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소홍천은 옷을 펄럭이며 나가서 경조부 사람에게 말했다. “왕야와 박대인은 어디서 술을 드시는가?”“관아 후원 정자에 계십니다.”소홍천이 관아 후원으로 가는데 경조부에 올 때는 마음속에 별별 감정들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평온하고 심지어 어떤 게 날아가고 떨어져서 몸이 훨훨 가벼워졌다.관아 후원으로 들어가니 정자 쪽에 사람 소리가 들리고 그림자가 보이는데 성큼성큼 그쪽으로 가자 박원이 막 고개를 들고 소홍천을 봤다. 그녀가 기쁘고 명랑한 표정으로 오는 걸 보고 박원의 마음속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임소를 만나고 나더니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거야?제왕도 보고 바로 박원을 위로하며 말했다. “못 본 척 해. 다시는 상대도 하지 말고.”제왕도 박원을 대신해 화를 내며 소홍천이 보는 눈이 없다며 박원이 좋아해 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며 임소는 쓰레기라고 했다.그런데 소홍천이 바로 박원 앞으로 오는 기세에 박원이 놀라 얼른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가만히 소홍천을 바라봤다.소홍천은 마음먹은 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연한 마음으로 말했다. “박원, 전에 날 아내로 맞겠다는 말, 진짜예요 아니에요?”박원이 이 말을 듣고 눈이 커지고 입이 쩍 벌어지는데 제왕도 마찬가지라. 두 사람이 일제히 소홍천을 보고 자극받았나?“말해요!” 소홍천이 급하면서도 조심스럽고 민감한 눈빛이다. 혹시라도 자신을 배신할 까봐 대답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박원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당신이 만약 혼인해 준다면 난 어떤 험한 일이 있어도 당신을 아내로 맞을 겁니다.”소홍천이 뒤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중매인을 찾아 길일을 잡은 뒤 홍매문에 와서 청혼하세요.”얼굴에 우아한 분위기가 퍼지며 입꼬리에 꽃 같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박원이 멍하니 소홍천의 뒷모습을 보며 제왕에게 중얼중얼 말했다.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저한테 그녀를 아내로 맞으라고 했죠?”제왕이 가슴을 치더니 말했다. “얼른 쫓아가 정확하게 물어, 소홍천
습격원경릉이 돌아보더니 배에는 뱃사공과 아낙이 한쪽 구석으로 가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하면서 웃는다.고요하면서도 편안한 밤이다.원경릉이 고개를 돌리자 우문호의 눈에 순식간에 예리함이 번쩍하다가 바로 평정을 회복하는 게 오히려 원경릉의 불안을 가중시켰다.“자기야 오늘 밤 무슨 일 있어?” 우문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응? 무슨 일?”“오늘 밤…… 그냥 단순히 놀러 나온 거야?” 원경릉은 나올 때 우문호가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어서 였던 게 생각났다. 원래는 내일 나가려고 했던 것으로 준비한 게 없다.단지 요즘 정국이 지나치게 긴장돼서 원경릉이 신경이 좀 예민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말했다. “딱히 준비한 거 없어.”“그럼 됐어!” 원경릉이 그제야 웃었다. 이런 밤 뭔가 의외의 일이 일어나는 게 싫다.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원 선생과 나가서 바람 쐬고자 한 거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집을 나설 때 누군가 미행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나장군도 암암리에 수행하고 있고, 미행을 발견하지 마자 다시 돌아갈까도 싶었지만 원 선생의 들뜬 얼굴을 보고 차마 그럴 수 없었다.지금 우문호는 그들이 오늘 밤 사고 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으로 이 밤을, 자신과 원 선생의 약속을 깨지 말기를 바랐다.하지만 보기 좋게 그의 소원은 어그러졌다.놀잇배 몇 척이 순식간에 노를 저어오더니 호수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평온한 밤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살기에 우문호는 얼른 원경릉을 일으키고 다가오는 놀잇배를 주시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약속하자마자 위험이 닥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말했다. “자기가 계획한 거야?”“아니, 상대가 은밀하게 따라왔어.” 우문호가 미안해 하며 원경릉을 선실로 보내더니 말했다. “안에 숨어서 나오지 마. 위험하지 않을 거야. 귀영위가 보호하고 있으니까.”원경릉은 자신의 무공이 형편없어서 우문호 곁에 있으면 발목만 잡을 뿐이란 걸 알고 돌아
불화살화살이 날아들어 불바다를 이루니 우문호가 불화살이 배 선체에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어 불길은 빠르게 타 들어갔다.아낙이 당황하며 소리치는데 말했다. “내 배, 아이고 내 배!”아낙이 달려나가려고 하자 원경릉이 얼른 잡더니 급하게 말했다. “나가면 안 돼요, 위험해요!”아낙은 원경릉에게 잡혀 두 눈 멀쩡히 뜨고 화살이 자신의 생명줄 같은 배에 떨어지는 걸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데 분노로 원경릉을 밀치고 넘어뜨린 뒤 욕하며 말했다. “전부 너 때문이야, 이 악마들, 어서 가, 가버리라고. 그럼 저 사람들이 우리를 놔줄 거야.”아낙은 손아귀 힘이 강해서 원경릉의 얼굴과 머리에 따귀를 때리자 원경릉은 피하지도 못하고 밀 수밖에 없었다.아낙이 바닥에 쓰러져서 대성통곡했다.뱃사공은 자신의 아내가 원경릉에게 떠밀려 바닥에 쓰러진 걸 보고 분노가 치밀어 노를 들고 와 때리는데 선실이 좁고 노는 큰 지라 원경릉은 피할 데가 없어 뱃사공이 머리를 때리는 대로 맞고 하늘이 뱅뱅 돌고 눈앞이 깜깜해졌다.뱃사공이 분노해서 원경릉을 때리고 다시 때리려고 노를 들어 올리는데 원경릉은 우문호가 자기때문에 정신을 뺏길까 봐 뱃사공에게 미안한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손으로 노를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원경릉은 내공이 없었지만 위급한 상황에 발휘되는 힘이 적지 않아서 바로 뱃사공은 바닥에 쓰러졌다.아낙이 똑바로 일어났다가 남편이 넘어진 걸 보고 화살에 맞은 줄 알고 소리치며 달려갔다.원경릉이 고개를 돌리자 불화살이 날아드는 게 보이고 놀라서 엎드리며 뱃사공 아낙을 바닥에 밀쳐 그 화살을 피하게 했다.하지만 아낙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발로 차더니 죽을힘을 다해 뱃사공 곁으로 갔다. 휘청휘청 일어섰는데 원경릉이 보니 아직도 화살이 빗발치고 있는지라 간이 콩알만 해져서 소리쳐 부르는데 화살 한 대가 날아와서 아낙의 팔에 꽉 꽂혔다. 아낙은 바닥에 쓰러지고 뱃사공은 미친 듯이 울부짖는데 노를 들고 날아오는 화살을 막고 아내를 일으키려 했다.원경릉이 이미 한
자객은 누구인가우문호는 뱃사공을 무섭게 노려봤으나 뱃사공은 온통 아내한테 정신이 팔려서 우문호가 노려보든 말든 신경 쓰일 리가 있나?비록 위급한 상황이었으나 두 사람이 서로 아끼고 보호하는 모습이 한결같다.원경릉이 약상자를 가지고 기어가자 뱃사공이 아내를 보호하며 우문호에게 적의를 드러내는데 우문호가 뱃사공을 밀치며 말했다. “야, 이놈아, 아내 상처를 치료해주려는 거야!”뱃사공은 우문호의 살벌함을 알고, 우문호의 몸에서 위엄이 뿜어져 나와 자신을 짓누르자 망설이더니 천천히 비켜 원경릉이 하는 걸 지켜봤다.원경릉은 아낙에게 마취주사를 놓아 고통을 멈췄다.우문호가 입구를 지키며 마음속으로 열불이 치밀었다. 이번 암살 기도는 우문호가 집을 나오며 미행을 발견했을 때 벌써 준비를 시작해 원 선생과 뱃사공은 선실 안에 있으면 아무 위험이 없었을 텐데, 선실에서 위험이 발생해 원 선생은 자객의 손이 아니라 하마터면 뱃사공의 노에 맞아 죽을 뻔했다.밖에 전황은 갈수록 분명해 지면서 나장군이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암살기도는 종식되었다.호수에 그들이 고용했던 놀잇배와 상대의 배를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다 가버렸고 호수에 떠다니는 잡다한 집기는 그들이 도망칠 때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던지고 도망간 것이다.“나리!” 나 장군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 하나를 가리켰는데 그자는 팔과 가슴에 검을 맞고 나 장군에게 목을 잡힌 채로 꿇어 앉았다.“이번 시도를 계획한 자로 다른 자객들은 다 이자의 말을 들었습니다.”우문호가 바람을 맞으며 우뚝 서 있고 나장군이 꿇려 놓은 검은 옷을 입은 자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검으로 얼굴을 가린 복면을 벗기자, 이자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우문호는 안색이 확 변했다.“적중양(狄中良)?”적중양은 적위명의 서자로 적귀비의 이복동생이다. 그는 적씨 집안이 그런 풍파를 만났을 때 가장 가볍게 연루된 자로, 무공밖에 모르고 다른 일은 전혀 관여하지 않아 적씨 집안이 무너질 때 앞장선 자는 죽였으나 남은 자는 엄하게 꾸짖은 뒤
안왕부로 간 우문호밤중까지 정신없이 바빠서 휴가는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사건을 처리하고 초왕부로 돌아오니 이미 날이 밝았다.우문호는 속으로 너무 미안해서 원경릉에게 말했다. “나갈 때 대략 생각이 있었는데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나 봐. 그들이 덤비지 않으면 우리가 정말 이틀간 놀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서 미안해.”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창백한 얼굴로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바보, 뭐가 미안해? 한밤중의 고요함과 편안함이 살해 기도록 바뀐 거니 본전치기지 뭐.”우문호가 큰 손으로 원경릉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놀랐지? 안색 좀 봐, 뱃사공이 널 때린데 아직 아프지?”“괜찮아, 안 놀랐어. 처음도 아니고 안 무서워.”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꼭 잡았다. 사실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그래도 괜찮은데 걱정되는 건 두 번 세 번 연거푸 암살시도를 당하니 막 북당에 왔을 때의 위험이 떠올랐다.우문호는 원경릉이 뭘 생각하는지 알고 다독거리며 말했다. “이런 날은 금방 끝날 거야. 걱정하지 마.”“응!” 원경릉이 최선을 다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뱃사공과 아낙의 손이 엄청 매워서 통증이 귀까지 이어져 윙윙 울렸다.“방에 가서 좀 쉬어.” “자기야!” 원경릉이 우문호의 옷자락을 잡고 말했다. “적중양은 적씨 집안사람인데 그자가 말한 사왕야는 안왕인데. 정말 안왕일까?”“꼭 안왕이라고 할 수 없지만 모든 건 다시 조사를 해야지.” 우문호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런 일은 원경릉이 너무 많이 알지 않는 게 좋다고 결정했다. 사실 넷째가 전에 아내를 보호하던 방법이 맞다. 바깥 일은 본인이 어떻게든 짊어지면 되므로 집안의 여인에게 알려서 같이 걱정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더욱이 오늘밤 원 선생은 얼굴이 완전 창백해져서 영혼이 가출할 만큼 놀랐다. 우문호는 그동안 원경릉이 계속 자신을 걱정하느라 무서운 일을 겪고 편한 날이 없었다는 생각에, 지금 모든 걸 장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한 힘과
안왕을 보러 간 우문호안왕이 나가서 문 앞에 도착하자 안색이 무거워졌다.본관에서 우문호를 보자 약간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일찍?”우문호는 안왕의 표정이 피곤하고 정신이 살짝 없는듯 한 모습이라 말했다. “어젯밤 밤이슬 맞으러 갔다 왔어? 이 시간까지 안 일어나고.”안왕이 의자에 앉아 우문호를 노려보며 웃더니 말했다. “넌 애가 다섯인데 밤에 잠이 오냐?”우문호도 안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못 자?”“애들이 한밤중에 깨서 울고불고 난리 안쳐?”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의 그런 적 없는데.”안왕이 한숨을 쉬고 억울하다는 듯하지만 목소리에 사랑이 뚝뚝 떨어지며 말했다. “우리 딸은 왜 그렇게 울어대지? 밤새 몇 번을 우는지, 배고프다고 울고 쉬했다고 울고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어. 다섯째야, 무슨 비법 같은 거 없어? 하룻밤만이라도 편안히 잠 좀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안왕은 한동안 이렇게 친근한 말투로 우문호에게 말한 적이 없고 이렇게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보이다니 우문호를 보고 미소가 굳어지며 처량함이 흘러나왔다.안왕의 이 눈빛은 마치 해질녘 길거리에서 배고파 뻗어 있는 늙은 개 같아서 안왕이 애써 감추려고 해도 우문호는 한눈에 알아채고 마는 것이다.“애들이 울고불고 해도 결국 클 텐데 뭐.”우문호는 손에 찻잔을 쥐고 이 말을 마치더니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넷째 형, 우리 사이에는 돌려서 말할 필요 없으니까, 어젯밤에 내가 습격을 당했는데 자객 중 한 명을 잡았어. 적중양이라고, 그 이름 낯설지 않을 거야.”안왕의 눈빛과 기분이 무거워졌지만 미소를 지으며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도록 말했다. “당연히 안 낯설지. 그래서 그자가 내가 지시했다고 해?”“아니 지시했다고는 안 했어, 하지만 한 마디, 언젠가 사왕야가 날 없애 버릴 거라고 했지.” 안왕이 소리 내 웃었으나 눈에는 분노를 감추었는데 그 분노는 결국 매서운 웃음으로 바뀌고, “믿어?”“어떨 거 같아
암살시도와 안왕우문호가 의심의 눈빛으로 넷째의 이런 반응을 보는데, 안왕과 관련이 없다는 걸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사실 적중양이 넷째라고 진술했지만 우문호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안왕이 아니다.누군가 안왕을 끌어들여 국면을 어지럽히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넷째의 반응을 보면 그는 사실전에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사건을 알리고 적중양의 죽음의 소식을 전했을 때 조금도 놀라지 않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적중양은 넷째의 작은 처남이나 넷째 말을 들어보면 적중양에게 미움이 있는 것을 말이다.그래서 그는 알게 되었다.우문호는 입궁해 내각으로 갔다.그리고 냉정언과 구사를 소집해 이 일을 분석했다.냉정언이 살살 탁자를 두드리며 늘 그렇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말했다. “이 일은 안왕 전하께서 계획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안왕 전하는 지금 끈 떨어진 연으로 태자 전하와 대항할 본전이 없고 어렵사리 경성에 돌아왔는데. 움직인다면 이 시점이 아닐 게 틀림없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게 안왕 전하의 딸이 막 태어났다는 점입니다.”구사가 냉정언의 말을 듣고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안왕 전하께서 자본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지금의 혼란한 상황을 틈타 한몫 보려는 거죠. 그리고 마침 딸이 막 태어나서 매일 집에서 아내와 같이 있으니 사람들에게 의심받을 일도 없어요. 두분 어떻게 된 거죠? 안왕 전하께서 어떤 분입니까? 잊으셨나요? 사람이 일단 야심이 생기면 내려놓을 수 없어요. 어쨌든 전 안왕 전하께서 좋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걸 못 믿겠습니다.”우문호가 치명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약 혼란을 틈타 한 몫 잡기를 원했다면 왜 덤벙대는 적중양을 썼을까? 적씨 집안이 비록 가문이 몰락했어도 능력 있는 자가 적지 않은데, 날 죽이는 이런 큰 일이라면 적위명이 직접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는 그르치면 다시는 못 잡을 수도 있어.”“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구사가 멍하니 냉정언을 보고 말했다. “냉대인, 누구 같으세요
안 왕비에게 솔직하게안 왕비가 일어나 안왕을 물끄러미 보고 눈에 가벼운 근심이 덮이며 유모에게 말했다. “아이들 안고 나가게, 왕야와 나눌 말이 있으니.”유모가 예를 취하고 아이를 받아안으려는데 안왕은 주는 게 아쉬워 여전히 어르며 말했다. “할 말 있으면 해, 우리 사이에 못 할 말이 뭐가 있어?”안 왕비가 유모와 시녀를 손짓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더니 안왕 앞에 앉아 말했다. “원래 바보인 척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태자 전하께서 오셔서 딸이 착하게 잘 있냐고 안부를 물었다는 그 말은 못 믿겠네요. 전에 수많은 일을 못 보고 못 들은 체했던 건 당신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큰 일이 벌어져도 기껏해야 내 목이 떨어질 뿐이지만 지금은 못 그래요. 우리 딸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우리 딸이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딸이 요 부인의 두 군주들처럼 되게 할 수 없어요.”안왕이 고개를 들지 않고 손가락으로 여전히 딸의 볼을 만지는데 몸은 굳어지고 표정도 순간 굳어졌다.“왕야, 말해 주세요. 무슨 일이죠?” 안 왕비가 안왕의 손을 잡고 울며 애원했다.안 왕비 비로소 고개를 들고 안 왕비의 두 눈에 공포와 눈물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아려와 안 왕비의 눈물을 훔쳐주고 한동안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작은 처남이 죽었어.”안 왕비가 놀라서 숨이 가빠지며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누가 죽였죠?”“작은 처남이 사람을 데리고 다섯째를 죽이려 했어!” 안왕이 쓴웃음을 지었다.안 왕비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걔가 태자 전하를 시해하려 했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몰라, 태자가 그렇게 말하더군.”“그럼 물어보러 안 가요?” 안 왕비가 마음이 급했다. 적중양이 태자를 죽이려 했다면 태자는 넷째를 오해할 수 있지 않을까?안왕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연아야, 이 일은 내가 개입할 수도 조사할 수도 없어. 심지어 물어볼 수도 없고.”안 왕비 가슴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래, 지금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