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가 북당에서는 울지 않았는데 이 곳에서 큰외삼촌이 묻는 말을 듣자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린 것이다. 만두가 울자 원경릉 엄마는 가슴이 멎으며 몸이 마비가 된 것 같았다. 만두를 보는 원경릉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만두는 잘 울지 않는 아이인데 이렇게 심하게 우는 건 분명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원경주가 슬픔을 참고 일단 만두를 다독이며 의자에 앉히고는 조심히 물어봤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렇지?”만두가 흐르는 눈물을 닦자 코끝이 빨개져서 특히나 불쌍해보였다. 어쩔 줄 몰라하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보더니 결국 외삼촌을 보고 힘들게 말했다. “엄마 빛이 거의 꺼지려고 해요.”다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만두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원경주가 만두를 안고 가만히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진에게 물었다. “주진씨가 얘기한 방법말인데요, 두번째는 우리가 시험해볼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고, 어떤 환경 하에서 뇌 줄기세포가 다시 생겨나거나 회복되는지 심지어 완전한 대뇌로 자라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첫번째 방법 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첫번째 방법이 일단 수술의 난이도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시공간의 왜곡이 나타났는데 원경릉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죠? 주진씨가 전에 닥터 양여혜에게 물었던 적이 있고 닥터 양여혜도 동생을 돕는 셈 치겠다고 했다지만 동생이 무사히 돌아오는 걸 보장할 수 없다고요. 동생이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요.”원경주의 이 말은 주진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두가 근심에 빠져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원경릉 엄마는 소리를 참아가며 눈물을 삼켰는데, 손을 뻗어 만두를 안는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딸이 이 아이들을 두고 가면 아이들은 앞으로 엄마 없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지를.. 그리고 한참 뒤, 주진이 휴대폰을 꺼내 통화기록을 뒤지더
양여혜가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아무 시체나 한 구 가져다가 원경릉의 뇌줄기세포를 이식하겠다는 거잖아요? 할 수는 있지만 가능성이 없어요. 주진씨, 잘 생각해 보세요. 원박사의 의식이 다른 세계의 원경릉은 제어하는데 왜 이 세계의 사람은 제어하지 못 할까요? 이 시대에 매일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원경릉은 그런 사람은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 먼 북당에 있는 원경릉은 제어할 수 있는 거죠?”“왜죠?” 원경주가 목이 멘 채 물었다.양여혜는 원경주의 목소리에서 비통함과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는 위로의 목소리로 답했다. “왜냐면 사람의 의식은 결국 특정한 자기장 하에 액티베이션되는 것으로, 뇌파의 발사와 수렴도 마찬가지예요. 원경릉은 반드시 그녀와 같은 자기장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죠. 물론 이 세상에 반드시 그녀와 부합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그걸 일일이 찾아서 걸러낼 시간이 없을 뿐이죠. 제가 이렇게 얘기해서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알기쉽게 비유하자면 괴담에 보면 시체를 가지고 초혼하는 게 있잖아요. 그럴 때도 부합하는 시체를 찾아요. 조건에 맞는 시체가 아니면 의식은 있더라도 몸이 점점 썩어들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마지막으로 양여혜는 한마디 덧붙였다. “꼭 기억하셔야 돼요. 사흘의 시간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합의를 도출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사실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지만요… 그리고 원박사는 반드시 돌아와야 해요.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가능성은 다 위험합니다. 그래도 첫번째 가능성이 발생할 경우 제가 아는 한 두명이 어쩌면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루 이틀, 늦어도 사흘 안에 원박사를 시공의 터널에서 끌어내야 하니까요.”“누구죠?” 주진은 혹시몰라 물었으나 사실 양여혜가 아는 사람을 그가 다 알리가 없다.하지만 양여혜가 이름을 대는 순간 주진은 살짝 놀랐다.“라진이라는 분으로 주진씨가 아는 안풍친왕비 라만의 아버지세요. 이 분은 늘 시공간을 활보하시
만두는 떠나기 전에 외할머니를 껴안고 말했다. “외할머니, 엄마가 돌아오는 거 기다리세요. 이번에 성공하기만 하면 경호도 열려요. 그럼 엄마는 아무 때나 외할머니 곁에 올 수 있어요. 우리가 늘 엄마 곁에 있는 것처럼요.”할머니는 목이 메어 만두를 꼭 끌어안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만두는 북당으로 돌아가 모든 사실을 원경릉에게 알렸다. 양 박사의 말을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토시 하나까지 전부 그대로 전했다. 혹시라도 똑같이 말하지 않으면 양 박사가 한 말의 함축적 의미를 놓칠까봐 걱정되서였다.원경릉은 연구소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막 이 곳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진이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주진이 있었던 시대에서 얻은 역사적 정보에 따르면 원경릉이 자료를 보관해 두었던 연구소에 불이 났다고 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자연스레 흘러가 수많은 상황이 바뀔 수 있지만 정작 바뀌는 건 미세한 개체일 뿐 큰 흐름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숙명이라고 할까? 원경릉은 오히려 진정이 됐다. 이렇게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 왔는데, 가장 행복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망가져버릴 수는 없다.이곳을 떠나 경호로 가려면 서둘러도 24시간은 넘게 걸리니 이 사실을 우문호에게 얼른 전해야 했다. 하지만 우문호에게 말하기 전에 문득 주재상이 떠올랐다.주재상의 몸은 상당히 안 좋은 상태로 원경릉이 떠날 경우 살아있을 확률은 없다.그럼 주재상을 데리고 경호에 뛰어 들어야 하나? 만약 원경릉에게 한 줄기 살 희망이 있다면 주재상에게도 있을 게 틀림없다. 어쨌든 가지 않으면 주재상한테도 희망이 없다.원경릉은 만두에게 얼른 얘기했다. “만두에 바로 다시 한 번 다녀와 줄래. 엄마가 어쩌면 재상을 같이 데리고 경호에 뛰어내릴 수도 있다고. 만약 우리가 무사히 도착하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재상을 수술할 수 있도록 준비.. 아니다, 넌 우선 이게 가능한지 물어봐줘. 가능하다면 이쪽에서도 준비할 테니까.”만두가 얼른 고개를
우문호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무슨 위기?”원경릉은 공포로 얼룩진 우문호의 얼굴을 보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얘기해야만 했다. 절대 숨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만두가 그쪽을 다녀왔는데 연구소에 불이 나서 내 원래 몸이 해동이 되는 바람에 내가 바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해.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받는 수술로 이 수술의 위험은 주진 말로 크지 않은데 경호를 통해 돌아갈 때 어쩌면 약간...... 미지의 위험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우문호는 원경릉이 첫 마디를 꺼내자마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문호는 입술의 경련을 일으키며 안절부절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 만약 당신이 못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데?”“사흘 후에……” 원경릉은 숨을 아무리 내쉬어도 목이 메어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잠시 후.. “4흘 후에 난… 죽을 거야...”우문호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더니 원경릉을 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끝에 4글자.. 비수 같아.”그러자 원경릉이 위로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돌아가서 수술을 받기만 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그럼 나도 같이 갈거야!” 우문호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원경릉이 놀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자기는 나랑 같이 같 수 없어. 돌아가는 건 위험한 일이야. 우리 얘기했잖아. 같이 위험을 맞지 말자고. 반드시 한 사람은 안전하기로. 기억 안 나? 더욱이 계란이가 아직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됐어. 어떻게 엄마 아빠가 동시에 곁에 없을 수가 있어?”우문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 혼자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 나도 반드시 같이 있을 거야.”원경릉이 말했다. “자기가 나랑 같이 가도 위험이 낮아지는 건 아냐. 만약 우리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일이 생기면 얘들을 두고, 북당을 두고, 자기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 자기야, 지금은 감정이 앞설
잔혹한 고통이 지나가자 우문호는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돌아왔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슬픔을 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경릉 또한 울 수 없었다. 그의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원경릉이 말한 모든 것들은 그에게 있어 낯선 영역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의 유일한 희망은 원경릉의 침착함과 굳센 믿음에서 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준비를 마치고 내일 아침 일찍 먼저 주재상을 찾아가 그의 동의를 구한 뒤, 점심 때 집에 돌아와 원경릉의 친척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우선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경성을 당분간 떠나 있을 거라고만 얘기할 생각이다. 만약 원경릉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엔 마지막 이별이 될 것이겠지만 말이다. 원경릉은 이 일들을 다 마치고 해질 무렵 경호로 출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경호로 가는 일까지 아이들을 속일 수 없다. 원경릉이 말은 안 해도 아이들은 다 알고 있기에 원경릉은 경호에 갈 때 그들과 같이 가고 싶었다. 적어도 가는 길에 가족이 함께 있다면 안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다 준비하는데 우문호는 이미 감정을 다 도려내 버린 듯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다.우문호는 원경릉이 곁에 없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원경릉이 북당에 온 뒤로 단 한 순간도 그녀가 없는 순간이 없었기에 정말 너무나도 두려웠다.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이것 뿐이라니….만두가 깨어나자 원경릉은 경단이, 철떡이, 쌍둥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은 모두 원경릉의 머리에서 빛이 거의 꺼져가는 걸 알아차렸다. 쌍둥이도 비록 나이가 좀 어리지만 알건 다 알기에 모두 가만히 자신의 엄마를 지켰다.“외삼촌이랑 얘기했는데, 외삼촌이 직접 주재상을 집도할 수 있대요. 엄마랑 주재상이 안전하게 도착하면 반드시 주재상을 살릴 수 있다고요.” 만두가 눈시울을 붉혔다.원경릉이 눈물을 참고 만두 손을 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목이 잠긴 채 말했다. “그래, 잘했어!”
거의 날이 밝아왔고 아이들도 곁에서 잠이 들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반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을 계속 설쳤다. 그들은 같이 있는 이 순간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사실을 알고 나서 받아들이기까지 고작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어깨에 책임감이 놓였을 때는 마음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이 어른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 엎드려 조용히 속삭였다. “자기야, 만약 이게 내게 남은 마지막 날이라면 분명 슬픔과 아픔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을 거야. 전에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만약 내가 죽을 때를 예견할 수 있으면 뭘 할까 하고 말이야. 그럼 난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미소, 가장 즐거운 순간을 남겨 줄 거야. 질질 짜면서 모두가 나 때문에 우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이틀 동안 우리 최대한 즐겁게 지내자. 자기의 미소가 가슴에 와 박히도록. 자기도 내 미소를 그렇게 가슴에 간직해 주길 바래. 눈물 말고….”우문호는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참고 울먹이며 답했다. “알았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할 게.”두 사람은 해가 뜨도록 서로 안고 있다가 같이 일어나 머리를 빗고 씻은 뒤에 옆방에 계란이를 보러 갔다.한밤중에 두번이나 깨서 젖을 먹고 기저귀를 갈고, 지금은 깊은 잠에 빠진 아직 한달도 되지 않은 이 아기는 도자기 같이 희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눈썹을 찡그렸다가 다시금 방금 웃었다. 원경릉은 살짝 계란이의 가슴을 쓸어주며 ‘걱정하지 마, 우리 아가. 엄마가 네 곁에 없어도 계속 너를 사랑해. 아빠와 오빠도 계속 네 곁에 있으며 네가 자라는 걸 지켜보며 앞으로 네 인생 길에 희노애락을 함께 겪을 거란다.’라고 속으로 전했다. 그러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가장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게 계란이 곁이였다. 계란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들을 수 없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걸 보지 못 하고, 웃으며 품으로 달려오는 것 마저 볼 수 없다.만두도 급한지 맨발로 달려왔다. 눈
아침 수라를 들고 부부는 황실 별장으로 향했다.주재상을 설득하기 위해 가긴 하지만 주재상은 북당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난이도가 높았다. 주재상은 북당에서 나고 자라 아마 죽더라도 북당에서 죽기를 원할 것임이 틀림 없었다. 별장에 도착해 원경릉은 태상황, 주재상과 소요공에게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지금 낙관적이지 못 해요 재상. 전 치료할 방법이 없지만 재상의 병을 치료할 사람이 있는 곳을 한군데 알고 있어요. 단지 그곳은 다소 위험한 곳으로 반드시 가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시도하지 않으면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고, 다른 방법은 없어요.”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위험한데? 북당인가?”원경릉이 고개를 저었다. “북당이 아닙니다. 그곳은 좀 기이한 곳으로 우리가 경호에 뛰어내려야 갈 수 있으며 위험은 가는 도중에만 있고 거기 도착하기만 하면 모든 게 안전합니다.”“경호에 뛰어내린다고?” 태상황이 화가난듯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지금 경호에 뛰어내리게 하려는 참이냐? 그건 목숨을 내 놓으라는 거잖아?”원경릉이 변명했다. “경호는 표면 한 층만 물일 뿐 물을 뚫고 가면 아래는 통로로 되어 있어 우리가 가고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비교적 위험한 이유는 외부적인 요소의 영향으로 원래 노선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통로에 왜곡이 있기 때문에 다른 통로와 잘못 이어질 수 있는 거죠.”태상황과 소요공이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 마주봤다. ‘경호 아래에 어떻게 통로가 있다는 거지? 통로가 엇갈리면 고작 해야 길을 잘못 드는 건데,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주재상은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됐어, 난 안 가. 그냥 이대로 있기로 하지. 한 사람이 얼마나 살지는 하늘이 정한 것으로 지금 난 여한도 없고 이렇게 가도 만족해. 제일 중요한 건 낙엽이 다시 뿌리로 돌아가듯 죽은 뒤에도 여기 묻히기를 원하네. 내가 돌아가야 할 이
원경릉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자고 권하고 싶어도 얼마나 확신이 있는지 데이터로 증명할 길이 없고, 가자고 하지 않으면 살 수 있는 약간의 희망조차 사라진다. 그때 소요공이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 “주대유 말은 신경쓰지 말아요. 주대유가 안 가면 제가 묶어서 가면 되니깐요. 태자비 마마, 우리에게 말한 이 계획에 몇 명이나 데리고 갈지, 어떤 능력을 가진 자가 필요하고 길은 얼마나 멀며 얼마나 거기 있어야 할지 모든 것이 준비되면 바로 출발합시다.”원경릉이 소요공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가는 건 많이 갈 필요 없어요. 제가 원래 결정한 것으론 저와 주재상 두 사람만 가고 다른 사람은 전부 데려가지 않는 겁니다.”“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어떻게 두 분이서만 가십니까?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했잖아요? 무공하실 수 있으세요? 자신도 보호하지 못하시면서 주대유까지 보호하실 걸 어떻게 기대하겠어요.” 소요공이 바로 반대했다.원경릉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전 반드시 가야해요.”태상황은 원경릉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읽고 의문을 가졌다. “왜 넌 가야하지? 길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건 너도 길을 모른다는 거잖아. 네가 지도를 그려주면 우리가 가면 그만이야. 넌 갈 필요 없지. 아직 한달도 안된 아이를 떼놓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야?!”일이 이렇게 된 이상 원경릉도 숨길 필요없다는 생각에 우문호에게 눈치를 주고는 말했다. “제가 꼭 가야 하는 이유는 제가 길을 알아서가 아니라, 만약 가지 않으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에요.”태상황의 안색이 변하며 원경릉을 홱 돌아보더니 경악과 걱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어떻게…..?”원경릉은 태상황이 걱정하는 걸 알고 눈물이 터져서, “저.... 저도 전에 머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 재상이랑 같은 상황이에요. 머리에 피가 고이고 없어지지 않아서 약을 먹어도 소용없고 그곳에 가서 저 사람들의 치료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