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왕비가 껄껄 웃으며 떠나는 게, 마치 2만 냥이 이미 수중에 들어온 듯했다.손왕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다시한번 굳게 결심했다. ‘이번은 반드시 모질게 마음먹어야지. 여섯째 제수씨 가산을 탕진하게 할 수는 없다.’한편, 미색은 경성 사람들이 손왕은 못 믿어도 황후의 식단은 신뢰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대부분 손왕이 진다는 쪽에 걸었다. 계산해 보니 사람들이 700만 냥을 손왕이 진다는데 걸었고, 이는 전체의 95%를 차지했다. 만약 손왕이 정말 살을 못 빼서 지면 미색은 1,400만 냥을 배상해야 하므로 정말 가신을 탕진하고 만다. 미색의 계산 실수였다. 아니, 늑대파 사람들의 꾐에 빠져서 홀랑 판을 키운 것으로 그들은 전부 손왕이 살을 빼지 못한다는 쪽에 걸어 버린 것이다.미색은 서둘러 혜민서에 가서 원경릉과 상의했다. 원경릉은 너무 놀라 소름이 돋았다. 미색 이것이 나이가 어려 멋모르고 방정을 떨더라니. 그래도 둘째 아주버님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줄 몰랐다.원경릉은 적어도 4:6이 아닐까 해서 본전을 손해 보더라고 그 정도면 크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판이 이렇게 커진 것을 보고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이고 맙소사, 어쩌자고 이렇게 큰 판을 만들었어?”“어떡하죠? 둘째 아주버님께서 정말 살 못 빼실까요?” 미색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원경릉은 손왕의 지난 수년간 다이어트 결과를 떠올리며 하는 수 없이 답했다. “응, 그럴 수도 있어..”미색이 울상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전 그냥 둘째 아주버님을 응원해 드리고 싶었던 건데 집안을 말아먹을 줄은 몰랐다고요!”원경릉이 미색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나랑 같이 책임을 지자. 난 돈이 많지 않으니 이리 나리께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고 최선을 다해 둘째 아주버님이 살을 빼시도록 도울 거야. 우리가 역전하기를 바라자.”미색이 감동해서 원경릉을 끌어안았다. “황후 마마는 정말 너무 좋은 분이세요. 마마께서 나서시면 이리 나리도 분명 수수방관하지는 못
원경릉은 매일 출궁해 손왕을 감독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손왕과 함께 달리도록 했다.손왕은 엄청난 판돈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마음을 굳건하게 먹었다.매일 원경릉의 식단대로 하는 건 별로 힘들지 않고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단지 전처럼 기름기가 듬뿍 있는 고기는 입도 댈 수 없어서 처음엔 몰래 한두 점 먹고 싶었지만, 수백만 냥 판돈을 다시금 떠올리며 꾹 참았다.홍려시 관리들 대부분은 손왕이 살을 못 뺀다는 것에 걸었는데, 모두 사악한 마음뿐이라 매일 관아에서 먹는 거로 손왕을 홀렸다. 모든 관리가 집에서 아내가 해 준 고기 요리와 과자를 가져와서 손왕 책상에 두기까지 했다. 손왕은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음식을 아깝게 여기는 손왕은 버리지 못하고 사촌 소형을 시켜 그 음식을 밖에 거지들에게 주게 했는데, 며칠 지나자 홍려시 문밖은 거지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사촌 소형이 음식을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그렇게 살 빼기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손왕은 이미 4kg나 넘게 뺐다. 여러 번 다이어트를 하며 이번이 제일 효과가 좋아서 손왕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그리고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하자 살을 빼고자 하는 의욕이 더 커지고 자신감도 강해져 더 빼고 싶어졌다. 거기에 만두와 아이들과 함게 매일 같이 달리고 황후도 매일 와서 용기를 북돋아 주니 더욱 의욕이 넘쳐났다. 손왕은 평생 이렇게 관심을 받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손왕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반드시 손 왕비가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다.그렇게 보름이 지났는데, 다이어트 정체기가 찾아오면서 체중은 떨어지지 않고 연속 사흘간 체중 변화가 없자 손왕은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맥이 빠졌다. 그러자 남들 듣기 좋은 말은 하지 못하는 홍엽 또한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손왕에게 같이 힘내자고 응원했다.전 황제도 사람을 보내 산에서 심은 잡곡을 보내주며 지켜보고 있으니, 자신과의 전투에 반드시 이기라고 했다.손왕은 순간 피가 끓어오르며 투지가 되살아났다. 계속 식단대로 식사하
살 빼는 것이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손왕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난제인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손왕이 사실 살 빼기를 결심한 그날부터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까지 견디고 이렇게나 많은 살을 빼니 자신이 봐도 불가사의했다.그저 살이 빠졌을 뿐인데 손왕은 마치 인생에서 새롭게 한 계단 올라선 기분이 들었고, 환희와 자신감은 이루다 설명할 수 없었다.다섯째가 보위에 오르고 책봉례를 치르고 수많은 경사가 줄지어 펼쳐질 때도 오직 손왕만 자신에게 회의적이었다. 평생 뭐든 해서 성공한 게 있기나 한가, 사람들이 모두 원만한데 유독 자신만 서글프고 자신만 의기소침하고 실망스러웠다.하지만 지금 손왕 스스로 성공을 쟁취했다.이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하는 소리가 귀에 익었다. “문 열어요, 저예요!”손왕의 왕비다. 여태껏 손왕을 무시하고 원망하던 왕비다.선왕은 심호흡하고 문을 열었다. 손 왕비가 밖에 서서 손에 지폐 묶음을 들고 웃고 있었다.손왕이 고개를 들었다. “돈을 잃었는데 웃음이 나와?”손 왕비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손왕을 한참 보더니 갑자기 손왕의 품에 뛰어들어 울먹였다. “아뇨, 이겼어요!”손왕이 당황해서 무의식적으로 손 왕비를 밀치려 했다. “누가 보면 민망하게…. 당신… 왜 그래? 내가 살을 못 뺀다는 것에 걸었던 거 아냐?”그러자 손 왕비가 두어 걸음 물러섰는데, 살짝 빨개진 얼굴과 눈물이 번진 눈으로 손왕을 한없이 바라봤다. “당신이 살을 뺀다는데 몰래 오만 냥 어치 샀어요. 어떻게 당신을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약 올리는 방법을 썼어요.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아내가 자신을 칭찬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손왕은 약간 당황했다. “나라에 공을 세우고 사업을 일으켜야 진정 대단한 거지, 난 그냥 살 뺀 거에 불과한데 대단할 게 뭐가 있어? 당신은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하잖아...”손 왕비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손왕의 품에 뛰어들어 다정하게 말했다. “전 당신이 나라에 공을 세우고 사업을 일으
원경릉은 돈을 벌어 혜민서에 투자해 할머니 전속 약재 실험실을 만들 생각이었다.아이들을 현대로 유학 보내기로 한 일도 슬슬 날을 잡아야 했다.우문호는 아쉬웠지만 아이들이 더욱 넓은 시야와 깊은 지식을 가질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었다. “령이가 아이를 낳으면 직접 애들을 데리고 가자. 그런데 애들 신분은 처리해 두었나?”“오빠가 이미 로양에게 부탁했으니 잘 처리해 뒀을 거야.”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손을 뻗어 원경릉의 볼을 만졌는데, 눈가엔 아버지의 자애로움이 번졌다. “어깨가 무겁겠지만 견문을 넓혀두면 앞으로 아이들이 맞닥뜨릴 각종 문제에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 우리도 아쉬워 말고 놔 줘야 해.”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알아, 난 서운하지 않아. 보고 싶으면 만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연말연시에는 돌아올 수 있고, 또 애들도 많이 가고 싶어 하니까. 애들이 즐거우면 된 거지.”우문호는 그래도 좀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던 때를 돌이켜 보니 마치 어제 같은데 갑자기 독립해서 자신을 떠나 공부하러 간다니 울적해졌다. 다행히 너무 사랑스러운 아기가 아직 곁에 있지만 말이다.2월 중 이리 저택에서 공주가 출산하려고 한다고 원경릉을 찾았다.원경릉은 얼른 약상자를 들고 출궁해 이리 저택에 갔는데 친왕비들도 전부 와서 시누이의 출산을 지키고 있었다. 출산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에 우문령 친정 사람이 와 현장을 장악하고 있어야 했다.우문령은 아침에 약간 복통이 시작돼서 산파가 진찰해 보더니 때가 됐다며 이리 나리에게 꼼짝 말고 우문령 곁을 지키라고 했다.줄곧 별거 아닌 척하던 이리 나리가 긴장하기 시작해 얼굴에 초조한 빛이 감돌더니 원경릉의 손을 잡고 정중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아내의 안전을 확보해 주셔야 합니다.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겠습니다.”“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원경릉이 이리 나리의 손을 두드리며 힘을 보태주었다. “제가 계속 시누이를 진찰해 왔는데 태아의
신시경이 되었는데 아직도 아무 변화가 없어 이리 나리는 미색과 요 부인에게 들어가 보라고 했다. 둘은 공주에게 힘을 북돋아 줬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기에 그들이 곁에 있으니 우문령은 안심이 됐다.그렇게 유시경이 되자, 자궁수축이 빈번해지면서 자궁문이 열려 드디어 낳을 수 있게 되었다.이리 나리는 밖에서 기다리며 종일 밥 한 숟가락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았다. 늑대파 사람도 이리 나리가 이렇게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같이 안절부절 했다.그런데 잠시 후 안풍 친왕비가 오고 나니 이리 나리의 긴장이 약간 풀어졌다.안풍 친왕비가 이리 나리 손을 꽉 잡고 조그맣게 말했다. “괜찮아, 황후가 있잖아. 그녀랑 같을 리 없어.”이리 나리 눈에 반짝하고 눈물이 빛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잠시 후 이리 나리가 중얼거렸다. “계속 주의하고 있었는데 잠시 소홀해서 제가 너무 많이 먹게 했어요…”“아무 일도 없을 거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안풍 친왕비가 꾸짖었다.이리 나리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안풍 친왕비의 손을 꽉 잡았다.안에서 우문령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문령은 여전히 힘든 소리를 내지 않았고 다시 진통이 와도 묵묵히 참고 견뎌냈다. 오히려 산파와 원경릉의 힘주라는 목소리만이 계속 들려왔다. 공주는 두 손으로 침대보를 움켜쥐고 입에 부드러운 천을 물었는데 잇몸에 피가 밸 정도로 꽉 물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초산이라 역시 좀 힘든 데다 태아가 꽤 컸다. 우문령 체질이 나쁘진 않았지만 곱게만 자란 공주로 출산 과정이 그녀에게는 모든 힘과 의지력을 다 소모하는 일이었다.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가슴이 아파졌고 아무것도 도울 수가 없는 상황에 괴로워했다.아기의 울음소리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처럼 모든 사람을 구했다. 아이가 나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우문령의 머리가 한쪽으로 푹하고 꼬꾸라졌는데 기절한 건지 아니면 잠든 건지 모를 정도였다. 원경릉이 놀라 산파에게 아이를 씻기게 한 뒤 자신은 얼른
원경릉은 아이를 안고 나가 안풍 친왕비에게 보여주었는데, 안풍 친왕비는 아이를 받아 안고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녀석한테 평생 자기 애는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잘됐네. 걔가 갈수록 사람 냄새가 난다니까! 근데 이 아이.. 정말 어렸을 때 이리율을 쏙 빼닮았네. 이리율은 어릴 때 너무 말랐지만.”원경릉이 왕비를 보고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이리 나리가 이번에 상당히 긴장해 보이던데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이 긴장하는 건 당연하지만, 제 생각에 이리 나리는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할 사람인데 이번엔 좀 심하게 긴장하더라고요. 이니 나리에게 무슨 사연이 있나요?”왕비가 원경릉을 보고 약간 감동했다. “정말 꼼꼼하게 관찰했네. 이리율에게 관심을 가져줬구나. 사실 이리율은 너란 제자를 자랑스러워하지. 넌 이리율이 평생 단 하나 보호해야 할 여자야.”“에?” 원경릉이 약간 당황했다. “첫 번째는 왕비 마마실걸요? 마마는 이리 나리의 사부님이시잖아요.”“이리율은 어릴 때부터 누구의 보호가 필요 없다는 걸 알았어.” 왕비는 살짝 자기 이마를 아가 이마에 대고 원경릉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포대기를 토닥였다. “이 아기는 복 받았네. 태평성대에 태어나 부모 출신은 존귀하지. 이 아이는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사랑하고 아낄 운명이야. 하늘의 사랑을 받은 아이니 이름을 이리천행이라 하자, 아이가 자라면 하늘의 도를 행해 백성을 보호하고 고통을 덜어주길 바라는 뜻으로. 어때?”“하늘의 도를 행한다, 천행.. 이리천행.. 이름 참 좋은데요. 뜻도 깊고요!” 원경릉이 안풍 친왕비 말에 찬성했다. “이리 나리…. 아이 이름은 마마께서 붙이셨는데 이리 나리 부모님께서는요?”이리 나리의 이력은 줄곧 베일에 싸여 있어 공주와 결혼할 때도 이리 집안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전에 듣기로 이리 나리도 부귀한 집안 출신으로 적어도 상인 집안일 거라고 했으나 이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몰랐다.원경릉은 원래 이리 나리 개인사를 수소문해
그러자 원경릉이 한 번도 보인적 없는 완력으로 미색을 끌고 나가 마차에 곧바로 태웠다.미색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위아래로 원경릉을 쳐다봤다.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세졌어요? 최근 무공수련이라도 한거예요? 계속 혜민서에 있지 않았어요? 이리 나리도 마마를 가르칠 틈이 없었는데. 폐하께서 직접 가르치신 건가요..? 폐하 성격에 마마께 무공을 가르치는 걸 마마께서는 참으실 수 있으세요?”“일단 그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물어볼 게 있어. 이리 나리 이력을 아는 게 있어?” 원경릉이 미색의 손을 누르며 물었다.“이리 나리 이력이요? 왜 갑자기 그런 개인적인 일을 물으시는 거지요?” 미색은 약간 의외였다.“그냥 우리가 이리 나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거 같아서, 좀 알아두고 싶어서 그래.” 원경릉은 이리 나리가 거의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을 본 순간을 떠올리며 속으로 강렬한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문령이 아이를 낳으면서 이리 나리 마음속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모양이었다.미색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사실 이리 집안이 어떤 상황인지 저도 잘 몰라요. 밖에 소문은 많이 돌죠. 누구는 이리 집안이 부유하다고 하고, 누구는 이리 집안이 어떤 방면에는 최고 부자라는 소리도 있지만 고아라는 말도 있어요. 제가 유일하게 아는 건 바로 이리 나리 어머니가 이리 나리를 낳을 때 난산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이리 나리는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눈늑대봉에 나타난 것을 눈 늑대가 구해서 돌아왔다는 거예요.”원경릉이 화들짝 놀랐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늑대봉에 나타났다고? 누군가한테 버려진 거야?”“그건 잘 모르겠어요. 이리 나리가 얘기를 안 하시고 아무도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셔서 저도 무심코 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 마마께 눈 늑대를 달라고 하실 때 한 번 얘기하신 걸 들은 거예요.”원경릉이 놀라서 말했다. “어쩐지 이리 나리가 눈 늑대에 그렇게 깊은 집념을 보이더라. 알고 보니 이리 나리를 구한 게 눈 늑대였군.”미색이 고개를 끄덕
우문호는 자기가 외삼촌이 된다는 것이 기뻐서 원경릉에게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꾸 물었다. 원경릉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우리 그때 같이 가자. 외삼촌인데 조카한테 선물도 해야 하고.”“걱정하지 마, 목여한테 준비하라고 했어. 때 되면 여덟째랑 우리 애들이랑 같이 이리 저택으로 가자!” 우문호 또한 기쁜듯 힘차게 말했다.누구를 닮았는지는 세삼때 출궁해서 보기로 했다.우문호는 자신이 아버지로서의 비결을 전수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 이리 나리가 다른 건 뭐든지 다 알지만 아빠는 처음이라 허둥지둥할 게 분명하니 자신처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곁에서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다.원경릉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채로 알았다고 했고 우문호는 너무 흥분한 탓에 원경릉이 이상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목여를 불러 황제의 신분으로 아이에게 이름을 하사하려고 했다.원경릉이 얼른 말렸다. “그럴 필요 없어, 아기 이름 붙였어. 이리천행이라고, 안풍 친왕비께서 붙여주셨어.”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천행? 어쩌자고 역병 이름을 붙이신 거야? 재수 없게. 안 좋아, 안 좋다고!”생각지도 못한 우문호의 반응에 원경릉도 놀라서 잠시 생각해 보니 유행성 돌림병이 떠올랐다. 천행은 역병 이름이긴 하지만 왕비가 아마 그것을 놓칠리는 없었다. “천행이라고 해도 단순히 유행성 돌림병만 지칭하는 건 아니고 보살이 수련하는 오행 중 하나도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어. 그리고 자연법칙을 따르고 흐름에 따라 행한다는 의미가 있잖아?”그리고 왕비는 ‘하늘의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자연의 순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기에유행성 돌림병 어쩌고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어쨌든 이 아이는 계란이와 같은 운명으로 많은 별들이 하나의 달을 에워싸듯 추앙받을 것으로 이름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리천행 듣기 좋잖아.’원경릉은 다음날 혜민서로 돌아갔다. 지금 혜민서 쪽은 할머니가 약재를 제련하는 실험실을 짓기 위해 확장 건축하고 있어 자신이 지켜봐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