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원경릉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그녀를 보니 그의 마음이 아려왔다. 명원제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능력 있는 며느리가 이렇게 누워있으니 은근 마음이 쓰였다.“구사는? 짐이 아침저녁으로 이리로 오라고 하지 않았나?”명원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이에 우문호는 “부황, 소자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자가 그녀를 보필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그럴 수가 있느냐! 이는 엄연한 직무태만이다!” 명원제가 노하였다.명원제가 큰소리를 내는 바람에 우문호는 원경릉이 깰까 걱정이 되었다. 그는 속으로 부황이 이곳에 있어도 도움이 안 되니 빨리 갔으면 했다. 원경릉은 소용돌이 밖에서 천둥이 번쩍번쩍 치는 듯한 느낌에 고막이 아팠다. 그러나 외부에서 들리는 큰 소리가 덕분에 검은 소용돌이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소용돌이 위에 떠있던 생각들도 천천히 정리되어 제자리를 찾는듯한 느낌이었다. “왕비가 움직이셨어요!”기상궁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에 화를 내던 명원제도 잠시 멈추었다. 우문호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꼭 쥐어져있던 그녀의 두 손이 방금 전보다 느슨해져있었다. 원경릉이 천천히 눈을 뜨자, 눈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우문호가 보였다.“일어났어? 많이 아프지?”원경릉은 눈알을 굴릴 힘도 없어서 그저 그를 바라만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둘째 아주버님…….”이라고 말했다.“둘째 형님은 괜찮다.” 우문호는 그녀가 무엇을 묻는지 감이 왔기에 재빨리 대답했다.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회왕…… 약……”이라고 말했다.“그는 괜찮을 거다. 너는 어때? 아직도 아프지?”우문호가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아파……” 원경릉은 온몸이 두드려맞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약 상자에서 진통제를 꺼내 직접 주사하고 싶었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손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이전에 곤장을 맞았을 때에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에 눈물이 쉴 새 없이
우문호는 반쯤 침상에 꿇어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가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출 뿐 다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의 초조함이 원경릉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지만 아픔을 참을 수 없어 입을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이렇게 족히 한 시진(時辰)을 버틴 그녀는 끝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너무 아파……”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를 덜덜 떨었다.어깨에 화살이 박힐 때 그 충격으로 뼈에 금이 간 것 같았다. 그녀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금이 간 곳이 아려왔다. 우문호는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돌려 어의에게 소리쳤다.“어서 빨리 방법을 생각하라!”“왕야께 자금단이 있으십니까? 자금단은 통증을 좀 멈출 수 있습니다.” 어의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자 무릎을 꿇고 말했다.“본왕이 자금단이 어디 있겠느냐?” 우문호는 성난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제왕의 자금단과 예친왕의 자금단 모두 이전에 그가 아플 때 먹었기에 그의 수중엔 남은 자금단이 없었다.그의 머릿속에 다른 형제들이 떠올랐지만 아무도 자금단을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본왕 여섯째에게 부탁을 해야겠다!”우문호는 회왕을 찾으러 가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그러자 침상에 누워있던 원경릉이 온 힘을 다해 그의 손가락 하나를 움켜잡고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지 마…… 나를 두고 가지 마!”이 모습을 본 탕양이 다급하게 “소인이 가서 구해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재빠르게 달려나갔다.자금단은 지금 왕비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약이다. 회왕은 분명 원경릉에게 자금단을 내어줄 테지만, 만약 회왕부에 노비(魯妃)가 있다면 과연 회왕이 원경릉에게 자금단을 주는 것을 허락을 할까?탕양은 회왕을 찾아가기 전에 명원제를 찾아가 이 상황을 논의해 보려고 했지만, 명원제는 손왕의 상태를 살피고 이미 입궁한 상태였다. 명원제를 찾아갔다가
탕양은 노비가 거절할 줄 예상했기에 곧바로 회왕에게 호소했다.“아뇨. 왕야가 아니라 왕비님입니다. 어젯밤 회왕부에서 초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왕비님과 손왕이 암살을 당할 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로, 손왕은 자금단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미 복용을 했고, 왕비님은 자금단을 먹지 못해 현재 위중한 상태입니다. 회왕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초왕께서 절대로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탕양의 말을 듣고 노비와 회왕은 크게 놀랐다. 노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탕양에게“누가 그랬는지 밝혀졌느냐?”라고 물었다.탕양은 고개를 저으며 “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적들이 왕비가 회왕을 치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왕비를 암살하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했다.탕양은 회왕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고민했지만, 지금 상황이 급하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노비가 놀라서 얼굴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모비, 자금단을 어서 빨리 가져오세요. 저기 서랍 속 통에 담아두었습니다.” 회왕이 다급하게 말했다.노비는 머리를 짚고 혼란스러워하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어 서랍 문을 열고 금색 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상자를 들고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초왕비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했으니 다음엔 우리 회왕에게도 손을 댈 수 있지 않느냐. 본궁은 이 자금단을 절대 초왕비에게 줄 수 없습니다.”회왕은 그런 노비를 보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모비! 초왕비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게다가 초왕비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제 치료는 누가 합니까?”노비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원경릉이 암살을 당할 뻔했다는 소식에 몹시 놀란 듯 몸을 떨었다.“하지만 지금 회왕의 상태를 보세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궁 안에 어의를 불러서 치료하면 금방 나을 겁니다.”노비는 자금단을 손에 꼭 쥐고 말했다.사실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노비를 욕할 수 없다. 어미로서 이 세상에 자식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 있겠는가?“전하,
우문호는 탕양이 가져온 자금단을 빻아서 원경릉에게 먹였다. 원경릉은 자금단을 먹고 나서 떨림이 멈추고 고통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꼈지만 피로감은 여전했다. 그녀는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이 감겼다. 그녀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깊게 잠이 들었지만, 화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꿈을 꾸는 바람에 놀라 깨어났다.우문호는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켰다. 원경릉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녀의 몸에서 화살을 뽑을 당시가 떠올랐다. 선혈이 여기저기로 흩날리고, 화살이 뽑힌 자리에는 살점이 들려있어 뼈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 장면을 생각하니 그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왜 안 자느냐? 아직도 아픈 것이야?”원경릉이 눈을 뜨자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 괜찮아. 걱정 마. 이제 할 일 있으면 가서 일봐.” 원경릉은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우문호는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바쁜일 없다. 내가 널 지킬거야.”원경릉은 힘겹게 눈을 굴려 밖을 내다보았다. “지금 몇 시야?”우문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서 고개를 젓더니 탕양을 보았다.“오시(午時)가 되었습니다.” 탕양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몸을 일으키며 “회왕부로 가야겠어.”라고 말했다.“아니 오늘은 가지 마.”우문호가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회복 다 하면 가거라. 해봤자 회왕이 늘 먹던 약만 전해주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말했다.“안돼. 이틀간 주사를 놔야 해. 이후에는 약만 먹으면 되니 오늘은 꼭 가야 해.”“네 꼴을 봐라. 이 상태로 어떻게 가겠느냐? 고작 이틀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느냐.”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은 화살을 맞았던 어깨를 한번 만져보았다. 통증이 경미한 것을 보니 확실히 자금단이 자금탕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자금단 약 기운이 돌아서 안 아플 때 가야 해. 오늘 내일이 관건이라 주사를 놓지 않으면 회왕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상태를 보고 도저히 그
“어의가 이미 다 처리했다.” 우문호가 말했다.“알아. 하지만 한번 더 소독을 해야 해. 가제를 덧대고 붕대로 감는게 좋겠어.”원경릉이 소독액을 우문호에게 건네며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수긍하는 척했다.“나는 가끔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너는 원경릉이 아니야.”우문호가 말했다.그녀는 우문호가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그럼 나를 초왕의 여인인 초왕비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우문호는 그녀의 말에 설레는 듯 그녀의 코 끝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는 문을 닫고 그녀가 상처를 소독하게끔 웃옷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그녀가 상처 부위에 요오드 용액으로 소독을 시작하자 저릿한 통증이 느껴져 미간을 찌푸렸다. 소독액이 다 마르자 그는 조심스럽게 상처부위를 가제로 싸맸다. 종아리로 날아온 화살은 다행히도 뼈를 빗겼다. 상처가 감염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실 손왕의 부상 정도와 비교하자면 원경릉은 양호한 편이었다. 만약 손왕이 살집이 없었다면 화살은 폐를 관통했을 것이다.“뚱뚱한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둘째 형님이 겁이 많은 사람이라. 말은 안 해도 이번에 엄청 놀랐을 거야.”우문호는 원경릉을 지켜준 손왕이 고마웠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원경릉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원경릉은 손왕이 자신 대신 화살을 맞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손왕이 살아서 다행이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녀는 평생 죄책감을 지고 살았을 것이다. 손왕은 쓰러지는 순간에도 돼지 허벅지 고기를 먹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원경릉은 손왕의 치료가 끝나면 그에게 맞는 다이어트 식단을 만들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노비는 원경릉이 아픈 몸을 이끌고 회왕에게 주사를 놓으러 올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문호의 부축을 받으며 원경릉이 회왕부의 문턱을 넘는 것을 보자, 노비는 방금 전 탕양에게 보인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노비는 기운이 없어
회왕부 안에서 내부 첩자를 조사하려고 하니 우문호와 원경릉은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문호는 원경릉의 상태가 걱정돼 빨리 초왕부로 돌아가 그녀를 쉬게 하고 싶었다. 첩자를 조사하는 것은 꽤나 복잡했다. 회왕의 병 때문에 회왕부에 오는 사람이 많아진 시기라 첩자가 꼭 회왕부 내부 사람이라 단정 짓기 어려웠고, 자주 드나들었던 공주나 친왕이 연루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저녁 무렵, 회왕부에서 첩자를 알아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뜻밖에도 회왕과 함께 궁에서 나온 상궁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문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본왕의 기억이 맞다면, 그 상궁은 회왕이 어릴 때 젖을 물려주던 유모 상궁일 텐데……”유모 상궁은 거의 어미랑 다를 게 없었기에 회왕이 이 사실을 알면 매우 상심할 것이다.“유모 상궁이 독약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치사량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그 독은 회왕을 죽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탕양이 회왕부에서 들은 말은 우문호에게 전했다.“그럼 배후는 밝혀졌느냐?” 우문호가 물었다.탕양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배후는 불지 않고, 한 집안의 목숨이 자신에 손에 달렸다는 말만 하다가 사람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했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회왕부의 유모 상궁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원경릉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자신이 젖까지 먹여가며 키운 회왕을 죽이려고 하다니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그녀가 만약 치사량 수준의 독을 넣었다면 회왕은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과연 그 배후는 누구일까?’배후가 누가 됐던 참으로 영악하다. 젖먹이 때부터 키우던 유모를 포섭하다니.“유모 상궁이 죽자 단서를 찾을 수 없어 배후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탕양에 허탈해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쳐다보며 “기왕이 한 짓일까?” 라고 물었다.“이 사건에서 넌 빠지는 게 좋겠어. 앞으로 이 일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마라. 본왕이 그들은
희상궁도 회왕부의 일을 듣고 놀랐지만, 금방 안정을 되찾은 채 원경릉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말을 할 기운도 없어 눈을 감은 채 잠에 들었다.손왕은 침상에 엎드린 상태로 누워있었고, 그 옆에 손왕비가 직접 그를 돌보고 있었다. 침상 옆에 앉은 손왕비는 어딘가 모르게 자세가 이상했다. 꼿꼿이 허리를 편채 목을 길게 빼고 마치 기린이 아래를 내려다보듯 손왕을 노려보았다. 그에게 눈을 떼지 않는 듯하니 관심을 갖고 보는 것 같았지만 눈빛에는 분노가 비쳤다. 그녀는 화가 나있었다.손왕비는 손왕에 뒷통수에 대고 당신이 무술을 좀 더 열심히 배웠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그녀는 손왕에게 부지런히 무술을 연마하라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먹고 마시기만 하며 온몸을 지방으로 가득 채웠고, 행동은 날이 갈수록 굼떠졌다.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본 손왕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잘 오셨습니다. 이 사람이 정신 좀 차리게 말 좀 해주세요.”우문호는 둘째 형님이 베개에 머리를 푹 집어넣고 손왕비에게 욕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둘째 형의 몸이 회복도 안됐는데, 그런 얘기는 지금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지난밤 황실의 체면을 이 사람이 다 구겼습니다! 뚱뚱한 몸으로 화살을 막은 게 무슨 자랑입니까? 창피해죽겠습니다!” 손왕비는 감정이 격해져 우문호에게 쏘아붙였다.손왕은 파묻었던 얼굴을 빼꼼 드러내더니“어쨌든 본왕이 초왕비를 구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박했다.“무술 연마를 잘 했다면 자객한테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 거야! 초왕비가 그렇게까지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손왕비는 뻔뻔한 손왕의 낯짝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그리고 어쩜 그렇게 얼굴이 두꺼운 거야?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했던 여덟째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친왕들 중에 당신빼고 다 열심히 무술을 잘 하잖아! 심지어 몸이 안좋은 여섯째도 부황께서 손이 빠르다고 칭찬을 하
원경릉의 촉촉한 눈이 미소를 머금은 채 우문호를 보았다.“너 어렸을 때, 개한테 물렸다는 거 말이야.”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입에 담기 부끄러운 어린 시절 사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도 있지않은가? 우문호는 상궁을 내보내고는 원경릉에게 “빨리 자!”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또 잠이 들었다. 그녀는 오래간만에 잠을 푹 잤더니 등뼈가 뻐근했다.“나 이제 안 잘래. 이틀 내내 잤더니 나가서 좀 걷고 싶어.”원경릉은 누워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안 돼.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어딜 나가.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서 치료해.”원경릉은 이틀 내내 회왕부에 가서 회왕에게 주사를 놓았다. 마지막 주사를 놓는 날 그녀는 회왕부에 3일분의 약을 남겨두고 왔기에 오늘은 외출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어 안 나갈 테니까. 너는 빨리 관아로 돌아가.” 원경릉은 그를 재촉했다.“내가 오늘 꼭 관아로 돌아가는 것만 아니었음 여기서 널 감시했을 텐데, 그럼 말 잘 듣고 밖에 돌아다니지 마!” 우문호는 원경릉의 목 바로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초롱초롱한 원경릉의 두 눈을 보니 우문호는 일도 내팽개치고 하루 종일 원경릉과 함께 있고 싶었다.“알겠어, 나 아무 데도 안 갈게.” 그녀는 그를 빨리 관아로 보내기 위해 고분고분 대답했다. 우문호는 가볍게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는 그녀의 볼을 살짝 만졌다. “아니면 내가 너 잠드는 것만 보고 갈게.”우문호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아 됐어! 빨리 가 언제까지 이렇게 떠들 거야, 너 여기 있으면 나도 너랑 얘기하고 싶어서 못 쉬어!“그럼 우리 얘기하자!” 우문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원경릉은 그런 그를 떠밀며 “빨리 가. 일 빨리하고 돌아오면 되잖아?”라고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두 볼을 잡고 쪽하고 입을 맞추고는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좋아 나 진짜 간다? 오늘 저녁에 일찍 돌아올게. 약 잊지 말고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