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양을 포박하라제왕은 주명양이 여전히 완강하게 부인하는 것을 보고 일갈하며 말했다. “너와 임소의 일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전부터 너희가 감시해 와서 너희들이 몇 번 불륜을 저질렀는지 샅샅이 다 알고 있어. 손전무도 임소 사람으로 처음엔 너에게 달콤한 미끼로 유혹해 일부러 은자를 빌리게 했어. 네가 그들이 반역을 꾀하는 데 쓸 수백만 냥의 은자를 모아줄지 누가 알았을까. 임소는 이것으로 널 더욱 협박했지. 큰형도 그쪽 사람이 죽였어. 그들의 목적은 네가 친정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외조부를 살해하도록 하는 거야. 그런데 넌 언제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을 작정이냐? 정말 죄를 물을 때는 아무도 널 못 지켜줘.”주명양은 정신이 너무 혼미해져서 제왕을 노려보고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건 절대로 불가능해. 그이가 손전무와 같은 패일 리 없어. 계속 날 위해 손전무를 찾았다고. 날 위해 은자를 돌려받으려 했단 말이야.’‘태산같이 변함없는 약속이 귓가에 쟁쟁한데 어떻게 거짓일 리가 있어? 분명 제왕 이 멍청한 놈이 감히 평남왕을 범인으로 못 잡으니까 이런 구실을 대서 날 위협하는 거겠지, 분명 그런 거야.’이렇게 생각하고 주명양은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말했다. “걸핏하면 네 죄가 어쩌고 하면 내가 무서워 할 거라고 착각하지 마, 난 추호도 당신따위 무섭지 않으니까. 내가 할아버지를 해쳤다고 하는데 증거를 대. 증거를 못 대면 날 모함하는 거야. 그리고 날 동생 어쩌고 하고 부르지 마. 난 당신의 형수님이야. 비록 우문군이 죽었지만 그가 죽기 전에 나와 부부의 정을 끊지 않았으니 당신 나한테 무례하게 굴면 안되지. 멋대로 사람을 물어뜯고 모함할 생각은 하지도 마.”제왕은 주명양에게 아주 실망하고 말았다. 주명양의 이런 모습을 보니 주명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주명취도 죽을 때까지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을 것이다.“보아하니 자백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제왕 얼굴에 오히려 노기가 사라졌다.주명양은 제왕이 이제 포기한 줄 알고 기고만장
평남왕과 안풍친왕 소문주명양이 갇히고 밖에는 비밀에 부쳐졌다.원용의는 당연히 알았는데, 제왕이 그녀에겐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원용의가 다음날 어린 군주를 데리고 초왕부로 가서 원경릉과 이 일을 얘기하며 말했다. “일곱째 생각은 주명양은 살 수 없는 게 확실하다고 해요. 주명양이 할아버지를 독살할 만큼 몹쓸 짓을 할 줄 누가 알았나요. 자매들이 똑같네요. 가엾은 주씨 집안은 지금 가문의 주인도 없는 상태로, 일곱째 말이 틀림없이 뭘 물어도 서로 미루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을 거라네요.”원경릉은 이미 우문호에게 들어서 원용의가 얘기해 주는 게 의외는 아니었지만 주씨 집안의 사람들을 떠올리니 재상이 쓰러진 뒤로 아무도 전체 상황을 지탱하고 나가지 못하는 게 슬퍼졌다.원용의가 말했다. “듣자 하니 주씨 집안 가장이 어머니께 돌아와서 상황을 주관해 달라고 했다는데, 수보부인이 이미 불가에 귀의했으니 집안일은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니 희 상궁에게 주부에 가보라고 해야 할까요?”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희 상궁에게 가서 재상 곁에 있으라고 하는 건 가능하지만 주씨 집안의 일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명분이 없으니 희 상궁을 곤란하게 만들 거야.”“그것도 그러네요!” 원용의는 원경릉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비록 희 상궁과 주재상이 서로 잘 지내지만 어쨌든 부부의 명분이 없으므로 함부로 남의 집에 가면 뒷말을 들을 게 분명하다.원용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 때문에 주재상이 정말 쓰러졌다고 믿고 애석해 했다.동서지간에 잠시 다른 일을 나누고 다시 안왕의 딸 얘기를 하는데 원용의가 말했다. “며칠전에 황달이었다면서요, 지금은 좋아졌나요?”“이제 괜찮을 거예요. 절 찾으러 안 오는 걸 보면.”“괜찮다니 다행이네요. 안왕이 딸을 어찌나 사랑하는지 어쩌면 딸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개과천선할 지도요.”원경릉은 안왕의 호국사 일을 떠올리고 거기에 뭔가 비밀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우문호의 조사 결과가 어떤
태상황과 평남왕평남왕이 손짓으로 말리며 말했다. “여섯째야, 그럴 필요 없어. 저들 중에 몇몇은 진심으로 나라를 위하는 자들로 주변에서 부추겨서 그래. 초심은 좋은 거니 됐어.”태상황이 기분이 상해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반평생을 조정에서 굴러먹었으면서 아직도 사람들한테 부추김이나 당하는게 과인을 화나게 하는 겁니다.”평남왕이 웃으며 말없이 푸바오를 응시하더니 잠시 후 말했다. “눈 늑대를 오래 못 봤군.”“눈 늑대?” 태상황이 순간 평남왕이 어느 눈늑대를 얘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초왕부에 있지요, 눈 늑대를 보고 싶으시면 초왕부에 가서 보면 됩니다.”평남왕이 고개를 흔들며 먼 곳을 향한 눈빛으로 말했다. “적성루의 눈 늑대 말이야.”태상황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살아있나 모르겠네요?”“살아있지!”평남왕이 말했다.태상황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아직 살아있어요? 이렇게 세월이 지났는데, 늑대가 이렇게 오래 사나요?”평남왕이 응하고 대답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생각하는데 얼굴에서 침착한 분위기가 천천히 사라지고 약간 멍하게 변하며 말했다.“형수님이 눈 늑대는 오래 산다고 하셨어, 죽지 않을 수도 있데.”평남왕의 목소리가 약간 바뀌며 아이같이 들리는 게 조금 전과 다르다.평남왕은 쭈그리고 앉아서 손을 뻗어 푸바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푸바오의 털을 빗겨주더니 말했다. “착하지, 오늘 밤은 내가 널 데리고 산책할 거야.”평남왕이 고개를 들어 태상황을 보고 말했다. “여섯째야, 어때?”태상황의 눈빛이 순간 부드럽게 변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있다가 저녁 먹고 우리 푸바오를 데리고 산책 나가요.”평남왕이 즐겁게 아이처럼 깡총거리는 게 방금 성숙하고 신중한 모습과 사뭇 딴판이다.태상황이 평남왕을 보며 작게 탄식했다.“여섯째야, 나 졸려!” 평남왕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태상황이 사람을 시켜 평남왕을 쉬시게 하자 평남왕이 고개를 돌려 태상황에게 미소 짓고 말했다. “나 깨면 우리 또 같이
격변하는 소문바깥 동정이 어떤지 원경릉은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고, 우문호는 일찍 나가서 늦게 귀가해 부부는 대화도 거의 나누지 못했다. 우문호는 기본적으로 돌아와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잠이 들었고 다음날 해가 뜨기 전에 나가서 원경릉과 말 할 여유가 없었다.탕양은 상태가 좋아져서 원경릉을 알아봤지만 반응이 느리고 둔해 홍엽공자가 약을 보내왔는데 탕양이 빨리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약을 쓰고 나자 다음날 정신이 훨씬 또렷하고 뭘 물으면 전처럼 그렇게 굼뜨게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이대로 며칠 더 쉬면 괜찮을 것 같은 게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순조로운 편이다.주재상 일로 대신들과 민간에는 안풍친왕과 평남왕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점 과열됐으나, 우문호는 이를 억제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안풍친왕과 평남왕을 위해 변명하지도 않고 평남왕을 객잔에 묵도록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평남왕이 매일 주부에 드나들게 놔뒀다. 우문호는 주재상의 집에 병문안 뒤에 내각으로 돌아와 의정을 하고 밤이 늦어서야 궁에서 떠났다.본래 주재상의 문하생은 여전히 우문호가 주도해 주기를 기다리며 노신들의 간언과 참소에 동참하지 않았으나, 우문호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다급해져서 우문호에게 중독 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상소문을 올리기 시작했다.우문호는 여전히 거들떠보지 않고 심지어 그들이 일을 크게 만들도록 방임하기까지 했다.이들은 문관과 무관이 다 있고 숫자가 비교적 많아서 일단 소란이 일어날 경우 수습이 불가능할 게 틀림없다.위태부가 그 사실을 우문호에게 일깨워주었으나 우문호는 한사코 신경 쓰지 않고 연못 물이 점점 혼탁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리고 정국이 한창 혼란스러워졌을 때 민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사실 주재상 독살은 안풍친왕이 한 게 아니라 숙나라의 주인이었던 독고가 죽지 않고 몰래 북당에 잠입해서 북당의 일부 조정 대신과 결탁해 북당 정권의 전복을 획책하기 위해 한 짓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독고
우문호와 임소3개의 성지가 거의 동시에 하달되어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던 지난 날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임소가 잡혀온 뒤 우문호가 직접 밤에 심문했다.임소는 경조부 감옥에 갇혔고, 구사에게 잡힐 거라고 꿈에도 상상을 못했었다.그래서 감옥에서 우문호를 보고 냉소를 지으며 대놓고 말했다. “당당한 북당의 태자가 뜻밖에도 약을 쓰다니 얼마나 비굴하고 수치스러운 일인가?”우문호가 의자에 앉아 감옥에 앉아 있는 임소를 눈을 치켜 뜨고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미 알아챈 모양이군.”임소의 소굴에 관해서는 진작에 꼬리를 잡고 있었지만 병사들을 움직이지 않고 외부의 소문이 점점 심해지도록 내버려뒀다가 소란한 정국을 틈타 임소의 본거지에 돌입하도록 했다. 임소가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는 건 데리고 온 사람은 전부 무림의 고수들로 일단 손을 쓰면 8~90%는 도망칠 수 있고, 자신도 무공이 강해 일단 일이 터지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방법을 써야만 했다.평남왕과 안풍친왕을 직접 가리키는 여론을 무르익게 한 것은 그들이 원하던 것으로 기뻐하며 다음 단계 포석을 배치할 것이다. 곧 수많은 그들 사람이 경성으로 들어 올 상황이었다. 그런데 독고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도는 바람에 다음 수에 차질이 생기려는 것이다. 가장 득의양양한 순간에 갑자기 이런 정보가 전해지자 산꼭대기에서 벼랑 끝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혼란을 야기할 게 틀림없다. 반격할 방법도 첩자를 소집해 각처에서 침투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다.그리고 이때 우물물에 약을 타서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적어도 이번에 붙잡은 건 분명 각지 첩자의 우두머리로 임소 이 교활한 미꾸라지 같은 놈은 전에는 잡기가 절대 쉽지 않다. 그는 무공이 매우 뛰어나고 신중해서 예전이었으면 독을 타도 통한다는 보장이 없었는데 이번은 득의양양한 상황과 혼란스럽고 황망한 상황이 손발을 꼬이게 해서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이다.임소가 냉랭하게 말했다.
임소를 어떻게 처리하나임소가 우문호를 한참 노려보더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지 마지못해 말했다. “어째서 당신은 평남왕이 역심을 품지 않았다고 단언하지? 누구든 평남왕과 안풍친왕을 의심할 수 밖에 없잖아.”우문호가 의자에 앉아 극도로 긴장했다가 풀어지듯 고요한 눈으로 말했다. “너희들은 평남왕 전하 탓으로 돌려 정치를 혼란하게 하려했지만 평남왕 전하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어. 평남왕 전하는 정상적이실 때가 적지. 대부분은 아이와 같은 상태셔. 어린 아이가 어떻게 황위를 노릴 수가 있지?”“그럼 안풍친왕은?” 임소도 이점은 아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말했다. “평남왕이 제일 신경 쓰는 건 안풍친왕 부부야. 맑은 정신일 때 그들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 한 일도 아니지. 안풍친왕이 야심이 없다고 하면 북당 사람들은 안 믿을 걸?”우문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북당 사람들은 다 안 믿지만 난 믿어.”임소가 우문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믿는다면 너무 유치한 거야. 큰 일 못하지. 조만간 떨어져 죽겠군.”우문호가 의자에 기대서 평소처럼 말했다. “그건 네가 신경 쓸 거 없고, 네 꼴이나 봐, 독고가 어디 있는지 넌 얘기 못하겠지.”임소가 고개를 돌리더니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능력 있으면 어디 한번 찾아 보시든가. 날 잡았다고 내 입에서 뭘 찾아낼 생각 버리고. 경조부의 어떤 가혹한 형벌을 가해도 난 무서운 적이 없어. 마음껏 어디 한번 해봐.”우문호가 임소를 한참 노려보는데 눈빛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며 말했다. “네 입에서 무슨 말을 꺼낼 생각 없어. 네 본거지를 소탕한 건 단지 널 잡기 위해서야. 난 그 인간 찾는 게 하나도 급하지 않거든.”임소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래? 목적도 달성했는데 딱히 할 말이 없군,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해!”“난 널 안 죽일 거야. 널 홍천이에게 주고 처리하게 할 거니까.” 우문호가 일어나 감방 앞에 다리가 쭉 뻗
독고가 올까“이미 심문했나요?”“심문 했어, 아무 것도 얘기하려 하지 않더군. 그자 같은 자는 형을 가해도 소용없고 남겨둔다고 해도 그자가 입을 연다는 보장도 없어서 죽이고 싶으면 죽여. 다른 건 고려할 필요 없어.” 소홍천의 마음 속에 분노가 북받쳐 올랐다. 처음의 증오와 달리 다시 그가 미워졌다. 오히려 처음에는 어느 날 그가 체포되거나 혹은 잘못을 알지도 모른다는 기대라도 있었다.하지만 우문호의 얘기를 들어보니 줄곧 그녀 혼자만의 일방적인 연민에 불과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언제 가서 볼 생각이야? 결정되면 사람 보내서 알려줘. 일곱째한테 준비하라고 할게.” 우문호는 아무것도 권하지 않고 갔다.소홍천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서 만나야 할지, 만나고 안 만나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 고민했다. 이 남자는 한때 그녀의 마음 속에 긴 시간 자리잡고 있던 사람이다. 그녀가 길고 긴 꿈을 꾸게 만들었으며, 또한 심하게 두 번 차이고 상처투성이가 되게 만들었다.소홍천은 자신이 적군과 아군이 분명히 구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망설이고 번거롭게 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우문호는 집으로 돌아가 원경릉을 안더니 한동안 놔주지 않았다.파란만장한 며칠 사이 우문호는 사실 엄청 큰 압력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임소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만약 정도를 조금만 벗어나도 태자를 폐하자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 수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다행히 우문호는 잘 버텼다.원경릉이 우문호의 등을 살살 토닥여주고 꼭 쓸어주었다. 비록 요 며칠간 물어보지 않았고 오늘 긴급작전으로 임소를 체포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지만, 한밤중에 깰 때마다 우문호가 눈을 뜨고 휘장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는 걸 봤다. 차마 아는척하지 못했을 뿐이다.우문호가 천천히 원경릉을 놔주고 피곤한 얼굴에 일말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임소가 체포됐어. 첩자 하나를 가려낸 거야. 주명양도 죽일 수 있고.”“그럼 이어서……”우문호가 원경릉을 끌어 앉히더니 여전히 비밀
놀잇배원경릉은 태평성대에서 자랐으나 북당에 와서 이미 수년간 몇몇 일을 알게 되었고 특히 국가적 단위와 관계되는 것은 고상한 척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국가의 흥망은 필부의 책임’이란 말은 입에 발린 구호가 아닌 것이 나라의 평화는 선혈을 흘리고 목숨을 바친 대가이기 때문이다.내일 주명양을 처단한다고 해서 우문호가 말했다. “집안에 며칠 가만히 있었으니 내일 당신을 데리고 가서 바람 쐬려고 하는데 우리 둘이 가자 괜찮지?”“어디 가는데?” 원경릉은 사실 오매불망 경호에 가고 싶었지만 경호에 가려면 만두를 데리고 가야 한다.“어디로 갈지 안 정했어. 그냥 바람 쐬러 나가게. 하룻밤 뿐이지만. 모레는 돌아와야 하거든. 그래서 경호는 못 가.” 우문호도 원경릉의 마음을 알고 있다. 마음속에 늘 경호가 걸리는 게 그곳이 집으로 돌아갈 통로이기 때문이다.사실 그가 모르는 건 경호가 원경릉에게 있어 단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뿐 아니라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 주진의 말이 계속 원경릉의 마음에 남아 있다. 주진이 그렇게 MRI를 찍고 싶어 했던 걸로 봐서 분명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경호에 가지 못하니 원경릉이 말했다. “어차피 하루뿐인데 우리 경성 근교를 다니는 건 어때, 아니면 농촌으로 가던지, 어때?”“농촌?”“응, 북당의 농촌, 그러고보니 내가 여기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진짜 농촌을 접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원경릉은 원래 그냥 되는 대로 한 말이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상당히 기대가 됐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 “농촌에 가는 게 뭐가 어려워? 경성에도 농촌이 있는데 경성을 떠날 필요 없어.”“그거 잘 됐다. 우리 내일 바로 출발하자.” 여기 모든 걸 떨쳐 버리고 우문호와 둘이 나가다니 기대된다.원경릉의 눈에서 기쁨을 읽고 우문호는 많이 미안해 져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머리에 입을 맞췄다.5년을 함께 하며 출정했던 시간을 빼고 거의 매일 같이 있어왔다. 우문호는 인생에서 갑자기 원경릉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