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속삭임사공과 점원이 노를 젓자 배는 점점 기슭을 떠나고, 우문호는 흥이 올라 가장자리에 엎드려 아래를 보며 말했다. “고기가 있나?”원경릉이 곁에 앉아 역시 칠흑 같은 수면을 보는데 별과 등불이 비치는 거 말고는 수면 아래는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우문호가 호수 표면을 손으로 젓자 낙엽이 말려들어 손끝을 맴돌다가 빠져버렸다. 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원경릉에게 미소를 지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기쁜 눈빛에 설렘을 느끼며 우문호 곁에 엎드리자 우문호가 그 여세를 몰아 안더니 얼른 원경릉의 입술에 키스했다. 미소가 입가에 피어나며 눈은 말할 수 없이 들떴다.좋을 때다.원경릉은 가슴이 조금 시큰했다. 오늘 밤 왠지 모르겠지만 오직 그만 바라보며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문호의 미소 하나 키스 하나까지 전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고 또 시큰하게 만들었다.원경릉은 한동안 우문호를 이렇게 본 적이 없었다.두 사람이 갑판에 누워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별을 보는데 마치 꿈처럼 아름답고 집에서 슬쩍 빠져나와 배를 타는 건 계획해 본 적도 없어서 죄책감 같은 쾌감이 느껴졌다.원경릉이 연한 미소를 지으며 우문호에게 기대자, 남자다운 입술이 원경릉의 입술에 포개졌고 원경릉이 밀치며 말했다. “누가 있잖아.”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보는데 사공과 점원은 배를 젓는 데만 신경 쓰고 아예 그들을 보지도 않았다. 호수에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 어떻게 손님을 몰래 훔쳐볼 수가 있어?하지만 우문호도 더는 키스하지 않고 조용히 원경릉을 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원 선생은 물론이고 우문호도 이렇게 긴장을 푼 것도 오랜만이다.여전히 걸음걸음 긴장과 압박의 연속이지만 우문호는 전보다 상당히 가뿐했다. 적어도 주도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약속대로 머리를 비우고 고민되는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원 선생, 벌에 쏘일 뻔했던 그때 기억나?” 머릿속에 몇 년 전 처음으로 같이 있던
아름다운 밤뱃사공 부부가 야식을 만들어 살금살금 오더니 두 사람에게 먹으라고 건넸다.뱃사공 아낙은 대략 서른 살이 넘었고 늘 물에서 생계를 꾸리다 보니 걸을 때도 휘청거리는 게 습관이 들어 몸이 약간 흔들렸다. 대부분은 밤에 호수를 유람하고 낮에는 자기 때문에 피부가 희다.뱃사공 아낙은 솜씨가 좋아서 요리를 몇 개 만들었는데 고기볶음, 생선구이, 죽순 볶음에 민물 고기 죽도 끓였다. 우문호도 식욕이 동했다. 오늘 내내 밥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파 원경릉을 앉히고 뱃사공 아낙을 칭찬했다.“향이 좋은 게 분명 맛도 좋겠군.”뱃사공 아낙도 습관적으로 손님과 말을 주고받았으나 이 공자는 특히나 잘생겨서 그에게 칭찬을 받으니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 얼른 손을 젓고 말했다. “조잡한 요리지만 공자와 부인께서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앉아서 같이 먹을까요?” 원경릉이 불렀다.뱃사공 아낙은 손을 내젓고말했다. “아뇨, 아뇨, 같이 안 먹습니다. 저희는 있어요.”말을 마치고 부끄러워서 물러났다.갑판 위에 풍등이 하나 켜지고 요리는 전부 낮은 탁자에 놓였는데 두 사람이 양반다리를 하고 보료에 앉았다. 호수가 출렁이고 별빛이 물에 비쳐 반짝이는 걸 보니 말할 수 없이 낭만적이다.요리는 꽤나 입에 맞았는데 죽순이 연해서 딱 먹기 좋게 신선하고 부드러웠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잔뜩 집어주고 원경릉이 볼이 빵빵해지도록 먹는 걸 보니 즐거웠다. 원경릉이 먹으면서 뱃사공 부부와 점원이 유심히 살펴보니 배를 멈추고 저쪽에서 먹고 있다.그들은 가운데 냄비를 하나 걸어 놓고 반쯤 쪼그리고 둘러앉아서 각자 그릇을 하나씩 들고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다. 뭘 먹는지는 안 보이지만 맛깔나게 먹는다. 뱃사공이 아낙에게 요리를 집어주는 동작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서 그녀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암묵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세상이 다 고요한 이 느낌에 원경릉은 감동했다.강산이 무슨 소용 있고, 황제를 해서 뭐 하나
검 대신 술원경릉은 처음에 둘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인생은 참 기묘한 것이라 그들이 뒤에 고난을 함께 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위왕이 다시 정화를 구할 줄 말이다.“모르겠어, 인연에 달렸지. 그들도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결국 정말 같이 있으려면 어떻게 서로를 대할 지 어려운 문제다.“헤어진다면 너무 안타깝다.”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은 여인으로 어떤 잘못은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반드시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정화는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사실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건 두 사람 일로 주변인은 그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말 외에는 끼어들어 간섭할 수 없다.원경릉은 얘기하다 보니 졸려서 우문호의 어깨에 기대서 잠이 들었는데 우문호는 원경릉을 가슴에 품고 호수에 뜬 별 무리를 보자 마음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이 평안하다.두사람이 나간 뒤 소홍천은 임소를 만나러 경조부에 갔다.원래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어쩌면 이번에 보지 않으면 영원히 툭 털어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소홍천은 임소를 죽이고 싶지 않다. 증오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렇게 오래 준비해서 겨우 잡았는데 임소가 죽지 않으면 쓰일 데가 있을 터다. 그래서 소홍천은 임소를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소홍천은 태자가 결정권을 자신에게 준 것에 감사했다. 우문호는 변한 적이 없고 그들의 우정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김을 받고 있다.우문호의 형제 같고 때론 친구 같은 우정이 있는데 임소가 배신하고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뭐가 있어?그래서 소홍천은 술까지 한 병 들고 그와 얘기하며 임소에게 충분히 변명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어쩌면 그러면서 얼핏 얘기가 새나올 수도 있으니까.심야가 되기 전 제왕은 아직 관아에 있는데 제왕 말고 박원도 있었다.“왔어?” 박원이 소홍천의 손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소홍천은 검대신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소홍천이 박원에게 말했다. “당신도 있
임소와 독대하는 소홍천박원은 정말 기분이 미묘한 게 그간 함께 지내면서 소홍천이 뭘 생각하는지 거의 짐작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줄곧 임소에게 뼈 속 깊이 원한이 맺혀 죽여버리고 싶도록 미워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소홍천은 오히려 술을 가져오다니 다시 옛 꿈을 되살리려고 하는 걸까?박원은 바보 같은 자신을 위해 쓴 웃음을 지었다. 제왕이 꼬드겨서 술이 몇 순배나 돌았다.소홍천이 감옥에 들어가자 그녀를 발견한 임소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임소는 철창 앞에 서서 소홍천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손에 든 술병을 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만찬인가? 그것도 좋지. 직접 날 저승에 보내주겠다는데, 당신을 배신했으니 이 목숨으로 갚으면 이제 앞으로 서로 빚진 건 없는 거야.”소홍천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쇠를 따고 감방 안 짚더미에 앉아 술병을 바닥에 던지더니 말했다. “앉아요, 한잔 하죠.”소홍천은 심지어 임소를 똑바로 보지도 않고 그가 와서 앉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바라봤다.그렇게 한동안 노려봐도 마음에 미동도 일지 않고 심지어 예상했던 미음마저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오기 전보다 잠잠해졌다.소홍천이 술병을 끌러 임소에게 따라주고 평화롭게 말했다. “안심해요, 태자 전하를 대신해서 심문하러 온 거 아니니까. 당신이 절 처음 떠났던 그날 정말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는 거였나요? 저에게 한번도 사랑을 느낀 적 없었죠?”“지금 그게 여전히 중요한가?” 임소가 냉소를 지으며 여전히 눈을 치켜뜨고 비웃었다.소홍천이 슬픈 눈으로 마치 여전히 원망과 미움의 복잡한 정서가 있다는 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중요하지 않겠지만, 저에겐 중요해요.”임소가 소홍천을 한동안 보더니 마치 소홍천의 얼굴에서 그가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려는 듯 보인다. 소홍천은 미움을 참고, 원망을 참고, 눈가의 눈물을 꾹 참으며 임소가 바라보게 놔뒀다.그리고 임소 얼굴에서 비웃음이 서서히 가시더니 말했다. “처음 당
소홍천과 임소의 마지막임소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쩌면 그럴 지도, 부정하지는 않아.”소홍천이 눈물을 닦으며 살구 같은 눈에 원한이 맺혀서 말했다. “도무지 모르겠어요, 무림맹의 맹주라는 귀한 신분으로 왜 독고에게 의탁해야 했던 거죠?”임소가 작게 말했다. “권세, 권력의 맛이지. 일단 한 번 맛보면 돌아갈 수 없어. 몇 년 전 무림맹에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몰려간 일이 있어, 그들이 누구한테 귀순했는지 않아?”“누구죠?” 임소가 거의 이를 갈며 말했다. “안풍친왕 휘하의 섬전위였어. 문파의 수많은 중견인들이 전부 그에게 귀순해 버리고 우리 문파는 갈수록 텅 비어 갔지, 그게 오래 지속되면 무림맹은 유명무실해지고 말 거야. 이에 비해 독고는 내게 약속해 줬어. 무랭맹의 맹주는 사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당신을 후작으로 삼았나요?”임소가 오만하게 말했다. “후작의 작위는 단순한 신분일 뿐이잖아, 나한테는 의미 없지. 내가 원한 건 실질적인 지위야. 독고는 내게 삼군을 총괄하는 대원수의 자리를 약속했어.”소홍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원수? 선비의 대원수인가요? 지금 독고는 선비에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정말 그가 북당을 점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독고는 병마조차 없는데 북막에 의지하면 북막이 그에게 뭘 나눠줄 수 있을까요? 당신은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것도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있나요?”“당신은 독고에게 병마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아?” 임소가 바로 반박했다가 실언했다는 걸 알고 바로 말을 바꿔 말했다. “병마가 없어도 북당에 깔아 놓은 첩자가 있고 그의 지혜와 총명이 있으니 북막 사람도 그와 천하를 나눠야 할 거야.”소홍천이 임소를 노려보며 말했다. “독고에게 병마가 있어요?”임소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거 같아?”소홍천은 술병을 들고 일어서서 나갔다. 한 마디도 더 섞고 싶지 않았다.임소는 소홍천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갑자기 분노가 일더니 말했다.
프로포즈소홍천은 옷을 펄럭이며 나가서 경조부 사람에게 말했다. “왕야와 박대인은 어디서 술을 드시는가?”“관아 후원 정자에 계십니다.”소홍천이 관아 후원으로 가는데 경조부에 올 때는 마음속에 별별 감정들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평온하고 심지어 어떤 게 날아가고 떨어져서 몸이 훨훨 가벼워졌다.관아 후원으로 들어가니 정자 쪽에 사람 소리가 들리고 그림자가 보이는데 성큼성큼 그쪽으로 가자 박원이 막 고개를 들고 소홍천을 봤다. 그녀가 기쁘고 명랑한 표정으로 오는 걸 보고 박원의 마음속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임소를 만나고 나더니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거야?제왕도 보고 바로 박원을 위로하며 말했다. “못 본 척 해. 다시는 상대도 하지 말고.”제왕도 박원을 대신해 화를 내며 소홍천이 보는 눈이 없다며 박원이 좋아해 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며 임소는 쓰레기라고 했다.그런데 소홍천이 바로 박원 앞으로 오는 기세에 박원이 놀라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가만히 소홍천을 바라봤다.소홍천은 마음먹은 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연한 마음으로 말했다. “박원, 전에 날 아내로 맞겠다는 말, 진짜예요 아니에요?”박원이 이 말을 듣고 눈이 커지고 입이 쩍 벌어지는데 제왕도 마찬가지라. 두 사람이 일제히 소홍천을 보고 자극받았나?“말해요!” 소홍천이 급하면서도 조심스럽고 민감한 눈빛이다. 혹시라도 자신을 배신할 까봐 대답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박원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당신이 만약 혼인해 준다면 난 어떤 험한 일이 있어도 당신을 아내로 맞을 겁니다.”소홍천이 뒤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중매인을 찾아 길일을 잡은 뒤 홍매문에 와서 청혼하세요.”얼굴에 우아한 분위기가 퍼지며 입꼬리에 꽃 같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박원이 멍하니 소홍천의 뒷모습을 보며 제왕에게 중얼중얼 말했다.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저한테 그녀를 아내로 맞으라고 했죠?”제왕이 가슴을 치더니 말했다. “얼른 쫓아가 정확하게 물어, 소홍천
습격원경릉이 돌아보더니 배에는 뱃사공과 아낙이 한쪽 구석으로 가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하면서 웃는다.고요하면서도 편안한 밤이다.원경릉이 고개를 돌리자 우문호의 눈에 순식간에 예리함이 번쩍하다가 바로 평정을 회복하는 게 오히려 원경릉의 불안을 가중시켰다.“자기야 오늘 밤 무슨 일 있어?” 우문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응? 무슨 일?”“오늘 밤…… 그냥 단순히 놀러 나온 거야?” 원경릉은 나올 때 우문호가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어서 였던 게 생각났다. 원래는 내일 나가려고 했던 것으로 준비한 게 없다.단지 요즘 정국이 지나치게 긴장돼서 원경릉이 신경이 좀 예민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말했다. “딱히 준비한 거 없어.”“그럼 됐어!” 원경릉이 그제야 웃었다. 이런 밤 뭔가 의외의 일이 일어나는 게 싫다.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원 선생과 나가서 바람 쐬고자 한 거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집을 나설 때 누군가 미행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나장군도 암암리에 수행하고 있고, 미행을 발견하지 마자 다시 돌아갈까도 싶었지만 원 선생의 들뜬 얼굴을 보고 차마 그럴 수 없었다.지금 우문호는 그들이 오늘 밤 사고 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으로 이 밤을, 자신과 원 선생의 약속을 깨지 말기를 바랐다.하지만 보기 좋게 그의 소원은 어그러졌다.놀잇배 몇 척이 순식간에 노를 저어오더니 호수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평온한 밤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살기에 우문호는 얼른 원경릉을 일으키고 다가오는 놀잇배를 주시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약속하자마자 위험이 닥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말했다. “자기가 계획한 거야?”“아니, 상대가 은밀하게 따라왔어.” 우문호가 미안해 하며 원경릉을 선실로 보내더니 말했다. “안에 숨어서 나오지 마. 위험하지 않을 거야. 귀영위가 보호하고 있으니까.”원경릉은 자신의 무공이 형편없어서 우문호 곁에 있으면 발목만 잡을 뿐이란 걸 알고 돌아
불화살화살이 날아들어 불바다를 이루니 우문호가 불화살이 배 선체에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어 불길은 빠르게 타 들어갔다.아낙이 당황하며 소리치는데 말했다. “내 배, 아이고 내 배!”아낙이 달려나가려고 하자 원경릉이 얼른 잡더니 급하게 말했다. “나가면 안 돼요, 위험해요!”아낙은 원경릉에게 잡혀 두 눈 멀쩡히 뜨고 화살이 자신의 생명줄 같은 배에 떨어지는 걸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데 분노로 원경릉을 밀치고 넘어뜨린 뒤 욕하며 말했다. “전부 너 때문이야, 이 악마들, 어서 가, 가버리라고. 그럼 저 사람들이 우리를 놔줄 거야.”아낙은 손아귀 힘이 강해서 원경릉의 얼굴과 머리에 따귀를 때리자 원경릉은 피하지도 못하고 밀 수밖에 없었다.아낙이 바닥에 쓰러져서 대성통곡했다.뱃사공은 자신의 아내가 원경릉에게 떠밀려 바닥에 쓰러진 걸 보고 분노가 치밀어 노를 들고 와 때리는데 선실이 좁고 노는 큰 지라 원경릉은 피할 데가 없어 뱃사공이 머리를 때리는 대로 맞고 하늘이 뱅뱅 돌고 눈앞이 깜깜해졌다.뱃사공이 분노해서 원경릉을 때리고 다시 때리려고 노를 들어 올리는데 원경릉은 우문호가 자기때문에 정신을 뺏길까 봐 뱃사공에게 미안한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손으로 노를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원경릉은 내공이 없었지만 위급한 상황에 발휘되는 힘이 적지 않아서 바로 뱃사공은 바닥에 쓰러졌다.아낙이 똑바로 일어났다가 남편이 넘어진 걸 보고 화살에 맞은 줄 알고 소리치며 달려갔다.원경릉이 고개를 돌리자 불화살이 날아드는 게 보이고 놀라서 엎드리며 뱃사공 아낙을 바닥에 밀쳐 그 화살을 피하게 했다.하지만 아낙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발로 차더니 죽을힘을 다해 뱃사공 곁으로 갔다. 휘청휘청 일어섰는데 원경릉이 보니 아직도 화살이 빗발치고 있는지라 간이 콩알만 해져서 소리쳐 부르는데 화살 한 대가 날아와서 아낙의 팔에 꽉 꽂혔다. 아낙은 바닥에 쓰러지고 뱃사공은 미친 듯이 울부짖는데 노를 들고 날아오는 화살을 막고 아내를 일으키려 했다.원경릉이 이미 한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