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의 대답이 경성 모든곳에 전해졌다. 어떤 방식이든 결국 끝은 아쉬움만 남았다.초왕부에서도 이견이 분분해져 태자 부부가 얘기를 나눴다.“난 셋째 형이 일부러 주 아가씨가 경성에 오는 걸 막지 않았다는 의심이 든단다. 천하에 자기 뜻을 공포할 계기가 필요했던 거겠지. 정화 군주가 이전의 전신에게 시집가는 의식을 치른 것처럼 말이야.” 우문호가 말하자 원경릉이 탄식을 했다. “하지만 이로써 두 사람 일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마무리된 거잖아. 어쩌면 제일 나은 결말일 지도 몰라.”우문호가 말했다. “난 오히려 앞으로 충분한 변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죽지 않은 이상 정해진 건 하나도 없어.”원경릉이 웃었다. “어쩌면 자기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맞을 수도 있고. 하지만 저분들 인생이니 결정권은 저들에게 있지, 그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린 존중하면 그만이야!”“그래, 바로 그거지!” 우문호가 원경릉을 보는 눈엔 사랑이 가득했다. “우리처럼 이렇게 행운인 사람은 별로 없다니까. 우리 서로를 더 아껴주자.”그러자 원경릉이 과거를 회상하며 뿌듯해했다. “우리도 적지 않은 일을 겪었네, 다행히 서로에게 믿음을 가지고 그 비바람을 잘 이겨왔어.”우문호가 원경릉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 기쁨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 대관식 날도 정해졌으니, 우리도 그쪽에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채비하시라고. 좀 당겨서 오시면 더 좋고.”“당신 그 일에 엄청 신경 쓰네?”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농담했다.“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난 이번 혼례야말로 당신이 제일 원한다고 생각해. 가족, 친구가 모두 당신 곁에 있는 결혼식이잖아.” 우문호는 원경릉의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감동해서 눈시울이 붉혔다. “이번 혼례는 전부터 당신에게 제일 해주고 싶었던 거야.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고 싶지 않아.”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이번 혼례를 간절히 원하는 게 나야 자기야? 난 사실….”우문호가
우문호가 반성하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마디 더 보내자면, 아바마마께서 연극을 정말 잘하시더군. 얼굴 분장한 것 빼서 봐도 정신이 몽롱해 보이고 숨도 잘 안 쉬어지시는 모습이 나도 미리 몰랐으면 아바마마께서 정말 중병에 걸리신 거라고 깜박 속을 뻔했어.”원경릉이 말했다. “그건 꾸며내신 게 아니야. 어쨌든 백만 냥이 사라졌으니, 나라도 일이 년은 가슴이 답답할 테니깐. 마침 가장 마음이 힘드실 때가 지금이잖아. 어떻게 숨이 안 차시겠어?”우문호가 동정 어린 표정으로 걱정했다. “그것도 그러네, 나라면 평생 못 잊을 거야.”원경릉이 밖을 보더니 물었다. “위왕이 청란 대가에서 고함친 뒤로 돌아오지 않으시는데 어디로 가신 걸까?”우문호가 말했다. “모르지. 그 주 아가씨인지 하는 사람만 집에 안 오면 돼. 지금 내쫓기도 뭐하고 들어오게 하는 건 더 도리도 아니고 말이야.”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우문호가 이 말을 마치자마자 녹주가 등장했다. “태자비 마마, 주 아가씨라는 분이 오셔서 위왕 전하를 찾으십니다. 문지기가 밖에서 잡아두고 있는데 쫓아낼까요?아니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명을 내려주십시오.”다들 주 아가씨 신분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기에 무작정 쫓아내기도 그랬다. 우문호가 미간을 찡그렸다. “입이 방정이지!”원경릉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밖에서 위왕 전하를 여러 차례 막아섰는데 성공하지 못해서 조만간 찾아오겠지 싶었는데.. 잘 됐어, 들어오시라고 해, 내가 얘기할 테니까.”“당신은 마음이 약해서 걱정이야. 주 아가씨가 일편단심인 걸 봐도 넘어가면 안 돼.”우문호는 위왕이 전에 주 아가씨가 주명량과 닮았다는 말에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러자 원경릉이 대꾸했다. “마음이 약한 게 뭐 어떻다고? 위왕 전하께서 내 말을 들을 것도 아닌데. 난 그냥 주 아가씨가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쫓아온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그리고 계속 이렇게 훼방을 놓고 다니다가 정화 군주를 찾아
주 아가씨 눈빛은 오히려 고요해졌다. “전 조금도 겁나지 않아요. 오히려 평생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게 두렵죠.”잠시 후 주지가 물었다. “그 여자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만나볼 수 있나요?”“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녀가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 할지는 더더욱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아가씨와 위왕 전하의 일이지 그 여자분과는 무관하니 그녀를 더는 괴롭히지 말았으면 해요.”주지는 그 여자가 고의로 심술궂게 군다고 생각해 비웃는 듯한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가 복을 걷어찼네요.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마다하다니. 앞으로 후회할 거예요. 우리 강북부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위왕 전하를 좋아하는지 알아요? 위왕 전하를 한 번 보겠다고 비바람이 불든 눈보라가 치든 종일 자리를 지키며 위왕 전하께서 군영이나 산에서 돌아오시는 걸 기다렸다가 한번 보는 것으로 한 달은 행복해해요. 이런 마음을 당신네 경성 귀부인들은 모르시겠군요.”이 말은 적의로 가득 차서 원경릉도 담담하게 웃을 뿐이였다. “어쩌면 전 이해 못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제가 드리는 말은 같아요. 정화 군주를 찾아가지 마세요. 두 분 일은 그녀와 무관해요. 제가 원래 아가씨를 설득하려고 했는데 아가씨에게 이미 결심이 섰으면 제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겠군요. 가세요!”주지는 여전히 노여움을 띤 얼굴로 비꼬았다.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뭐든 당신들이 다 보호해 줘야 하고, 그런 사람이 위왕 전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나요?”그러자 원경릉의 낫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가씨가 위왕 전하를 좋아하고, 그녀는 자기 삶을 살면 되지 아가씨가 그 사람을 공격해서 어쩌자는 건가요? 됐으니까 이만 가시지요!”주지가 벌떡 일어나 차갑게 말했다. “보아하니 경성 사람들은 다 이렇군요. 희로애락을 모르고 체면만 차릴 줄 알지,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네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이만!”그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애써 지으며 성큼성큼 나갔다.녹주는
위왕이 말했다. “내가 뭘 한다는 것이냐? 물건 남겨봤자 소용없어. 그리고 계속 강북부에 있을 거라 앞으로 일 년에 한 번도 경성에 오기 힘들 것이야. 식구도 없고 봉양할 노인도 없으니 봉록만으로 나 하나 먹고살기는 충분해.”“정화 군주도 원할까요?” 원경릉이 물었다.“모르죠. 일곱째 시켰으니까 잘하면 술 한잔 사주고 못 하면 한 대 패주면 됩니다. 술이냐 주먹이냐는 일곱째 능력에 달렸지요.” 말을 마치고 위왕은 방으로 들어갔고, 우문호는 원경릉을 마차에 태우고 가리개를 내린 뒤 말했다. “셋째 형은 강북부에서 늙어 죽을 생각인가 봐.”원경릉은 아무 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위왕이 가산을 처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그럴 마음이였다.하지만, 이 일은 주변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일로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두 사람이 입궐할 때 명원제는 막 안정제를 먹고 졸음이 온 상태였는데, 우문호 부부를 보더니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두 사람이 예를 취하고 명원제에게 물었다. “아바마마, 무슨 일이십니까?”명원제가 손짓을 하자 목여 태감이 비단 상자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비단 상자를 열고 명원제가 잠시 들여다보고 몇 장 꺼낸 뒤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 “태자한테 줘!”그러자 목여 태감이 안고 와서 우문호에게 건네었다. “전하, 받으시지요!”우문호가 받아 들고 잠시 보더니 할 말을 잊고 멍해졌다. 상자안에는 두꺼운 지폐 더미와 보관증이 있었다.“아바마마, 이….” 우문호가 고개를 들어 의혹에 가득 찬 낯으로 명원제를 바라봤다. ‘이게 아바마마의 개인 재산인가?’“이 은자는 짐이 너에게 주는 것이긴 하나, 너한테 쓰라고 주는 게 아니니 잘 보관하도록 해. 짐이 여기에 총 삼백 만 냥을 넣었고, 그중 일부는 이자를 불리는 중이라 보관증으로 넣어두었어. 이 은자는 네가 써서는 안 돼. 황실의 급한 일을 위해 남겨두어라. 전부 짐이 아낀 것으로 꼭 짐에게 약속하거라. 만일의 상황이 아닐 때 이 돈을 쓰지 않기로.”
우문호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감동 받은 말투로 말했다. “아바마마, 원하시면 소자 매일 수라 드실 때 함께 하겠습니다.”명원제가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 넌 정무로 바쁠 거라 자기 밥때도 못 챙기지 싶구나. 황제란 것이 그렇단다. 숨 돌릴 시간도 없어. 네 효심은 알지….”명원제가 지폐를 손으로 만지막거리며 말했다. “짐이 삼만 냥을 자신을 위한 용도로 둔 게 작다면 작지만 짐은 아들들이 각자 효심을 발휘하면 몇십만 냥은 더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네. 짐이 쓰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은자가 곁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단 말이야. 너희들은 그렇지 않니?”우문호가 감동한 참이라 아바마마의 이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명원제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거 잘 됐구나, 짐은 오십만 냥만 있어도 든든하겠어.”오십만 냥은 명원제가 매화장을 살 때 쓴 돈으로 그 돈을 되찾기만 한다면 만족한다는 뜻이었다.우문호는 곧바로 감동이 없어졌다. 그리고 잠시 곱씹어 보다가 깜짝 놀라 상자의 지폐와 원경릉을 번갈아 보았는데, 상자에 지폐는 사용할 수 없는데 아바마마께서 오십 만 냥을 원하시니 우문호에게 일부를 내라고 하는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넌 이 얘기를 어서 형제들에게 전하고 돈이 준비되면 궁으로 가져오너라.” 명원제는 우문호의 대답을 듣고 정신이 맑아진 모양이었다. 매화장 때문에 본 손해는 본전을 찾았지 싶었다.원경릉은 모든 과정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몇만 냥은 쓰게 됐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이 돈을 모아서 우문호 손에 쥐여준 그 마음만은 정말 귀하고 귀해서 돈으로 측량할 수 없었다.몇만 냥은 긁어모으면 어떻게든 낼 수 있었다.집으로 돌아와 세보니 이자를 받으려고 돈놀이한 차용증이 있어 확실하게 삼백만 냥은 족히 되었다. 전부 조정에서 발행한 지폐로 아주 안정적이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은자로 바꿔 땅에 묻어도 되었다.“이건 아바마마께서 십몇 년을
“본인이 온다고?” 안왕이 화가 치밀어 올라 탕양에게 눈을 부라렸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연아와 아이를 건드렸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 그럼 너도 절대 멀쩡하지 못할 거다.’안왕의 화에 탕양은 화들짝 놀랐다. “왕야 그 말씀이 대체 무슨 뜻입니까? 왜 태자 전하께서 못 오시는 지요..?”탕양은 안왕이 이미 태자의 의도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속으로 호통을 쳤다.그런데 안왕은 탕양이 반어법으로 비아냥거리는 줄 알고 귀까지 빨개지며, “좋아, 내가 가주지. 우문호가 어쩔 거야, 넌 기다리고 있어. 내가 들어가 왕비에게 얘기하고 올 테니까.”탕양이 말했다. “예, 그럼 소인은 먼저 가 있겠습니다!”안왕은 탕양이 먼저 간 것을 보고 자신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안왕은 더욱 분노해 씩씩거리며 옷자락을 떨치고 안 왕비를 보러 안으로 들어갔다.안 왕비에게 짐을 꾸리라고 하고 말을 준비시켜 만약 자신이 초왕부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모녀는 바로 경성을 떠나 강북부로 돌아가라고 했다.그러자 안 왕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당황햇다. “태자 전하께서 왕야께 뭔가 상의하러 오시라는 것 뿐인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게 아니십니까?”안왕이 답했다. “다섯째가 나랑 얘기할 게 뭐가 있어? 지금 대관식 날짜도 정해졌고 당장 황위가 손에 잡힐 상황인데 이런 중대한 시점에 다섯째는 모든 장애를 없애버리고 싶을 게 틀림없다고. 내가 전에 자기와 태자 자리를 놓고 다퉜으니 날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 전에 잘 지낸 건 아마 어질다는 명성을 가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였고, 이제 모든 게 다 결정된 상황이니 절대로 날 용납하지 못할 거야. 이건 일부러 당신을 놀라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말만 들으면 돼.”안 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태자 전하는 그러실 분이 아니세요.”“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어떻게 잘 아느냐?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모험을 해서도 사람을 너무 믿어서도 안 돼. 다섯째가 이러는 걸 그렇게 뭐라고 할 수도
손왕은 가끔 넷째를 들쑤셨지만 집요하게 그런 것도 아니라 다들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우문호는 또 의견 분열이 일어날까 걱정이 되어 인사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바마마 병문안을 갔었는데 매화장 일로 괴로워하시고 영 불쾌해하시다가 쓰러지신 게 확실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몇십만 냥을 모아 아바마마께 드리고 마음의 병을 없애 드리는 건 어떨까요?”손왕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그건 물론 아무 문제 없어. 얼마를 모아야 하든지 우리 형제들이 나누면 되니까.”회왕도 문제없고, 제왕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아홉째도 좀 힘들지만 알았다고 했고 위왕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앉더니 응했다. “내가 지금 탈탈 털어서 50냥밖에 없지만 전부 내긴 할게.”위왕은 정말 전 재산을 정화 군주에게 주었다. 일곱째 쪽에서 제대로 했는지는 아직 확답이 없지만 위왕은 이미 빈털터리로, 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넷째 너는?” 손왕이 안왕에게 물었다.안왕은 마음속으로 주판을 굴리더니, 은자를 줘서 아바마마께서 좋아지시면 반드시 퇴위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안왕이 얼른 대답했다. “전 당연히 문제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나으시길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요.”우문호는 한시름 놨다. 원래는 상당히 어려울 줄 알았는데 다들 이렇게 호탕했다니 오히려 자신이 소심해서 다들 와서 상의하자고 불렀구나 싶었다.하지만 방금 둘째 형 말을 떠올리고, 넷째가 아마도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위로했다. “앞으로 우리 형제가 좀 자주 모여서 이렇게 같이 얘기도 하고 해야겠어요. 감정이 너무 소원하지 않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들 잘 아시겠지만, 한 마음으로 북당을 위한다면 절대로 적이 될 리 없습니다. 평생 말이죠.”이 말은 분명 안왕을 상대로 한 것으로 안왕도 알아듣고 순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태자였으면 절대로 저렇게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안왕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째가 어질다는 명성은 만들어낸 게 아니라 떳떳한 평가라는 사실을
원경릉마저 상당히 감동했다. 이 힘든 길을 걸어온 본인들이 참 뿌듯해졌다. 80만 냥 지폐를 명원제 수중에 전하자 명원제가 30만 냥만 꺼내고 나머지는 전부 우문호에게 돌려줬다. “가져가, 보위에 오를 때 혼사를 치를 테니 체면을 살려야지. 국고나 내탕고의 은자 쓰지 말고.”황제의 황후 책봉례이므로 국고에서 은자를 지출해도 되지만 명원제는 황실 일은 국고의 은자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고, 우문호도 그러길 바랐다.우문호는 50만 냥 지폐를 들고 엉거주춤하게 말했다. “이건 모두의 효심을 아바마마께 표현한 것으로 소자는 받을 수 없습니다.”명원제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져가서 아내에게 좀 좋은 걸 사줘. 그동안 솔직히 너무 홀대했어. 태자비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원래 내가 자식들에게 50만 냥을 모아오라고 시킨 건 그중 일부를 네 혼사에 쓰고 싶어서였어. 전에 너한테 준 돈은 쓸 수 없으니까. 알겠느냐?”우문호가 고개를 저었다. “소자 받을 수 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이 은자가 필요 없으시면 소자가 형제들에게 돌려주겠습니다.”명원제가 기각 막혀 냅다 화를 냈다. “넌 머리에 두부만 들었냐? 저들은 은자가 안 부족해. 은자가 없는 건 너라고. 이건 내가 널 위해 하는 마지막 일이야. 넌 그냥 가져가면 돼. 네가 필요 없으면 짐도 며느리에게 내리도록 하지. 태자비를 더는 초라하게 하지 마라. 황실의 왕비가 누려야 할 부귀영화를 태자비는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어. 오히려 매일 걱정 근심에 종종거리며 집안일과 나랏일을 생각해 왔지. 근데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우문호는 눈가가 뜨거워져서 꿇어앉아 감사 인사를 올렸다. “아바마마, 손자 원 선생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명원제 얼굴이 그제서야 화색이 돌며 우문호를 일으켰다. “그럴 필요 없다네. 우리 우문씨 집안이 태자비에게 빚을 졌지. 태자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거라. 태상황 폐하를 구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 우문씨 집안의 역량이 비로소 하나도 응집되기 시작했어. 짐도 태자비 영향을 받았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