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들은 우문호가 왕부로 돌아와 원경릉을 찾았다.“도대체 임산부가 무슨 이유로 호수로 뛰어들겠어?”“기왕비에게 위협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잖아?”“왜 그랬는지 부황에게 말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유후궁이 임신한 몸으로 자살했으니, 그녀의 집안이 온전치 못할 거야. 유후궁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어.”원경릉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부황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말해주었다.우문호가 입궁하여 사건의 정황을 보고하자 명원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태후를 찾아가라고 했다.태후는 이번 일에 상심이 컸다.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새 생명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손왕비와 기왕비가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여자아이였고, 셋째인 우문위(宇文蔚)의 본처 최씨가 작년에 임신을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6개월 만에 유산되었다. 왕비는 그 충격으로 아직도 요양을 하고 있었다.태후는 유후궁의 임신에 기뻐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못했다. 우문호가 도착했을 때, 태후는 보이는 족족 물건을 던지고 있었다. 안에 있던 상궁과 시녀들이 우문호가 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왕야, 서둘러 들어가 태후 마마를 돌봐주십시오. 밥도 드시지 않고, 어젯밤엔 한숨도 자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알겠습니다. 탕을 준비해 주십시오. 본왕이 태후 마마를 돌보겠습니다.”“예!” 상궁이 사람을 보내 탕을 준비하도록 시켰다.태후는 증손자를 잃은 슬픔에 자신이 가장 예뻐하는 손자인 우문호도 반기지도 않았다.“유후궁이 왜 죽었는지 알아보았느냐? 누구냐! 그녀를 죽인 게!”우문호는 여기저기 깨진 물건들을 보고 태후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짐작했다.“상궁이 말하길 태후 마마께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하던데, 일단 밥부터 드시지요. 사건의 정황은 다 드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문호는 태후의 옆에 앉아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지금 이 상황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느냐? 빨리 말하거라! 애간장이 타들
우문호의 말이 맞았다. 낳은 아이가 일찍 요절한다면 얼마나 면목이 없겠는가. 성 밖의 백성들은 오랜 기간 친왕비들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황실에 대가 끊겼다며 망조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 기왕비가 회왕에게 병이 옮았다는 것을 알고 유후궁이 얼마나 정성껏 왕비를 돌보았는가. 그녀의 자애로운 행동은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태후는 슬피 울며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소리쳤다.우문호는 흐느끼는 태후를 보고 그녀가 이 일을 잊는 데 한참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모든 일은 시간이 약이다.’그는 야윈 황조모의 등을 쓰다듬으며 탕을 조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했다.태후는 탕을 마신 후, 우문호를 보았다.“너도 혼인을 한지 일 년이나 됐는데, 왜 좋은 소식이 없는 거야?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후궁이라도 들여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일곱째도 후궁을 들인다고 하는데 너도 빨리 알아보거라.”황조모는 시종일관 가장 아끼는 손주인 우문호에게 기대를 걸었다. 물론 현비가 자신의 조카딸이고 그녀의 친정에 몇 년간 아무 일이 없었기에, 그녀는 늘 다섯째가 빨리 정권을 잡아서 친정을 부양하길 바랐다. 그러나 친왕들 모두 자신의 손자이기에 우문호를 예뻐하는 것을 겉으로 티 낼 수 없었다. 우문호는 태후의 입에서 후궁 얘기가 나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후궁을 맞이하는 일은…… 손자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요즘 저희 내외도 사이가 좋으니…….”“입 다물 거라! 네 부인은 질투도 많고 속도 좁지 않느냐! 황후가 주최한 행사에서 후궁 목록을 마련해 줬더니 다른 친왕비들은 감사하다며 받아 갔는데, 네 부인만 보는 둥 마는 둥! 자기 눈에 차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더라! 그때 황후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느냐? 혼인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기 소식은 없고, 너도 이제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우문호가 원경릉을 언급하자 태후는 화가 치밀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총애를 받고 있으니 당연히 태후도 그녀를 예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태후
“초왕비하고는 잘 지내는 것이냐?” 태후가 의심의 눈초리로 우문호를 보았다.요즘 들어 초왕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소문이 부중에 자자하게 퍼졌다. 태후는 이 소문의 진위가 궁금했다.다섯째의 성질대로 라면 원경릉 쯤이야 겁낼 일도 아니겠지만, 태후는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됐다.“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여인 하나쯤 간수하지 못하겠습니까?”우문호가 웃었다.“그럼 됐다. 초왕비가 세자를 낳기만 하면 좋겠다. 정비(正妃)가 아들까지 낳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암요. 그렇죠!”우문호는 나갈 채비를 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태후에게 세뇌를 당할지도 모른다. 우문호가 나가려고 하자 태후는 말을 이어 그를 붙잡았다.“맞다! 네 부인이 여섯째의 병을 고쳤으니, 기왕비도 빨리 고치라고 해라.”우문호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태후가 저 말만은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랐었다.“왜? 하기 싫어?”태후가 차갑게 물었다.“그럴리가요. 다만 형수께서도 제 부인에게 부탁하지 않은 일을 다짜고짜 가서 치료할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이번 달에 그녀가 월경을 하지 않았습니다. 임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있으니 기다려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가 신경 쓰지 않게 후궁 얘기도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정말이냐!” 태후는 원경릉이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에 기뻐하며“혹시 모르는 일이니 매사 주의하거라! 그리고 어의를 불러다가 진맥을 하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알겠습니다.” 태후의 잔소리에 우문호는 체념한 듯 대답했다.태후는 몇 마디 덕담을 덧붙이고는 그에게 어서 부인을 챙기러 가보라고 했다.그날 저녁. 초왕부.“아 참, 오늘 얼떨결에 태후 마마께 네가 임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어.”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탕을 마시다가 국물을 뿜을 뻔 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디를 봐서 임신을 했다는 거야?”“태후 마마께서 후궁을 들이라고 압력을 주시고,
우문호는 월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월경을 시작도 안 했는데 황조모에게 네가 임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니…… 이것 참 큰일이네.”옆에서 듣고 있던 녹주가 원경릉을 쳐다보았다.“아닌데, 왕비님 아직 월경 안 하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좀 기다려 봅시다. 두 달에 한 번 할 때도 있습니다.”“내가 월경을 시작했었어?”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우문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네가 시작을 했는지도 모르는 거야?”원경릉은 잠시 침묵하더니 “하다 안 하다 하니까, 몰랐을 수도 있지!”“하다가 안 하다가 한다고? 그게 가능해? 너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우문호가 물었다.“내가 뭘 숨긴다고 그래?” 원경릉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이었다.“유후궁에 관해서는 부황께 말씀 잘 드렸어?”“부황께서도 생각이 다 있으신 것 같아. 내 말에 아무런 답이 없으셨어.” 우문호가 답했다.원경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황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니 우린 이만 손 떼자.”라고 말했다.그녀는 다바오를 보더니 “다바오! 우리 산책 가자!”라고 말했다.다바오가 신나서 뛰어왔다. 원경릉은 녹주를 보고 “녹주야 너도 같이 가야겠다.”라고 말했다.녹주는 원경릉을 따라 마당으로 나왔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녹주에게 물었다.“맞다 녹주야. 나 월경 말이야…… 세 달에 한 번 할 때도 있지?”“왕비께서는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녹주가 의아해서 물었다.“알지!” 원경릉은 손을 흔들며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럼 너는 한 달에 한 번 하느냐?”그녀는 자연스럽게 당대 여인들의 평균 월경 기간을 물었다.“그렇죠. 한 달에 한 번씩.” 녹주가 대답했다.원경릉은 원주가 월경 불순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왕비님 어의를 신청해서 진찰을 받는 건 어떠십니까? 녹주가 물었다. 부중에 친왕비들이 임신을 하기 위해 산전준비에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괜히 녹
“즐거워? 매일 너와 다바오랑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구나. 아들과 놀아주는 연습이라고 생각해야겠다.”‘또 아들!’원경릉은 이 주제에 대한 대화는 피하고 싶었다.이 시대의 여인은 혼인 후 일 년 내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황실 다른 이들이 임신을 재촉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가 계속 구시렁거리며 압박을 하다니!원경릉은 마음이 복잡했다.다음날, 원경릉은 노마님을 뵈러 친정에 갔다. 매번 그녀는 정후부에 사람이 가장 없는 틈을 타서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난씨와 둘째 노마님이 그녀를 살뜰히 챙기며 점심까지 차려주었다.노마님의 병세는 여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원경릉은 단박에 노마님이 약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고, 손씨 아주머니에게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자 아주머니는 많이 남았다며 보여주었다. “조모!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약을 잘 먹야 한다고요!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으십니까?”“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하늘이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면 약을 먹어도 데리고 갈 것이야. 만약 나를 데리고 갈 마음이 없다면, 약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입니까?” 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렸다.“늙은이는 신경 쓰지 말고, 네 얘기나 해보자. 왕야와 잘 지내는 것이냐?”노마님이 물었다.“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원경릉이 어리둥절했다.옆에 서있던 손씨 아주머니가 웃으며 원경릉을 보았다.“황제께서 아들을 낳은 친왕을 태자로 책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노마님께서는 언제 손주를 안아 볼 수 있는지 궁금하신 모양입니다.”어딜 가나 임신! 출산! ! 원경릉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조모, 그것도 다 하늘의 뜻입니다! 안 그래도 그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습니다. 미치겠어요!”원경릉이 분노했다.“내가 묻지 않으면, 네 아비가 물을 것이야. 요즘 네 아비가 너를 찾아 왕부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거든.” 노마님이 담담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깜짝 놀라 “저 이만 가볼게요
정후부 문을 나서자 원경릉이 원경병을 붙잡았다.“어찌 된 일이야? 혼인에 노력을 안 한다니?”침울한 표정의 원경병이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마세요. 신랑감이라고 데리고 오는 작자들이 다 아버지 뻘이라고요! 괜찮다 싶으면 첩자리 입니다.”원경릉은 정후부의 원팔룡이 악명 높은 투기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득을 보기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다.특히 딸을 시집보내면 큰 수확을 하게 되니 그는 머리를 굴려 가장 큰 이익이 되는 곳을 찾아다녔다. 젊고 문벌이 높은 사내는 후작을 업신여겼고, 문벌이 낮은 사내는 자신의 신분이 부끄럽다고 여겼다. 결국 남은 것은 안정적인 직업의 좋은 집안 출신인 나이 많은 남자들이었다. 그는 비록 첩자리로 들어가는 거지만, 나이 많은 본처가 죽기만 하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원경병의 말을 들은 그녀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네 혼사는 내가 좀 알아볼게.”“응.” 원경병은 언니에게 딱히 기대하지 않는 듯 대충 대답했다.초왕부로 돌아온 원경릉은 지나가는 희상궁을 붙잡고 물었다.“왕비님께서 주선한 사내가 부친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딸은 이익이 맞으면 팔아버리는 것이니 괜한 신경 쓰지 마세요.” 희상궁이 신랄하게 말했다.‘이 시대에서 한 번 혼인을 하면, 이혼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쭉 살아야 하는데! 여자에게 너무 가혹하다!’원주인 원경릉도 가혹한 예의 하나였다. 때문에 원경병의 혼사는 원경릉에게 꽤 중요한 일이었다.저녁에 우문호가 왕부로 들어오자 그녀는 우문호에게 물었다.“혹시 주변에 겸손하고 똑똑한 미혼 남자 있어?”우문호는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그걸 알아서 뭐 하게? 기억해, 너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야.”“아니! 나 말고, 네 처제!” 우문호의 경계하는 눈빛에 원경릉은 웃음이 터졌다.“처제? 아 그 병풍이?” 우문호는 사내대장부 같은 처제가 생각이 났다.“병풍이라니? 경병이라고 불러!” 원경릉은 그를 노려보
“처제가 구사한테 뭐라고 했는데? 설마 아픈 곳을 건드리는 말은 한건 아니지?” 우문호가 물었다.“어디 있어요? 이렇게 한 마디 물었을 뿐이야. 근데 구사가 본 체도 안 하고 그냥 가더라니까.”그녀가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구사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됐다 내가 한번 물색 해볼게.”“가문보다는 인품이 중요해. 너처럼 가정폭력 하는 남자는 안돼.”원경릉이 신신당부했다.우문호는 얼굴이 붉어졌다.“누가 폭력을 써? 내가 언제 그랬어?”가정폭력이라는 단어부터가 부정적이다. 원경릉은 이 단어를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이미 너는 새사람이 됐잖아. 옛날에 비하면 완전 환골탈태했지.”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는 조소를 띠며 “환골탈태를 누가 했는지 모르겠네. 너야말로 새사람이 됐지. 혹시 몰라…… 진짜 다른 사람일 수도? 곤장 맞은 상처만 없었으면 나도 의심했겠어.”라고 말했다.“정말?” 원경릉이 배를 잡고 웃었다.우문호는 방정맞게 웃는 그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암탉처럼 웃어젖힐 때마다 찜찜하단 말이야…….”원경릉이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을 닦으며 “암탉은 너지.”라고 말했다.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는 사실 네가 약 상자에 대해서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의학에 문외한이던 네가 갑자기 어의보다 뛰어난 의술을 가지게 되다니, 내가 네 약 상자의 약들을 빻아서 어의에게 보여주니 어의도 이런 건 처음 본다며 모르겠다고 하던데.”“뭐야? 내 뒷조사라도 한 거야?” 원경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봐야지.” 우문호가 떳떳하다는 듯 말했다.“그럼 자금단과 자금탕의 원리를 설명해 봐. 생사의 갈림길에서 왜 그걸 먹으면 살아날 수 있는 거지?”“자금단은 수십 종의 귀한 약재를 정제해 만들었기에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거야.”“너 내가 한의학 약리(藥理)를 모른다고 속이려고 하나 본데, 그 수십 가지 귀한 약들은 약성이 모두 같은 거야? 왜 내외상만 치료할 수 있고, 가지고 있
원경릉은 자시가 되도록 우문호가 돌아오지 않자 침상에 누워 엎치락뒤치락 하며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녹주를 불러 그가 언제쯤 돌아올지 알아보라고 했지만, 녹주도 소식이 없다며 어깨를 으쓱했다.‘혹시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건가?’보통 큰 사건이 벌어지면 관아에서 늦게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그때마다 우문호는 그녀가 걱정하지 않게 서일을 보내 늦는다고 알려주었는데 오늘은 서일도 오지 않았다.밖에서 ‘쿵쿵’하는 발걸음 소리가 나자 원경릉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그녀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녹주가 뛰어 들어오더니 “왕비님, 서일이 와서 아룁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피투성이가 된 서일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 녹주는 휘청거리는 그녀를 부축하며 “왕비님 괜찮으십니까?” 라고 물었다.“왕야는?” 원경릉이 마음을 다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서일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녀를 보았다.“일 났습니다! 왕야께서 돈을 많이 잃고, 화가 잔뜩 나셔서 물건을 집어 던지시는 걸 구사가 말리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왕야와 구사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둘이 집현국에서 치고받고 난리도 아닙니다! 소인이 말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라 왕비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일이 황상 귀에 들어가면 분명 크게 화를 내실 겁니다!”“마차를 준비하거라!”원경릉은 내심 우문호가 암살 사건에 휘말린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간까지 도박을 하다가 싸움을 한다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저번에도 구사랑 치고받고 하더니, 이 두 사람은 무슨 애증관계인지 둘이 애틋하다가도 이따금 죽기 살기로 싸운다. “서일. 어쩌다 피가 이렇게 많이 묻었습니까?” 서일이 피를 닦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아 이거요? 돼지 피입니다. 집현국에서 돼지를 잡았거든요. 싸우는데 상대 패거리가 저보고 미천한 신분이라며 돼지 피를 들이부었습니다.”‘패싸움? 한 국가의 친왕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서 도박을 하는 것도 모자라 패싸움을 하다니.’서일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