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반쯤 침상에 꿇어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가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출 뿐 다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의 초조함이 원경릉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지만 아픔을 참을 수 없어 입을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이렇게 족히 한 시진(時辰)을 버틴 그녀는 끝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너무 아파……”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를 덜덜 떨었다.어깨에 화살이 박힐 때 그 충격으로 뼈에 금이 간 것 같았다. 그녀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금이 간 곳이 아려왔다. 우문호는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돌려 어의에게 소리쳤다.“어서 빨리 방법을 생각하라!”“왕야께 자금단이 있으십니까? 자금단은 통증을 좀 멈출 수 있습니다.” 어의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자 무릎을 꿇고 말했다.“본왕이 자금단이 어디 있겠느냐?” 우문호는 성난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제왕의 자금단과 예친왕의 자금단 모두 이전에 그가 아플 때 먹었기에 그의 수중엔 남은 자금단이 없었다.그의 머릿속에 다른 형제들이 떠올랐지만 아무도 자금단을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본왕 여섯째에게 부탁을 해야겠다!”우문호는 회왕을 찾으러 가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그러자 침상에 누워있던 원경릉이 온 힘을 다해 그의 손가락 하나를 움켜잡고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지 마…… 나를 두고 가지 마!”이 모습을 본 탕양이 다급하게 “소인이 가서 구해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재빠르게 달려나갔다.자금단은 지금 왕비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약이다. 회왕은 분명 원경릉에게 자금단을 내어줄 테지만, 만약 회왕부에 노비(魯妃)가 있다면 과연 회왕이 원경릉에게 자금단을 주는 것을 허락을 할까?탕양은 회왕을 찾아가기 전에 명원제를 찾아가 이 상황을 논의해 보려고 했지만, 명원제는 손왕의 상태를 살피고 이미 입궁한 상태였다. 명원제를 찾아갔다가
탕양은 노비가 거절할 줄 예상했기에 곧바로 회왕에게 호소했다.“아뇨. 왕야가 아니라 왕비님입니다. 어젯밤 회왕부에서 초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왕비님과 손왕이 암살을 당할 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로, 손왕은 자금단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미 복용을 했고, 왕비님은 자금단을 먹지 못해 현재 위중한 상태입니다. 회왕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초왕께서 절대로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탕양의 말을 듣고 노비와 회왕은 크게 놀랐다. 노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탕양에게“누가 그랬는지 밝혀졌느냐?”라고 물었다.탕양은 고개를 저으며 “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적들이 왕비가 회왕을 치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왕비를 암살하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했다.탕양은 회왕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고민했지만, 지금 상황이 급하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노비가 놀라서 얼굴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모비, 자금단을 어서 빨리 가져오세요. 저기 서랍 속 통에 담아두었습니다.” 회왕이 다급하게 말했다.노비는 머리를 짚고 혼란스러워하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어 서랍 문을 열고 금색 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상자를 들고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초왕비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했으니 다음엔 우리 회왕에게도 손을 댈 수 있지 않느냐. 본궁은 이 자금단을 절대 초왕비에게 줄 수 없습니다.”회왕은 그런 노비를 보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모비! 초왕비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게다가 초왕비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제 치료는 누가 합니까?”노비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원경릉이 암살을 당할 뻔했다는 소식에 몹시 놀란 듯 몸을 떨었다.“하지만 지금 회왕의 상태를 보세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궁 안에 어의를 불러서 치료하면 금방 나을 겁니다.”노비는 자금단을 손에 꼭 쥐고 말했다.사실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노비를 욕할 수 없다. 어미로서 이 세상에 자식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 있겠는가?“전하,
우문호는 탕양이 가져온 자금단을 빻아서 원경릉에게 먹였다. 원경릉은 자금단을 먹고 나서 떨림이 멈추고 고통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꼈지만 피로감은 여전했다. 그녀는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이 감겼다. 그녀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깊게 잠이 들었지만, 화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꿈을 꾸는 바람에 놀라 깨어났다.우문호는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켰다. 원경릉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녀의 몸에서 화살을 뽑을 당시가 떠올랐다. 선혈이 여기저기로 흩날리고, 화살이 뽑힌 자리에는 살점이 들려있어 뼈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 장면을 생각하니 그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왜 안 자느냐? 아직도 아픈 것이야?”원경릉이 눈을 뜨자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 괜찮아. 걱정 마. 이제 할 일 있으면 가서 일봐.” 원경릉은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우문호는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바쁜일 없다. 내가 널 지킬거야.”원경릉은 힘겹게 눈을 굴려 밖을 내다보았다. “지금 몇 시야?”우문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서 고개를 젓더니 탕양을 보았다.“오시(午時)가 되었습니다.” 탕양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몸을 일으키며 “회왕부로 가야겠어.”라고 말했다.“아니 오늘은 가지 마.”우문호가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회복 다 하면 가거라. 해봤자 회왕이 늘 먹던 약만 전해주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말했다.“안돼. 이틀간 주사를 놔야 해. 이후에는 약만 먹으면 되니 오늘은 꼭 가야 해.”“네 꼴을 봐라. 이 상태로 어떻게 가겠느냐? 고작 이틀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느냐.”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은 화살을 맞았던 어깨를 한번 만져보았다. 통증이 경미한 것을 보니 확실히 자금단이 자금탕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자금단 약 기운이 돌아서 안 아플 때 가야 해. 오늘 내일이 관건이라 주사를 놓지 않으면 회왕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상태를 보고 도저히 그
“어의가 이미 다 처리했다.” 우문호가 말했다.“알아. 하지만 한번 더 소독을 해야 해. 가제를 덧대고 붕대로 감는게 좋겠어.”원경릉이 소독액을 우문호에게 건네며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수긍하는 척했다.“나는 가끔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너는 원경릉이 아니야.”우문호가 말했다.그녀는 우문호가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그럼 나를 초왕의 여인인 초왕비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우문호는 그녀의 말에 설레는 듯 그녀의 코 끝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는 문을 닫고 그녀가 상처를 소독하게끔 웃옷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그녀가 상처 부위에 요오드 용액으로 소독을 시작하자 저릿한 통증이 느껴져 미간을 찌푸렸다. 소독액이 다 마르자 그는 조심스럽게 상처부위를 가제로 싸맸다. 종아리로 날아온 화살은 다행히도 뼈를 빗겼다. 상처가 감염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실 손왕의 부상 정도와 비교하자면 원경릉은 양호한 편이었다. 만약 손왕이 살집이 없었다면 화살은 폐를 관통했을 것이다.“뚱뚱한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둘째 형님이 겁이 많은 사람이라. 말은 안 해도 이번에 엄청 놀랐을 거야.”우문호는 원경릉을 지켜준 손왕이 고마웠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원경릉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원경릉은 손왕이 자신 대신 화살을 맞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손왕이 살아서 다행이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녀는 평생 죄책감을 지고 살았을 것이다. 손왕은 쓰러지는 순간에도 돼지 허벅지 고기를 먹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원경릉은 손왕의 치료가 끝나면 그에게 맞는 다이어트 식단을 만들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노비는 원경릉이 아픈 몸을 이끌고 회왕에게 주사를 놓으러 올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문호의 부축을 받으며 원경릉이 회왕부의 문턱을 넘는 것을 보자, 노비는 방금 전 탕양에게 보인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노비는 기운이 없어
회왕부 안에서 내부 첩자를 조사하려고 하니 우문호와 원경릉은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문호는 원경릉의 상태가 걱정돼 빨리 초왕부로 돌아가 그녀를 쉬게 하고 싶었다. 첩자를 조사하는 것은 꽤나 복잡했다. 회왕의 병 때문에 회왕부에 오는 사람이 많아진 시기라 첩자가 꼭 회왕부 내부 사람이라 단정 짓기 어려웠고, 자주 드나들었던 공주나 친왕이 연루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저녁 무렵, 회왕부에서 첩자를 알아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뜻밖에도 회왕과 함께 궁에서 나온 상궁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문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본왕의 기억이 맞다면, 그 상궁은 회왕이 어릴 때 젖을 물려주던 유모 상궁일 텐데……”유모 상궁은 거의 어미랑 다를 게 없었기에 회왕이 이 사실을 알면 매우 상심할 것이다.“유모 상궁이 독약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치사량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그 독은 회왕을 죽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탕양이 회왕부에서 들은 말은 우문호에게 전했다.“그럼 배후는 밝혀졌느냐?” 우문호가 물었다.탕양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배후는 불지 않고, 한 집안의 목숨이 자신에 손에 달렸다는 말만 하다가 사람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했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회왕부의 유모 상궁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원경릉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자신이 젖까지 먹여가며 키운 회왕을 죽이려고 하다니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그녀가 만약 치사량 수준의 독을 넣었다면 회왕은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과연 그 배후는 누구일까?’배후가 누가 됐던 참으로 영악하다. 젖먹이 때부터 키우던 유모를 포섭하다니.“유모 상궁이 죽자 단서를 찾을 수 없어 배후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탕양에 허탈해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쳐다보며 “기왕이 한 짓일까?” 라고 물었다.“이 사건에서 넌 빠지는 게 좋겠어. 앞으로 이 일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마라. 본왕이 그들은
희상궁도 회왕부의 일을 듣고 놀랐지만, 금방 안정을 되찾은 채 원경릉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말을 할 기운도 없어 눈을 감은 채 잠에 들었다.손왕은 침상에 엎드린 상태로 누워있었고, 그 옆에 손왕비가 직접 그를 돌보고 있었다. 침상 옆에 앉은 손왕비는 어딘가 모르게 자세가 이상했다. 꼿꼿이 허리를 편채 목을 길게 빼고 마치 기린이 아래를 내려다보듯 손왕을 노려보았다. 그에게 눈을 떼지 않는 듯하니 관심을 갖고 보는 것 같았지만 눈빛에는 분노가 비쳤다. 그녀는 화가 나있었다.손왕비는 손왕에 뒷통수에 대고 당신이 무술을 좀 더 열심히 배웠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그녀는 손왕에게 부지런히 무술을 연마하라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먹고 마시기만 하며 온몸을 지방으로 가득 채웠고, 행동은 날이 갈수록 굼떠졌다.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본 손왕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잘 오셨습니다. 이 사람이 정신 좀 차리게 말 좀 해주세요.”우문호는 둘째 형님이 베개에 머리를 푹 집어넣고 손왕비에게 욕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둘째 형의 몸이 회복도 안됐는데, 그런 얘기는 지금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지난밤 황실의 체면을 이 사람이 다 구겼습니다! 뚱뚱한 몸으로 화살을 막은 게 무슨 자랑입니까? 창피해죽겠습니다!” 손왕비는 감정이 격해져 우문호에게 쏘아붙였다.손왕은 파묻었던 얼굴을 빼꼼 드러내더니“어쨌든 본왕이 초왕비를 구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박했다.“무술 연마를 잘 했다면 자객한테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 거야! 초왕비가 그렇게까지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손왕비는 뻔뻔한 손왕의 낯짝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그리고 어쩜 그렇게 얼굴이 두꺼운 거야?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했던 여덟째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친왕들 중에 당신빼고 다 열심히 무술을 잘 하잖아! 심지어 몸이 안좋은 여섯째도 부황께서 손이 빠르다고 칭찬을 하
원경릉의 촉촉한 눈이 미소를 머금은 채 우문호를 보았다.“너 어렸을 때, 개한테 물렸다는 거 말이야.”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입에 담기 부끄러운 어린 시절 사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도 있지않은가? 우문호는 상궁을 내보내고는 원경릉에게 “빨리 자!”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또 잠이 들었다. 그녀는 오래간만에 잠을 푹 잤더니 등뼈가 뻐근했다.“나 이제 안 잘래. 이틀 내내 잤더니 나가서 좀 걷고 싶어.”원경릉은 누워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안 돼.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어딜 나가.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서 치료해.”원경릉은 이틀 내내 회왕부에 가서 회왕에게 주사를 놓았다. 마지막 주사를 놓는 날 그녀는 회왕부에 3일분의 약을 남겨두고 왔기에 오늘은 외출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어 안 나갈 테니까. 너는 빨리 관아로 돌아가.” 원경릉은 그를 재촉했다.“내가 오늘 꼭 관아로 돌아가는 것만 아니었음 여기서 널 감시했을 텐데, 그럼 말 잘 듣고 밖에 돌아다니지 마!” 우문호는 원경릉의 목 바로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초롱초롱한 원경릉의 두 눈을 보니 우문호는 일도 내팽개치고 하루 종일 원경릉과 함께 있고 싶었다.“알겠어, 나 아무 데도 안 갈게.” 그녀는 그를 빨리 관아로 보내기 위해 고분고분 대답했다. 우문호는 가볍게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는 그녀의 볼을 살짝 만졌다. “아니면 내가 너 잠드는 것만 보고 갈게.”우문호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아 됐어! 빨리 가 언제까지 이렇게 떠들 거야, 너 여기 있으면 나도 너랑 얘기하고 싶어서 못 쉬어!“그럼 우리 얘기하자!” 우문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원경릉은 그런 그를 떠밀며 “빨리 가. 일 빨리하고 돌아오면 되잖아?”라고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두 볼을 잡고 쪽하고 입을 맞추고는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좋아 나 진짜 간다? 오늘 저녁에 일찍 돌아올게. 약 잊지 말고
바보는 땅에 엎드리더니 큰 절을 하였다.“일개 초민이 왕야를 뵙습니다!”우문호는 그에게 절을 하라고 시킨 자가 포도대장임을 확신하고 포도대장을 노려보았다. 우문호와 눈이 마주친 포도대장은 고개를 숙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바보에게 최대한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이름이 무엇이냐?”“석(石)이!” 바보는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며 우문호를 쳐다보았다.우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권(宗卷)을 펼치더니“우자양(牛子陽)의 집을 아느냐?” 라고 물었다.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끌끌 찼다.“알아. 죽어 다 죽어. 많아 피가 많아.”라고 말했다.“그 날 무엇을 보았느냐?” 우문호가 되물었다.석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봤지. 아주 긴 보검(寶劍)을 가지고 들어가는 걸 봤지, 엄청 무서워! 내가 그 사람을 한 번 쓱 봤더니 그 사람도 나를 쓱 봤지.”라고 말했다.“그래서 네가 그 사람을 따라갔느냐?” 우문호가 물었다.“무서워 안 가. 왜 따라가! 그 사람 칼이 엄청 길어.” 석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얼마나 길어?”석이는 양팔을 쭉 펴더니 “이만큼!”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칼이 일장(一丈) 정도 된다는 건데, 그만큼 긴 칼은 있을 수가 없었다.“헛소리하지 마! 세상에 그렇게 긴 칼이 어디 있어?” 포도대장은 화가 나서 말했다.“진짜!”석이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치며“정말 길어! 나만 본 게 아니야 걔도 봤어.”라고 말했다.“걔? 걔가 누구냐? 그자는 어디에 있어?” 우문호의 눈이 반짝였다.“개는 이부귀(李福貴)네 집 개야.”석이가 말했다.우문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걔가 아니라 개라고…….”“근데 그 개는 봤어! 칼이 그렇게 길었는데 개는 안 무섭나 봐! 쫓아갔어!” 석이는 개가 쫓아가는 모습을 흉내 냈다. “또 뭘 봤어? 그 사람이 나가는 모습도 봤어?” 보좌관이 석이에게 물었다.석이는 고개를 저으며 “못 봤어, 그리고 그림자만 쓱 지나갔어.”라고 말했다.보좌관은 한숨을 내쉬며 “왕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