 겉으로 티 낼 수 없었다. 우문호는 태후의 입에서 후궁 얘기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후궁을 맞이하는 일은…… 손자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요즘 저희 내외도 사이가 좋으니…….”“입 다물 거라! 네 부인은 질투도 많고 속도 좁지 않느냐! 황후가 주최한 행사에서 후궁 목록을 마련해 줬더니 다른 친왕비들은 감사하다며 받아 갔는데, 네 부인만 보는 둥 마는 둥! 자기 눈에 차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더라! 그때 황후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느냐? 혼인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기 소식은 없고, 너도 이제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우문호가 원경릉을 언급하자 태후는 화가 치밀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총애를 받고 있으니 당연히 태후도 그녀를 예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태후
“초왕비하고는 잘 지내는 것이냐?” 태후가 의심의 눈초리로 우문호를 보았다.요즘 들어 초왕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소문이 부중에 자자하게 퍼졌다. 태후는 이 소문의 진위가 궁금했다.다섯째의 성질대로 라면 원경릉 쯤이야 겁낼 일도 아니겠지만, 태후는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됐다.“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여인 하나쯤 간수하지 못하겠습니까?”우문호가 웃었다.“그럼 됐다. 초왕비가 세자를 낳기만 하면 좋겠다. 정비(正妃)가 아들까지 낳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암요. 그렇죠!”우문호는 나갈 채비를 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태후에게 세뇌를 당할지도 모른다. 우문호가 나가려고 하자 태후는 말을 이어 그를 붙잡았다.“맞다! 네 부인이 여섯째의 병을 고쳤으니, 기왕비도 빨리 고치라고 해라.”우문호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태후가 저 말만은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랐었다.“왜? 하기 싫어?”태후가 차갑게 물었다.“그럴리가요. 다만 형수께서도 제 부인에게 부탁하지 않은 일을 다짜고짜 가서 치료할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이번 달에 그녀가 월경을 하지 않았습니다. 임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있으니 기다려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게 후궁 얘기도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정말이냐!” 태후는 원경릉이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에 기뻐하며“혹시 모르는 일이니 매사 주의하거라! 그리고 어의를 불러다가 진맥을 하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알겠습니다.” 태후의 잔소리에 우문호는 체념한 듯 대답했다.태후는 몇 마디 덕담을 덧붙이고는 그에게 어서 부인을 챙기러 가보라고 했다.그날 저녁. 초왕부.“아 참, 오늘 얼떨결에 태후 마마께 네가 임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어.”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탕을 마시다가 국물을 뿜을 뻔 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디를 봐서 임신을 했다는 거야?”“태후 마마께서 후궁을 들이라고 압력을 주시고,
우문호는 월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월경을 시작도 안 했는데 황조모에게 네가 임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니…… 이것 참 큰일이네.”옆에서 듣고 있던 녹주가 원경릉을 쳐다보았다.“아닌데, 왕비님 아직 월경 안 하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좀 기다려 봅시다. 두 달에 한 번 할 때도 있습니다.”“내가 월경을 시작했었어?”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우문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네가 시작을 했는지도 모르는 거야?”원경릉은 잠시 침묵하더니 “하다 안 하다 하니까, 몰랐을 수도 있지!”“하다가 안 하다가 한다고? 그게 가능해? 너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우문호가 물었다.“내가 뭘 숨긴다고 그래?” 원경릉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이었다.“유후궁에 관해서는 부황께 말씀 잘 드렸어?”“부황께서도 생각이 다 있으신 것 같아. 내 말에 아무런 답이 없으셨어.” 우문호가 답했다.원경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황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니 우린 이만 손 떼자.”라고 말했다.그녀는 다바오를 보더니 “다바오! 우리 산책 가자!”라고 말했다.다바오가 신나서 뛰어왔다. 원경릉은 녹주를 보고 “녹주야 너도 같이 가야겠다.”라고 말했다.녹주는 원경릉을 따라 마당으로 나왔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녹주에게 물었다.“맞다 녹주야. 나 월경 말이야…… 세 달에 한 번 할 때도 있지?”“왕비께서는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녹주가 의아해서 물었다.“알지!” 원경릉은 손을 흔들며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럼 너는 한 달에 한 번 하느냐?”그녀는 자연스럽게 당대 여인들의 평균 월경 기간을 물었다.“그렇죠. 한 달에 한 번씩.” 녹주가 대답했다.원경릉은 원주가 월경 불순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왕비님 어의를 신청해서 진찰을 받는 건 어떠십니까? 녹주가 물었다. 부중에 친왕비들이 임신을 하기 위해 산전준비에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괜히 녹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