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디자인을 고른 후 그들은 쇼핑하러 갔다.종일 돌아다녀서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지만 살 거는 다 샀고, 남은 건 주진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했다. 대부분 같은 도시에서 구매했기 때문에 하루 이틀이면 도착할 것이다.소요공이 먼저 깁스를 풀었는데 아무 문제 없어서 걷고 뛸 수 있었다.태상황의 몸은 전부터 괜찮았지만, 병원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혼자 가려고 하지 않았다.원경주는 주 재상을 진찰한 뒤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해도 된다고 했으나, 당분간 자극적인 행동이나 고강도의 운동은 하지 않도록, 잘 챙기라고 원경릉에게 신신당부했다.퇴원 수속을 마치는데 경찰 쪽에서 사고 운전기사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원경릉이 나서서 합의해 의료비 지급을 면제해 주었다. 원경주 말에 따르면 사고 기사들은 사실 병원에 그것도 몇 번이나 왔었고 전부 몰래 밖에서 지켜보기만 한 채 안으로 들어올 용기가 없었다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해 의료비를 줄 수 없어 숨었다는 것이다.퇴원하는 날, 원경주가 차로 직접 마중 나오기로 해서 원경릉은 어르신들 짐을 챙겨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입원할 때 엠뷸런스를 타고 왔는데 다쳐서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기에 주 재상은 자동차에 호기심을 보였지만 동료들과 떨어질까 봐 더 살펴보지 못했다.그날 병원 화단에 갔을 때도 밖에 질주하는 차들을 보고 매우 신기해 했으나 태자비의 말이 훨씬 신기하게 느껴져서 차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하지만 이번엔 마음이 아주 가벼운 상태라 자동차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기 시작했다.셋은 뒷자리에 앉아 소요공이 앞좌석 원경주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큰 조카, 이 차 아무도 끄는 게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지?”원경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이 차는요, 사람이나 말이 끌 필요가 없고, 발동기가 있어요.”“발동계? 그런 닭이 있다고 들어본 적도 없다네!” ‘무슨 닭이 얼마나 엄청나길래 차도 막 끄나...’삼대 거두는 차 안을 살펴보고는 다른 차도 막 살폈다. 전부 이렇게 움직인다는데 아무리
돌아가는 길에 원경릉은 자세하게 이쪽 세상일을 얘기했으나 모두 못 알아듣는 눈치라 매일 조금씩 천천히 이해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주차장에 도착하자 가져온 물건을 모두 내리고 엘리베이터를 타 집 안으로 들어갔다.어르신들은 엘리베이터에는 호기심이 없는 것이 이미 타봤고 전기를 사용하는 티비와 같은 거라는 설명도 들었기 때문이었다.집에 와서 3개 방에 각자 나눠 들어갔는데 방 안에 모든 것에 감탄하며 찬찬히 음미했다.배달 음식이 왔다. 케이크와 분식을 배달시켰는데 기름지고 단 음식을 별로 잘 드시지 않는 편인데 케이크는 드시고 기분 좋아했다. 아주 향긋하고 달콤하다며 마구 감탄했다. 다 먹은 뒤 원경릉은 우선 1시간 주무시라고 하고, 1시간 뒤 와서 그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보러 나가기로 했다.원경릉이 문을 닫고 나가려는 순간 소요공이 물었다. “그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건반을 누르고 몇 층을 갈 건지 눌려야 하는 거 맞지? 만약 주차장에 가고 싶으면? 주차장은 몇 층이지?”“지하 1층이요!” 원경릉이 물었다. “어르신들 주차장에 가시게요?”“아니, 그냥 물어 본 거야!” 소요공이 얼른 눈을 피했다.“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일단 주무세요. 주무신 뒤에 제가 데리러 올 게요. 전 바로 맞은편에 있어요. 무슨 일 있으며 문을 두드리세요.”“응, 알았어!” 소요공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어서 가봐, 우리도 잘 거야!”원경릉이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여기저기 다니시면 안 돼요!”“알았다니까, 잔소리도 많네!” 태상황이 안에서 한마디 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겠지. 어쨌든 길이 낯서니까 어디 나다니시지는 않을 거야.’원경릉은 집으로 돌아가자, 졸음이 와서 방에 들어가 누웠다.삼대 거두는 원경릉이 가자,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윽고 태상황이 입을 열었다. “그 닭 말이야, 우리가 끌어낼 수 있겠지? 어떻게 생겼나 한번 보자고.”주 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끌어낼 수
삼대 거두는 옥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추워서 옷 하나 더 입고 나올걸 후회했다. 잠시 후 소요공이 손잡이에 손을 대고 뭐가 뭔지 몰라 고민하며 말했다. “저 문이 어떻게 된 겁니까? 왜 밀어도 안 열리죠? 이렇게 당기면..! 아이고, 손잡이가 또 떨어졌네.”그러자 태상황이 제안했다. “열쇠를 가져와서 열어야 하는 거 아닐까?”“열쇠 구멍이 안 보여요. 그리고 우리가 돌아왔을 때 태자비도 열쇠 안 쓰고 바로 들어갔어요.”주 재상이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보더니, “돌아와서 문에 들어갈 때 띠띠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어요. 확실히 열쇠로 문을 여는 건 못 봤지만, 손가락으로 저 문옆에 작은 상자를 만졌던 것 같았는데, 상식적으로 손가락은 열쇠가 아니니 쓸어도 문이 열릴 리 없고, 관건은 그 띠띠 소리인데. 문제는 띠띠 소리가 태자비 본인이 낸건지, 아니면 문 안에 뭔가가 소리낸건지요?”세 사람은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천천히 소요공 손에 든 손잡이를 보며 한 가지 계략을 떠올렸다.“가자!” 태상황이 손을 흔들자 두 사람이 바로 내려갔다. 그들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셋은 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다시 탔다. 이번엔 문고리뿐 아니라 문까지 짊어지고. 이런 젠장할 경우가 있나. 문을 뜯었는데 안에 나무로 된 게 또 있다니. 나갈 때는 파악을 못 했는데 말이다.그들이 주차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경비가 순찰하다가 원경주의 차가 산산이 분해된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가 정신을 차리고 얼른 원경주에게 전화했다.원경주가 내려와 자신의 차가 무자비하게 분해된 것을 보고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경비는 원경주에게 도대체 누구한테 이런 원한을 맺었냐고 물었다.원경주는 바로 경비에게 CCTV를 보자고 하고 경비실에서 CCTV를 검색하다가 주차된 위치에 카메라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1시간 이내에 주차장에 출입한 사람을 봤는데 전부 단지 주민의 차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
“우린 나갔잖아!” 태상황이 말했다.원경릉이 주재상과 소요공을 보자 소요공은 진지하면서도 약간 의아하다는 얼굴이였는데, 주 재상은 계속 눈을 피하며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원경주도 올라왔는데 대문이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 이마를 짚으며 막 질문하려는 것을 원경릉이 원경주에게 눈짓했다. “오빠, 먼저 집에 가세요. 전 태상황 폐하께서 쉬시게 모셔다드릴게요.”원경주는 허탈한 웃음을 삼킨 채 그저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문을 열고 삼대 거두를 들여보낸 뒤 자리에 앉자 밝은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은 지금 삼대 거두에게 꽤 익숙한 물건이나 게임 켜는 방법을 몰라서 한 번 만져보더니 태상황이 원경릉을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그래, 넌 돌아가 봐. 방금 네 오빠가 서두르는 모습을 보니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도적을 만났을지 누가 알아.”원경릉 톡이 울렸다. 보니 오빠가 보낸 것으로 이중문은 옥상에 있으니 물어볼 필요 없다고 했다.원경릉이 휴대폰을 넣고 쓴웃음을 지었다. “네, 우선 게임하세요. 전 가서 문 달테니까!”“가서 급한 일 봐,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태상황이 상냥하게 말했다.원경릉이 알았다고 하고 돌아서서 한마디 했다. “다시는 나가서 돌아다니지 마세요. 제가 찾지 못하는 일 없게요.”“안 나가, 안 나가!” 셋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감히 어딜 나가?!원경릉이 문을 닫고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왔다.들어서자, 원경주가 계속 속이 타는지 왔다 갔다 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너 내 차 어떻게 됐는지 못 봤지? 고장난 건 말할 것도 없고 선은 죄다 뽑혀 있고.. 무슨 의자를 다 뽑아 놨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리고 그 문, 아이고 기가 막혀. 그거 이중문이라고, 무슨 힘으로 그 문을 통째로 뽑아낸 거야? 가서 CCTV를 봐. 문을 메고 당황한 채로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 좀 보라고. 어이가 없어서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어.”말을 마치고 고개를 젓더니 다시 웃음을
다행인듯 세 노인은 반나절 넘게 얌전히 있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 게임을 하는 동안 누군가 와서 문을 달았다. 문을 다 달자 원경릉이 세 사람에게 어떻게 문을 여는지 가르쳤다. 지문으로 열 수 있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서도 열 수 있었다.이건 가르치기 어렵지 않았으나 다 가르친 뒤 소요공이 갑자기 도어락을 보고 물었다. “이 안에는 또 뭐가 있지?”소요공이 흥미를 느끼자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들이밀고 쳐다보는 모습을 보자 원경릉은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저녁밥을 먹고 원경릉은 세 사람을 데리고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 환경에 익숙해져야 적어도 몰래 나갔을 때 돌아오는 길이라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들은 단지를 나가 부근 광장으로 향했다. 아주머니들이 광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삼대 거두가 신선하다고 느낄만한 것을 보면 죄 설명해 줘서 더 자세히 알겠다고 지나치게 호기심을 표현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하지만 그들은 걸으면서 둘러보고 특히 그 높다란 풍등을 자세히 쳐다봤다.30분쯤 걷자, 군밤 파는 사람이 보이자 원경릉이 물었다. “간식 좀 사 올 게요.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무 데도 가면 안 돼요.... 아니다. 저랑 같이 가죠.”태상황이 손을 저으며, “그럴 필요 없어, 가봐, 우린 저기 사람들이 굿하는 거 보고 있을게!”원경릉이 바로 잡아주었다. “굿이 아니라 신체 단련을 위한 광장무예요!”생각해 보니 오해해도 상관없다 싶어서 바로 군밤을 사러 갔다.원경릉이 가자 주 재상이 소요공과 태상황에게 물었다. “저 풍등이 왜 저렇게 높게 걸려 있는지 아나요? 등유… 아니면 동유를 쓰나요? 또 등갓은 뭐로 만들었을까요? 우리 쪽 풍등이랑 달라요.”소요공이 말했다. “우리도 알고 싶어요! 우리가 막 왔을 때 마차…. 아니 계차에 치였던 그 길에도 이런 등이 많아서 엄청 궁금해했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밝게 비추죠? 기름 안 먹나요? 아니면 아예 기름이 필요 없나요?”셋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들어 높이
“안 주무시고 샹들리에 연구하고 있으셔.” 원경주는 피곤한듯 소파에 널브러졌다. 목이 심하게 갈라져서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벌떡 일어났다. “아, 전기포트 사용하는 법 가르쳐 드리는 거 까먹었다.”“내가, 내가 할 게요!” 원경릉이 원경주를 막았다. “오빠는 일단 샤워부터 하고 가서 쉬어요. 내일 또 출근해야 하고, 점심때 시간 내서 우리 차도 보러 가야 하잖아요. 차가 없으면 불편해요.”“그래, 네가 가봐! “ 원경주가 솔직히 자신이 없어서 원경릉을 보냈다.‘고대에서 오신 이분들 정말 데리고 있기 힘드네…’원경릉이 열쇠를 들고 가서 어르신들에게 전기포트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누전 차단을 꼭 조심하도록 일러드렸다. 어르신들은 열심히 배웠고 다음은 샹들리에를 배울 차례였다.이 샹들리에는 전 집주인이 두고 간 것으로 좀 오래된 거지만 삼대 거두에겐 상당히 신선한 놀잇감으로 끝도없이 껐다 켰다 하느라 필라멘트 두 개가 나가버려 밝기가 전같지 않아 지자 어르신들이 더는 껐다 켰다 하지 않았다.원경릉은 저분들에게 전기의 발명과 원리에 관해 설명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셋은 단정하게 정좌하고 앉아서 진지하게 들었다. 소요공이 코를 골지 않았으면 원경릉은 세분이 진짜 흥미를 느끼는 줄 알았을 것이다.태상황과 소요공은 소파에 기대서 잠이 들었고 주 재상은 진짜 열심히 듣고 있었다. 소요공과 태상황에게 있어 이런 건 무미건조한 일에 불과했다. 원리 같은 거 필요 없이 어떻게 쓰는지만 알면 됐다.주 재상은 끝까지 알고 싶어하는 성격이라 설명을 통해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전기는 일종의 에너지로 일련의 장치를 통과한 뒤 동력이나 힘을 발생시키며 어쨌든 일상생활에서 전기는 필수 요소이다.원경릉도 마침내 엔진에 대한 상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하늘을 나는 것, 도로를 누비는 것, 철길을 달리는 것 등 많은 것들은 전부 발전기가 석유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해 움직인다고 했다. 물론 새로운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도 있다. 주 재상에게 설명하는 건 그래도 편한 게 주
아침을 먹고 주진은 원경릉에게 전화해 로양 쪽에서 어르신들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았다고 했다.임시 신분증이 있으니, 이제는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든 놀러 갈 수 있다.하지만 주 재상이 지금 아직 멀리 가는 고생스러운 여정을 소화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컨디션이라 주변 여행부터 기획했다.처음 어르신들을 모시고 갈 곳은 천문대였다.어르신들에게 이 우주와 시공간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시키는데 천문대가 제격이였다. 원경릉은 저녁에 천문 현상이 있어 천문 망원경을 개방한다는 것을 알고 낮에는 우선 둘러보고 부근에서 밥을 먹은 뒤 8시에 그들을 데리고 하늘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북당에는 흠천감이 있어 왕강도 이쪽 분야 연구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맨눈으로 밤하늘을 관찰하는 게 망원경으로 보는 것보다 분명 못할 것이다.하지만 삼대 거두는 밤에 하늘을 보러 간다는 것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단지 태자비가 이렇게 애써서 준비했는데 안 가면 체면이 안 설 테니 답례의 의미로 가주는 느낌이었다.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하루를 가서 거의 새벽에 돌아와야 하는 여정이라 이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싶어서 종일 하늘만 보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소요공이 태상황에게 거절하라고 밀었으나 태상황이 귀찮다는 듯 코를 비비며 나왔다. “그…. 하루나 걸려서 가야 해? 오늘 바쁜 일 없어? 네 시간을 너무 뺐는 거 아닌가?”원경릉은 이미 짐을 다 챙긴 상황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아무 일도 없어요. 원래 오빠가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뭘 좀 사야 해서. 그래도 주진을 불러서 곁에 있어 달라고 했으니 저는 오늘 어르신들 전담입니다.”“그럼, 우리가 태자비 마마 오라버니와 물건 사러 가죠. 물건 사고 하늘 보러 가는 거예요.” 소요공이 얼른 다가와 말했다.“그건….” 원 경릉이 망설이더니 낮에는 안 가면 그만이지, 밤에 망원경 보러 가면 되니까. “그럼 그러죠.”솔직히 호기심이 있었다는 걸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어르신들이 오빠가 차 사러 가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삼대 거두는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달려들어 먹기 시작했다. 계속 반찬이 싱겁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먹어 치웠다.주 재상이 아직 회복 중이라 담백하게 먹는 편이 나았기에 원경릉이 특별히 담백한 음식으로 주문한 것이였다. 식사를 하고도 아직 시간이 일러서 원경주는 영화나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남는 시간에 연극 보시겠어요?”삼대 거두도 연극 보는 걸 좋아했으며 특히 소요공은 걸핏하면 부근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곤 했다. 고대는 소일거리가 많지 않아 연극을 보는 건 꽤 고상한 취미인 셈이었다.원경주가 인터넷으로 영화를 고르고 극장을 선택해야 했다. 극장은 비교적 후미진 곳으로 골라 사람이 별로 없는 상영관을 하나 골랐는데 일단 아무도 예매하지 않은 회차로 예매했다.“무슨 영화죠?” 원경릉이 다가와서 물었다.“SF영화인데 괜찮지?” 원경주가 대답했다.“괜찮죠. 어쨌든 저녁에 저분들 데리고 천문대 갈 거니까 미리 예열 좀 해드리죠. 뭐. 줄거리가 있으면 설명하기도 쉬우니까요.”“그래, 가는 데 30분 정도 걸리니까 45분에 가자.” 원경주가 말했다.삼대 거두는 여전히 즐거웠다. 다른 건 잘 못하지만, 연극을 보는 건 경험이 좀 있기 때문이었다.극장에 도착하자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이 원경주가 잘 고른 듯싶었다. 원경릉은 팝콘과 사이다를 사 왔고 아직 입장까지 15분 정도 남아서 옆의 의자에 앉아 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태상황이 계속 저쪽 흡연구역의 젊은 사람들을 쳐다보며 뭘 피우는지 살폈다.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가는 모습에 흡연 욕구가 일며 조그맣게 원경주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피우는 게 담배인가?”“예!”“담배가 참 독특하구먼, 나도 한 대 빨아볼 수 있을까? 아니면 연초도 괜찮은데. 과인이 담뱃대가 있거든!” 태상황이 말했다.원경주가 원경릉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눈빛을 보내자 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다 드리죠. 아니면 내내 눈에 밟히실 거예요.”원경주가 말했다. “그래, 여기는 담배 파는 곳이 많이 없으니까, 내가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