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소문바깥 동정이 어떤지 원경릉은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고, 우문호는 일찍 나가서 늦게 귀가해 부부는 대화도 거의 나누지 못했다. 우문호는 기본적으로 돌아와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잠이 들었고 다음날 해가 뜨기 전에 나가서 원경릉과 말 할 여유가 없었다.탕양은 상태가 좋아져서 원경릉을 알아봤지만 반응이 느리고 둔해 홍엽공자가 약을 보내왔는데 탕양이 빨리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약을 쓰고 나자 다음날 정신이 훨씬 또렷하고 뭘 물으면 전처럼 그렇게 굼뜨게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이대로 며칠 더 쉬면 괜찮을 것 같은 게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순조로운 편이다.주재상 일로 대신들과 민간에는 안풍친왕과 평남왕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점 과열됐으나, 우문호는 이를 억제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안풍친왕과 평남왕을 위해 변명하지도 않고 평남왕을 객잔에 묵도록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평남왕이 매일 주부에 드나들게 놔뒀다. 우문호는 주재상의 집에 병문안 뒤에 내각으로 돌아와 의정을 하고 밤이 늦어서야 궁에서 떠났다.본래 주재상의 문하생은 여전히 우문호가 주도해 주기를 기다리며 노신들의 간언과 참소에 동참하지 않았으나, 우문호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다급해져서 우문호에게 중독 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상소문을 올리기 시작했다.우문호는 여전히 거들떠보지 않고 심지어 그들이 일을 크게 만들도록 방임하기까지 했다.이들은 문관과 무관이 다 있고 숫자가 비교적 많아서 일단 소란이 일어날 경우 수습이 불가능할 게 틀림없다.위태부가 그 사실을 우문호에게 일깨워주었으나 우문호는 한사코 신경 쓰지 않고 연못 물이 점점 혼탁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리고 정국이 한창 혼란스러워졌을 때 민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사실 주재상 독살은 안풍친왕이 한 게 아니라 숙나라의 주인이었던 독고가 죽지 않고 몰래 북당에 잠입해서 북당의 일부 조정 대신과 결탁해 북당 정권의 전복을 획책하기 위해 한 짓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독고
우문호와 임소3개의 성지가 거의 동시에 하달되어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던 지난 날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임소가 잡혀온 뒤 우문호가 직접 밤에 심문했다.임소는 경조부 감옥에 갇혔고, 구사에게 잡힐 거라고 꿈에도 상상을 못했었다.그래서 감옥에서 우문호를 보고 냉소를 지으며 대놓고 말했다. “당당한 북당의 태자가 뜻밖에도 약을 쓰다니 얼마나 비굴하고 수치스러운 일인가?”우문호가 의자에 앉아 감옥에 앉아 있는 임소를 눈을 치켜 뜨고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미 알아챈 모양이군.”임소의 소굴에 관해서는 진작에 꼬리를 잡고 있었지만 병사들을 움직이지 않고 외부의 소문이 점점 심해지도록 내버려뒀다가 소란한 정국을 틈타 임소의 본거지에 돌입하도록 했다. 임소가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는 건 데리고 온 사람은 전부 무림의 고수들로 일단 손을 쓰면 8~90%는 도망칠 수 있고, 자신도 무공이 강해 일단 일이 터지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방법을 써야만 했다.평남왕과 안풍친왕을 직접 가리키는 여론을 무르익게 한 것은 그들이 원하던 것으로 기뻐하며 다음 단계 포석을 배치할 것이다. 곧 수많은 그들 사람이 경성으로 들어 올 상황이었다. 그런데 독고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도는 바람에 다음 수에 차질이 생기려는 것이다. 가장 득의양양한 순간에 갑자기 이런 정보가 전해지자 산꼭대기에서 벼랑 끝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혼란을 야기할 게 틀림없다. 반격할 방법도 첩자를 소집해 각처에서 침투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다.그리고 이때 우물물에 약을 타서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적어도 이번에 붙잡은 건 분명 각지 첩자의 우두머리로 임소 이 교활한 미꾸라지 같은 놈은 전에는 잡기가 절대 쉽지 않다. 그는 무공이 매우 뛰어나고 신중해서 예전이었으면 독을 타도 통한다는 보장이 없었는데 이번은 득의양양한 상황과 혼란스럽고 황망한 상황이 손발을 꼬이게 해서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이다.임소가 냉랭하게 말했다.
임소를 어떻게 처리하나임소가 우문호를 한참 노려보더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지 마지못해 말했다. “어째서 당신은 평남왕이 역심을 품지 않았다고 단언하지? 누구든 평남왕과 안풍친왕을 의심할 수 밖에 없잖아.”우문호가 의자에 앉아 극도로 긴장했다가 풀어지듯 고요한 눈으로 말했다. “너희들은 평남왕 전하 탓으로 돌려 정치를 혼란하게 하려했지만 평남왕 전하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어. 평남왕 전하는 정상적이실 때가 적지. 대부분은 아이와 같은 상태셔. 어린 아이가 어떻게 황위를 노릴 수가 있지?”“그럼 안풍친왕은?” 임소도 이점은 아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말했다. “평남왕이 제일 신경 쓰는 건 안풍친왕 부부야. 맑은 정신일 때 그들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 한 일도 아니지. 안풍친왕이 야심이 없다고 하면 북당 사람들은 안 믿을 걸?”우문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북당 사람들은 다 안 믿지만 난 믿어.”임소가 우문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믿는다면 너무 유치한 거야. 큰 일 못하지. 조만간 떨어져 죽겠군.”우문호가 의자에 기대서 평소처럼 말했다. “그건 네가 신경 쓸 거 없고, 네 꼴이나 봐, 독고가 어디 있는지 넌 얘기 못하겠지.”임소가 고개를 돌리더니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능력 있으면 어디 한번 찾아 보시든가. 날 잡았다고 내 입에서 뭘 찾아낼 생각 버리고. 경조부의 어떤 가혹한 형벌을 가해도 난 무서운 적이 없어. 마음껏 어디 한번 해봐.”우문호가 임소를 한참 노려보는데 눈빛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며 말했다. “네 입에서 무슨 말을 꺼낼 생각 없어. 네 본거지를 소탕한 건 단지 널 잡기 위해서야. 난 그 인간 찾는 게 하나도 급하지 않거든.”임소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래? 목적도 달성했는데 딱히 할 말이 없군,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해!”“난 널 안 죽일 거야. 널 홍천이에게 주고 처리하게 할 거니까.” 우문호가 일어나 감방 앞에 다리가 쭉 뻗
독고가 올까“이미 심문했나요?”“심문 했어, 아무 것도 얘기하려 하지 않더군. 그자 같은 자는 형을 가해도 소용없고 남겨둔다고 해도 그자가 입을 연다는 보장도 없어서 죽이고 싶으면 죽여. 다른 건 고려할 필요 없어.” 소홍천의 마음 속에 분노가 북받쳐 올랐다. 처음의 증오와 달리 다시 그가 미워졌다. 오히려 처음에는 어느 날 그가 체포되거나 혹은 잘못을 알지도 모른다는 기대라도 있었다.하지만 우문호의 얘기를 들어보니 줄곧 그녀 혼자만의 일방적인 연민에 불과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언제 가서 볼 생각이야? 결정되면 사람 보내서 알려줘. 일곱째한테 준비하라고 할게.” 우문호는 아무것도 권하지 않고 갔다.소홍천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서 만나야 할지, 만나고 안 만나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 고민했다. 이 남자는 한때 그녀의 마음 속에 긴 시간 자리잡고 있던 사람이다. 그녀가 길고 긴 꿈을 꾸게 만들었으며, 또한 심하게 두 번 차이고 상처투성이가 되게 만들었다.소홍천은 자신이 적군과 아군이 분명히 구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망설이고 번거롭게 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우문호는 집으로 돌아가 원경릉을 안더니 한동안 놔주지 않았다.파란만장한 며칠 사이 우문호는 사실 엄청 큰 압력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임소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만약 정도를 조금만 벗어나도 태자를 폐하자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 수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다행히 우문호는 잘 버텼다.원경릉이 우문호의 등을 살살 토닥여주고 꼭 쓸어주었다. 비록 요 며칠간 물어보지 않았고 오늘 긴급작전으로 임소를 체포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지만, 한밤중에 깰 때마다 우문호가 눈을 뜨고 휘장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는 걸 봤다. 차마 아는척하지 못했을 뿐이다.우문호가 천천히 원경릉을 놔주고 피곤한 얼굴에 일말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임소가 체포됐어. 첩자 하나를 가려낸 거야. 주명양도 죽일 수 있고.”“그럼 이어서……”우문호가 원경릉을 끌어 앉히더니 여전히 비밀
놀잇배원경릉은 태평성대에서 자랐으나 북당에 와서 이미 수년간 몇몇 일을 알게 되었고 특히 국가적 단위와 관계되는 것은 고상한 척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국가의 흥망은 필부의 책임’이란 말은 입에 발린 구호가 아닌 것이 나라의 평화는 선혈을 흘리고 목숨을 바친 대가이기 때문이다.내일 주명양을 처단한다고 해서 우문호가 말했다. “집안에 며칠 가만히 있었으니 내일 당신을 데리고 가서 바람 쐬려고 하는데 우리 둘이 가자 괜찮지?”“어디 가는데?” 원경릉은 사실 오매불망 경호에 가고 싶었지만 경호에 가려면 만두를 데리고 가야 한다.“어디로 갈지 안 정했어. 그냥 바람 쐬러 나가게. 하룻밤 뿐이지만. 모레는 돌아와야 하거든. 그래서 경호는 못 가.” 우문호도 원경릉의 마음을 알고 있다. 마음속에 늘 경호가 걸리는 게 그곳이 집으로 돌아갈 통로이기 때문이다.사실 그가 모르는 건 경호가 원경릉에게 있어 단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뿐 아니라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 주진의 말이 계속 원경릉의 마음에 남아 있다. 주진이 그렇게 MRI를 찍고 싶어 했던 걸로 봐서 분명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경호에 가지 못하니 원경릉이 말했다. “어차피 하루뿐인데 우리 경성 근교를 다니는 건 어때, 아니면 농촌으로 가던지, 어때?”“농촌?”“응, 북당의 농촌, 그러고보니 내가 여기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진짜 농촌을 접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원경릉은 원래 그냥 되는 대로 한 말이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상당히 기대가 됐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 “농촌에 가는 게 뭐가 어려워? 경성에도 농촌이 있는데 경성을 떠날 필요 없어.”“그거 잘 됐다. 우리 내일 바로 출발하자.” 여기 모든 걸 떨쳐 버리고 우문호와 둘이 나가다니 기대된다.원경릉의 눈에서 기쁨을 읽고 우문호는 많이 미안해 져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머리에 입을 맞췄다.5년을 함께 하며 출정했던 시간을 빼고 거의 매일 같이 있어왔다. 우문호는 인생에서 갑자기 원경릉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
사랑의 속삭임사공과 점원이 노를 젓자 배는 점점 기슭을 떠나고, 우문호는 흥이 올라 가장자리에 엎드려 아래를 보며 말했다. “고기가 있나?”원경릉이 곁에 앉아 역시 칠흑 같은 수면을 보는데 별과 등불이 비치는 거 말고는 수면 아래는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우문호가 호수 표면을 손으로 젓자 낙엽이 말려들어 손끝을 맴돌다가 빠져버렸다. 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원경릉에게 미소를 지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기쁜 눈빛에 설렘을 느끼며 우문호 곁에 엎드리자 우문호가 그 여세를 몰아 안더니 얼른 원경릉의 입술에 키스했다. 미소가 입가에 피어나며 눈은 말할 수 없이 들떴다.좋을 때다.원경릉은 가슴이 조금 시큰했다. 오늘 밤 왠지 모르겠지만 오직 그만 바라보며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문호의 미소 하나 키스 하나까지 전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고 또 시큰하게 만들었다.원경릉은 한동안 우문호를 이렇게 본 적이 없었다.두 사람이 갑판에 누워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별을 보는데 마치 꿈처럼 아름답고 집에서 슬쩍 빠져나와 배를 타는 건 계획해 본 적도 없어서 죄책감 같은 쾌감이 느껴졌다.원경릉이 연한 미소를 지으며 우문호에게 기대자, 남자다운 입술이 원경릉의 입술에 포개졌고 원경릉이 밀치며 말했다. “누가 있잖아.”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보는데 사공과 점원은 배를 젓는 데만 신경 쓰고 아예 그들을 보지도 않았다. 호수에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 어떻게 손님을 몰래 훔쳐볼 수가 있어?하지만 우문호도 더는 키스하지 않고 조용히 원경릉을 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원 선생은 물론이고 우문호도 이렇게 긴장을 푼 것도 오랜만이다.여전히 걸음걸음 긴장과 압박의 연속이지만 우문호는 전보다 상당히 가뿐했다. 적어도 주도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약속대로 머리를 비우고 고민되는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원 선생, 벌에 쏘일 뻔했던 그때 기억나?” 머릿속에 몇 년 전 처음으로 같이 있던
아름다운 밤뱃사공 부부가 야식을 만들어 살금살금 오더니 두 사람에게 먹으라고 건넸다.뱃사공 아낙은 대략 서른 살이 넘었고 늘 물에서 생계를 꾸리다 보니 걸을 때도 휘청거리는 게 습관이 들어 몸이 약간 흔들렸다. 대부분은 밤에 호수를 유람하고 낮에는 자기 때문에 피부가 희다.뱃사공 아낙은 솜씨가 좋아서 요리를 몇 개 만들었는데 고기볶음, 생선구이, 죽순 볶음에 민물 고기 죽도 끓였다. 우문호도 식욕이 동했다. 오늘 내내 밥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파 원경릉을 앉히고 뱃사공 아낙을 칭찬했다.“향이 좋은 게 분명 맛도 좋겠군.”뱃사공 아낙도 습관적으로 손님과 말을 주고받았으나 이 공자는 특히나 잘생겨서 그에게 칭찬을 받으니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 얼른 손을 젓고 말했다. “조잡한 요리지만 공자와 부인께서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앉아서 같이 먹을까요?” 원경릉이 불렀다.뱃사공 아낙은 손을 내젓고말했다. “아뇨, 아뇨, 같이 안 먹습니다. 저희는 있어요.”말을 마치고 부끄러워서 물러났다.갑판 위에 풍등이 하나 켜지고 요리는 전부 낮은 탁자에 놓였는데 두 사람이 양반다리를 하고 보료에 앉았다. 호수가 출렁이고 별빛이 물에 비쳐 반짝이는 걸 보니 말할 수 없이 낭만적이다.요리는 꽤나 입에 맞았는데 죽순이 연해서 딱 먹기 좋게 신선하고 부드러웠다.우문호가 원경릉에게 잔뜩 집어주고 원경릉이 볼이 빵빵해지도록 먹는 걸 보니 즐거웠다. 원경릉이 먹으면서 뱃사공 부부와 점원이 유심히 살펴보니 배를 멈추고 저쪽에서 먹고 있다.그들은 가운데 냄비를 하나 걸어 놓고 반쯤 쪼그리고 둘러앉아서 각자 그릇을 하나씩 들고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다. 뭘 먹는지는 안 보이지만 맛깔나게 먹는다. 뱃사공이 아낙에게 요리를 집어주는 동작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서 그녀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암묵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세상이 다 고요한 이 느낌에 원경릉은 감동했다.강산이 무슨 소용 있고, 황제를 해서 뭐 하나
검 대신 술원경릉은 처음에 둘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인생은 참 기묘한 것이라 그들이 뒤에 고난을 함께 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위왕이 다시 정화를 구할 줄 말이다.“모르겠어, 인연에 달렸지. 그들도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결국 정말 같이 있으려면 어떻게 서로를 대할 지 어려운 문제다.“헤어진다면 너무 안타깝다.”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은 여인으로 어떤 잘못은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반드시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정화는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사실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건 두 사람 일로 주변인은 그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말 외에는 끼어들어 간섭할 수 없다.원경릉은 얘기하다 보니 졸려서 우문호의 어깨에 기대서 잠이 들었는데 우문호는 원경릉을 가슴에 품고 호수에 뜬 별 무리를 보자 마음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이 평안하다.두사람이 나간 뒤 소홍천은 임소를 만나러 경조부에 갔다.원래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어쩌면 이번에 보지 않으면 영원히 툭 털어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소홍천은 임소를 죽이고 싶지 않다. 증오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렇게 오래 준비해서 겨우 잡았는데 임소가 죽지 않으면 쓰일 데가 있을 터다. 그래서 소홍천은 임소를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소홍천은 태자가 결정권을 자신에게 준 것에 감사했다. 우문호는 변한 적이 없고 그들의 우정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김을 받고 있다.우문호의 형제 같고 때론 친구 같은 우정이 있는데 임소가 배신하고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뭐가 있어?그래서 소홍천은 술까지 한 병 들고 그와 얘기하며 임소에게 충분히 변명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어쩌면 그러면서 얼핏 얘기가 새나올 수도 있으니까.심야가 되기 전 제왕은 아직 관아에 있는데 제왕 말고 박원도 있었다.“왔어?” 박원이 소홍천의 손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소홍천은 검대신 술을 가지고 온 것이다!소홍천이 박원에게 말했다. “당신도 있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