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원경주의 집으로 돌아갔다.원교수와 원경릉의 엄마는 이미 집에 있었는데 아직 연구실의 화재 사건은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단지 소식을 접하는 시간 차만 있을 뿐이었다.그래서 원경주는 숨기지 않고 바로 그들에게 말했다.원경릉의 엄마는 듣고난 뒤 너무 놀라 손발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으며 그 자리에서 긴 시간동안 굳어 있었다. 원경주가 겨우 진정시켰지만 정신을 잃은 채 울뿐이였다. 전에 원경릉에게 사고가 났을 때 그녀는 우울증에 걸렸었다. 딸이 북당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는데 지금 또 다시 이런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원경릉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떻게 해? 계란이가 막 태어났는데 우리 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위와 여섯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고… 버려두고 가는 건데?”원교수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 슬픔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지금은 아내 뿐 아니라 원교수 본인도 충격을 이길 수 없었다.원경주는 눈물을 삼키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 원경릉 엄마의 상태가 좀 안정된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불이 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고 소방대원이 조사할 겁니다. 하지만 동생 일에 대해선 우리가 그래도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주진씨가 한 가지를 떠올렸어요. 우리 같이 한번 상의해 보죠. 가능할지도 모르니깐요.”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즉시 주진을 바라봤다.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로 가슴이 벌렁거리며 그래도 주진이 믿을만한 방안을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다.주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지금 뇌 줄기세포는 완전히 괴사된 것은 아닌 상태로 제가 일종의 약을 주사해 놓았습니다. 지금 원경릉의 몸은 사용할 수 없고 다시 냉동실로 돌려보낸다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수단은 원경릉의 대뇌를 위해 적합한 신체를 찾아주는 것으로 적당한 그릇이라고 하는 편이 좋으려나요. 적당한 온도에서 뇌세포가 재생되고 자가치유하게
만두가 북당에서는 울지 않았는데 이 곳에서 큰외삼촌이 묻는 말을 듣자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린 것이다. 만두가 울자 원경릉 엄마는 가슴이 멎으며 몸이 마비가 된 것 같았다. 만두를 보는 원경릉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만두는 잘 울지 않는 아이인데 이렇게 심하게 우는 건 분명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원경주가 슬픔을 참고 일단 만두를 다독이며 의자에 앉히고는 조심히 물어봤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렇지?”만두가 흐르는 눈물을 닦자 코끝이 빨개져서 특히나 불쌍해보였다. 어쩔 줄 몰라하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보더니 결국 외삼촌을 보고 힘들게 말했다. “엄마 빛이 거의 꺼지려고 해요.”다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만두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원경주가 만두를 안고 가만히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진에게 물었다. “주진씨가 얘기한 방법말인데요, 두번째는 우리가 시험해볼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고, 어떤 환경 하에서 뇌 줄기세포가 다시 생겨나거나 회복되는지 심지어 완전한 대뇌로 자라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첫번째 방법 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첫번째 방법이 일단 수술의 난이도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시공간의 왜곡이 나타났는데 원경릉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죠? 주진씨가 전에 닥터 양여혜에게 물었던 적이 있고 닥터 양여혜도 동생을 돕는 셈 치겠다고 했다지만 동생이 무사히 돌아오는 걸 보장할 수 없다고요. 동생이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요.”원경주의 이 말은 주진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두가 근심에 빠져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원경릉 엄마는 소리를 참아가며 눈물을 삼켰는데, 손을 뻗어 만두를 안는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딸이 이 아이들을 두고 가면 아이들은 앞으로 엄마 없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지를.. 그리고 한참 뒤, 주진이 휴대폰을 꺼내 통화기록을 뒤지더
양여혜가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아무 시체나 한 구 가져다가 원경릉의 뇌줄기세포를 이식하겠다는 거잖아요? 할 수는 있지만 가능성이 없어요. 주진씨, 잘 생각해 보세요. 원박사의 의식이 다른 세계의 원경릉은 제어하는데 왜 이 세계의 사람은 제어하지 못 할까요? 이 시대에 매일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원경릉은 그런 사람은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 먼 북당에 있는 원경릉은 제어할 수 있는 거죠?”“왜죠?” 원경주가 목이 멘 채 물었다.양여혜는 원경주의 목소리에서 비통함과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는 위로의 목소리로 답했다. “왜냐면 사람의 의식은 결국 특정한 자기장 하에 액티베이션되는 것으로, 뇌파의 발사와 수렴도 마찬가지예요. 원경릉은 반드시 그녀와 같은 자기장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죠. 물론 이 세상에 반드시 그녀와 부합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그걸 일일이 찾아서 걸러낼 시간이 없을 뿐이죠. 제가 이렇게 얘기해서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알기쉽게 비유하자면 괴담에 보면 시체를 가지고 초혼하는 게 있잖아요. 그럴 때도 부합하는 시체를 찾아요. 조건에 맞는 시체가 아니면 의식은 있더라도 몸이 점점 썩어들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마지막으로 양여혜는 한마디 덧붙였다. “꼭 기억하셔야 돼요. 사흘의 시간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합의를 도출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사실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지만요… 그리고 원박사는 반드시 돌아와야 해요.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가능성은 다 위험합니다. 그래도 첫번째 가능성이 발생할 경우 제가 아는 한 두명이 어쩌면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루 이틀, 늦어도 사흘 안에 원박사를 시공의 터널에서 끌어내야 하니까요.”“누구죠?” 주진은 혹시몰라 물었으나 사실 양여혜가 아는 사람을 그가 다 알리가 없다.하지만 양여혜가 이름을 대는 순간 주진은 살짝 놀랐다.“라진이라는 분으로 주진씨가 아는 안풍친왕비 라만의 아버지세요. 이 분은 늘 시공간을 활보하시
만두는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를 껴안고 말했다. “외할머니, 엄마가 돌아오는 거 기다리세요. 이번에 성공하기만 하면 경호도 열려요. 그럼 엄마는 아무 때나 외할머니 곁에 올 수 있어요. 우리가 늘 엄마 곁에 있는 것처럼요.”할머니는 목이 메어 만두를 꼭 끌어안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만두는 북당으로 돌아가 모든 사실을 원경릉에게 알렸다. 양 박사의 말을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토시 하나까지 전부 그대로 전했다. 혹시라도 똑같이 말하지 않으면 양 박사가 한 말의 함축적 의미를 놓칠까봐 걱정되서였다.원경릉은 연구소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막 이 곳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진이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주진이 있었던 시대에서 얻은 역사적 정보에 따르면 원경릉이 자료를 보관해 두었던 연구소에 불이 났다고 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자연스레 흘러가 수많은 상황이 바뀔 수 있지만 정작 바뀌는 건 미세한 개체일 뿐 큰 흐름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숙명이라고 할까? 원경릉은 오히려 진정이 됐다. 이렇게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 왔는데, 가장 행복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망가져버릴 수는 없다.이곳을 떠나 경호로 가려면 서둘러도 24시간은 넘게 걸리니 이 사실을 우문호에게 얼른 전해야 했다. 하지만 우문호에게 말하기 전에 문득 주재상이 떠올랐다.주재상의 몸은 상당히 안 좋은 상태로 원경릉이 떠날 경우 살아있을 확률은 없다.그럼 주재상을 데리고 경호에 뛰어 들어야 하나? 만약 원경릉에게 한 줄기 살 희망이 있다면 주재상에게도 있을 게 틀림없다. 어쨌든 가지 않으면 주재상한테도 희망이 없다.원경릉은 만두에게 얼른 얘기했다. “만두에 바로 다시 한 번 다녀와 줄래. 엄마가 어쩌면 재상을 같이 데리고 경호에 뛰어내릴 수도 있다고. 만약 우리가 무사히 도착하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재상을 수술할 수 있도록 준비.. 아니다, 넌 우선 이게 가능한지 물어봐줘. 가능하다면 이쪽에서도 준비할 테니까.”만두가 얼른 고개를
우문호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무슨 위기?”원경릉은 공포로 얼룩진 우문호의 얼굴을 보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얘기해야만 했다. 절대 숨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만두가 그쪽을 다녀왔는데 연구소에 불이 나서 내 원래 몸이 해동이 되는 바람에 내가 바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해.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받는 수술로 이 수술의 위험은 주진 말로 크지 않은데 경호를 통해 돌아갈 때 어쩌면 약간...... 미지의 위험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우문호는 원경릉이 첫 마디를 꺼내자마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문호는 입술의 경련을 일으키며 안절부절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 만약 당신이 못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데?”“사흘 후에……” 원경릉은 숨을 아무리 내쉬어도 목이 메어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잠시 후.. “4흘 후에 난… 죽을 거야...”우문호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더니 원경릉을 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끝에 4글자.. 비수 같아.”그러자 원경릉이 위로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돌아가서 수술을 받기만 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그럼 나도 같이 갈거야!” 우문호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원경릉이 놀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자기는 나랑 같이 같 수 없어. 돌아가는 건 위험한 일이야. 우리 얘기했잖아. 같이 위험을 맞지 말자고. 반드시 한 사람은 안전하기로. 기억 안 나? 더욱이 계란이가 아직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됐어. 어떻게 엄마 아빠가 동시에 곁에 없을 수가 있어?”우문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 혼자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 나도 반드시 같이 있을 거야.”원경릉이 말했다. “자기가 나랑 같이 가도 위험이 낮아지는 건 아냐. 만약 우리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일이 생기면 얘들을 두고, 북당을 두고, 자기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 자기야, 지금은 감정이 앞설
잔혹한 고통이 지나가자 우문호는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돌아왔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슬픔을 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경릉 또한 울 수 없었다. 그의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원경릉이 말한 모든 것들은 그에게 있어 낯선 영역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의 유일한 희망은 원경릉의 침착함과 굳센 믿음에서 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준비를 마치고 내일 아침 일찍 먼저 주재상을 찾아가 그의 동의를 구한 뒤, 점심 때 집에 돌아와 원경릉의 친척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우선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경성을 당분간 떠나 있을 거라고만 얘기할 생각이다. 만약 원경릉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엔 마지막 이별이 될 것이겠지만 말이다. 원경릉은 이 일들을 다 마치고 해질 무렵 경호로 출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경호로 가는 일까지 아이들을 속일 수 없다. 원경릉이 말은 안 해도 아이들은 다 알고 있기에 원경릉은 경호에 갈 때 그들과 같이 가고 싶었다. 적어도 가는 길에 가족이 함께 있다면 안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다 준비하는데 우문호는 이미 감정을 다 도려내 버린 듯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다.우문호는 원경릉이 곁에 없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원경릉이 북당에 온 뒤로 단 한 순간도 그녀가 없는 순간이 없었기에 정말 너무나도 두려웠다.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이것 뿐이라니….만두가 깨어나자 원경릉은 경단이, 철떡이, 쌍둥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은 모두 원경릉의 머리에서 빛이 거의 꺼져가는 걸 알아차렸다. 쌍둥이도 비록 나이가 좀 어리지만 알건 다 알기에 모두 가만히 자신의 엄마를 지켰다.“외삼촌이랑 얘기했는데, 외삼촌이 직접 주재상을 집도할 수 있대요. 엄마랑 주재상이 안전하게 도착하면 반드시 주재상을 살릴 수 있다고요.” 만두가 눈시울을 붉혔다.원경릉이 눈물을 참고 만두 손을 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목이 잠긴 채 말했다. “그래, 잘했어!”
거의 날이 밝아왔고 아이들도 곁에서 잠이 들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반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을 계속 설쳤다. 그들은 같이 있는 이 순간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사실을 알고 나서 받아들이기까지 고작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어깨에 책임감이 놓였을 때는 마음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이 어른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 엎드려 조용히 속삭였다. “자기야, 만약 이게 내게 남은 마지막 날이라면 분명 슬픔과 아픔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을 거야. 전에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만약 내가 죽을 때를 예견할 수 있으면 뭘 할까 하고 말이야. 그럼 난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미소, 가장 즐거운 순간을 남겨 줄 거야. 질질 짜면서 모두가 나 때문에 우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이틀 동안 우리 최대한 즐겁게 지내자. 자기의 미소가 가슴에 와 박히도록. 자기도 내 미소를 그렇게 가슴에 간직해 주길 바래. 눈물 말고….”우문호는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참고 울먹이며 답했다. “알았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할 게.”두 사람은 해가 뜨도록 서로 안고 있다가 같이 일어나 머리를 빗고 씻은 뒤에 옆방에 계란이를 보러 갔다.한밤중에 두번이나 깨서 젖을 먹고 기저귀를 갈고, 지금은 깊은 잠에 빠진 아직 한달도 되지 않은 이 아기는 도자기 같이 희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눈썹을 찡그렸다가 다시금 방금 웃었다. 원경릉은 살짝 계란이의 가슴을 쓸어주며 ‘걱정하지 마, 우리 아가. 엄마가 네 곁에 없어도 계속 너를 사랑해. 아빠와 오빠도 계속 네 곁에 있으며 네가 자라는 걸 지켜보며 앞으로 네 인생 길에 희노애락을 함께 겪을 거란다.’라고 속으로 전했다. 그러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가장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게 계란이 곁이였다. 계란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들을 수 없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걸 보지 못 하고, 웃으며 품으로 달려오는 것 마저 볼 수 없다.만두도 급한지 맨발로 달려왔다. 눈
아침 수라를 들고 부부는 황실 별장으로 향했다.주재상을 설득하기 위해 가긴 하지만 주재상은 북당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난이도가 높았다. 주재상은 북당에서 나고 자라 아마 죽더라도 북당에서 죽기를 원할 것임이 틀림 없었다. 별장에 도착해 원경릉은 태상황, 주재상과 소요공에게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지금 낙관적이지 못 해요 재상. 전 치료할 방법이 없지만 재상의 병을 치료할 사람이 있는 곳을 한군데 알고 있어요. 단지 그곳은 다소 위험한 곳으로 반드시 가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시도하지 않으면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고, 다른 방법은 없어요.”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위험한데? 북당인가?”원경릉이 고개를 저었다. “북당이 아닙니다. 그곳은 좀 기이한 곳으로 우리가 경호에 뛰어내려야 갈 수 있으며 위험은 가는 도중에만 있고 거기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게 안전합니다.”“경호에 뛰어내린다고?” 태상황이 화가난듯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지금 경호에 뛰어내리게 하려는 참이냐? 그건 목숨을 내 놓으라는 거잖아?”원경릉이 변명했다. “경호는 표면 한 층만 물일 뿐 물을 뚫고 가면 아래는 통로로 되어 있어 우리가 가고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비교적 위험한 이유는 외부적인 요소의 영향으로 원래 노선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통로에 왜곡이 있기 때문에 다른 통로와 잘못 이어질 수 있는 거죠.”태상황과 소요공이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 마주봤다. ‘경호 아래에 어떻게 통로가 있다는 거지? 통로가 엇갈리면 고작 해야 길을 잘못 드는 건데,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주재상은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됐어, 난 안 가. 그냥 이대로 있기로 하지. 한 사람이 얼마나 살지는 하늘이 정한 것으로 지금 난 여한도 없고 이렇게 가도 만족해. 제일 중요한 건 낙엽이 다시 뿌리로 돌아가듯 죽은 뒤에도 여기 묻히기를 원하네. 내가 돌아가야 할 이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