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원경주의 집으로 돌아갔다.원교수와 원경릉의 엄마는 이미 집에 있었는데 아직 연구실의 화재 사건은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단지 소식을 접하는 시간 차만 있을 뿐이었다.그래서 원경주는 숨기지 않고 바로 그들에게 말했다.원경릉의 엄마는 듣고난 뒤 너무 놀라 손발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으며 그 자리에서 긴 시간동안 굳어 있었다. 원경주가 겨우 진정시켰지만 정신을 잃은 채 울뿐이였다. 전에 원경릉에게 사고가 났을 때 그녀는 우울증에 걸렸었다. 딸이 북당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는데 지금 또 다시 이런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원경릉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떻게 해? 계란이가 막 태어났는데 우리 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위와 여섯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고… 버려두고 가는 건데?”원교수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슬픔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지금은 아내 뿐 아니라 원교수 본인도 충격을 이길 수 없었다.원경주는 눈물을 삼키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 원경릉 엄마의 상태가 좀 안정된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불이 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고 소방대원이 조사할 겁니다. 하지만 동생 일에 대해선 우리가 그래도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주진씨가 한 가지를 떠올렸어요. 우리 같이 한번 상의해 보죠. 가능할지도 모르니깐요.”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즉시 주진을 바라봤다.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로 가슴이 벌렁거리며 그래도 주진이 믿을만한 방안을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다.주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지금 뇌 줄기세포는 완전히 괴사된 것은 아닌 상태로 제가 일종의 약을 주사해 놓았습니다. 지금 원경릉의 몸은 사용할 수 없고 다시 냉동실로 돌려보낸다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수단은 원경릉의 대뇌를 위해 적합한 신체를 찾아주는 것으로 적당한 그릇이라고 하는 편이 좋으려나요. 적당한 온도에서 뇌세포가 재생되고 자가치유하게
만두가 북당에서는 울지 않았는데 이 곳에서 큰외삼촌이 묻는 말을 듣자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린 것이다. 만두가 울자 원경릉 엄마는 가슴이 멎으며 몸이 마비가 된 것 같았다. 만두를 보는 원경릉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만두는 잘 울지 않는 아이인데 이렇게 심하게 우는 건 분명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원경주가 슬픔을 참고 일단 만두를 다독이며 의자에 앉히고는 조심히 물어봤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렇지?”만두가 흐르는 눈물을 닦자 코끝이 빨개져서 특히나 불쌍해보였다. 어쩔 줄 몰라하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보더니 결국 외삼촌을 보고 힘들게 말했다. “엄마 빛이 거의 꺼지려고 해요.”다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만두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원경주가 만두를 안고 가만히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진에게 물었다. “주진씨가 얘기한 방법말인데요, 두번째는 우리가 시험해볼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고, 어떤 환경 하에서 뇌 줄기세포가 다시 생겨나거나 회복되는지 심지어 완전한 대뇌로 자라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첫번째 방법 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첫번째 방법이 일단 수술의 난이도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시공간의 왜곡이 나타났는데 원경릉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죠? 주진씨가 전에 닥터 양여혜에게 물었던 적이 있고 닥터 양여혜도 동생을 돕는 셈 치겠다고 했다지만 동생이 무사히 돌아오는 걸 보장할 수 없다고요. 동생이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요.”원경주의 이 말은 주진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두가 근심에 빠져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원경릉 엄마는 소리를 참아가며 눈물을 삼켰는데, 손을 뻗어 만두를 안는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딸이 이 아이들을 두고 가면 아이들은 앞으로 엄마 없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지를.. 그리고 한참 뒤, 주진이 휴대폰을 꺼내 통화기록을 뒤지더
양여혜가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아무 시체나 한 구 가져다가 원경릉의 뇌줄기세포를 이식하겠다는 거잖아요? 할 수는 있지만 가능성이 없어요. 주진씨, 잘 생각해 보세요. 원박사의 의식이 다른 세계의 원경릉은 제어하는데 왜 이 세계의 사람은 제어하지 못 할까요? 이 시대에 매일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원경릉은 그런 사람은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 먼 북당에 있는 원경릉은 제어할 수 있는 거죠?”“왜죠?” 원경주가 목이 멘 채 물었다.양여혜는 원경주의 목소리에서 비통함과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는 위로의 목소리로 답했다. “왜냐면 사람의 의식은 결국 특정한 자기장 하에 액티베이션되는 것으로, 뇌파의 발사와 수렴도 마찬가지예요. 원경릉은 반드시 그녀와 같은 자기장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죠. 물론 이 세상에 반드시 그녀와 부합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그걸 일일이 찾아서 걸러낼 시간이 없을 뿐이죠. 제가 이렇게 얘기해서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알기쉽게 비유하자면 괴담에 보면 시체를 가지고 초혼하는 게 있잖아요. 그럴 때도 부합하는 시체를 찾아요. 조건에 맞는 시체가 아니면 의식은 있더라도 몸이 점점 썩어들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마지막으로 양여혜는 한마디 덧붙였다. “꼭 기억하셔야 돼요. 사흘의 시간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합의를 도출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사실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지만요… 그리고 원박사는 반드시 돌아와야 해요.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가능성은 다 위험합니다. 그래도 첫번째 가능성이 발생할 경우 제가 아는 한 두명이 어쩌면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루 이틀, 늦어도 사흘 안에 원박사를 시공의 터널에서 끌어내야 하니까요.”“누구죠?” 주진은 혹시몰라 물었으나 사실 양여혜가 아는 사람을 그가 다 알리가 없다.하지만 양여혜가 이름을 대는 순간 주진은 살짝 놀랐다.“라진이라는 분으로 주진씨가 아는 안풍친왕비 라만의 아버지세요. 이 분은 늘 시공간을 활보하시
만두는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를 껴안고 말했다. “외할머니, 엄마가 돌아오는 거 기다리세요. 이번에 성공하기만 하면 경호도 열려요. 그럼 엄마는 아무 때나 외할머니 곁에 올 수 있어요. 우리가 늘 엄마 곁에 있는 것처럼요.”할머니는 목이 메어 만두를 꼭 끌어안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만두는 북당으로 돌아가 모든 사실을 원경릉에게 알렸다. 양 박사의 말을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토시 하나까지 전부 그대로 전했다. 혹시라도 똑같이 말하지 않으면 양 박사가 한 말의 함축적 의미를 놓칠까봐 걱정되서였다.원경릉은 연구소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막 이 곳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진이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주진이 있었던 시대에서 얻은 역사적 정보에 따르면 원경릉이 자료를 보관해 두었던 연구소에 불이 났다고 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자연스레 흘러가 수많은 상황이 바뀔 수 있지만 정작 바뀌는 건 미세한 개체일 뿐 큰 흐름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숙명이라고 할까? 원경릉은 오히려 진정이 됐다. 이렇게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 왔는데, 가장 행복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망가져버릴 수는 없다.이곳을 떠나 경호로 가려면 서둘러도 24시간은 넘게 걸리니 이 사실을 우문호에게 얼른 전해야 했다. 하지만 우문호에게 말하기 전에 문득 주재상이 떠올랐다.주재상의 몸은 상당히 안 좋은 상태로 원경릉이 떠날 경우 살아있을 확률은 없다.그럼 주재상을 데리고 경호에 뛰어 들어야 하나? 만약 원경릉에게 한 줄기 살 희망이 있다면 주재상에게도 있을 게 틀림없다. 어쨌든 가지 않으면 주재상한테도 희망이 없다.원경릉은 만두에게 얼른 얘기했다. “만두에 바로 다시 한 번 다녀와 줄래. 엄마가 어쩌면 재상을 같이 데리고 경호에 뛰어내릴 수도 있다고. 만약 우리가 무사히 도착하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재상을 수술할 수 있도록 준비.. 아니다, 넌 우선 이게 가능한지 물어봐줘. 가능하다면 이쪽에서도 준비할 테니까.”만두가 얼른 고개를
우문호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무슨 위기?”원경릉은 공포로 얼룩진 우문호의 얼굴을 보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얘기해야만 했다. 절대 숨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만두가 그쪽을 다녀왔는데 연구소에 불이 나서 내 원래 몸이 해동이 되는 바람에 내가 바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해.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받는 수술로 이 수술의 위험은 주진 말로 크지 않은데 경호를 통해 돌아갈 때 어쩌면 약간...... 미지의 위험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우문호는 원경릉이 첫 마디를 꺼내자마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문호는 입술의 경련을 일으키며 안절부절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 만약 당신이 못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데?”“사흘 후에……” 원경릉은 숨을 아무리 내쉬어도 목이 메어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잠시 후.. “4흘 후에 난… 죽을 거야...”우문호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더니 원경릉을 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끝에 4글자.. 비수 같아.”그러자 원경릉이 위로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돌아가서 수술을 받기만 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그럼 나도 같이 갈거야!” 우문호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원경릉이 놀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자기는 나랑 같이 같 수 없어. 돌아가는 건 위험한 일이야. 우리 얘기했잖아. 같이 위험을 맞지 말자고. 반드시 한 사람은 안전하기로. 기억 안 나? 더욱이 계란이가 아직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됐어. 어떻게 엄마 아빠가 동시에 곁에 없을 수가 있어?”우문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 혼자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 나도 반드시 같이 있을 거야.”원경릉이 말했다. “자기가 나랑 같이 가도 위험이 낮아지는 건 아냐. 만약 우리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일이 생기면 얘들을 두고, 북당을 두고, 자기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 자기야, 지금은 감정이 앞설
잔혹한 고통이 지나가자 우문호는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돌아왔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슬픔을 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경릉 또한 울 수 없었다. 그의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원경릉이 말한 모든 것들은 그에게 있어 낯선 영역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의 유일한 희망은 원경릉의 침착함과 굳센 믿음에서 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준비를 마치고 내일 아침 일찍 먼저 주재상을 찾아가 그의 동의를 구한 뒤, 점심 때 집에 돌아와 원경릉의 친척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우선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경성을 당분간 떠나 있을 거라고만 얘기할 생각이다. 만약 원경릉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엔 마지막 이별이 될 것이겠지만 말이다. 원경릉은 이 일들을 다 마치고 해질 무렵 경호로 출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경호로 가는 일까지 아이들을 속일 수 없다. 원경릉이 말은 안 해도 아이들은 다 알고 있기에 원경릉은 경호에 갈 때 그들과 같이 가고 싶었다. 적어도 가는 길에 가족이 함께 있다면 안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다 준비하는데 우문호는 이미 감정을 다 도려내 버린 듯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다.우문호는 원경릉이 곁에 없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원경릉이 북당에 온 뒤로 단 한 순간도 그녀가 없는 순간이 없었기에 정말 너무나도 두려웠다.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이것 뿐이라니….만두가 깨어나자 원경릉은 경단이, 철떡이, 쌍둥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은 모두 원경릉의 머리에서 빛이 거의 꺼져가는 걸 알아차렸다. 쌍둥이도 비록 나이가 좀 어리지만 알건 다 알기에 모두 가만히 자신의 엄마를 지켰다.“외삼촌이랑 얘기했는데, 외삼촌이 직접 주재상을 집도할 수 있대요. 엄마랑 주재상이 안전하게 도착하면 반드시 주재상을 살릴 수 있다고요.” 만두가 눈시울을 붉혔다.원경릉이 눈물을 참고 만두 손을 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목이 잠긴 채 말했다. “그래, 잘했어!”
거의 날이 밝아왔고 아이들도 곁에서 잠이 들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반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을 계속 설쳤다. 그들은 같이 있는 이 순간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사실을 알고 나서 받아들이기까지 고작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어깨에 책임감이 놓였을 때는 마음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이 어른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 엎드려 조용히 속삭였다. “자기야, 만약 이게 내게 남은 마지막 날이라면 분명 슬픔과 아픔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을 거야. 전에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만약 내가 죽을 때를 예견할 수 있으면 뭘 할까 하고 말이야. 그럼 난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미소, 가장 즐거운 순간을 남겨 줄 거야. 질질 짜면서 모두가 나 때문에 우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이틀 동안 우리 최대한 즐겁게 지내자. 자기의 미소가 가슴에 와 박히도록. 자기도 내 미소를 그렇게 가슴에 간직해 주길 바래. 눈물 말고….”우문호는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참고 울먹이며 답했다. “알았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할 게.”두 사람은 해가 뜨도록 서로 안고 있다가 같이 일어나 머리를 빗고 씻은 뒤에 옆방에 계란이를 보러 갔다.한밤중에 두번이나 깨서 젖을 먹고 기저귀를 갈고, 지금은 깊은 잠에 빠진 아직 한달도 되지 않은 이 아기는 도자기 같이 희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눈썹을 찡그렸다가 다시금 방금 웃었다. 원경릉은 살짝 계란이의 가슴을 쓸어주며 ‘걱정하지 마, 우리 아가. 엄마가 네 곁에 없어도 계속 너를 사랑해. 아빠와 오빠도 계속 네 곁에 있으며 네가 자라는 걸 지켜보며 앞으로 네 인생 길에 희노애락을 함께 겪을 거란다.’라고 속으로 전했다. 그러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가장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게 계란이 곁이였다. 계란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들을 수 없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걸 보지 못 하고, 웃으며 품으로 달려오는 것 마저 볼 수 없다.만두도 급한지 맨발로 달려왔다. 눈
아침 수라를 들고 부부는 황실 별장으로 향했다.주재상을 설득하기 위해 가긴 하지만 주재상은 북당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난이도가 높았다. 주재상은 북당에서 나고 자라 아마 죽더라도 북당에서 죽기를 원할 것임이 틀림 없었다. 별장에 도착해 원경릉은 태상황, 주재상과 소요공에게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지금 낙관적이지 못 해요 재상. 전 치료할 방법이 없지만 재상의 병을 치료할 사람이 있는 곳을 한군데 알고 있어요. 단지 그곳은 다소 위험한 곳으로 반드시 가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시도하지 않으면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고, 다른 방법은 없어요.”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위험한데? 북당인가?”원경릉이 고개를 저었다. “북당이 아닙니다. 그곳은 좀 기이한 곳으로 우리가 경호에 뛰어내려야 갈 수 있으며 위험은 가는 도중에만 있고 거기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게 안전합니다.”“경호에 뛰어내린다고?” 태상황이 화가난듯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지금 경호에 뛰어내리게 하려는 참이냐? 그건 목숨을 내 놓으라는 거잖아?”원경릉이 변명했다. “경호는 표면 한 층만 물일 뿐 물을 뚫고 가면 아래는 통로로 되어 있어 우리가 가고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비교적 위험한 이유는 외부적인 요소의 영향으로 원래 노선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통로에 왜곡이 있기 때문에 다른 통로와 잘못 이어질 수 있는 거죠.”태상황과 소요공이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 마주봤다. ‘경호 아래에 어떻게 통로가 있다는 거지? 통로가 엇갈리면 고작 해야 길을 잘못 드는 건데,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주재상은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됐어, 난 안 가. 그냥 이대로 있기로 하지. 한 사람이 얼마나 살지는 하늘이 정한 것으로 지금 난 여한도 없고 이렇게 가도 만족해. 제일 중요한 건 낙엽이 다시 뿌리로 돌아가듯 죽은 뒤에도 여기 묻히기를 원하네. 내가 돌아가야 할 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며 원경릉을 기쁘게 했다.다섯째는 이전에 다섯 개의 성을 위해 적어도 30년이나 50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20년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국경 방어뿐만 아니라 조정에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아이들이 현대의 경험을 참고하며 지내는 것이 다섯째의 큰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약도성은 이번 지진으로 국고의 돈과 주변 주현의 자원을 사용했다. 북당과 약도성의 백성들의 마음이 끈끈히 묶여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중증 환자들이 회복된 후, 원경릉은 택란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갔다.출발하기 전에 비둘기를 통해 다섯째에게 소식을 전하며 심리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섯째가 택란을 보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란은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할까 봐 사실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또한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던 중 택란은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자고 제안했다. 원경릉은 딸의 강한 생존 본능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니, 다섯째가 딸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너희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고, 그저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좋은 술 몇 병 사 가는건 어떠냐?”그러자 원경릉이 먼저 제안했다.“좋습니다! 사요! 많이 사서 마차에 싣고 가겠습니다!”택란이 급히 대답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섯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데도 아이들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고 사랑이지만 말이다.경성에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서신을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는 멍해졌다.“계란이가 약도성에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얌전하던 딸아이가 몰래 약도성에 갔을 리가 없어.”더구나, 셋째와 넷째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