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아명을 두고 토론이 계속되었다. 탁자 위엔 과일과 약과 등 간식이 올라가 있었다. 손왕은 “탁자 위에 간식을 먹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하며 좋아했다.고작 아명 하나를 가지고 장장 2시간을 열띠게 토론했는데 결론이 나지 않자 우문호는 완전 지쳐버려 이리 나리한테 제안했다. “이리 나리도 하나 지어 보세요.”이리 나리는 마침 삶은 계란을 까먹고 있던 참으로 우문호의 질문에 그냥 생각하는대로 말했다. “계란은 어때?”“무성의해, 너무 성의 없어!” 다들 난리였다. 하지만 우문호가 들어보니 괜찮은 게, 계란, 삶은 계란, 작은 계란, 작은 사람, 작은 계란형 얼굴, 삶은 계란처럼 부드러운 속살! 딱이네 딱이야!우문호가 벌떡 일어나 흥분해하며 말했다. “계란이야!”이렇게 태어나서 하루도 안된 꼬마 봉황은 봉호, 이름, 아명 셋 다 갖추게 되었다.설날 태어난 꼬마 봉황은 우문택란이란 이름에 조붕 군주로 봉해질 것이며 아명은 계란이다.정해지자 마자 우문호는 바로 입궁해서 기쁜 소식을 알렸다.명원제는 태자비가 딸을 낳았다는 말에 손녀가 하나 더 생긴 게 기쁘고 특히 아들이 완전 넋을 잃고 입이 귀에 걸린 것을 보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바보 아들이 정말 복도 많지. 아들을 낳고 싶으면 아들을 낳고, 딸을 갖고 싶으면 딸을 낳으니 말이다.태자가 아들 딸을 다 가진 것은 조정엔 큰 경사로 명원제도 목여 태감을 시켜 선물 명단을 만들게 했다. 그는 자신의 손녀에게 내릴 상을 상의한다는 명목으로 직접 황귀비가 있는 장문전을 찾았다.황귀비가 기쁜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명원제와 사이가 껄끄러운 것도 잊고 같이 앉아 선물을 상의했다.전에 다섯째를 홀대한 걸 미안하게 생각해 명원제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다섯째의 체면을 살리게 상당히 융숭한 상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황귀비는 전에 명원제가 태자비에게 남주(남쪽 바다에서만 나는 귀한 진주)를 하사한 것을 기억하고 얘기했다. “신첩이 기억하기로는 작년에 남주가
원경릉은 만두에게 외할머니집에 가서 여동생이 태어난 소식을 전해 같이 기뻐하자고 했다.만두는 그 말을 듣고 좋아했는데 외할머니 집에 경사를 전하면 온 집안 사람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기뻤기 떄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딸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이제 꿈이 이루어졌다고 무척이나 좋아할 것이다. 주진은 컴퓨터에 이미 모든 데이터 입력을 마치고 결과를 계산해 냈다며 시간, 날짜, 방위 전부 도출했지만, 외재적인 요소의 영향이 없어진 후에야 경호가 정확한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만두를 통해 원경릉에게 전했다.주진은 만두에게 엄마 머리의 발광점을 잘 지켜보다가 곧 꺼질 거 같을 때는 반드시 바로 자신에게 알리라고 했지만 만두는 돌아가서도 엄마에게 머리의 발광점에 대한 얘기 하지 않고 경호가 2~3개월은 지나야 운행할 수 있을 거라고만 전했다. 이건 원경릉에게 있어 하늘만큼 땅만큼 좋은 소식이었다.경호를 발견하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그리워만 했다. 마침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는데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어?원숭이 일은 경호가 뚫리면 직접 돌아가서 정확하게 확인하고 홍엽에게 애기할 생각이었다.시공간을 뛰어넘어 북당으로 온 뒤로 원경릉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을 왔다갔다 하는 순간이 눈 앞으로 다가와 북당에 시집 온 것이 마치 다른 도시로 시집간 듯한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원경릉은 3개월 정도 더 기다리면 집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다고 짐작했다. 그때는 여섯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계란이는 무척이나 차분한 것이 원경릉 뱃속에 있을 때와 완전 딴판이었는데, 불이 난 일은 계란이와 조금도 관계가 없었을까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하지만 원경릉은 산후조리 내내 계란이를 지켜봤지만 초능력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보통의 신생아와 다르다할 차별점이 없는 것이 차리리 잘됐다 싶었다. 어쨌든 다섯 오빠들이 여동생을 귀여워하며 예뻐할 것이라 조금도 서운하게 할 일이 없을 것이다.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우리 계란이가 큰 증조할아버지한테 배신을 당했다고?기화는 지극히 순수한 눈빛으로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우문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기화는 순간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생겨 우문호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사실 견역.... 그러니까 안풍친왕 전하는 본질적으로 늙은 여우 입니다. 그 점은 두 분다 알고 계시죠? 안풍친왕의 말은 1할만 믿어야 해요, 물론 1할도 안 믿는 게 최고지만요.”우문호가 조용히 이를 갈며 매서운 눈빛으로 물었다. “내 딸을 제자로 삼겠다고 하는데, 뭘 가르칠 수 있는가?”기화가 다소 의혹의 눈길로, “제가 못 가르칠 게 뭐죠? 전 뭐든 다 할 수 있는데요.”기화는 자세를 단정하게 고쳐 앉더니 엄숙한 태로도 답했다. “태자 전하, 저를 그저 전문성 없는 인간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이래봬도 수많은 일에 종사해 와서 경찰, 운전기사, 마술사, 도박꾼, 심부름꾼, 판매원, 보표 등 각종 분야 각종 업계를 두루 누비고 다녔습니다. 옅든 깊든 다 관여해 봤고 전에 사업도 했었는데.... 그런데 좌판도 사업은 사업이죠? 제자가 뭘 배우고 싶든 다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생이 정직해서 안풍친왕 전하처럼 그렇게 뒤에서 인신매매같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지요. 이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이게 무슨 소리지?’ 우문호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사실 기화와의 말싸움에 성공할리는 없다. 기화가 북당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이제 와서 싸우면 배은망덕한 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운다고 해도 이길 승산이 없는 게, 정말 기화가 계란이를 안고 가는 날엔 계란이가 놀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기 때문이다. 우문호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큰 일을 아내와 상의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상의한 뒤에 확실하게 답하도록 하지.”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비 마마 의견을 존중해야죠. 어서 가서 물어보세요. 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우문호는 탕양에게 원경릉을 부르라고 하고 바로 소월각으로 갔다.원경릉도
기화가 우문호에게 얘기했다. “아내 분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에너지가 있죠.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물질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걸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물질을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불 같은 걸 말이죠. 우리는 불을 볼 수 있지만 많은 물질이 불꽃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공기 같은 것도 안에 연소가 가능한 기체 즉 산소나 수소 같은 게 있거든요. 공기 중에서 그 기체들을 뽑아내기만 하면 불을 붙일 수 있어요. 계란이는 그런 불씨를 구별해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가졌어요. 불씨에 재빨리 불을 붙여 기체를 연소시킬 수 있죠. 그래서 불씨를 제거한 거예요. 그럼 계란이는 기체를 제어하게 되도 쉽게 불을 붙여 커다란 화재를 일으킬 리는 없게 되죠. 계란이가 자라서 마음이 성숙해지면 이 능력은 다시 돌려줄 겁니다.”우문호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당황한 채 물었다. “무슨 뜻이지? 계란....이가 공기 중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그게 뭐가 이상한데요? 우주에 에너지 물질이 이렇게 많은데 바람, 전기, 우뢰 등등등을 제어하는 사람도 있다고요.”“계란이는 왜 할 수 있지? 나는 제어 못 하는데?” 우문호가 묻자 기화가 우문호에게 말했다. “옆에 잔을 들어보세요.”우문호는 옆에 잔을 보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들어올렸다.기화가 만족스럽다는 말투로 설명했다. “보세요, 태자 전하는 컵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잖습니까? 전하의 대뇌가 구별해 낼 수 있는 에너지예요. 전하께서 어떤 물질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건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가능하죠. 예를 들어 무공을 수련하면 담을 뛰어 넘고 솜이나 낙엽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죠. 전하의 모든 행위는 전부 전하의 대뇌가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전하 대뇌의 발육 정도에 달려 있는 거죠.”우문호는 기화를 한참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게. 자네 말을
기화는 태자 부부에게 아이를 안으라고 했다.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이제 이 아이가 세살이 될 때부터 매년 한 달씩 와서 성년이 될때까지 제가 배운 걸 전부 가르쳐 주도록 하죠.”우문호가 딸을 안고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럼 계란이가 지금도 여전히 불을 낼 수 있는 건가?”기화가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을 텐데요, 불꽃숭이는 쉽게 연소하는 물질을 완전 장악하고 제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의식에 의존해 불을 낼 수 없습니다. 만약 불꽃숭이 손에 부싯돌을 쥐고 있거나 초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원하면 초왕부를 다 태워버릴 수도 있지요.”기화는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고, “태자비 마마 어딘가에서 곧 다시 뵙겠습니다.”기화는 말을 마치고는 바로 돌아서 나갔다. 그러자 우문호가 궁시렁거렸다. “어딘가는 뭐가 어딘가야? 3년 후에 오는 거잖아? 3년 후에 여기서 보자면 되는 거 아냐? 웬 신비주의 컨셉이야!”하지만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에 주진이 한 말에 따르면 어쩌면 그날이 멀지 않았다. 원경릉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경호가 열릴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어쩌면 이건 뇌 줄기세포 괴사의 조짐일지도 모른다. 만일 원경릉이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가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대비를 해야 했다.원경릉은 양여혜를 찾아가 시공간의 왜곡을 계속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시공간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면 경호가 제대로 작동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약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먼저 가서 원경릉을 데리고 갈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양여혜는 원경릉을 데리고 간다고 해도 위험계수는 경호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경호가 아니라 전체 공간으로 공간과 공간의 연결에 왜곡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전에 원경릉 일행이 갔을 때 다른 공간에 끌려들어갈 위험이 있었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양여혜 자력으로 억지로 끌고 올 수 있었지만 다음 번에도 시공간이 왜곡된 상황에서 사람을
왕비 합방하다북당(北唐), 초왕부(楚王府) 봉의각(鳳儀閣)일렁이는 촛불에 방안 곳곳에 붙여 놓은 낡은 붉은 ‘희(喜, 축 결혼)’종이가 비치고, 금박의 대조가 어슴푸레한 느낌을 떨쳐내는 가운데 벽에 한 쌍의 그림자가 떠오른다.원경릉(元卿淩)은 원하지 않는 것을 참고 또 참는 얼굴이다.결혼한지 어언 1년, 그는 원경릉의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제 입궁했을 때 태후(太后)가 원경릉의 밋밋한 배를 보고 실망한 기색으로 후궁(侧妃)을 들이는 것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태후께 하는 수 없이 둘이 결혼한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 합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원경릉은 울고불고 고자질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니까 그냥,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13살에 처음 그를 본 이래, 마음을 온통 그에게 빼앗겨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결국 그의 정비가 되었다. 제 아무리 차가운 돌덩이라도 뜨겁게 타오르게 하리라 믿었건만, 그건 단단히 착각한 거였다.서로 부부이고, 낭군이 분명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단 한 가닥 연민조차 없이, 오히려 집착에 가까운 증오만 있을 뿐이었다.“윽……”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원망이 솟구치며 그녀는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선혈이 배어 나와 비릿한 피가 입안으로 방울져 들어갔다.그는 낮게 깔린 눈빛으로 훤칠한 몸을 일으켜, 한 손을 그녀의 얼굴 옆에 바짝 댄 채 얼음같이 냉정하게, “원경릉, 네가 바라던 대로 짐이 너와 합방했으니, 이제부터 짐은 너와 일체 타인이다.”원경릉은 절망과 슬픔의 웃음을 띄우며, “당신은 결국 절 미워하는군요.”푸른 옷자락 아래 초왕(楚王)의 건장한 몸매와 늘씬한 다리로 쭉 걷어차니, 탁자고 의자고 우당탕탕 넘어지며 물건이 사방에 떨어지고 깨지는 가운데 그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미워한다고? 당치도 않은 소릴. 짐은 네가 혐오스러워. 짐의 눈에 너는, 더러운 벌레만도 못한 존재야. 사람을 증오심에 불타게 한다고. 아니면 짐이 약의 힘까지 빌려 너와
두 명의 원경릉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스스로에게 주사한 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 보니, 여기였다.그리고 머리 속에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이 본인의 기억과 서서히 뒤섞이기 시작했다. 정후(靜候)의 적녀(嫡女, 정실부인의 큰 딸) 원경릉은 초왕 우문호(宇文皓)를 사모한지 오래다. 15살에 성인식을 올리고, 공주부 연회에서 치밀한 음모로 초왕이 그녀를 ‘범하도록’ 함정에 빠뜨렸다. 원경릉은 죽네 사네 한바탕 연극 끝에 댓가로 소원하던 왕비의 자리를 얻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왕부에 시집 와서 1년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초왕은 원경릉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공대 여자로 연애를 해 본적은 없지만,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이 죽기 전에 한 차례 성적 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을.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이 뇌에 남긴 기억도 이를 뒷받침했다.현대의 천재 박사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왕조의 초왕비가 된,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수중에 있던 연구과제를 계속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혼이 시공을 초월한다는, 과학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 그녀의 몸에 일어난 지금,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기는 커녕, 만약 다시 현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심령학을 연구할 텐데 하는 아쉬움 뿐이다.원경릉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나머지, 사고가 점점 흐릿해져 아예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침대로 돌아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어서, 어서 가서 의원을 불러 오너라!”문밖에 기상궁의 다급하고 혼란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비릿한 피냄새가 대충 닫아 둔 문틈으로 스며 들었다.원경릉은 두 손으로 의자에 기대 덜덜 떨리는 발을 간신히 딛고 서서 밖을 내다 보았다.보이는 건 기상궁과 시녀 하나가 어린 시동 하나를 복도에서 부축하고 있는 것으로, 그 시동의 눈에서 철철 피가 흐르고, 시동의 눈에 뭐가 박혔는지 격한 통증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기상궁은 다급히 시동이 그러쥐고 있는 눈 가에 손을 뻗으려 다가, 예리한
연구실로 돌아갔다 다시 왕비로원래 주인이 몸이 많이 약했는지, 원경릉은 정신을 잃은 채 깊은 잠에 빠졌다.그런데 꿈에 뜻밖에도 현대 연구실에 돌아와 있었다.회사가 마련해 준 연구실은 극비로, 회장과 그녀의 어시스턴트 외에 연구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책상, PC, 현미경을 만져보다가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놓던 때 사용한 주사기가 한쪽 시험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봤다.PC는 켜져 있고, 카톡은 온라인 상태로 창이 즐비하게 떠 있는데 전부 가족들이 보낸 것으로 그녀가 어디 있는지 묻는 내용이다.그녀가 키보드를 만지자, 그제서야 마음 저 밑에 있던 죽음에 대한 실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다시는 부모님과 가족을 볼 수 없다.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책상에 요오드팅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주사를 놓기 전에 자리에 가져온 것으로,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연구소 안은 여기저기 할 것없이 온통 약품 투성이다. 약상자를 열어보니 약품은 거의 아무도 손댄 흔적이 없다.만약 이 약품만 있으면, 그 아이는,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영차 하고 문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녀가 등을 들고 들어왔는데, 손에 찐빵 한 접시를 가져 와 탕하고 탁자에 놓고는 쌀쌀맞게: “왕비님 식사하시지요!”말을 마치고, 등은 탁자 위에 그냥 두고 나가버렸다.원경릉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게 꿈이었다니!원경릉은 배가 고파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바닥에 놓인 약상자를 봤다.순간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이 약상자는, 연구실에 있던 그 약상자와 똑같다.황급히 약상자를 집어 탁자에 올려놓고 열어 젖혔다. 떨리는 손 끝으로 약 상자 안에 약품을 만지는데, 똑같다, 완전 똑같다, 연구실에 있던 바로 그 약 상자다.눈 앞에 펼쳐진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원경릉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영혼이 시공을 넘나드는 것도 이미 충분히 상식밖의 판타지인데, 약 상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