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계란이가 큰 증조할아버지한테 배신을 당했다고?기화는 지극히 순수한 눈빛으로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우문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기화는 순간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생겨 우문호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사실 견역.... 그러니까 안풍친왕 전하는 본질적으로 늙은 여우 입니다. 그 점은 두 분다 알고 계시죠? 안풍친왕의 말은 1할만 믿어야 해요, 물론 1할도 안 믿는 게 최고지만요.”우문호가 조용히 이를 갈며 매서운 눈빛으로 물었다. “내 딸을 제자로 삼겠다고 하는데, 뭘 가르칠 수 있는가?”기화가 다소 의혹의 눈길로, “제가 못 가르칠 게 뭐죠? 전 뭐든 다 할 수 있는데요.”기화는 자세를 단정하게 고쳐 앉더니 엄숙한 태로도 답했다. “태자 전하, 저를 그저 전문성 없는 인간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이래봬도 수많은 일에 종사해 와서 경찰, 운전기사, 마술사, 도박꾼, 심부름꾼, 판매원, 보표 등 각종 분야 각종 업계를 두루 누비고 다녔습니다. 옅든 깊든 다 관여해 봤고 전에 사업도 했었는데.... 그런데 좌판도 사업은 사업이죠? 제자가 뭘 배우고 싶든 다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생이 정직해서 안풍친왕 전하처럼 그렇게 뒤에서 인신매매같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지요. 이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이게 무슨 소리지?’ 우문호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사실 기화와의 말싸움에 성공할리는 없다. 기화가 북당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이제 와서 싸우면 배은망덕한 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운다고 해도 이길 승산이 없는 게, 정말 기화가 계란이를 안고 가는 날엔 계란이가 놀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기 때문이다. 우문호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큰 일을 아내와 상의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상의한 뒤에 확실하게 답하도록 하지.”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비 마마 의견을 존중해야죠. 어서 가서 물어보세요. 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우문호는 탕양에게 원경릉을 부르라고 하고 바로 소월각으로 갔다.원경릉도
기화가 우문호에게 얘기했다. “아내 분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에너지가 있죠.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물질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걸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물질을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불 같은 걸 말이죠. 우리는 불을 볼 수 있지만 많은 물질이 불꽃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공기 같은 것도 안에 연소가 가능한 기체 즉 산소나 수소 같은 게 있거든요. 공기 중에서 그 기체들을 뽑아내기만 하면 불을 붙일 수 있어요. 계란이는 그런 불씨를 구별해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가졌어요. 불씨에 재빨리 불을 붙여 기체를 연소시킬 수 있죠. 그래서 불씨를 제거한 거예요. 그럼 계란이는 기체를 제어하게 되도 쉽게 불을 붙여 커다란 화재를 일으킬 리는 없게 되죠. 계란이가 자라서 마음이 성숙해지면 이 능력은 다시 돌려줄 겁니다.”우문호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당황한 채 물었다. “무슨 뜻이지? 계란....이가 공기 중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그게 뭐가 이상한데요? 우주에 에너지 물질이 이렇게 많은데 바람, 전기, 우뢰 등등등을 제어하는 사람도 있다고요.”“계란이는 왜 할 수 있지? 나는 제어 못 하는데?” 우문호가 묻자 기화가 우문호에게 말했다. “옆에 잔을 들어보세요.”우문호는 옆에 잔을 보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들어올렸다.기화가 만족스럽다는 말투로 설명했다. “보세요, 태자 전하는 컵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잖습니까? 전하의 대뇌가 구별해 낼 수 있는 에너지예요. 전하께서 어떤 물질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건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가능하죠. 예를 들어 무공을 수련하면 담을 뛰어 넘고 솜이나 낙엽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죠. 전하의 모든 행위는 전부 전하의 대뇌가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전하 대뇌의 발육 정도에 달려 있는 거죠.”우문호는 기화를 한참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게. 자네 말을
기화는 태자 부부에게 아이를 안으라고 했다.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이제 이 아이가 세살이 될 때부터 매년 한 달씩 와서 성년이 될때까지 제가 배운 걸 전부 가르쳐 주도록 하죠.”우문호가 딸을 안고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럼 계란이가 지금도 여전히 불을 낼 수 있는 건가?”기화가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을 텐데요, 불꽃숭이는 쉽게 연소하는 물질을 완전 장악하고 제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의식에 의존해 불을 낼 수 없습니다. 만약 불꽃숭이 손에 부싯돌을 쥐고 있거나 초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원하면 초왕부를 다 태워버릴 수도 있지요.”기화는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고, “태자비 마마 어딘가에서 곧 다시 뵙겠습니다.”기화는 말을 마치고는 바로 돌아서 나갔다. 그러자 우문호가 궁시렁거렸다. “어딘가는 뭐가 어딘가야? 3년 후에 오는 거잖아? 3년 후에 여기서 보자면 되는 거 아냐? 웬 신비주의 컨셉이야!”하지만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에 주진이 한 말에 따르면 어쩌면 그날이 멀지 않았다. 원경릉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경호가 열릴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어쩌면 이건 뇌 줄기세포 괴사의 조짐일지도 모른다. 만일 원경릉이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가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대비를 해야 했다.원경릉은 양여혜를 찾아가 시공간의 왜곡을 계속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시공간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면 경호가 제대로 작동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약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먼저 가서 원경릉을 데리고 갈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양여혜는 원경릉을 데리고 간다고 해도 위험계수는 경호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경호가 아니라 전체 공간으로 공간과 공간의 연결에 왜곡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전에 원경릉 일행이 갔을 때 다른 공간에 끌려들어갈 위험이 있었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양여혜 자력으로 억지로 끌고 올 수 있었지만 다음 번에도 시공간이 왜곡된 상황에서 사람을
원경릉이 진찰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먼저 맥을 짚어보고는 원경릉을 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셨다.원경릉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청진기를 들고 갔다. 사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진단뿐으로 증상에 따른 치료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할머니와 얘기 끝에 분명 주재상 스스로 내공을 운용하다가 혈관을 터트려 뇌경부에 압력이 다시 높아진 것 같았다. 터진 혈관을 통해 나온 피가 덩어리져 신경을 압박해 다시 실명한 것으로 일련의 증상이 더한 것으로 볼 때 핏덩어리가 압박하는 곳이 이미 상당히 전진해 신경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매우 커졌고, 바로 뇌 줄기세포의 괴사를 일으킬 것이다.어르신들의 퇴임 후 삶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참으로 이런 큰 문제에 부딪히자 그야말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그런데 주재상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물러난 뒤로 희야랑 같이 있으면서 매일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지, 밤 늦게까지 일하다가 잠들 필요도 없지, 일출 보고 일몰 보고 꽃이 피는 걸 보고 꽃이 지는 걸 보고. 긴 시간 느긋하고 편하게 식사하고 차를 마셨으니 난 더이상 여한이 없다.”주재상의 말에 원경릉은 하마터면 정신이 무너져내릴 뻔 했다.태상황은 잿빛으로 타들어간 얼굴로 주재상을 위로하려 헀으나 자신에게 도울 힘이 아무것도 없는 지라 무슨 말을 해도 전부 허망할 뿐이었다.희상궁은 주재상 곁에 앉아 계속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맺혔지만 죽을 힘을 다해 흘리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원경릉과 할머니가 각자 약을 처방해 한방과 양방을 혼합해 잠시라도 병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지 살폈다.하지만 수술말고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시간을 언제까지나 끌 수 없어서 만약 병세가 심각할 경우,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지도 모른다.원경릉은 초왕부에 돌아와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우문호는 괴로워하는 그녀 곁에 가만히 있을 뿐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원경릉은 산후조리중에 크게 마음을 상한 나머지 원기를 많이 잃게
“알겠어!” 우문호는 아마 만두에게 외할머니네 가서 주재상의 병세를 어떻게 치료할지 물어보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킬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우문호는 먼저 만두에게 갔다가 할머니를 부르러 갔다.만두와 경단이가 주머니에 약과를 넣어와 원경릉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 건넸다. “엄마, 나 먹을 거 있는데 엄마 줄까?” 원경릉은 피곤했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안 먹어도 돼. 만두랑 경단이가 먹어. 엄마 머리 좀 봐.”만두가 손뼉을 치고 원경릉의 얼굴을 들고 이리저리 보더니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 조금밖에 안 남았어... 거의 없어져 가니까.”경단이도 얼른 보더니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약과를 떨어뜨렸다. “어떡해? 거의 다 사라졌어.”“왜 이렇게 빠르지?” 만두가 중얼거리며 원경릉의 얼굴을 받쳐든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쩐지 행동이 너무 느렸던 게 연결이 끊어지며 생기는 문제였을 것이다. “엄마, 어떡해? 경호는 아직 갈 수 없는데.” 경단이는 무서워서 맨발로 침대에 기어올라와 원경릉 곁에 엎드려 입술만 삐죽거렸다.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지만 자신의 엄마가 슬퍼할게 분명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원경릉은 심호흡을 하고 애써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다독거렸다. “당황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원경릉은 자신을 애써 진정시켰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만두에게 말했다. “넌 어서 밥 먹고 나서 자러 가렴. 주진에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물어봐.”만두가 정신없이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지금 가요, 지금 갈래요! 나 배 안 고파요!”만두가 이 말을 하며 얼른 밖으로 달려갔다가 문 앞에서 다시 돌아와 원경릉의 목을 끌어 안고 볼에 뽀뽀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채 울먹거렸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아무일도 없을 거예요. 기다리세요.”“우리 만두 착하지!” 원경릉은 만두가 이렇게 당황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재상과 공부한 뒤로 줄곧 침착했던 만두
원경릉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지으려는 듯, “한기가 도나봐요. 할머님, 얼른 감기약 지어주시면 될 것 같아요.”“맥 좀 먼저 짚어보고!” 할머니는 한동안 원경릉의 맥을 짚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우문호가 옆에서 보면서 할머니의 안색이 평소와 다르자 얼른 경단이를 내보내고 물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할머니가 손을 바꿔 계속 맥을 짚으며 되는 대로 우문호의 말에 답했다. “며칠은 걸려야 나아지겠는 걸.”“그럼 계속 약을 먹어야 겠네요.” 우문호가 가슴 아파했다.할머니가 약간 어색한 목소리로, “넌 가서 손난로 가져오라고 해. 이불 속 좀 따듯하게 해주게. 두 손이 어찌나 찬지.. 원.”“네!” 우문호가 재빨리 뛰쳐 나갔다.할머니는 원경릉의 두 손을 이불 속에 넣고 원경릉의 경동맥을 만지더니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듣고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왜요?” 원경릉도 자신의 맥이 이상하다는 걸 진작에 눈치챘으나 만두쪽에서 아직 소식이 없어서 일단 모르는 척 해야 했다.“심장박동도, 맥도 아주 엉망이야. 게다가 조금 멈추기까지 해. 너도 의사니 왜 그런지 알지? 네 대뇌의 약품이랑 관련이 있는 거니?” 할머니가 물었다.원경릉은 움찔움찔 움츠러들었다. 이쪽 방면으론 할머니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도 몰라요, 만두에게 자러 가서 주진에게 상황을 물어보라고 했어요.”“돌아갈 수 있니?” 할머니도 조금 당황하셨다.“경호로는 아직 못 가요. “ 원경릉이 한숨을 내 쉬었다.“그럼 다른 방법은 있고?” 할머니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물었다.원경릉도 할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걱정 마세요. 주진한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할머니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지만 이 일에 할머니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었다.“우문호한테는 일단 모른척 해주세요. 만두가 주진에게 물어본 뒤에 어떤 상황인지 알면 그때 말하기로 해요.” 원경릉이 속삭이자 할머니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위를 내
해동 과정이 이미 시작되어 원경릉의 신체가 탔을 경우 현대의 원경릉이든 북당의 원경릉이든 전부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자 불안한 생각에 휩싸여 주진은 자신의 뺨을 몇 번이고 세게 때려댔다.“주진씨, 주진씨!” 정신없는 가운데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와 그를 애타게 외쳤다.주진이 얼른 일어나 보니 원경주가 흰 가운을 입은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주진은 또다시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원경주는 주진을 일으켜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동생은 구하셨나요?”주진이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아......아뇨. 아직 안에 있어요.”원경주가 경악하며 주진을 버려두고 불길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바로 소방대원들에게 막히자 원경주는 미친사람처럼 마구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놔. 내 동생이 안에 있어… 내 동생이 안에 있다고. 당장 이거 놔!”그러자 소방대원 얼굴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뭐요?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요?”그러고는 서둘러 무전기를 들고 화재 현장에 있는 다른 소방원들에게 외쳤다. “긴급 상황, 긴급 상황. 화재 현장에 아직 사람이 있다. 어서 찾......”원경주는 소방대원이 얘기하는 사이에 그의 손을 뿌리치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위험해요! 들어가면 안 됩니다.....!” 뒤에서 보안요원과 소방대원이 막으러 달려갔지만 원경주는 이미 안으로 뛰어든 뒤였다.모든 연구실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었고, 바닥에 불 탄 잔해들과 불을 끈 시커먼 물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쪽 편은 아직 불이 타고 있어 소방대원이 높은 사다리에 올라 아직까지도 물을 뿌리고 있었다.원경주는 다른데 주의를 기울일 틈 없이 안으로 돌진했는데 소방대원이 와서 원경주를 잡자 원경주가 뿌리치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 동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당신들은 어서 날 따라와요!”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고, 원경주가 이렇게 다급한 것을 보고는 소방대원 세 사람을 같이 보냈다.냉동실이 있는 12층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눈
두 사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원경주의 집으로 돌아갔다.원교수와 원경릉의 엄마는 이미 집에 있었는데 아직 연구실의 화재 사건은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단지 소식을 접하는 시간 차만 있을 뿐이었다.그래서 원경주는 숨기지 않고 바로 그들에게 말했다.원경릉의 엄마는 듣고난 뒤 너무 놀라 손발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으며 그 자리에서 긴 시간동안 굳어 있었다. 원경주가 겨우 진정시켰지만 정신을 잃은 채 울뿐이였다. 전에 원경릉에게 사고가 났을 때 그녀는 우울증에 걸렸었다. 딸이 북당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는데 지금 또 다시 이런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원경릉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떻게 해? 계란이가 막 태어났는데 우리 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위와 여섯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고… 버려두고 가는 건데?”원교수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슬픔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지금은 아내 뿐 아니라 원교수 본인도 충격을 이길 수 없었다.원경주는 눈물을 삼키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 원경릉 엄마의 상태가 좀 안정된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불이 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고 소방대원이 조사할 겁니다. 하지만 동생 일에 대해선 우리가 그래도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주진씨가 한 가지를 떠올렸어요. 우리 같이 한번 상의해 보죠. 가능할지도 모르니깐요.”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즉시 주진을 바라봤다.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로 가슴이 벌렁거리며 그래도 주진이 믿을만한 방안을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다.주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지금 뇌 줄기세포는 완전히 괴사된 것은 아닌 상태로 제가 일종의 약을 주사해 놓았습니다. 지금 원경릉의 몸은 사용할 수 없고 다시 냉동실로 돌려보낸다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수단은 원경릉의 대뇌를 위해 적합한 신체를 찾아주는 것으로 적당한 그릇이라고 하는 편이 좋으려나요. 적당한 온도에서 뇌세포가 재생되고 자가치유하게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